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 -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 다케시타
고바야시 데루유키 지음, 여영학 옮김 / 강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장애인이 살 수 없는 나라, 한국
 [잠깐 읽기 22] 고바야시 데루유키,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


- 책이름 :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
- 글 : 고바야시 데루유키
- 옮긴이 : 여영학
- 펴낸곳 : 강 (2008.11.28.)
- 책값 : 12000원



 (1) ‘루이 브라이’ 우표와 ‘박두성’ 기념관


 올 1월 2일, 2009년 첫 우표가 나왔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 즐겨하던 우표모으기를 이제는 거의 못하지만, 이날만큼은 우표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우체국에 달려가 전지 두 장을 삽니다. 우체국 아저씨는 언제나 그러하듯, 우표 설명쪽지와 함께 전지 두 장을 건네주고, 어떤 기념우표인지는 딱히 살피지 않습니다. 전지 두 장을 받아들고 들떠 있던 저는, “아저씨, 이번에 나온 우표는 아주 대단한 우표예요.” 하고 말을 겁니다. “그래요? 어떤 우표인데요?” “이번 우표는 점자를 만든 사람이 나왔거든요.” “아, 그래요? 어디 한 번 봐야겠네.”


.. 다케시타는 대학 시절에 현재의 아내인 도시코와 결혼했다. 결혼을 앞두고 신부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앞을 보지 못하는 데다, 그때까지 시각장애인이 사법시험에 응시한 전례조차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주장하는 다케시타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건 어쩌면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강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태어났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다케시타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안마 아르바이트까지 해 가며 가정을 꾸려 나가야 했다. 병원에서 신생아 안마도 하고 여관의 호출을 받고 노인들을 상대로 마사지도 했다. 되돌아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들을 안마하며 나눈 소통의 경험이 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는 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병원에서 안마를 할 때는 ‘선생’으로 불렸지만 여관에 가면 ‘안마사’가 되었다. 사회라는 게 이런 곳인가 싶었다 ..  (26∼27쪽)


 1월 2일 우표는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을 기립니다. 이름을 보고는 ‘응? 루이 브라유?’ 하고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했습니다. 1999년에 옮겨진 《루이 브라이》(다산기획/마가렛 데이비슨 씀)라는 책과 2007년에 옮겨진 《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보물창고/데이비드 애들러 씀)라는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8년 5월에 나온 《세상 밖으로》(큰북작은북/러셀 프리드먼 씀)라는 책에서는 ‘루이 브라유’로 적습니다. 이제까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라고 잘 말하고 있던 사람이름이 하루아침에 슬그머니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으로 바꿔 적도록 되었듯, ‘루이 브라이’로 오래도록 알려지고 사랑받은 사람이름 또한 하루아침에 살며시 ‘루이 브라유’가 된 듯합니다.

 아무래도 정부에서 내놓는 외래어적기법에 따라서 바꾸었구나 싶습니다. 하루아침에 제대로 알리지 않으며 이처럼 외래어적기법에 따라 사람이름을 쉽게 고쳐 버리는 일이 얼마나 옳으냐 싶은 한편, 이렇게 사람이름을 고치면서 ‘이름 고친 그 사람’이 한 일과 발자취는 제대로 헤아리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사람이름을 올바르게 고치자면, 누구보다도 ‘반 고흐’라는 그림쟁이 이름도 고쳐야 합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원음주의’에 따르면, 네덜란드사람인 ‘Van Gogh’는 ‘퐌 호흐’입니다. 우리들이 익히 ‘히딩크’라 말하는 네덜란드사람 또한 ‘히딩끄’입니다. 이준 열사가 죽은 곳은 ‘헤이그’가 아닌 ‘덴 하흐(Den Haag)’이고요.

 외래어적기법에 따르도록 한다면 꼼꼼히 살피며 제대로 추스를 노릇입니다. 외래어적기법에 따라 나라밖 사람들 이름을 고치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루이 브라이’라고 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왜 했는지를 가만히 살피면서 이이 이름을 고쳐쓰도록 하려는 국어학자 매무새인지, 그저 이름만 뚝딱하고 고치라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정부 관리 움직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다케시타, 힘들 텐데 졸업식에는 안 와도 된단다.” 그제서야 다케시타는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귀로 수업을 들을 수는 있지만 시험을 볼 수 없었고, 선생님들은 수업을 빠져도 된다, 졸업식에 안 나와도 된다, 하는 말을 예사로 했다. 하지만 다케시타는 되받을 말이 없었다. 그저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수밖에 ..  (48쪽)
 





 서양에 루이 브라이 님이 있으면, 우리 나라에는 박두성 님이 있습니다. 루이 브라이 님은 알파벳 점글을 만들었고, 박두성 님은 한글 점글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2008년은 박두성 님이 태어난 120돌이 된 해였습니다. 이해를 기리며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여러모로 잔치를 벌였습니다. 박두성 님이 한글 점글을 내놓은(‘훈맹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때는 1926년 11월 4일이라고 합니다. 까마득한 일제강점기 때에, 앞 못 보는 이들한테 빛줄기 하나를 나누고픈 마음으로 일한 셈입니다.

 그렇지만, 나라에서 문화인물로 뽑아 주고 박두성 님 기리는 위인전 몇 권 나오기도 하는 오늘날이라 하여도, 정작 인천에서 박두성 님 발자취를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강화섬에 기념관이 마련되었으나, 정작 인천 율목동에 있던 집은 허물려 없어졌고, 박두성 님이 점글을 만들어 점글책을 만들 때 고되게 점글찍기를 돕던 따님(박정희) 사는 집(인천 화평동/평안수채화의 집) 둘레도 아파트 세우는 재개발을 한다면서 말이 많습니다. 박두성 님 따님인 박정희 님은 나라와 인천시를 믿을 수 없어 당신 스스로 그 집을 지키면서 아버지와 당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그러모아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하늘나라로 떠날 마지막꿈 하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 대학은 시각장애인의 입학을 허가해 주기는 했지만 수업 시간에 쓰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시각장애인용 점자 책으로 준비하지는 않았다. 점자 교과서는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 다케시타는 어떻게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말겠다는 의욕은 강했지만, 막상 공부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점자 시험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교섭과 회의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사지 아르바이트를 중단할 수도 없었다. 법무성과 교섭을 하면서 마사지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이 사법시험을 볼 수 없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이 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은 안마사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  (71∼72, 96쪽)


 올 2009년은 인천시에서 ‘인천관광의 해’이자 ‘인천세계도시축전’이 벌어지는 해라면서 적잖은 돈과 품을 들이고 있습니다. 시에서 말하는 ‘관광’과 ‘도시축전’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유인물을 살피고 인터넷방에 들어가면, 오로지 상품만 있습니다. 돈을 들여서 쓰고 버리는 상품 아니고는 없습니다. 무엇 하나 즐겨도 돈을 들여야 하고, 무엇 하나 보려 해도 돈을 바쳐야 합니다.

 관광이 문화가 아닌 산업이 된 지 오래라, 인천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잔치판을 벌여도 마찬가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화 없는 상업(또는 산업)만 있다면, 더욱이 문화를 ‘문화산업’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뒤집어씌운다면, 이러는 가운데 인천이라는 곳에서 뿌리내리며 살았고 뿌리내리며 힘썼고 뿌리내리며 어깨동무했던 숱한 사람들 발자취를 톺아볼 자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떡해야 할는지요.

 박두성 님뿐 아니라, 조봉암 님이나 함세덕 님이나 현덕 님이나 이승엽 님이나 김동석 님 같은 사람들을 기릴 만한 마땅한 집 한 채 없는 인천입니다(어쩌면 이런 이름이 한국사람들한테는, 무엇보다 인천사람 스스로한테 너무 낯선 이름일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야구선수 이승엽만 알 테지요). 한국을 식민지로 삼거나 짓누르려 했던 일본사람과 서양사람들 쓰던 건물과 집과 별장 들을 수십 억을 들여 되살리는 일을 ‘역사복원’이라고 이름붙이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 독립을 이루려 애쓸 뿐더러, 여느 사람들 삶과 문화를 북돋우고자 땀흘린 이들은 내팽개치거나 모르쇠를 하거나 아예 ‘있던 생가마저 허물’기까지 한다면, 무슨 관광이 즐거우며 어떤 축전이 보람찰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사고 쓰고 먹고 마시고 버리고 하는 일이 관광이고 문화라고 생각하는 데에 길들여져 있고, 이런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스스로 품지 않습니다.
 





.. “나는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야. 세상 사람들은 장애인을 그저 눈이 안 보인다, 귀가 안 들린다, 다리를 못 움직인다고만 생각하지.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어떤 고생을 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 … 변호사가 장애인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없을 거야.” ..  (109, 142쪽)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면서, 이 버스와 전철에 앞 못 보는 사람이 얼마나 탈 수 있을까 늘 궁금합니다. 앞을 보는 저조차, 거칠게 달리며 흔들리는 버스에서 선 채로 몸을 버티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기를 안고 타도 자리 얻기가 어려운데, 앞 못 보는 사람임을 여느 사람이 알아본다 한들 거친 버스에서 걱정없이 다니라며 자리를 내어줄 마음그릇 되는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지만, 이보다, 버스역이 비장애인한테도 버스 잡아 타기에 퍽 나쁩니다. 버스역 길이가 짧기도 하지만, 택시와 짐차를 비롯한 다른 승용차가 으레 버스역에 버티고 서 있기 일쑤이고, 버스 여러 대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뒤에 들어오는 버스를 알아보기 힘들고 놓치기 쉽습니다. 버스 문이 열리면 우루루 몰려들어 새치기하느라 다투는 사람은, 힘여린 사람이나 어린이나 늙은이를 모시지 않습니다. 바퀴걸상을 타고 전철을 타려는 사람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오르내리는 리프트를 기다리느라 애먼 시간을 길에서 버려야 합니다. 요즘 지하철이 오죽 땅속 깊이 들어가 있으며, 리프트는 얼마나 느릿느릿 움직입니까.

 문득, ‘관광의 해’니 ‘세계도시축전’이니 외치면서, 비장애인 아닌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데에 얼마나 마음을 쏟는지 궁금해집니다. 행사 안내글을 앞 못 보는 사람이 볼 수 있게끔 점글로도 찍어서 나누거나 소리로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테이프가 있는지, 나라 안팎에서 장애인들이 나들이를 와 즐긴다고 할 때에 얼마나 수월하고 거뜬하도록 시설을 마련했는지 궁금해집니다.

 따지고 보면, 관보와 신문기사도 점글로 함께 내놓아 주어야 합니다. 방송은 스물네 시간 모든 풀그림에서(하다 못해 새소식 알리는 때라도) 화면 아래쪽에 손말 하는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또는 모든 말을 자막으로 함께 보여주거나. 승강기에만 층수 단추에 점글을 새길 노릇이 아니라, 아파트 들머리에 ‘이곳이 몇 동으로 가는 길목이고 이 앞은 몇 동인지’ 알 수 있도록 똑같은 자리에 어린이와 어른 키높이에 맞추어 점글로 된 알림판을 세워 놓아야 하고, 비장애인이 다니는 모든 길목에 ‘지금 이 자리는 무슨 구 무슨 동 몇 번지이며 갈래에 따라 어디로 갈 수 있다’고 밝히는 알림판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 도쿄에서 다케시타 외에도 두 명의 시각장애인 수험생이 사법시험에 응시했는데 다 같이 낙방하고 말았다. 몇 안 되는 시각장애인 수험생들은 쉽게 가까워졌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문제지에 오자와 탈자가 많다는 게 공통된 화제였다. 법무성에 문의했더니 오탈자 때문에 정정해야 할 문항이 열세 군데나 되었다고 시인했다. ‘잘못된 문제가 열세 개나 됐다면 당락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하잖아! 일반 대학시험에서 틀린 문제가 열세 문항이었다면 재시험을 보든지 무효로 처리했을 거야! 시각장애인이니까 열세 군데나 틀렸어도 그대로 두는 거 아냐!’ ..  (183쪽)


 우리가 장애 있는 사람한테 마음쏟는 일은, 몸 어디가 다치거나 아픈 사람한테만 마음쏟는 일로 그치지 않습니다. 힘(권력)이 없거나 여린 이한테 마음쏟는 데로 이어지고, 돈이 없거나 적은 사람한테 마음쏟는 데로 뻗치며, 가방끈 짧은 사람한테 마음쏟는 데로 옮아갑니다.

