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풀 느림보 그림책 15
방미진 글, 오승민 그림 / 느림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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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봉지가 ‘풀포기’가 되는 우리 삶터
 [그림책이 좋다 69] 방미진+오승민, 《비닐봉지풀》



- 책이름 : 비닐봉지풀
- 글 : 방미진
- 그림 : 오승민
- 펴낸곳 : 느림보 (2009.6.26.)
- 책값 : 9800원


 (1) 비어 있는 그림, 또는 열려 있는 그림


 그림책 《나무》가 있습니다. ‘옐라 마리’라는 분이 나무 한해살이를 말 한 마디 없이 그림으로만 보여주는 책입니다. 아무 말이 없이 어떻게 나무 한해살이를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나누어 보여줄 수 있겠느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림책을 펼치고 보면, 참으로 말 한 마디 없기 때문에 이토록 아름답고 싱그럽게 보여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빈자리가 있는 아름다움’이라고도 합니다만, 꼭 빈자리가 있기에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빈자리를 둘 수 있는 마음결이 되기에 아름다울 뿐입니다. 빈자리가 없도록 하는 마음밭이기에 아름다우며, 빈자리를 꾸밈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바탕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림책 《비닐봉지풀》을 봅니다. 말마디가 아주 짤막합니다.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앞뒤 면지까지 해서 서른 쪽짜리 그림책을 살피는 동안, ‘말없는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말뿐 아니라 그림까지도 붓질이 몇 번 가지 않은 그림이라 ‘그림 드문 그림책’이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 비닐봉지는 혼자서 놀아. (3쪽)


 국민학교 그림그리기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어느 겨울날이었고, 저는 그때 3학년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면 1984년쯤일 텐데, 교실에는 나무를 때는 난로가 한복판에 있고, 저는 난로하고 퍽 멀찌감치 떨어진 조금 뒤쯤 되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추위로 곱는 손을 호호 불어 녹이며, 겨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50분 동안 그림을 뚝딱 그려야 하기 때문에 옆 짝꿍하고 수다를 떨며 놀 겨를이 없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그려내지 못하면 선생님한테 긴 자로 머리를 짝 소리 나도록 얻어맞거든요.

 저는 여느 동무들처럼, 겨울날 눈싸움하는 동네 모습을 어기적어기적 그립니다. 눈이 오는 날 눈싸움 그림이니, 바탕은 온통 하얀 크레파스를 발라야겠는데, 그리 깨끔하게 그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추위에 땀 빼며 그려낸 내 그림이니 혼자서 잘 그렸다고 생각하며 히죽히죽 웃습니다. 다 그린 그림을 선생님한테 내는데, 어느 동무 하나가 도화지를 온통 하얗게만 발랐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는 동무인데, 선생님이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 온통 눈밭인 모습을 그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뭐야? 그렇게 그려도 되냐?’ 하면서 흠칫 놀랐고,  동무녀석 말이 옳다고 느끼면서, 나도 저렇게 생각했으면 더 쉽게 그렸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동무녀석이 그렇게 하얗게만 바르며 눈밭을 나타내는 그림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누구한테서 들었는지는 알쏭달쏭입니다. 누구한테서 들었든 책에서 보았든, 그 녀석이 우리 반에서는 맨 처음으로 그렇게 그렸으니, 앞으로 다른 동무들은 그렇게 따라 그릴 수는 없습니다. 따라 그리면 흉내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선생님은 “아무개는 훌륭한 상상력으로 이렇게 그렸지만, 다른 녀석들은 이렇게 따라 그리면 맞아죽을 줄 알아!” 하고 윽박질렀습니다.


― 비닐봉지가 풀 사이에 앉았어. 조심조심 풀인 척. (11쪽)


 눈밭을 하얗게만 그리는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데에서도 얼핏 들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점 하나만 찍는 그림도 있다는 이야기 또한 뒷날 들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점 하나 찍어 놓고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점 하나만 들여다볼’ 뿐이고, 점을 둘러싼 아주 넓은 하얀 자리는 못 본다는 이야기도 어느 때인가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학교 그림그리기 시간에는, 언제나 ‘종이를 꽉 채우는 그림’만 배웠습니다. 빈자리 하나 없이 무슨 빛깔로든 채우도록 배웠고, 못 채우고 남긴 곳이 있으면 자이든 몽둥이든 지휘봉이든 무엇으로든 신나게 얻어맞은 다음 채워넣기를 해야 했습니다.

 이제 와 그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학교 그림그리기 시간은 우리한테 생각날개를 달아 주는 그림그리기라기보다 시간을 때우는 제도권 수업과정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 가만, 풀들이 손짓해. 같이 놀자고! (17쪽)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라고 떠오르는데, 이무렵 학교 국어시간에 ‘여백의 미’라는 말마디를 배웁니다. 쉽게 풀어내면, ‘빈자리가 있는 아름다움’이요, ‘빈 곳을 남기는 아름다움’이며, ‘굳이 다 채우지 않는 아름다움’입니다.

 채워서 맛이기도 하나, 안 채워서도 맛입니다. 역사책 《연려실기술》에는 빈자리를 마련해 놓았다고 하는데, 이 역사책을 처음 쓸 때에는 ‘아직 제대로 모르는 대목’이 틀림없이 있을 터이니 뒷사람들이 채워 놓을 수 있게끔 빈자리를 두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리는 그림도 ‘그날그날 꼭 그리고픈 만큼’만 그린 다음, 나중에 더 생각이 나거나 다른 마음이 들 때 더 그려도 됩니다. 어떤 사람 눈으로는 ‘마무리 안 된’ 모습일지라도, ‘마무리 안 된 그대로 좋은’ 그림일 수 있습니다. 마무리가 다 되었다 할지라도, 기나긴 세월이 흐른 다음 돌아보면 ‘좀더 손질하거나 보태어야 할’ 그림이 될 수 있어요.

 그래, 그림책 《비닐봉지풀》은 빈자리가 넘실넘실거리는 그림책입니다. 빈자리가 가득가득인데 고작 서른 쪽짜리 그림책이면서 값은 9800원입니다. 책방에 선 채로 후루룩 라면 먹듯 훑으면 몇 분이 되지 않아 후딱 읽어치울 만합니다. 이 그림책 그림 하나하나를 한 시간씩 물끄러미 바라볼 사람이 있을 테지만, 이 그림책을 돈다발 세듯 주루룩 넘기며 “책 하나 다 봤어!” 하고 외칠 사람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찬찬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나서 덮었으나, 다음날 다시 한 번 들출 사람이 있고, 그 다음날 또다시 들출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거듭 들출 사람 또한 있겠지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에 넉넉한 자리를 두고 있다면, 그림책 《비닐봉지풀》이란 넉넉한 마음자리로 받아안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에 넉넉한 자리를 두지 못한다면, 그림책 《비닐봉지풀》이란 시시껄렁하다고 한 번 훑고 잊어버릴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2) 비닐봉지와 우리 삶


 그림책 《비닐봉지풀》은 세 해가 꼬박 들도록 애써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이라고 합니다. 말마디 몇 줄 없고 그림자리 몇 가닥 없는 데에도 세 해를 꼬박 바친 책이라고 합니다.

 틀림없이 《비닐봉지풀》은 퍽 썰렁하구나 싶도록 느끼게 되는 그림책입니다. 다만, 몹시 바쁜 우리 삶에 잠깐 느긋한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쉬는 마음이 될 수 있다면, ‘이야, 참 환한 그림책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어린아이 하나가 바람에 흩날리는 비닐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흐름을 좇을 수 있다면, 그림책 《비닐봉지풀》을 보면서 어렴풋이 그림책 《나무》를 떠올려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람에 흩날리다가 길가 풀포기에 걸린 비닐봉지를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가브리엘 벵상’ 그림책 《꼬마 인형》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지켜보거나 바라보거나 들여다보아 주는 이 없는 ‘버려진’ 비닐봉지가 어찌 되는가에 눈길을 둘 수 있는 마음새라 한다면, 책을 덮고 나서 ‘마리 홀 에츠’ 그림책 《나무 숲속》이 생각나 이 그림책을 새롭게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랴 싶습니다.


― 비닐봉지풀은 바람이 되었어. (28쪽)


 시를 쓰면 문학잡지에서 으레 한 꼭지에 5만 원이나 10만 원을 준다고 합니다. 긴시를 쓰건 짧은시를 쓰건 매한가지입니다. 소설이나 산문을 쓰면 원고지로 셈해 한 장에 1만 원을 주곤 합니다. 원고지 1장에 2만 원 넘게 주는 곳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열 몇 해 앞서도 시값은 5만∼10만 원이었고, 소설이나 산문 쓰는 값도 원고지 한 장에 5천∼1만 원을 쳐 주었습니다.

 나라안에 시를 실어 주는 문학잡지는 그리 많지 않으며, 나라안 시인 숫자를 헤아린다면, 한 달에 두 군데 문학잡지에 시 두 꼭지씩 싣는다 하면, 시를 써서 20만∼40만 원을 버는 셈입니다. 그런데, 다달이 시를 실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문학잡지는 얼마나 될까요. 얼마나 많은 시인이 당신 시를 문학잡지에 실을 수 있을까요.

 그림책 《비닐봉지풀》을 덮으면서 문학쟁이들 글삯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ㅅ 일꾼하고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그분은 “아직도 원고지 한 장에 만 원밖에 안 줘요? 5만 원은 줘야 먹고살 수 있지 않아요?”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3년 전 7월 어느 날, 은행나무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은행알들이 다글다글 붙어 있었거든요. 외로워서 저렇게 꼭 붙어 있구나. 꽃들도, 풀들도, 모두 외로워서 닿으려고 닿으려고 손을 뻗으며 안간힘을 쓰는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길가에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어디에도 낄 곳이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요. 사람들이 삼삼오오 오가는 거리에서 그 풍경에 녹아들지 못하는 내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그 비닐봉지처럼 느껴져서 한참을 바라보았지요 ..  (글쓴이 방미진 님 말)


 이 땅에서 ‘사람 돌보기’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았을까요? 대학교 등록금이 한 해 천만 원이라지만, 오늘날 유치원 한 해 교육삯 또한 천만 원이 조금 못 미칠 만큼 들어가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학원을 보내고 학교옷을 맞춰 주고 급식비 내고 뭐 하고 저거 하느라 바쳐야 하는 돈이, 해마다 얼추 천만 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 해에 삼천만 원을 번다 한들, 아파트 장만하려고 진 빚을 갚느라, 자가용 굴리며 기름 넣고 보험삯 내랴, 또 때때로 식구들하고 나들이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책도 사 읽히느라, 또 가끔가끔 맛난 바깥밥을 사먹이고 동무들하고 술잔을 부딪히느라, …… 제법 많은 돈을 일삯으로 받고 있다고 하여도 모두들 한목소리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가난한 이는 가난한 대로 힘들고, 돈있는 이는 돈있는 대로 힘듭니다. 모두들 너무 힘들고 고달프다 보니, 더 ‘내 한 몸 사리기’로 움츠러들고, 이러면서 바깥으로 내쳐진 사람이나 따돌려진 사람이나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 춥고 배고프고 쓸쓸합니다. 가게에서 ‘한 번 쓰고 버리는 비닐봉지’를 못 쓰도록 법률을 마련했다 하여도 어느 가게에나 비닐봉지는 많이 쓰입니다. 게다가, 비닐봉지를 안 쓴다 하여도 큰 마트마다 물건들을 죄다 비닐이나 랩으로 뒤집어씌워 놓고 있습니다.

