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92 ― 자유롭지 못한 넋이라면 죽은 목숨
 : 싼마오, 《흐느끼는 낙타》


- 책이름 : 흐느끼는 낙타
- 글 : 싼마오
- 옮긴이 : 조은
- 펴낸곳 : 막내집게 (2009.2.11.)
- 책값 : 9800원



 (1)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세 식구가 옮겨갈 살림집을 알아보려고 수봉공원 둘레로 찾아갑니다. 아기는 아빠가 등에 업습니다. 옆지기는 나날이 몸이 안 좋아지고 있어, 아기를 안거나 업고 걸을 수 없습니다. 배다리 한켠에 있는 우리 살림집에서 나와 도원역을 지나 숭의동 109번지 골목을 가로질러 제물포역에 닿습니다. 역 앞으로 나오니 1000원짜리 호박엿을 파는 할머니가 우리를 부릅니다. 그러나 아기 몸에 아토피가 나는 가운데 젖을 먹여야 하는 옆지기는 길에서 파는 엿을 먹을 수 없습니다. 못 들은 척 지나가면서 미안합니다.

 저 멀리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옵니다. 아기 업고 뛰기에는 벅차기에 건널목에 미처 안 닿았음에도 찻길을 건넙니다. 우리처럼 건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아 그 김에 섞입니다. 옆지기는 그리 건너지 말자고 했지만, 차 싱싱 다니는 길에서 신호 기다리며 서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 업고 서 있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아기 무게가 조금씩 느껴집니다.


.. “사막의 어떤 게 당신을 그렇게 사로잡았어요?” 샤이다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어떤 게 나를 사로잡았냐고요? 높은 하늘과 넓은 땅,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 …… 고적한 생활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요. 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사랑도 느끼고 원망도 느끼고요. 뒤죽박죽 헷갈리네요. 에이! 나도 분명히 모르겠어요.” “만약 이 땅이 당신 고향이라면 어쩌겠어요?” “아마 당신처럼 간호를 배우지 않았을까요. 사실 …… 내 고향이 아닌 곳과 고향인 곳을 어떻게 가르겠어요?” ..  (108쪽)


 천천히 천천히 거닐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살아야 좋을지를 이야기 나눕니다. 가장 좋은 집이라면 도시집이 아닌 시골집인데, 우리가 도서관까지 함께 옮겨서 꾸릴 만한 살림집이 있을 시골이 어디일까는 쉽게 종잡지 못합니다. 강원도로, 지리산으로, 제주로, 익산으로, 음성으로, …… 아는 이들 있는 곳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지만, 아는 사람만 보고 옮길 살림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만 권에 이르는 책들을 즐거이 나눌 마을사람이 있는 터와 공장이나 고속도로 따위가 깃들지 않을 조용한 시골마을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저런 일과 책을 떠나,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생각한다면. 아이도 아이다운 삶과 생각을 지키며 어버이도 어버이다운 삶과 생각을 지키자면. 옳게 먹고 옳게 일하고 옳게 놀고 옳게 생각하고 옳게 이야기하며 옳게 어울리고 옳게 죽어 흙으로 돌아갈 나날을 헤아리면.


.. 우리는 결혼하면서 서로 동료가 되어 주기를 바랐을 뿐, 피차 무리한 요구나 집착은 없었다. 내가 호세를 선택한 것은 그에게 의지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평생 독신으로 살까 하는 걱정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건 나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호세가 나를 원한 것도 밥하고 빨래해 주는 여자가 필요해서는 아니었고, 미인 아내를 원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바깥의 세탁소와 음식점은 값싸고 서비스도 좋았고, 지지배배 재잘대는 여자들은 집에 있는 이 사람보다 상냥했다. 그런 데 쓰는 돈을 다 합쳐도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비용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 ..  (215쪽)


 한 시간 남짓 아기를 업고 걸으니 아기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아기를 업은 등판과 이마로 땀이 살짝 돋고 흐릅니다. 수봉공원 기슭 숭의동 8번지 골목집 사이를 걷습니다. 비어 있는 집이 많이 보이고, 동네는 무척 고즈넉합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우리가 깃들 만한 데가 있으려나. 인천 같은 도시에서도 가까이 산이 있기는 하다만, 이곳은 우리 식구가 머물 만한 집자리가 되어 줄 수 있으려나.

 인천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쉼터에서 잠깐 숨을 돌립니다. 옆지기는 걷기도 벅차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택시를 타야겠습니다. 잠든 아기까지 세 식구는 말없이 해지는 시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온통 시멘트로 올린 집과 아파트만 빼곡한 시내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꽃그릇이 있고, 손바닥 만한 땅뙈기에 심어 가꾸는 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인천 도시행정이 마련한 조각숲이나 조각공원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도시란 데가 워낙 나무며 흙이며 풀이며 꽃이며 없는 데라고 하지만. 산이며 냇물이며 바다며 파란하늘이며 볼 수 없는 곳이라 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쓸쓸합니다. 더없이 서늘합니다. 그지없이 팍팍합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푸나무 없이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없다’고 배우는데. ‘비료나 풀약에 더럽혀지지 않은 흙이 없으면 사람이 먹고살 수 없다’고 배우는데.

 아니, 이제는 이렇게 안 배우는지 모르지요. 푸나무 없이도 공기청정기를 쓰고, 튼튼한 흙 없이도 식품공장에서 먹을거리를 쏟아내니까요. 돈을 많이 벌면 걱정없이 맑은 물이며 시원하거나 따뜻한 바람이며 배부른 밥이나 빠른 차나 큰 집이나 넉넉하게 품에 안을 수 있다고 배우는지 모르지요.


.. 창녀, 내 눈에 비친 이 여인에겐 직업도 도덕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감각하고 습관적인 일이었다. “사실 여기서 기숙사를 청소하는 사람도 매월 2만 페세타는 벌 수 있어요.” 나는 부자연스럽게 한마디 했다. “2만 페세타? 청소하고 침대 정리하고 빨래하고, 죽도록 고생하고 고작 2만 세페타를 버는 일을 누가 해요!” 그녀는 깔보듯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야말로 고생스러워 보이는데요.” 나는 느릿느릿 말했다. “하하하!” ..  (30쪽)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문을 연 부동산집은 없습니다. 유리창에 붙인 쪽글을 읽습니다. 보증금 100에 달삯 10 받는 집이 없을까 생각하며 눈알을 굴립니다. 200에 15나 100에 20짜리 집은 몇 군데 보입니다.

 둘레에서 우리보고 ‘나라에서 해 준다는 전세금 대출 지원’을 받으라며 따뜻한 말씨로 알려주곤 합니다. ‘6000을 받아 다달이 25만 원씩 이자로 내고 여섯 해 뒤에 갚으면 되고, 못 갚아도 다시 이으면 된다’면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이 돈으로 아파트에 들어가서 지내야 하지 않느냐고들 합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며 ‘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립니다만, 참말 아이를 생각하는 길이라면 물과 바람과 흙이 맑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나라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걱정한다면 ‘전세금 대출 이자’를 받으려 하기보다, 전세금와 이자돈 없이도 걱정과 근심을 털어내고 지낼 만한 대책을 내놓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보다는,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개발바람에 속썩이지 않는 가운데 맑은 숨과 물을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쇠고기를 먹을 자유’를 생각해 주시면서 나라밖에서 이러한 고기를 들여와 주셔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맑고 튼튼한 농사로 일군 좋은 푸성귀와 곡식을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먼저 생각해 주셔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전에는 다들 휘파람 말을 할 줄 알아서 멀리서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외지의 경찰이 들어와서 자기네가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휘파람 말을 못 쓰게 했어요.” “당신들이 휘파람 말로 그들을 속여 넘겼군요.” 내 말에 그들은 깔깔거리며 말했다. “당연하죠. 경찰이 범인을 잡으러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이 인적 드문 골짜기에 숨어서 계속 휘파람 말로 경찰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준 거죠. 그러니 어떻게 범인을 잡겠어요.” 가게 주인이 말했다. “젊은이들이 휘파람 말을 배우려 들지 않아서 세계에서 유일한 휘파람 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요. 오직 우리 섬에만 있는 말인데. 이렇게 섬세한 휘파람 말이 사라지다니 정말 안타깝죠!” ..  (169쪽)


 택시를 타고 우리 집 있는 동네로 돌아옵니다. 집 가까이에서 내립니다. 잠에서 깬 아기를 품에 안고 걷는데, 옆지기가 “엄마나 할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고 싶다”고 혼자말처럼 말합니다. 열흘쯤 푸성귀를 빻아 우린 물하고 김하고 능금 몇 쪽에다가 콩밥 몇 숟갈만 먹고 지낸 터라, 궁금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겠지요. 적게 먹으니 속은 홀가분하다는데, 아기한테 젖을 물려야 하고 날마다 씨름을 해야 하니 고달프기도 할 테고요.

 집에 거의 다 와서 발걸음을 돌립니다. 동네 밥집으로 갑니다. 집밥이 생각날 때면 가끔 들르는 곳입니다. 밥 한 상과 오징어데침을 시키고, 막걸리 반 주전자도 시킵니다. 밥집 할머니가 막걸리 안주로 먼저 내어준 김치 한 접시를 먹는 옆지기는 아주 맛있다며, 이런 집김치를 먹고 싶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밥집에서 ‘백반’을 먹어 볼 일이 거의 없는 옆지기는, 밥집 할머니가 차려 주는 반찬이 아주 많다면서,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느냐 묻습니다. 그러나 백반은 으레 이처럼 차려주는걸요. 아기는 잠깐 엄마젖을 물다가 그만두고, 밥집에 있는 다른 손님과 할매 할배한테 눈웃음을 칩니다. 엄마와 아빠는 반찬그릇을 모두 깨끗하게 비웁니다. 속이 든든해진 옆지기는 시원한 게 당긴다고 합니다. 얼음과자 사러 구멍가게로 찾아갑니다. 저는 제 몫으로 보리술 한 병을 삽니다.

