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1부 내 어머니 이야기 1
김은성 글.그림 / 새만화책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한테 선물하고 나란히 누워 읽을 만화책
 [살가운 만화 42] 김은성, 《내 어머니 이야기 (1부)》



- 책이름 : 내 어머니 이야기 (1부)
- 글ㆍ그림 : 김은성
- 펴낸곳 : 새만화책 (2008.12.1.)
- 책값 : 13000원


 (1) 재미있게 나눌 우리 삶자락 이야기는


 처음에는 아기 얼굴 오른쪽 눈가에 살짝 생채기가 났습니다. 아기가 자면서 혼자 간지럽다고 긁으면서. 그런데 이 생채기에 딱지가 앉아 떨어질 무렵 또 긁어서 다시 덧나고 거듭 덧나다가는 차츰 볼과 귀로 오돌도돌한 녀석이 번지더니 온 얼굴 가득 벌겋게 되어 버립니다. 이웃에서는 이 모습을 보며 태열이니 아토피이니 하고, 일산 식구들은 얼른 병원에 가자고 채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는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아기가 제 얼굴을 긁지 않도록 하면서 엽록소물을 만들어 바르고, 생협에서 파는 아기 화장품을 살짝살짝 발라 줍니다. 나무숯물을 탄 물로 자주 얼굴을 닦아 주면서 하루하루 기다리는 동안,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엄마 밥차림을 바꾸기로 합니다. 우리 세 식구는 아빠(저) 일 때문에 여러모로 돌아다닐 일이 많고, 일산 옆지기 식구들 사는 집에 가서 여러 날 머물면서 옆지기가 폭식을 하는 때가 잦아서, 이 모든 흐름이 아기한테 이어지지 않았느냐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옆지기는 오롯이 생채식만 하기로 하고 줄기푸성귀와 뿌리푸성귀에 김하고 미역만 먹으려 합니다.

 애 아빠도 함께한다면 좋을 테지만, 이렇게 생채식만 하자면 도시에서는 푸성귀 값이 장난이 아니라 애 엄마만 하기로 합니다. 우리가 시골 살림이라면 조그마한 텃밭 하나로 모든 푸성귀를 거두어 먹을 텐데, 다른 집에서도 비슷비슷한 걱정을 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일산으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 우리 아기를 들여다본 어느 할배가 그러더군요. “저런, 애기 저럴 때는 물 좋고 공기 좋은 데 가면 금방 낫는데.”
 





..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1907), 함경도 어느 마을에 한 여인네가 살고 있었다. 열여섯 살에 시집와서 3년 만에 막 첫딸을 낳은 상태였다. 그로부터 3년 뒤 둘째 딸을 낳았고, 둘째 딸을 낳은 4년 뒤 4대 독자 아들을 보았다. 홀시아버지와 어린 시누이 둘, 남편과 자꾸 불어나는 아이들을 거두며 살았다. 그래도 농토는 넉넉한 편이어서, 다른 집들이 하는 양식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지만, 장정 하나 없는 집에서 넓은 농토를 남편과 함께 직접 경작도 하고 일꾼을 쓸 때는 일꾼들 밥도 해 주느라 쉴 새가 없었고, 조상님 모시기도 소홀할 수 없는 노릇이라 여인네는 제삿날이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북새통 속에서 여인네는 애를 계속 낳았는데 아들 낳은 지 6년 만에 넷째 딸을 낳았고, 넷째 딸을 낳은 지 4년 만에 다섯째 딸을 낳았다. 그러자 애들 다섯에 시아버지, 시누이 둘, 남편, 여인네까지 열 식구가 되었다. 여인네는 열 식구 뒷바라지에 죽은 조상들까지 수발하며 살았다. 그 힘든 삶에도 여인네는 지치지 않았고, 착실한 남편과는 금슬 좋게 살았다. 그런데 그 여인네도 당해 내기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아버지 모시기였다 ..  (7∼9쪽)


 인천에 있는 생협 매장에는 날푸성귀가 몇 가지 들어와 있지 않아, 이곳에서 고를 수 있는 만큼 골라 장만한 다음, 하는 수 없이 ㅇ마트로 나들이를 갑니다. 날푸성귀야 가까운 저잣거리에서도 장만할 수 있으나, 저잣거리 날푸성귀는 유기농이 아니라서 발길을 끊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유기농이든 유기농이 아니든 똑같은 먹을거리가 아니냐 생각하는 분이 많고, 곡식이 먹고 마시는 물과 바람과 흙이 일찌감치 더럽혀져 있는데 풀약과 항생제와 비료를 안 친 곡식이라고 더 나을 구석이 있겠느냐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더욱이, 세상이 더러우니 어른도 아이도 ‘좀 더러워진 먹을거리를 먹으면서 몸에서 견디어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이와 같은 말씀은 틀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도권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과 입시지옥이 가득하여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기 어려운 형편이라지만, 동무를 사귀며 사회살이를 익히자면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꼭 입시지옥에다가 교과서 외우기로 치닫는 제도권 학교를 다녀야만 사회살이를 익힐 수 있을까요. 또래 동무는 제도권 학교 울타리가 아니면 만나거나 사귈 수 없을까요. 제도권 바깥 또래 동무라고 하여 모두 좋지 않겠습니다만, 제도권 안쪽 또래 동무라고 하여 꼭 반갑고 살가운 동무를 만나리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어느 자리에 서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날 수 있으면 되고, 또래 동무라고 하여도 나이나 밥그릇만으로 따지기보다는 마음자리와 생각자리로 서로를 살피고 헤아릴 때 한결 사이좋게 지내면서 다 함께 북돋울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저한테 또래 동무들은 얼마나 있고 얼마나 살가우며 얼마나 오붓한지를 돌아봅니다. 이 동무들은 꼭 그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동무들이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동무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동안 ‘우리가 어느 학교를 나왔었고 어느 대학교까지 다니거나 그냥 고등학교까지만 마쳤는가’는 하나도 큰일이 아닐 뿐더러 생각하지도 않음을 떠올립니다.

 우리한테는 어떤 이름이 그리 큰일이 아님을 곱씹습니다. 우리한테는 얼마쯤 돈이 있어야 할 터이나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되씹습니다. 우리한테는 어느 만큼 힘이 있어야 할 테지만 힘만 있다고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돌아봅니다.

 삶을 가꾸고 싶어 더 나은 밥을 찾고, 삶을 아름답게 여미고 싶어 한결 나은 일자리를 찾으며, 삶을 즐거이 나누고 싶어 좀더 반가운 벗을 찾습니다. 밥이든 옷이든 집이든, 동무든 사랑이이든 이웃이든, 나를 나답게 꾸리고 우리를 우리답게 이끌어 주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 “그래! 고생 오래 했네!” “그래도 내 한 열 살 정도 될 때부터는 고생을 아이 했어! 우리 오빠가 취직하면서 집이 확 피기 시작했지.” “근판이는 어떻게 됐어?” “일본이 망하이까 남선으로 도망 나왔지. 근판이한테 당한 사램들이 근판이 집이 몰려들어 기둥을 도끼로 찍고 집이 불을 놓았대.” 그랬더이 어디 숨었다가 확 나오더래. 그 질로 도망 나와서 삼팔선을 넘어 남선까지 온 거야. 남선 나와서도 한 고을을 해먹다가 산이 내란이 일어나서 막는다고 하다 죽었대.” “토벌대를 하다가 죽은 모양이구먼!” “근판이 얘기는 그리지 마라. 그 자손들이 보면 뭐이라 그러겠니야? 자손들이 보면 자기 아버지 얘긴 줄 그답 아지.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해서 그런지 자손들도 잘못됐어. 정식이는 큰 병 만나서 죽고, 문식이는 죽지는 아이 했지만 병이 많아서 고생하고 살아. 문식이 아들도 마흔도 안 됐는데, 풍이 지나가고.” “그러니까 어떤 집이 잘 되려면 조상 때부터 덕을 쌓아야 해.” ..  (73∼74쪽)


 지지난주쯤, 국민학교 적 동무한테서 밤 늦게 전화가 오며 “야, 한번 보자.”고 해서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나가 두 시간쯤 밤술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 집이야 아기가 아직 많이 어리지만, 동무녀석은 벌써 여섯 살 되는 아이가 있는데, 녀석은 자기 가게 일 때문에 일요일에도 늦은때까지 선배들하고 술잔을 부딪혔다고 합니다. 동무녀석한테 선배 되는 분들은 거의 모두 집안이 있을 테고 집식구가 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기다릴 텐데, 동무녀석은 가까스로 그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저를 찾았다지만, 그분들 남은 식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좀 서글픕니다. 술자리라 하여도 식구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술자리를 마련할 수 없는가 싶고, 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놀아야 한다면 온식구가 다 함께 어울릴 수 있게끔 놀 수 없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삶을 돌아보면, 도시에서 회사일이니 무슨 일이니 하면서, 늦도록 밖에서 ‘다른 사람 만나는 데에 시간을 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파김치가 되어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시간을 거의 못 쓰’게 되고 말지 않느냐 싶습니다. 집안살림과 집밖살림이 다르거나 나뉘어야 할 까닭이 없을 텐데, 우리 스스로 똑 금을 그어서 아예 다르게 꾸리고 아예 다르게 살아 버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집안일을 집 바깥에서 이야기하기 꺼리고, 집밖일을 집 안쪽에서 이야기하기 꺼리지는 않는가요. 아니, 이렇게 주고받을 까닭이 없다고 느끼지 않는가요. 있는 그대로 만나고 꾸밈없이 사귀는 삶보다는, 겉을 치레하거나 꾸미는 삶으로 나아가지는 않는가요. 우리가 집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만 하여도 밤새 수다를 떨어도 그치지 않을 터이고,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사는 이야기만 하여도 밤늦도록 이야기를 이어도 끝나지 않을 터이며, 이웃집과 어울리는 이야기만 하여도 이틀 사흘 이어도 이야기는 넘치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도시 삶터에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잊게 됩니다. 잃고 맙니다. 내놓고 되고 뒤로 젖히고 맙니다. 우리 얼굴이 없고 우리 모습이 없으며 우리 삶이 없습니다.
 