 서울 용산 철거민을 비롯해 전국 모든 곳 철거민과 ‘재개발대상지역 주민’ 모두 자기한테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자기 주머니에 알맞게 살림을 꾸릴 권리가 있습니다. 길은 자동차가 달릴 권리만이 아닌 자전거가 함께 달릴 권리가 마땅히 있을 뿐더러, 걷는 사람한테도 권리가 있습니다. 걷는 사람에는 몸 튼튼한 어른뿐 아니라 몸 여린 어른과 키 작은 어린이와 늙은 어른이 함께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길알림판에 알파벳을 적어 넣을 뿐 아니라 한자까지 적어 넣느라 수 조에 이르는 돈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길알림판에 점글을 함께 적으면서 앞 못 보는 이들이 알아보기 좋도록 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은 적 없습니다. 전국 동사무소가 ‘동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꾸며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기는 해도, 동사무소에 ‘점글로 된 안내책자’ 하나 번듯하게 놓인 모습은 이제까지 못 보았습니다. 건널목 가운데 띄엄띄엄 ‘소리가 나서 앞 못 보는 이들한테 도움 주는 곳’이 있습니다만, 건널목 푸른불 신호는 비장애인이 건너기에도 짧습니다. 이런 일을 모르는 분보다 아는 분이 훨씬 많을 텐데, 우리네 뒤틀리거나 엇나간 모습이 쉬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익히 아는 분들이 새로 공무원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지만, 정작 우리 사회 아쉬움과 모자람은 나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2) 장애인이 살 수 없는 나라, 한국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는, 일본에서 ‘앞 못 보는 사람으로서는’ 맨 처음으로 변호사가 된 다케시타 요시키라고 하는 사람을 다룬 이야기책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견주어 문화와 복지가 훨씬 앞서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점글로 된 법전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일본은 이런 점글 법전이 있으며, 다케시타 요시키라고 하는 이는 ‘사법고시를 점글로 칠 수 있도록’ 시험제도를 고쳤고, 다케시타 님 뒤를 이어 변호사가 되는 ‘앞 못 보는 사람’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 사람들과의 만남도 소중하지만, 다케시타에게는 점자와 맺은 인연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점자를 손끝으로 더듬어가며 법률 공부를 한 것은 일본에서는 다케시타가 처음이었다 … 그러면 점자 육법전서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일반 서점에서는 점자 육법전서를 취급하지 않는다. 재단법인 일본점자협회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책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한 권짜리 책으로는 나와 있지도 않다. A4 크기의 종이 50쪽 분량으로 된 책이 51권이나 되며 책값도 12만 엔에 달한다. 일반 가정집의 안방을 꽉 채울 만한 분량이다 … 다케시타가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1970년대 초만 해도 일본에는 점자 육법전서는커녕 점자로 된 법률 서적조차 없었다. 시각장애인용으로 나온 육법전서나 법률서적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도 물론 없었다.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각장애인은 사법시험에 도전할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  (27∼30쪽)


 우리 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라에는 점글로 된 법전이 있을까요. 녹음테이프로 된 법전이 있을까요. 법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온갖 안내글 가운데 점글로도 된 서류는 얼마나 될까요. 그 흔한 ‘손전화 가입신청서’ 가운데 점글로 만들어진 안내글은 있기나 한지 모를 노릇입니다.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고 신용카드를 만들 때, 점글로 읽을 안내글이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앞 못 보는 이들이 읽고 배울 수 있게끔, 우리 나라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과학 이야기를 다룬 점글책은 몇 권쯤 도서관에서 갖추고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앞 못 보는 이들이 나라밖 말을 배울 수 있게끔 도와주는 점글 교재는, 또 점글로 된 영한사전이나 일한사전은 한 권이나마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 “선생님, 전 대학에 가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서 공부를 할 겁니다.” 다케시타는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 어떤 머뭇거림도 없었다. “그래, 대학에서 무얼 공부하기로 결정했니?” “법학부에 가서 법률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법학부? 법학부를 나와서 무슨 일을 하려고?” 다케시타는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전 변호사가 될 겁니다.” 담임선생님이 어이가 없어 입을 벌렸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비슷한 표정을 지어ㅏㅆ으리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멍청한 녀석!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군. 그건 허공에 집을 짓겠다는 거나 다름없어.”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선 웅변부에서 말솜씨를 연마한 다케시타가 한 수 위였다. “선생님, 저는 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  (58∼59쪽)


 ‘장애인’이라 하면, 으레 ‘비장애인이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 여깁니다.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이런 생각에 길들여지고, 학교에서도 이처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데가 오로지 비장애인만 다니도록 짜인 가운데, 학교 틀거리와 교과서도 비장애인이 배우는 데에만 맞춰져 있고, 교사들은 비장애인을 가르치는 솜씨만을 교대와 사대에서 익힙니다. 장애 있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뿐더러, 우리는 언제라도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도록 찬찬히 이끌어 주는 책이나 이웃은 찾아보기 어려운 가운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울타리를 높이기만 하는 우리 사회입니다.

 장애인이 살기 팍팍하면 비장애인도 살기 팍팍한 줄 깨닫지 못합니다. 적게 배운 이가 살기 팍팍하면 많이 배운 이도 살기 팍팍한 줄 느끼지 못합니다. 힘여린 이와 돈없는 이가 살기 팍팍하면 힘있고 돈있는 이 또한 살기 팍팍한 줄 알지 못합니다.

 비정규직이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정규직이라고 살기 좋을까요? 이주노동자가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한국노동자가 살기 좋을까요?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는 책이름마따나,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또렷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장애인은커녕 비장애인도 살기 나쁜 나라라고. 한국은 올바르지 못한 나라라고. 정치꾼만 올바르지 못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도 올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4342.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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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식탁 1
시무라 시호코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과 그리움과 애틋함을 만화 하나에 소롯이
 [살가운 만화 41] 시무라 시호코, 《여자의 식탁 (1)》



- 책이름 : 여자의 식탁 (1)
- 글ㆍ그림 : 시무라 시호코
- 옮긴이 : 김현정
- 펴낸곳 : 대원씨아이 (2008.5.15.)
- 책값 : 4200원



 (1) 사랑하는 마음으로 찍는 눈골목 사진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아침, 모든 일을 젖혀 놓고 사진기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옵니다. 오늘은 모처럼 장갑까지 끼고 나옵니다. 설마 싶어서 두툼한 겉옷을 챙겨 입습니다. 모자를 눌러쓰며 눈발을 막고 사진기는 겉옷 안에 넣어 눈이 맞지 않게 하면서 뒤뚱뒤뚱 뜀박질을 합니다.

 창영동 골목집에서 배다리 철길다리 밑으로 지나 경동으로 건너갑니다. 늘 다니면서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았던 골목 모습을, 오늘은 눈발 날리는 모습으로 새롭게 담습니다. 경동을 지나 율목동으로 접어들고, 다시 경동으로 건너온 다음 용동으로 넘어가고, 용동에서는 인현동으로 건너서 은행에 들러 돈을 찾고, 지하상가를 거쳐 찻길을 가로지른 다음 동인천 〈대한서림〉 옆을 스쳐서 내동을 살짝 바라보다가 전동 삼치골목을 쳐다봅니다. 삼치골목은 가게마다 간판갈이를 하느라 부산합니다. 시에서 관광특구로 지정하며 간판을 새로 다는 듯합니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 내동과 전동과 송학동1가가 만나는 무지개문(홍예문) 앞에 섭니다. 자동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뒤 무지개문 밑에 서고, 이 길에서 사고가 많아 걱정이라 한다면 이리로 자동차가 못 다니게 하면서 이곳을 ‘근현대 문화역사 체험 마을 특구’로 삼아도 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송학동1가 골목길을 지나 북성동3가로 접어들고, 중국사람들 살림집을 하나둘 넘겨보면서 북성동2가로 접어들고, 중국인거리에서 허물어져 가는 공화춘 건물 앞에 서서 잠깐 고개를 숙인 뒤, 선린동 해안동성당 앞에 닿습니다. 선린동 해안동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해안동성당 교육관은 시 지정 문화재라고 하는데, 이곳 또한 또다른 시 지정 문화재인 공화춘 건물과 마찬가지로 그예 썩어들며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 “참지 않아도 돼.” “그치만.” “그래.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구나. 하지만, 난 정말로 괜찮아. 이쿠가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모른 척할 순 없어. 아빠랑 할머니가 반대해도 엄마가 설득할게. 그러니까, 다음에 친엄마와 만날 기회를 만들자.” ..  (14쪽 - 수영 클럽의 아이스크림)


 눈발이 멎을까 싶어 쉴 새 없이 걷고 달리고 사진을 찍습니다. 엉덩방아도 찧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북성동2가 골목 안쪽에 옛날 그대로 남아 있는 우물터를 스치고 지나간 다음, 관동2가로 접어들었고, 관동2가에 멋들어진 텃밭을 꾸리는 집 앞에 어느새 새로 생긴 울타리를 물끄러미 바라다봅니다. 이곳 관동2가에는 나이트며 가라오케며 단란주점이며 잔뜩 있어서, 인천시에서 ‘역사문화의 거리’라고 붙인 이름이 남우세스럽기도 한데, 아무래도 그 술집에서 체한 사람들이 쓰레기를 텃밭에 함부로 버리는 듯합니다. 집임자는 텃밭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높직하게 울타리를 쌓았고 경고글까지 붙여놓습니다.

 중앙동2가를 지나고 중앙동3가와 관동3가를 지난 다음, 신포동에서 머뭇거리다가 송학동3가로 거슬러 갑니다. 다시 내동을 지나면서 내동 성공회성당 앞을 지나갈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지하상가를 건너서 답동성당 옆으로 지나갑니다. 답동성당을 옆으로 끼는 샛길에 늘 자동차가 두 줄로 서 있어서 다니기 나빴는데 지지난달에 시에서 드디어 거님길 공사를 해서, 걸어다닐 때 차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도록 바뀌었습니다.

 다시 율목동으로 들어서면서 머잖아 사라질 인천시립도서관을 옆으로 흘깃 바라본 다음, 율목공원으로 들어갑니다. 율목공원 들머리에서 길에 염화칼슘 뿌리는 할아버지를 보고는 “고생 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합니다.

 나이를 제법 많이 먹은 은행나무한테도 인사를 하고 나서, 율목동 안쪽 고즈넉한 집자리, ‘개조심’ 푯말이 붙은 마당가에서 서성이면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부랴부랴 신흥동2가 골목을 누비고, 다시 율목동과 유동과 경동이 엇갈리는 골목을 지납니다. 인천시에서 밀어붙이는 산업도로 공사터 옆을 지나는 길을 마지막으로,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 ‘본심을 알 수 없어서 타인이 무섭다는 말은 자주 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에 정말로 바깥출입을 안 하게 되면서, 넌 이제 이대로 평생 틀어박혀 사는 건가 생각했거든. 하지만 다행이야.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선 안 된다는 걸 겨우 깨달았구나. 넌 다시 한 번 타인과 마주할 용기를 갖고 있었어.’ ..  (26쪽 - 호밀 100%의 호밀빵)


 집으로 돌아오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손은 꽁꽁 얼어붙었으나 등판에는 땀이 줄줄 흐릅니다. 속옷을 모두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아침에 신나게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모두 155장을 찍었습니다. 얼마 못 찍었습니다. 밥을 먹고 다시 마실을 나가야겠어요.