 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기 양말 한 짝이 없습니다. 오는 길에 흘린 듯합니다. 구멍가게까지 오던 길을 거스릅니다. 동사무소 앞 골목 네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양말을 줍고 아기 발 한쪽을 담요로 더 똘똘 감싸며 걷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옆지기는 우리가 도시에서 더 살려면 다른 동네로 가서 이웃 하나 없는 데에 있기보다 지금 이 동네에서 찾아야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낫다고 느낍니다. 얼른 새 살림집을 찾아 옮기고, 옆지기 다른 피붙이들이 살고 있는 용현동이며 포천이며 거창이며 나들이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싼마오, 이리 와 봐.” 호세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꼬치를 내려놓고 따라갔다. “저 아이는 노예야.” 호세는 아이가 듣지 못하게 나지막이 말했다. 나느 깜짝 놀라 입을 가리고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아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노예라니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아리에게 차갑게 물었다. “그들은 대대손손 노예예요.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흑인의 얼굴에 씌어 있었나요? 나는 노예라고?” 나는 아리의 갈색 얼굴을 들여다보며 추궁했다. “당연히 아니죠. 잡아 온 거예요. 사막에 사는 흑인을 보면 잡아다 때려서 기절시키고 도망치지 못하게 한 달 간 밧줄로 묶어 놔요. 온 식구를 잡아 오면 더더욱 도망칠 수가 없죠. 이렇게 대대로 내려오면서 재산이 된 거예요. 지금은 사고팔 수도 있어요.” 내 불편한 기색을 보고 아리는 곧바로 덧붙였다. “우리는 노예를 학대하지 않아요. 저 아이는 저녁에 부모가 있는 천막으로 돌아간다고요, 마을 밖에 있는. 아주 행복한 거죠. 날마다 집에 가는데.” ..  (37∼38쪽)


 아기 얼굴을 씻기고 풀물을 바릅니다. 젖을 물려 재웁니다. 그러고 우리 두 식구는 인터넷을 켜고 ‘미디엄’이라는 미국 연속극 5부를 챙겨 봅니다. 우리 말로 옮겨진 5부 다섯째를 보니, ‘피 안 섞인’ 손녀 때문에 ‘피 섞인’ 딸을 죽이고 마는 할머니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 섞인 딸은 어떤 까닭에서인지 간호사로 일하던 때 한 번 사람을 죽이고(자기가 혼인하려는 남자 아내), 나중에는 그 집 어린 딸아이도 얼음과자에 약을 타서 차츰차츰 말려죽이려 합니다. 할머니는 이를 알아채고는 딸아이를 불러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외려 당신이 딸아이를 죽이고 땅속에 파묻는데, 주인공은 이를 알게 되지만 끝내 할머니를 고발하지 못합니다. 주인공 또한 세 딸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슬픔과 아픔이 더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도 해서가 아니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셈틀을 끄고 잠든 아기를 꽁꽁 싸매고 함께 자리에 누워 잠이 들면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연속극 이야기라고 하지만, 왜 그렇게들 제 배속을 챙기면서 다른 이 삶을 밟거나 괴롭혀야 하는지, 왜 다른 이 삶을 끝장내면서 제 삶만 이으려고 하는지. 함께 살아갈 길은 그예 찾을 수 없는지, 서로 웃고 함께 울면서 어깨동무할 삶은 찾을 길이 없는지.


.. “외투를 입어요! 당신들에게 국립공원을 구경시켜 줘야지. 나는 수도 없이 다녀 봤다오.” 과연 높은 산 험준한 고개 속에 기개가 넘치고 비범한 소나무숲이 펼쳐졌다. 운전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다. 차에 탄 시골 사람들은 아무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 역시 자기네가 사는 아름다운 땅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더없이 평온하고 정겨운 광경이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했다. 천만 년 전에도 천만 년 후에도, 이 들판은 이 모습 그대로 변치 않을 것만 같았다 ..  (173∼174쪽)


 길지 않은 밤, 아기가 칭얼댈 때 틈틈이 깨는 가운데 꿈을 꿉니다. 아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꿈인데, 아침에 일어나면서 영 개운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둘레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이 하나도 달갑지 않을 뿐더러, 달가울 만한 목소리나 손길을 느끼기 어려운 탓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는 해도 아기가 좀더 자라서 어느 만큼 자기 어릴 때를 떠올릴 수 있을 무렵까지는 이곳 인천이라는 데에서 터잡으면서 살아내고 싶은데, 얼마나 살아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도시 아닌 시골에서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고 있으나, 도시라는 데에서도 지금 우리 동네 같은 골목길 같은 데는, 여느 도시 삶자락과는 사뭇 다름을 느끼게 한 다음 도시를 떠나고 싶은데, 아기가 살짝 철이 들 무렵까지 얼마나 인천 골목길이 골목길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낮은자리도 아닌 밑바닥자리에서 복닥복닥 치고받고 하여도 살가움을 나누고 있는 이 골목집 사람들 삶을, 모자라다기보다 아예 없는 가운데에도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나누는 사랑이 있는 이 골목동네 사람들 삶터를, 이 나라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이 끝내 모르게 되더라도 우리 아이가 이런 느낌을 살갗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어느 만큼 견디며 발붙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2)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가 살아온 이야기, 《흐느끼는 낙타》


 《사하라 이야기》에 이은 싼마오 님 두 번째 산문모음 《흐느끼는 낙타》를 읽습니다. 《사하라 이야기》를 읽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한 넋이라면 죽은 목숨이라고 여기고 있구나 싶은 싼마오 님 이야기책은 중국에서 스물여섯 권짜리 전집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몇 권쯤 더 옮겨질 수 있을까요.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언론매체에서는 하나도 안 다루어 주지만, 책 좋아하는 이들은 입소문으로 퍼뜨리고 나누면서 새로운 싼마오 님 문학이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이와 같은 흐름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가게 될까요.


.. 그는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음료수를 조금 마시고 자기가 가져온 마른 빵을 먹었을 뿐, 다른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벙어리 노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일어나서 손짓을 했다. “화내지 말아요. 집에 가져가서 아내랑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어서 안 먹었어요.” … 그는 내가 봉투에 음식을 담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보고 나는 울컥했다 … 사소한 음식을 얻고도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벙어리 노예는 자신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틀림없었다. 분명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 벙어리 노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기의 피부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그는 또 미소를 지으며 자기의 가슴을 가리켰고, 새를 가리키며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자유로워요.” ..  (46, 50쪽)


 《사하라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싼마오 님이 남달리 사막을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산문모음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며, 싼마오 님은 사막뿐 아니라 섬도 사랑하네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도시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꺼려하지 않으나, 복닥이는 사람물결은 반가워하지 않을 뿐더러 멀리멀리 떨어지고자 합니다. 전기제품을 쓰고 자동차를 몰지만 이런 물건을 쓰기도 할 뿐이지, 이런 물건에 매이지 않습니다. 아무런 물건 없이 얼마든지 살림을 꾸리고 어떠한 물질을 두 손에서 놓더라도 홀가분합니다.

 이웃사람은 모두 꺼리고 놀리고 들볶는 사막 노예한테 처음으로 말을 걸며 동무로 사귀는 싼마오요, 싼마오네 남편 호세입니다. 노예 몸을 자유롭지 못하고 얽어맨 이들은 한껏 자유를 누리는 듯하지만 외려 마음은 갇혀 있을 뿐이고, 몸이 갇혀 있어도 마음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노예한테 삶을 배우고 슬기를 듣는 싼마오요, 싼마오네 남편 호세입니다. 이 둘은 그 무엇으로도 서로를 옭매지 않는 가운데, 둘레 다른 사람을 옭매고픈 마음이 없는 한편, 사회나 나라가 사람을 옭매는 일을 거스릅니다.


.. 스페인 정부가 이곳(그란카나리아 섬)을 자유항으로 개방한 이후로 가전제품, 사진기, 시계 등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거리거리 가득 늘어섰다. 난잡한 도시는 꼭 홍콩 같은 분위기였고, 벌떼처럼 거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로 복잡하고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언젠가 대만 어업계의 대가 추 선생에게 그란카나리아 섬의 인상이 어떤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어선 일로 해마다 몇 번씩 이곳을 다녀갔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개성이 없어요. 아주 조잡하고.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  (183쪽)


 아무래도 싼마오며 호세며, 그리고 또다른 숱한 ‘싼마오와 호세’ 들은 저마다 다 다른 삶임을 깨닫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다르고 네가 다른 삶임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름을 아니까 껴안을 줄 압니다. 다름을 알기에 사랑할 줄 압니다. 다름을 알고 있으므로 어깨동무할 줄 압니다. 다름을 알려 하니 기꺼이 손길과 눈길을 내밉니다.

 다름을 모를 때 어깨동무를 못합니다. 다름을 모르는 가운데 사랑이란 없습니다. 다름을 모르면서 믿을 수 없고, 나눌 수 없으며, 함께할 수 없습니다. 다름을 모르니 막개발이 이루어지고, 다름을 짓밟으니 독재자가 일어서며, 다름을 내리누르니 군사쿠테타가 일어납니다.

 다름을 깨닫는 어른이라면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을 선물하지 않습니다. 다름을 깨달은 어른이라면 돈바라기 정치나 경제를 펼치지 않습니다. 다름을 깨달으려는 어른이라면 지식으로 권력을 세우지 않습니다.

 산 사람이 되고자 하니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산 넋이 되고자 하니 서로를 꾸밈없이 맞아들입니다. 죽은 사람이 되었기에 서로 똑같이 되려는 겨루기를 하면서 1등으로 올라설 꿈을 키웁니다. 죽은 넋이 되었기에 서로서로 겉치레와 겉꾸밈으로 뭔가 돋보이거나 남달리 보이려고 애쓰고 맙니다.


.. 낯선 곳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과 완전히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 것은 무례한 짓 같아서 사진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  (62쪽)


 자유를 사랑했기에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입니다. 평화를 사랑했기에 섬을 사랑한 싼마오입니다. 평등을 사랑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찾고 만나고 어울리며 스스로도 아름다워지고자 한 싼마오입니다. (4342.3.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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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09-03-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끔와서 읽고 갑니다
님 글 보면서 우리가족이 왠지 같이 생각이 들어서 흐흣
아무튼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숲노래 2009-03-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고맙습니다.
곰돌이 님 식구들
언제나 즐거우면서 씩씩하고 튼튼하시길 빌어 봅니다~~~
 
민들레솜털 1
오자와 마리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삶이 바로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바로 만화
 [살가운 만화 43] 오자와 마리, 《민들레 솜털》



- 책이름 : 민들레 솜털 (1권∼ )
- 글ㆍ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hiyoko
- 펴낸곳 : 북박스 (2008.10.24.∼ )
- 책값 : 한 권에 3500원씩


 아귀힘이 세어지며 한손으로 책을 잡아채어 입으로 가져가는 아기는, 머잖아 책은 ‘먹을거리’가 아닌 ‘읽을거리’임을 알아채리라 믿습니다. 다만, 아직은 손수건이며 옷이며 연필이며 밥그릇이며 숟가락이며 오로지 입으로만 가져갑니다. 저도 살아 보겠노라 발버둥을 치는 셈인지, 몸부림을 치는 셈인지 모릅니다만, 아기니까, 아기라서 그렇다고 느낍니다.