 맨흙이 드러나는 땅바닥이 거의 모두 사라져 버린 도심지에는 망초처럼 목숨이 질긴 들풀이 뿌리를 내릴 만한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보기 좋으라고 심은 벚나무는 스무 해라도 버티면서 도심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 도시에서는, 또 시골에서도, 푸른빛을 뽐내는 풀과 나무를 만나기는 만만하지 않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길에서 푸르디푸른 푸나무를 만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아파트에서 자가용으로 갈아타고, 자가용에서 내리면 곧바로 시멘트와 쇠붙이로 지은 건물에 들어가서 하루를 보낸 다음, 다시 자가용을 타고 몇 군데 가게를 들러 아파트로 돌아옵니다. 하늘 올려다볼 틈이건 땅 내려다볼 겨를이건 없는 가운데, 집구석에서 키우는 꽃그릇 하나라도 제대로 살펴보는 말미란 없다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비닐봉지풀’만 저 혼자 외따로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다가는, 온 동네방네 심어 놓은 은행나무와 벚나무 가지에 걸려 새까만 나뭇잎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4342.7.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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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20 18:29   좋아요 0 | URL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ㅅ 일꾼이시라면 숨어있는 책 사장님을 말씀하시나요.이분이 헌책방하시기전에 무슨 출판사에 편집장으로 계셨다고 하시는것 같던데요

숲노래 2009-07-22 12:33   좋아요 0 | URL
<숨어있는 책> 사장님은, 열화당과 눈빛 출판사에서 일하시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7 ― 자전거 타기뿐 아니라 살기도 어려운 한국에서
 : 후쿠오카 켄세이, 《즐거운 불편》



- 책이름 : 즐거운 불편
- 글 : 후쿠오카 켄세이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달팽이 (2004.4.5.)
- 책값 :


 (1) 한국땅에서 자전거 타는 어려움


 아침에 자전거를 몰고 일터인 도서관으로 나옵니다. 살짝 골목마실을 하고 도서관으로 올까 하다가, 무서운 빠르기로 날아가고 있는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해서, 다른 데에 한눈을 팔지 않고 곧장 도서관으로 옵니다. 가파른 계단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와서 창문을 여니, 이내 바깥에는 빗줄기가 후둑후둑 떨어지고, 곧 굵은 빗방울로 바뀝니다. 자칫 1분만 늦게 왔어도 큰비를 쫄딱 뒤집어쓸 뻔했습니다. 비옷을 따로 챙겨 나오지 않았으니,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지만, 비가 그치지 않으면 우산을 쓰고 자전거는 두고 가야겠습니다.

 동네에서 가게를 여는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들은 으레 자전거를 타고 당신 댁에서 일터로 나오곤 합니다. 헌책방 앞, 문구점 앞, 구멍가게 앞, 쌀집 앞에는 으레 자전거가 서 있습니다. 짐을 나르기도 하는 자전거이지만, 집과 일터를 오가는 자전거이기도 합니다. 요사이는 ‘자출-자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하는 사람이 제법 늘고 있는데, 이런 자출-자퇴가 있기 앞서부터, 동네 가게 일꾼들은 언제나처럼 자전거로 집과 일터를 오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전거 문화가 퍼지고, 한 해가 다르게 번쩍번쩍하는 나라밖 고급 자전거가 나라안에 물밀듯 들어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전거집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길거리에서 ‘자전거옷 쪽 빼입고 달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낯설지 않습니다. 이분들 가운데에도 ‘자출-자퇴’가 있겠습니다만, 좀더 많은 분들한테는 ‘레저-취미-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들 집과 일터를 오가는 데에도 더러 이 자전거를 탈 테지만, 집과 일터 사이는 ‘인천과 서울’ 사이일 때가 많고, 이러다 보면 으레 자가용이나 전철로 집과 일터를 오가기 마련이며, 쉬는 날이나 주말에 자전거를 끌고 나오기 일쑤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하고, 자전거에서 내린 다음 생각하고, 두 다리로 골목마실을 하면서 ‘짐자전거’를 만날 때하고 ‘레저-취미 자전거’를 만날 때마다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삶자전거’라 할 만한 생활자전거란 무엇일까 하고. 우리는 어떤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내 삶으로 스미는 자전거’라 할 수 있을까 하고.


.. 사람들이 자동차 타기를 그만두기만 한다면, 일본 국내에서 연간 8천 명이 넘는 교통사고 사망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수많은 부상자들이 상처 입는 일도 없을 것이다 … 차라는 교통수단으로 우리의 생활은 날로 편해지고, 산업은 발전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반드시 희생자가 발생한다. 희생자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제한된 예산을 거기에 투자를 한다면 산업발전이나 안락한 생활을 지탱해 주는 자동차를 위한 사회적 생산기반의 정비가 늦어진다 … (정부와 사회는) 자동차의 장점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 보험료를 지불하고, 그것으로 희생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타협을 도모하자는 방법을 제시했다 … 차의 안전성을 말할 때,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은 항상 차 안에 있는 사람의 안전뿐이었다. 안전벨트도 에어백도 그것을 위한 장치다. 사고를 당한 상대방의 피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5∼6쪽)


 저전거로 먼나들이를 떠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옵니다. 자전거를 자전거집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손수 고치거나 만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책이 나옵니다. 자전거 정책을 다루는 책이 나옵니다. 나라에서는 새 자전거길을 놓는 데에 몇 조에 이르는 돈을 쓰겠다는 공약을 내놓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자전거책’을 들춰보고 몇 가지를 장만합니다. 저 스스로도 자전거책을 씁니다. 다른 분들이 쓴 자전거책을 읽다가는 끝까지 못 읽고 덮곤 합니다. 자전거 정비를 다룬 책을 읽으며 ‘자전거를 처음 살 때 주는 설명서에 담긴 이야기하고 무엇이 다를까?’ 하는 궁금함을 풀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라안 자전거책이 어느 대목에서 서로 닮은지를 어렴풋하게 느낍니다.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자전거잡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한국땅에서 자전거책이라 할 때에는 꼭 두 가지 자전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첫째, 산타는자전거, 영어로 하자면 ‘엠티비’. 둘째로는 길에서 내달리는 자전거, 영어로 하자면 ‘로드바이크’, 이른바 ‘사이클’.

 드문드문, ‘작은자전거’를 ‘미니벨로’라는 이름으로 다룹니다. 그렇지만, 드문드문 다룰 뿐이요, 속깊이 들여다보는 눈길이나 매무새가 되지 못합니다. 어쩌다 들여다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고 아끼도록 이끄는 힘을 보거나 느끼기란 퍽 어렵습니다.


.. 남은 길은 오직 하나다! 선진국 국민들이 에너지와 물자의 소비량을 줄이는 길뿐이다. 지금, 선진국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은 자원과 에너지의 효율화를 추진하여, 낭비를 제거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느 일부에서 낭비를 없애고 절약을 할라치면, 절약된 돈을 유혹하는 새로운 소비가 뒤이어 등장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 계단이 찾기 어려운 외진 곳으로 쫓겨나고, 그 존재조차 눈에 잘 보이도록 표시해 두지 않게 된 배경에는, 계단보다 안락하고 빠른 엘리베이터를 누구나 선호할 것이라는 ‘상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꾸준히 계단을 이용하다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만도 없다 ..  (17, 50쪽)


 툭 까놓고 하는 말이지만, 자전거 문화이든 정책이든 취미이든 삶이든 무엇이든 말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치고, 여느 사람들이 예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타고 있는 자전거(짐자전거와 장바구니자전거)를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나서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제오늘앞날에 이르기까지, 조용히 꾸준히 자전거를 즐겨 온 사람들 매무새는 한 번도 살갗으로 느껴 본 적이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게 일꾼이 타고, 아저씨 아주머니가 타는 여느 짐자전거치고, ‘자전거 설명서’가 붙어 있은 적이란 없습니다. 설명서가 붙어 있는 자전거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유사산악자전거’쯤 되어야 합니다. 튜브에 바람을 넣든, 구멍난 튜브를 때우든, 이래저래 손질을 하건, 안장 높이를 맞추건 손잡이를 맞추건, 언제나 ‘값나가는 자전거’한테만 눈길을 맞춥니다.

 우리네 땅에 자전거길을 놓아야 한다면, 취미나 운동을 삼아서 놓을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집하고 일터를 오가거나 집하고 학교를 오가거나 내 집에서 이웃이나 동무네 집을 오가는 길에서 걱정이 없도록 하는 길을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 한강 같은 데처럼, 강줄기를 끼고 자전거길을 새로 큰돈 들여 닦아 놓는다면 보기에도 좋고 달릴 때에도 좋고 할 터이나, 정작 자전거 쓰임새 가운데 아주 작은 대목만 누리거나 나눌 뿐입니다. 취미나 운동은 채워 준다지만, 우리가 취미나 운동만 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을 꾸리고 우리 일을 하는 가운데 취미가 있고 운동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늘 살아가는 가운데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하는 자전거 정책이요 문화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있는 가운데 한 번 더 마음을 쏟아 즐거이 운동도 하고 취미로도 삼을 자전거 이야기를 펼쳐야 하지 않을는지요?


