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 임영인 신부의 노숙인 이야기
임영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93 ― 노숙자, 노숙인, 떨꺼둥이, 우리 이웃
 : 임영인,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 책이름 :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 글 : 임영인
- 펴낸곳 : 삶이 보이는 창 (2009.2.16.)
- 책값 : 1만 원


 (1) 이 땅에 새로 찾아온 봄볕을 느끼면서


 금토일 사흘 동안은 고향인 인천에 마련한 동네도서관을 열어 놓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금요일 아침 일찍 일산에서 길을 나섭니다. 옆지기가 식구들이 보고 싶다고 하여 지난주 월요일에 아기와 함께 일산에 온 다음, 옆지기는 내내 일산에 있고, 저는 혼자서 인천과 일산을 오갑니다.

 얼핏 보기에 전철로 움직일 수 있어 괜찮은 듯 여길 수 있지만, 국철 맨 왼쪽에서 3호선 맨 위로 오가는 길은 몸이며 마음이며 많이 지치게 됩니다. 어쩌다 한 번이야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이지만, 이틀에 한 번 꼴로 오가야 하면 퍽 괴롭습니다. 그나마 날마다 오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 할 텐데, 이렇게 왕복 여섯 시간 거리를 오가면서, 지난 1994년 한 해 동안 인천 남쪽 끄트머리에서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학교까지 전철로 오갔던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무렵(요즈음은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인천 서남쪽 끄트머리에서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학교까지 전철로 오간 사람이 드물게 있었고, 네 해에 걸쳐 전철로만 다니고 하숙이나 자취를 안 한 사람 또한 아주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냥 전철만 타면 된다고 여기는 잘 모르는 이들은, 왜 우리가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에서 나와도 학교에 아홉 시가 다 되어야 닿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런 통학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그리고 저녁에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전철역으로 달음박질을 치는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녁 여덟 시 사십이 분 전철을 이문역(이제는 외대앞역)에서 타면 집에 열두 시에 닿고, 저녁 아홉 시 사십팔 분 전철을 타면 집에는 한 시가 넘어서야 닿는데, 이튿날 다시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까마득했습니다.


.. 일반인이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면 공안원들이 그를 짐수레에 실어 나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숙인이라고 짐짝 취급을 한 것이다 ..  (190쪽)


 오늘도 머나먼 길을 빙빙 돌아 인천으로 옵니다. 한국에서 모든 길은 서울로만 이어질 뿐, 지역과 지역이 이어지는 길은 뚫리지 않을 뿐더러 뚫으려 하지 않으니, 애타는 사람만 애타고 애닳는 사람만 애닳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된 길을 오가게 되면서 고단한 마음을 조금씩 추스르면 ‘책읽을 겨를’을 좀더 낼 수 있곤 합니다. 그래 보아야 고단한 몸을 이기지 못하면 곯아떨어져 어설피 졸면서 다니게 되지만, 뒷목과 이마와 눈자위를 주무르면서 책장을 펼쳐 끝끝내 한두 권씩 읽어내곤 합니다. 어쩌면, 집과 가까운 데에서 학교를 다녔다든지, 옆지기 식구네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먼 길을 돌면서 책을 읽는 겨를을 못 내었을는지 모릅니다(그래도 그때에는 그 나름대로 다른 겨를을 내었을 테지만). 그리고, 새벽밥 먹고 서울로 가는 첫 전철을 거의 날마다 타면서 새벽바람으로 서울로 일하러 가는 아주머니들(거의 모두 서울 큰 건물 청소일을 하시던 분들) 삶자락 한 귀퉁이를 아주 살짝이나마 엿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단한 길을 늘 오가는 사람이 퍽 많음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지옥철’이 무엇이고, 어떻게 전철 한 칸에 사백 사람 넘게 꾸역꾸역 태워 숨도 못 쉬게 되는지를 몸으로 느꼈으며, 만화책에서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창문에 얼굴이 찡기는 일’이 만화가 아닌 진짜 날마다 늘 있는 일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제 몸은 군면제 대상자였음에도 줄을 잘못 서서 군대에 갔고, 그 군대도 강원도 산골짜기 민통선 안쪽 가장 깊숙한 데로 끌려가면서 군대란 어떤 곳인가를 몸소 깨닫게 되었듯, 고달픈 전철길을 여러 갈래로 타야 하는 몸이 되면서, 이 고달픈 길에 몸을 싣는 수많은 이웃을 알게 되는 셈이라 할까요. 책으로만이 아닌, 지식으로만이 아닌, 들리는 이야기로만이 아닌. 강 건너 불구경으로만이 아닌,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이 아닌, 남들 얘기라 한귀로 흘리게 되는 모습이 아닌.


.. 10년 동안 계속된 거리 급식은 역설적으로 노숙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이다. 자존감이 무너진 사람이 어떻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노숙인이 받는 느낌은 ‘예배와 밥의 거래’이다. 예배를 위해 역 광장이나 지하도 바닥에 앉아 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갑다. 그 눈총에 짓눌려 벽을 향해 쪼그리고 앉거나 선 채로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한 시간 이상이지만, 식시시간은 불과 3∼4분 … 거리에서 밥을 나눠 주는 모 교회는 교회 건물도 짓고, 병원도 짓고, 수련관도 지었지만, 여전히 거리 급식을 ‘강행’한다 ..  (173∼174쪽)


 동인천역에 내려 인현동 1번지 안쪽 골목길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인천에 살아남은 어느 골목길이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이곳 인현동 1번지 골목도 참으로 좁고 조용합니다. 자동차는커녕 오토바이조차 들어갈 수 없는 가운데, 국철을 바로 옆으로 끼고 있습니다. 국철이 놓이기 앞서부터 있던 동네라, 이곳 인현동 1번지는 국철길에 따라 둘로 쪼개져 있습니다.

 인천 바깥사람이 인천에 오면 늘 누구나 느낀다고 하듯, ‘전철과 고속도로 때문에 남과 북으로 나뉜’ 삶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속도로나 기찻길 때문에 동네가 둘로 갈리고 이웃이 멀리 떨어지는 일은 시골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서울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잘사는 동네와 덜 잘사는 동네로 나뉜다지만, 인천은 전철길과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못사는 동네와 또 못사는 동네가 갈려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까지 어느 한 번 ‘고속도로 소음피해’ 보상을 받은 적이 없고, ‘전철 소음피해’ 배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애써 일군 땅뙈기를 빼앗기며 조금 보상을 받은 적은 있으나, 소음과 진동으로 수십 해에 걸쳐 받은 피해를 갚음받아야 함을 어느 누구도 헤아리지 않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전철길이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데에도 인현동 1번지 골목이 참 조용합니다. 옐로우하우스와 산업물류 기차길이 집 코앞에 붙어 있는 신흥동3가와 숭의1동하고 비슷합니다. 참 뜻밖이라고 느끼면서, 이렇게 이곳에서밖에 살 수 없던 골목사람들은 이분들 나름대로 소음피해를 덜 받도록 집을 짜고 골목을 이루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스칩니다. 시끄럽고 고달파도, 다른 어디로 옮길 수 없는 형편이니, 이곳에서 뿌리내리면서 살아갈 마음으로 더 땀흘리고 애써서 동네를 가꾸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동정과 연민을 넘어선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권’. 내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 인권이다.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서 깔깔한 입안 탓에 채 못 다한 말이었다. 노숙인 문제를 인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숙인 문제가 인권 문제인 것은, 노숙인이 불쌍하기 때문에 돕는다는 것을 넘어, 그들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권의 묹는 개인의 느낌이나 체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람을 이성적으로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모두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사람이라고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한 인간이 방치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치가 추락하도록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155쪽)


 도서관에 앉아 밀린 일을 하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다가, 봄날 햇볕이 더없이 좋다고 느끼면서, 이 햇볕을 그대로 두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 문을 걸어잠그고 쪽지를 문에 붙입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걸쳐 밖으로 나옵니다. 따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립니다. 옆지기가 손전화 쪽지를 보내옵니다. 내 얼굴이 지치고 화가 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지치기는 지쳤겠지만 화가 날 일이 없는데 왜 그리 느꼈을까 생각하다가, 사람이 너무 지쳐서 얼굴에 아무런 빛이 들지 않으면 뚱하거나 꿍해 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화 안 나고 짜증 안 났어도 그처럼 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옆지기가 이렇게 느끼면 아기는 어떻게 느끼려나? 아기도 지 아빠가 힘들어하는 줄 느끼면서, 아빠를 좀 쉬게 해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몰아 도원동과 선화동을 거쳐 신흥동3가에 닿습니다. 오늘은 학익동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숭의1동으로 접어들어 기차길 옆 텃밭을 신나게 사진으로 담는데, 디지털사진기가 더 눌러지지 않습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메모리카드가 0. 헉. 꽉 찼잖아. 아이고, 예비 카드를 안 들고 나왔네.

 이제 등판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즈음이었습니다만, 다시 돌아가야 할 판.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돌아가야지. 저런. 젠장. 바보. 밥통.


.. 그가 나가고 난 뒤 실무자들은 나를 구박했다. “신부님이 그렇게 원칙 없이 대하니까 우리가 피곤해요. 신부님도 피곤하고요. 우리가 상대를 하려고 해도 그냥 신부님만 만나려고 하잖아요. 그리고 …… 믿음이 가요?” 그래, 맞는 말이다. 피곤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렇지만 노숙인에게 속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속자고 시작한 일 아닌가. 그리고 어차피 인생이란 속고 속이는 것 아닌가. 노숙인들만 거짓말을 하고 반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거짓말을 안 하는가. 그깟 만 원짜리 한 장에 뭐 그리 화낼 일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왜 작은 거짓에는 분노하고, 큰 거짓에는 관대한 것일까 ..  (102쪽)


 자전거머리를 돌려 돌아오는 길, 숭의1동과 숭의2동 갈림길 철길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는 떨꺼둥이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를 봅니다. 햇볕 잘 드는 곳에 띄엄띄엄 둘러앉아 낮부터 소주병을 까고 있으십니다. ‘여론은 겨울에만 노숙자 편’이라 했고, ‘자연은 봄부터 노숙자 편’이라 했습니다. 바야흐로 따뜻한 봄철을 맞이해,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고 따순 햇살을 받으면서 철길에 앉아서 까는 소주잔이라(이 철길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으나, 철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들이 그야말로 봄나들이 즐기시는 셈이로군요. 꽃지짐 없고 꽃노래 없지만, 꽃다운 날씨를 머금으면서 하루 한때를 마음껏 즐기는.