 아기를 안고 아기랑 함께 보다가 지루해져서 바닥에 팽개쳐 둔 만화책을 아기가 꼬물꼬물 기어가다가는 덥석 집어들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으로 덥석 뭅니다. 이빨도 없는 주제에 우걱우걱 씹기를 좋아합니다. 그 만화책은 ‘아빠며 엄마며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기 침이 범벅이 되어도 내버려 둡니다. 책한테 더없이 미안한 노릇이지만, 아기가 즐겁게 놀이감으로 삼으니, 이런 대로 보람이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지난 2월 18일 서울 나들이를 하며 들른 만화책방에서 《민들레 솜털》이라는 새로 나온 만화 1권과 2권을 장만했습니다. 이 만화책은 저로서는 재미있게 여기는 터라 아기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으면서 옆지기한테도 읽어 보라 건넵니다. 옆지기는 그다지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면서, 그저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빠랑 엄마랑 좋아하는 만화가 다를 테지’ 하면서 서운한 마음을 달랩니다. 그냥 그저 그럴 뿐인가, 너무 뻔하게 흐르는 줄거리인가, 그림결이 썩 내키지 않은가 …… 여러모로 헤아려 보면서, ‘어쩌면 나나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좋아할는지 모르겠구나’ 싶은 한편, 《민들레 솜털》을 그린 분이 좀더 발돋움할 앞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어떤 문화며 예술이며 공연이며 마찬가지이지만,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란 없습니다. 한 가지 틀에 매여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예 똑같이 흘러가는 글과 그림과 사진도 많으나, 나날이 조금씩 새로워지면서 거듭나는 글과 그림과 사진도 많아요. 만화 《민들레 솜털》을 그린 오자와 마리 님 책을 여러 해에 걸쳐 여러 작품을 보아 오면서, 이분은 이분 나름대로 남다른 그림결을 잘 간직하는 가운데, 이분 아니면 펼쳐 보일 수 없는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낸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크게 돋보이거나 널리 도드라지지는 않습니다만, 언제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꾸준함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려 하고 있어요.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는, 아주 수수한 동네사람만이 ‘오자와 마리’ 님 만화에 나오는 이들이고, 이들은 돈이 많거나 이름이 높거나 무언가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골목길을 거닐면서 으레 스쳐 지나가는 동네사람이 만화에 나오고, 역사며 문학이며 학문이며 어느 자리에서 제 이름 석 자를 돋을새김할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웃사람이 만화에 나옵니다. 어쩌면, 로또복권 같은 데에 뽑히지도 않으나 이런 복권을 아예 사지도 않는 털털한 사람들이 만화에 나온다고 할까요. 앞에 있지 않으나 뒤에 있지도 않고, 왼쪽에 있지 않으나 오른쪽에 있지도 않은 사람, 얼핏 보면 냄새도 맛도 빛깔도 없으리라 여길 수 있습니다만, 이러한 모습과 매무새야말로 고즈넉한 냄새요 맛이요 빛깔이라 할 만한 사람이 만화에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 그때 옛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학교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민들레를 따서 입원 중이던 엄마 병문안 갔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엄마가 ‘언젠가 토마가 어른이 되면 저 민들레 솜털처럼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가겠지’라고 했던 말이. “난 안 갈 거야. 계속 엄마 곁에 있을 거니까.” “가도 돼.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토마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꽃을 피우는 걸 엄마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토마가 어디 있든, 엄마는 언제나 토마를 응원할 거야. 그걸 잊지 마.” ..  (2권 14∼15쪽)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완전판 8권으로 마무리)을 한 해에 걸쳐 보는 동안(1권부터 8권까지 모두 나오는 데에 꼭 한 해가 걸려서), 처음에는 ‘아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음악이라며, 그 음악을 언제 들려주려고 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권 6권 7권째 넘기면서, 그리고 마지막 8권을 덮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란, ‘세상에서 가장 흔한’ 노래이며, ‘세상에서 가장 손쉽게’ 듣는 노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아름다움’이 깃든 노래라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임을, 믿음은 믿음일 뿐임을, 나눔은 나눔일 뿐임을 이야기하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할까요. 겉꾸밈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우리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래요 춤이요 글이요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할까요. 멀디먼 나라에서 찾을 즐거움이 아닌, 바로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즐거움을 찾자고 손을 내미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짝사랑해도 사랑이요, 힘을 내어 털어놓아도 사랑이며, 털어놓았는데 그이가 손사래를 쳐도 사랑입니다.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든, 돈 못 버는 일자리를 얻든, 제 땀을 기꺼이 바칠 만한 일자리를 얻으면 그때부터 누구나 제 삶자락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습니다. 바깥밥을 사먹어야만 맛이 아니며 선물이 아니며 잔치밥이 아닙니다. 집에서 된장찌개나 나물무침으로 차린 단출한 밥상으로도 얼마든지 맛이요 선물이요 잔치밥입니다. 백만 원짜리 옷만 따뜻하지 않고, 손뜨개 옷 한 벌도 따뜻합니다. 몇 만 원짜리 십자가를 벽에 걸어 두어야 하느님을 모실 수 있지 않고, 나무토막 하나를 서툴게 깎고 다듬어 벽에 걸어 두어도 하느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삶이 바로 노래이고 노래가 바로 만화임을, 삶이 바로 기쁨이요 기쁨이 바로 만화임을, 삶이 바로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바로 만화임을, 부드러운 붓끝으로 보여주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책에도 하나둘 손을 뻗치게 됩니다.

 《니코니코 일기》라든지 《퐁퐁》이라든지,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민들레 솜털》이라든지.


.. “하루키, 밥 안 먹으면 천국에 엄마가 슬퍼한다? 엄마는 하루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길 그 누구보다 기다렸단 말이야.” “정말?” “그럼! 아, 맞다 그게 어딨더라? 아, 여기 있다! 이것 봐, 하루키. 이건 하루키가 꼭 지킬 걸 엄마가 써 놓은 노트야. 지금부터 형이 엄마 대신 읽어 줄 테니, 엄마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밥은 남기지 마세요♡ 엄마는 하루키가, 음, 하루키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답니다.’라는데? 알았어, 하루키?” “응! 알았어! 잘 먹겠슘다!” …… “형아.” “응?” “오늘도 읽어 줄 거야? 엄마 노트?” “그래. 음, 에헴, ‘밤늦게 자지 말 것.’” “그게 다야?” “음, ‘일본 속담에 잘 자는 아이는 쑥쑥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동안 성장호르몬이 활발히 움직여서 뼈와 근육이……’라는데?” “……(쌔근)” ..  (1권 59∼63쪽)


 방이 갑자기 조용해져서 아기 쪽을 바라봅니다. 딸랑이를 손에 쥐고 입으로 씹으면서 꿍얼꿍얼대던 아기가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서.

 아기는 노란 베개에 새겨진 곰돌이한테 잠깐 꽂혀 있다가 바닥에 굴러다디던 종이조각 하나를 씹고 있습니다. 그런데 낯빛이 좀 얄딱구리합니다. 기저귀를 만져 보니 물컹. 똥을 누었구나. 똥을 누고 조용해진 셈이로군.

 물을 덥혀 엉덩이와 잠지를 닦아 주고 새 기저귀싸개와 기저귀를 댑니다. 이제 또 한 번 기저귀 빨래를 해야겠군요. 아직 하늘에 해가 걸려 있으니, 저 햇볕에 기저귀싸개와 기저귀가 보송보송 마를 수 있도록. 아침부터 바람이 무척 찬데, 너무 늦지 않게 옆지기랑 아기랑 다 함께 바깥마실도 잠깐 다녀와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한테 아름다울 노래를 찾아서. (4342.3.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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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 -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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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0 ― 아이를 사랑하면 돈벌 생각을 말자
 : 마저리 쇼스탁, 《니사》


- 책이름 : 니사
- 이야기 담기ㆍ글 : 마저리 쇼스탁
- 옮긴이 : 유나영
- 펴낸곳 : 삼인 (2008.9.19.)
- 책값 : 24000원



 (1) 아기와 함께 지나온 여섯 달


 어제 낮 생협 나들이를 마친 다음 동네를 한 바퀴 빙 돌고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파김치가 됩니다. 볕이 좋고 바람이 싱그러워 좀 오래 아기를 안고 걸었더니, 아기는 집에 닿기 앞서부터 새근새근 잠들고, 애 아빠는 아기 옆에 드러누워 콜콜 곯아떨어집니다. 저녁에 일어나 밥을 해서 먹은 다음 아기와 놀자니 다시 졸음이 밀려들면서 어느 결에 아기와 함께 잠듭니다. 옆지기는 생채식 하며 몸에 깃든 찌꺼기를 털어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찾아본다며 늦도록 인터넷을 살핍니다.

 애 아빠는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깹니다. 엊저녁 못 다 쓴 글을 마저 쓰려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아기는 얼굴이 간지러운지 잠든 가운데에도 한손으로 북북 긁으려 합니다. 부시럭 소리가 나서 휙 돌아보며 후다닥 달려가 아기 손을 붙들고 아빠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탁탁 두들겨 줍니다. 몇 번 이렇게 되풀이하여도 아기가 깊이 잠들지 않아, 물을 덥히고 나무숯물을 타서 아기 얼굴과 머리를 살며시 닦아 주고 풀물을 발라 줍니다. 그제야 비로소 조용해지는데, 그렇게 하고도 다시 부시럭거려서 그예 셈틀을 끄고 아기 옆에 누워 한참 토닥입니다. 아기 돌보랴 밤잠을 못 잔 옆지기를 깨우고 싶지 않아 내도록 토닥이고 있으나, 아기는 엄마젖을 먹어야겠는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엄마를 깨우고, 아기한테 젖먹이느라 허리가 아픈 옆지기는 겨우 일어나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젖을 물고 잠든 아기를 보며 겨우 마음이 놓여 다시 일손을 조금 붙잡은 다음, 인천에서 서울로 떠나는 첫 전철이 지나고 둘째 셋째 넷째 전철이 지나는 소리를 들을 무렵 비로소 잠자리에 듭니다.


.. 태어나서 평균 44개월 동안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온통 독점하다시피 하고, 첫 36개월 동안은 엄마젖이 주는 영양과 편안함을 제한 없이 마음껏 누린다. 서너 살쯤 되면 이전처럼 엄마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된다. 아이는 이제 엄마와 계속 부대끼는 것보다는 또래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뛰노는 일이 더 재밌어진다. 동생이 태어나고 몇 달쯤 지나면 아이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뛰노는 데 정신이 팔려 가족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러다가 결국 동생이 태어나서 받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비로소 스스로 형이나 언니 노릇하는 일을 즐기게 된다 ..  (79쪽)
 





 새벽에 못 자고 일을 한 탓에 아침에 아기가 똥을 누었어도 일어나 치우지 못합니다. 아침똥을 눈 다음 씻겨야 하는데 도무지 몸이 일어나지지 않습니다. 송림동성당과 답동성당에서 열두 시를 알리는 종을 칠 무렵 또 한 번 아기가 똥을 누기에, 이때 비로소 물을 덥혀 냉온욕을 시킵니다. 그런 다음 풀물을 온몸에 바르고 바람에 말립니다. 겨드랑이까지 물기가 다 마른 뒤 웃옷을 두 벌, 바지를 한 벌 입힙니다. 이제 아기는 옆지기한테 맡기고, 저는 씻는방으로 가서 밀린 빨래를 합니다. 밀린 빨래를 하는 김에 제 바지도 한 벌 빱니다. 오늘은 날이 궂어 옥상마당에 빨래를 널어 말리지 못합니다만, 뜨거운 물이 있을 때 빨래를 한 점이라도 더 해내곤 합니다.

 오늘 밀린 기저귀 빨래는 모두 여섯 점. 지난밤에는 여덟 점. 요사이 아기 기저귀 빨래가 무척 줄었습니다. 아기가 몸이 안 좋은가? 하고 걱정을 했는데, 아기들은 크면서 오줌 기저귀가 조금씩 줄어든다고 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빨 때에는 빨래가 끊이지 않아 걱정이고, 갑자기 반으로 뚝 줄어드니 또 줄어서 걱정이고.