.. 그 무렵에 오징어 꾸들꾸들하게 말린 걸 처음 봤는데, 그걸 가지고 댕기면서 먹지도 않고, 가지고 댕기다 버렸어. 먹을 줄도 모르고, 먹어 봤더이 이상하고. 그래도 엄마가 우리를 혼내지도 않고. 우리가 어떤 때 입이 출출하다 하면 독아지서 배랑 과질이랑 꺼내서 가지다 주더라고. 그기 도화선이 언니 시집갈 때 큰상으로 가지온 음식들인 거야! 그때는 속상해서 안 먹고 놔뒀던 거지! 그거 먹으면서 우리 엄마가 얼매나 눈물을 흘리는지 몰라. 우리 오빠도 도화선이 언니는 못사는 집이 시집 보냈다고, 나중이 돈 벌어서 옷감이랑 끊어 보낼 때 꼭 도화선이 언니 것도 챙겨서 보내! 아무튼 도화선이 언니 시집 보낼 때 우리 집이 재난이야. 그러더이 귀동녀 언니 시집 보낼 때는 집 분위기가 얼매나 좋은지! 꽃이야..  (105∼106쪽)


 지난주에,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소설쓰는 공선옥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옆지기와 아기는 집에 있고 혼자만 다녀오는데, 아이 둘 키우는 아주머니가 아이는 애 아빠가 보기로 하고 당신은 즐겁게 나들이를 나오는데 얼마나 홀가분하고 훨훨 날아다닐 듯했는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즐거웠다고 합니다. 애 아빠는 애 엄마가 하루 쉬게 하려고 회사일을 하루 쉬었다고 하더군요. 애 아빠 되는 그분은 얼마나 자주 이렇게 ‘애 엄마 쉬게 하기’를 해 주셨는지 모릅니다만, 하루 내내 아이 둘을 붙잡고 놀고 돌보고 밥해 먹이고 빨래하고 씻기고 집 치우고 하노라면 …… ‘아이 키우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으랴 싶어요.

 사람은 모든 일을 몸소 겪어내야만 알지는 않으나, 겪어서 받아들이는 앎과 책이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앎이란 사뭇 달라요. 굴막에서 굴 까는 일을 하루 내내 해 보고 가게에서 사먹는 굴맛과, 굴막조차 모르고 굴 까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르며 그저 마트에서 값싸게 사먹는 굴맛은 같을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어버이를 둔 사람이 밥집에서 밥 한 그릇 받아먹을 때하고, 농사일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밥집에서 밥 한 그릇 받아먹을 때는 똑같을 수 없습니다. 여남평등이든 양성평등이든 지식과 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매무새하고, 집안일과 아이 키우기를 몸소 겪어 보고 나서 ‘평등’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매무새는 한동아리일 수 없어요.

 이러는 동안 우리한테는 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날마다 새 이야기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서 ‘새 수다꺼리’가 샘솟기도 할 터이나, 이러한 새 수다꺼리는 채 하루가 가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잊혀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닥이며 꾸리는 삶에서 얻고 느끼는 ‘새 수다꺼리’는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뿐 아니라 당신 아이한테까지 물려주며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늘 새삼스러워집니다.


.. 우리 집이 내 일고여덟 살 때 제일 못살았다고 했잖아. 그래서 서당 갔다와서 숙자랑 나랑 보릿져 먹고 막 웃었다고 했지 않아. 그래도 우리 오빠 재혼하고는 집이 밥이 없은 적이 없어. 새 며늘 들였다고 음식을 갖춰서 먹는 거지. 부잣집이서 귀하게 자란 일산 시이는 굉자이 사랑을 받았어. 추운데 짐치를 뜨러 가도 우리가 가야 하는 줄 알았어. 일산 시이가 아깝아서. 새 며늘 들어오고 오빠가 좋아하이까 우리도 얼매나 좋으 줄 모르고, 우리 엄마, 아버지도 얼매나 좋아하는지! … 우리 엄마도 그렇기 며느리를 애껴. 한 번은 동네 어느 집냥이란 그 남편이 손님질을 왔어. 그래서 일산 시이가 떡을 반죽했는데, 반죽이 질게 돼서 떡을 찔 수가 없어. 그래서 귀동네 언니가 동네 방앗간이 가서 방아를 다시 찧어 와서, 떡을 해서 밥을 해서 내오이, 손님 밥상 내온다는 기 오밤중이야. 그 일을 잘하는 우리 엄마가 얼매나 갑갑했겠어. 그래도 며늘에게 뭐이라고 안 해. 일산 사이가 일을 해 본 적이 없어도 맘은 참 착해. 그 시이 들어오고부터 우리 집이 잘 됐으이, 얼매나 좋은 시이야 ..  (109∼111쪽)


 잠깐 숨을 돌리며 지난 몇 해를 돌아봅니다. 혼자서 동네 도서관을 꾸리다가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면서 꾸리던 삶은 아주 크게 달라지면서, 더 많이 더 널리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새롭게 디딜 수 있던 동네가 있었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난 8월에 아기가 태어나며 움직임은 더 줄어들었으나, 아기와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도 오히려 세상을 더 넓게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는 한편, 딱히 더 많은 사람을 못 만나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이웃하고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저 스스로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기를 한손으로 가슴에 안고 걸어다닐 때에는 사진찍기가 힘들고 번거로워서 혼자 맨몸으로 다닐 때하고 견주면 더 멀리 마실을 못 갈 뿐더러 몇 장 못 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장을 찍더라도 더 속깊이 찍도록 매무새를 고치게 되고, 아기와 함께 있기 때문에 한결 홀가분하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아기 사진’ 찍기를 몸으로 배우게 되고, 아기 사진을 가까이에서 날마다 수없이 찍는 하루하루가 쌓이는 동안 ‘오늘 사진이 어제와 다르도록’ 하는 손길과 눈길을 익힙니다. 책 읽을 겨를을 내기 어렵지만, 책 하나를 손에 쥐어도 ‘허튼 책은 금세 알아채게 되는 눈썰미’를 익히기도 합니다.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하나를 잃었다기보다 하나를 새로 만나며 그 하나를 좀더 곰곰이 들여다보고 껴안는 몸짓을 녹여낸다고 해야 알맞지 싶습니다.

 문득, 집안살림이 퍽 쪼들리고 고달프고 괴로운 이들이 당신 삶 또한 쪼들리거나 고달프거나 괴롭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떠오릅니다. 제 살림살이 또한 꽤 쪼들리고 고달프고 괴롭다고 할 만한데, 제 삶은 우리네 골목 이웃과 마찬가지로 그리 쪼들리지 않고 고달프지 않고 괴롭지 않습니다. 일이 버겁고 벅차 눈물이 핑 돌 때가 잦으나, 이렇게 눈물이 핑 돌기 때문에 삶이 재미있습니다. 일이 쏟아지고 넘쳐 어깨와 팔다리가 빠질 노릇이지만, 이렇게 온몸이 쑤시기 때문에 삶이 보람있습니다. 잠깐이나마 다리 쭉 뻗고 드러누울 겨를이 없어 살이 쪽 빠지는데, 이렇게 살이 쪽 빠지기 때문에 삶이 튼튼하고 싱그럽구나 싶습니다. 이리하여 제 옷주머니에는 돈이 거의 없습니다만, 제 생각주머니에는 이야기가 꽉꽉 들어차 있어, 푸고 또 퍼내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2)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를 장만했습니다. 이번에 1부가 첫 권으로 나와 2부를 기다리는데, 1부 이야기는 만화잡지 《새만화책》에 꾸준히 실렸습니다. 만화잡지에 실리는 동안 다 보았지만, 이렇게 낱권책으로 나온 판은 또 남다르기에 즐겁게 따로 사들입니다.


.. “오오, 좋은 말들도 많다.” “엄마, 내 만화가 들어 있는 잡지책이 왔어.” “어디 좀 보자!” “어때?” “알았다. 이렇기 시시콜콜한 걸 다 적는 기 만화로구나! 그래도 속에 있는 소리는 다 했네! 그런데 방이 어쩌구저쩌구해서 니 오빠가 보면 뭐이라고 아이 할라나! 하기사 뭐 작가 맘이다. 지 맘대로 하는 기 작가지.” “맞았어. 작가 마음이야. 이 사람 비위에도 맞고 저 사람 비위에도 맞고, 그렇게 다 맞게 할 수는 없어.” “그래도 내가 남편이 아인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챙피스러워! 니 오빠가 보면 뭐이라고 그러겠어.” “엄마, 그건 실제 얘기가 아니고 꿈 얘기잖아. 엄마보고 그렇게 생각할 사람 하나도 없으니까 신경쓰지 마.” “난 남자를 아이 좋아하는데…….” ..  (141∼142쪽)


 옆지기한테 만화책을 건넵니다. 옆지기는 방바닥에 아기와 나란히 드러누워 책을 받들고 읽습니다. 아기도 만화책에 눈길을 보냅니다. 그러나 아기한테는 그리 재미가 없는 듯합니다. 빛깔이 없어서 그런가? 그림이 너무 작고 글이 많아서 그런가? 이 만화책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빽빽하게 들어찬 ‘글맛’이 제맛이니, 엄마가 읽어 주어도 아기한테는 아직 재미가 있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

 마땅한 소리이지만, 대여섯 달밖에 안 된 아기가 책읽는 재미를 알 수 없겠지요(그러나 아기로서는 지 엄마 아빠가 맨 보는 책이니 저도 재미를 붙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뭔가 그림이 있으니 까르르 웃기도 하면서 들여다볼 뿐 아니랴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옆지기는 이 만화책은 아기와 나란히 누워서 읽기보다, 옆지기 어머님하고 나란히 누워서 읽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름이 “내 어머니 이야기”이듯, ‘어머니 삶을 돌아보는 만화’는 아이가 지 엄마 삶을 돌아볼 만한 나이가 되어야 함께 읽을 수 있을 테니까요.
 