.. 노숙인이 쉼터를 꺼리는 사정도 있다. 쉼터는 대부분 옹색한 구조라서 군 내무반처럼 배치되어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해야 하니 개인적인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규칙은 엄격하고 노숙인의 입장에서 볼편할 수밖에 없다 … 나이 40∼50인 사람들이 군인도 아닌데, 군 내무반보다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1∼2년 이상을 청교도처럼 생활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런 생활을 무난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게 아닐까? 노슥인들도 군 내무반 수준이면 살 만하다고 말한다. 물론 ‘노숙인 주제에 그런 시설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  (23∼24쪽)


 다시 옐로우하우스 앞을 지납니다. 한낮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골목을 살짝 기웃거립니다. 어릴 적 ‘옐로우하우스’라는 이름은 익히 듣고 말했어도 무엇을 하는 줄 모르던 때에는 이 골목 안쪽에 있는 오락실에 가느라(그때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오락실이 여기에 있었기에) 늘 지나다니곤 했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여느 날 낮부터 오락실에 죽치고 있다가 해 저물 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며 ‘늦게까지 오락실에 있다가 가느라 또 혼날 텐데’ 하고 걱정하던 우리 같은 꼬맹이들을 바라보던 옐로우하우스 아가씨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스물 몇 해 앞서 이 골목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은 아직도 이 골목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다른 데로 옮겨갔을까요? 다른 데에서 다른 일을 할까요? 이 일을 접고 할 만한 다른 일이 있었을는지, 다른 일을 하도록 포주가 놔주었을는지, 그분들 다른 식구들은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는지, 몽실몽실 궁금해집니다.

 자전거는 달려서 신광초등학교 앞을 지납니다. 초등학교 앞임에도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건널목 푸른불을 아랑곳않으며 내달리는 수출입 물동량 실은 큰 짐차를 바라보면서 뒷덜미가 쭈뼛쭈뼛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인데, 저 큰 짐차를 모는 분들은 당신네 아이가 이 학교에 다녀도 저렇게 함부로 내달릴 수 있을까? 자기네 아이가 안 다닌다 하여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 스물여덟 해 앞서 이 길을 날마다 걸어다니던 꼬맹이 얼굴을 떠올릴 문방구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가 싶어 천천히 지나가지만, 떠오르는 얼굴도 없고 저를 알아보는 얼굴도 없습니다.

 신흥시장 옆길로 빠집니다. 유동세거리 앞으로 나옵니다. 길을 건너고 전철길 밑으로 낸 개구멍으로 지나갑니다. 이제 배다리 헌책방골목이 나오고 집에 다 왔습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이고 집으로 올라갑니다. 오늘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어느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습니다. 이분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고 무엇을 이야기하게 되려나 살짝 궁금하지만, 이 궁금함은 접어둡니다. 어쩌다 한 번, 아니 여태껏 돌아보지 않다가 한 번 찾아와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여쭙는 방송국 사람들한테 속깊거나 너른 생각줄기를 바라는 일은 처음부터 잘못이 아니랴 싶습니다. 늘 곁에 있으면서 돌아볼 줄 알고, 언제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아니었던 사람한테 참과 거짓을 아무리 입 아프게 떠들어 보았댔자, 고이 받아들일 가슴이 있겠느냐 싶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도 없지는 않을 테지만, 왠지 서글프고 씁쓸합니다. 자전거를 메고 집으로 오니 고양이가 창문 턱에서 야옹거리며 반깁니다.
 





 (2) 떨꺼둥이와 어깨동무하는 삶,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성공회 신부 임영인 님이 서울역 둘레에서 떨꺼둥이(노숙자) 삶을 어깨동무하면서 보내 온 이야기를 담은 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떨꺼둥이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떨꺼둥이’란 옹근 토박이말로, “기대거나 지내던 곳에서 가진 것 없이 쫓겨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저는 이 낱말을 몰랐습니다만, 노숙자 인권을 헤아리는 일을 하는 분들이 내는 소식지 가운데 하나가 이 낱말로 되어 있어서, 이 소식지를 받아본 뒤로는 ‘노숙자’라는 말을 안 쓰고 ‘떨꺼둥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라는 책에서는 ‘노숙자’라 안 하고 ‘노숙인’이라 쓰는데, 이 낱말은 그리 알맞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고친들, 또 ‘장애우’로 고친들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노숙인’ 아닌 ‘노숙우’라 한들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든, 가리키는 우리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 세상입니다. 우리 스스로 ‘장애자-노숙자’라는 이름으로 떳떳이 말하면서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 일반적인 노숙인은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평범해서 노숙인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5∼10만 명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숙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노숙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들은 여인숙, 쪽방, 고시원, 사우나, 만화가게, PC방, 기도원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노숙인은 거리가 역사 주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의식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그들이 노숙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  (13쪽)


 성공회 임영인 신부님은 ‘법에 없’을 뿐더러 ‘법이 지키지 않’는 사람들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다시서기센터’를 열고, 서울역 앞에 ‘다시서기진료소’도 열었습니다. 혼자힘이 아닌 여러 힘이 모인 일이며, 기꺼이 애쓰는 많은 이들 땀방울이 있기에 서울역 한켠에 컨테이너 건물로 진료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법이 내친 사람이 떨꺼둥이이고, 법이 껴안지 않는 사람이 떨꺼둥이입니다. 그래서 떨꺼둥이와 함께하는 일은 법을 넘어서는 일이 될밖에 없습니다. 무료진료소도, 떨꺼둥이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돕는 손길을 나누는 일도, 어느 개인이나 모임이나 종교에서 할 일이 아닌 나라에서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라에서는 이런 데에 마음을 안 쏟습니다. 눈길을 안 돌립니다. 오로지 하나, 잘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 수 있게 하는 경제성장 숫자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눈길은 오직 여기에만 가 닿습니다.


.. 노숙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이들에게도 삶의 윤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고 꽃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에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  (52쪽)


 못사는 사람, 없는 사람, 빼앗긴 사람, 잃은 사람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이며 이웃이고 동무이고 식구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만 한국사람이 아니라 돈이 적거나 없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름있는 사람만 한국사람이 아니라 이름없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집 있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차 굴리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대학 나온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영어 잘하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집 없고 차 없고 대학 안 나오고 영어 못해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주노동자도 한국땅에서 함께 땀흘리고 어깨동무할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낯선 데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사는 고운 벗이요 이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네 보건복지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다면, 떨꺼둥이뿐 아니라 나이든 사람들도, 장애 있는 사람들도, 어린 아이들도, 밑바닥과 벼랑과 구석자리에 내몰린 사람들도, 이주노동자들도 고른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고르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한국이라면, 처음부터 떨꺼둥이가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구나 고르게 살 수 없도록 짜여져 있을 뿐더러, 우리 스스로 내 한 몸 밥그릇 더 단단히 움켜쥐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자꾸자꾸 밑바닥에 내몰리는 사람이 늘고, 그예 떨꺼둥이가 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나라 정책도 큰 잘못이지만 우리 생각과 삶 또한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 평일에도 (동냥을 하러) 하루 평균 20∼30곳 정도 교회를 다닌다. 그렇게 돌아다니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그래도 일 주일에 하루는 쉬어요.” 일 주일에 하루는 쉰다고? 녀석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나 보다. 그 당혹스러움에 구걸이 무슨 직업이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물을 수는 없다. 적어도 그런 질문은 녀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능청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우리도 일 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하잖아요.” 녀석은 교회가 문을 닫는 월요일에 쉰다고 했다. 자식이 비록 교회 꼬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49쪽)


 이야기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는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엽니다. 우리한테 이야기를 겁니다.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떨꺼둥이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가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로만 느껴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나즈막하고 털털한 목소리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를 이야기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손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 숱한 떨꺼둥이 마음을 헤아리는 신부님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않으려 하고 귀가 있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우리들한테,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꾸준한 말걸기로 일러 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요, 다 같은 이웃이요, 다 같은 동무요, 다 같은 아름다운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4342.3.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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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용감하다
이두호 지음 / 행복한만화가게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74 ― 만화쟁이가 되고 싶으면 먼저 사람이 되자
 : 이두호, 《무식하면 용감하다》


- 책이름 : 무식하면 용감하다
- 글ㆍ그림 : 이두호
- 펴낸곳 : 행복한만화가게 (2006.3.2.)
- 책값 : 9800원



 (1) 우리가 걷는 길


 만화를 그리는 이두호 님은 이제 ‘만화쟁이’ 아닌 ‘교수님’입니다. 스스로 ‘교수’라는 이름보다 ‘만화가 선생’이라는 이름이 더 반갑다고 하는 이두호 님입니다마는, 만화쟁이가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날이 올 줄은 거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이제는 으레 교수가 되고 있는 사진쟁이들이지만, 사진쟁이가 대학교에서 ‘사진학과 교수’가 될 줄 알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 봅니다. 그저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을 뿐이고, 사진을 찍어 무슨 밥벌이가 되느냐 여겨졌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림 그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테며, 글쓰는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세상이 문화와 삶을 바라보는 틀이 아주 더디지만 하나둘 넓어지면서, 다 다른 자리에서 제 깜냥껏 애쓰는 사람들 목소리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습니다.


.. “공모전에 갔다 오냐?” 풀죽은 모습으로 겨우 대답을 하자 선생님이 물었다. “이리 와 앉아 봐라. 그래, 어떻드나?” “부끄럽습디더. 다른 애들 그림은 크기도 하고 다 잘 그렸는데 제 그림은 쪼매나고 못 그렸고 보기도 싫고 낯 뜨거워 죽겠습디더.” “왜 낯 뜨겁드나?” “지 그림이 너무 초라해서예.” 남무오 선생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니 그림에 손질해 준 적 있었나? …… 한 번도 없지?” “예.” “거기 일등 한 그림 봤제? 그거 걔가 그린 것 같더나?” “정말 잘 그렸습디더.” “아니다. 내 보니까 니가 젤 잘 그렸어! 니 그림은 니가 다 그린 거 아이가! 니 그림이 진짜로 제일 잘 그린 기다! 그러니까 그 그림에 대해 신경 쓰지 마라. 상 받고 안 받고는 한 개도 안 중요하다.” ..  (22쪽)


 그런데 이와 같이 다 다른 목소리가 스며드는 크기는 얼마쯤일까요. 다 다른 목소리가 우리 삶터 곳곳에 스며들기는 하는데,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들은 어떤 매무새일까요. 우리 스스로 다 다른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듣고 있는지요.

 말로는, 또 글로는 다 다른 목소리를 높이 여긴다고 내세우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하나도 안 바뀐 채 살아가지는 않나요. 우리 스스로 다 다른 목소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매무새라면, 아이들을 초중고등학교에조차 안 보낼 수 있는 한편, 대학교라는 데에 굳이 보낼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서, 이런 생각을 생각이 아닌 삶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구태여 학원에 안 보낼 수 있습니다. 집에서 어버이 스스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웃집 어른한테 배우도록 할 수 있고, 다른 고장 어른한테 배우도록 아이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억대 연봉 받는 회사원이 되기를 꿈꾸는 우리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제도권 입시지옥에 빠져들도록 내밀게 됩니다. 학원에서 영어니 수학이니 논술이니 가르치도록 등을 떠밀고 맙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하게 꽁꽁 틀어쥐면서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에만 머리를 파묻게 합니다. 대학교 들어가는 그날까지 ‘네 푸른 날을 버리라’는 터무니없는 어버이 욕심을 아이한테 짓눌러 집어넣습니다.