.. 소유하는 물질과 정보도 훨씬 많고, 에너지도 먹을 것도 넘칠 정도로 소비하고 있으면서, 30년 전의 어버이들이 아이들에게 주었던 정도의 행복감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눠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아니, 오히려 우리 자녀 세대에게 환경파괴니 식량위기니 자원고갈이니 하는 무거운 짐을 떠넘기려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에너지와 돈을 써 가면서 자가용이나 전철로 이동하고, 운동부족 해소니 체중감량이니 하는 명목으로 냉난방이 잘 갖춰진 스포츠센터에서 또 에너지와 돈을 들여, 바퀴도 없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런닝머신에서 제자리뛰기. 내 자녀와 손자들의 자원을 야금야금 축내고, 그 미래를 짓밟아 가면서 ..  (19, 33쪽)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저는 마땅히 ‘대통령 관용차’를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원이 되든 시장이나 군수가 되든 마찬가지입니다. 모오든 관용차를 없애고 누구나 ‘관용자전거’를 타도록 틀거리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행정과 정치를 맡으며 차를 타고 어디를 가야 한다면 택시를 불러야지요. 요새 부름택시가 얼마나 잘 옵니까. 더구나, 관용차 아닌 택시를 쓰면 유지비와 경비는 훨씬 덜 들 뿐더러, 인건비 또한 훨씬 적게 먹습니다. 게다가, 택시는 우리가 가려는 데까지 얼마나 빠르게(?) 모셔다 줍니까. 이러는 가운데, 택시업자들도 한숨을 돌릴 수 있으니, 우리네 일자리 지키기에도 더욱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러면서 관용차를 제멋대로 굴리는 일을 막을 수 있어 공직사회 썩은물 갈기에도 이바지를 합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공무원이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도록 하면서 배불뚝이 공무원은 머잖아 사라질 수 있고, 공무원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집과 일터를 오가는 동안 ‘대한민국 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뼛속 깊이 깨달을 테며, 애먼 돈을 해마다 보도블럭 갈아엎는 데에 쏟아붓지 않고 ‘어디에 그 돈을 써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자전거 타기가 늘 몸에 배었을 테니까, 굳이 비행기 타고 머나먼 나라로만 여행을 다니지 않고, 식구들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라안 곳곳을 찾아다니는 마실을 떠나기도 하며, 이렇게 나라안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허튼 나라사랑’이 아닌 ‘참된 자연사랑’을 조금씩 키울 수 있고, 우리 아이들한테도 땀흘리는 보람과 이웃과 사귀는 기쁨을 가르칠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생각은 아직까지는 덧없는 꿈 같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부질없는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무원뿐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돈을 밝히고 이름에 매이고 힘에 휘둘리고 있으니까요. 내 몸을 나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기보다, 내 입과 손만 께작거리며 살아가려고 하니까요.


.. 우리 식구들이 먹을 채소인 만큼,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 후 처리에 문제가 있는 비닐 등의 화학합성재료도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기 위해, 신문지로 대신 쓰고 있다 … 본가의 어머니께 여쭸더니, 봄에서 가을까니는 무농약으로 양배추를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신다. 시판되고 있는 ‘곱디고운’ 양배추의 대부분은 흙에 뿌려진 약제를 뿌리로부터 흡수하며 자라기 때문에 벌레들이 좀처럼 기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벌레도 먹지 못할 것을 인간이 먹고 있는 셈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편하게 곱디고운 상품을 생산할 수 있으니 분명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먹는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진다. 단가가 낮아지면 대량으로 보급되고, 보급 후에도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소비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고장이 나면 버리고 새로 사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낮은 가격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64, 66, 55∼56쪽)


 그러나, 자전거를 탄다고 좀더 튼튼한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전거를 안 타거나 못 타면서도 얼마든지 생각과 마음을 튼튼하게 일구거나 지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전거를 모르면서도 세상을 똑똑히 깨달으며 ‘아름다운 땀방울’ 값어치를 널리 나누는 분이 많습니다.

 꼭 자전거 한 가지를 들어야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한 사람이 한 아이를 낳고 기를 때와 마찬가지로, 좀더 넓고 깊이 들여다보거나 깨닫거나 부대낄 실마리를 하나 더 열 수 있을 뿐입니다. 아이 키우기에서도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인데, 아이를 낳지 않고 키워 보지 않는다 해서 아이 사랑을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아이를 돌본 적이 없다 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 어우러짐을 잘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 이음고리가 없다뿐입니다. 그리고, 아이 키우기를 하면서 한 가지 이음고리를 더 뼛속 깊이 깨닫습니다. 갓난쟁이부터 큰 아이가 될 때까지 한팔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팔로는 장바구니를 들면서 한두 시간을 땀 뻘뻘 흘리며 저잣거리 마실을 하고 돌아와서 식구들 밥상을 차려 본 사람과, 이런 일을 치러 보지 않은 사람 삶과 생각은 같을 수 없습니다. 헬스클럽에서 역기를 들며 한두 시간 운동할 때하고, 아기를 안고 한두 시간 거닐며 어르고 재우는 삶은 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두 다리로 걸을 때하고 자전거로 달릴 때하고 자가용으로 지나칠 때는 사뭇 다른데, 두 다리로 걷던 길을 자전거로도 오가면 더욱 깊이 이 길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안는다고 할까요. 아기한테 젖을 물려 본 삶을 치러내고서 ‘엄마젖 먹이기’를 말하는 삶하고, 아이 키울 마음은 따로 없으나 ‘엄마젖 먹이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삶하고 다른 셈이라고 할까요. 목소리는 같아도 목소리에 담는 삶이 다릅니다. 목소리는 똑같이 들릴지 몰라도 목소리에 담는 느낌이 다릅니다.


.. 원래 불황이란 물건이 팔리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그렇다면 왜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되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물건을 사지 않게 되었을까? 그것은 살 필요가 없고, 사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살 필요가 없고, 사고 싶은 것이 없을까? 그것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물질이 팔리지 않으면 당연히 만들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만들 필요가 없으면, 또 일하지 않아도 좋다는 결론이 된다 …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돈은 이제 그다지 필요없다는 것이다. 돈이 그다지 필요치 않게 되었다면, 억척같이 일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 사람들이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늘어난 자유시간을 그런 공생을 위한 활동으로 돌린다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더불어 인간관계의 폭도 넓힐 수 있고, 삶의 보람도 찾을 수 있다 ..  (125∼128쪽)


 사람들이 자전거를 제대로 안 타 버릇하기 때문에, 자전거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렵고 자전거 정책이 올바르게 나오기 어렵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와 문화와 역사와 경제를 올바로 읽지 않기 때문에, 자꾸자꾸 옳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꾼으로 나설 뿐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으로까지 뽑히고 시장이나 군수를 여러 차례 지내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도, 내 삶으로 곰삭이는 자전거가 아닌 취미나 멋이나 명품이나 뽀대나 레저나 지름신이나 매니아나 유행이나 소비이기 때문에, 자전거 문화가 튼튼히 뿌리내리기 힘들고 자전거 정책이 슬기롭게 나오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헤아리려고 애쓰면서 책을 찾아 읽는다든지, 우리 이웃을 굽어살피고자 마음문을 연다든지 하지 않으니까 자꾸자꾸 범죄가 늘고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말씨가 거칠어지며 갖가지 아프고 슬픈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과 머리단속과 교복통제를 떨쳐내지 못하지만, 어른들 또한 아이들이 더 높은 대학교에 동무를 짓누르고 들어가기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교육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이런 얼거리를 모르는 어른은 드무리라 봅니다.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 아슬아슬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길에 나와야 합니다. 자전거 문화이든 정책이든 제대로 나오고 뻗어가려면 우리 스스로 내 자전거와 이웃 자전거를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셈틀 앞에 앉아 인터넷바다를 휘저으며 지름신을 꿈꾸는 가운데 자전거 문화란 싹이 트지 못합니다. 값비싼 자전거이든 값싼 자전거이든 언제나 스스로 즐겁게 타고다니는 버릇을 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엉터리 자전거 정책만 쏟아지면서 나라돈을 엉뚱한 데에 쏟아붓고야 맙니다.


 (2)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려움


 며칠 앞서 어느 혼인잔치에 다녀왔습니다. 여느 혼인잔치와 거의 똑같이 이루어졌으나, 신랑과 신부가 혼인서약을 할 때에 조금 다르던데, 저마다 맞은편 앞에서 ‘내 다짐’을 읽는데, 신부 되는 분께서 “신랑 내조를 잘하겠으며……”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읽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스물너덧밖에 안 되었을 신부는 ‘남편 내조 잘하는 아내’가 꿈이라고 하더군요.


.. “지금 현대인의 생활상을 보면, 그런 생생한 삶의 근원과 관련된 작업을 모두 가정 밖으로 몰아내서, 눈에 보이지 않게 하고 있잖아요? 출산도 사람이 죽는 것도 병원에서 하고, 고기도 생물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얻어진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포장돼서 진열냉장고에 깨끗하게 장식되죠. 그것을 들고 계산대에 가서 돈만 내면 내 것이 되니.” … “지금은 교육비가 많이 들어간다며,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우리 아이들은 실제 돈보다는 부모님의 시간과 정성을 더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149, 150쪽)


 남편을 잘 모시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아내를 잘 섬기는 일 또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더 알뜰히 모시고 섬겨야 합니다. 앞에서는 받드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깎아내리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신부 되는 젊은 아가씨 다짐을 들으면서 더없이 거북했습니다. 당신 스스로 그렇게 밝히지 않아도, 2000년대 한국 삶터에서는 옛날하고 크게 다르지 않도록 ‘남편 모시기’를 해야 할 텐데, 굳이 스스로 더 굽히고 들어갈 까닭이 있느냐 싶고, 젊은 아가씨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젊은 아가씨한테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쏭달쏭했습니다.

 그나마 저는 한국땅에서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땅 여자와 견주어 ‘먹고들어가는 뭔가’가 있습니다. 덧붙여, 저한테는 형이 있으니, 첫아들이 아닌 데에서 ‘홀가분한 뭔가’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오늘과 같이 저 하고픈 일을 제 꿈대로 하나하나 이루어 가면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첫째였다면 이제와 같이 저 가고픈 길을 제 깜냥껏 우격다짐으로 걸어올 수 없습니다.


.. “폐기물처리장이나 댐은 대개 시골에 만들어집니다만, 지금까지는 시골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도시사람들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둔 점도 있지 않았습니까?” … “지금의 아이들은 환경문제 등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들만 들으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밝은 꿈을 갖기가 어려워졌어요.” … “결국 모든 것이, 생명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큰 기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4, 206, 311쪽)


 옆지기는 가끔 저한테 “형한테 고마워 해야 해요”나 “형한테 미안해 해야 해요”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이 아니더라도 형한테 늘 고마우면서 미안합니다. 그런 한편으로, 제가 형이었다면, 또는 제가 맏이이면서 여자였다면, 또는 둘째이면서 여자였다면 어떠했을까를 곱씹어 보는데, 저는 제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어도 오늘과 같은 길을 걸었다고 느낍니다. 그저, 이 길을 걷는 동안 부딪힌 울타리가 달랐을 테고, 달랐던 울타리만큼 제 마음밭도 다르게 일구었을 테고, 다르게 일군 마음밭만큼 더 일찍 거듭났거나 더 늦게 거듭났을 테지요. 아직도 어리숙한 자리에서 헤맬는지 모르고, 일찌감치 훌륭히 거듭나면서 더 바지런히 제 삶을 붙잡고 있는지 모릅니다.