 아침부터 눈밭 골목길을 후들거리는 다리로 누비면서 몸이며 손발이며 고단하기 짝이 없지만, 눈구경을 하기 어려운 오늘날, 모처럼 눈발이 그치지 않고 흩날리는 이런 때를 놓칠 수 없습니다. 눈구경이 어려우니 눈온 모습은 덜 찍거나 안 찍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아무리 우리 세상이 이렇게 뒤바뀌고 있다고 하여도, 어렵게 만나는 눈송이인데,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송이를 냠냠하면서 비알진 골목에서 미끄럼도 타며 놀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어서 오거라. 볼일은 끝났니?” “네. 저기,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오시면 같이 우리 집에 안 갈래요? 유부초밥 다 같이 함께 먹어요.” …… ‘난 단순하니까 괜찮아. (열심히 한 상이야) 그러니까 분명 또다시 힘을 내서 달릴 수 있어.’ ..  (56쪽 - 운동회의 유부초밥) 






 생각해 보면, 오늘은 아기와 옆지기가 집에 없으니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아기와 옆지기가 집에 있으면, 밥하고 빨래하고 뭐하고 하느라 바깥마실은 엄두도 못 냅니다. 아기와 옆지기가 한동안 처가에 가서 지내고 있으니, 보일러가 얼지 않도록 틈틈이 인천집으로 돌아와서 손보고, 고양이한테 밥 주고 하는 사이사이, 눈골목 사진도 찍고 밤골목 사진도 찍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기와 옆지기가 함께 있는 집에서는 아기와 옆지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여덟아홉 가지 곡식으로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면서는, 밥그릇과 찌개그릇을 사진으로 담고, 빨래 널어 놓은 옥상마당을 드문드문 사진으로 담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에는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고, 골목길 마실을 할 때에는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자전거 타고 마실을 다니면 또 자전거 타고 지나다니는 길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살아가는 그대로 사진으로 담깁니다. 살아가는 발자취가 고스란히 사진이 됩니다. 삶과 생각과 모습이 온통 사진으로 아로새겨집니다.


.. ‘난 알고 있었습니다. 그 과자는 맛있고 예쁘고, 다만 너무나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78쪽 - 일요일의 다과회 마카롱)
 





 오늘 눈골목 사진은, 그동안 봄 여름 가을 사이에 신나게 다니던 곳을 다시 찾아가면서 담았습니다. 이제까지 봄 사진과 여름 사진과 가을 사진은 수두룩하게 있으나, 겨울 모습을 말할 만한 사진이 없어서 짝을 이루어 놓지 못했는데, 오늘 다리힘이 쪽 빠지도록 돌아다니면서 비로소 마무리가 지어집니다.

 사진을 한 장 두 장 찍는 동안, 제 어릴 적,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놀던 일이 떠오릅니다. 골목길 동무들하고 놀던 일이 떠오르고, 중고등학생 때 시험공부로 밤늦게까지 붙들어매는 학교가 싫어서 주말이면 하염없이 골목길을 걷고 또 걸어서 다니던 일이 떠오릅니다.

 1992년에도 이 길을 걸었는데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1985년에도 이 골목에서 놀았는데 그때나 이제나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1982년과 1981년에 엄마 손을 잡고 신포시장과 송현시장과 신흥시장을 다녔지, 하고 떠올립니다. 이제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2019년에 이 골목을 다시 거닐 수 있을지 모르고, 2029년에 아이와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 예전에 살던 집 둘레를 거닐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1981년이나 1992년은 그리 까마득한 옛날 같지 않은데, 2019년이나 2029년이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까마득한 앞날 같습니다. 그때까지 이 골목이, 우리 골목집이, 이웃 골목 삶터가 하나도 안 남아 있을 듯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담은 사진에만 남고 그예 없어져 버릴 듯합니다.
 





.. ‘상처 입힐 것 같아서 무섭다고 말하면서 히로야 오빠가 씻은 딸기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히로야 오빠가 보물처럼 다룬 딸기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 있지. 웃을 거 같아서 말하지 못했지만, 변신해서 인기를 얻는 것보다, 누군가를 사귀는 것보다, 난 사실은 이게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지금 빠져 버린 ‘사랑’이라는 걸.’ ..  (100∼102쪽 - 히로야가 씻은 딸기)


 사진을 찍는 동안 등과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습니다. 손가락이 얼고 발가락이 얼었습니다. 그리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저는 ‘사라져 가는 우리 고향’을 사진으로 담을 마음이 없는데, ‘잊혀져 가는 우리 옛 도심지’를 사진으로 찍을 생각이 아닌데, ‘추억이 되어 버린 우리 골목길’을 사진으로 박아 놓을 뜻은 없는데.

 사진에 하나둘 찍힐 때마다 ‘이야기’로 헤아리고 있습니다만, 다른 분들한테는 그저 ‘기록’이나 ‘추억’으로 느껴지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살아가는 발자국이며 살아온 손때인데, 낡은 집이고 ‘주거환경개선을 해야 하는 낙후된 지역’으로만 느끼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이젠 다 싫어. 알바 가는 것도 싫어. 시시한 공부도 싫어. 타카하시에게 여자친구가 있는 것도 싫어. 이젠 모든 게 다 싫어, 싫다고. 싫어. 싫어. 싫어.’ ..  (111쪽 - 종이박스 속의 말린미역) 






 눈을 쓸고 쓰레기를 치우는 몽당빗자루에 깃든 사랑을 사랑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이 몇 사람한테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쓸고 일곱 시에 쓴 다음 아홉 시에 또 쓰는 골목집 아주머니와 할머니들 손자취를 곱새길 수 있는 넋이 몇 분한테 살아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랑하니까 찍는 사진이고, 사랑하기에 찍을밖에 없는 사진이며, 사랑을 바치며 찍게 되는 사진인데.

 같이 살고 싶어 찍는 사진이고, 함께 살고 있으니 찍는 사진이며, 오순도순 모이고 어우러지면서 엮어내는 사진인데.


 (2) 사랑에 빠진 삶, 사랑을 그리는 삶, 만화 《여자의 식탁》


 만화책 《여자의 식탁》을 읽습니다. 지난해 8월에 아기를 낳은 뒤 다섯 달 동안 만화가게에 들르지 못해 그사이 새로 나온 만화는 하나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제 어렵사리 만화가게 나들이를 하면서 잔뜩 사들였는데, 마침 지난해 5월에 처음 옮겨졌다고 하는 《여자의 식탁》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4권까지 나왔고, 아직 줄거리와 맛을 알 길이 없기에 1권만 먼저 사서 읽습니다.


.. ‘처음으로 남자에게 안기면서 떠올린 것은, 어린 시절의 시간과 씁쓸한 첫사랑’ ..  (180∼182쪽 - 버스 정류장)


 그린이 ‘시무라 시호코’ 님은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서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어울리는 이야기를 ‘먹을거리 하나’에 따로따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책이름이 《여자의 식탁》이구나 싶은데, 밥상머리 먹을거리는 새삼스러운 요리이지만은 않습니다. 초콜릿 하나이기도 하고 딸기 한 송이이기도 합니다. 스파게티 한 접시이기도 하고, 운동회 때 먹는 유부초밥이기도 합니다. 차멀미를 막아 줄까 싶어 씹는 민트껌일 때가 있고,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혼자 대학교 다니며 알바하여 공부할 돈을 버는 아이가 고향 부모님이 보내 준 말린미역일 때도 있습니다.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와 순대로 옛생각을 되새기기도 하듯, 청어 한 접시나 삼치 한 접시로 옛사람 만나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듯, 눈물 젖은 막걸리 한 사발이나 도시락 한 그릇으로 어린 날 집식구와 옛동무를 그리워하기도 하듯, 《여자의 식탁》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먹을거리에 모든 삶이 담기고 모든 이야기가 스미며 모든 우리 발자취, 곧 우리 생활문화역사가 있음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군더더기 없는 그림결에 부드러운 흐름으로 우리 마음결을 사로잡고 눈길을 촉촉하게 해 줍니다.

 사랑이란 시끌벅적한 사랑만 있지 않음을 말합니다. 사랑이라면 누구한테나 마음속 깊은 데에 조용히 소담스레 보듬고 있기도 하다고 들려줍니다. 사랑이기에 옛사랑과 새사랑 가리지 않고 언제나 내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일으켜세우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이곳에 튼튼하게 살아 있어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귀엣말을 합니다. (4342.1.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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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67 ―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 사진’일 뿐
 : 최민식, 《사진이란 무엇인가》


- 책이름 : 사진이란 무엇인가
- 글ㆍ사진 : 최민식
- 펴낸곳 : 현문서가 (2005.6.20.)
- 책값 : 12800원



 (1) 삶과 삶, 또 삶과 삶


 아기가 하루에 네 번쯤 똥을 누면 참으로 괴롭습니다. 날이 더운 여름날이라면 더위를 식힌다며 찬물로 벅벅벅 문질러 빨 텐데, 손도 몸도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면 에휴 하는 한숨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나마 찬물로 빨면 온 손가락과 손바닥이 쩍쩍 얼어붙으며 벌겋게 되기에, 보일러를 돌려 방을 덥히고 따순 물을 쓰면서 빨기는 하는데, 이렇게 빨래를 해도 얼어붙는 손은 녹지 않습니다. 똥기저귀 빨래가 아니더라도 날마다 몇 시간쯤은 씻는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저귀며 옆지기 옷가지며 부지런히 빨아야 하니 몸이 축나고 마음이 지치고 머리는 텅 비어 버립니다.


.. 리얼리즘 사진은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닌 ‘삶을 위한 사진’이다 … 리얼리즘 사진은 형식주의와는 달리 사진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파악한다 … 내용과 긴밀하게 얽히지 않은 형식적인 사진은 공허하다 ..  (15∼16쪽)


 고단함은 빨래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들인 집은 바람막이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불을 넣지 않는 방은 영 도 밑으로 떨어집니다. 어디 산골짝 집도 아니건만 이렇게 추운 집일 수 있으랴 싶은데, 돈없고 집없는 살림살이로서는, 한데에서 별도 안 보이는 칙칙한 하늘을 이불 삼지 않는 일로도 고마워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불 때는 방은 바닥이나마 뜨시고 이불이라도 덮으면 입김 콧김 서리기는 해도 얼어죽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방이 춥다고 해도, 또 집이 썰렁하다 해도, 기저귀 빨래라도 잘 말라 주면 좋을 텐데, 기저귀 빨래는 날이 춥고 집도 추우니 제대로 안 마릅니다. 열 시간쯤 널어 놓아도 마를 낌새가 없고 열다섯 시간쯤 가만히 널어 놓아도 안 마릅니다. 다 말려서 개 놓은 기저귀가 꼭 한 장이 남을 무렵 하는 수 없이 다리미로 말립니다. 바깥일 하랴 집일 하랴 기저귀 빨래 하랴 뭐 하랴 이거 하랴 저거 하랴,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가 없습니다. 그 좋아하는 ‘헌책방 나들이’조차 한 주에 한 번은커녕 두 주에 한 번조차 못하면서 살게 됩니다. 견진성사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가 된 몸이지만, 미사 드리러 가지도 못합니다. 내 코가 석 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날이고 요일이고 어떻게 가는 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인간이 사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사진작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진을 위해 꾸준히 이념과 소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아무리 표현기법이 뛰어난 사진이라고 해도 내용이 뚜렷하지 않다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런 사진에서는 힘을 느낄 수 없으며 가치 있는 사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  (30∼31쪽)


 옆지기는 지난 12월 7일에 아기 유아세례를 받게 된다고 기뻐하며 당신 어머님한테도 전화를 하고 대모 설 동무한테도 전화를 했습니다. 날짜를 받고 나서 당신 어머님과 전화를 하다가, 아기가 세례 받는 날이 자기 지아비 난날임을 알게 됩니다. 당신 어머님이 “그날 니 남편 생일 아니야?” 하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지아비 된 제가 옆지기 난날이라 해서 더 기리거나 사랑해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옆지기 어머님한테 고마워하고, 그동안 얼마나 애쓰셨을가를 돌아볼 뿐입니다. 제 난날이라고 하는 12월 7일도, 지어미 된 옆지기가 더 마음쓰거나 기뻐해 줄 일이란 없습니다. 그저 우리 어머니한테 전화라도 걸어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우리 아기가 이 추위에도 모쪼록 튼튼하게 버티어 내면서 씩씩하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러셀 리(1903∼1986)는, 사진이 시대적 소명에 무관심하다면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사진작가 이전에 한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모든 작품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창조했다 ..  (170쪽)