 이웃동네에 사는 일흔네 살 아저씨는 ‘아기 때는 많이 아픈 법이니, 너무 걱정 말고 슬기롭게 지나가도록 즐겁게 지내’라고 도움말씀을 건네주었습니다. 어느 아기든 아프면서 크지, 아프지 않고 크는 법이 없다면서, 아픔을 아픔 그대로 받아들여야 아기도 엄마아빠도 튼튼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흔넷임에도 하프마라톤을 뛰는 그 아저씨(할아버지) 말은 당신이 그동안 살아낸 발자국으로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책에 나왔다든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씻는방에서 허리 쑤시도록 빨래를 하며 아저씨 말을 떠올리는데, 아기가 아플 때에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기보다, 우리 삶을 두루 걸쳐 똑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듯, 제 몸을 썩혀 뿌리내리는 씨앗 한 톨이라고 하듯, 가을에 떨어지는 잎이 거름으로 썩어 다시 나무한테 좋은 밥이 되듯, 밀알 하나가 수백 밀알로 다시 태어나듯, 아프고 괴롭고 힘들고 벅차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어내느냐에 따라서 그이 삶자락은 아주 새롭게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 !쿵 아이들은 형제끼리 평균 네 살 정도 터울을 두고 태어난다. 피임을 하지 않는 집단치고는 유난히 긴 터울이다 … 사실 출산 간격은 아이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다음 아기를 너무 빨리 가지면, 새로 태어난 아기와 앞서 태어난―그래서 이미 많은 애정을 쏟아부은― 아기 둘 가운데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매일 대단히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 !쿵족의 식단으로 보통 그 정도 영양을 충당할 수 있지만, 둘이나 되는 아이에게 먹일 정도로 많은 모유를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102∼103쪽)


 여섯 달을 꼭 채울 무렵, 아기는 몇 대목에서 크게 달라집니다. 첫째, 낯가림 없고 방아찧기 좋아하는 이 녀석이 뒤집기와 엎기를 지 마음대로 합니다. 둘째, 잠들 무렵 엄마 젖무덤께에서 드러누워 있던 녀석이 오줌 누고 낑낑대어 깨어나 살필 때 보면 꼭 엄마 아빠 머리께로 기어올라와 있습니다. 셋째, 처음에는 두 손으로도 책을 못 들더니 이제는 한손으로 거뜬히 책을 집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다른 장난감이나 숟가락 따위를 집어들려고 합니다. 넷째, 죽도 곧잘 먹지만 무 조각이나 푸성귀 줄기도 지 깜냥껏 잘근잘근 씹어먹는 시늉을 합니다.

 참말 하루하루 크는 모습이 남다른데, 이렇게 하루하루 크는 모습은 아기뿐 아니라 우리 어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 스스로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고 지난주와 오늘이 같지 않으며 지난달과 오늘이 같지 않습니다. 지난해와 오늘이 다르고 지지난해와 오늘 또한 다릅니다. 이웃과 동무도 매한가지입니다. 어제와 오늘 같은 이웃이 없습니다. 그제와 오늘 같은 동무가 없습니다. 그끄제와 오늘 같은 선후배가 없어요. 좋게든 얄궂게든, 반갑게든 얄밉게든, 모두들 하루하루 달라집니다. 날마다 새 얼굴이요 새 마음이요 새 몸입니다.

 조금씩 배우기도 하고 조금씩 잊기도 합니다. 조금씩 새로 얻기도 하며 조금씩 새로 잃기도 합니다. 조금씩 아름다운 사람으로 새로워지는 이웃과 동무가 있는 한편, 조금씩 돈맛과 이름맛과 힘맛에 길들어 가는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 !쿵 사람들은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위험을 추구하거나 용기를 입증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는다. 위험한 상황을 적극 피하는 일은 비겁하거나 남자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중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어린 소년들이 공포를 다스리고 어른답게 행동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에 대해 !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잖아!” … 아이가 그 상황에서 겁을 집어먹었으니 나중에 자라서도 겁쟁이가 될 거라는 식의 생각도 않는 듯했다. 그 아이에게는 위험한 동물과 맞서고 죽이는 법을 배울 시간이 아직 충분히 있고, 또 언젠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건 아이의 마음속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  (124∼125쪽)


 우리 아이는 책을 읽을 줄은 모르나 저희 엄마 아빠가 늘 책을 끼고 사니까, 자기한테도 책이 있습니다. 엄마가 책을 볼 때 옆에 나란히 누워 보는 책……, 아빠가 책을 읽을 때 옆에 엎드려 입으로 물어뜯는 책……. 그리고 아빠가 사진을 찍을 때면 찰칵 소리에 눈을 깜짝이면서 쳐다보고, 사진기를 들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닥에 내려놓은 사진기를 집어들고 싶어합니다. 사진기 끈을 북북 긁으며 끈에 새긴 무늬를 하염없이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여느 집 사람들처럼 살았다면 아기 놀이는 사뭇 달랐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집 사람들처럼 ‘아빠는 밖으로 돈 벌러 회사 나가’고, ‘엄마는 집에서 살림 꾸리’고 했다면, 아기 매무새는 지금과 같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 다른 집 아기를 보고 아이 키우는 어버이를 볼 때면, 아기와 어버이 매무새는 닮았습니다. 아이와 어버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매무새가 어슷비슷합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즐기는 매무새와 아이와 어버이가 걸어가는 길은 한 흐름이곤 합니다.

 제 긴머리를 보고 ‘남자가 왜 머리가 길어?’ 하며 묻거나 ‘남자야? 여자야?’ 하고 묻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뭘 몰라서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집과 어린이집과 학교와 동네에서 늘 듣고 보고 배우며 자란 그대로이기에 이처럼 묻습니다. 바지를 입건 치마를 입건, 머리가 길건 짧건, 까만 살결이견 누런 살결이건 흰 살결이건, 밝은 옷차림이건 어두운 옷차림이건, 키가 작건 크건, 걷건 자전거 타건 자가용 몰건, 누구나 똑같은 사람임을 헤아리는 아이가 되자면, 어른 스스로 먼저 누구나 똑같은 사람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과자ㆍ라면ㆍ피자ㆍ햄버거 먹는 어버이가 살아가는 집에서 아이들이 과자ㆍ라면ㆍ피자ㆍ햄버거를 안 먹을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억지로 못하게 하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답답한 속을 꽉 눌러 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꽝 하고 안 터뜨리게 될 수 없습니다.


.. !쿵 어린이들은 성별에 따라 분리되지 않으며, 어떤 성도 순종적이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하도록 훈련받지도 않으며, 사람에게 타고난 감정 표현을 억제하도록 강요받지도 않는다.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하면서 크는 건 마찬가지지만, 어른들의 공격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많은 문화권에서처럼 남자아이들이 싸움 기술을 연습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일도 찾아볼 수 없다. !쿵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으며 처녀성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고, 여성의 몸을 특별히 가리거나 숨겨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나다닌다. 어린이들의 놀이에 경쟁이 개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은 같은 활동을 나란히 공유하면서 놀지, 집단의 규칙을 정하고 놀지는 않는다 … !쿵 어른들도 경쟁이나 개인의 위계를 가르는 일을 애써 피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사람 사이의 차별을 억제하는 문화 덕분에 !쿵 사람들은 누구를 승리자, 최고의 미인, 가장 성공한 사람, 또는 최고의 춤꾼, 사냥꾼, 주술사, 음악가, 구술 공예가 등으로 규정하는 일을 되도록 피한다 … 그러한 재능에 주목하는 일은 매우 좋지 못한 태도로 여겨진다 ..  (157∼158쪽)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너무 바지런해서 엄마 아빠가 고단합니다.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요. 낮에도 낮잠은 자는 둥 마는 둥이니까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아기 때에는 누구나 그러하고 조금씩 크면서 밤잠과 아침잠이 늘어난다는데, 돌쯤은 되어야 잠꾸러기 아이로 달라지게 되려나 손을 꼽게 됩니다.

 하기는, 아기 때 누구나 그러하다면 저나 옆지기도 아기였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잠을 못 자게 괴롭혔을 테고, 어머니 아버지 또한 당신이 아기였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잠 못 자게 괴롭혔겠지요. 우리 아이도 커서 누군가한테 엄마가 되면 또 제 아이한테 시달리며 잠을 못 자게 될 테고요.


 (2) 아이와 함께 살아갈 앞날


 이제 다섯 살 되는 아이 유치원 값으로 다달이 50만 원씩 낸다는 동무녀석 이야기를 들으면, 유치원에 보내는 값만 50만 원이지, 이밖에 들어가는 다른 돈을 따지면, ‘벌써부터 애 대학교 보내는 돈과 같다’면서 한숨이 짙습니다. 우리는 아직 유치원 생각은 안 하지만, 우리 동네에 마땅히 보낼 유치원이며 어린이집이 없음을 헤아리면(있어도 잘 안 받아 주어서. 초등학교에 딸린 유치원은 그 초등학교 교사네 아이가 아니면 안 받아 주고. 사립 유치원은 참으로 비싸고), 또 가까운 둘레까지 살펴도 공동육아를 하는 데가 없음을 돌아보면,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키우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가 동무를 사귀며 놀게 하자면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보내야 할 텐데, 이곳에서 조금 비싸게 받아도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끌 수 있으면 걱정이 없으나, 어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한글 일찍 떼기’와 ‘영어와 한자 가르치기’를 거의 밑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살아야 하기에, 아이가 글을 익힐 때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예닐곱 살 무렵이고, 아이한테 한자 지식이 있어야 한다면, 한글을 모두 떼고 스스로 한글로 된 책을 읽고 생각이 깊어질 무렵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학생이 되는 열서너 살 무렵에야 한자를 가르쳐도 가르칠 노릇이고, 영어를 이때 가르쳐도 하나도 안 늦는 일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아이 엄마나 아빠나 모두 그때 외국말을 배웠고, ‘그때부터 배웠다고 제대로 못 배우거나 엉터리로 배웠다’고는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오두막이나 집을 짓는 데 큰 수고가 들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 중 한쪽이 거처를 옮기는 일도 간단하다. 게다가 모든 재산은 공동소유가 아니라 개인에게 속하기 때문에 재산분할을 놓고 분쟁이 벌어질 소지도 없다. 부부가 이미 성관계를 맺었느냐 여부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 “지내다가 그 사람이 나를 원하면, 거절하지 않고 같이 누웠어. 속으로 ‘내가 왜 그리 내 성기에만 신경을 썼을까?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왜 내가 그를 마다했을까?’ 그렇게 생각했지. 나는 그에게 나를 주고 또 주었어. 이제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누웠지. 그리고 내 가슴은 아주 크게 부풀었어, 나는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던 거야.” ..  (188, 234쪽)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천에서는 거의 모든 인문계 학교가 중학생 때부터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붙잡아 놓고 ‘자율 아닌 자율’과 ‘보충 아닌 보충’을 교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골마루를 누비며 두들겨패면서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 싱그러운 나이에 오로지 형광등 불빛에 눈이 어두워지면서 시험공부 지식만 머리속에 달달 집어넣어야 한다면, 이와 같은 학교에서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어른을 믿게 되며, 어떤 세상을 어떤 눈길로 익히게 될지 근심이 쌓이고야 맙니다.