 맏이이자 남자였다면, 집안일 짐이 어마어마했을 터이나, 이 어마어마한 짐 때문에 또다른 눈길로 또다른 삶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맏이이자 여자였다면, 내 앞길을 헤쳐나가는 데에 나 스스로 더 많이 애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 테니 더 다부지고 단단해졌을 테지요. 둘째이자 여자였다면,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설렁설렁 살았을는지, 저도 며칠 앞서 혼인잔치 자리에서 본 젊은 아가씨처럼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지아비 섬기는 한 사람’으로 머물자고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외려 더 홀가분하게 저 가고픈 길을 마음껏 갔을는지도 모릅니다.


.. “시간에 쫓기다 보면,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해 보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죠.” … “모두 너무 바쁘니까 좀처럼 그렇게 해 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잘 모르겠지만.” … “세상은 어쨌든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편리해졌다고 행복한가 하면, 반대로 아주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이들이 놓여 있는 상황은, 그대로 어른의 상황과 똑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어른도 지금보다 장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노후를 위해서라거나 좀더 유명해진다거나 하는 잡음이 끼어들죠. 지금을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준비해라, 오늘은 내일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아라 하고. 내일이 되면, 또 다른 내일을 위해 희생하라고. 그러니 아무리 내일이 오고 또 와도 생명을 구가할 수 없게 되는 거죠.” ..  (215, 225, 230, 236쪽)


 지난 2008년 8월 16일에 딸아이를 낳으면서, 저는 속으로 제발 제발 딸아이가 나와야 한다고 빌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땅에서 아들아이로 태어나면 어김없이 군대에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설렁설렁 노닥거리는 군부대도 틀림없이 있으나 우리 아이가 그런 데에 갈는지 알 길이 없는 한편, 노닥거리는 군부대에 간다 해서 아이 삶자리가 걱정이 없거나 나아지리라 여길 수 없습니다. 착하고 풋풋한 열아홉스물짜리 젊은 한 사람을 살인병기로 만들면서 바보가 되도록 굴리는데다가 주먹다짐을 몸에 배도록 하는 군대라는 곳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둘레에서 만나는 어린 후배한테마다 ‘웬만하면 군대에 안 가는 길을 잘 찾길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군대에서 썩는 젊음은 돌이킬 수 없음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군대라는 곳에서 스물여섯 달을 썩어 보았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삶터가 얼마나 살기 팍팍한가를 새삼 깨닫고 보고 삭였습니다. 베트남전쟁 때에도 고엽제를 써서 많은 분들이 뒤탈을 앓고 있는데, 제가 있던 군부대에서도 비무장지대 철조망을 가리는 푸나무를 베어내거나 뽑아낸다면서 고엽제를 뿌렸습니다. 고엽제를 ‘당까(‘들것’이 바른 말인데,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에 두어 포대씩 얹어 신나게 날랐고, 포대를 그냥 북 뜯어 하이바로 퍼서 뿌렸습니다.

 간첩이 아닌 ‘귀순’을 한다던 북녘 병사를 옆 중대 아이들이 잘못해서 쏘아죽였던 일이 있고, 이웃 소초 말년병장이 지뢰를 밟아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밤새 근무를 서면서 지뢰 터지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뭔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일이 있으며, 온도계로 영하 47도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며 이를 덜덜 떨었던 일이 있고, 우리가 사격을 엉터리로 한다고 마구 총질을 해대며 ‘다 죽어 버려!’ 하고 외치던 중대장이 있었습니다. 이 중대장 방을 청소하다가 침상 밑에 빨간 잡지 두 권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 녀석도 사람이긴 사람이네. 군대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나 보군’ 하고 생각했고, 고참병들이 쉴새없이 주먹질을 해대며 울먹여야 할 날이면 주먹을 불끈 쥐면서 ‘군대에서 죽을 수 없어. 나한테도 전역날이 있을 테니까 기다려라, 밖에 나가서 보자 xxx들’ 하고 다짐하는 한편 ‘나는 너희처럼 고참병이 되어도 이 따위 주먹질 발길질은 안 할 테다’ 하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군대였지만, 영하 22도를 오르내리던 혹한기훈련 때 ‘우리 주둔지보다 따뜻하잖아?’ 하고 생각하며 국을 뜨다가 그만 숟가락이 입천장에 붙는 바람에 뜨거운 물을 입에 얼른 부어 떼어내던 일을 겪으며, 추위란 이렇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배고픈 행군을 열 몇 시간 끝없이 하면서 눈을 퍼먹는 동안 그 옛날 한국전쟁 때 피난 가던 사람들도 이렇게 눈을 퍼먹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고슴도치를 두 눈으로 보며 살며시 품에 안아 보던 기쁨은 전역한 지 열 몇 해가 되었어도 어제일처럼 떠오릅니다. 산에서 우쑥우쑥 자라는 돌배와 개복숭아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이때 처음 알았고, 내 뺨으로 두 번을 재야 할 만큼 날개가 큼직한 사향제비나비 무리를 보았을 때에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맨눈으로 금강산을 바라보고 스탈린고지와 김일성고지를 바라볼 때에는 그저 하염없이 좋았습니다. 남과 북은 고작 저 쇠가시울타리로 가를 수 없다고, 저쪽에서도 맨눈으로 남녘땅을 바라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통일이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되뇌었습니다.

 누구나 치러내기 나름이니, 잘 치러내면 군대라는 곳은 좋은 배움터가 됩니다. 누구나 치러내기 나름이라서, 군대에 가지 않고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하여도 어영부영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꼭 젊은 넋한테 살인병기 되는 솜씨를 가르쳐야만 할까요. 젊은 넋이 더 젊고 싱싱하고 푸르게 거듭나는 길을 보여주거나 이끌 수 없을까요.


.. “지금까지는 소비를 위해 일한다는 면이 강했죠. 즉 소비를 위한 노동이었던 셈입니다 … 필요없으니까 사지 않는 것인데, 필요없는 것을 만든다는 건 곧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 “왜 자전거도로는 그대론데, 고속도로만 점점 늘어나는 것일까? 역시 정치가 자동차 회사나 물류기업, 즉 기업 생산자들 편만 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참 많아집니다.” ..  (251, 276쪽)


 아들아이 아닌 딸아이를 낳아 군대 시름은 살짝 놓았지만, 더 깊이 헤아리면 우리 아이가 군대를 안 간달지라도 우리 아이가 나중에 만날 남정네는 하나같이 군대를 갔다 와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군대에서 살인병기 되는 훈련을 안 받는달지라도 우리 아이하고 사귀거나 함께 살아갈지 모를 남정네는 군대에서 살인병기 되는 훈련을 받으며 사람을 깔보거나 얕보는 마음이 어느새 깃들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앞날까지 근심하기 앞서, 바로 오늘 우리 아이를 가르치도록 할 학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더 큰 근심입니다. 교육부장관이 누가 되고 교육감을 누구로 뽑느냐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교육 정책이 달라지는데, 교과서는 아이한테 삶을 밝히는 빛줄기가 아닌 시험성적으로만 다가가도록 짜여 있는데, 교사들은 큰어른이나 스승이기보다는 월급쟁이에 훨씬 가까운데, 도시락을 안 싸도 되고 급식을 내어준다지만 급식 밥차림이 생채식이거나 생협 물품일 수는 없는데, 학교 건물은 어디나 감옥소와 똑같이 지어져 있고 모든 아이 생각과 몸을 한 가지로 틀에 박히도록 짜맞추고 있는데, …….


 (3) 《즐거운 불편》을 읽는 어려움


 이야기책 《즐거운 불편》을 읽습니다. 2005년에 한 번 읽었고 2008년과 2009년 이태에 걸쳐 거듭 읽습니다. 《즐거운 불편》을 쓴 후쿠오카 켄세이 님은 일본 〈마이니치신문〉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몸도 ‘즐거운 불편’을 겪은 열두 달 이야기에다가, 일본에서 ‘맑고 밝은 앞날을 생각하며 뜻있게 사는’ 열두 사람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로 묶습니다. 그러니까, 글쓴이 스스로 꼭 이태에 걸쳐 쓴 책이라는 소리입니다. 이에 따라 읽는이까지 글쓴이 흐름에 맞출 까닭은 없지만, 《즐거운 불편》 같은 책은 꼭 이태에 걸쳐서 한 달에 한 꼭지씩 읽어낸다면 한결 새삼스럽지 않겠느냐는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즐거운 불편》은 ‘읽기책’이 아니거든요. ‘하기책’입니다. 이론이 아닌 실천을 밝히는 책이요, 지식으로 생각하라는 책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면서 세상과 내 삶을 바꾸자는 책입니다.


.. 자전거 통근으로 쉽게 배가 고파지고, 배가 고프면 아무리 찬밥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외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지참한다’는 불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도시락을 싸는 시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도시락을 아내와 함께 준비하다 보면, 부부 간의 대화 시간도 늘어나니 그 또한 즐겁지 않은가! … 여기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즐긴다’는 것이다. 머리를 불끈 동여매고 결연히 뭔가에 도전하는 식의 금욕적 방법으로는, 한때 공산주의 국가가 만들어 냈던 모범시민처럼, 소소의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만의 행동을 유발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  (31, 38쪽)


 1인출판사 ‘달팽이’에서 펴낸 《즐거운 불편》은 이 조그마한 출판사를 대표하는 책입니다. 첫발부터 1인출판 길을 걸었고, 첫발부터 오늘날까지 생태환경책을 중심으로 바른 사회눈과 종교눈을 틔워 줄 이야기책을 펴내 오는 이곳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즐거운 불편’이니까요.


.. 그처럼 날씨나 기후의 변화를 몸으로 직접 느끼기는, 참으로 자극적이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거기에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하나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강변을 따라 달리고 있을 때, 한 마리 갈매기가 내 자전거 바로 옆을 나란히 날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 이 작은 논에 두둑을 치는 것만으로 이 정도라니! 기계화가 되기 전의 농촌 노인들의 허리가, 그렇게 ‘ㄱ’자로 굽어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우리가 감상에 젖어 바라보는 농촌의 황금들판이, 허리가 ‘ㄱ’ 자로 굽어질 정도의 중노동을 묵묵히 해내는 농부님들 공덕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 ‘지키라’고 입으로 말하기야 쉽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노동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춥다. 산다는 것은, 이 정도로 시간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현대인이 지금처럼 불손해진 것은, 아마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32, 77, 138쪽)


 어린이들 또는 갓난쟁이들 앞에서 담배를 태우지 않는 매무새도 ‘즐거운 불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불편이지만 즐거운 불편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 또는 갓난쟁이들 앞에서 담배를 태우지 않는 매무새라 한다면, ‘아이 밴 엄마’ 앞에서도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겠지요. 나아가, ‘아이 키우는 아빠’가 가까이 있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애 아빠는 집에 가서 아이를 품에 안을 텐데 애 아빠 옷이나 몸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으면 어떡합니까.