 사진 일감 때문에 서울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저녁입니다. 사진 일감은 모두 아홉 사람한테 같은 이야기감을 던져 주면서 맡겼는데, 뚜렷한 듯하지만 하나도 뚜렷하지 않은 사진감이고, 함께 사진 찍을 다른 분들 사진이 저로서는 하나도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 사진이 이분들보다 빼어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하나같이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저는 한 가지 사진감을 깨닫고 부지런히 사진찍기를 하게 된다고 하면, 적어도 열 해쯤은 그 한 가지 사진감을 파헤치고 캐내면서 이야기를 엮어야 비로소 성에 찰까 말까 한다고 느끼는데, 고작 다섯 달쯤 시간을 주면서, 일삯도 아주 조금 건네며 사진을 찍으라고 하니, 제가 무슨 노예도 기계도 아니고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그런 사진 일감이나마 받아 아쉬운 살림돈으로 쓰자고 생각하기도 했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맡게 되더라도 그 짧은 동안 한 가지 사진감을 내 깜냥껏 파헤치면서 공부를 해 보자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날 저녁 두 번째 모임을 하는 동안, 또 모임을 마치고 저녁밥을 함께 먹는 동안 몹시 슬펐습니다. 다들 사진으로 먹고살고 있을 뿐 아니라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는 분들인데, 밥자리에서 어느 한 마디도 ‘사진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모두들 사진을 아주 잘 알아서 그런지, 세계 온갖 나라 사진책이며 사진 문화를 훤히 꿰뚫고 있기에 굳이 할 말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릅니다. 어쩌다 보니 어제 서울 나들이를 할 때, ‘토몬 켄(土門 拳)’이라고 하는 일본 사진작가 두툼한 사진책 하나를 들고 가게 되었는데, 이 사진책을 알아본 분은 열세 사람 가운데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사진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예술 분야이며, 그 바탕에는 리얼리즘 정신이 깔려 있다. 따라서 진실한 사진이란 사진작가가 끊임없이 현실을 발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진작가는 항상 세상일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젊은 사진작가들은 인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의미 없는 사진만을 창조한다. 치열한 고민과 노력 없이 창조된 사진의 생명은 매우 짧을 것이다 … 사진은 이제 특정인의 성역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술 분야가 되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찍은 사진은 개성적이라기보다는 무분별하게 미적 가치의 혼란만이 보인다. 대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 없이 맹목적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진실한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자신에게 항상 던져야 한다 ..  (4, 33쪽)


 뭐, 일본 사진작가가 그리 훌륭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토몬 켄이든 아무개든 일본에서 내로라 해 보았자 한국 사진밭하고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다른 이 사진책을 보거나 말거나 자기 길만 꿋꿋하게 걸어가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그 추운 날, 두 손이 꽁꽁 얼어붙어 가면서도 그 사진책을 한손으로 들고 길을 걷는 내내, 슬프면서 쓸쓸했습니다. 사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사진이 참으로 좋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사진에 죽고 사는 사람을 보지 못해서, 사진 찍으면서 산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깨나 손에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아서.


.. 단순한 경치는 쉽게 찍을 수 있지만, 강렬한 호소력이 담긴 풍경사진을 찍는 데에는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과 기법이 뒤따라야 한다 ..  (56∼57쪽) 






 (2) 사진과 사진, 또 사진과 사진


 여러 달 앞서부터, 제 사진감인 헌책방을 찍을 때, 더는 필름을 쓰지 말고 디지털로만 찍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단골로 가는 사진관이 너무도 힘들다면서 가게를 줄이고 줄여, 앞으로는 아예 가게마저 접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암실을 따로 마련할 겨를이 없으며, 암실보다는 사진관 사람들하고 가까이 지내기를 바랍니다. 사진관 사람한테 필름을 맡기는 가운데, 내 일(사진찍기)이 나뿐 아니라 다른 이가 보기에도 그럴싸하게, 아니 무언가 느낌이 올 만큼 받아들여지는지를 배우고 되씹습니다. 사진관 사람과 현상소 사람이 제 필름을 보면서 ‘이런 사진감으로 용쓰는 사람도 있군’ 하고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감 하나 남달리 찾아내어 오래오래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지금 쓰는 필름사진기는 디지털사진기보다 눈(화각)이 넓기 때문에, 디지털로는 못 담아내는 넓은각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필름사진을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돈이 어느 만큼 모이면 파노라마 사진기를 장만할 꿈을 꿉니다. 치수는 6×17짜리 넓은 녀석으로. 그러나 웬만큼 돈을 모아 놓기는 했어도, 사진관에 지지난해부터 ‘파노라마 6×17 들어오면 연락해 주셔요’ 하고 부탁하고 있으나, 영 소식이 없습니다. 이제 35미리 필름사진은 접고 중형필름 쓰는 파노라마하고 디지털 두 가지로만 사진을 찍고 싶은데, 우리 나라에서 사진 찍는 형편으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이렇게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 인물의 표정을 찍는 일은 쉽다. 그러나 무언가 메시지를 지닌 얼굴과 몸짓이 들어 있는 사진을 찍기는 힘들다. 훌륭한 인물사진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인물사진에 작가의 체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물사진 속에는 한 시대의 삶의 지표나 사상을 집약한 한 인간의 삶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 주제가 되는 인물은 우리들이 사는 사회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발굴하는 것이 사진작가 자신이 살아가는 지침이 되기도 한다 ..  (74∼75쪽)


 때때로 이런저런 이름난 연예인들이 값나가는 사진장비로 손장난 하는 듯한 사진놀이를 하면서 책도 내고 전시회도 여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책을 보고 저런 전시회를 들여다보면, 세상은 부자와 가난뱅이로 나뉘어 20:80으로 갈리기도 하지만, 이런 갈라짐이 경제만이 아니라, 또 정치만이 아니라, 문화며 예술이며, 글이며 그림이며 사진이며 노래며, 모두 갈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손장난 하는 사람한테는 값나가며 좋은 장비들이 곰팡이랑 벗하고 있고, 사진에 목매달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애써 여러 해에 걸쳐 돈푼을 모았어도 장비를 장만하기가 하늘에 달린 별 따기와 같고. 우리 삶을 밝혀 준다고 하는 훌륭한 작품 남긴 이들은 그리 비싸지 않을 뿐더러 ‘참 흔한’ 장비로 사진을 담아내지만, 세상에 이름 높거나 거룩하다고까지 하는 사진 장비 쓰는 한국 사진쟁이가 꽤 되지만 이분들이 남기는 사진은 ‘참 흔한’ 흉내내기에 머물고.

 한손에는 한 가지만 쥘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구나 하고 느낍니다. 저로서는 한손에 사진기만 들 뿐, 돈을 들지 못합니다. 저로서는 사진기로 할 수 있는 사진창작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이와 달리 한손에 돈을 들고 있는 이들은 이 넘치는 돈으로 때때로 사진장비도 사들여 사진놀이를 하지만, 이들한테는 시간때우기나 시간죽이기와 같은 장난질이지, 사진으로 흐뭇하고 사진으로 기쁘며 사진으로 아름답고자 하는 나눔으로 거듭나지 못해요. 좋거나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진장비를 쓰는 겉치레 사진쟁이들이라 해서 부러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 일상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사진작품으로 남겨야 한다. 사진은 시대와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진실한 삶의 길을 비추는 힘이 있어야 한다 ..  (96쪽) 






 졸려서 눈이 벌건 아기가 우애우애 칭얼거립니다. 아기 기저귀싸개를 햇볕에 말리려고 옥상마당에 널었더니 다른 빨래와 함께 꽁꽁 얼었습니다. 엊저녁과 어젯밤과 새벽과 아침에 빤 기저귀싸개 넉 장이 아직 안 마릅니다. 아기 외삼촌이 열세 해 앞서 쓰던 녀석이 둘 있고, 우리가 새로 산 녀석이 둘에다가, 이웃이 선물해 준 두 장이 있어, 가까스로 아기한테 대어 줍니다. 지금 살림살이로서는 새 기저귀싸개를 더 살 수 없을 뿐더러, 더 사는 일은 몇 달 쓰고 말 테니 돈이 아깝습니다. 그래도 이웃한테 다시 선물해 주면 아깝지는 않을 텐데, 지금 우리한테 있는 여섯 장을 선물해 주어야지, 또 새 물건을 사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

 그래, 어쩌면, 이 기저귀싸개와 사진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군요.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쓰고, 아쉬우면 아쉬운 가운데 내가 뽑아내고 빚어낼 수 있는 만큼 온힘을 다하여 새로운 눈길과 이야기를 엮어내면 된다고. 골목길이며 헌책방이며 파노라마사진기를 써서 담아내면 한결 빛이 나고 그윽할 수 있겠지만, 장비를 고루 갖추었다고 하여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장비는 고작 낡은 녀석 하나뿐일지라도, 이 낡은 녀석 하나를 고이 보듬고 손질하면서, 이 낡은 녀석으로 찍어낼 가장 멋지고 아름다울 사진을 걱정하고 찾아나서는 일이 훨씬 뜻있고 보람있지 않느냐 다짐합니다.


.. 다큐멘터리 사진의 목적은 삶을 배우는 데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회구조 및 제도, 그리고 환경을 배우는 것이다 ..  (134쪽)


 하기는. 언제 제가 돈이 넘쳐서 사진을 찍었느냐 싶습니다. 필름값 없어 쩔쩔매는 가운데에도 값싼 필름은 안 쓰고 먹고살 돈을 바쳐 비싸면서 좋은 필름을 사고 배를 곯으며 사진을 찍지 않았느냐고 돌아보게 됩니다. 변두리에 싸구려 허름한 방을 얻어서 살고, 사진과 책에만큼은 있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되새기게 됩니다. 바쳐야 보이고, 바쳐야 이루며, 바쳐야 껴안습니다. 내 삶을 모두 내맡기면서 밑바닥부터 배우고, 내 마음을 모조리 내놓으면서 구석진 그늘자리까지 익히며, 내 품과 시간을 깡그리 내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곰삭여내지 않았느냐 싶군요.

 몇 천 원짜리 1회용사진기를 사려고 선배한테 돈 몇 푼 빌어 편의점에서 겨우 장만하여 찍은 사진이, 몇 백만 원 하는 장비로 으슥거리며 찍은 사진학과 대학생이 찍은 사진보다 낫다며 제 어깨를 토닥여 준 사진밭 어르신들 말씀을 새삼스레 곱씹어 봅니다. 






 (3)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말하는 책


.. 어린이를 주제로 한 작품은 많지만 내용이 부족하다. 대상의 본질에 직접 다가가지 못해서다 ..  (258쪽)


 1957년부터 사진을 찍어 온 최민식 님은, ‘사진 찍는 다리품과 손품 쉰 해’가 될 무렵, 당신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사진쟁이 최민식이 사진 찍어 온 길’을 들려주는 책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펴냈습니다.

 이제는 저도 사진길을 걷고 있기에, 최민식 님은 큰스승이거나 앞선 어른이기도 하지만, 길동무이거나 길잡이이기도 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을 보면서 고개숙여 배우기도 하지만, 최민식 님 사진에서 어느 대목이 돋보이고 어느 대목이 낮보이는지를 제 나름대로 느낍니다. 한국 사진밭에서 최민식 님 사진이 어느 만한 자리에 놓이는가를 돌아보기도 하는 가운데, 내 깜냥으로 최민식 님한테 배울 대목이 무엇이고 최민식 님한테서 보여지는 아쉬움이나 모자람이 무엇인가를 곱씹습니다. 앞서 크게 발자국 남기며 걸었던 사람을 좇아 걸으면서 한편으로는 수월하고 고맙고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또한 제 뒷사람한테 이렇게 큰 발자국 남겨 주어(또는 작은 발자국이나마 남겨 주어) 뒷사람한테 수월함과 고마움과 기쁨을 느끼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최민식 님은 최민식 님대로 우리 사진밭에 비어 있는 자리를 알뜰히 채웠고, 저는 저대로 우리 사진밭에서 따돌림받거나 뒤로 내밀린 자리를 차곡차곡 채우면 됩니다. 제 뒷사람들은 뒷사람들대로 스스로 느끼는 아쉬움과 모자람을 보듬거나 손질하면서 더 훌륭하게 거듭나면 될 테고요.