 더구나, 반드시 학교 울타리에서만 또래 동무를 사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는 또래 동무를 못 사귀는지,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동무를 못 사귀는지, 또래 동무란 고향 인천에만 있어야 하는지, 온누리 구석구석 또래 동무를 골고루 사귀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한테 고향나라와 고향마을은 틀림없이 소담스러운 어릴 적 생각바탕이며 마음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담스러울 어린 나날이 되지 못하고,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막개발과 철거용역만 판치는 인천 같은 데에서 어떤 또래 동무를 사귀게 될는지를 헤아리면, ‘글쎄요?’ 하는 생각만 떠오르게 됩니다. 다른 동네로 살림터를 옮긴다고 해 보아도 그리 나을 듯하지는 않습니다만,


.. !쿵 여성들은 되도록이면 혼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최대한 덜 받고 아이를 낳으려고 애쓰는데 그 덕분에 감염의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쿵 문화에서는 혼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로 여겨지지만, 초산일 경우에는 다른 여성들이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 어린 산모들은 되도록이면 친정어머니나 가까운 여자 친척들이 같이 있어 주길 바라지만, 시집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시집 쪽 여자 친척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어 준다 해도 진통과 분만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신이 변덕스럽게 개입하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산모 자신이다. 순산을 하면 그것은 산모가 출산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때 산모는 조용히 앉아서,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쳐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분만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한다 … !쿵 여성들은 가임기에 평균 4∼5회 출산을 경험한다. 출산을 거듭할수록 혼자서 이상적인 분만을 치러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 아기에게 대신 젖을 먹여 줄 수 있는 다른 여성이 없을 경우에는 아기를 2∼3일씩 굶기기도 한다 … 명확히 정해진 ‘산후 조리’기간은 없지만, 일상생활을 재개할 만큼 튼튼해졌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는 일상적인 활동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채집 생활을 하느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다져진 훌륭한 신체 조건 덕분에 대부분은 금세 회복한다 … “아기를 낳고 난 다음에는 한동안 서로 관계를 안 해. 남자들은 산모가 회복할 때 흘리는 피를 두려워하거든. 아기가 좀 자랄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애 낳고 한 달 정도만 기다렸다가 다시 남편과 한 이불에 들지” … “아기, 그래……. 아기가 태어나려고 하는 날이 다가오면 맘이 정말 무거워. 하지만 일단 낳아서 모래 위에 눕혀 놓고 보면 아기는 정말 멋진 선물이지. 아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맘이 행복해져. 그래 그 조그만 아기한테 말을 걸고 얘기를 나누지. 하지만 아기를 낳을 때의 그 화와 고통이란……. 그런 건 왜 있는지 모르겠어!”  … “아기는 그저 누워 있었고 그렇게 사흘이나 굶긴 다음에야 한쪽 가슴이 불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날 밤에 다른 쪽 가슴에서도 젖이 나오고. 가슴이 좋은 젖으로 가득 찰 때까지 나쁜 젖을 짜서 버렸어. 아기는 정말 끝도 없이 젖을 빨고 또 빨다가 겨우 배가 차니까 잠이 들었지.” ..  (253∼273쪽)


 책 하나를 읽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이니 너도 즐겁게 읽어야 해’ 하면서 건넬 수 없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여도 ‘엄마 아빠가 아주 맛나게 먹은 밥이니 너무 맛나게 먹어야 해’ 하면서 들이밀 수 없습니다. 옷 한 벌을 입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신나게 입은 옷이니 너도 신나게 입어야 해’ 하면서 내밀 수 없습니다.

 아이 엄마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고, 아이 아빠는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습니다. 나라에서 보면, 엄마는 중졸이고 아빠는 고졸입니다. 요즘 세상에 대학 안 나온 엄마 아빠가 어디 있을까 모를 노릇이지만, 우리 두 사람은 ‘대학을 안 가고 대학을 안 마친’ 일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대학 울타리 바깥에서 훨씬 너른 사람을 만나면서 훨씬 깊은 삶을 들여다보았고 훨씬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느꼈습니다. 학점에 매여 읽거나 익히는 책이나 학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바라거나 쓸모있거나 아름다워지고나 읽거나 익히는 책이요 학문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병원에 기대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 하면서 어떻게 살림살이를 마련하며 맞이해야 하는가를 따지고 익혔습니다. 아이를 기르며 돈에 기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 어른한테서 익힙니다. 앞서 나온 훌륭한 책에서 배웁니다. 앞서 ‘돈에 안 기대고 아이를 돌보던’ 사람들한테서 슬기를 받아먹고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나날에서도,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제 삶을 고이 엮으면서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끼고, 이와 같이 나아가도록 늘 힘쓰려 합니다.


.. 가축떼는 영구적인 샘물을 중심으로 점점 더 넓은 범위를 뜯어먹으면서, 아직까지 !쿵족이 수렵채집을 영위하는 땅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츠와나와 헤레로 마을들이 전통적인 !쿵족의 샘물 주변을 에워싸고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쿵식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부유한 이웃에게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일은 이제 용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한때 직접 고기와 식량을 구해다 가족을 부양했고, 품위를 지키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했던 !쿵 사람들은, 이제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지위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한 환경 변화가 심리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많은 !쿵 사람들이 마을 농가에서 빚어다 파는 술을 마시며 시간을 때우기에 이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쿵족의 연장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 그들은 전통 문화의 산증인으로 모두가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 다니고 소젖을 짜고 염소와 당나귀를 돌보고,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우물을 파는 법을 배운 손자들에게 그들이 지닌 지식과 기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아버지가 ‘베사, 난 자네가 맘에 안 들어. 내 딸을 데려가겠네. 이 애한테는 황야에서 살고 황야를 아는 남자를 찾아다 붙여 줄 거야. 나는 이 애가 마을 남자랑 결혼하길 바라지 않네.’ 하셨고,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서 결국 식구들은 나를 데리고 떠나고 베사는 거기 남았지.” ..  (300∼312쪽)


 요즈음 ‘청소년 사진’을 찍으면서 길에서 만나고 스치고 부대끼는 푸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열 몇 해가 있어야 푸름이가 될 테지만, 열 몇 해라는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아 금세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주하는 푸름이들이 낯선 남남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끼는 한편, 스무 해 앞서 제가 푸름이였을 때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청소년 문화가 한국에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없는 청소년 문화를 사진으로 담으면 어찌 될까’ 하고 생각을 잇다 보면, 우리 어른 스스로 ‘어른 문화가 한국에 있도록 하지 않는 동안’에는 청소년이든 어린이이든 아무런 문화가 없이 그 애틋한 나날을 허투루 스쳐 보내게 될밖에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다시 어른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가르치는 삶자락을 보면, 그리고 아이가 다시 어른한테 가르칠 삶자락을 살피면, 거의 다람쥐 쳇바퀴가 아닌가 싶어요. 진보를 말하는 사람이든, 지식을 외치는 사람이든, 보수를 지키려는 사람이든, 나라와 겨레를 외는 사람이든, 자기부터 스스로 진보나 지식이나 보수나 나라나 겨레가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지거든요. 입으로 외는 무슨 주의자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어떤 빛줄기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붓끝으로 끄적이는 무슨 주의가 아니라, 몸뚱이로 부대끼어 저절로 터져나오는 슬기나눔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곰곰이 따지면, 진보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하며 보수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평등을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하며 평화를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종교를 외쳐도 돈하고 헤아져야 하며 학문을 외쳐도 돈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권력을 붙잡아도 사랑이어야 하며 권력하고 동떨어져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니,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게 하는 자동차는 진보와 어긋납니다. 지금 세상을 아름다이 지키고 싶으니, 지금 세상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도록 망가뜨리는 자동차는 보수와 어긋납니다. 모두가 고른 권리를 누리는 삶을 바라니, 가난한 낮은자리 사람들 삶터와 여린 목숨붙이 보금자리를 밀어내는 아파트는 평등과 어긋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까닭은 더 많은 자원을 더 값싸게 끌어들여 더 많이 넘치게 쓰면서 홀로 배부르려는 속셈에서 비롯하니, 엄청난 자원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도록 하는 아파트 짓기와 허물기와 새로짓기는 평화와 어긋납니다. 부처님처럼 살든 하느님과 한몸이 되든 내 것이 아닌 나 아닌 것이 되면서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해야 하니, 내 주머니에 쌓이는 돈과 종교는 어긋납니다. 나 하나 똑똑해지고자 파고드는 학문이 아니라 나와 내 둘레 삶터 모두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슬기로움을 갈고닦는 학문이니, 학문을 하면서 돈을 긁어모으게 되는 일은 서로 어긋납니다.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며 나라를 튼튼히 돌보겠다는 권력자는, 오로지 사랑일 때에만 겉과 속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세상 얕은 흐름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즐겁고 조촐하게 살려는 사람한테는, 미움이나 등돌림이 아닌 사랑을 가슴에 붙안아야 나부터 즐겁고 조촐한 삶으로 꾸리게 됩니다.
 





.. 어머니 주변에는 항상 도와줄 누군가가 있고 아이들 주변에는 항상 같이 놀 친구가 있다. 어머니와 단둘이 따로 떨어져 심심해하는 아이를 어머니 혼자 감당하는 풍경은 !쿵족의 일상에서 흔치 않다 … !쿵 어린이들은 양쪽 부모와 매우 편안하게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와 신체 접촉을 하거나 함께 앉아 있거나 대화를 나누는 빈도도 잦다. 아버지는 화를 내면 두려워해야 할 권위 있는 존재로 굳어져 있지 않다. 양쪽 부모 모두 자녀들을 지도하며,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이나 똑같은 무게를 지닌다 … 남성이 채집을 열심히 하는 것은 유별나다거나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지기는커녕 특별히 언급할 만한 사건조차 못 된다. 식물에 대한 남성들의 지식은 여성들 못지않으며, 남성들도 원하면 언제든지 채집을 할 수 있다. 남성들은 전체 채집 식량의 20퍼센트를 충당한다 … !쿵 사람들은 대개 몸가짐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데, 그들이 성장하는 환경을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그 분명한 한 예가 어린 소녀들이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이행하는 사회 환경이다. 마을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춘기로 접어드는 소녀들은 자신과 비교할 때 동년배 친구들이 없거나 있다 해도 매우 적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심하게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분위기를 경험하지 않고, 오랫동안 주목을 한몸에 받으면서 자라난다 … 이러한 경험이 자부심을 높여 주는 것 같다 ..  (331,339, 371쪽)


 옆지기 배속에서 새 목숨이 꼼틀거리게 될 때에도 이에 앞서도, 우리 두 사람은 새 목숨이 튼튼하게 세상에 나와 살아가게 되기까지 오로지 한 가지, 사랑밥을 먹이기로 다짐했습니다. 돈밥이나 책밥이나 종교밥이나 학교밥이나 얼굴밥 따위는 먹이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아이 스스로 먼 뒷날 이런 밥이 좋다고 여기며 나아간다면 그리 나아가도록 스스로 걸어갈 노릇이지만, 우리가 아이한테 주어야 할 밥은 아이 스스로 착하고 슬기롭고 튼튼하고 씩씩하고 똑똑하고 올바르며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을 가는 데에 배를 굶지 않도록 차려 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으면 좋은 연예인이 되도록 거들어 줄 뿐, 나머지는 스스로 할 일입니다. 교사가 되고 싶으면 좋은 교사가 되도록 손을 보탤 뿐, 나머지는 알아서 할 일입니다. 농사꾼이 되고 싶으면 좋은 농사꾼이 되도록 이끌어 줄 뿐, 나머지는 혼자서 부딪히고 부대낄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두 식구,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더 잘 키우려고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벌이가 거의 없게 되어 살림이 아주 쪼들리게 되어도 이런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아이와 함께 두 사람이 집살림을 꾸리기로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품안에 기르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 품안에 있어야 할 때에는 우리 품안에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를 얹지 않고 아이를 안아야 하니까요. 우리 집에서만 키우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사랑과 믿음을 받아먹어야 할 아기 때에는 마땅히 엄마 아빠가 아기와 함께 밤잠 낮잠 아침잠 모두 잊어 가면서 아기와 부대끼고 놀아야 하니까요.