 즐거운 불편이란 생각이 생각 꼬리를 잡고 이어집니다. 이런저런 생각 꼬리를 잡고 이어지다 보면, 나 스스로 담배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여도 ‘길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내가 담배를 좋아해서 길에서 담배를 피우면 ‘아이이든 아이 엄마든 아빠이든 또 아이와 얽힌 사람 누구한테라’도 담배 냄새를 퍼뜨리거든요. 담배를 안 피우거나 담배 냄새 때문에 골치를 썩는 사람한테도 잘못하는 노릇입니다.


.. 엄마에게 배워 가면서 찢어진 의자를 바느질하는 큰딸. 누덕누덕 기운 만큼 정성이 가득 담겼다 … 운전을 즐기는 마음이 없다면 안전운전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즐기는 마음이 아닐까? … 농촌생활은 결코 안락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광활한 자연을 상대하는 만큼, 몸과 머리와 마음을 움직일 기회가 듬뿍 있다.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고는 본질적인 것으로 향하게 된다 ..  (95, 162, 260쪽)


 담배 한 가지를 들었지만, 담배 한 가지만을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삶터 모든 곳에서 똑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즐긴다고 하는 온갖 ‘일과 놀이’가 얼마나 내 삶을 북돋우거나 채워 주는 일과 놀이인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가운데, 내 둘레로는 어떻게 퍼져 나가는가를 톺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ㅈㅈㄷ이라는 신문을 좋아해서 나 스스로 이 신문을 받아본다고 한다면, 이 신문을 보는 나는 나대로 좋을는지 모르나, 내 이웃은 어떻게 될는지, 그리고 내 이웃한테는 어떤 삶결이 펼쳐지게 될는지를 곱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자봉지 하나를 길바닥에 그냥 버리면 나쁜 일이라고 아이들한테 말할 노릇이 아니라, 이렇게 버려지는 과자봉지가 어떻게 흐르고 흐르는지, 또 이 과자봉지는 어떻게 누가 만들었고, 버려진 과자봉지는 길바닥에서 어떻게 뒹굴게 되는지를 살피면서 쓰레기 문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돈 한 푼을 쓰면서도, 이 돈이 누구 손을 거쳐 어떻게 쓰이는지를 좇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즐거운 불편’이라는 명목으로 자전거 통근을 사람들에게 권장하던 당사자가, 2년 간의 자전거 통근 끝에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불편은 결국,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기만 하다는 걸 증명한 셈이 되고 말았다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책까지 낸다는 것은, 진정한 ‘즐거운 불편’에게 죄를 더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 나를 격려해 준 사람은 아내였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으면서 말했다.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자전거를 타고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위험한 것을 타도록 면허증을 내준 나라가 잘못한 거지! 당신이 주장하고 실천해 왔던 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 ..  (363쪽)


 어찌 보면 딱딱하고 따분하다 여길 수 있을 텐데, 《즐거운 불편》은 일부러 ‘어렵게 살자’고 말하는 책이 아닌 ‘즐겁게 살자’고 말하는 책입니다. 불편한 몇 가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우리 삶이 한결 즐거워진다고 몸소 치러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불편한 몇 가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삶이야말로 더없이 즐겁지 못하며 아름답지 못하고 반갑지 못함을 글쓴이 스스로 겪어낸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글쓴이 옆지기 말마따나 “당신이 주장하고 실천해 왔던 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위험한 것을 타도록 면허증을 내준 나라가 잘못한 거지!”입니다.

 책 맨끝에 실린 글쓴이 마지막말을 거듭거듭 읽으며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습니다. 저 또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숱하게 뺑소니 사고를 겪으며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고, 이렇게 가까스로 살아난 저를 보고 제 둘레 좋은 벗님과 옆지기는 언제나 “당신이 잘못하지 않았어요!” 하고 북돋워 주었거든요. 좋은 벗님과 옆지기는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자동차 모는 사람들이 당신을 죽도록 치어 놓고 꽁무니를 빼도록 가르치고 이끈 우리 사회와 교육과 정치가 잘못이지!” (4342.7.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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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17 ― ‘좋은’ 진보를 꿈꾸면 ‘좋은’ 만화를 읽어야
 : 데즈카 오사무, 《아톰의 슬픔》


- 책이름 : 아톰의 슬픔
- 글 : 데즈카 오사무
- 옮긴이 : 하연수
- 펴낸곳 : 문학동네 (2009.1.21.)
- 책값 : 8500원


 (1) 책, 책읽기, 책삶


 장마비가 끝없이 내릴 듯하더니, 어제 하루는 말끔히 개면서 날이 몹시 무더웠습니다. 집안 창문을 모조리 열어 놓아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아쉬우나마 바람 한 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밤새 후덥지근한 가운데 모기는 법석을 떱니다.

 이런 더운 날, 어른들은 차가운 보리술이나 얼음커피를 떠올릴 테고, 아이들은 차가운 얼음과자나 팥얼음물이나 콜라를 떠올릴까요. 더위를 이기거나 견디면서 내 마음밭 살찌울 책 하나 읽겠다고 나설 어른이란, 또 어린이란 얼마나 될까요.


.. 뻔뻔스럽게 국민을 탄압하는 악랄한 권력자와 정치가조차도 태연한 얼굴로 ‘숲은 소중하다’, ‘동물을 보호하자’, ‘생명을 존중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독극물을 흘려보내고, 끊임없이 살인병기를 개발하고 제조하지요 … 혹시 인류는 어제도, 또 오늘도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리 달에 착륙하고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 해도 환경 파괴와 전쟁을 멈추지 않는 한 인류는 ‘야만인’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국가권력이 ‘정의’라는 이름 하에 국민들에게 휘두른 폭력의 실상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 《아돌프에게 고한다》입니다  … 전쟁터에서는 어디로 도망치든 결국 공포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탈출구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괴물이라는 점이 가장 참혹한 것입니다 … 수많은 나라가 저마다 ‘정의’를 내걸고 전쟁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정의’란 참으로 편리한 말이어서 국가의 수만큼, 혹은 인간의 수만큼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창한 ‘정의’의 속뜻은, 노인부터 순진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참한 살육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16, 18, 41, 53∼54쪽)


 아기 기저귀를 빠는 동안은 조금 시원합니다. 찬물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는 아기를 여러 차례 씻깁니다. 이제 기저귀를 떼야 하니 아랫도리를 벗기거나 속옷만 한 벌 입혀 놓는데, 오줌을 가리기 앞서까지는 온 방바닥이 오줌바다가 됩니다. 그만큼 기저귀 빨랫거리는 줄지만, 하루에 열 번 남짓 걸레질을 해야 합니다. 기저귀 열 번 빨기보다 걸레 열 번 빠는 일이 한결 수월합니다.

 어른 두 사람이 아기 하나한테 매여 쩔쩔맨다고 할 텐데, 이렇게 쩔쩔매는 동안 엄마든 아빠든 제 마음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어질어질 해롱해롱 아슬아슬 간당간당입니다.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사이 어느새 밥때가 다가오고, 밥때가 다가와 밥을 차려 놓으면, 아기는 제가 숟갈질을 하겠다며 한손으로 꾹 움켜쥐고 밥을 다 헤집어 놓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떠먹여 주면 고개를 도리도리 젓거나 엉금엉금 내뺍니다. 한 숟갈 먹일 때마다 몇 분씩 걸립니다. 이렇게 하루 온통 바쳐 씨름을 하며 지치는 엄마 아빠가 책을 펼치기란 대단히 힘든 노릇. 뒷간에서 똥을 눌 때, 이제 지쳐 잠자리에 드러누우며 잠깐 책을 집어들지만, 겨우 잠들었다 싶은 아기는 금세 다시 깨어나 응애응애거리니 이마저도 몇 쪽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먹고살기 바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농사일이나 공장일로 고단한 일꾼은 일꾼대로, 또 장사하기 벅찬 장사꾼은 장사꾼대로, 그리고 집에서 아기하고 씨름하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한국땅 사람한테 책이란 머나먼 님, 아니 멀디먼 남입니다.


.. 겉보기에 평화로운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안락하게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이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에까지 뿌리내린 것입니다 … 일본의 군부와 정보기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상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정책을 편 것이겠지요. 우리 세대는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전쟁에 흠뻑 빠져 버린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힘써 온 것은, 군국주의가 남용한 영화의 효용을 거꾸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눈망울에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  (29∼30, 44∼45쪽)


 아이가 책을 읽자면 어버이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가 바르고 착하게 크자면 어버이가 바르고 착하게 커야 합니다.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자면 어버이가 튼튼하고 씩씩해야 합니다.

 아이는 어느새 어버이를 따라 합니다. 좋은 모습이든 궂은 모습이든 따라 합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 모습을 보며 절구질 시늉을 하고, 숟갈질 시늉을 하고, 빨래 비빔질 시늉을 하며, 방바닥 걸레질 시늉을 합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습니다. 어젯밤 오늘밤 그젯밤 …… 요 며칠 사이 우리 동네 사람이나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깊은밤에 술에 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제와 그끄제에는 경찰차가 와서 주정뱅이를 끌고 갔고, 어제는 ‘아마 그제나 그끄제 끌려갔구나 싶은’ 주정뱅이가 ‘x같으면 신고해!’ 하면서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오늘밤이라기보다 새벽나절 너덧 시에는 어떤 젊은 사내와 계집이 술에 절은 소리로 악을 쓰며 싸웁니다. 저와 옆지기는 이 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깨는데, 아기도 이런 소리에 놀라서 깰까 걱정입니다. 조용할 때에는 그지없이 조용한 골목동네이지만, 동네사람이든 딴 곳 사람이든 술에 절디전 사람들이 때때로 부리는 못난 짓이 고스란히 아이한테 옮을까 걱정입니다. 낮에는 동네 할매들이 우리 집 옆에 붙어 있는 정자에서 소주잔치를 으레 벌이며 갖은 욕을 늘어놓는데, 이런 소리도 우리 아이뿐 아니라 우리 동네 다른 아이한테 조금도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주정뱅이 소리가 아닌, 동네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제법 많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동네 곳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팔랑거리는 소리와, 바닷가에서 큰배가 뚜우 하고 울리는 소리, 그리고 빗소리 봄이 가는 소리 여름이 오는 소리 들을 받아들이고 느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저, 아이 앞에서 엉뚱하거나 엉망진창인 소리가 되도록 덜 가닿기를 바랄 뿐입니다.