.. 보정집 할머이는 결혼하구 얼매 안 돼 남편이 죽었는데, 둘이 결혼해서 한 번 자 보지도 못한 거야! 옛날이는 그런 일이 많았어! 다 어릴 때 결혼하이까 결혼하구 1,2년 있다 자는 부부도 많았지! 그러구선 다시 시집을 안 갔으니 평생 남자하고 한 번 자 보지도 못한 거야! 그래 가지고는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면 보지다 솔바울 차고 이런 거야! ‘내 보지를 봐라. 처여 보지를 봐라.’ 어렸을 때 그기 얼매나 웃깁던지 ..  (54쪽)


 나중에 우리 어머니한테 이 만화책을 보여 드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는 우리 아기가 커서 이 만화책을 볼 수 있도록 남겨 두고, 돌아오는 어머니 태어난날에 선물로 이 만화책 하나 새로 장만해서 슬며시 건네 드리려 합니다. (4342.2.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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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호 사람들 - 김보섭 사진집
김보섭 지음 / 눈빛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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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부탁해’도 인천‘사람’은 못 담는데
 [잠깐 읽기 26] 김보섭 사진, 《수복호 사람들》



- 책이름 : 수복호 사람들
- 사진 : 김보섭
- 펴낸곳 : 눈빛 (2008.4.9.)
- 책값 : 2만 원
 





 (1)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지난주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디브이디를 장만했습니다. 단돈 2000원에 나와 있기에 낼름 장만했는데, 셈틀에 넣어 돌리니 화질이 몹시 나쁩니다. 설마, 했는데 이 디브이디는 복제판이었구나 싶고, 그래서 헌책방에서도 5000원이 아닌 2000원에 거저 주듯 팔았구나 싶습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2001년에 개봉을 했습니다. 이 영화가 나올 무렵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나왔으며, 두 가지 모두 ‘시중 개봉관’에서는 그리 사랑받지 못하고 일찍 내려졌음에도, 몇몇 신문에서 끊임없이 소개하고 알리면서 차츰 사랑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시민모임에서 소매를 걷으며 영화 알리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무렵 여러 가지 신문기사를 얼핏설핏 읽으며 〈고양이를 부탁해〉가 얼마나 대단할까 궁금했습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때 회사사람하고도 보고 술동무하고도 보며 모두 세 번 극장에서 보며 눈가가 젖었기에, 〈고양이를 부탁해〉는 언젠가 디브이디를 얻건 아는 분 집에 놀러갔을 때 텔레비전으로 보건 볼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나날이 어느새 여덟 해. 영화가 나온 지 여덟 해 만에 비로소 집에서 옆지기와 아기와 나란히 앉아서 봅니다.

 영화에 나오는 다섯 여학생은 ‘인천에서 가장 좋다는 여상’인 인천여상을 나옵니다. 한 아이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일자리를 얻고, 한 아이는 아버지가 하는 찜질방 일을 돈 한푼 못 받으며 거듭니다. 한 아이는 중구 북성동 판자집에서 할매 할배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텍스타일을 익힙니다. 다른 두 아이는 쌍둥이인데 화교학교 앞에서 길장사를 합니다.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만날 일이 뜸해지고, 이 가운데 서울에서 일자리 얻어 살림집(자취방)까지 서울로 옮긴 아이는 더더욱 다른 네 아이 사이에 벽이 높아집니다. 인천을 고향으로 두었으나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가다가 살림집도 서울에서 마련한 제 둘레 선후배 동무들 또한 하나같이 ‘영화에 나오는 이 아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천에서 놀아 보았자 뭐 놀거리가 있느냐’ 여기고, 참말로 놀거리가 없는 인천이기도 하여 전철 타고 멀리 서울로 나들이를 가 보지만, 다시 인천으로 돌아올 전철은 저녁 열 시 반 무렵이면 끊기기 때문에 얼마 놀지 못하고 곧바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천 중구 북성동 판자집과 골목길과 북성포구 들을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이때는 2000년일 텐데, 그 뒤로 꼭 아홉 해가 된 2009년, 얼마나 많은 모습이 남아 있는지 헤아렸을 때, 웬만한 모습은 안 남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는 한편,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제법 많다는 데에 생각이 미칩니다. 시내버스는 달라졌고, 아이들(고등학교) 옷차림과 머리 모양은 바뀌었으며, 곳곳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는 그사이에 갑작스레 늘었습니다. 새 간판을 올린 가게도 많으나 예전 간판이나 처음 간판 그대로 빛바랜 채 고스란히 이어오는 곳도 많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흐른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끝이야?’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디브이디 겉에는, 그러니까 그때 나온 영화 포스터에는 틀림없이 “스무 살, 섹스 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고 적혀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네 갈래 모습 아이들한테서 ‘무엇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가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섹스 이야기’가 안 나왔을 뿐, 그러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느냐에서는 ‘글쎄?’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메말랐기 때문일까요. 제가 영화 보는 눈이 없어서일까요. 그러나, ‘인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인천에서 나고 자라다가 서울로 떠난 아이들’ 삶자락은 참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떠돌고 맴돌고 하릴없는 모습들, 힘없고 풀죽고 여린 모습들, 고등학생 때까지는 막 기운이 넘치는 듯하다가도 학교를 마친 뒤 갈 곳 모르고 할 일 못 잡으며 쓸쓸해지고 낯빛이 어두워지는 모습들은, 어쩜 이렇게 인천사람 속내를 찬찬히 그려낼 수 있으랴 싶어 놀랍니다(그러나, 임순례 감독이 이 영화를 본 느낌을 적은 글(2001년, 한겨레신문)에서도 나타나듯, 저와 제 또래와 선후배들 학교 때를 돌아보면, 영화에 나온 아이들처럼 그렇게 까르르 우하하 웃으면서 놀았던 일이나 해맑은 듯 보여진 일이 거의 없었고, 늘 무엇엔가 눌려서 어두워야 했고 학교 안과 밖에서 교사와 깡패들한테 벌벌 떨면서 살아야 했던 일들이 줄줄줄 떠오르지만). 그런데, 어쩌면 인천사람 이러한 속내를 잘 담아낸 〈고양이를 부탁해〉라기보다는, ‘풋풋하고 싱그럽던 푸른 빛깔’이 학교를 마치고 저마다 다른 곳에서 고달픈 사회살이를 하면서 칙칙하고 쓸쓸해지는 모습과 느낌을 따오려고 인천이라는 데를 빌어 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인천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 중구 북성동과 송월동 둘레는 나라안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가난한 도심지 동네이면서, 예부터 부두 노동자와 조개와 굴 까는 아주머니들이 어렵사리 판자집 살림을 이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동화책이 나왔을 때, 이 책을 만석동 사는 동무녀석한테 선물해 주면서,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틀림없이 인천 만석동에서 ‘기찻길옆공부방’을 꾸리던 분이 인천 만석동이라는 데를 바탕 삼아서 살뜰히 여미어 낸 동화책이기는 하지만, 외로 치우친 눈길과 마음길 때문에 읽는 내내 거북했어요. 이야기 무대가 인천일 뿐,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자락’ 가운데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이 삶자락으로 ‘이 땅 사람들 삶자락’과 어떻게 잇대어 이야기를 펼치려 했는지 갑갑했습니다. 만석동이며 화수동이며 송월동이며 송현동이며 송림동이며 창영동이며 금곡동이며 숭의동이며 관동이며 경동이며 유동이며 내동이며 전동이며 신포동이며 선린동이며 송학동이며 해안동이며 선화동이며 신흥동이며 도원동이며 화평동이며 항동이며 …… 코딱지 만하다고 할 만한 땅덩이가 조각조각 잘게 나뉜 이 오래된 동네 골목길은 ‘가난 = 어두움’만이 아니라 ‘가난하나 밝음’이 있고, ‘가난 = 괴로움’만이 아니라 ‘가난하기에 이웃과 더 나누는 마음’이 있으며, ‘가난 = 짜증 + 벗어나고픔’만이 아니라 ‘가난하면서 더 이웃사랑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 나름대로 이곳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려는 몸부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전에 앞과 뒤와 있다고 하듯, 골목길이라는 데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환함과 쓸쓸함이 있고 웃음과 눈물이 있습니다. 서러움과 흐뭇함이 있고, 반가움과 못마땅함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테두리와 울타리와 보금자리가 있는 우리 삶터입니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애틋하며 사랑스러운 이웃과 터전이 있는 한편, 고개를 돌리고 싶거나 내버리고 싶은 얄궂은 이웃과 터전이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이라는 데에서, 또 골목길이라는 데에서, 또한 인천 골목길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다니는 자그맣고 오래된 동네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얻어서 무엇을 우리들하고 나누려고 했을까요. 무엇을 나누게 되었을까요.
 





 (2)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사람과 인천땅 사진만 찍는 김보섭 님이 ‘인천 아닌 곳에서 전국을 무대로’ 책을 나누는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펴낸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을 봅니다. 《청관》, 《한의사 강영재》, 《바다 사진관》 같은 사진책을 펴냈으나, 거의 눈길을 못 받았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인천 바깥’에서 눈에 뜨이어 이렇게 야무진 사진책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지난 2008년 4월에.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책방에 들어가 ‘판매지수’라는 숫자를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웬걸. ‘0’이라는 대목에 그만 입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그렇지, 나온 지 거의 한 해가 다 되어 가는 책인데, 판매지수가 ‘0’이라니. 아니, 인터넷책방 이곳에서만 판매지수가 0일 뿐, 다른 데에서는, 또 여느 동네책방에서는 사랑받고 있을지 모르는 노릇이겠지요.

 영화 〈고양이가 부탁해〉가 나왔을 때, ‘〈고양이를 부탁해〉 살리기 인천시민모임’이 최원식 교수를 앞장세워 일어나기도 했다는데, 동화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왔을 때 ‘느낌표 책’으로 뽑히고 ‘기찻길옆공부방’이 전국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 하며 크게 도움을 받았는데, 정작 인천이라는 데에 뿌리를 박고 인천이라는 데에서 밑바닥 삶을 꾸리던 사람들 자취가 담긴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은 푸대접도 찬밥대접도 아닌 똥대접이라니.

 〈고양이를 부탁해〉를 아꼈다는 사람들 손길이라면,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눈물겹게 읽었다는 눈길이라면, 《수복호 사람들》에 담긴 바닷가마을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에 조곤조곤 말을 붙이고 쫑긋쫑긋 귀를 세우며 토닥토닥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아니,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 하는 풋생각일는지.