.. 내 기억으로 나는 어머님을 거역한 적이 거의 없다. 어떤 결정을 할 때도 이게 어머님이 기뻐하실 일인가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러니 못된 짓은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이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를 생각하면 도저히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 우리 동네 건너편에는 피난민 판자촌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우리동네 형편이 난민촌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어둠에 잠긴 마을을 내려다보면 망망한 검은 바다 위에 반딧불 하나가 깜박깜박 하고 있었다. 바로 우리 집이었다.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 다른 집들은 기름을 아끼느라 불을 꺼 놓아 동네 전체가 깜깜했지만, 어머님이 내가 올 시간에 맞추어 불을 켜 놓고 기다리시는 우리 집은 늘 환했다. 마치 등대 같았다. 배가 바른 길로 들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등대 말이다. 그 불빛을 보면 언제나 가슴속이 아주 환하고 따뜻해졌다. 어머니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주무시는 법이 없었다 …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때 동네에 매촌이라는 공용 종이 있었다. 한 40살쯤 되었는데, 마을의 궂은일은 다 맡아서 했었다. 우리 또래 애들한테도 꼬박꼬박 인사를 했는데, 내가 지나가면 ‘도련님 나오셨습니까’라고 인사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나한테 매촌이 종이기는 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셨다. ‘오냐’ 하지 말고 ‘예’라고 존칭을 쓰라고 했고, ‘매촌아’ 하고 이름도 막 부르지 않도록 나한테 교육을 시켰다 ..  (37, 42, 177쪽)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입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2009년 3월 19일 하루는 딱 한 번일 뿐입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열다섯 살 나이는 딱 한 번 거쳐 지나갈 뿐입니다. 열세 살도, 열여섯 살도, 열아홉 살도 한 번일 뿐입니다. 스무 살이나 스물두 살이나 스물다섯 살이 두 번 찾아올까요?

 세상을 참다이 살아가는 길을 뒤늦게 깨달아 나이 예순에도 젊음을 누리기는 하지만, 나이 열일곱에는 열일곱에 걸맞는 푸름을 누리고, 나이 스물일곱에는 스물일곱에 걸맞는 젊음을 누려야 할 우리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월은 한 번이요 공부는 언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랑말랑한 머리일 때 시험성적을 더 잘 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이와 마찬가지로 말랑말랑한 머리일 때 세상경험을 더 치러내면서 더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거나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영어를 가르치면 영어를 더 잘할 수 있듯이, 어릴 때 우리 말을 올바르게 가르치면 우리 말을 잘못 쓰는 법이란 없으며, 어릴 때 착하고 바른 마음이 깃들도록 이끌면 아이들이 어긋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나이에 맞는 길은 언제나 한 번뿐이요, 하고픈 일은 언제가 되든 아주 넉넉하고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마흔에도 대학생이 될 수 있고, 나이 쉰에 대학생이 된다고 나무랄 사람이 없습니다. 외려 늦깎이로 공부할 때 더 잘해 내고 훌륭히 치르는 사람을 보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 남 선생님과 유명수 선생님이 술을 마시다 의견충돌로 다투신 적이 있었다. 유명수 선생님이 내가 재주가 있다면서 서울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하신 모양이다. 그러자 남 선생님은 완강히 반대하셨다. 유명수 선생님이 당신은 왜 아이의 앞길을 막으려 하느냐고 따지자, 남 선생님은 두호가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서 커야지, 당장 돈 몇 푼 생긴다고 보낼 수는 없다고 하셨다 … 세월이 지난 다음 생각해 보니, 당시 내 그림은 기교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깊이가 없었다. 더 치열하게 작업해서 주제에 천착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 아무도 내게 깊이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해 주지 않아, 내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  (53, 56쪽)


 그림이 좋아 그림길로 가겠다는 이들은 어떤 어려움을 치러야 한다 할지라도 어릴 적부터 그림길을 걷습니다. 글길을 걷든 사진길을 걷든 똑같습니다. 종교길을 걷든 철학길을 걷든 학자길을 걷든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옳은 공부길이 아닌 돈바라기 공부길이거나 이름바라기 공부길일 때에는 다릅니다. 옳은 그림길이나 옳은 글길이 아닌 돈바라기 그림길이나 이름바라기 글길일 때에는 다릅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길이었을 때에는 수많은 가시밭길이 제 삶을 가꾸어 주는 좋은 길입니다만, 스스로 돈과 이름 따위를 꿈꾸며 걷는 길이었을 때에는 수많은 가시밭길이 가시와 같이 몸에 꽂히거나 박히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가시들은 뒷날 내 이웃들이 뾰족뽀족 찔리도록 합니다. 나 스스로 못 느끼지만 이웃들은 피를 흘리며 아프게 되는 가시가 내 몸뚱이에 촘촘히 박혀 있게 됩니다.


.. 이 집을 찾아갈 때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댁에서 밥을 맛있게 먹을 때는 주린 배속에 먹을 게 들어가니 행복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밥숟가락을 놓는 순간부터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단지 밥을 얻어먹기 위해 남의 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창피해지는 것이다. 모멸감에 가까운 그 느낌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참담함이었다. 나는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안다. 굶주림은 사람에게서 염치를 앗아가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 목이 메었다. 우리의 가난도 목이 메었고, 이 가난을 함께 견디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도 목이 메었다. 우리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꾸역꾸역 입에 빵을 들이밀었다. 눈에서는 괜한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  (74∼76쪽)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걷는 사람은 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이 걷는 길에는 돈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많든 적든 언제나 알맞춤하게. 그래서 아름다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늘 가난을 옆에 끼고 살면서도 가난을 흐뭇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가난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뼈속 깊이 고맙게 느낍니다. 있으면 있는 만큼 누리거나 나누고, 없으면 없는 대로 누리거나 나눕니다.

 이와 달리 아름다움이 아닌 돈을 찾아 길을 걷는 사람은 틀림없이 돈을 움켜쥡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거머쥐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움켜쥐거나 거머쥘 수 없는 넋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껍데기와 몸뚱이를 돈으로 처바르며 곱게 보이고자 애쓰지만, 겉치레 예쁜 매무새는 오래 버티기 어려울 뿐더러 스스로 짐지어내기에도 벅찹니다. 무엇보다도 속알맹이 아름다움이 아닌 겉치레 예쁨이기 때문에, 제 주머니에 돈이 아무리 많이 넘쳐도 많은 줄 느끼지 않습니다. 더 가지려 하고 더 누리려 합니다. 혼자서만. 이웃한테 나누려는 마음은 쥐뿔만큼도 없는 가운데. 죽는 날까지 돈굴레와 이름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 좁은 굴레가 아주 너른 세상이라도 되는 듯 잘못 알기 마련이고. 나중에는 잘못 아는 줄조차 느끼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따로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았어도, ‘가난 = 하늘나라 들어가는 열쇠’임을 삶으로 곰삭이며 어깨동무를 합니다. 돈을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수없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또 들었어도 ‘가난 = 어린이 마음 = 하느님 마음’인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지식으로는 알아도 몸으로는 모릅니다. 지식은 돈과 같이 넘치지만, 사랑은 하나도 없고 믿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2) 내가 걷는 길


 저는 대학교를 잠깐 다니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안 들어갔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잠깐 몸을 담근 일도 여러모로 세상을 보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얻은 무엇이 있는 만큼 잃는 무엇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짧지 않은 여러 해에 걸쳐 더 너른 세상을 더 다부지게 두 다리로 디디면서 지낼 수 없었으니까요.

 옆지기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이고 옆지기는 중졸인 셈인데, 고등학교를 사이에 그만둔 옆지기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왜 나는 이렇게 고등학교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눌려 지냈으며, 그 굴레를 떨치고 일어나며 떳떳하고 당차게 살아갈 힘을 못 내었는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때 고등학교를 떨쳐냈다면 훨씬 더 이 땅을 사랑할 길을 찾았을 테며, 더더욱 이웃을 어깨동무할 길을 찾았으리라 보거든요. 다만, 그 길을 못 갔기 때문에 그 길대로 갔으면 좋았으리라는 꿈을 가끔 꾼다고 하여도 지금 걷는 제 길을 더 힘껏 가자고 다짐합니다. 못 간 길을 아쉬워할 겨를에 지금 가는 길을 더 즐겁고 힘차게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 만화가가 되기로 작정하고 나서 어떤 만화가가 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선은 싫증을 내지 않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 나라 역사물이 좋겠다 싶었다. 옛날이야기나 역사,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했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고단하고 어렵게 살던 사람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휘말려 어쩔 수 없는 고통을 겪지만 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애쓰는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추한 사람들, 양반, 노비, 비렁뱅이, 기생, 농민, 화적, 보부상,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 … 편집자가 부탁하는 것은 거절하고 역사물만 그리겠다고 우겼으니, 아무개는 이제 배가 부른 모양이라는 빈정거림도 감수해야 했다 … 처음 독대를 등장시켰을 대 왜 이렇게 못생기게 그렸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편집장도 원고를 받아들고 하는 말이, “이게 주인공인가요? 왜 하필 주인공을 못생기게 그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내가 답하길, “못생긴 놈이 잘생긴 놈을 이기면 더 재밌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못생긴 사람이라고 세상에 좋은 일 못하라는 법도 없고, 잘나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만화 내용에 어떤 캐릭터가 근본적으로 만느냐가 우선적인 것이고, 또한 못생긴 것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캐릭터를 멋있게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력 있는 인물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 ..  (117∼134쪽)


 둘레에서는, 그러니까 아버지라든지 피붙이라든지 저를 아끼고 걱정해 주시는 여러 분들은 ‘아직 늦지 않았으니 대학교 졸업장’을 따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 졸업장이 없으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어른이 하는 말이니 들으라’고들 말씀합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참말 저를 걱정해 주시는 ‘어른’이라 한다면, 졸업장 없이도 이 나라 이 땅에서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애써 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졸업장 있는 사람만 높임을 받는 이 나라 이 땅이 아니라, 졸업장 없는 어느 누구이든 제 솜씨와 재주와 깜냥으로 아름답고 싱그러이 일하고 놀고 어울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셔야 하지 않느냐고.

 우리가 서로 똑같은 사람으로서 사랑스럽고 거룩하다면, 사람으로 보아야지 졸업장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맨몸뚱이 사람으로 보아야지 돈주머니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속에 깃든 마음과 넋을 읽어야지 얼굴과 몸매를 읽어서는 안 됩니다.


..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놀란 사실 중 하나는, 평생 그림을 그려야 하는 만화가를 지망하면서도 기본적인 그림 실력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만화가를 지망한다면 그림의 기초는 확실하게 다져져 있는 상태에서 기술적인 문제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뜻밖에도 기초 실력이 탄탄한 학생이 드물었다 …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면 많다고 줄여 달라는 부탁을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기성 만화가들은 대개 하루 종일 작업을 한다. 마감이 다가오면 몇날 며칠 밤샘도 한다. 이미 일정 수준에 이른 그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한참 실력을 연마해야 할 학생들이 과제조차 힘겨워 하면, 어떻게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따라잡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나은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말이다 ..  (266∼267쪽)


 가끔 ‘국졸이면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느니 ‘고졸이면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느니 하는 신문기사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깟 가방끈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런 어이없는 기사를 쓰느냐 싶은데, 사람이 할 줄 아는 재주와 나눌 줄 아는 슬기로 ‘교사’가 되든 ‘교수’가 되든 해야지, 가방끈이 길면서 재주와 슬기 없는 사람이 교수 되는 일을 꾸짖을 줄 알아야지, 가방끈은 있되 재주도 슬기도 갖추지 않는 이가 함부로 초중고등학교 교사일을 맡는 일을 가로막을 줄 알아야지 …….