.. 이 세상에 ‘한심한 아이’나 ‘나쁜 아이’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딱지가 붙은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어른들의 정신이 궁핍한 것입니다 … 우선 부모의 생활이 완전히 규격화되어 있지요. 빡빡한 하루 일과 속에 어린이를 적당히 끼워맞추는 게 다반사입니다 … 부모가 특별한 지위나 힘을 지닐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대세를 좇아 학력사회만 추종하며 자녀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설령 주류에서 조금 밀려난다 할지라도 자녀와 함께 자기 가정만의 가치관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가요? ..  (58, 65∼66쪽)


 곰곰이 헤아려 보면, 제가 헌책방마실과 골목길마실을 꾸준히 잇는 까닭은 제 마음과 몸을 살찌우며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옆지기와 아이를 함께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책 그대로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고 싶어서, 새책방마실뿐 아니라 헌책방마실을 함께하며 책사랑 마음을 즐거이 가꿉니다. 헐어도 책이요 번쩍거려도 책이거든요. 이천 원짜리라 해서 나쁘거나 이만 원짜리라 해서 좋거나 하지 않는 책입니다. 더 넓은 길이라 하여 사람이 다니기에 좋은 길이 아니며, 더 큰 집이라 해서 더 살기 좋은 집이 아닙니다. 수수한 살림살이며 갖가지 꽃그릇이며 꽃풀나무이며, 제 눈길과 매무새를 고이 지키도록 도와주고 되돌아보도록 이끕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장만하는 책들과 골목길마실을 하면서 찍어 놓는 사진들을 떠올려 봅니다. 모두 저 혼자 좋아서 보는 책이며 찍는 사진이라 하겠습니다만, 또 이 책과 사진을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만, 그저 옆지기와 아이와 나란히 즐기고 맛보며 함께할 수 있으면 흐뭇하다고 여깁니다. 이 책들처럼 아빠와 엄마가 살고 있으며, 이 사진들처럼 아빠와 엄마는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가운데, 제 깜냥껏 어버이를 느낄 테고 동네를 느끼며 세상을 느끼리라 봅니다. 이 자람길에서 책은 아이한테 길동무가 될 수 있고, 골목길 사진은 아이한테 길눈이 될 수 있습니다.


..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더라도 일본의 역이나 빌딩 등 도시의 구조는 도저히 노인이나 장애인을 배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란 곧 모든 생물이 살기 좋은 사회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 아무리 일본인의 후각이 발달했다지만 도시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코가 둔감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뒷골목 가게의 맛있는 라면 냄새는 금방 맡아도, 사계절이 변화하는 자연 속의 미묘한 향기는 알지 못합니다 … 정치인들이 더 많은 벌레와 생물들의 이름, 그리고 그것들의 서식지와 수명, 먹이까지 상세히 안다면, ‘이 공원에는 무슨 나무를 심어서 이런 새들이 찾아오도록 해야겠다’는 식의 녹색행정을 펼쳐, 숲과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푸른 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정도도 한낱 꿈으로 여겨야 한다면 너무 슬픈 일입니다. 이것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닌,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  (81, 86, 132쪽)


 옆지기나 저나, 우리 아이가 더 많이 배우거나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두 사람 스스로 더 많이 배우거나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옳다면 그 한 가지 옳은 길을 가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우며 남다른 한결 옳고 바람직한 길이 있다 해서 반드시 그 길로만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 깜냥껏 우리 길을 가되, 우리 둘레에 어떤 이웃이 어떻게 애쓰고 힘쓰는가를 헤아리거나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우리 두 사람은 책읽기를 이어갑니다. 고단하고 지치는 하루하루이지만, 다문 몇 쪽이라도 펼치고자 하며, 미처 못 읽어낼 책이라 하여도 ‘이런 책은 다른 사람이라도 볼 수 있도록 사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란 우리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웃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동네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이든, 눈을 뜨려 하고 생각을 열려 하며 마음을 넓히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한테 내밀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조촐하게 동네도서관을 지켜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2) 만화, 만화책, 만화쟁이


 만화쟁이 ‘데즈카 오사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드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데즈카 오사무 만화 가운데 무엇을 보았나요?” 하고 여쭈어 본다면, “글쎄요…….” 하고 뒷통수를 긁적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 이름나고 널리 읽힌 《우주소년 아톰》마저 첫 권부터 끝 권까지 찬찬히 펼쳐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그린 《붓다》를 스무 해쯤 앞서 ‘고려원미디어’에서 우리 말로 옮겨서 펴낸 적이 있음을 아는 분은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 우리 나라 과학잡지에 ‘아톰’ 해적판이 이어실린 적이 있기도 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일본 역사를 다룬 만화를 곧잘 그리기도 했고, 《밀림의 왕자 레오》라든지 《사파이어 왕자》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작품 이름을 댄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보았다’고 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있기는 있어도 이 만화들이 무엇을 보여주려 했고, 무슨 생각을 나누려 했으며, 아이들한테 이런 만화영화를 선물해 주고자 한 만화쟁이 속내를 헤아리는 분은 거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 어린 시절, 나는 다카라즈카라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였던데다가 막 전쟁에 돌입한 시기였기 때문에 결코 좋은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곁엔 늘 자연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마음껏 뛰놀던 산천과 초원, 한없이 빠져들었던 곤충채집은 지금도 생생한 추억으로 빛을 발하며 내 몸과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 필명인 ‘오사무(治蟲)’도 실은 ‘딱정벌레’에서 따온 것이지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숲과 들판이 있어서 아이들은 골목대장과 함께 해가 저물도록 그 환상의 왕국에서 뛰어놀 수 있었습ㄴ디ㅏ. 그곳은 우주기지였고, 탐험대가 찾아나서는 비밀스런 땅이었으며, 끝없이 공상이 퍼져나가는 미지의 장소였습니다 … 이제까지 나는 미래사회를 다룬 만화를 많이 그려 왔지만 우주 저편까지 날아가는, 혹은 작은 벌레 속까지 파고드는 상상력의 기반은, 내 안의 ‘자연’이었습니다 … 맹렬한 비판의 폭풍 속에서도 만화를 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로봇의 격렬한 싸움을 그린다 해도 내 만화의 주제는 항상 자연에 뿌리를 둔 ‘생명의 존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  (11∼13쪽)


 ‘데즈카 오사무’라는 이름은 무척 널리 알려져 있었음에도, 정작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이 제대로 나라안에 나온 적은 거의 없습니다. 2000년을 조금 넘어선 때에 학산문화사에서 ‘데즈카 오사무 전집’ 비슷하게 예닐곱 가지를 옮겨냈고, 솔출판사에서 한 가지를 옮겨냈습니다. 그러나 이 ‘데즈카 오사무 전집’ 비슷한 만화책들은 몇 해 지나지 않아 거의 모두 절판이라는 길을 걷습니다. 이제는 《우주소년 아톰》 24권, 《블랙잭》 22권, 《도로로》 4권, 이렇게 찾아볼 수 있는 가운데 ‘데즈카 오사무 초기 걸작집’ 네 권을 겨우 만날 수 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가 되는 2009년 올 1월에 나온 산문모음 《아톰의 슬픔》이라는 책에서 글쓴이 데즈카 오사무 님이 여러 차례 되뇌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우리 말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지 않느냐 싶고, 《불새》는 한 번 나왔으나 이 또한 금세 판이 끊어졌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만화영화 《밀림의 왕자 레오》나 《사파이어 왕자》를 찾아볼 수 있기는 할 텐데, 정작 ‘만화영화로 그려지던 첫 만화책’을 살펴볼 수 없는 대목은 몹시 안타깝습니다.

 우리 문화 눈높이가 이만큼밖에 안 되며, 우리 만화 눈높이도 더 뻗어나가지 못하는 모습이라 할 텐데, 곰곰이 따져 보면,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만 이렇게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나라안 숱한 만화쟁이 작품을 찾아보기도 퍽이나 어렵습니다. 부천에 만화책 다루는 도서관이 한 곳 있기는 합니다만, 이곳을 뺀 다른 여느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찾아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뿐 아니라, 훌륭한 만화책이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네 도서관 사서 가운데 ‘만화를 만화 그대로 받아안을’ 만한 생각그릇을 갖춘 분은 몹시 드물지 않느냐 싶습니다. 국립이든 공립이든 시립이든, 또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이든, ‘알찬 만화이든 재미난 만화이든 차곡차곡 갖추는 일’에는 어느 사서나 선생님이나 젬병이 아니냐 싶습니다.


.. 나는 자연과 인간성을 외면한 채 오직 진보만을 추구하며 질주하는 과학기술이 사회에 얼마나 깊은 균열과 왜곡을 가져오고 얼마나 많은 차별을 낳는지, 또 인간과 모든 생명에게 얼마나 무참한 상흔을 남기는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 아톰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왕따’였습니다. 하지만 소신 있게 행동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때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악당에게도 용기 있게 맞서는 아이로 그렸습니다. 물론 만화 속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본래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에너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매미가 울고, 강에는 물고기가 헤엄치던 자연, 그것은 그대로 우리들의 일상이었고, 벌레와 새와 어린이가 공존하던 세계였습니다. 자연을 ‘추억’으로도 소유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타인의 아픔과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모순된 일이 아닐까요? ..  (22, 27∼28, 57쪽)


 엊그제 잠깐 들렀던 헌책방에서 만화책 《불새》 일본판 하나를 만났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데즈카 오사무 님 숱한 만화책은 ‘번역이 안 된 탓’인지 모르나, ‘일본판으로 웬만한 작품이 거의 다 들어와’ 있은 듯합니다. 제가 만난 《불새》 일본판인 《火の鳥》에는 한국 책방에서 팔았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일본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주제에 전철길에 이 만화를 다 보아 냈는데, 퍽 예전 작품인 《불새》에는 톤을 하나도 쓰지 않습니다. 그림자며 옷이며 모두 펜끝으로 마감합니다. 그린이 손길이 무척 많이 갔구나 싶은 한편, 이렇게 펜질로 모든 그림을 그려내는 작품은 톤을 쓰는 작품하고 얼마나 다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톤을 쓰면 안 좋고 톤을 안 쓰면 좋다가 아니라, 펜질만으로 된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조금 더 찬찬히 만화에 빠져들기도 하고, 그림을 한 번 더 지그시 바라보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저한테는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 느낌이, 꼭 김수정 님 예전 만화를 보는 느낌이입니다. 두 분은 서로 다른 길을 다 다른 생각으로 만화를 그렸습니다만, 제 마음으로 스며드는 느낌은 한동아리입니다. 그래서, 한 해에 한 차례씩 김수정 님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다시 보고 있는데,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또한 한 해에 한 번쯤 우리 집 책꽂이 앞에 선 채로 죽 보아 내곤 합니다.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재미만 있지 않은 만화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이야기만 있지 않은 만화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만화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하기만 한 만화 또한 아닌, 김수정 님 작품이고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을 묘사할 때도 제작자의 메시지를 담는다면 괜찮지만, 전쟁을 단순하게 묘사하기만 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 나에게도 세 명의 자식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는 지금의 평화와 자유를 지켜 주고 싶습니다 ..  (62∼63쪽)


 아이를 낳기 앞서도 만화책을 즐겨 장만하며 차곡차곡 갖추었고, 아기를 낳은 뒤에도 만화책을 즐겨 보면서 하나하나 갖춥니다. 저 스스로 만화를 좋아하니까 꾸준하게 만화를 즐깁니다. 뒷날 우리 아이가 여러 갈래 온갖 만화를 스스로 살피면서 아이 깜냥껏 마음을 채우고 덥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장만해 놓습니다. 세상 어느 책이 안 그러겠습니까만, 그때그때 장만해 놓지 않으면 이내 판이 끊어지며 사라집니다. 새책방에서든 헌책방에서든 보이는 그때그때 집어들어 주머니를 털지 않으면 나중에 눈물만 질금질금 흘리거나 입맛만 다셔야 합니다.