.. ‘조개 캐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1998년 인천 연수동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연수동은 갯벌을 흙으로 메워서 그 위에 만든 도시이다. 예전에는 물때에 맞춰 소달구지를 타고 나가 조개를 캐던 갯벌이었으나 삶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소 대신 트랙터를 타고 나가 조개를 잡던 곳이다. 인천이 고향인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끈으로 묶은 장화를 신고, 양은 ‘다라이’를 끌고 다니며 열심히 조개를 캐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동구에 있는 만석동과 화수동엘 갔었다. 아직도 기찻길 옆에는 판잣집들이 남아 있고, 오래된 공장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이 뒤엉켜 있는 곳, 그곳에는 이북 피난민들이 내려와 굴이나 조개를 캐던 생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닐로 벽을 삼은 작은 굴막에 들어앉아 끊임없이 굴을 까는 사람들의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곳은 인천의 과거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었다 ..  (찍은이 말)
 





 찌뿌둥한 하늘이 비를 뿌릴 듯 말 듯한 낮나절, 옆지기 심부름을 받아 생협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자전거머리를 북성동으로 돌립니다. 답동에서 인현동으로 넘어가고,인현동에서 전동과 화평동을 스친 다음, 송월동1가로 접어듭니다. 그러면서 만석동과 잇닿은 북성동1가로 들어섭니다. 기차길과 고가도로가 맞닿아 있는데다가, 저 철길과 고가도로 건너편으로는 하늘을 뒤덮은 큰 굴뚝 공장이 가까이 바라다보이는 북성동에서 자전거를 내려, 고가도로로 올라가 보고, 천천히 골목을 거닐어 봅니다. 큰 개가 컹컹 짖어 더 못 들어가는 골목에서는 돌아나오고, 막혀 버린 골목에서도 돌아나옵니다. 굴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물어져 가는 집을 쳐다보다가, 뒷짐 지고 걷는 할매 앞에서 꾸벅 고개를 숙이다가, 깃들인 사람 없어 비어 있는 집과 가게 앞에서 괜히 서성이다가, 조용히 사진 몇 장 찍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동일방직 들머리에서 잠깐 멈추어 다시 한 번 골목 안쪽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나옵니다. 우람한 공장과 창고 옆으로 올망졸망 붙어 있는 오래 묵은 집들 옆으로 자전거를 가볍게 스쳐 지납니다. 엊저녁에 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떠올려 봅니다. 용케 이 동네 삶터를 잡아채어 참으로 살뜰하게 담아냈구나 싶으면서, 이런 삶터를 이런 동네를 이런 골목길 사람들을 무대로 삼은 생각바탕에 무엇이 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고가도로에 올라서서 높직한 방음벽을 옆으로 하고 걷는 동안, 이 ‘산업도로 구실’ 고가도로를 지나는 컨테이너짐차와 원목짐차와 자동차짐차가 지나갈 때마다 덜덜 떨립니다. 고가도로 한켠에 서서 동네를 사진으로 담으려 하다가도 온몸이 덜덜 떨려서 도무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저 무거운 짐차가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데에도 고가도로가 무너지지 않으니 용합니다. 그러면 이 고가도로 밑에서 살아가는 북성동 사람들과 만석동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한두 해도 아닌 기나긴 세월을 끔찍한 자동차 소음과 매연과 먼지들에다가 공장 소음과 매연과 먼지를 마시면서 굴을 까고 부두노동자로 일하고 중공업 공장과 유리공장과 제철소와 목재소에서 일했는데, 이 사람들 삶은?


.. 조그만 배로 인천 근해(경기도)에 조그마한 섬(무인도)을 다니며 굴(조개)을 채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복호를 타고 다니시는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이북에서 가족들과 피난 나온 분들이었고, 종종 전라도와 충청도 등에서 어렵게 사시다가 인천으로 올라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들은 인천에서 굴을 따고 또 밤을 새워 굴을 까다가 연안부두에 나가 상인에게 팔고, 그 돈으로 쌀과 보리를 사서 생계를 이어오신 분들입니다. 그들이 싸 온 주먹밥은 보리쌀이 전부였고, 밀기울(밀겨)을 버무린 찬밥을 더운물에 말아 먹곤 하였습니다. 물론 당시는 경제가 어려워 온 국민이 어렵게 지내던 시절이었고, 수복호의 선장을 비롯하여 그 선박을 타고 다니는 아주머니들 모두가 어렵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고 해서 불행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선장과 아주머니들 모두 한식구처럼 지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걱정해 주고 도와주고 슬픈 일에는 서로 위로해 주며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 왔습니다 ..  (머리글 / 수복2호 선주 최영식)


 지금 살고 있는 집이 4월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만석동이나 북성동, 또는 송월동이나 화수동, 또는 화평동이나 송현동으로 옮겨 갈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남들은 살기 싫다고 나오는 동네이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는 아직 보증금 50에 월세 25만 원짜리 방, 보증금 100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 보증금 200에 월세 10만 원짜리 방이 있어요. 저는 보증금 100에 월세 10만 원짜리 방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4342.2.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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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목어 이야기 우리 문화 그림책 14
김혜리 글.그림 / 사계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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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림책이라 한다면
 [그림책이 좋다 57] 김혜리,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책이름 :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글ㆍ그림 : 김혜리
- 펴낸곳 : 사계절 (2009.1.22.)
- 책값 : 9800원

 





 (1) 그림책을 펼치면서 즐거움


 절에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인 ‘목어’가 있습니다. 이 ‘나무물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교원청규》라는 책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두들기면서 마음닦이 하는 이들이 잠을 쫓고 마음을 맑게 다스리도록 도우려고 쓰는 나무물고기라고 합니다. 그림책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는 절에서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늘날 어린이들한테 절에서 흔히 보는 나무물고기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재미나고 싱그럽게 보여줍니다.

 어쩌면 오늘날 절은 산속 깊이깊이 들어가 있어서 이와 같은 나무물고기 하나를 눈여겨보기 어려울 수 있고, 절에 깃든 우리 옛 문화재를 이야기할 때에도 돌탑이나 대웅전이나 벽그림처럼 크게 앞세워지지는 않아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를 그려낸 분은 절집을 이루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담긴 애틋함을 잘 담아내었고, 이 애틋함을 돌아볼 만한 마음그릇이 되어야 비로소 절집에서 마음닦이를 하는 뜻을 스님들 스스로 돌아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책을 펴낸 ‘사계절’ 출판사에서도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가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우리 삶자락을 아이들이 하나하나 돌아볼 수 있게끔 해 주는 일을 하면서 어느덧 열네 번째 그림책을 선보입니다.

 저 또한 이 그림책을 보면서 절집에 매달린 나무물고기가 이러한 이야기에서 비롯했구나 하고 깨닫고, 나중에 절집에 가면 나무물고기를 좀더 애틋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아기 엄마가 아기한테 이 그림책을 펼쳐서 보여주니, 아기도 크고작은 그림과 빛있고 빛없는 그림에 눈길을 보내면서 까르르 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혼자서 보기에 재미있는 한편, 아이 키우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함께 펼쳐서 보기에 즐거울 만한 그림책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줄거리를 살펴봅니다. 그림책 주인공 이름은 ‘멋대로’입니다. 이 멋대로는 동자승이면서 큰스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고 허구헌날 장난만 치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장난과 못된 짓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병을 얻어 그만 일찍 죽었고, 죽은 뒤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는데 물고기가 되어서도 못된 짓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하늘은 다시 벌을 내려 이 아이 ‘멋대로’ 등에 나무가 자라게 하고, 이렇게 자란 나무 때문에 멋대로 물고기는 물속에서 움쭉달싹을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예전에 자기를 거두어 준 큰스님을 우연하게 만나서 잘못과 죄를 씻어내게 되고 ‘절에 매다는 나무물고기’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책 뒤에는 절집 문화와 역사, 그리고 나무물고기와 얽힌 이야기를 두 쪽에 걸쳐 실어 놓아서, 그림책을 보고 난 다음, 어버이와 아이가 ‘나무물고기’란 무엇이고 절집 문화와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해 놓았습니다.
 







 (2) 그림책을 덮으면서 아쉬움


 다만, 책을 덮으면서 몇 가지 아쉽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엿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줄거리와 짜임새와 그림결’이기는 하나, 제멋대로 군다고 하는 ‘멋대로’라고 하는 아이는 왜 다른 아이와 달리 절집에서도 제멋대로 구는가 하는지가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에는 제대로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꼭 담아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주인공’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이야기까지 담자면 그림책이 너무 길어진다고 할 테지만, 그림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이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여 그림책이 그리 길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처음부터 못된 아이는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아야 한다는 느낌’을 넘어서, ‘이 아이가 제멋대로 굴게 되고 절집에 동자승으로 들어왔지만 큰스님이 큰스님답게 좀더 너그러이 아이를 보듬고 키우면서 애쓰는’ 이야기를 살며시 집어넣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애를 썼어도 멋대로라는 아이는 자기 삶을 찬찬히 되짚지 않고 더 제멋대로 까불면서 이웃을 괴롭히게 되었고, 이런 괴롭힘은 뒷날 고스란히 자기한테 돌아오게 되고, 이렇게 되돌아온 괴롭힘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 ‘스님이 되어 마음닦이를 하는 뜻’뿐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서로 이웃과 동무가 되어서 살아가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짚는 데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림책 하나에 이 모두를 담아내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이런저런 대목까지 짚어내야만 하지는 않아요.

 그저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동자승으로 있는 아이들이 어떤 까닭에 아빠 엄마와 어릴 때부터 헤어져 절집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그처럼 제멋대로 굴던 아이였는지 나타나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을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두 줄로도 얼마든지 살을 입힐 수 있으니까요. 군말이지만, ‘멋대로’라고 하는 아이가 이렇게 제멋대로로 굴 때, 동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아이한테 마음을 안 쏟게 되는 흐름, 또 큰스님도 이런 대목을 짚지 못하는 대목이 섭섭하지만, 이런 섭섭함을 담아내자면 ‘나무물고기’라는 그림책은 나올 수 없었겠지요. 덧붙여,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아이가 잘못에 따른 벌을 받고 뉘우치면서 나무물고기로 다시 태어난다는 옛이야기를 고스란히 살려야 이 그림책이 마무리될 테고요.