 우리 아이를 보면서 걱정이 많이 되는 대목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훌륭하고 아름다이 ‘교사라 하는, 하늘이 내려준 거룩한 일’을 맡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교사 = 쇠밥그릇’으로 아는 분 또한 그지없이 많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에서,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이 사람된 그릇을 익힐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살가운 벗을 사귀며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체벌이 아닌 폭력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우리 나라요, 교육이 아닌 입시만 판치고 있는 우리 나라요, 어버이들 얕은 욕심에 따라 찌들고 무너지고 아파하는 아이들이 넘치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 나라 이 땅에서 조용히 머물면서 오순도순 살고픈 작은 꿈을 어떻게 ‘학교에서 보내는 긴 나날’ 동안 다치지 않게 할는지는 알 노릇이 없어요.


.. 지적한 장면들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일부러 넣은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진행상 꼭 필요했기 때문에 들어간 장면들이다. 표현수위도 어느 누가 보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포츠신문의 독자는 성인들이다. 신문이라는 특성상 아이들이 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은 해야 하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 이 정도 표현을 못한다면 어떻게 작품을 하겠는가?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할 시간에 작품에 대한 기본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처지가 한심스럽게 여겨졌다 … 대체 내가 무슨 일 때문에,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지루한 조사가 계속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소리를 듣고 있으니 만정이 떨어졌다. 대한민국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내가 초라했다. 조사가 끝나고 내가 물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내가 지금 몇 시간 와서 조사를 받았는데,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태 만화를 그리면서 내 만화를 한 번도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 만화를 보면서 컸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에게도 조금도 거리낌없이 보여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일로 와야 한다는 게 환멸스럽습니다.” … 전화는 며칠이 지나서야 걸려왔다. “혹시 신문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는데요.” “이 선생님의 〈째마리〉가 기소되었습니다.” “…….” “검찰청에 와서 서약서를 써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서약인데요?” “신문연재 만화를 청소년에 유해하지 않게 그리겠다는 서약서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린 만화를 다 부정하란 말인가? 화가 치밀어올랐다. “못 쓰겠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런 세상에서 만화를 그리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만화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가 없는 세상에 가서 만화를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 202년 4월, 5년이나 질질 끌었던 재판이 무죄로 판명이 났다. 정말 지리하고 분통터지는 세월이었다. 이 기나긴 세월 동안 만화가들의 창작 의욕은 뿌리째 흔들렸으며 자존심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 작가인 내가 봐도 눈살 찌푸려지는 작품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작품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간섭과 규제를 하다 보면 끝이 없고, 규제를 받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작품도 나올 수 없다 ..  (232∼234, 239, 249쪽)


 저와 옆지기는 법이 없는 삶을 꿈꿉니다. 우리 스스로 법에 매이지 않으면서 살고자 합니다. 평등법이 있다고 하여 평등을 지키려는 삶이고 싶지 않습니다. 평등법이 없어도 평등 그대로 녹여내며 살아갈 뿐입니다. 평화법이 없어도 평화를 즐기고 나누며 살아갈 뿐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있다 한들 이 따위 법이란 지키지 않을 생각인 한편, 생각조차 할 값어치가 없다고 느낍니다. 옳지 않은 집시법에 매여야 할 까닭이 없고,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 예방주사나 의료보호법을 따를 쓸모가 없다고 봅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나라에서 못박거나 벌금을 매긴다고 해서 쓰레기를 안 버리는 우리 삶이 아닙니다.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우리 마음을 다치게 할 뿐더러, 우리 터전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쓰레기를 안 버립니다. 헤프게 쓰고 넘치게 즐기다가 마구 버리지 않는 우리 삶입니다만, 처음부터 헤프게 쓸 돈이 있지 않게끔 주머니를 가볍게 합니다.

 석유를 비롯한 지구자원이 걱정이 되니,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걷습니다. 1회용품이란 쓸 일도 없지만 처음부터 쓰지 않게끔 수저와 도시락통을 챙기며 다닌다든지, 가방이나 주머니에는 언제나 장바구니가 한둘쯤 들어 있습니다. 1회용품이 쓰이는 자리에 처음부터 아예 안 갑니다. 큼직한 할인마트에서 싸구려로 사들이는 물건이 없으니 집에 냉장고를 모실 까닭이 없고, 책읽기와 이야기나누기로도 하루해가 짧은 만큼 텔레비전을 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손으로 빨래하는 기쁨을 빼앗기기 싫으니 세탁기를 쓰지 않는 가운데, 걸레 빨아 무릎 꿇고 마루와 방을 훔치는 즐거움을 놓치기 싫으니 청소기를 쓰지 않습니다. 이보다, 애먼 전기를 이런 데에서 흘려보내는 일은 마음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철저히 작품 위주로, 예술지향주의로 갈 사람은 가고 그것을 접목해서 상업적으로 갈 사람은 또 그렇게 가면 된다. 그것을 한번 느껴 보지 못하고 상업적으로 가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나의 이러한 생각을 정부의 만화 관계자에게 말하고 제안을 했다. 만화축제나 전시에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많은 젊은 작가들을 외국에 보내 주자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을 보내는 것은 당장의 가시적 성과가 눈에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만화가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  (303∼304쪽)


 3000원짜리 고무신 한 켤레로 한 해 동안 즐겁게 걸어다닙니다. 구멍난 양말을 아무렇지 않게 신고 다닙니다. 많이 해진 가방을 틈틈이 기우면서 메고 다닙니다. 너무 오래 타서 고장난 자전거를 손질하고 매만지며 살금살금 타고 다닙니다. 굴러다니는 비닐봉지를 곱게 접어 가방에 챙겨 놓고 여러 해에 걸쳐 되씁니다. 길바닥에 널리는 일수명함을 주워 책갈피로 삼습니다.

 가난해서 아끼며 살자가 아닙니다. 가난하지 않아도 사람이 살아가는 바른 길이라고 느끼니 아끼며 살자입니다. 아끼며 살기에 나눌 수 있습니다. 아끼며 살기에 노상 즐겁습니다. 아끼며 살기에 허튼 데에 마음 빼앗길 일이 없고, 얕은 데에 끄달리지 않습니다. 아끼며 살기에, 내 삶뿐 아니라 옆지기 삶과 아이 삶을 사랑할 가장 아름다운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주 환하고 밝게 느끼면서 하루하루가 언제나 새롭고 싱그럽습니다.


 (3) 만화쟁이 발자취 《무식하면 용감하다》


 이두호 님이 만화를 그리며 살아온 발자취를 담은 이야기책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읽습니다. 글쟁이들이 글쓰며 살아온 발자취는 아주 흔하게 나와 있고, 그림쟁이와 사진쟁이가 살아온 발자취 또한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어쩐지 만화쟁이 발자취를 찾아보기란 너무 힘듭니다. 만화평론 하는 이들이 만화쟁이 삶을 살펴보고 낸 책은 있어도, 만화쟁이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은 아주 드물어요. 이웃나라 만화쟁이 데즈카 오사무 님 이야기책이 우리 말로 옮겨지기는 해도, 우리 만화쟁이 스스로 엮어내는 이야기책은 어인 일인지 나오지 않습니다.


.. 책보를 가지고 가서 모래를 퍼다가 학교 운동장에 씨름판을 만들기도 했다. 하루 종일 백사장에 있어도 놀거리는 무궁무진했다. 뛰어놀기도 지치면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래에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은 언제나 표정이 풍부했다. 하늘의 구름만 보아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갖가지로 모양이 바뀌는 구름은 얼마나 다채로웠던가.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부드럽게 흘러가는 강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잘 때도 있었다. 모래밭은 따스하고 아늑했다 ..  (12쪽)


 만화를 그리던 분들이 대학 교수가 되기도 하는 마당에, 이런 털털하고 수수한 이야기책이 못 나오는 까닭이 무엇인가 싶어 아쉽습니다. 만화쟁이 삶은 만화쟁이 스스로 펼쳐 보여야 할 텐데, 만화쟁이 스스로 펼쳐 보이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만화쟁이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는 뜻이라 할 텐데, 그 팍팍함과 고단함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만화쟁이 길을 걸었던 분은 없지 않았을는지요. 그리고 그 팍팍함과 고단함이 있기에 더욱더 만화라는 한길을 당차고 꿋꿋하게 걸을 수 있지 않았을는지요.

 잘나서 쓰는 글이 아니고, 못나서 못 쓰는 글이 아닙니다. ‘무식하’면 무식한 대로 쓰고, 똑똑하면 똑똑한 대로 쓰면 됩니다. 잘난 척이 아니요 못난 척이 아닙니다. 나라고 하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삶을 꾸리면서 내 일을 즐겨 왔음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덧바를 이야기 없고 덜어낼 이야기 없습니다. 고스란히 들려주는 이야기로 숨김없이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여러 테두리에서 생각하노라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우리한테 더없이 알뜰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책입니다. 그런데, 이두호 님 이야기책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만화쟁이 한길을 담은 책을 넘어, 한 사람이 제 넋과 얼을 다부지게 지키면서 걸어온 길을 애틋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 나는 어디를 가든지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우선 사 놓는다. 신기하게 이렇게 사 둔 책은 반드시 어디에선가는 써먹게 된다 … 내 작품에는 아버지들이 술 마시는 묘사가 아주 실감나게 잘 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가 술 드시는 걸 늘 봤기 때문이다. 리얼리티가 저절로 살아난다고 할까. 작품을 할 때는 열과 성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어야 좋은 작품이 된다. 창작을 하는 사람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이유가 이러한 데 있다 … 지금은 모르는 단어를 컴퓨터로도 검색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종이로 된 사전은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컴퓨터로 검색하면 찾고자 하는 단어만 뜨지만 종이를 넘기면 그 주변의 단어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앞뒤 페이지도 들춰보게 되어 우연찮게 마주치는 단어들이 많다. 마치 감자나 고구마를 거두어들일 때처럼 한 단어를 찾으면 그와 연관된 많은 단어들이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것이다 ..  (150, 152, 172쪽)


 만화를 좋아하기에 만화쟁이 이두호 님 작품을 좋아했고, 이두호 님 삶과 만화와 길이 담긴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좋아합니다. 만화에 담긴 사람들 삶을 좋아하기에, 이두호 님 만화에 담긴 사람들 삶을 좋아했고, 《무식하면 용감하다》에 담긴 만화쟁이 한 사람 삶을 좋아하게 됩니다.

 책을 덮으며, 이 책에서 이두호 님이 우리한테 들려주고 싶던 당신 길과 생각이 무엇이었을까를 가만히 되짚습니다. ‘만화쟁이에 앞서 사람이 되자’는 당신 길이 아니었을까 싶고, ‘만화를 그리면서도 내가 사람임을 잊지 말자’는 당신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4342.3.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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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아파트에 미친 한국? 아파트에 길들고 매인 한국!
 [잠깐 읽기 28] 전상인, 《아파트에 미치다》


- 책이름 : 아파트에 미치다
- 글 : 전상인
- 펴낸곳 : 이숲 (2009.2.25.)
- 책값 : 12000원



 (1) 집, 삶, 돈


 한국땅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서울은 ‘걷는’ 도시였습니다. 나라안에서 지하철과 버스가 가장 촘촘히 있어 어디를 가든 엉덩이 느긋하게 앉히며 다닐 수 있는 도시이기도 했지만, 산동네 비탈길까지 마을버스가 탈탈거리며 오르는 도시이기도 했지만, 두 다리로 걷지 않으면 다닐 수 없는 골목이 곳곳에 많은 도시였습니다.