 책값에 돈을 쓰는 일을 힘들거나 아깝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책 저런 만화를 차근차근 장만해 놓으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 하나는 있습니다. 참말, 우리네 도서관에는 왜 만화책이 없는지, 또 도서관을 꾸리는 분들은 왜 만화책을 갖출 생각을 못하는지, 그리고 왜 어른들은 만화를 깔보거나 ‘돈 되는 사업’으로만 여기는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림은 그림이고 사진은 사진이며 춤은 춤이고 노래는 노래이듯, 만화는 만화입니다. 수학은 수학이고 과학은 과학이며 영어는 영어이듯, 만화는 만화입니다.

 만화는 우리 꿈을 담아내는 문화예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는 우리 생각과 삶을 보여주는 문학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는 우리 마음을 쉬게 하거나 우리 마음을 살찌우는 마음밥 가운데 하나입니다.


.. 도시의 구조 자체가 이러했기에, 일본인들은 내 마을 주변의 생명과 자연환경을 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런데 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도시 공간과 자연을 격리시키려 안간힘을 쓰게 됐을까요? … 일본 고유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서구의 도시를 억지로 흉내내다 보니 심각한 왜곡과 불균형이 생겨 결국 자연환경까지 해치게 된 것이 아닐까요? … ‘여유’는 인생의 꽃입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여러 마을의 뒷골목을 둘러보곤 합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인생의 향기가 스며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판자로 엮은 담이나 처마 밑, 도랑, 집과 집 사이의 공간에 특별한 매력을 느낍니다 … 무미건조한 빌딩숲을 거닐며 행복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뒷골목을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그것이 곧 놀이인 것이지요 ..  (122∼124쪽)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만화쟁이를 한 사람, 또는 한 직업인, 또는 한 문화인, 또는 한 문화예술인으로 섬기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박재동 님이 《인생만화》, 《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만화 내 사랑》 같은 글모음(또는 글그림모음)을 내고, 이두호 님이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냈지만, 만화쟁이로서 당신 삶을 글로 펼쳐 보이는 분이 몹시 드뭅니다. 또한, 딱히 책으로 내주려 하는 흐름도 옅구나 싶고, 애써 책으로 나온다 한들 두루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머리통 굵은 어른은 어른대로 만화를 만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만화쟁이가 쓴 글을 읽지 않습니다. 어릴 적 만화를 보았던 이들은 이런 이들대로 당신들 만화 삶을 어른이 된 뒤에까지 잇지 못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져 다른 여러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만화쟁이’가 된 탓이 있기는 하나, 만화쟁이가 쓴 글을 잘 안 읽습니다. 다른 숱한 만화책을 보기에만 바쁩니다.

 이런저런 까닭이 겹치고 맞물리면서, 데즈카 오사무 님 글모음 《아톰의 슬픔》은 그리 눈에 안 뜨이는 책이 되고 맙니다. 2006년에 나온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도 그렇고, 2002년에 나온 《만화가의 길》도 매한가지였습니다. 






 (3) 《아톰의 슬픔》이라는 책은


 올 1월에 데즈카 오사무 님 글모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뻤습니다. 이모저모 알아보니 그동안 두 차례 다른 글모음이 나온 적이 있는데, 두 번 모두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언론매체나 비평가 눈길과 손길을 거의 못 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은 여느 새책방 책꽂이에 제대로 못 꽂히기도 했겠지요. 만화책 전문가게에 열 몇 해 동안 꾸준히 들르고 있습니다만, 제가 들르는 만화책 전문가게에도 데즈카 오사무 님 글모음이 꽂힌 모습을 못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데즈카 오사무’를 모르니까, 또 안다고 해 보았자 기껏 ‘아톰’이라는 이름뿐이니까 그럴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껏 아톰만 안다 할지라도, 만화책이나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일’이 없었다면, 데즈카 오사무이든 와사무이든 와사비이든 무슨무슨 책을 냈다 해서 딱히 눈여겨보지 않으리라 봅니다.


..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월급봉투를 받으면 내 책값을 따로 빼서 만화책을 사주었습니다 … 게다가 내 경우엔 어머니가 만화책을 소리내어 읽어 주었던 것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 50년 전에(1930년대에) 자식에게 만화책을 읽어 준 어머니는 굉장히 유별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군다나 읽어 주는 방식이 그야말로 걸작이었지요. 등장인물마다 캐릭터 별로 목소리를 바꿔 가며 연기하듯 재미있게 읽어 주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숨죽이며 감동해서 울먹일 정도로 ..  (34∼35쪽)


 어릴 적 만화영화로 《우주소년 아톰》을 볼 때면 언제나 눈가가 촉촉하게 젖곤 했습니다. 저는 아톰 만화를 ‘눈물을 흘리며’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으레 ‘공상과학’이니 ‘미래세계’니 하고 말씀하지만, 저한테 아톰은 공상과학도 미래세계도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바로 ‘오늘 내 둘레 삶터 이야기’였습니다. 아톰이 사는 무대가 먼 앞날이라 하지만, 무대와 과학기술을 빼놓고 보면, 언제나처럼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 삶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이는 《사파이어 왕자》와 《밀림의 왕자 레오》를 만화영화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느끼기로, 데즈카 오사무 님은 한낱 우스꽝스런 만화감이나 공상을 퍼뜨리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품이 따뜻하고 넉넉한 큰형이나 큰아저씨와 같았습니다.

 《돈 드라큐라》를 보건 《미크로이드 S》를 보건 《노만》을 보건 《아야코》를 보건 늘 매한가지입니다. 헌책방에서 때때로 데즈카 오사무 님 그림이 들어간 일본 어린이책을 만날 때면 으레,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만화쟁이들이 널리 사랑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우리 나라에도 ‘눈물을 흘리며’ 볼 수 있는 만화쟁이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요정 핑크》라든지 《달려라 하니》라든지 《번데기 야구단》이라든지 하는 만화책은, 벌써 몇 백 번이 넘게 보고 또 보아, 책이 퍽 낡고 닳았습니다. 이 만화책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자아내는 밝은 만화로 여기고들 있으나, 저한테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감도는 만화입니다. 어쩌면,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이 나는 만화일 텐데, 보고 또 보면서도 새롭게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마음에 메마르거나 지쳤을 때, 마음이 팍팍해지거나 힘이 빠졌을 때, 이런 만화책들을 넘기면 어느새 눈물샘이 솟아나면서 기운샘까지 솟아나곤 합니다.


.. 생명이 없는 곳에 미래는 없습니다 … 생명이란 더없이 소중하며 인생은 결국 단 한 번뿐이라는 것, 그리고 인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생명이 자연에는 가득하며 그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더불어 지구는 인류는 물론, 모든 생명에게 반드시 필요한 별이라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성심성의껏 이야기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한 감동을 몇 번이고 곱씹게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 거듭 말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풍요로운 자연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 일본은 그 좁은 땅덩이에 골프장만 수없이 많은데, 한 20∼30개 정도는 없애서 달을 볼 수 있는 초원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14, 56, 133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아톰의 슬픔》에서 끝없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뻔히 다 알 만한 이야기라고 느낀다고 하면서도 굳이 그런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하고 거듭 되뇝니다. “쓸모없는 것, 멀리 돌아가는 것, 예정된 길에서 벗어나 잠시 딴짓을 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풍요로운 앞날이 보이지 않습니다(168).” 하고.

 1989년에 세상을 떠난 데즈카 오사무 님이니, 이 책에 실린 글은 스물 몇 해나 묵은 글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일본 모습이나 2000년대 한국 모습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외려, 이 글모음이 2009년에 옮겨졌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삶터를 더 찬찬히 굽어살피면서 받아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교통망이 발달해 각지의 간선도로가 그물망처럼 교차하고, 그 결과 지역산업이 발전하지만 모든 지방도시들이 정형화되어 엇비슷한 도시 구조를 지닌 특색 없는 모습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반면 개발로 인해 자연림이 더욱더 파괴되어 일본 전역에서 절반 가량의 삼림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171쪽).” 같은 말은 우리 나라에도 어김없이 들어맞습니다. 아니, 우리 나라가 더 뼈저리게 느낄 대목입니다.

 천성산을 뚫는 굴을 생각해 보셔요. 북한산과 속리산에 구멍을 내며 찻길을 내려는 정치꾼과 공무원을 헤아려 보셔요. 국립공원에 함부로 케이블카를 놓으려 하는 사람들을, 또 수없이 많은 골프장을 짓는 개발업자를 보셔요. 그러나, 진보를 말한다는 신문마저도 ‘골프 기사와 골프채 광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싣습니다. 끝없는 아파트 광고를 그야말로 끝없이 싣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 하지만, 이 광고 저 광고 가리거나 솎으면 돈 한 푼 못 번다고 하지만, 우리 삶터를 망가뜨리거나 흔들거나 괴롭히는 ‘나쁜 부자 회사’ 광고를 꼭 받아내어 신문을 내야 하는지 퍽 궁금합니다. 우리 마음과 삶을 착하고 곧은 쪽으로 이끌면서, 착하고 곧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 푼푼이 달삯을 받으며 신문사 살림을 꾸릴 수 없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화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지금 한창 유행하는 만화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인기도 한때라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을 짓고 있으면 실제로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 나는 재미있는 만화가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재미에 바탕을 두지 않고 유행만을 좇는 만화는 결국 세월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유행은 늘 바뀔 것이고, 그에 영합하는 만화는 그때마다 곧 사라질 것입니다 … 어린이들은 진실한 메시지에는 반드시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물며 꿈을 심어 주는 재미있는 메시지라면 얼마나 눈을 반짝이며 좋아할까요? ..  (156∼159쪽)