 여느 사람들 일터에서는, 아이 낳아 기르는 사람이 있을 때 마땅히 이 일꾼이 ‘아이가 어느 만큼 클 때까지’는 유급육아휴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 어느 가게나 단체나 관공서나 대중교통이든,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엄마 아빠가 고단하지 않도록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이와 어버이한테뿐 아니라 장애인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주노동자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르신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모두한테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이며, 떨꺼둥이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3)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사람 이야기 《니사》


 칼라하리 사막에서 ‘수렵채집’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쿵’사람 이야기를 담은 《니사》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 식구는 이 책을 아기를 낳고 나서 한 달쯤 지나 처음으로 읽었고, 100일이 지날 무렵 비로소 덮었으며, 그 뒤로 석 달 동안 책상맡에 얹어놓고 새록새록 되넘겼습니다.

 !쿵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은 ‘마저리 쇼스탁’ 님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쿵사람을 만났으며, 1975년에 다시 찾아가 더 만난 다음 열 해에 걸쳐 !쿵사람 말을 영어로 옮기고 갈무리하여 《니사》를 펴냈다고 합니다. 그 뒤 1991년에 《니사》라는 책 주인공 ‘니사’를 다시 만나서 2000년에 《Return to Nisa》를 냈다고 하는데, 정작 마저리 쇼스탁 님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나 당신 두 번째 책을 두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는군요.


.. 많은 !쿵 남성들은 동부의 인력 시장으로 태워다 줄 운송수단을 찾아, 그곳에서 남아공의 금광에서 일할 인부로 등록한다. 그렇게 해서 몇 달 또는 몇 년을 일하고, 그때까지 번 돈과 더불어 바깥세상에 대한 새로운 물정과 지식을 얻어 가지고 돌아온다 … 도베 지역의 !쿵족들처럼 개중에서도 문화 접촉이 적었던 산족들은 자기 조상들이 수렵채집을 영위해 온 땅의 소유권을 스스로 지키기에는 정치적으로 너무 순진하기에, 아마도 보츠와나의 다른 지역에서 그랬듯이 불법 침입자로 전락하든지 부유한 농장에서 소몰이꾼으로 궁핍하게 살아갈 것이 뻔했다 … 1966년 이후 북나미비아 흑인 민병대와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있는 남아공은, !쿵 남성들을 반란 진압군으로 남아공 군대에 입대시키기 위해 !쿵족과 다른 토착민들 사이의 적대감을 공공연히 조장해 왔다 ..  (472, 474쪽)
 





 《니사》를 읽는 동안, 우리가 우리 아이 사름벼리를 낳기 앞서 이 책이 나와서 읽게 되었다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인 한편, 아이를 낳고 길러 가는 훨씬 긴 나날 동안 아이와 함께 즐거운 삶은 무엇일까를 곱씹을 수 있으면 이 또한 보람있는 책읽기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거짓스런 평등이 아닌 삶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평등을 보여주고, 겉치레 평화가 아니라 삶에서 스스럼없이 배어나오는 평화를 보여주는 《니사》입니다. 있는 만큼 땅에서 거두어 먹고, 있는 만큼 이웃과 나누어 즐기며, 있는 만큼 내 삶을 사랑하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쿵사람입니다.

 책 《니사》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어느 겨레 이야기인데, 찬찬히 헤아리면, 오늘날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거나 버리긴 했으나, 우리 겨레 또한 !쿵사람과 마찬가지로 거짓없는 평등과 스스럼없는 평화를 고이 나누던 삶이 아니었느냐 싶습니다. 신분과 계급과 돈과 땅으로 사람을 나누던 권력자 말고, 낮은자리 여느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으로 우리 삶을 고이 가꾸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알맞게 먹고 알맞게 일하고 넉넉히 쉬면서,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되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 다스리는 삶은, !쿵사람이든 한겨레이든 이웃 다른 겨레이든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차근차근 이어져 오던 삶이 아니었느냐 싶어요.


..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과거 수렵채집 시절에 관한 지식에서 우리가 뭘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렵채집민들이 지닌 풍부한 유산일 것이다.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의 삶이 끊임없이 궁핍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식생활, 적당한 노동, 풍부한 여가, 자원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 가족과 사회와 경제생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평등한 상태를 누렸다. 게다가 오늘날 !쿵족을 비롯한 수렵채집민들은, 물과 식량이 풍부한 지역을 독차지했던 선사시대의 수렵채집민들과 달리 대부분 극한 환경으로 내몰려 있다 ..  (33∼34쪽)


 그렇지만 우리 겨레는 알맞는 삶을 버리고 있습니다. 아직 얼마쯤 남아 있는지 모르나, 일찌감치 송두리째 버렸는지 모릅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빠른 차와 더 큰 집과 더 단단한 가방끈과 더 배부른 밥과 더 높은 이름자리에 허덕이면서, 정작 더 따뜻한 사랑과 더 넉넉한 믿음과 더 아름다운 나눔에서는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돈을 안 들이고 주고받는 사랑을 잊고, 돈 없이 함께하던 믿음을 잊으며, 돈이 아닌 나눔이 무엇이었는가를 잊습니다. 돈을 벌어도 사랑을 잃고, 돈이 넘쳐도 믿음을 잃으며, 돈으로나마 나누려는 몸짓조차 잃습니다. (4342.3.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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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메뚜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3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정근 옮김 / 보림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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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내 삶을 아름다이 가꾸자
 [그림책이 좋다 58] 다시마 세이조, 《뛰어라 메뚜기》



- 책이름 : 뛰어라 메뚜기
- 글ㆍ그림 : 다시마 세이조
- 옮긴이 : 정근
- 펴낸곳 : 보림 (1996.9.20.)
- 책값 : 8000원



 (1)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


 옆지기가 먹을 푸성귀를 장만하러 생협 나들이를 갑니다. 그러나 오늘은 생협 매장 문을 열지 않아 헛걸음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옵니다. 어제 다녀왔어야 했다고 생각해 보아야 벌써 지나간 일입니다. 하는 수 없이 생협보다 비싸고 멀리 있는 ㅇ마트까지 가서 장만해야 합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다른 골목을 걷습니다. 가는 길은 늘 걷는 안쪽 샛골목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자동차 많이 오가는 싸리재 찻길로 다니지만, 우리는 이 찻길 바로 옆으로 난 골목집 사이를 잇는 ‘자전거도 못 지나가고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샛골목을 걷습니다.

 벌써 몇 해째 거니는 길인데, 이 길을 걷는 하루하루 새롭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새롭기도 하지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릅니다. 어제 못 본 모습을 오늘 보고, 오늘 못 본 모습은 내일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골목집 가운데 어느 한 집에 눌러살게 되더라도 날마다 다른 집살림을 느끼게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경동 샛골목을 지나다가, 27번지 문패를 보고는 우뚝 걸음을 멈춥니다. 볕이 잘 안 드는 자리에 있기는 해도, 비와 바람에 닳고 낡은 문패는 이 집이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도록 뿌리내리면서 삶을 이어왔는지 보여줍니다. 이제는 빈집이 된 이곳, 앞으로 어찌 될는지 알 수 없는 이곳, 이제 이 집이 재생사업이니 도시정화사업이니 하는 이름으로 헐리게 되면, 문간에 아주 단단히 붙여놓아 떨어지지도 않을 터라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릴 저 문패며 집이며 대문이며 …….


.. 조그마한 수풀 속에 메뚜기 한 마리가 숨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무서운 녀석들이 메뚜기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지요. 그래서 메뚜기는 날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살았습니다 ..  (2∼4쪽)


 아침에 아기를 씻기고 빨래를 하니 금세 낮으로 바뀝니다. 넘어져 다친 손가락과 팔꿈치 아픔을 찌릿찌릿 느끼면서 비빔질을 하고 물짜기를 합니다. 부시시한 눈도 비비면서 빨래를 모두 끝마치고 옥상마당에 차곡차곡 내다 널고 걸고 나니 조금은 개운합니다. 삼월을 맞이하며 한결 따뜻해졌다고 느껴지는 이 햇볕을 쬐는 빨래는 한결 보송보송 마르며 아기 몸한테도 고운 햇살을 이어주리라 믿습니다.

 한동안 옥상마당을 서성이며 둘레 골목집을 둘러봅니다. 바지런한 골목집에서도 아침 빨래를 마치고 저마다 저희 옥상마당에 빨래를 내다 넙니다. 옥상마당이 따로 없는 골목집은 창문가나 골목가에 빨래줄을 이어 넙니다. 모르는 사람은 골목집과 골목집 사이에 줄이 왜 이어져 있는지 모르기 일쑤이고, 또 지저분하게 이런 줄을 왜 이었느냐 궁시렁거리기도 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 메뚜기는 이런 곳에서 겁먹고 사는 것이 몹시 싫어졌어요 ..  (7쪽)


 제가 처음 태어난 동네를 서른 몇 해 만에 찾아가 ‘떠오르지도 않는 그 옛날’ 모습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 또 숱하게 옮겨다니며 살았다는 동네를 하나하나 되찾으며 ‘그때 어느 집에 살았을까’ 곱씹으며 사진을 찍는 동안, 그리고 고향땅이 싫어 서울로 충주로 또 다른 이 마을 저 마을 구석구석으로 떠돌며 지내던 때에도 이곳에 고이 남아서 살아온 사람들 삶자락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아립니다. 저로서는 ‘적바림하는’ 사진(기록사진, 다큐사진)이 아님에도 제가 찍는 사진을 적바림 사진으로만 여기는 사람둘 눈길이 슬프고, 제가 만나고 부대끼는 사람들 삶터가 ‘없어져야 할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 마음이 슬프며, 고향 없이 돈만 바라며 집자리를 옮겨다니게 되는 사람들 모습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나무처럼 뿌리내리면서 싱그럽고 시원한 그늘을 백 해 이백 해 즈믄 해 선사하는 사람으로는 살아가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산처럼 우람하고 튼튼하게 선 채로 맑고 밝은 숨결을 널리널리 고이고이 베푸는 사람으로는 살아내지 못할까요.

 돈이 되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웁기에 하는 일이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재미가 있어야만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고 넉넉해지기에 함께하는 놀이가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이름값을 높여야만 맡는 자리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맡는 자리가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 메뚜기는 커다란 바위 꼭대기로 나와 대담하게 햇볕을 쬐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뜨여 잡아먹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에요 ..  (10쪽)


 빨래를 마치고 쌀을 씻다가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누런쌀에 온갖 다른 곡식과 콩팥을 잔뜩 섞어 먹는 밥이 맛있다고 여기고, 여느 흰쌀밥은 도무지 씹을 수 없어 맛없다고 느끼는데, 어쩌면 우리 삶이 하루하루 흰쌀로만 밥을 먹듯 우리 생각과 삶도 흰쌀처럼 되어 가고 있지 않느냐고.

 사람몸에 도움되는 알맹이를 다 깎아내어 허여멀겋게 남은 흰쌀로 지은 밥이 마치 좋은 밥이라도 되고 맛난 밥이라도 되는 양 잘못 알듯 우리 생각과 삶도 흘러가지 않느냐고.

 버려지는 알맹이마냥 우리 몸과 마음에 깃든 아름다움을 우리 스스로 내동댕이치거나 내버리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들 모두한테는 마음자리 깊숙한 데에 하느님이 살아 있는데, 우리 마음자리에 깃든 하느님은 못 본 채 절집과 예배당과 성경과 불경만 파고드는 우리들이 아니냐고.