 그렇지만 이 그림책이 옛이야기에 새옷을 입힌 창작물임을 헤아리기 때문에, 여러모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마냥 멋대로 굴다가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아 마땅한 놈이 되고, 이리하여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는데 다시금 잘못을 저지르고, 그런 다음 더 큰 벌을 받고서야 비로소 잘못을 뉘우치고 거듭 사랑을 받아 새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줄거리만을 보여주어도 될까 하는 생각 또한 문득문득 듭니다. 이만한 이야기로는 굳이 새 옷을 입혀 빚어내는 그림책으로는 좀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그래도 뜻있는 출판사에서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고 내걸기까지 했는데, 좀 아쉽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옛이야기에 바탕을 두어야 비로소 나무물고기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기도 할 터이나, 옛이야기에 살을 붙이면서 남다른 재미를 보탤 수 있는 한편, 우리 둘레에서 얄궂은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마음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개구쟁이나 말괄량이가 아닌 ‘멋대로’가 되어 버린 아쉬움을 그저 따끔하게 꾸짖기만 하거나 아예 등돌리고 따돌리는 줄거리가 펼쳐지는데,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어른이나 동무 하나 없는 외로운 ‘멋대로’라고만 자꾸자꾸 느껴집니다. ‘외로운 아이가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하면서 그 외로움을 씩씩거리며 둘레에 화풀이를 해대는데, 이 화풀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 주거나 껴안아 주는 이웃이나 어른이나 동무가 하나 없어 더 외롭고 더 까불고 더 나대는 모습’이 아니랴 싶은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마음닦이에 들어서는 스님들한테 가르침을 베풀고자 지어낸 나무물고기 이야기를 함부로 손대거나 어줍잖게 뜯어고쳐서는 안 됩니다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려는 생각이 앞서면서 정작 우리 삶과 사람을 더욱 따뜻하고 애틋하게 보살피거나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놓쳐 버릴 걱정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야기 끝에 가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대목에서도 ‘등에 갑자기 나무가 자라서 옴쭉달싹 못하는 괴로움을 겪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괴로움을 겪기까지 한 번쯤 살을 더 입혔더라면, 옛이야기 틀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한결 부드럽고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새이야기’로 태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을 더 들어 본다면, 그림책에 나오는 동자승 옷차림이 꼭 ‘우리 아이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때는 틀림없이 조선시대이고, 아이들은 절접 동자승입니다. 그리고 동네사람도 한복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승사자 옷차림만 ‘펑퍼짐한’ 옷이고, 발목을 동인 매무새이고, 동자승이나 동네사람이나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짧고 통 좁은 바지’입니다. 웃도리도 몸에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은 동자승이요 동네사람입니다. 그런데 절집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웃도리와 아랫도리가 이렇던가요? 우리 옷차림이 이렇게 ‘쫄티나 쫄바지’ 느낌이 나는 옷이었던가요?

 우리 한복은 ‘몸에 찰싹 달라붙도록 입지 않음’을 헤아린다면, 그리고 동자승한테도 ‘몸에 꼭 끼는 옷을 입히지 않음’을 돌아본다면, 비록 ‘그림책에 담는 새 창작 그림’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대목을 살리고 그 나름대로 북돋웠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그냥’ 그림책이 아닌 ‘우리 문화’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면 ‘우리 옷’이 우리 옷답게, ‘우리 집’이 우리네 집답게, ‘우리 사람’이 우리 사람답게 그려질 수 있는 바탕에서 새로운 창작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342.2.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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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놀소동
전수일 지음 / 작가마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9 ― 돈바라기 삶이 ‘페놀소동’과 ‘경부운하’ 부른다
 : 전수일, 《페놀소동》



- 책이름 : 페놀소동
- 글 : 전수일
- 펴낸곳 : 작가마을 (2008.12.20.)
- 책값 : 1만 원



 (1) 물과 바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아버지가 자동차를 장만하신 뒤부터, 우리 집은 수돗물을 안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끌고 큰 물통 여럿을 차에 싣고는 약수터를 찾아다녔습니다. 차에 물통 여럿 가득 채워 돌아오면, 4층에 있는 집까지 나르는 일은 형과 제 몫이었습니다. 이웃집들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는데 우리 집만 아버지가 남달리 약수터 나들이를 하며 물을 떠와서는 큰소리로 우리를 부를라치면 이웃집 들을라 부끄러웠습니다. 다들 먹는 수돗물 똑같이 먹으면 되지, 왜 저렇게 기름 쓰고 시간 버리면서 약수터까지 다녀온다고 그러시는지 하면서.


.. “이 기사는 냄새가 느껴집니까?”흠, 흠, 조금 느껴지는 것도 같고,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머금었던 수돗물을 뱉어내며 이준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렇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수돗물이 멈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정상기나 이준성, 두 사람 모두 기준치를 초과한 수돗물이지만 정지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후가 되자 정수계장 마규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정상기의 뇌리에 맴돌던 막연한 불안감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하여 현실화되어 갔다. “정 기사, 수돗물은 그냥 묵어도 되는 기가?” “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수돗물을 날로 먹는 사람도 없으니까.” ..  (21쪽)


 몸을 더 튼튼하게 지키려면 수돗물은 안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었을 테지만, 이러는 한편으로 ‘자가용 없고 수돗물만 마시는 다른 집 앞에서 자랑하려는’ 매무새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줄곧 약수터 물만 드셨고, 제금나와 사는 저는 홀로 살림을 꾸리는 동안 수돗물만 마십니다.

 그러나 수돗물을 마시면서 이 수돗물이 우리 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흘러서 저절로 깨끗해지는 물이 아니라 약품으로 다루어 맑게 보이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우리 나라는 예부터 ‘물 맑고 산 좋은’ 나라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우리 나라 어디를 가도 물 맑거나 산 좋다고 하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산골 깊숙하게 들어가면 골짜기 물을 마실 수 있고,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마시기도 하지만, 돈과 집이 없는 여느 사람한테는 꿈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가게에서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다면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마시는 셈이라 할 텐데,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뽑아올리느라 이 나라 땅이 푹 꺼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울릉도 앞바다 밑에서 퍼올린다는 물이나 제주섬에서 길어 온다는 물도 걱정스럽습니다. 제주는 물이 모자란 땅인데 그렇게 모자란 물을 자꾸자꾸 바깥으로 빼내어 돈벌이를 해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 페놀유출사건을 규탄하는 아우성이 사라질 무렵 또다시 구미의 선도전자에서 페놀이 유출된다고 보도되었다. 유출 이유는 페놀 저장탱크 수리와 선도전자가 독점 생산하는 제품이 중단되면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따른다는 것이다. 낙동강가의 주민들은 또다시 아우성을 쳤다. “이 기사, 나라가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선도전자가 독점하는 제품을 생산하드라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상기가 흥분하자 이준성도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서울사람들은 낙동강 물 안 묵는다 이거지요.” 정상기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낙동강이 하수처리장입니까? 저장탱크가 하나만 있으란 법도 없고, 여의치 않으면 희석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선도전자는 높은 데하고 모두 이야기됐으니까 걱정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지예, 국가 자체가 환경에 대한 개념정의가 없습니다.” ..  (57쪽)


 어릴 적, 1980년대 첫머리에도 인천 앞바다는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쓰레기물 때문에 그리 안 맑았습니다. 그러나 갯가에서 망둥이를 낚거나 쏘가리를 낚곤 했고, 영종도 갯벌은 꽤 깨끗했습니다. 오늘날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에다가 새로 짓는 아파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한테 영종도는 섬을 한 바퀴 빙 걸어서 돌기도 하고 갯벌에서 놀기도 하다가 아무 바닷가집에나 “계셔요, 물 좀 얻어 마실게요!” 하고 소리지르곤 들어가서 무자위를 길어 등목을 하고 물 얻어마시고 하던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영종섬에 두루 걸쳐 있던 넓디넓은 소금밭.

 중학교에 다니던 1990년까지, 아버지는 장봉섬 작은 분교에서 교사로 일했기에, 어머니와 형과 저는 방학 때면 함께 섬에 들어가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쯤 주말을 잡아 섬 나들이를 했습니다(어머니는 주마다). 이때면,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배를 타고 들어간 다음, 섬 버스를 잡아타고 삼목도까지 갑니다. 그런 뒤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들어갔는데, 영종도에서 막 배에 내려 섬 버스를 타고 사십 분 남짓 구비구비 섬을 구석구석 돌아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소금밭에 또 소금밭이었습니다. 그때는 사진으로 이런 모습을 찍는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버스에서 운전사 자리 바로 옆에 겨우 낑겨 타며 버스 앞창으로 내다보는 마을 모습은 제 눈과 머리와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 두 사람이 주위를 살펴도 하수구와 연결된 옥계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물 흐르는 소리는 들렸다 … 어젯밤의 소나기로 옥계천에는 황토물이 고르게 밀려오고 고물상 뒤편으로 하수관 두 개가 매복호의 총구처럼 두 사람을 겨누고 있다. “야아, 절묘하네, 절묘해. 저런 곳에 하수구를, 정말이지 보이지 않는 살인을 위한 총구 같아.” 이웅찬의 감탄에 정상기의 흥분된 목소리가 강물처럼 쏟아졌다. “오폐수의 무단방류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살인행위지. 이 나쁜 놈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비만 오면 무단방류를 해. 예상 강수량이 삼사십 밀리미터 이상 되면 틀림없이 폐수를 방류하지. 그날도 주말에다 일기예보에 한 삼 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하니까 미리 계산해서 마음 놓고 페놀을 내뿜은기라. 그런데 이튿날 비가 그치는 바람에 들통이 났지. 이 나쁜 놈들, 그래도 물어 보면 저거만 재수가 없어 들켰다 그럴끼라.” ..  (152∼153쪽)


 1993년 어느 날, 원자력발전소 쓰레기(핵폐기물)를 모으는 곳을 안면섬에 짓겠다고 하여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진 적 있습니다. 이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94년에 이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인천 앞바다에 있는 ‘굴업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 짓겠다는 대책을 정부에서 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천이란, 온갖 화학공장 제철소 제강소 유리공장을 비롯해 쓰레기물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공장이 꾸역꾸역 지어져도 시민들 입 하나 벙긋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혐오시설’이라 일컫는 시설을 지어도 주민들은 ‘철거민’이 되어 내쫓길 뿐 군소리를 못한 곳이었거든요. 그리 많지 않은 안면섬 주민은 저렇게 싸워서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못 들이게 막았다지만, 인천이라는 데는 막을 수 있을까 알 수 없었고, 더구나 고작 일곱 사람만 살던 작은 섬 굴업도를 후보지로 삼았다고 했으니.