.. 사진은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영역을 드러내 주는 수단이다. 감정의 영역을 감상자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은 작가 스스로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다. 좋은 사진작품은 작가 스스로가 삶을 충실히 살고, 자신의 작품에 일관된 철학을 반영할 때 나온다 ..  (248쪽) 






 똑같은 사람을 찍어도, 최민식 님은 ‘人間’을 찍고, 저는 ‘골목사람’이나 ‘헌책방사람’을 찍습니다. 똑같이 사진기를 들이대어도, 최민식 님은 ‘人間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찍고, 저는 ‘골목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어요’ 하는 생각이나 ‘헌책방사람은 이렇게 살아가요’ 하는 생각으로 찍습니다. 똑같이 사진말을 붙여도, 최민식 님은 ‘人間 存在 探究’를 하시고, 저는 ‘골목집 살림 살피기’와 ‘헌책방 살림 살피기’를 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길과 제 사진길은, 같은 듯하면서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 같습니다. 사진에는 똑같이 사람이 찍히지만 사람이 찍히는 짜임새가 다릅니다. 다 다른 동네 다 다른 자리 다 다른 사람을 찍지만, 한결같이 사람 삶터에서 복닥이는 가운데 사진을 찍습니다. 최민식 님은 한쪽 어깨가 무너지도록 사진장비를 짊어지고 다니셨지만, 저는 무릎이 나가도록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기를 쥐었고, 어깨와 등허리가 휘도록 헌책방에서 고른 책을 가방에 가득 담고 집까지 땀 뻘뻘 흘리며 걸어왔습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도서관 책꽂이에 잘 보이도록 꽂아 놓은 최민식 님 사진책을 쓰다듬습니다. 최민식 님은 앞으로 당신 삶을 마칠 때까지 사진기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리라 봅니다. 저도 제 삶을 마칠 때까지 사진기를 손에서 놓을 날은 없으리라 봅니다. 최민식 님은 꾸준히 사진을 찍었던 만큼 꾸준히 사진책을 펴냈지만, 알고 보면 당신이 찍은 사진 가운데 아주 조금만 책으로 묶어 냈을 뿐입니다. 저는 아직 제 이름으로 된 사진책이 없는데, 먼 뒷날 사진책을 펴내게 된다 한들 그동안 찍은 사진 가운데 몇 점이나 넣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최민식 님 모든 사진을 골고루 살펴보거나 맛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까지 그러모은 당신 사진책을 뒤적이면서, ‘사람을 사랑하여 사람을 사진에 담은 최민식’ 넋과 얼을 느낍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찍을 수 없던 사진이었다고 느끼고, 1928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을 바탕으로 사람을 사랑하던 사진쟁이 매무새를 느낍니다. 그러면, 1975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을 바탕으로, 또 헌책방을 바탕으로 사람과 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책벌레요 사진벌레인 제 매무새는 사진에 어떻게 담기게 될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면서, 사진사랑 쉰 해를 넘어 사진사랑 예순 해에 가까워지는 큰 어른이 있으니, 나도 이에 못지않게 쉰 해나 예순 해 가까이 골목사람 사랑과 헌책방사람 사랑으로 사진길을 꿋꿋하게 이어나가자고 거듭 다짐하고 곱씹습니다. (4342.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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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사진은 오도엽 님이 찍었고,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과 함께 있는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이 책 하나 87 ― 이소선은 ‘어머니’, 전태일은 ‘아들, 형, 오빠’
 : 오도엽,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책이름 :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소선 여든의 기억
- 글 : 오도엽
- 펴낸곳 : 후마니타스 (2008.12.5.)
- 책값 : 12000원



 (1) 이야기를 나누는 삶


 아기 엄마는 아기를 어르며 함께 놀 때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 주고 이야기를 건넵니다. 아기 할머니도 아기를 어르며 함께 놀 때 부지런히 노래를 불러 주고 말을 붙입니다. 아기 이모도, 아기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외삼촌은 아직 노래나 말걸기를 그닥 하지 않지만, 아기를 귀여워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느 어버이이든, 자기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동안 쉴 틈 없이 달래고 안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합니다. 이렇게 살과 살이 맞닿으면서 함께해야 아이는 사랑을 느끼고 믿음을 받으며 튼튼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이 돌보는 일은 다른 누구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한식구라고 느끼는 이들이 다 함께 돌보아야 합니다. 아이 엄마와 아이 아빠 가운데 어느 한쪽이 도맡을 수 없습니다. 맞벌이하느라 바빠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긴다거나 돈을 주고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은 어버이 사랑이 담겨야 하고, 아이한테 입히는 옷은 어버이 믿음이 스며야 하며, 아이하고 놀며 지내는 집은 어버이 삶이 깃들어야 합니다. 때때로 어쩔 수 없이 돈을 주고 남한테 맡긴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거의 모두 핑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헤아리면 아이 키우기뿐 아니라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고 하는 집일부터도, 나아가 밥거리와 옷거리를 마련하는 일부터도, 돈을 벌든 곡식을 벌든 땀흘려 애쓰는 일거리부터도, 우리 스스로 하고 우리 몸을 움직여서 해야 합니다. 누가 해 줄 수 없는 일이며, 누가 즐겨 줄 수 없는 놀이입니다.


.. 전태일과 이소선은 밤마다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피를 토하던 미싱사 이야기, 배고픈 시다들 이야기, 헌옷을 사고팔던 이야기, 사람을 만날 때 기쁘고 슬펐던 이야기……. 이소선은 그 밤과 그 이야기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잠들지 못한다 … 태일은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오면 이소선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이소선이 말을 하면 ‘그랬군요’ ‘힘드셨겠네요’ ‘잘하셨어요’하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태일이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소선에게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태일은 옳은 게 무엇인지, 그른 게 무엇인지 조리 있게 말할 줄 알았다. 어린 여공들이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일하다 다리미에 화상을 입은 일이며,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다 보니 폐병에 걸려 피를 쏟으며 병원에 가는 이야기, 작업반장에게 욕먹고 훌적이는 이야기……. 태일에겐 그 모든 것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  (34, 35, 53쪽)


 하루 내내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이 눈높이에 맞게 놉니다. 아이가 우리 어른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는 모릅니다. 말길을 모두 알아듣든 말든, 아이가 마음으로 어버이 사랑을 느끼고 어버이 믿음을 새길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또 새로운 아침부터 새로운 밤까지, 그리고 다시 새로운 아침부터 새로운 밤까지, 내내 옆지기하고 붙어 지냅니다.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살림을 꾸리고 집에서 아기와 함게 노니 늘 함께 있습니다. 저잣거리 마실을 가도 함께 다니고,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어도 함께 움직이며, 책방 나들이를 해도 함께 돌아다닙니다. 요사이는 아기 때문에 때때로 혼자 다니게 될 일이 생기는데, 혼자 다니게 되든 함께 다니게 되든 부지런히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찻길이 시끄러우면 입을 닫아야 하고, 먼지 뿌연 길가를 지날 때에도 입을 막아야 하지만, 많이 꺼내고 나누는 말이 못 될지라도 늘 보고 지내는 사이라 해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배고파? 밥할까?” 하는 이야기부터, “오줌 눴네. 기저귀 갈아야겠네.” 하는 이야기까지, 그저 말없이 지나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옆지기는 잠깐 옥상마당에 나가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아래층 옥상마당에서 노는 길고양이를 부르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기한테 고양이하고 이야기나눈 일을 또 이야기합니다. 그림책을 펼치며 읽어 주기도 하고, 아기가 끼악끼악 소리를 질러대며 좋아하면, 그림 하나하나가 어떤 모습을 담아냈는지 찬찬히 거듭 들려줍니다.


.. 형사들은 이소선이 마치 간첩인 것처럼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이소선의 집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엄포를 놓았다. 남산동 화재 이후 십수 년을 함께 울고 웃고 하던 이웃들이라 이소선을 간첩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소선 집 앞에 초소까지 세워 두고 감시하는 판이라, 동네 사람들은 순덕이가 혼자 있는 줄 알면서도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  (168쪽)


 어제 낮, 동네 이웃집에 갑니다. 우리 동네 골목집과 골목집 사이를 쪽 째어 인천 서남쪽 새도시와 인천 서북쪽 새도시를 잇는다는 ‘1자로 된 산업도로(알고 보면 고속도로)’를 반대하는 일에 처음 불씨를 당긴 아주머니 세 분이 모여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는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옆에서 이 이야기를 녹음하고 타자로 받아 옮깁니다. 세 시간 남짓 손 아프고 팔 아프도록 타자로 옮기는데, 아주머니들은 산업도로와 얽힌 인천시 공무원들 안타까운 모습을 꾸짖는 가운데, 부지런히 당신들 삶을 끄집어내어 나눕니다. 항암치료 받던 이야기, 당신 늙으신 어머니 돌아가신 이야기, 당신들 어머니가 거쳐간 그 환갑 나이에 이제 당신들도 접어들게 된 이야기, 당신들 아이 키우는 이야기, 이 동네에서 살아온 이야기, …….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과 일로 만나는 사이라 해도, 사람과 사람으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일 때문에 전화를 걸어도 안부를 한두 마디 묻곤 하며, 일 때문에 편지를 쓰더라도 안부인사를 꼭 넣습니다.

 그저 인사치레라 할 수 있지만, 한낱 인사치레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딱딱한 기계가 아니라 포근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나누게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낯모르는 사람이건 낯익은 사람이건, 누구나 우리 이웃이며 우리 동무이며 어버이이자 동생이기도 하기 때문에 주고받게 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 “남들이 다 장기표 욕을 한다 해도 나는 절대 못한다. 난 장기표 편이다. 진짜 잘됐으면 한다. 정치에 뛰어들었으니까 정말 국회의원 뱃지라도 달았으면 한다. 김문수처럼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대가리 숙이더라도 국회의원 한번 했으면 좋겠다.” “진심이야?” “썩을 놈, 꼭 그 따위로 말하지.” 장기표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게 이리 말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소선은 진심이다. 김문수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나라당에 갔다고, 하는 꼴이 개판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텔레비전에 김문수가 나온다면 볼륨을 높인다. “효도하던 자식이 불효한다고 내칠 수 있냐. 만나서 야단치고 달래고 회초리를 들기도 하고 어르기도 해야지. 또 잘난 자식 있으면 못난 자식도 있는 법 아니냐.” 자식 앞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여느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소선을 아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그리 말해도 이소선은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소선에게는 장기표도 김문수도 모두 친자식과 같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절대 버리지 못하는 ‘보통 어머니’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소선은 ‘투사 이소선’도 ‘노동운동가 이소선’도 ‘민주 인사 이소선’도 아닌, 그냥 ‘어머니 이소선’에 평생 머물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존경한다. “손가락질을 해도 어쩌냐. 나한테는 태일이만큼 소중한 사람들인데 말이야.” ..  (178쪽)


 아기랑 쉴 새 없이 이야기 나누는 옆지기는 아기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요? 글세, 알아들으려나? 거꾸로 보면, 아기는 우리 어른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지 모를 노릇이고, 외려 우리 어른들만 아기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지 모릅니다. 아기들은 끊임없이 지 어버이한테 말을 거는데, 우리 어버이 된 사람들은 ‘옹알거리지만 말고 말을 해야지’ 하면서, 옹알거림에 담긴 속내와 이야기는 알아채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2) 민주가 없는 나라에는 평등도 평화도 없는데