 서양과 일본이 이 나라로 쳐들어오며 인천과 서울 사이에 철길을 놓기는 했습니다만, 철길을 타고 다닌 사람보다는 걸어서 인천과 서울을 오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걷는 시간을 아깝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버거운 짐바리를 이고 지고 안고 메고 하면서도 한나절이든 하루든 들여 걷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넓디넓은 서울이라지만, 동쪽 끝에서 서쪽 끝,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걸어서 오가는 데에는 네 시간이면 넉넉합니다. 버스와 지하철보다 느리다 하겠으나, 사람이 걷는 두 다리는 온 동네를 두루 거치며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코로 맡게 했습니다. 다 다른 동네에서 다 다르게 사는 사람을 마주치며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하는 한편, 모두 똑같은 사람이기도 함을 헤아리도록 했습니다.

 이제 서울은 ‘걷는’ 도시가 아닙니다. ‘타는’ 도시입니다. 탈거리 가운데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도시가 아니라 자가용을 타는 도시입니다. 한 집에 두 대씩 굴리는 자가용은 흔한 일이요, 자가용 없는 집이 없다고 할 만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서울만 이러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른 도시도 비슷하며, 다른 도시도 똑같이 ‘타는’ 도시가 되었으며, 시골 또한 ‘걷는’ 시골이 아닌 ‘타는’ 시골로 탈바꿈했습니다.


.. 아파트 위주의 주거문화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주택의 가치는 쉽게 계량화되었고, 그것이 재산증식 수단으로서의 주택수요와 겹치면서 주택의 과소비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나라의 아파트 가격은 한마디로 ‘미쳤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비싸졌다. 지금 현재 우리 나라는 한 개인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힘으로, 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태다. 자산이 아닌 소득을 통해 주택을 소유하는 일이 보통사람들에 무망해진 것이다. 게다가 주택 임대시장마저 우리 나라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수성을 갖고 있다. 바로 전세 제도다. 그리하여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것조차 자력으로는 버거운 곳이 바로 우리 나라인 것이다 … 2008년 11월 현재 서울시 전역에 걸쳐 시가 1억 원 미만의 아파트 가구 수는 겨우 592개만 남았다고 한다. 이른바 저가 아파트 가격이 뛰기 시작했던 2006년 9월 대비, 98.8%가 감소한 것이다 … 강북과 강남을 불문하고 이젠 고가의 아파트만 즐비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  (178∼181쪽)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예전에 살던 셋집 둘레를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아직 그 셋집이 그대로 있는가 궁금하여 슬그머니 길을 에둘러 가노라면, 높고 빽빽한 빌라들 사이에 옹크리고 있는 옛날 적산가옥 나무집이 빠꼼히 들여다보입니다. 용하다 싶으면서 반가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지나가곤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몇 해 지나지 않아 종로구 평동 둘레는 광화문 둘레와 마찬가지로 비죽비죽 하늘을 찌르는 아파트로 바뀌어 가리라 봅니다.

 지난날 신문을 돌리며 살던 이문동과 회기동과 석관동 둘레를 거닐기도 하지만, 넓지 않은 골목을 쉴 새 없이 싱싱 내달리는 자가용들이 찾아드는 새 아파트 숲을 올려다보면서, 이곳도 머잖아 아파트 아닌 데를 찾아볼 길이 없게 될 테며, 동네 문화며 자취며 깡그리 바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문득, 새로 지어진 이 아파트 숲에 살고 있는 사람은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동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무슨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대방동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어느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등촌동이나 화곡동이나 신도림동이나 성수동이나 한강로나 구산동이나 삼양동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저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자기 몸을 누이는 동네다운 다름을 느끼거나 나누면서 사는 사람이 아닌, ‘어떠한 아파트 이름’에 따라서 살고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서울 아닌 데에 사는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어떠한 아파트 이름을 내거는 데에 보금자리를 틀어, 어떠한 마트 이름을 내거는 데에서 물건과 먹을거리를 장만하며, 어떠한 이름을 내거는 일터에서 숫자로만 셈해지는 돈벌이에 모든 시간을 바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서고자 하는 됨됨이를 익히는 터전이 아닙니다. 어떠한 이름이 내걸리는 대학교 졸업장을 따기까지 경쟁을 익히는 곳, 아니 경쟁에 길들고 물드는 곳입니다. 좀더 빠르고 좀더 세고 좀더 흔들림없는 시험성적을 정년퇴직하는 그날까지 고이 이어나가도록 다그쳐지는 훈련마당입니다.


.. 대한주택공사는 2009년까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처음으로 국민임대아파트 71채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독도 지키기’ 운동의 일환이라고 주장되는데, ‘아파트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마치 주권의 상징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 동경올림픽을 주최하면서 일인당 국민소득이 4000달러 정도에 이르렀던 1964년경 일본의 경우, 가구당 주거공간 평균 면적은 12∼15평 내외였다 … 우리 나라에서 아파트는 높은 지위를 과시하는 상징이기에 그것의 외형과 외관은 각별히 중요하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부자가 사는 고급 아파트일수록 눈에 잘 띄는 것이 필수적이다 … 그들의 지위 과시욕망은 스스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게 하고, 남들로 하여금 자신을 높이 올려다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사는 사람들의 신분에 걸맞게 아파트는 일단 높을수록 좋은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 중산층 혹은 상류층이 주로 입주한 전자의 경우에는 낯선 외국어 사용이나 다언어 혼용이 많고, 아파트 이외의 특별한 범주 이름을 사용하는 일이 흔하다. 예컨대 왕족이나 귀족 거주지라는 의미의 팰리스, 하임, 스위트, 카운티, 캐슬 등을 쓰는 일이 많다 ..  (24, 70, 75∼76, 80쪽)


 아이나 어른이나 고마운 밥 한 그릇을 받아들지 않습니다. 배를 채우는, 아니 혀를 즐겁게 하는 밥술을 뜰 뿐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마음에 반가운 책 하나를 펼쳐들지 않습니다. 마음밭을 따뜻하게 덥히는 책이 아닌, 지식을 늘리고 처세를 잘하여 돈 잘 벌게 되는 길을 찾는 부적을 갖출 뿐입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어느 곳으로 즐겁게 간다거나 짐을 거뜬히 나른다든가 하는 데에 쓰지 않습니다. 제 몸값을 높이며 남 앞에서 뽐내는 치레일 뿐입니다.

 환경 문제뿐 아니라 1회용품 문제이든 전기와 물 문제이든 석유 문제이든, 온갖 사회 잘잘못 이야기가 나돌아도 어느 한 가지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우리 스스로 고치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기꺼이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게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처남 시간표를 들여다보니, 도덕이 한 주에 두 시간 있는 ‘주 5일 수업 시간표’인데, ‘미술’과 ‘역사’ 수업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아홉 반인 다른 반 시간표를 죽 훑으니 ‘미술’ 수업이 있는 반에는 ‘음악’ 수업이 없습니다. 그래도 ‘체육’ 수업은 모두한테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가’와 ‘창재’라는 이름이 붙은 수업이 있고 ‘컴퓨터’가 한 주에 두 번씩 들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수업은 ‘영어ㆍ수학ㆍ국어’에 몰립니다. 하루에 여섯∼일곱 시간만 수업을 한다니, 그지없이 꿈만 같은 시간표인데(저는 하루 여덟 시간 정규수업으로 빡빡히 채운 다음, 새벽과 저녁으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가득 찼었기 때문입니다), 과목 숫자는 줄었으되 이러한 수업이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한테 어떤 삶과 생각과 슬기를 가꾸게 될는지 궁금해집니다. 남은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학원에 가라는 뜻인지, 날마다 이만큼만 학교에서 배우면 된다는 뜻인지, 앞으로 사회살이를 할 때에 이만큼 익히면 넉넉하다는 뜻인지, 실습이나 체험이란 도무지 보이지 않는 우리네 시간표는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뜻인지, 아리송하면서 적잖이 슬픕니다. 배우는 아이들만큼이나 가르치는 어른들은 학교에서 어떤 보람과 즐거움을 안고 있을지 근심과 걱정입니다.


.. 서구에서처럼 국가의 재정적 지원에 의한 사회주택 혹은 영구적 임대주택 공급이 우리 나라에서는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국가가 기업적 방식으로 주택건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한주택공사를 설립했다. 이는 우리 나라의 주택정책이 사회복지 차원이 아니라, 건설사업의 성격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의 아파트만 놓고 1인당 주거면적을 따져 보면, 우리 나라가 결코 좁고 불편하게 사는 나라가 아닐 것이다. 주거문화의 질적 향상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주거면적의 양적 확대에서 주로 찾는 일은 토건국가와 건설자본의 입장에 치우친 측면이 있다 ..  (38, 71쪽)


 아침 일찍 똥을 눈 아기를 씻기고, 빨래를 하고, 옆지기와 처제와 제가 먹을 카레를 끓이고, 아기 손톱을 깎고, 아기 잠든 옆자리를 지키면서, 슬슬 인천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짐을 꾸려 끙차 하고 가방을 메고 버스정류장으로 나아가서 전철역까지 가는 버스를 잡아탄 다음, 전철을 타고 멀디멀리 돌아가는 길에서 또 책을 바지런히 읽겠구나 싶습니다. 버스 타는 데까지 가는 길은 걸어가는데 거님길 한복판에 나무가 심겨져 있어 혼자 걸어도 요리조리 비켜 걸어야 합니다. 큰길로 나오면 거님길 절반은 자전거길로 나뉘어 있으나, 가게마다 차를 버젓이 세워 놓고 있습니다. 환경을 걱정한다는 친환경엘피지 버스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처럼 환경을 걱정한다면 모든 버스를 바꾸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게 되지만, 갈 길이 멀고 고단하니 잠깐 생각했다가 잊습니다. 전철로 서울을 꼭 거쳐서 빙 도는 길이 아닌, 자전거로 가까이 달릴 수 있는 길이면 얼마나 좋으랴 싶지만, 자가용 아니면 인천과 일산을 짧게 오갈 수 없는데, 전철 빈자리 얻어 앉아 하품을 하다가 잠들면 이런저런 생각은 이내 잊힙니다.

 밟고 치고 미는 바쁜 사람들 가득한 전철 틈바구니에서 벗어나면 후유 하고 한숨을 돌리면서, 왜 그렇게들 바쁜 사람이 되었는지 슬픈 마음이 일어나지만, 내 한몸 건사하기에도 고단한데 그런 데까지 더 생각할 힘이 어디 있느냐 싶어 곧바로 털어냅니다. 도원역이나 동인천역에서 내려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골목을 휘 돌아 사진 몇 장 찍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어 가방을 내려놓고 옷가지를 벗으면 바닥에 풀썩 주저앉게 됩니다. 따로 더 무엇을 헤아리거나 되돌아볼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손발을 씻고 자리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스르르 눈이 감기고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드는데, 깜짝 놀라듯 퍼뜩 깨어 일어나 앉아 책을 잠깐 만지작거리다가는, 아무리 무쇠 같은 사람이라도 지치고 힘들고 고달프면 책이고 뭐고 생각이고 뭐고 착함이고 뭐고 빛줄기고 뭐고 어디에 있겠느냐 싶어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내 동무들은,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 단추를 누르고, 언제나처럼 옷가지는 세탁기에 던져 넣으며, 저절로 냉장고 문으로 손이 가다가는, 손전화 단추 빅빅 누르면서 또 하루가 지나가겠구나 싶습니다.