 그때 일은 지금 와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천을 모르고 인천 앞바다를 모르는 다른 곳 사람들은 ‘인천 앞바다는 어차피 똥물인데 그깟 핵폐기물쯤이야 인천 앞바다에 있는들 무슨 대수냐?’ 하고들 대꾸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진보니 사회운동이니 환경이니 이야기하는 선배나 동기 들도 하나같이 시큰둥해 했고, ‘거긴 워낙 지저분한데다가 외진 곳이니 괜찮지 않냐?’ 하는 대꾸뿐이었습니다. 인천에 사는 동무는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지겠니? 뭐, 인천은 옛날부터 그랬잖아.’ 하면서 싸우기 앞서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으로 겪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그나마 아버지가 장봉섬 같은 데에서 여러 해 일한 탓에, 그 장봉섬 물이 ‘인천 앞바다임에도 얼마나 맑고 파랗던가’를 잘 알았습니다. 굵기가 팔뚝 만한 도라지를 섬에 있는 얕은 산에 올라 캘 수 있었고, 섬에 사는 아이들은(그땐 저도 아이였으나 저보다 어렸던 아이) 맨손으로 갯벌에서 낙지를 잡았으며, 섬에서 기르는 김은 ‘진짜 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일 돕는 섬 아저씨는 ‘우리 선생님네 아이들이 왔으니 아주 귀한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호미로 땅을 파더니 구더기를 잡아서 ‘이거 드셔 보셔요. 얼마나 맛이 좋고 몸에 좋은지 몰라요’ 하고 건네주었습니다. 아저씨가 주시니 먹기는 먹어야겠지만 차마 못 먹었는데, 저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몸이니 꺼렸을 뿐,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하얀 구더기는 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는 섬에서는 참말 ‘귀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장봉섬은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뭍사람한테 ‘여름철 피서지’로 소문이 나게 되었고, 관광객이 수십 수백 수천 사람 몰려오면서 깨끗하던 물과 모래밭과 산과 나무는 ‘놀러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잔뜩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분교살이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고 몇 해 뒤 다시 장봉섬 옹진분교를 찾아간 적 있는데, 이때 본 분교는 ‘여름철 피서객과 교회 젊은이들이 깨뜨린 유리창과 더럽힌 건물과 운동장과 ……’ 차마 더 돌아볼 수 없을 노릇이었습니다.


.. 정상기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보고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 일과를 마치고 세 단체(정수장 공무원, 페놀유출 회사 직원, 시민단체)의 저녁식사 모임에 앞서 정상기는 수도과에서 여비를 받았다. 특별하게 지급될 조건도 아닌 관내 출장업무인데 많은 돈이 봉투에 들어 있었고 신길태의 여비도 똑같았다. 페놀 피해 조사를 실시하는 날 저녁회식은 언제나 선도그룹에서 주최하였다. 밥과 술 그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목을 다지는 순서였다 …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선도그룹에서 택시비가 지급되었다. 일인당 이만 원이었다. 마산의 끝자락 댓거리에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택시요금은 삼천 원이 채 못 나온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거절 표시에도 이산두의 끈질긴 노력으로 택시비는 빠짐없이 전달되었다.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고 직원들이 모인 곳으로 의기양앙하게 돌아온 이산두는 절도 있는 손동작을 보이며 소리쳤다. “돈 앞에는 장사 없어요.” ..  (164∼168쪽)


 나고 자란 곳이지만 새파랗게 젊던 때는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곳인 인천에서 보고 듣고 겪는 온갖 모습은 예나 이제나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 동안 걸어서 오간 학교길에는 늘 제일제당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제일제당 옆으로는 개천 하나가 바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개천은 늘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하여, 이 길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몹시 드물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길에 이 길로 안 가고 돌아가면 곱배기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자면 ‘옐로우하우스’ 앞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또다른 길은 연안부두에서 인천제철이니 유리공장이나 제재소니 하는 월미도공단으로 큰짐 실어나르는 산업도로 옆이라서 이쪽으로는 더욱 가기 싫었습니다.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마찬가지였기에, 공장에서 내뿜는 온갖 빛깔 쓰레기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다가는, 코를 막고 몇 초 동안 숨을 안 쉬고 이 더러운 개천 옆을 지나갈 수 있는가 시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시험을 해 보면 늘 미처 다 지나가지 못하고 캑캑 재채기가 나와 더 많이 구린 냄새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비라도 온 날은 냄새뿐 아니라 질척거림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제일제당을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지나가야 하는 연탄공장에서 까만 연탄재를 맡으며 몸을 털곤 했습니다.

 딱히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환경 지키기’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1991년에 낙동강에 페놀이 흘러들어 크게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때 속으로 피식 웃으며, ‘뭐야?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는 허구헌날 저렇게 코를 찌르는 쓰레기물이 흐르고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연탄공장과 식품공장 옆에 있는 학교 본 적 있어?’ 하는 생각을 했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화학공장과 원목처리장이 학교 둘레에 있어서 ‘우리는 화학공장 옆에서 온갖 매캐한 연기 다 마시고 사는데 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 흐르던 쓰레기물은 ‘정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과 섞이지 않’고 ‘인천 앞바다로 흘러가 인천 앞에 있는 섬 갯벌을 더럽히고 바다에 사는 목숨붙이를 죽일’ 뿐이어서 이야기거리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싶은데, 바다로 흘러든다고 해서 우리가 안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이 물을 마시고 우리는 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니 똑같이 ‘쓰레기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꼴’입니다. 인천 앞바다로 흘러나가는 쓰레기물은 연평섬 둘레 게한테도 조기한테도 갈치한테도 실치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이 물이 흘러흘러 남쪽으로 내려가 수많은 또다른 물고기와 바다목숨한테도 영향을 끼칩니다.


 (2) 소설 《페놀소동》과 우리 삶


 소설 《페놀소동》을 읽습니다. 금세 읽어냅니다. 소설을 펴내 준 출판사에서 교정교열을 제대로 보지 못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뿐 아니라 문장부호 잘못된 곳이 참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런 아쉬움은 훌훌 털어 버릴 만큼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글쓴이 전수일 님은 문학쟁이가 아니라 아직 글 여밈새는 어수룩한 곳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어수룩함이야 이분이 처음으로 내놓은 문학작품인 만큼 앞으로 얼마든지 탈바꿈하면서 한결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전수일 님 당신이 몸소 겪고 치러낸 ‘페놀소동’ 이야기 속내로 빠져듭니다.


.. 한국 같으면 복개하여 주차장이나 도로 같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실적을 쌓았을 (일본 오사카) 시내 중심가 하천에서 푸른 물이 폭포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상큼한 물 냄새까지 솟아올랐다. 마산의 하천이라면 쥐새끼가 먹이를 찾아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자리에 버섯 모양의 하얀색 기구가 촘촘히 장치되어 있다. “저기 뭐이고?” 마규현이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서 소리쳤다. “소형 폭기조 같은데?” … 더 많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개되는 하천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코를 박고 누워 있다. 정상기는 자기도 몰래 얼굴이 찌부러졌다. 어릴 적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심 하천은 이제 이룰 수 없는 우리의 꿈이 되는가? 무산보다 더 복잡하고 현란한 오사카의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머리속에 울려나온다. 오사카의 도심 하천을 넋 빠지게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에 정상기는 짜증이 났다 ..  (127, 173∼174쪽)


 책을 덮으면서 일본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님이 쓴 《소설 복합오염》이 떠오릅니다. 일본사람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 쓴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가 떠오르고,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슬픈 미나마타》가 떠오릅니다. 세 가지 모두 일본에서뿐 아니라 일본 밖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환경문학’이라고 하는데, 소설 《페놀소동》은 이에 못 미치지만, 곰곰이 읽고 생각하고 되짚을 우리 삶이 아니냐 싶습니다.

 문득, 일본은 일본대로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치르고 이겨내면서 새로운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구나 싶은 한편, 우리는 우리대로 수없이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있지만, 한바탕 ‘소동’으로만 그치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 제대로 문학으로 꽃피우지 못하는가 싶습니다. 소동이 터지는 그때부터 얼마 동안 세상을 뒤흔드는, 그러니까 바람 따라 지나가는 이야기거리로만 그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정 기사님, 우리 실장님은 맑은 물보다 돈을 더 좋아합니다.” ..  (114쪽)


 일본이든 한국이든, 또 미국이든 러시아든, 또 유럽이든 아시아든, 환경을 업신여기면서 일어나는 모든 아픔은 돈 때문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리고 돈 앞에 다른 모두를 눈감은 매무새 때문에, 또한 돈을 휘두르는 이 앞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똑같은 일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원진병과 온산병은 똑같고, 온산병과 페놀오염은 똑같으며, 페놀오염과 중금속오염은 똑같습니다. 중금속오염은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수은 문제와 똑같고, 예방주사 수은은 식품회사에서 ‘이제는 MSG를 더는 안 쓴다’고 밝히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된다고 느끼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 “정 기사님, 지금도 낙동강 원수에서 페놀이 잡힙니다. 비가 오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  (201쪽)


 참말로 우리는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애써 번 돈은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쓰고 있을까요. 돈을 버는 동안, 또 돈을 쓰는 동안 우리 삶터는 어떻게 뒤바뀌고 있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땀흘려 일을 하고 신나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동안 우리 터전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뚫으려는 물길은, 나라를 살리는 물길이 아니라 나라를 집어삼키는 돈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 삶을 살찌우는 돈푼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잡아먹는 돈벌레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돈과 이름과 힘만 쌓아 놓으면서 물길을 파고 있음을 꿰뚫어보았기에 거침없이 돈바라기 물길을 뚫으려고 하며, 이런 물길트기를 손뼉치며 반기는 사람도 꽤 많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4342.2.14.흙.ㅎㄲㅅㄱ)


글쓴이 전수일 님은
1955년에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고, 영남대학교에서 공과대학을 마친 뒤 1983년부터 남해군 보건소에서 일하다가 1987년에는 마신시 칠서수자원관리사무소 실험실에서 일했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청수환경’ 대표로 일했다. 소설 《페놀소동》은 전수일 님이 현장에서 몸소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환경 문제에 등돌리고 있는 잘잘못을 파헤치면서 고발하고픈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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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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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느낌글은 예전에 한 번 썼지만, 이번에 세 번째로 읽으면서 다시금 틀을 갖추어서 써 보기로 한다... 