.. “지금 민주네 무슨 봄이내 하며 박정희의 죽음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다시는 독재가 활개를 치지 못하게 끝장을 내야지요. 나는 우리가 싸우지 않고는 절대 민주주의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독재놈들이 민주주의를 낼름 내줄 것 같습니까. 절대 호락호락 내주지 않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입으로만 떠들 때가 아닙니다. 난 배우지 못했지만 싸워야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  (183쪽)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처제는 학교옷을 맞추어야 합니다. 일산에 있는 중학교는 거의 모두 학교옷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인천에 있는 중학교 아이들도 거의 모두 학교옷을 입지 싶습니다. 인천뿐 아니라 서울도 거의 다, 아니 우리 나라 전국 곳곳에 있는 학교라면 으레 학교옷을 맞추게 하여 입힙니다. 학교옷을 안 맞추게 하는 학교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학교옷을 맞추어서 입어야 한다는데, 학교옷 값은 장난이 아니도록 비쌉니다. 온삶에 걸쳐서 입는 옷이 아니요, 고작 세 해 입고 버려지는 옷임에도 싸야 20만 원이고, 50만 원을 웃돌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옷값은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가 모두 짐을 져야 합니다. 반드시 학교옷을 입혀야겠다면 입힐 노릇이지만, 이와 같은 옷은 옷을 입히려는 학교나 나라(정부)에서 대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개인옷을 입도록 한다면 마땅히 개인이 마련해야 할 일이고, 학교옷을 입도록 한다면 마땅히 학교가 마련할 일이 아닐까요. 어느 회사에서 회사옷을 개인이 사서 입으라고 합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입는 일옷은 회사가 대어 줍니다. 맞추어 줍니다. 마땅하지요. 그 회사를 돋보이게 하든, 그 회사에 있는 동안 잘 알아보도록 할 생각이든 회사는 회사 몫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는 학교 몫이 있어요. 아이들이 입을 학교옷은 학교에서 사들여서 아이들 몸크기에 따라 나누어 준 뒤 돌려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옷 빨래는 학교에서 해야 하고, 아이들은 개인옷을 입고 학교에 와서 학교옷으로 갈아입도록 해야겠지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누구나, 또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어느 집이나 옷값이며 책값이며 부교재값이며 사교육비며 …… 진저리를 치고 주름살이 늘밖에 없습니다.


.. “저는 배운 게 없어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다 옳으신 말씀들 같습니다. 제 짧은 생각에는 노동자의 장례식에서 외칠 구호는 노동자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함께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앞선 이론을 내세우면 아직 깨우치지 못한 노동자들이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까요. 먼저 지식을 배워서 안다고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려고 하면 노동자들이 쫓아가지 못합니다. 부족한 지식을 가진 노동자의 엄마가 쓸데없는 말 한다고 여기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 주세요.” ..  (230쪽)


 어제부터 《당신에게 말을 걸다》라는 사진이야기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백성현 씨는 한때 춤노래를 하던 ‘코요테’에서 뛰기도 했는데, 어릴 적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해서, 고등학교에 갈 때에도 실업계에 가서 사진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1981년에 태어나 2000년을 코앞에 둔 때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에도 동아리 선배들은 새벽같이 동아리방에 나와 청소하고 물 끓여 놓고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자기들한테 쏟아졌고(책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뻔한 노릇으로 주먹질과 얼차려와 욕설이었을 테지요), 백성현 씨가 1학년 때에 3학년 선배를 제치고 교내 사진백일장 같은 자리에서 금상을 타니 이죽거리면서 손찌검을 했답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휘두르는 손찌검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교사들 손찌검뿐 아니라 ‘학교 선배’라는 이들이 ‘학교 후배’한테 휘두르는 손찌검 또한 그다지 사라지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책에만 적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두 눈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오늘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중학교부터가 아닌 초등학교부터도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교육 얼거리로 되어 있지만,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맞춰 입도록 하고, 머리길이를 짧게 맞추며, 선후배 위계질서와 교사 학생 계급질서를 단단하게 세워 놓는 학교라는 울타리는, 어쩌면 우리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민주라고 하는 뜻하고는 멀어지도록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말로는 민주주의가 좋다고 하고,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로 일이 이루어지고 놀이를 즐기며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자리는 거의 없지 않느냐 싶어요.

 교과서 엮는 일이 민주주의답게 이루어지지 않고, 교사가 교재를 골라서 가르칠 때에 민주주의 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으며, 학생이 교사한테 교과서로 배울 때 자기 삶을 가꿀 이야기를 민주주의 흐름에 따라 받아먹을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온통 대학교바라기로 되어 있는 중고등학교 틀거리인데, 아이들은 대학교에 가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되도록 자라게 되는가요.


..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냐? 죽도록 민주주의 할라고 싸워서 된 거 아니나. 아이엠에픈가 뭔가 금반지 빼서 팔라는 소리도 좋긴 한데, 그래도 몇 가지는 제대로 해 놓고 해야지. 대통령 옆에 비서라는 사람은 국회의원 공천 장사나 해먹고 있으니 제대로 되겠냐. 내가 김대중 대통령 만날 때 그랬어. 금반지 빼서 경제 살리는 것도 해야 하지만, 국가보안법 없애고 민주화 운동 하다가 죽은 사람들 누명 벗기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대통령도 국가보안법 대문에 죽을 뻔했잖아요. 막 따졌어. 제대로 안 하면, 대통령 체면 생각해서 지금은 국회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아예 청와대 앞에서 할 거라고.” ..  (275∼276쪽)


 어린 처제가 중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민주를 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처제가 민주로 둘러싸인 학교에서 민주를 배울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평등도 배우고 평화도 배우며 통일도 배우는데다가 연대와 창조도 배울 테지요. 민주를 익힐 수 있는 학교라면 스르럼없이 사랑도 익히고 믿음도 익힐 테며, 나눔과 어깨동무도 나란히 익힐 테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초등학교 졸업식도 안 하고 중학교 입학식도 안 한 처제가 ‘중학생 머리길이’에 맞추어 벌써부터 머리를 자르게 시키는 이 나라 교육 틀거리인데, 아이들 머리길이를 이처럼 다그치는 학교 규칙은 국가보안법하고 얼마나 다를까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중학생이 되면, 그나마 초등학교에서 하던 ‘책을 읽고 독후감 쓰기’ 같은 숙제는 사라지고 ‘교과서 아닌 책은 못 보도록’ 할 텐데, 이런 우리네 학교 수업은 진시황이 했다는 분서갱유나 일제강점기부터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그리고 이명박에 걸치기까지 사라지지 않는 ‘불온도서 목록’과 ‘금서 목록’하고 무엇이 다를까 모르겠습니다. 






 (3) ‘어머니’ 이소선을 담아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몸에 불을 붙여 노동자 푸대접에 맞서기 앞서 청계천 노동자들한테 벗이 되고 오빠가 되었던 전태일 님 이야기는 《전태일 평전》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에 담겨 있습니다. 전태일 님을 낳고 길렀으며, 전태일 님이 죽은 뒤에는 전태일 님이 걸었던 길을 다부지게 걸을 뿐더러, 더 힘차게 걷고 있는 어머니 이소선 님 이야기는 《어머니의 길》에 살뜰히 담겨 있습니다. 《전태일 평전》에 쏟아지는 눈길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길》에도 너르고 깊이 눈길이 쏟아졌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좀처럼 《어머니의 길》은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데, 참 오랜만에, 《어머니의 길》이 나온 지 거의 스무 해 만에 새롭게 ‘어머니’ 이소선 님 이야기가 책으로 묶였습니다.


.. 이소선은 사라진 아들의 일기장을 찾으러 노동청에 가서 싸웠다 ..  (89쪽)


 그런데 책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지는 대목이 하나 나옵니다. 어머니 이소선 님은 사라진 ‘아들내미 일기장’을 찾으려고 노동청에 갔다고 하는데, 일기장을 다시 찾았다는 대목은 나오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하나를 찾아내어 펼쳐 봅니다. 1970년대에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뛰었던 이상현 기자가 쓴 글을 뒤적입니다. 이무렵(1970년 11월 13일) 이상현 기자는, 전태일 님 주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일기장을 찾아내어 조선일보에 특종으로 실었다’는 글을 뒷날 밝혔습니다. 조금 길지만 이상현 기자가 쓴 글을 옮겨 봅니다.


 “사인을 필히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자료를 입수해 오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참으로 막막했다. 구체적 자료라면 수기나 일기인데, 그 친구(전태일) 집안의 책상이나 장롱 등을 다른 기자들이 지금껏 그냥 두지 않았을 게 뻔한 노릇이 아닌가 … 사건이 사건인 만큼, 지하실 시체실에는 가족, 노동청 관계자, 수십 명의 보도진으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나는 우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일기장을 어디서 찾아낼 수 없을까? 그것만 찾아낸다면 통쾌한 스쿠프가 될 텐데, 뭔가 있긴 있을 텐데.’ 나는 추리, 상상 속에서 혼자 특종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상상이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 ‘여기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취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시체실 한쪽 테이블에 청년이 두 명 앉아 방명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명단을 쭉 훑어봤으나 이렇다 할 지명인사는 없었다. 명단을 모두 막 훑어보고 난 순간, 그 방명록이 낡은 대학노우트였다는 사실에로 나는 섬뜩해졌다. 청색 비닐 커버의 대학노우트.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노우트를 한 장 펼쳐 보니 무언가 잔뜩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틀림없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요?’ 나는 부의금 접수를 맡은 20대 청년에게 귀엣말로 슬쩍 물었다. 주위에는 동료 기자들이 쉴사이 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일이 일기예요.’ ‘어?’ 나는 무조건 그 노우트를 움켜쥐었다. ‘잠깐 좀, 봅시다.’ ‘누구신데요?’ ‘나가 보면 압니다.’ 부의금이 적힌 대학노우트를 코우트 호주머니에 움켜넣고 내가 먼저 앞장을 서 시체실을 나왔다. 그 청년은 죽은 태일 군의 사촌형이라고 했다 … 전군이 살던 성북구 쌍문동 셋방을 홀랑 뒤져 필요한 사진을 더 찾았다. 그리고 이 일기장을 신문사로 가져가기 위해, 나는 이 일기장이 꼭 세상에 공개돼야 하며 이로써 그의 죽음이 명실상부하게 된다고 거듭거듭 설명해 그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학노우트를 들고 나는 신문사로 뛰었다. ‘일기를 구했읍니다!’ 나는 큰소리로 데스크를 향해 자신있게 소리쳤다. ‘뭐, 일기장이 나왔어?’ 데스크는 놀랐다. ‘빨리빨리 기사 써.’ ..  《이상현-사회부기자》(문리사,1977) 39∼44쪽)


 〈조선일보〉 이상현 기자는 일기장을 비롯하여 쌍문동 집까지 뒤져 사진도 가져갔다고 밝힙니다. 벌써 마흔 해 가까이 지난 옛일인데, 마흔 해 앞서, 노동청과 〈조선일보〉 기자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이 일은 어떻게 풀렸을는지 궁금합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는 이 얘기가 더 실려 있지는 않습니다. 문득 1970년 그때 기자하고 2009년 오늘 기자하고, 기자들이 ‘못 배운 노동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합니다. ‘못 배운 노동자 주제에 무슨 일기를 쓰겠어?’ 하고 바라보던 1970년 기자들은 2009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볼 때에, 어이없는 해고와 푸대접에 맞서서 집회를 여는 노동자를 쳐다볼 때에, 살빛이 검거나 거무스름한 이주노동자를 마주할 때에,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아니더라도 죽어나고 있는 농사꾼 이야기를 다룰 때에, 어떤 눈길과 생각과 마음결일는지 궁금합니다.