.. 골목에서는 도시문화의 대표적인 풍경인 ‘걷기’가 만보나 산보의 형태로 활발했지만, 아파트 숲과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그러한 행위가 통째 사라져 버렸다. 대신 간혹 눈에 띄는 것은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뛰기’ 혹은 속보 정도다 … 닭장 같은 아파트라고 해서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촌은 나름대로 삶의 공동체이다 … 예컨대 국내 최고가 아파트 가운데 하나인 타워팰리스에서는 입주민들 간의 인적 네트워크가 활발하다고 한다. 가장 활성화된 것이 각종 동호회 활동이라고 하는데, 골프 모임만 해도 30개 이상이며, 외국대학을 포함한 대학동문회도 자주 열린다고 한다 ..  (90, 102∼103쪽)
 





 모두들 똑같아지는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들 똑같은 곳(병원)에서 태어나 똑같은 먹을거리(가루젖)를 먹고, 똑같은 곳(학교)에서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으며 젊고 푸른 나날을 보내는데, 사내아이면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우게 되고,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대학교 들어가도록 채근을 받으며 겨우겨우 대학생이 되고, 대학생인 동안과 대학생을 마치고 나서도 영어 공부를 학원 다니며 하고, 회사에 들어가면 연봉과 혼인과 아이 낳아 기르는 데로 생각이 뻗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아파트 한 채 얻어 살게 되는 흐름으로 녹아들리라 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지만 다 같은 삶이고, 다 다른 목숨이었으나 다 같은 아파트에서 다 같은 지식을 안고 다 같은 차를 몰고 다 같은 월급쟁이로 꾸리는 삶이 됩니다. 보람? 즐거움? 기쁨? 아름다움? 거룩함? 착함? 글쎄……. 자연? 나무? 흙? 풀? 논밭? 바다? 산들? 구름? 무지개? 글쎄……. 돈과 함께 세상에 나와, 돈으로 세상을 누린 다음, 돈과 함께 세상을 떠나는 우리 모두가 되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2) 엉뚱한 마무리로 이끌며 스스로 무너진 책


 “불과 한 세기 동안 한국사회가 식민지와 건국, 전쟁, 산업화, 독재와 민주화, 지구화 등을 연이어 숨차게 경험하다 보니,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무언가 거시적인 과정, 어딘가 구조적인 요인, 아니면 모종의 집단적인 동력이라고 생각하는 데 시나브로 익숙해져 왔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소소한 개인의 일상이나 주변의 생활세계에 대해서는 눈길이 별로 가지 않았을(머리말)” 것이라면서, 우리 둘레에서 가장 흔하게 보고 부대끼는 ‘아파트’ 이야기를 다루는 《아파트에 미치다》를 읽습니다. 글쓴이는 오늘날 사회학자들이 “한국의 사회과학을 상당히 재미없게 만들었다(머리말)”고 이야기하면서, 당신이 내는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고 밝힙니다. 책을 덮고 나서 곰곰이 되짚고 되읽는 동안, 글쓴이 말마따나 여느 인문사회과학 책하고 견주면 ‘가볍게 쓴’ 글투임이 틀림없다고 느낍니다. 따분하거나 재미없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무척 마음을 쏟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가볍게 쓰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을는지, 아니면 ‘너무 큰 이야기만 해대’어 재미가 없었을는지 아리송합니다. 가볍게 쓰지 못한 탓도 있으며, ‘살아가는 자잘한 이야기’를 헤아리지 못하는 아쉬움은 어디에나 있기는 하지만, 정작 아쉽고 안타까운 대목은 ‘왜 그런 크고작은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크고작은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크고작은 이야기를 머리속 생각을 갈무리한 책으로만 엮어내고, 정작 자기 몸뚱이를 움직여 세상을 차근차근 고쳐 나가려고 하지’ 못하는 지식그릇에 머무는 데에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를테면, 사회 얼거리를 흔드는 잘잘못을 비판한다고 할 때에, 남들한테 참거짓을 들려주기 앞서, 자기 스스로 참을 북돋우고 거짓을 다스리려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한편, 참을 북돋우려고 하는 일이 없는데다가 거짓을 몰아내려 애쓰지 않고 이론으로만 길게 떠든다고 하면 부질없는 산울림으로 그치고 맙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아파트에 미치다》라고 하는 인문학 책 하나는 얼마나 ‘자기 실천’이 뒤따르는 책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훑는 눈썰미를 넘어서는 몸짓이, 속으로 깊고 넓게 파헤치려는 몸부림이, 얼마나 차곡차곡 나타나고 알뜰살뜰 보여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냉장고나 텔레비전은 가족의 일부가 되는 데 비해 진짜 ‘이웃’은 ‘사촌’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바로 아파트 거주문화의 단면인 것이다. 요컨대 아파트는 본질적으로 이웃의 문제와 사회적 관심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주거형태다 … 신식 문화주택에 입주한 한국인 샐러리맨 혹은 회사원들은 그것이 제공하는 가족주의에 안주하고 탐닉하는 태도를 보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 시대가 일제 식민지 치하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부르주아 프라이버시’라는 가상공간을 만들고 피아노나 축음기 등의 문화적 상징을 소유함으로써, 상층계급에 진입하는 행복한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 아파트에서 사람들은 문화생활을 하거나 문화생활을 한다고 믿음으로써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  (126, 132∼133쪽)


 글쓴이 전상인 님은, 몇 해 앞서 프랑스 학자가 내놓은 《아파트 공화국》(발레리 줄레조,2007)을 ‘그리 잘 쓴 책’이 아니라고 꾸짖습니다. 여러모로 살피면 《아파트 공화국》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입니다. 그러면, 아쉬움이 남는다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밝히지 못한 이야기를, 한국 학자 전상인 님은 어떠한 눈길과 눈높이와 눈매로 다루었을까요. 아파트란 한국땅에서 어떠한 곳이며, 아파트 나라가 되어 버린 한국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이며,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올바르고 슬기롭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가요? 자그마한 책 《아파트에 미치다》에서는, 한국땅과 한국사람과 한국정부가 어떻게 아파트에 ‘미치게’ 되었고, 이 ‘미친’ 흐름이 얼마나 옳거나 그르며, 이런 흐름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어느 자리에서 보여줄까요?

 전상인 님 스스로는 아파트에서 사는지 아닌지를, 전상인 님 스스로는 아파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전상인 님 스스로는 아파트를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껴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함은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한 줄도 읽어낼 수 없습니다. 글쓴이 전상인 님은 따로 이러한 ‘자기 삶’을 조금도 밝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실제로 한국의 화이트칼라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한국사회의 이념적 좌경화를 막는 결정적인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반군부독재 민주화를 향한 물꼬를 트는 데에도 그들의 역할이 결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국의 아파트 중산층 계급은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민주화의 견인차이자 파수꾼의 역할도 함께 담당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 이와 같은 (아파트) 문제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쉽게 파급될 수 있는 온상을 제공한다. 성공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아무리 자화자찬하면 뭐하는가, 당장 내 평생 내 힘으로 내 집 하나 마련할 꿈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가족관계를 인격적으로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미래세대의 밝은 인생관과 건전한 세계관을 고무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좌파 포뮬리즘의 득세를 막아 대한민국 체제의 안정적 확대재생산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나라의 주택정책은 조만간 확실히 달라질 필요가 있다 ..  (136, 183쪽)


 그러면서 책 사이사이에 ‘좌경화’니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니 ‘좌파 포뮬리즘’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먹입니다. 아파트하고 ‘좌파’가 어떻게 맺어져 있기에? 한국땅에서 ‘좌파’가 어떠했기에? 곳곳에 뜬금없이 나타나는 ‘좌파 = 한국을 망치는 이들’이라는 느낌 짙은 글월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펼치는 이야기책이, 아니 인문학 책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 되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좌파들이 쓰는 인문학 책’은 따분하고 재미없기에, 당신 스스로 좌파를 꾸짖으면서 ‘제대로 아파트를 이야기하는 책’을 펴낸다고 생각하는지 알쏭달쏭해집니다.

 좌파든 우파든, 잘못을 했으면 잘못을 따지면서 올바른 길로 접어들도록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잘못하지 않고 잘하고 있으면 기꺼이 북돋우고 토닥거리면서 어깨동무를 할 노릇입니다. 왼날개이면 모두 나쁘고 오른날개이면 반드시 좋다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거꾸로, 오른날개이면 모두 나쁘고 왼날개이면 반드시 좋다는 법이란 없습니다. 어느 날개이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어느 집에 사느냐(아파트이냐 골목집이냐 다세대이냐)가 아닌, 참다운 사람 삶을 꾸리느냐 못 꾸리느냐에 따라 우리 세상이 아름다운지 아름답지 않은지가 갈립니다.
 





.. 대입수능시험이 그러하듯이 아파트는 주거수준에 관련하여 전 국민을 획일적으로 서열화시킨다 ..  (172쪽)


 글쓴이 스스로 좀더 ‘정부 아파트 정책’을 돌아보고 꿰뚫는 눈을 길렀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온나라를 들끓게 하는 재개발 정책이 얼마나 우리 모두를 헤아리는 일인지를 차분히 살피고 곱씹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아파트에 살 권리’만큼 ‘아파트 아닌 집에 살 권리’가 있습니다. ‘자가용을 몰 권리’만큼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만 타거나 두 다리로 걷기만 하거나 자전거로만 다닐 권리’가 있습니다. ‘돈이 많이 즐겁게 쓸 권리’가 있다면 ‘가난하고 찢어지게 못 살아도 똑같은 한국사람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파트를 둘러싼 사회 흐름이 어디로 치닫는가를 더 속깊이 들여다보았다면, 책이름 그대로 왜 “아파트에 미치다”라고 할 만한가를 우리 마음속으로 파고들도록 이야기를 건넬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아파트를 앞세워 ‘돈 없으면 아파트고 뭐고 아예 살 수도 없게 되는 한국땅’이 어이하여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는 고갱이를 잡아채면서 우리 머리를 일깨우는 슬기로움을 나눌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모든 재개발과 재건축이 어김없이 ‘아파트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샅샅이 알아보고 다루었다면, ‘우리가 아파트든 다른 무엇에든 미치지 않고 웃음으로 즐길 살가운 길’이란 무엇인가를 톺아보도록 하는 훌륭한 마음결을 찾을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4342.3.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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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봉지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49
로버트 먼치 지음, 김태희 옮김, 마이클 마첸코 그림 / 비룡소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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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털털이 빈몸이 되어도 기쁜 ‘종이 봉지 공주’
 [그림책이 좋다 59] 로버트 문치+마이클 마첸코, 《종이 봉지 공주》