 이 책 하나 73 ―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는 똑같다
 : 존 버거+장 모르, 《제7의 인간》



- 책이름 : 제7의 인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차미례
- 펴낸곳 : 눈빛 (2004.11.11.)
- 책값 : 12000원



 (1) 동네와 집과 사람


 제가 동네에서 즐겨찾는 구멍가게 할배는 지난해 가을께 가게에 셈틀 한 대를 들여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예전에 쓰던 낡은 녀석을 물려받으셨는지 새로 장만하셨는지 모르지만, 구멍가게 할배는 한동안 당신 자리 옆에 멀거니 모셔 두기만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셈틀에 들어 있는 놀이 가운데 하나인 ‘프리셀’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여느 때에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며 손님을 기다리지만, 요사이는 셈틀놀이에 푹 빠져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 이민노동자들은 노동 인력이 부족한 곳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팔러 온다. 그는 어떤 한 가지 종류의 일을 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그에겐 아무런 권리도 주장도 없으며, 그 일자리를 채우는 것밖에는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동안은, 돈도 받고 숙소도 제공된다. 더 이상 그것을 안 할 때에는, 그는 처음에 출발한 곳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이민을 가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라 기계 관리 인부, 청소부, 땅 파는 인부, 시멘트 섞는 인부, 세탁부, 공원 따위이다 ..  (62쪽)


 구멍가게 할배는 지금 동네 골목길 안쪽에 장만해서 살고 있는 집이 1층과 2층을 더해서 100평쯤 된다고 하는데, 이 집을 장만하여 살기까지는 오래도록 땀흘리고 애썼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할배가 들려주는 말도 있지만, 말씀으로 들려주지 않아도 몸으로 느낍니다. 어느 골목집 이웃이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인천에서도 연수구나 송도새도시와 청라새도시 같은 데, 그리고 웬만한 서울하고 견주면 터무니없이 싼 집값이요 땅값이라고 할 테지만(한 평에 200만 원도 잘 안 쳐 주니), 이렇게 싼 땅에서 마련한 싼집이라고 하여도 돈 10원을 아끼고 갈무리하면서 살아가는 긴 세월 끝에 장만한 집이라 남다르다고 느낍니다. 당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집이 아닌 당신 손으로 일하여 일군 집이라, 가게며 집이며 둘레 골목길이며 쓰레기나 비닐봉지 하나 떨어지거나 구르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몇 가지 안 되는 물품을 늘여놓고 있어도 흐트러짐 하나 없고, 가게 유리문이며 간판이며 뿌옇게 먼지가 앉은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할배 구멍가게뿐 아니라 둘레 곳곳에 자리한 다른 구멍가게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어수선하거나 지저분하게 차린 구멍가게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고작 보리술 한두 병에 주전부리감 안주 한 점쯤 사러 가는 구멍가게입니다만, 이와 같은 매무새에는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이제 당신들은 나이도 나이이고 살림 걱정이 따로 없으니, 구멍가게에서 셈틀놀이만 하거나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세월을 보내실 수 있을 텐데, 오랫동안 몸에 익은 버릇 그대로 빈병을 모으고, 손수 자전거로 물건을 실어 오며, 당신 집 페인트 바르기나 손질을 누구한테 맡기지 않습니다. 가게 옥상에는 당신들 나름대로 옥상 텃밭을 일구고, 눈이 오면 골목길 눈을 스스럼없이 치우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일을 그예 즐겁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서울 종로구 평동 안쪽 골목집에서 살 때에, 그 집 임자인 할배는 ‘낡은 집 손질’을 꼭 당신 스스로 했습니다. 나무로 지은 적산가옥이라 뒷간이 없고 쥐가 함께 사는 집이었는데, 일꾼을 사지 않고 당신이 손수 시멘트와 모래와 물을 섞어 공사를 했고, 전기공사니 보일러공사니 꼭 손수 하면서 세입자가 바라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온도가 많이 떨어진 겨울철에는 새벽같이 나와서 수도가 얼지 않게 틀어 놓으라 부르고, 어쩔 수 없이 수도가 얼면 이를 녹이려고 함께 끙끙댔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 달삯 내며 살고 있는 집 임자인 할배는 아무런 집일을 할 줄 모릅니다. 오로지 돈만 아는 분입니다. 늦은밤 아기를 재우고 고단한 다리 쭉 뻗고 잠들면서 도무지 이 집에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며 지난 일을 떠올려 보곤 하는데, 누구나 어릴 적부터 길들고 익숙해 온 대로 늙어서까지 살지 않느냐 싶고, 자기 삶을 가꾸는 손은 자기가 움직이는 손이지, 돈으로 사서 쓰는 손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 살림이 확 피면서 우리도 누군가한테 방 한 칸 내주며 달삯을 받을 집임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세입자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름다운 집임자가 되자면 어떠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느낍니다.


.. 그들은 제일 힘들고 제일 하기 싫고 보수가 적은 직종, 예를 들어 독일의 플라스틱ㆍ고무ㆍ석면 공장 같은 데서 일한다. 콜로뉴에 있는 포드 공장의 일관 생산 라인에서는 40퍼센트의 노동력이 이민들이며,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의 제작공장에서는 40퍼센트, 고텐부르크의 볼보 공장은 45퍼센트가 이민들이다. 살기 위해서 그는 자기 목숨을 팔 수도 있다 ..  (90쪽)


 자전거를 타면 조금 멀리까지, 두 다리로 걷자면 한 시간쯤 되는 거리까지 골목마실을 합니다. 이때마다 우리 식구는 낯익은 길을 새삼 둘러보기도 하고 낯선 길에 살금살금 첫발을 들이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꾸리는 집살림을 느끼는데, 흔히 말하는 ‘자동차 들어가지 못하는’ 어둡거나 허름하다 싶은 뒷골목이 ‘자동차 씽씽 내달리거나 우뚝 서 있는’ 제법 넓고 밝으며 번듯번듯 올라선 건물 있는 큰길보다 깨끗하곤 합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바라보면 뒷골목은 으스스하고 꾀죄죄하다는 느낌이지만, 골목동네에서 살아 보면, ‘사람 사는 동네’가 으스스하고 꾀죄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 해마다 다른 데로 옮겨 살아야 하는 동네, 끝없이 재개발 문제에 부닥쳐야 하는 동네, 뿌리내리며 사는 동네가 아닌 잠깐 머물다가 가거나 구경꾼이 스치고 지나는 동네가 으스스하고 꾀죄죄합니다.


.. 예비노동력의 대부분이 이민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들은 필요할 때에는 ‘수입’을 해 올 수 있고, 일시적으로 남아돌 경우에는 ‘수출(귀국시키는 것)’을 할 수가 있으며, 이민노동자들은 정치적인 권리도 없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치적인 충격도 받을 필요가 없다 ..  (147쪽)


 어느 때에는 뒷골목 으슥하다 싶은 곳에서 담배 태우는 아이들을 마주칩니다. 이 아이들이 오죽 담배 태울 데가 없으면 이런 데서 태울까 싶기도 하다가는, 학교 뒷간에서도 태우는데 이런 골목이야 아무것도 아닐 테지 싶고, 왜 이처럼 뒤로 숨어 가면서 태우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겉멋으로 태우는 아이들이 있지만, 속이 타고 애가 타서 태우는 아이들이 틀림없이 있기에,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속태우거나 애태울 일을 처음부터 일으키지 않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골목마실을 하며 아이들 매무새를 살피면, 아이들은 제 어버이 하는 대로 고스란히 보여주거나 제 이웃 하는 대로 꾸밈없이 드러납니다. 늘 보는 모습대로 배우고, 늘 겪는 대로 익숙해지며, 늘 치르는 대로 버릇이 됩니다. 얼음과자 봉지를 휙휙 버리든,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든,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 어른이 하는 양하고 똑같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 어른이 당신 집 둘레 삶터를 아름다이 가꾸는 매무새였다면, 아이들 또한 동네에서 아무렇게나 다니지 않고 얄궂은 짓을 함부로 일으키지 않습니다.


.. 고용주들은 프롤레타리아보다도 낮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의식화되면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노동자도 너무 오래 체재하지 않도록 외국인 노동력을 끊임없이 ‘로테이션’시킬 계획을 세운다 ..  (154∼155쪽)


 그나저나, 학교옷을 입고 골목 안쪽에서 담배 태우는 아이들은 담배를 어디에서 샀을까요. 이 아이들은 학교옷을 벗으면 더는 골목 안쪽에서 담배를 안 태우고 떳떳하게 큰길을 거닐며 태우게 되는데, 열여덟과 열아홉이라는 숫자 사이에는 무엇이 가로놓여 있을까요. 열여덟이라 하여도 ‘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진 아이들은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아이들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담배를 태우는 아이와 담배를 안 태우는 아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군대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병과 담배를 안 태우는 사병은 어찌 다를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담배 태우는 일이 좋지 않다면, 아이들과 어울리는 어른들도 학교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 옳습니다. 나아가, 옳지 않은 담배가 우리 손에 쥐어지지 않도록 나라에서는 담배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학교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고, 학교 바깥에서도 거리낌이 없으며, 나라에서는 담배 팔아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입니다.
 





 (2) 저잣거리와 헌책방과 사람


 아기를 안고 저잣거리 마실을 할 때면, 우리가 물건을 한 번도 안 산 집 할매도 아는 척을 하면서 “아이고, 아기가 벌써 그렇게 컸어요? 이뻐라.” 하면서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면서 들여다보십니다. 우리한테는 살 물건이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되었지만, 늘 그 자리에서 수십 해 세월을 보낸 할매한테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라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고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마주치는 가운데 시나브로 이웃처럼 느끼게 되었구나 싶습니다. 저잣거리 끝에 있는 구멍가게 할매와 할배는 손뼉까지 치면서 “어머 얘 좀 봐.” 하면서 좋아하십니다.