.. 그라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말을 너무 많이 했어.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합해서 싸워야지 따로따로 하면 절대로 안 돼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가 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 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 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엄마가 안 하면 그걸로 끝난다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란 말도 하고 그때 뭐 별말 다 했지. “어떤 물질이나 어떤 유혹에도 타협하지 마세요. 내 부탁한 거 꼭 들어주시겠죠?” 참말로 기가 차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듣고만 있었지. “왜 엄마는 내가 말하는데 대답하지 않아요? 우리 엄만데 왜 대답하지 않느냐고요? 내가 죽으면, 헛되게 죽으면 안 되잖아요. 엄마가 제발 내 말 들어주세요.” 막 따지는 거야. “목사들은 이웃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아요. 말로만 했지 실천은 안 한다고요. 그런 예수는 믿지 마세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예수를 믿으세요.” 지도 예수를 믿었는데 그란 말을 했어 … 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라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  (84∼85쪽)


 책을 덮습니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깨어나 놀자고 칭얼대는 아기는 어느새 잠이 들고, 옆지기는 제가 다 읽은 뒤 책상맡에 눕혀 둔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를 집어들어서 읽습니다. 아기가 30분도 채 안 자고 깨어나 끙끙거리지만, 책이 재미있는지 책에서 눈길을 떼지 않습니다. 아기 기저귀를 만져 봅니다. 오줌을 쌌다고 할는지 안 쌌다고 할는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살짝 뜨뜻합니다. 새 기저귀로 갈고 이 녀석은 말려서 다시 대야겠습니다.

 아기를 일으켜세워 잠깐 뜀뛰기를 한 다음 품에 안습니다. 아기를 안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아기는 아빠 무릎에 엎드려 셈틀 화면도 들여다보고 아빠 손가락 놀리는 모습도 바라봅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서 어머니 이소선 님이 오도엽 님을 비롯한 젊은이들한테 들려주던 말이 떠오릅니다. 요새 사람들이 아이를 거의 안 낳고, 낳아도 하나만 낳는데, 아이를 좀더 많이 낳고 재미나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가만 보면, 어머니 이소선 님만이 아니라 동네 할머님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여든일곱 그림 할머님도 우리한테 더 많이 낳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저희로서도 낳을 수 있는 데까지 낳고 싶은데, 우리 삶터가 너무 모질고 팍팍하면서, 집에서 아기 낳기에는 몹시 안 좋기 때문에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말 힘이 닿는 데까지 낳아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기에 참으로 모질고 얄궂고 고달픈 우리 세상이지만, 우리 어른 된 이로서, 우리 어버이 된 이로서, 세상이 차츰차츰 밝은 쪽으로 나아가도록 힘쓰면서 아이를 신나게 낳아서 신나게 길러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비뚤어진 법과 제도가 판을 치니까, 반듯해지고 둥글둥글하며 구수한 법과 제도로 거듭나도록 애쓰고 땀흘리면서 아이 손을 잡고 당차게 걸어가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작은 데부터, 구석진 곳부터, 응어리진 자리부터, 조금씩 손보고 어루만지고 달래면서 북돋워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태일이는 참 사람을 좋아했어야. 이 말 하니까 생각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야. 태일이는 열사도 투사도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야. 그라고 분신자살 했다고 한다. 어디 자살이냐. 항거지. 분신 항거라고 해야 해. 배운 사람들이, 기자들이 자살했다고 쓰는 것 보면 배우기나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서 태일이를 열사니 투사니 하지 말고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해. 전태일 동지. 그게 맞지 않냐. 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지라고, 제발 그렇게 불러 달라고 좀 써라.” ..  (286∼287쪽)


 사람을 좋아한 전태일 님으로 자란 까닭은, 아들 전태일을 낳아 기른 어머니 이소선 님부터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섬기며 사람을 알뜰히 사랑할 줄 아는 어머니한테서 전태일이라고 하는 큰기둥 하나가 우뚝 설 기틀이 마련되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목숨을 바칠 만큼 애쓸 수 있던 까닭은, 어머니 이소선 님이 아들 앞에서 몸소 ‘목숨 바쳐 삶을 야무지게 꾸려 나갔’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집에는 전태일 님이 걸었던 발자취가 담긴 책 두 권에다가, 어머니 이소선 님이 디뎠던 발자국이 찍힌 책 두 권이 책꽂이에 꽂힙니다. 어제까지는 아빠가 읽었고, 오늘부터는 엄마가 읽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집 어린 딸내미가 이 책을 읽겠지요. 뭐, 예닐곱 살쯤 되면 아빠나 엄마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어 줄 수도 있습니다. (4342.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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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폴 콜먼 지음, 마용운 옮김 / 그물코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2 ― ‘환경파괴’는 이명박 아닌 우리가 하고 있다
 : 폴 콜먼,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책이름 :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글쓴이 : 폴 콜먼
- 옮긴이 : 마용운
- 펴낸곳 : 그물코 (2008.8.20.)
- 책값 : 12000원



 (1) 도시에서 듣는 소리


..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밤이고 낮이고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소리만 계속 들릴 것이며, 이곳 주민들은 평화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  (269쪽)


 지난달(또는 지난해. 2008년이니까) 첫머리에 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에 아기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며칠 머물며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만 하루이틀 길어지면서 ‘성탄절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고, ‘새해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으며, ‘아버님(장인 어른) 생일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습니다. 그렁저렁 지내는 사이 어느덧 한 달 가까이 머물게 되었고, 저 혼자 인천과 일산을 오가면서 집살림을 꾸리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고 겨울에 집이 얼지 않게 보일러 돌리고 하면서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제, 옆지기 어머님이 차를 몰아 우리 식구를 인천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외곽순환도로와 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는데, 창문을 닫아 놓고 있음에도 우리 차에서 나는 소리와 옆을 싱싱 달리는 차에서 나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참 시끄러웠습니다. 차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도록 도와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언론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  (208쪽)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옆사람과 이야기하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차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웃한 다른 손님들이 내는 소리가 몹시 크기 때문입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오면, 맞은편에서 건네는 말이 잘 안 들려서 애를 먹는데다가, 내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소리를 높여야 하니 괴롭습니다. 자가용이든 전철이든 버스이든, 길에 나와서 무슨 탈거리에 몸을 싣고 움직이는 삶이 이어지다 보면, 저절로 우리 목소리는 커지고 짜증이 묻어날밖에 없다고 새삼 느낍니다. 가만히 있어도 귀가 막히는 느낌입니다.


..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어디를 가든지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흥미로운 정경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골목에서 길을 일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  (168쪽)


 아기를 안고 옆지기와 함께 골목마실을 할 때면, 도시에서 그나마 귀가 뚫리면서 시원합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깊숙한 골목을 거닐 때에는 나즈막한 목소리로도 넉넉히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더러, 골목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살며시 들을 수 있습니다. 골목집 텔레비전 소리가 골목으로 흘러나오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보일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마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며, 마루를 뛰는 아이들 소리가 들립니다. 많지 않아도 참새 소리를 듣고, 때에 따라서 어치와 박새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길고양이가 소리 없이 담과 지붕을 넘어다니며 먹이를 찾거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네 마실을 하는 가벼운 소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빨래줄에 걸린 채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 소리를 듣고, 할머니들 지팡이 짚고 걷는 소리를 듣습니다.


.. 2001년 11월 10일, 루마니아에서는 말이 끄는 수레가 주요한 교통수단인데, 나는 이것이 아주 정겹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거나, 미소를 짓거나, 서로를 찬찬히 살펴볼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  (154쪽)


 인천집으로 오니, 늘 듣던 전철소리를 집안에서 다시 듣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나마 겨울이라 문을 꼭 닫고 있어 조금은 작게 들립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아 텔레비전 소리가 없습니다. 라디오도 듣지 않아 라디오 소리도 없습니다. 오로지 아기 칭얼대는 소리, 아기 젖 빠는 소리, 아기 꽁꽁대는 소리와 어울리는 애 아빠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옆지기 식구들 집에서 지내다 보니, 아기를 그리워하게 된 아기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손전화로 아기한테 말 거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기 엄마는 아기 할머니와 손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 아빠는 글쓴다며 언손을 비빕니다. 슥삭슥삭 손 비비는 소리가 우리 사는 작은 방 한 칸에 살며시 감돕니다.


.. 네덜란드는 벨기에보다 자전거도로가 더 많았고, 누구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자전거도로가 형편없고, 차 운전자들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영국 런던이 이곳을 본받아 자전거도로를 확충했으면 좋겠다. 요즘 런던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대기오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치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처럼 보인다. 이곳 네덜란드에서는 어린 아기 때 자전거 손잡이에 장착된 의자에 앉기 시작하여, 자라면서 자전거 뒷자리에 앉다가, 나중에는 작은 자전거를 타고 부모와 나란히 달린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것들이 아주 안전해 보였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또 자전거 타기는 환경보호에 아주 좋다 ..  (138쪽)


 아기는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는 혼자 뒤집기를 합니다. 눕히면 싫어하고 어깨죽지를 잡고 일으켜세워 주어야 좋아합니다. 그렇게 일으켜세워 주고 있으면, 지 혼자 방방 뜁니다. 아직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뛰기를 좋아하다니. 하긴, 서지도 못하면서 앉지도 않고 서려고 하니까.

 이제 좀더 자라고 돌이 될 무렵이면, 또는 돌을 조금 지날 무렵이면, 우리 집 자전거에도 아기 태우는 바구니를 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잣거리 나들이를 다니건 골목마실을 하건, 자전거 바구니에 아기를 앉히고 자전거를 끌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달리면, 아이는 바람소리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고, 바람소리와 바람결을 느끼는 아이는 무슨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할까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게 되면, 아이는 페달 밟는 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큇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도 차츰차츰 익숙해지리라 생각합니다.


 (2) 우리 둘레에서 보는 모습


 서울 서교동에 자리하고 있던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 내내, 동네를 도는 경찰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서교동에 깃들어 지내는 ‘대통령 아들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었고, 둘씩 짝을 지어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동교동 골목을 지날 때면 으레 경찰들을 마주했습니다. 동교동에는 ‘대통령 되신 분이 살던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네 골목 안쪽에 자리한 우리 집 둘레로도 경찰들이 틈틈이 짝을 지어 지나다닙니다. 동네를 지켜 주고자 돌아다니는 일은 고마운 한편으로, 구멍가게에 간다든지 골목 사진 찍으러 돌아다닐 때마다 늘 마주쳐야 하니 퍽 껄끄럽습니다. 저이들은 ‘내가 구멍가게에 가는 회수마저 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용한 동네 골목에 이들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거닐거나 담배를 태우며 서성거리면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여기에 살든 저기에 살든, 또 저곳으로 가든 그곳에 있든 경찰이며 군인이며 아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막아야 한다는 전경도 많지만, 휴가를 나오는 군인 또한 꽤나 많아요. 크고작은 도시며 시골이며 군부대 없는 데가 없고, 미군부대도 퍽 많이 남아 있는데다가 서울 한복판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청와대 가는 길목이나 광화문 미 대사관 둘레는 온통 경찰과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 대사관 앞을 굳이 지나갈 일이 없지만, 어쩌다가 걸어서 지나가야 할 때면 등골이 오싹하거나 소름이 돋습니다.

 여느 때에도 부러 군인옷을 입는 분들(거의 해병대)이 많은 가운데 의경은 둘씩 여럿씩 짝을 지어 길을 다 차지하고 서 있거나 막아서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 나라라고 이야기됩니다.


.. 대체 어디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큰 아파트 단지를 새로 만드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한 지역주민이 “돈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즐기기 위해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하고 설명했다. 이 얼마나 슬픈 아이러니인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살기 위해 산비탈이 사라졌고 숲을 파괴한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 수많은 건설공사는 일부 사람들만 부유하게 만든다. 때로는 이러한 건설사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당선시키기도 한다 … 계룡산에 도로와 터널을 건설하려면 국민세금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이다. 이동시간을 줄여서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하기 위해 국민세금을 들여 도로를 만든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일만 좇는 삶은 어디로든 빨리 가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  (264, 266쪽)


 프랑스 학자는 우리네 아파트 건설을 바라보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파트 문명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책이 먼저 나왔음직하지만, 우리네 지식인들 또한 아파트 문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신나게 즐기고 있기에, 한국판 《아파트 공화국》이란 나오기 아주 힘듭니다. 더욱이 이 책을 칭찬하거나 높이 사는 분들 또한 아파트 삶에서 떠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아요. 아니, 아파트 삶에서 벗어난다기보다, 아파트를 얻으면서 할 수 있는 돈굴리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한국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이렇게 해 보자》나 《놀라운 아파트 전도 어프로치》 같은 책을 써냅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많이 살게 되니 마땅히 아파트에 찾아가서 종교를 퍼뜨리는 데에 마음을 쏟겠지요.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무섭습니다. 참 끔찍하기도 하고요. 참 너무한다 싶으면서, 어리석구나 싶고, 우리는 스스로를 옭매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살밖에 없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어디를 가든 아파트만 보이니, 프랑스 학자는 《아파트 공화국》을 쓰고,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를 쓰며, 이 나라 여느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올라 주기를 바라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이들 그림에는 아파트만 그려지고, 어른들이 아이한테 읽히거나 보이려고 쓰고 그리는 동화책과 그림책에도 아파트만 그려질 테지요.