- 책이름 : 종이 봉지 공주
- 글 : 로버트 문치
- 그림 : 마이클 마첸코
- 옮긴이 : 김태희
- 펴낸곳 : 비룡소 (1998.11.26.)
- 책값 : 6500원


 (1) 옷이란, 우리 삶이란


 옆지기네 식구들이 살고 있는 일산집으로 찾아가려면 언제나 ‘탄현동 로데오거리’를 걸어서 가로질러야 합니다. 그 길을 가로질러야 나오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느 날에는 한갓지지만, 주말이나 명절만 되면 버스정류장에도 자가용이 겹으로 서고 사람으로 바글바글하여 마치 놀이공원에 사람들이 모여든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나 ‘새옷 사려는 사람이 많은가’ 싶어 놀라고, 그렇게 옷 사려는 사람이 많으니 옷집만으로도 길디긴 거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서울에서도 이화여대 앞 골목은 옷집으로 가득합니다. 꼭 로데오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나 이대 앞만이 아니라도, 서울이며 부산이며 어디를 가든 가장 많이 눈에 뜨이는 곳은 밥집과 함께 옷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밥과 옷과 집’,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만큼 옷집과 밥집이 많을밖에 없을 텐데, 때 되면 배가 고파지니 밥집이 많다고 하여도 때 되면 옷을 사야 하기에 옷집이 많을까요? 우리는 참말 입을 옷이 너무도 많이 있어야 하기에 옷집도 이토록 많아야 할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랑 우리 옆지기랑 아기랑 세 식구는 옷을 사입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아기 옷은 모두 이웃한테서 얻어 입힙니다). 한두 해도 아닌 열 해 남짓 입고 입고 또 입어 헐고 해지고 더 기워 입기 어렵다 싶을 무렵 비로소 한 벌을 새로 장만합니다. 이렇게 장만하지 않아도 틈틈이 이웃한테서 ‘못 입게 되거나 입을 겨를이 없어 내놓게 되는 옷’을 얻곤 합니다. 행사장에서 나누어 주는 옷이라든지 모임에서 주는 옷을 하나둘 챙기다 보면, 이런 옷가지들을 번갈아 입어도 죽는 날까지 다 못 입고 남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저한테는 아직 봉지도 못 뜯은 행사 기념 옷이 몇 벌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옷 갖춤새는 우리 식구 이야기일 뿐이지 싶습니다. 거리마다 넘치는 옷집들을 보면. 길거리 돌아다니는 젊고 늙은 사람들 반짝이고 빛나고 고운 옷차림을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새로운 집으로 옮길 때에는, 무엇보다도 옷가지 짐이 가장 많게 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책은 몇 묶음이 없어도, 아니 책은 한 묶음조차 없어도 옷꾸러미는 몇 상자 나오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 엘리자베스는 아름다운 공주였습니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성에 살았지요. 그 성에는 비싸고 좋은 옷들이 많았습니다. 또 공주는 로널드 왕자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죠 ..  (2쪽)


 헌옷 모으는 통에 안 입는 옷을 모으면 다시쓰기가 된다지만, 좀더 깊이 돌아본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쓰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덜 사고 덜 쓰고 덜 누려도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같은 옷을 날마다 빨아 날마다 갈아입어도 여러 해 너끈히 입을 수 있습니다. 옷 두 벌을 이틀 걸러 빨아 입어도 꽤 긴 햇수에 걸쳐 입을 수 있습니다. 옷 세 벌쯤을 사흘 걸러 빨아 입어도 오래오래 입게 됩니다. 한 주에 일곱 벌을 날마다 갈아입으면 훨씬 오래 간수하며 입을 수 있을 테고요.

 그러나, 날마다 빨아야 하는 옷이 아니요, 날마다 갈아입어야 하는 옷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로운 차림새로 다녀야 하는 우리들이어야 하나요. 날마다 새로운 차림새로 다닌다고 날마다 새로운 우리들이 되던가요. 겉차림이 새롭다고 마음차림도 새로울까요. 겉꾸밈이 새롭다고 속차림도 새로운가요. 하루쯤 덜 빨아 물을 아낄 마음을 키울 수 없는지요. 옷 한 벌 덜 사면서 지구자원을 적게 쓰려는 마음을 북돋울 수 없는가요.


.. 어느 날, 무서운 용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용은 공주의 성을 부수고, 뜨거운 불길을 내뿜어 공주의 옷을 몽땅 태워 버렸지요. 그리고 로널드 왕자를 잡아갔습니다. 공주는 용을 뒤쫓아가서 왕자를 구해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옷이 몽땅 타 버려서 입을 것이 없었지요. 공주는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종이 봉지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공주는 종이 봉지를 주워 입고 용을 찾아나섰습니다 ..  (4∼6쪽)


 우리는 우리 스스로 껍데기만 키우고 알맹이는 내버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가 애써 벌어들인 돈으로 마음차리기는 못하는 가운데 겉차리는 데에 온힘을 쏟아붓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니, 우리는 날마다 새옷을 뽐내고 싶은 나머지, 새옷 장만하려고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돈벌고 죽어라 경제성장을 외치는 쳇바퀴에 갇혀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어 알맞게 우리 삶을 즐기는 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운 삶보다 남 앞에서 자랑하거나 내보이는 치레에 매여 버리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2)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를 꺼내어 읽습니다. 몇 번씩 보고 또 보았으나, 볼 때마다 늘 새롭고, 덮을 때마다 늘 웃음이 터져나와 히죽히죽거리게 됩니다. 장난꾸러기인데가 욕심꾸러기인 용 한 마리는 ‘책에서 주인공인 공주’가 사는 성을 불태우고 무너뜨립니다. 배가 고파서 성을 통째로 구워먹는다고 하는데, 성만 구워먹지 않고 성에서 공주와 함께 혼인할 왕자까지 얌체처럼 붙잡아 갑니다. 그리고, 왕자만 붙잡아 가지 않고 공주가 입던 옷마저 홀랑 태웁니다.

 용으로 보자면, 공주를 안 잡아먹고 살려 두었으니 고맙다고 할 노릇일 텐데, 공주한테는 자기 집이며 왕자며, 거기다가 옷까지 빼앗겨 버렸으니 용처럼 괘씸한 녀석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공주는 용한테 앙갚음을 해 주고 왕자도 찾아오리라 다짐하게 되고, 씩씩하게 용을 찾으러 길을 나섭니다. 그러고는 아주 슬기롭게 용을 골탕먹이고 왕자를 살려냅니다(그렇지만, 용이 숲을 홀랑 태워 버리게 하는 대목은 퍽 슬픕니다. 애꿎은 숲……).

 아마 여기까지는 어디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모험 이야기요, 왕자와 공주 이야기라 할 텐데요, 다만 한 가지, 왕자가 공주를 찾으러 안 가고 공주가 왕자를 찾으러 간다는 대목에서 사뭇 다릅니다. 더구나, 공주는 용한테 옷까지 모두 빼앗겼으니(왕자로 치면 무기가 하나도 없는 맨몸), 도무지 맨주먹으로 무슨 앙갚음을 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이든 여자이든, 똑똑이이든 어리보기이든 빼어난 무기로만 용을 마주할 수 있지 않아요. 어리석은 머리라 해도 조금씩 생각을 하고 마음을 쓰면 얼마든지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도 ‘용이든 무엇이든 다 나오라고 해!’ 하는 씩씩하고 튼튼한 넋이 있어야 할 테지요. 슬기로움에다가 씩씩한 넋, 이 두 가지는 바로 《종이 봉지 공주》에서 ‘종이 봉지를 입은 공주’가 우리한테 보여주는 가장 크고 굳센 힘입니다.


.. 공주는 훌쩍 용을 뛰어넘어 동굴 문을 열었습니다. 동굴 안에는 로널드 왕자가 있었지요. 왕자는 공주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너 꼴이 엉망이구나! 아이고 탄 내야.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더럽고 찢어진 종이 봉지나 걸치고 있고. 진짜 공주처럼 챙겨 입고 다시 와!” ..  (22쪽)


 한 가지 더.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에서 ‘무시무시한 용한테서 풀려난 왕자’는 아주 얼뜨고 건방진 말을 공주한테 건넵니다. 기껏 목숨을 살려 주었더니 하는 말이, 용이 뿜은 불이 공주 머리가 타서 냄새가 난다느니, 옷은 걸레짝 같다느니 하는.

 모르는 노릇이지만, 나라에서 힘있다고 뽐내는 분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이와 같이 우쭐대거나 콧대 높은 말과 몸짓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 갇히고, 마땅히 받아야 할 선물을 받았다고 여기는 마음에 갇히며, 사랑과 믿음을 두루 나누기보다는 홀로 차지하려는 마음에 갇힌 셈입니다. 용한테서 풀려났지만, 몸뚱이는 풀려났어도 마음은 풀려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기를 풀려나게 한 사람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힘을 썼는가를 느끼지 않고 돌아보지 않습니다.

 용보다 괘씸하다기보다 딱합니다. 불쌍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좁살뱅이 마음인지 구슬프기까지 합니다. 공주로서는 이런 못난 왕자와 혼인을 꿈꾸고 있었다니 자기 눈이 삐어도 한참 삐었다고 느낄 만할 테고요.

 그런데, 어려움에서 빠져나온 철없는 사람들만 이렇게 고마움을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빠져 보지 않은 철없는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자기들이 입거나 받는 고마움이 무엇인지를 하나도 헤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기 둘레에 어떤 이웃이 있고 어떤 벗들이 있는지를 살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둘레 사람들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콩 한 톨을 나누어 먹는 마음을 모르고, 밥 한 숟갈 나누어 먹는 마음을 모르며, 이불 한귀퉁이 나누어 덮는 마음을 모르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어,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는 마지막에 이릅니다. 마지막은, 건방지고 얼뜬 왕자한테 공주가 하는 말과 몸짓입니다. 공주는 왕자한테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뺨을 한 대 갈길까요? 용이 왕자를 가둔 곳에 왕자를 도로 데려다 놓을까요? 왕자가 입던 옷을 모조리 벗겨 공주가 갈아입은 다음 종이 봉지를 왕자한테 씌울까요? 그래도 왕자가 시키는 말이니 어디에서든 새옷을 얻어입고 왕자한테 올까요?

 끝마무리는 어찌 보면 싱거울 수 있고, 아쉬울 수 있고, 밋밋할 수 있고, 그냥 그렇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리라 봅니다. 다만, 공주는 제 집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으며 옷이며 돈이며 모두 다 잃었는데에도 기쁘고 신나서 춤을 춥니다. 왜 신나서 춤을 추는지, 왜 빈털털이 빈몸이 되었음에도 기뻐하는지는 …… 그림책을 덮는 분들 스스로 가만히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4342.3.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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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KOICA와 함께한 730일
강제욱 외 지음 / 포토넷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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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읽고 나서 별 둘밖에 붙이지 못해 미안하지만, 책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밖에 없는 성격이라, 이렇게 아쉬우나마 느낌글을 적으면서, 다음에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자원봉사는 ‘조용히’ 우리 삶터에서 해야지요
 [잠깐 읽기 27] 강제욱,이명재,이화진,박임자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책이름 :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KOICA와 함께한 730일
- 글사진 : 강제욱, 이명재, 이화진, 박임자
- 펴낸곳 : PHOTONET (2008.12.29.)
- 책값 : 12900원



 (1) 자원봉사란?