.. 이제는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메뚜기는 온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습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위로 떠올랐습니다. “아니 저게 뭐야. 뭐가 저렇게 날아?” 잠자리가 사뿐 날아들며 메뚜기를 비웃었습니다. “하하하. 저런 엉터리 날갯짓!” 나비들이 나풀나풀 가볍게 날면서 떠들어댔습니다 ..  (26∼28쪽)


 보채고 꿍얼대다가 엄마젖을 물고 가까스로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오늘은 아직 아침똥을 누지 않는데, 몸이 안 좋고 힘이 드는가 봅니다. 아기야, 네가 튼튼하게 놀고 먹고 자고 옹알이를 해야 엄마도 한결 즐겁고 고된 몸이 놓이면서 너한테 더 맛나고 좋은 젖을 줄 수 있단다, 부디 새근새근 잘 자고, 이따가 일어나면 다시금 신나게 놀자꾸나.


 (2) 《뛰어라 메뚜기》는 어떤 그림책인가


 1996년에 《뛰어라 메뚜기》(보림)가 옮겨진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책은, 2002년에 《늑대의 돼지 꿈》(현암사)이 두 번째로 옮겨지고, 2002년에 《1111마리의 벼룩과 고양이》(효리원)가 세 번째로 옮겨지며, 2006년에 《채소밭 잔치》(우리교육)가 네 번째로 옮겨진 다음, 2007년에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우리교육)이 다섯 번째로 옮겨지고, 지난 2008년에 《쿨쿨쿨》(보림)이 여섯 번째로 옮겨집니다.

 투박하면서 수수한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결은,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마음껏 즐기는 그림결처럼 느껴집니다. 어른이면서 어린이 같은 그림을 흉내내는 분들이 제법 많고, 이런 그림이 퍽 사랑받고 있음을 헤아린다면,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은 ‘어떤 유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이들 그림 같은 그림’하고 다른 대목이 있어, 이분 그림책이 사랑받고 또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첫째로, 아이들은 다시마 세이조 님처럼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거침없으면서 투박한 그림이지만, 이 거침없음과 투박함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 스스로 녹여낸 붓질이지, 이제 막 붓을 잡은 아이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거침없음과 투박함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어설픈 잔재주나 섣부른 아이 흉내에 빠지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녹여낸 거침없으며 투박한 이 붓끝으로 ‘아이와 함께 나눌 삶과 생각’을 차분하게 담아냅니다.

 둘째로, 아이는 아이이고 어른은 어른입니다. 아이는 아이 삶이 있고 어른은 어른 삶이 있습니다. 어른은 아이 때를 거쳐 어른이 되는 동안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세상 보는 눈을 좀더 기르게 됩니다. 어른인 그림쟁이가 펼쳐 보이는 그림책은 아이한테 주는 선물이면서 아이 때를 거친 자기 발자국이고, 선물을 받아든 아이들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고마운 눈물입니다. 그래서 잘 빚은 그림책은 억지로 떠먹이지 않는 몸에 좋으며 맛난 밥과 같고, 잘못 빚은 그림책은 아이 몸과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아이가 거스르게 되는 달갑잖은 먹을거리와 같습니다.

 셋째로, 오래도록 서로서로 함께 나눌 이야기를 곰삭입니다. 어른으로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고, 어린이로서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저마다 다르게 찾습니다. 이런 길찾기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또 어른대로 서로서로 눈을 마주하고 몸을 맞대면서 저절로 느낍니다. 겉으로 사랑한다 하는지, 입으로만 사랑한다 읊는지, 속으로 사랑하는구나 느껴지는지,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지를, 서로서로 찬찬히 헤아립니다.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책은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이와 함께 즐거울 길을 차근차근 뚫고 가꾸고 돌보며 몸소 걸어가는 마음자락을 담아내는 놀이이면서 일입니다.


.. 하지만 메뚜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날 수 있으니, 정말 기쁘고 즐거웠거든요. 메뚜기는 높이높이 날았습니다. 자기 날개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갔습니다 ..  (30쪽)


 《뛰어라 메뚜기》라는 그림책은, 그린이 스스로 ‘뛰고 싶은 삶’을 보여줍니다. 스스로 펄쩍 뛰어오르려는 몸가짐을 보여줍니다. 부딪혀서 온몸이 조각조각 부수어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앉거나 뒤에 숨어 있는 채로 밟혀 죽거나 잡혀 찢어져 죽고 싶지 않은 메뚜기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주 작은 한 가지부터 고쳐 나갈 길을 찾고, 이러한 길을 남들보고만 가라 하지 않고 스스로 먼저 갑니다. 말보다 몸이 먼저이고, 몸이 가면서 살며시 말을 건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 아름다워져야겠지요.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겠지요. 비록 아름다워지려고 애쓰고 힘써도 아름다움에 가까이 닿지 못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든 안 되든 꾸준하게 애쓰고 한결같이 힘쓰는 삶이 바로 아름다움일 수 있어요. 이런 넋과 생각과 삶이 그림책 《뛰어라 메뚜기》에 고이 담깁니다. “전쟁이 싫어요!” 하고 외치는 목소리 하나로 전쟁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하나, 바로 이 조그마한 목소리 외침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발걸음 하나입니다. 그런 다음, 자기한테 싫은 전쟁을 맞이하지 않을 길을 하나씩 찾고,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가꿀 일거리를 찾으며,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불러올 사람 사귐을 헤아리는 가운데, 전쟁을 내어쫓고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할 삶이란 어떻게 가꾸는가를 톺아보면서 스스로 일구게 됩니다.


.. 메뚜기는 황무지를 지나,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  (32∼34쪽)


 두꺼비, 뱀, 사마귀, 거미, 새, …… 여기에 사람까지. 메뚜기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녀석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이 짜증스럽고 무서운 녀석들한테서 몸을 숨기면서 아주 외롭고 쓸쓸하게 어두운 구석에 갇혀 지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이 부서지거나 목숨마저 잃을지라도 다부지고 당차게 몹쓸 녀석들하고 한판 붙을 수 있습니다. 굳이 한판을 붙지 않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밝고 맑게 살아갈 길을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좀 굶주리더라도, 좀 헐벗더라도, 좀 가난하더라도. 좀 고달프더라도, 좀 힘들더라도, 좀 괴롭더라도. 좀 벅차더라도 나와 같은 길을 가는 벗을 만나며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됩니다. 좀 고단하더라도 우리와 같이 걷는 이웃을 사귀며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며 사랑힘을 키웁니다. 좀 더디고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밑바탕부터 다지면서 우리 스스로와 우리 뒷사람 모두한테 흐뭇할 터전을 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바야흐로 거칠고 메마른 땅을 훨훨 날아서 가로지르고, 우리가 꿈꾸던 싱그럽고 고운 세상에 가 닿게 됩니다. (4342.3.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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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가방 일공일삼 8
리지아 보중가 누니스 글, 에스페란자 발레주 그림, 하윤신 옮김 / 비룡소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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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1 ― 가난한 사람만이 책을 읽고 사랑한다
 : 리지아 누네스, 《노랑가방》



- 책이름 : 노랑가방
- 글 : 리지아 누네스
- 그림 : 하윤신
- 옮긴이 : 길우경
- 펴낸곳 : 민음사 (1991.3.20.)



 (1) 나는 빈민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빈민(貧民)’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가난한 백성”이라고 나옵니다. ‘영세민(零細民)’이라는 낱말도 찾아봅니다. 이 낱말은 “수입이 적어 몹시 가난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사람들이 빈민과 영세민을 말할 때에는 조금 다른데, 빈민보다는 영세민을 조금 낫게 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느냐 싶고, 빈민이라 하면 꼭 구질구질하거나 꾀죄죄하거나 변두리로 내몰려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빈민이든 영세민이든 자기도 모르게 세금을 냅니다. 세무서에 대놓고 내는 세금은 거의 없다고 할 터이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크고작은 간접세를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땅속에 묻힐 때까지 끊임없이 내게 됩니다.

 예부터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습니다만, 가난한 사람들 누구나 “나라를 먹여살린다”면서 세금을 내고 있는데, 세금을 받아먹은 나라가 세금을 내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어딘가 잘못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그치지 않습니다. 가난이야말로 나라가 먹여살리거나 보듬어야 할 대목이고, 나라살림 북돋우기란 바로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어루만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그렇담 왜 여자 친구가 아니라 남자 친구를 생각해 냈지?” “왜냐면 여자보다는 남자인 게 훨씬 더 좋기 때문이에요.” 오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니?” “그래요, 정말이에요. 오빠 같은 남자들은 나 같은 여자들이 할 수 없는 것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보세요. 학교에서 어떤 놀이를 할 때도 대장을 뽑으면 늘 남자애들이에요. 집안의 가장도 남자고요.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사람들은 나보고 남자애들 운동이래요. 내가 연을 날리고 싶어해도 마찬가지고요. 나 같은 여자애들은 바보가 될 때까지 어리석게 굴 수밖에 없어요. 모두들 늘 오빠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고 책임을 짊어지게 될 사람이라고 하고― 간단히 말해서 오빠가 모든 걸 갖게 될 거예요. 모든 걸. 결혼하는 것까지도. 식구들은 오빠가 스스로 결정하기를 기다리죠. 식구들은 늘 오빠가 우리 대신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를 바래요. 한 가지 알려 드릴까요? 난 소녀라는 게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  (20∼21쪽)


 엊저녁,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빈민’으로 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뇝니다. 저 스스로 도시에서 빈민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민인 주제(?)에 글도 쓰고 사진도 찍습니다. 그러나 빈민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부자인 사람은 글을 쓸 일도 사진을 찍을 일도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배가 부르니 배 두들기며 놀게 된다고 느끼며, 배가 고프니 책을 펼치게 된다고 느낍니다.

 가난하게 배우는 학생이 책을 펼치고, 넉넉하게 배우는 학생이 술잔을 붙듭니다. 가난하게 사는 어른이 좁은 방구석에서 아이와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며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고, 넉넉하게 사는 어른이 아이 손을 잡고 고기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가용 타고 아파트로 돌아옵니다. 가난하게 태어나 젊음을 보내는 동무가 세상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넉넉하게 태어나 젊음을 누리는 동무가 사랑놀이를 신나게 하고 또 합니다. 가난한 마음이기에 절집에 가고 예배당에 갑니다. 가난한 생각이기에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고운 말씀을 차근차근 받아먹습니다. 가난한 넋이기에 누구 앞에서라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서 말을 낮춥니다. 가난한 몸이기에 두 발을 땅에 디디고 두 손으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칩니다.


.. 난 집으로 돌아와서, 노랑가방 속에 물건들을 정리해 넣었다. 나의 이름 주머니를 정리해서 아코디언 주머니 속에 넣었고, 긴 주머니는 그 안에 숨겨 둘 날씬한 것을 찾을 때까지 비워 두기로 했다. 애기 주머니 속에는 내가 길가에서 주운 옷핀을 넣었고, 단추 있는 주머니 속에는 집 정원을 그린 그림과 다른 그림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넣었다. 지퍼 달린 주머니 속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집어넣고 잘 잠그었다. 또 하나의 지퍼 달린 주머니 속에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더 깊숙히 넣어 두고 잘 잠그었다. 마지막 남은 단추 달린 주머니 속에는 소년이 되고 싶은 욕망을 넣었다(그 욕망은 너무 커서 단추 닫는 데 애를 먹었다) ..  (39쪽)


 옆지기와 함께 밥을 먹고 아기한테 옷과 밥과 집을 내어주면서 우리 살림살이로 이 동네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돌아보면 늘 아찔합니다. 그러나 용케 살아갑니다. 동네 도서관도 용케 열어 놓고 있으며, 없는 살림에도 새롭게 사들이는 책은 꾸준합니다. 없는 살림에도 몇 군데 시민모임에 뒷배하는 돈을 내고, 없는 살림에도 이웃한테 책 선물을 하며, 없는 살림에도 생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합니다.