 엊저녁, 옆지기가 성가대 연습을 하러 성당에 갔는데, 집에서 홀로 아기를 보다가 아무래도 엄마젖을 자꾸 찾기에 아기를 포대기에 폭 싸서 슬쩍슬쩍 골목마실 조금 하다가는 성당으로 찾아가 엄마젖을 물렸습니다. 성가대 봉사를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아줌마 아저씨 또는 ‘이제 막 할머니 소리를 듣는’ 분들입니다. 당신들은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리며 아빠한테 안긴 아기를 보고 눈웃음을 치거나 젖을 무는 아기를 뿌듯해 하는 눈빛을 보냅니다.


..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  (64∼65쪽)


 때때로 저한테 ‘무슨 책 있어요?’ 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거는 분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한 번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마치 ‘헌책방 장사를 하는 듯’ 깔아 놓고 말문을 엽니다. 그러나 저는 헌책방 나들이를 즐겨다니면서 헌책방 사진을 찍고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 옮겨 나누는 일을 할 뿐입니다. 지금 하는 일은 동네에서 도서관을 꾸리고요. 오늘도 한참 바쁘게 일하는데 ‘엘피판 있어요?’ 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래, “저희는 도서관입니다.” 하고 대꾸하니, ‘그러면 엘피판 살 수 있는 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합니다. 제 전화번호를 아셨다면 ‘사진책 도서관을 하는 사람 일터’로 알게 되었을 텐데, 이런 이름은 들여다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바라는 물건만을 찾’습니다.

 그래도 저는 헌책방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이쯤에서 말을 끝낼 수 있습니다. 헌책방 장사를 하는 분들은 ‘손님 되는 이들이 얼마나 나이가 많고 적은지’ 알 길이 없으나 으레 말을 깝니다. 다소곳하거나 부드러운 말씨로 묻는 사람이 드뭅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그저 책이 좋아 헌책방을 나들이하는 사람은 헌책방 일꾼한테 ‘무슨 책이 있나요?’ 하고 묻지 않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 조용히 책을 살펴보다가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골라서 사고, 마음에 드는 책이 없으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조용히 나갑니다.


.. 이민을 가는 노동자들은 원래 태어난 나라에서 일자리가 없이 실직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나라 그 사회가 그들의 양육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번경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 지금까지 집계된 바로는, 한 이민노동자들의 양육, 그가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유지하는 데 그의 조국의 국민경제가 부담하는 액수가 약 2천 파운드에 이른다. 한 명 한 명의 이민이 도착할 때마다, 저개발된 경제권에서 개발된 경제권에 대해 그만한 액수를 희사하는 셈이다. 게다가 공업화된 나라가 차지하는 저축액은 또 훨씬 막대하다. 그곳의 좀더 높은 생활 수준으로 계산해 본다면, 그의 조국에서 열여덟 살짜리 노동자를 ‘생산해 내는’ 비용은 1인당 8천 파운드에서 1만6천 파운드는 된다. 이미 다른 곳에서 생산되어 온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은, 도시화된 국가가 매년 8백억 파운드 이상을 저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를 가진 자들에게, 인간들이 주어지는 것이다 ..  (72∼73쪽)


 며칠 앞서 동네 헌책방에 들렀을 때입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밖에서 누군가한테 큰소리를 치면서 한소리를 합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헌책방 문간에 쌓아 놓고 있던 만화책 꾸러미를 슬그머니 들고 튀려다가 붙잡혔답니다. “야, 너희들 그거 왜 가져?” 하고 아주머니가 큰소리를 치니,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따가 가지고 오려고요.” 하고 둘러대더라고, 그래서 “너희들이 책을 가지고 싶으면 너희들이 일해서 번 돈으로 사 가지, 그렇게 남의 노동을 가로채도 돼?” 하면서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한 다음 돌려보냈다더군요.

 헌책방 아주머니는 이 아이들을 경찰서로 넘길 수 있었고, 더 따끔하게 나무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끔한 소리를 들었다 한들, 다른 이 물건을 슬쩍하려던 그 마음이 바로잡힐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아이들은 어찌하다가 다른 이 물건을 슬쩍해서 제 것으로 삼고프도록 마음이 거칠어지고 무너졌을까 모르겠습니다. 참말 돈이 없었는지, 아니면 헌책방 물건은 아무나 그냥 가져가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지.


.. 1973년 초에 네 명의 스페인 출신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반나절 동안 파업을 벌였다. 그들끼리만. 그들은 즉각적으로 해고됐다. 일자리가 없으니 그들은 그 나라에 남아 있을 권리가 없었다. 그들은 강제로 스페인으로 송환되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극렬분자’라는 그들의 기록이 틀림없이 스페인 당국에 통지되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노조들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176쪽)


 곧 새로운 학년을 맞이합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언제부터인가 ‘경제 불황 속 헌책방 찾는 시민들’이니 ‘새책 한 권 값으로 두어 권 살 수 있다’느니, ‘파격 할인으로 불황 넘는다’느니 ‘불황 속 이색 호황’이라느니 하는 판에 박은 기사가 드문드문 나옵니다. 이런 기사에서는 한결같이 헌책방 헌책 하나를 ‘싼 물건’으로만 여깁니다. ‘마음밭을 살찌우는 숨어 있는 책’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책방이 왜 생겨나게 되었고, 헌책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고, 헌책방 일꾼은 어떤 책을 캐내어 갖추는지를 곰곰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여느 때에 헌책방을 찾아가 보지 못한 탓이라고 느낍니다. 여느 때에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면 해마다 판에 박은 기사를 쓰는 일은 없을 테고, 사람들이 헌책방에서 어떤 맛과 멋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못 보는 일은 없을 테지요.

 이와 똑같이, 신문사 기자들이니 방송사 피디들은 여느 때에 도서관 나들이를 못합니다. 안 한다고 해야 할까요. 일에 쫓기고 너무 바쁘다고들 하니까. 이리하여 우리 나라 도서관 형편이 어떠하고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손질하며 고쳐나가야 하는가를 다루지 못합니다.

 좀더 살피면, 헌책방과 도서관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세상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삶터 이야기를 깊이있게 되씹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와 겨레에 닥친 이야기를 한결 널리 꿰뚫어내지 못합니다. 모두모두 여느 때에 온몸으로 껴안지 않기 때문이며, 여느 자리에서 온마음으로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녀평등 문제라든지, 군대폭력 문제라든지, 막개발 문제라든지, 서민들 일자리 문제라든지, 이주노동자 문제라든지, 국가보안법 문제라든지, 또 다른 어떤 문제라든지, 뻥뻥 크게 터져야만 가까스로 눈길을 보냅니다. 뻥뻥 크게 터지지 않으면 눈길을 두지 못합니다. 뻥뻥 크게 터졌더라도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눈길을 거두어들여, 일이 제대로 풀리건 풀리지 않건 아랑곳하지 않고 맙니다.
 





 (3) 《제7의 인간》과 ‘없는 사람’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는 이름이 자그맣게 붙은 사진이야기 《제7의 인간》을 세 번째 읽습니다. 1991년에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소개된 이 책은 2004년에 오랜만에 다시 빛을 보았습니다.

 존 버거가 글을 쓰고 장 모르가 사진을 찍은 《제7의 인간》은 1970년대 첫머리 유럽 이야기이기에,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서른 해도 훌쩍 넘은 옛날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삶터를 돌아보니, 숫자와 나라이름과 사람이름만 고치면 꼭 우리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터키와 스페인과 그리스와 포르투갈과 ‘유럽에서 가난하다고 하는 나라’에서 ‘유럽에서 잘산다고 하는 나라’인 스위스와 프랑스와 독일과 스웨덴 들로 ‘몸팔러 가는’ 이야기가 담긴 《제7의 인간》인데, 2009년 우리 나라에는 몽골이며 티벳이며 중국조선족이며 필리핀이며 우즈베키스탄이며 버마며 네팔이며 스리랑카며 터키며 인도며 …… 수많은 나라에서 ‘몸팔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통계가 잡히지 않으나 적어도 30만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한국땅에 있다고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이 마을을 평생 동안 알고 있었다. 떠나는 순간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강도는 거의 그의 의지력만큼이나 강력하다. 마을을 떠남으로써, 그는 스스로 그런 느낌을 자초한 것이다.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의 혼란은 많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삼촌은 살아 계실까? 작별을 고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일이다. 그가 승리해서 돌아올지 패배해서 돌아올지 누가 알 것인가? 도시가 베풀어 주는 것은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지,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건 아니다 ..  (34∼35쪽)


 우리 나라에도 제법 ‘이주노동자’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와 견주면 거의 안 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와 대면 하나도 안 들린다고 할 수 있어요.

 모두 똑같은 노동자일 뿐인데, 우리 스스로 ‘정규직-비정규직-이주’ 이렇게 갈라 놓습니다. ‘이주’노동자라 하여도 나라에 따라 가릅니다. 지금은 ‘정규’일는지 몰라도 앞으로 어느 날 ‘비정규직’으로 바뀌거나 자기 스스로 ‘이주’노동자가 되어 나라밖으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데에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살피면, 노동자가 제 대접을 받도록 하지 않는 얄딱구리한 사업주한테 말썽거리가 있습니다만, 노동자가 빼앗긴 권리를 되찾도록 애쓰지 않는 안타까운 나라한테 골칫거리가 있습니다만, 사업주와 정부를 탓하기 앞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지 못합니다. 곁에 있는 이웃이 아파할 때 손을 내밀지 못하고, 살가운 동무가 눈물을 흘릴 때 고개를 돌립니다.


.. 이민노동자들에게 있는 유일한 현실은 오직 일하는 것과 그에 뒤따르는 피로뿐이다 ..  (185쪽)


 책으로만 읽는 《제7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책이 아닌 ‘내 이야기’로 받아들일 《제7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입니다. 받아들이는 그릇 나름입니다. 받아들여 움직이려는 우리 몸뚱이 나름입니다. (4342.2.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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