 ‘KOICA’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이라는 사진이야기책을 보면서 이런 모임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알파벳으로만 적으니, 이곳이 한국에 있는 모임인지 나라밖에 있는 모임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을 죽 읽다 보면, 끄트머리에 이 모임을 찬찬히 알려주는 사진과 글이 실리는데, ‘KOICA’란 ‘한국국제협력단’을 줄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상원조를 시행하는 정부출연기관으로서 해외봉사단 파견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원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바야흐로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났다는 뜻에서 이와 같은 모임이 꾸려졌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나라안에는 아직 찢어지게 못사는 사람이 많은 한편, 터지게 잘사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나라안이 되든 나라밖이 되든 ‘넘치는 자원’과 ‘넘실대는 사람’을 나누어야 하기도 합니다. 일 나누기가 되든 자원봉사가 되든 공동체가 되든,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어찌 사는가를 들여다보면서, 내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보기도 해야 합니다.


.. 내 기억 속의 파라과이는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원시의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처럼 삭막한 도시의 풍경과도 거리가 먼,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던 곳이었다. 안데스 지역의 고산 지대도 아니고 그렇게 매력적인 하늘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파란 하늘을 보며서 때레레를 마시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그곳이 망고나무 그늘 밑이라면 더욱! 파라과이는 어느 도시이건 그 안에 자연이 살아 있다 ..  (14쪽 / 강제욱)


 생각해 보니, 저도 꽤 자주 자원봉사를 합니다. 언제나 자원봉사라는 이름은 안 걸치지만, 몸을 바쳐서 일을 거들거나 함께하고 있으니 자원봉사가 맞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도움을 바라는 분이나 저 스스로나 서로가 자원봉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로 돈을 챙겨 주는 이가 없으나, 딱히 돈을 받을 마음 또한 없습니다. 한 동네에 살기에 거드는 일이 아니라, 함께 그 자리에 있어 좋기에 일을 거들게 됩니다.

 동네 밥집 김치 담그기를 거드는 일은 알게 모르게 자원봉사입니다. 동네 밥집 할머니가 반찬을 한두 가지 더 챙겨 주는 일도 이래저래 자원봉사입니다. 성당에서 세례받는 분들 사진을 슬쩍 찍어 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성당 다니는 이웃사람들이 술이나 밥을 가끔 사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헌책방 사진을 찍어 선물로 드리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헌책방 아저씨가 때때로 500원이나 1000원을 에누리해 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구멍가게 할배한테 빈병을 모아 드리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구멍가게 할매가 우리 옆지기 신으라고 떠 준 덧양말 한 켤레도 자원봉사입니다. 늘 자원봉사에 둘러싸인 삶입니다.


.. 가끔씩 아이들은 나를 ‘독재자’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서 ‘수업하지 말아요’, ‘TV 봐요’, ‘숙제 좀 적게 내 주세요’ 등등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거의 들어주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녀석들과 좀더 친밀하게 지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일에는 독재자인 나도 악동 제자들과 어울렸다 … KOICA 봉사단원으로 파견되어 한국어를 가르치면서도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시간 안배도 안 되는 데다 머리속의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아이들의 질문에 “다음 시간에 알려 줄게요” 하는 날도 많았다. 집에 돌아오면 ‘아차!’ 잘못 가르친 것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 가르쳤던 아이들과, 고심하며 준비했던 수업 내용 자료 등은 여전히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  (96∼97, 140쪽/이명재)


 아기를 돌보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아픈 옆지기를 돌보며 집살림을 도맡아 꾸리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제 몸을 아끼고 싶어서 손빨래를 하고 손걸레로 집안을 훔치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국어사전에 나온 뜻풀이를 보자면,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스스로 하는 일”이 자원봉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집식구를 보듬는 일도 자원봉사라면 자원봉사가 아니랴 싶습니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니까요. 아무 갚음을 꿈꾸지 않는 나눔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사랑과 나눔 그대로 내 동무한테 똑같이 하고, 내 이웃하고 똑같이 어깨동무를 하니까요. 옆지기 부모님 댁에 가서 설거지를 해도 자원봉사이고, 중학생이 된 처남한테 책을 선물해 주거나 쓸돈 몇 푼 넌지시 책에 끼워 주어도 자원봉사가 아니랴 싶습니다. 길을 가다가 자전거가 고장나 옴쭉달싹 못하는 사람을 보고는 자전거를 손질해 주거나 구멍난 바퀴를 때워 주는 일도 자원봉사이리라 믿습니다. 길에서 동냥하는 분한테 천 원이나 이천 원 내밀어 주고, 길장사를 하는 분들 물건을 때때로 사는 일도 자원봉사가 되리라 믿습니다.

 나한테 돌아오는 사랑과 옆지기한테 돌아가는 사랑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아기한테 나누어지는 사랑과 동무네 아기한테 옮아가는 사랑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한 흐름이요, 한 동아리요, 한 모둠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풀포기와 나무 한 그루 모두 사랑합니다. 부모님을 믿는다면 파란하늘도 믿고 푸른 들판도 믿고 누렇게 익는 나락논도 믿습니다. 책이면 똑같은 책이지 헌책과 새책이 없듯, 사람이면 똑같은 사람이지 요 사람 조 사람 나눌 금이란 없습니다. 나라안 사람이든 나라밖 사람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이주노동자를 만나든 살결 하얀 서양사람을 만나든, 저는 늘 똑같이 웃으며 한국말로 묻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움을 주든 받든 합니다.


.. 현지에 혼자 뚝 떨어진 내게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서툴기만 한 언어나 과중한 업무, 외로움과 향수병이 아니었다. 다름아닌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외로움이 전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너무 외로웠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라도 먹고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 앞에서 외로움은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물론 내가 살게 될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곳의 직원들과 준비한 식료품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식료품을 보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구입한 것은 쌀과 설탕 한 포대, 식용유 한 통 정도였다. 아침에 밥숟가락으로 설탕을 집어넣은 차를 마시고, 밥을 할 때 식용유를 부어 고소하게 만드는 그들의 음식 문화를 알게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도저히 그렇게 먹고살 수 없었다 ..  (159∼160쪽/이화진)


 무슨 시설에 가야만 자원봉사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어느 모임에 들어가 머나먼 어느 땅을 밟고 내 힘을 나누어야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도에 가야만 데레사 수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티벳에 가야만 달라이 라마를 만나겠습니까.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목소리를 꼭 들어야 깨달음을 얻겠습니까. 백담사에서 백팔 번 절을 해야 몰록깨침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큰 아파트에 살아야 두 다리를 쭉 뻗겠으며, 우리가 빠른 차를 타야 서울에서 부산까지 즐겁게 달릴 수 있겠으며, 우리 주머니에 맞돈 백만 원쯤 들어 있어야 술 한잔 신나게 마실 수 있겠습니까. 두어 평 방 한 칸으로도 넉넉하고, 두 다리로 걸어도 즐거우며, 만 원짜리 한 장으로도 신납니다.


 (2) 무얼 말하거나 보여주겠다고 하는 젊은 넋이지?


 ‘자원봉사를 하는 기쁨’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을 읽어냅니다. 책을 처음 받아쥘 때부터 읽기를 마치고 덮을 때까지 속이 무척 답답합니다. 틀림없이 이 책에 사진과 글을 담은 젊은 네 넋은 나라밖에서 아름다움과 기쁨과 보람을 듬뿍 받아안았을 텐데, 그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기쁨이 어떠하며 보람이 어떻게 당신들 마음에 새겨졌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까마득합니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진인지 또렷하지 않습니다. 관광사진이나 홍보사진은 아닐 텐데, 또 풍경사진이나 예술사진도 아닐 텐데, 그리고 인물사진이나 다큐사진도 아닐 텐데, 무엇을 하자면서, 아니 우리한테 무엇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찍은 사진이고 보여주는 사진인지 딱히 느낌이 잡히지 않습니다. 살갗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살갗에 겉스치고 바스라지니 가슴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제 가슴 어느 한켠이라도 뭉클뭉클 건드려 주면 고마울 텐데,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뭐야? 벌써 끝이야? 할 말이 이게 다야?’ 하는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겠습니다. 책을 쥐어든 제가 외려 뻘쭘해지고 맙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해? 그냥 이렇게 놀다가 한국으로 돌아갈까!” 나는 결국 답답해서 짜증을 부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내가 조금 진정되자 말림은 차분하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마. 네가 지금 잊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너는 2년 후 다시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잖아. 무엇을 많이 주고 간 화진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지만, 난 말이야, 좋은 친구 화진으로 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는 나라에는 그들만의 시스템이 있다는 걸 잊곤 한다. 어떤 때는 그러한 시스템이 말도 안 되고 답답해 보이지만 그것은 그 지역만의 자연환경과 역사, 사회적 환경, 국민성 등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고 그곳의 시스템은 낙후되었으니 무조건 바꾸고 새롭게 만들려다 뜻대로 안 되면 결국 현지인과 다투고 제 분을 못 이겨 힘들어하게 된다 ..  (177∼179쪽/이화진)


 나라밖으로 자원봉사를 나갔던 젊은 넋들이 ‘실패를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요, ‘뜻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어떤 자원봉사를 했는지’도 찬찬히 나오지 않는 가운데, ‘얼마 동안 지내고 무엇을 가르치거나 거들었으며’, ‘어떤 지역사람과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를 엿볼 수 없습니다. 파라과이든 우크라이나든 탄자니아든 중국이든, 사진이나 글에서 이와 같은 나라를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종잡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코이카 해외협력단 보고서’라도 되느냐 하면, 이 또한 아닙니다. ‘코이카 해외협력단 홍보글’이라도 되느냐 하면, 이마저 아닙니다.


.. 사실, ‘사진찍기’는 우크라이나와 의사소통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오해를 사진으로 풀기도 하고, 우크라이나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을 사진을 통해 듣기도 했다 ..  (142쪽/이명재)


 300쪽이 조금 못 되는 책을 읽는 내내, 딱 한 군데에서 ‘사진찍기’로 무엇을 하려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했다고는 나와도 어떻게 무엇을 의사소통했는지 스스로 털어놓지 못합니다. 작은(?) 책 하나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었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담아낼 이야기를 먼저 펼쳐 보인 다음, 살을 하나하나 붙여야 앞뒤가 알맞지 않느냐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많이 젊은 나머지 세상구경도 덜 했고 자원봉사도 덜 했기에 속깊거나 마음넓게 헤아린 이야기를 못 보여준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얕거나 좁다면 섣불리 사진과 글을 우리 앞에 내보이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니냐 생각해 봅니다.

 무르익지 않은 가운데 구태여 사진과 글을 우리 앞에 내보이려 했다면, 사진으로든 글로든 무언가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생각합니다. ‘나, 어느 나라에 자원봉사 다녀왔어요!’ 이 한 마디를 하려고 300쪽에 이르는 ‘총천연색 사진이야기책’에 사진과 글을 싣지는 않았을 테지요? 우리 나라가 이제 개발도상국에서 아주 훌훌 털고 일어나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음을 뽐내고자 이러한 책을 내놓으려 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4342.3.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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