.. 해안 대도시를 만나게 되면서 일본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은 다 사라졌다. 맨 처음으로 나타난 도시는 나고야였는데, 이곳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요타 같은 큰 기업과 공장들이 많이 있었다. 조밀하게 서 있는 건물과 고속도로는 콘크리트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곳 온도는 다른 곳보다 몇 도나 더 높은 것 같았다. 길가에는 나무나 그늘도 거의 없어서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으며, 다시 걷기에 합류하게 된 고이치와 나는 열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제까지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열사병에 걸린 것은 처음이었는데 … 수많은 트럭과 자동차들이 다니는데, 크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컴퓨터까지 장착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일본에서는 보행자보다 자동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거대한 도시들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했으며, 오직 소비만이 삶의 방식이었다. 도쿄는 한마디로 ‘약에 취한 디즈니’ 같은 곳이었으며, 미래의 암울한 세계를 그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  (228쪽)


 쌀을 씻어 담그고 마늘을 까며 아침을 마련하는데, 집 앞 길가에서 교통경찰이 주차단속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집 앞 길로 시내버스 하나가 지나가는데, 앞길은 두찻길입니다. 어느 한쪽이든 차가 서 있으면 버스가 지나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자동차 모는 이는 한쪽만 차를 세우지 않고 두 쪽 모두 세워 버립니다. 그러면 다른 차는 어찌 지나가라고 그럴까 싶지만, 차를 세워 놓고 볼일 보는 이들은 이런 데에는 마음쓰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만 못 지나가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나쁜데 말입지요.

 그래도 이 길은 버스라도 다니니 교통경찰이 단속을 합니다. 골목길 안쪽에 세워 둔 차를 놓고 단속하는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시내에서도 찻길 한쪽에 세워진 차를 단속하는 일이 드물어요. 찻길을 닦은 까닭은 한쪽을 차대는 곳으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 아닐 텐데, 전국 어디이든 찻길 한쪽은 어김없이 차대는 곳이 되고 맙니다. 이에 따라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이나,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나, 전동휠체어 타는 사람이나, 모두 다니기에 안 좋습니다.

 온통 자동차이고, 온통 자동차와 얽힌 교통 흐름이며, 온통 자동차에 쏟아붓는 나라살림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판이면서도 고속도로에 들이붓는 정책과 돈과 품은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자원이 말라간다고 하면서도 고속도로 새로 닦는 일은 멈추지 않고, 외려 더 늘어납니다.


..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그곳 관리 한 사람이 “콜먼 씨, 지금 밖에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한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을 만나려고 몇 달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들어오게 할까요?”라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할머니에서 아들 손자에 이르는 한가족이 왔는데, 할머니는, “우리는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서 당신을 보고는 직접 만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가난한 농사꾼 가족이지만, 지금 이 땅에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잘 알아요. 내가 젊었을 때에는 신발은 없었지만 물은 풍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신발은 신을 수 있지만, 물을 긷기 위해 12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해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 환경문제는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  (68∼69쪽)


 이제는 아기를 낳아 기르니 똑똑히 알고 있는데, 지난날 머리로만 ‘천기저귀 쓰기와 종이기저귀 쓰기가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따졌을 때에는, 천기저귀를 쓰면 물을 아주 많이 쓰게 되는 줄로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종이기저귀는 ‘빨래할 일’이 없으니 물을 안 쓰게 된다는 대꾸에 딱히 맞서지 못했어요. 그러나 손수 천기저귀 빨래를 하노라면, 기저귀 한 장을 빠는 데에 손바닥 한 뼘 길이가 되는 작은 대야에 반쯤 담는 물이면 넉넉합니다. 종이기저귀를 쓰자면 공장을 돌려야 하고 비닐로 물건을 싸야 하는데다가 마트에 쟁여 놓으며 전기불을 가득 켜 놓아야 합니다. 종이기저귀 사오는 이들은 자가용을 끌고 마트에 가서 수레에 담아서 산 다음 카드로 긁어서 사고 다시 자가용을 끌고 집으로 가지고 옵니다. 다 쓴 종이기저귀는 쓰레기봉투에 담는데, 쓰레기봉투도 종이기저귀와 똑같은 흐름을 거쳐서 만든 다음 놓입니다. 더욱이 쓰레기봉투에 담긴 종이기저귀는 청소부가 하나하나 들어서 치워야 하고 쓰레기묻는 데로 가져가서 묻습니다.

 이런 흐름을 살필 때, 천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하고, 종이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를 견주면 어찌 될까요. 우리가 마트에서 사들이는 값은 ‘꽤 싼 편’일지 모르지만, 이 싼값 뒤에 숨은 엄청나게 큰 돈과 품과 자원 씀씀이가 있음을 우리들 모두 잊고 있습니다.


..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던 기회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2백 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 시간에 어느 어린 남자아이가 손을 들더니 “배가 고픈 적은 없었나요?” 하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있지”라고 대답하며 루이지애나에서 하마터면 뱀을 밟을 뻔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그 뱀을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하는 중에 뱀이 도망가 버린 이야기를 하자 아이들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학교를 떠날 때 교장 선생님이 모자를 주셨는데, 그 안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당신이 다시는 굶지 말라고 아이들이 점심값을 모아 주었소.” 나는 멕시코에서 한 번도 배를 곯은 적이 없었다. 멋진 집과 많은 봉급, 예금통장, 주식과 채권을 가진 미국사람들이 더 부유할까? 아니면 소박하지만 활력과 인정이 넘치는 멕시코사람들이 더 부유한 것일까? ..  (52쪽)


 (3) 걸으면서 고향과 세상을 지키려는 사람


 영국사람 폴 콜먼은 두 다리로 지구를 걷고 있습니다.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지난 2008년 8월에 한국에서 낼 때까지 자그마치 서른아홉 나라 사만칠천 킬로미터를 두 다리로 걸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뒤 여러 달이 지났으니, 폴 콜먼 님은 틀림없이 또 어느 나라에선가 ‘평화사랑’과 ‘환경지키기’를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뚜벅뚜벅 걷고 있으리라 봅니다. 당신 스스로 늘 느낀다고 하듯, 평화를 사랑하는 일은 말로 할 수 없으며, 환경을 지키는 일 또한 입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온몸으로 해야 합니다. 온삶을 바쳐서 이루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평화와 우주가 담겼으면, 어느 한때 한 번 비우는 밥그릇만 헤아릴 일이 아니라, 날마다 비우는 밥그릇을 늘 헤아려야 합니다. 밥그릇을 받을 때에도 헤아릴 평화와 우주이지만, 밥그릇으로 얻은 기운으로 살아가는 여느 때에도 한결같이 헤아릴 평화와 우주예요. 그러니, 평화사랑이라면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고이 잇는 일이 됩니다. 환경지키기도 이와 함께 온삶에 걸쳐서 하게 됩니다.

 ‘지구환경의 날’ 하루에만 할 수 없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에서 해 줄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환경 이야기를 교과서로 배운다고 해서 알 수 있는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새벽과 밤에 청소부가 길거리 쓰레기를 치운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담금을 내면 환경지키기가 이루어질까요. 탄소배출을 꾸준히 줄이는 일은 환경지키기와 얼마나 이어져 있을까요. 맥주 한 병과 볼펜 한 자루와 버스표 한 장에도 간접세금이 붙어 있듯, 이런 물건과 차편 하나에도 생태환경이 얽혀 있습니다.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걸어갈 때와 자전거를 타고 갈 때와 자가용을 타고 갈 때와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갈 때가 사뭇 다릅니다. 똑같은 밥을 먹더라도 손수 짓거나 길러 먹을 때와 생협에서 사다 먹을 때와 재래시장에서 사다 먹을 때와 마트에서 사다 먹을 때가 크게 다릅니다.


.. 한국은 생물다양성협약과 습지보호를 위한 람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인데도 이토록 중요한 습지이자 야생동식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2008년 람사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러한 정부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 내가 전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건설 공사가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 과거에는 신성하게 여겨지던 전국의 산들이 커다란 굴착기와 폭약으로 마구 훼손되고 있었다 … 4번 국도를 따라 대구로 들어가는 길은 한국에서 걸은 최악의 길이었다. 차들이 하도 많이 다녀 소음이 어찌나 심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려면 고함을 질러야 할 정도였다 … 수천억 원이 들어갈 공사에 몇 사람은 즐거워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15분 빨리 가려고 대구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자연환경의 보고를 파괴해도 좋은 것일까? … 부산에도 커다란 터널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경부고속철도 터널이 관통하게 될 금정산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아름다운 산들을 파헤치고 터널을 뚫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인 것 같았다 ..  (254, 266, 269, 270쪽)


 통신사에서 공짜 전화기를 준다 한들, 이 전화기가 참말 ‘공짜’일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 주머니에서 곧바로 나가는 돈이 없다고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마실 물과 공기는 지저분해집니다. 우리가 디디는 땅은 거칠고 메말라 갑니다.

 어느 텔레비전 풀그림에서 ‘오렌지를 한 방울도 짜넣지 않고 색소와 화학조합물만으로도 오렌지쥬스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런 풀그림을 보는 우리들 삶이 달라지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미국에서 교통경찰이 차 짐칸에 콜라를 상자째 넣고 다니면서 사고 현장에 흐르는 피를 말끔히 닦아내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 많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콜라를 사다 마시고 있는데, 우리들 삶이 어느 만큼 거듭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같은 책이 곧잘 나오지만, 햄버거집이나 피자집이 문닫는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되레 나날이 아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더 좋아하고 즐긴다는 소리만 듣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들이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하기 앞서, 어른들부터 햄버거와 피자를 즐겨먹고 있는걸요.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까닭은 어른 범죄가 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입시지옥이 풀리지 않는 까닭은 어른들이 가방끈에 따라 사람을 푸대접하거나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얼굴과 몸매에 온마음을 쏟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얼굴과 몸매에 따라 재며 값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나어린 주제에 돈을 밝히는 까닭은 어른들이 허구헌날 돈타령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며 학교에서며 돌림뱅이 짓을 하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마주하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눌 뿐더러 이주노동자를 살빛에 따라 갈라 놓는데다가 학력과 갖은 연줄에 따라서 계급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국을 걸으며 아주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는 도로와 아파트를 건설하는 모습은 보기에 흉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한국보다 몇 배나 큰 나라만큼 도로가 많이 건설되고 있었다 …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파괴적인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할 주체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부와 소비 형태를 선택한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일 당장 석유가 고갈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 그렇다면 한국이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이 왜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도록 정부와 산업계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출근시간을 줄이고 제품을 수송하며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우리는 더 많은 차를 구입하고 교통량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런 소비 행태를 통해 우리는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등을 끄지 않은 채 놔두거나, 모든 길거리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화려하게 장식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력회사는 더 많은 댐과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  (282∼283쪽)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더없이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훌륭한 그대로 받아들일 가슴이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하고.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그대로 받아먹을 마음자리가 이 땅에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 죽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탱자탱자 놀면서 살 수 있던 폴 콜먼이 모든 돈과 놀음놀이를 벗어던지고, 베낭에 나무 한 그루 꽂고는 뚜벅뚜벅 걷는 까닭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곱씹을 넋이 이 땅에 얼마나 있는가 하고. (4342.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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