 그러나, 없는 살림이었기 때문에 더 알아보게 됩니다. 없는 살림이기 때문에 가림 없이 먹어대지 못합니다. 없는 살림이라서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은 돈 한푼 함부로 못 씁니다. 이 한푼을 어디에서 써야 할는지, 이 한푼으로 무엇을 해야 할는지, 이 한푼을 손에 쥐기까지 어떤 땀을 흘려야 했는지를 곱씹게 됩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틀림없이 책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반드시 자전거를 타지 않았습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꼭 고등학교만 마칠 생각이 아니었을 터입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굳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뿌리내리며 살 까닭이 없습니다.

 없었기에 책방을 찾고, 없었기에 더 바지런히 책을 넘겼으며, 없었기에 더욱 두 다리와 자전거에 기댄데다가, 없었기에 대학교육이 내 삶에 도움될 일이 없다고 느껴 선선히 멀리할 수 있었습니다.


.. “내가 이기는 걸 너에게 보여주려고. 그것도 쉽게 이기는 걸.” “그럼 우리가 벌써 한 판 대결해서 네가 이긴 걸로 하자.” 그는 맹렬이의 날갯죽지를 쳐들고 소리쳤다.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맹렬이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넌 져도 괜찮아?” “물론이지.”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지?” … “맹렬이는 싸움밖엔 생각하는 게 없어. 정말로 사람들이 맹렬이의 다른 생각들을 꿰매 버린 걸까?” ..  (72, 76쪽)


 “최종규 씨는 영세민이 아니에요. (철거민도 아니고) 빈민이에요.”

 이 말을 듣고 제 삶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제가 사는 골목동네는 ‘재개발’이 아닌, 그리고 ‘재생사업’조차 아닌 ‘도시정화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헐리게 됩니다. 아마도. 2013년까지.

 2009년까지 우리 골목동네를 허물고 싶던 인천시 공무원과 개발업자였으나, ‘2009 세계도시축전’을 치를 돈이 모자라 어영부영 ‘도시정화사업’이 늦춰지게 되었습니다만, 2014년 아시아경기를 치를 때까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를 비롯한 이웃 빈민을 싹쓸이하듯 인천에서 내쫓고 싶다고, ‘도시재생국장’이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또박또박 힘주어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저나 이웃 빈민은 얌전히 있지 않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면서 따집니다. 도시재생국장은 조용히 우리들 빈민 외침을 듣다가, 도시정화사업이 끝나면 처음 이곳에 살던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 살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영세한 주민이 재정착을 할 수 있게 돈을 쓸 생각이 없다고 다시금 또박또박 힘있게 말합니다.

 그 거침없는 또박또박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구나, 저 도시재생국장이라는, 이름도 참 그럴싸하게 잘 지은 ‘도시재생국’이라는 관공서 부서 우두머리인 저분은, 책을 안 읽는 분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면서, 책을 안 읽는 사람하고는 아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잇따라 듭니다.

 너무 배부르게 살고 있기에, 너무 넉넉하게 살고 있기에, 너무 모자람이나 아쉬움 하나 없이 살고 있기에, 너무 넘치게 살고 있기에, 너무 많이 벌고 너무 많이 쓰며 살고 있기에, 자기가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달삯을 받고 있는 줄을, 그리고 우리 골목동네 허무는 돈을 바로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하는 일임을,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깨닫습니다. 톨스토이 님이 왜 소설쓰기를 하다 말고 《국가는 폭력이다》와 같이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인 책을 썼는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새삼 깨닫습니다.


.. “넌 전에는 뭘 했니?” 그는 핀 끝으로 헝겊 위에 금을 그으며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었어.” “그래?” “난 공장에서 나올 때 포장이 잘못되었어. 그래서 남들과 같이 있으려고 온힘을 다해 끝을 붙잡고 있었지만 결국은 길가에 떨어졌어.” “그런데 넌 다시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몸을 일으켜세울 때마다 사람들이 내 위를 밟고 지나갔어.” “아무도 널 보지 못했단 말야?” “사람들이 날 알아보았을 땐, 난 이미 온통 녹슬어 있었어. 그래서 아무도 날 가지려고 하지 않았어.” ..  (56쪽)


 믿음이 없으니 절집을 크게 짓고 탑을 높이 세웠음을 바야흐로 깨닫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예배당을 크게 짓고 십자가를 높이 올림을 바야흐로 깨닫습니다.

 성철 스님 법어집을 읽다가, 성경책을 읽다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라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는데, 믿음이 여리니 우찌무라 간조라는 이가 무교회주의를 말하고,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이가 빈민굴에서 어깨동무하는 삶을 진보 지식인한테 말할 때, 제대로 알아들은 이가 없었다고 깨닫습니다.

 지난날 절집은 오늘날 문화재가 되는데, 오늘날 예배당은 앞으로 백 해쯤 뒤에는 멋들어진 우리네 문화재가 되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벌써부터 수많은 성당은 ‘백 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지역문화재가 되어 가고 있어요.


.. “아주머니는 알베르토가 하는 건 뭐든지 재미있다고 생각하시죠? 그애가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런 짓을 해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시겠죠.” 언니가 눈을 찌푸렸다. “아주머니께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아라.” “아주머니는 알베르토가 내게 무슨 짓을 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왜 아주머니께 신경을 써 드려야 해요?” “라켈!” “언니는 왜 늘 아주머니께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라켈!”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왜 아주머니에게 늘 아첨을 떨지?” “라켈, 그만두라고 말했잖아!”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부자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그만두지 못하겠니.”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늘 선물을 주니까 그런 거지, 그치?” “그∼만!!!” ..  (95쪽)


 둘레에서 저보고 ‘돈 좀 많이 벌어야 아기도 나중에 커서 아빠 미워하지 않지.’ 하고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싱긋 웃으면서 아무 말을 않곤 하지만, 때때로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고 안 벌어도 돼요. 지난번에 춘천에 나들이 다녀올 때 그곳에서 뵌 분이 우리보고 당신은 당신 아이가 어릴 적에 많이 안아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우리는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기쁨이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보람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꾸하곤 합니다.

 저로서는 좋은 하늘나라에 갈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지금 저지르는 잘못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죽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태어날 때에는 첫째로 짐가방으로 되고, 둘째로 자전거로 되고, 셋째로 고무신이 되고, 넷째로 빨래비누가 되고, 다섯째로 연필이 되고, 여섯째로 수첩이 되고, 일곱째로 사진기가 되고 …… 지금 무척이나 애먹이는 님들한테 갚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간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저로서는 마음도 생각도 말도 살림도 집도 책도 그 무엇도 넉넉해지고픈, 그러니까 부자가 되고프지 않은데, 그예 가난을 둘도 없는 벗이나 님이자 옆지기자 이웃이자 어버이자 아이자 제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살아왔고 살아갈 뿐이고 살고픈데, 가난하지 않은 삶을 꿈꾸지 않는데, 가난한 헌책방 나들이를 좋아하고 가난한 골목길 나들이를 즐기며 가난한 동무와 이웃하고 사귀면서 재미가 쏠쏠한데, 하늘나라 문은 가난한 이한테만 열려 있다고 하니, 어느 모로나 근심입니다.
 





 (2) 어린이문학 《노랑가방》이 들려주는 세상


 어린이문학 《노랑가방》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이 판이 끊어졌을까 궁금했으나, 틀림없이 어느 출판사에선가 다시 냈을 테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하니, 제 생각대로 다시 나왔으며 무척 사랑받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민음사에서 1991년에 처음 냈다가 1995년에 문예공간에서 다시 냈고, 1996년에 비룡소에서 고침판으로 해서 새 그림을 담아 거듭 펴냈습니다. 새판을 내놓으면서 글쓴이 이름을 ‘리지아 누네스’에서 ‘리지아 보중가 누니스’로 고쳐 적습니다.


.. “왜 너의 아빠가 요리를 하고, 엄마가 냄비를 고치는 일을 하는 거니?” “왜냐면 오늘 엄마는 벌써 요리를 많이 했구, 아빠는 꽤 많은 것들을 수선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난 벌써 공부를 많이 했고, 할아버지는 냄비 때우는 일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시간이 됐으니까 이제는 일을 서로 바꾸는 거야.” “왜?” “누구도 한 가지 일을 너무 오래 하지 않기 위해서지. 아무도 자기가 하는 일이 남이 하는 일보다 더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할아버지는 그럼 공부를 한단 말야?” “응.” “그렇게 나이가 드셨는데도?” …… “할아버지는 겉모습만 늙으셨어. 할아버지 마음은 늘 젊고 새로운걸.” “어떻게?” “늘 공부하시기 때문이지. 아빠나 엄마보다도 더 많이.” “부모님도 공부하시니?” “우리 집에선 누구나 공부를 해.” “언제나?” “응, 언제나 배울 게 있거든.” “각자 어떤 공부를 하라고 누가 결정하니?” “무슨 말이야?” “누가 그런 것들을 결정하니? 누가 대장이니?” “대장?” “응, 집의 대장, 가장 말이야. 그게 누구지? 아빠니, 할아버지니?” “왜 가장이 있어야 하는데?” ..  (140∼141쪽)


 《노랑가방》에 나오는 주인공 ‘라켈’은 가난한 집에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계집아이입니다. 왜 천덕꾸러기이느냐 하면 ‘사내아이가 아닌 계집아이’이기 때문이고, 형제나 식구들과는 다르게 ‘돈에 크게 욕심이 없고, 겉멋과 겉치레에는 마음을 안 쏟기’ 때문입니다. 꾸밈없는 삶을 좋아하고, 푸대접받는 작고 하찮다 싶은 물건을 아끼며, 다치거나 아픈 목숨붙이를 고이 껴안습니다. 집에서는 어느 누구하고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에 홀로 생각에 잠기다가 스스로 소설을 쓰기로 다짐을 하고, 참말 소설을 씁니다. 어쩌면 이 《노랑가방》은 동화에 나오는 라켈이 쓴 이야기가 아닐까 싶고, 글쓴이 어릴 적 삶이 꼭 라켈이라는 아이가 보낸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죄다 꽉 막힌 사람뿐인데다가 빛줄기란 하나도 없어 외로움을 느끼는 삶.

 그런데 그 괴롭고 고달프던 삶에서 조그마한 틈을 하나 찾았고, 이 틈에서 아주 조용하고 낮게 살아가는 ‘참멋’을 나누는 이웃을 봅니다. 이제까지는 오로지 슬픔과 어둠뿐이었는데, 이제부터는 한결같은 기쁨과 밝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 라켈은 어린이에서 푸름이(청소년)로 거듭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마음에 박혀 있던 선입관과 편견을 하나씩 느끼면서,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배웁니다.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배우면서, 이 즐거움을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도록 자기 매무새를 추스르게 됩니다.


.. 기쁨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로렐라이의 엄마는 정말로 여자인 것에 기뻐했다. 그리고 로렐라이는 작은 소녀인 것에 기뻐했다. 그 아이는 소녀인 것이 소년인 것만큼이나 좋다고 생각했다. 어쩜 이게 사실일까? ..  (146쪽)


 다 읽은 책을 옆지기한테 건넵니다. 옆지기가 읽고 나서는 도서관 책시렁 아주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난 다음 신나게 읽을 책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우리 살림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가난하다면 아이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읽을 책이 또 하나. (4342.2.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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