 책을 꼭 읽어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만화를 꼭 보아야만 따뜻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좋은’ 진보를 이룩하거나 갈고닦으려 한다면, 우리 손으로 ‘좋은’ 책을 알아내고 우리 눈으로 좋은 줄거리를 읽어내며 우리 마음으로 좋은 넋을 받아들여 우리 몸으로 좋은 삶을 꾸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따뜻한’ 진보가 되고자 한다면, 넉넉한 진보가 되고자 한다면, ‘따뜻함’과 넉넉함을 담뿍 담아 놓고 있는 좋은 만화책을 좋은 매무새와 눈썰미로 하나하나 알아보면서 즐길 줄 아는 느긋함과 틈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일본사람이지만, 훌륭한 만화쟁이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밭이 더없이 따뜻하고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입니다. (4342.7.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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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1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스카 오사무가 일본 만화의 신이고 좋은 만화를 많이 그렸지만 한편으론 일본 만화가(애니메이션 작가)들을 혹사시킨 주범이기도 하지요.일본에서 tv만화를 활성화시키기위해 리미티드 기법과 초 저가 납품으로 만화가들을 혹사시켰다고 라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비판한적이 있지요.
근데 동인천 배다릿골 책방은 언제 여시나요.몇달전에 가봤는데 오전이라 그런지 문이 잠겨 있더군요.^^

숲노래 2009-07-18 05:19   좋아요 0 | URL
그런 비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비판받을 대목은 비판받을 대목이나, 만화를 그리는 한 사람 마음과 매무새를 돌아보는 테두리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우리 스스로 얻을 이야기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

배다리에 있는 곳은 '책방'이 아닌 '도서관'이고, 금토일에만 열어 놓습니다~

appletreeje 2013-06-2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좋고 아름다운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자전거홀릭 - 두 바퀴 위의 가볍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나다
김준영 지음 / 갤리온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한국땅에서 ‘자전거 즐김이’는 ‘서울 사는 남자 회사원’뿐?
 [잠깐 읽기 46] 김준영, 《자전거홀릭》



- 책이름 : 자전거홀릭
- 글쓴이 : 김준영
- 펴낸곳 : 갤리온 (2009.6.10.)
- 책값 : 13000원



 (1) 우리 나라에서 자전거란 무엇인가


 지난 5월부터 바로 어제(7월 14일)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한 주에 한 번씩, 경기도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자전거 정비’ 수업을 맡아 이끌었습니다. 열세 살부터 열일곱 살인 아이들 열둘하고 했던 ‘자전거 정비’ 수업에서는, 망가지거나 다친 자전거를 어떻게 손질하느냐부터, 어떻게 자전거를 타야 우리 몸에 알맞는지, 자전거를 생각하는 마음과 몸짓이란 어떠할 때가 좋은지 들을 골고루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전거 수업을 이끄는 저는 인천에서 파주로 자전거를 타고 오갔습니다.

 어제는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아무래도 인천부터 파주까지 가기에는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자칫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철에 자전거를 싣고 길을 나섰으며, 인천부터 파주까지 전철로 가는 두 시간에 걸쳐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 뭐니 뭐니 해도 자전거는 본인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인 것만은 사실인가 보다 … 뭐니 뭐니 해도 자전거 타기의 기본은 기술보다는 마음가짐에 있는 것 아닐까? 아무리 좋은 기술로 현란한 라이딩쇼를 펼친다 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여유로운 마음이 없으면 자칫 위험한 질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43, 103쪽)


 주엽역에서 책을 가방에 넣은 다음 비닐로 잘 싸 놓습니다. 모자를 쓰고 안경을 끼고 비옷을 입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안경을 쓰곤 하는데, 빗물이 눈에 튈 때 눈을 감다가 미끄러질 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옷을 입으면서도 모자를 쓰는 까닭은 비옷만 입으면 머리 쪽에서 흐르는 빗물이 얼굴로 타고 흐르기도 하지만, 빗물이 곧바로 얼굴을 때려서 앞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옷을 입고 모자를 쓴 채로 달릴 때에는 고개가 많이 아픕니다. 파이거나 기울어진 찻길에는 으레 빗물이 고여 있는데, 이런 길을 살피고 뒷거울로 차흐름을 보노라면 고개를 위로 많이 젖힐 수 없어 이삼십 분이 넘어가면 뒷목이 뻣뻣해집니다.

 여느 날 자전거를 달릴 때에도 늘 느끼지만, 비오는 날이 되니 우리 나라 찻길이 참으로 엉망진창임을 새삼 느낍니다. 왜냐하면, 찻길 가운데 쪽은 어떠할는지 모르나, 자전거가 달릴 찻길 가장자리는 울퉁불퉁한 데에다가 기울어져 있기 일쑤이고 깊이 파인 데가 많습니다. 이런 탓에, 비오는 날 자동차들이 찻길 가장자리에서 씨잉 하고 내달리면, 거님길을 걷던 사람들은 그예 물벼락을 맞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찻길 가운데 쪽을 달리는 자동차 가운데 한 대가 자전거한테 물벼락을 뒤집어씌웁니다. 이 자동차는 빗길임에도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다가 끼익 하고 멈추었는데, 신호등과 길흐름을 살피며 달리던 제 눈으로 보자면, 이 자동차는 어차피 신호에 걸려 더 달릴 수 없었음에도 내처 달렸고, 아무래도, 빗길 자전거한테 물벼락을 씌워 놀려 주려는 생각이었다고 느낍니다.

 모든 자동차꾼이 이렇게 괘씸하고 심술궂지 않습니다. 100대에 2대 꼴로 이런 심술쟁이 자동차꾼을 만납니다. 그런데, 심술쟁이는 아니더라도 ‘길에는 자동차만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동차꾼은 100대에 20대 꼴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빗길을 살금살금 달리는 자전거 앞에 난데없이 끼어들어 한참 밍기적거리다가 슬그머니 오른쪽 깜박이를 넣고 아주 느릿느릿 꺾어 들어가는 택시며 자가용이며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느낀 일본의 자전거는 철저하게 생활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이다. 아침의 출근도, 학생들의 등교도, 엄마들의 장보기도, 아이들의 놀이도, 퇴근도 모두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도로가 북적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헬멧도 없고, 자전거 복장 차림도 아니었다. 양복에 교복에 평상복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며칠을 둘러보아도 근사하게 차려입고 날쌘 속도로 지나는 라이더를 본 기억이 없다 … 신기한 것은 매장 대부분의 자전거가 분명 유명 브랜드의 산악자전거인데도 고급 부품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통 LX나 XT급을 중급 부품이라 생각하고 데오레급은 입문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데 비해, 미국의 숍은 XT를 굉장히 고급 부품으로 생각한다. 나의 자전거가 XT로 꾸며졌다고 했을 때, 혹시 내가 자전거 선수가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내가 보는 자전거 문화나 숍의 주인장 얘기를 들어 봐도, 미국은 레저용으로 즐기기 위한 자전거 문화가 많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  (78∼79쪽)


 여느 날에는 이십 분이면 넉넉히 달리던 길을 사십 분 남짓 달려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 앞에 닿습니다. 그동안 손질해 놓은 자전거 두 대가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대안학교 아이들 대여섯이 비 안 맞는 자리에서 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불러 “자전거를 이렇게 비 맞게 놓으면 어떡해요?” 하고 묻습니다. 달리 대꾸가 없습니다. “이 자전거들을 애써 손질하고 닦아 주었어도 비 맞히면 예전하고 똑같아지니까, 비 안 맞는 자리로 옮겨 놓으셔요.” “누가 저기다 놓았어? 내가 안 놓았는데.”

 마침 이때에 밖에 있던 아이들이 이 자전거들을 비 맞는 자리에 놓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가 놓았든, 대안학교 아이들이 모두 번갈아 타는 자전거라면, ‘내 자전거’가 아니어도 잘 간수하고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 수업을 하며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들 가운데 ‘자전거를 장만한 뒤로 여태까지 자전거를 한 번이라도 닦아 준 적이 있던’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참 놀랄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전거뿐 아니라 셈틀도 그렇고 책상도 그렇습니다만, 또 밥상도 그렇고 방바닥도 그렇습니다만, 더구나 옷가지도 그렇고 신발과 악기도 그렇습니다만, ‘닦고 매만져 주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란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으레 갖고 있는 손전화기에 짜장면 국물이 튀었을 때 국물 자국 그대로 두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다 못해 바짓단에 슥슥 문질러 닦기라도 하지 않을까요? 자전거에 흙탕이 튀면? 자전거가 비를 맞은 다음에는? 자전거에 기름때가 끼었다면? 마땅히 닦아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친구들이 자전거를 닦아야 하는 줄 몰랐을 수 있어요. 그러면, 친구들 부모님은 어떠한가요? 친구들 부모님 가운데 친구들한테 자전거를 닦으라고 가르치거나 부모님이 몸소 자전거를 닦은 적이 있는가요?” 하고 다시 묻습니다. 어느 아이도 저희 엄마 아빠가 자전거를 닦은 적이 없고 닦으라 말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 그럼 두 번째, 자전거는 차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역시 그렇다. 법적으로는 거의 같은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자전거는 도로에서 약자가 되어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불공평하지만, 우리 나라 도로 구조와 교통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곤 해도 자전거에는 아직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그래서 ‘발바리’와 같은 모임이 생겨 자전거의 권리를 찾고자 함이 아닌가? ..  (301쪽)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사는 집은 거의 일산에 있습니다. 일산부터 파주까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걸어가면 한 시간 반 남짓 걸리겠지만, 자전거를 타면, 넉넉잡아 삼십 분 남짓입니다. 그렇지만 이 길을 자전거로 오가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자전거로 오가는 선생님이나 학부모님 또한 한 분도 없습니다. 모두 자가용 또는 버스를 탑니다.

 제가 즐겨가는 동네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일흔을 넘긴 나이이지만, 가게 물건을 떼려고 손수 자전거를 끌고 가서 짐받이에 그득그득 묶어서 날라 오곤 합니다. 당신이 입는 양복을 빨래방에 맡기거나 찾아올 때에도 한손으로 양복을 들고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며 타고 다닙니다. 동네에 있는 솥집 할아버지도, 동네에 있는 쌀집 할아버지도, 동네에 있는 도매상집 할아버지도, 언제나 자전거 짐받이에 짐을 잔뜩 묶고는 나릅니다.

 이분들 자전거를 보면 짧아도 스무 해를 탄 자전거요, 길면 마흔 해를 훌쩍 넘긴 자전거들입니다. 빠르게 내달리지는 못하는 녀석이지만, 당신들한테 꼭 알맞춤하게 달릴 수 있는 탈거리이며, 당신들이 눈을 감고 이 땅을 떠나는 날까지 당신들한테 두 다리가 되어 주는 길동무 노릇을 하리라 봅니다. 아마, 당신들 스스로 느끼실 텐데, 당신들한테 자전거는 그냥 자전거가 아닌 재산이었고 오랜 길벗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새 돈 좀 있고 자전거 멋나게 타고 다니는 사람이 보기에’ 하찮거나 시시한 짐자전거일 뿐일지라도, 당신들은 당신 자전거가 낡거나 다치지 않도록 틈틈이 손질하고 닦아 주며, 비바람이나 햇볕에 망가지지 않게끔 간수합니다.


.. 어느 날 동료의 자출 자전거를 보니 체인에 오일이 말라 있기에 내가 물었다. “야∼ 너는 자전거 좀 닦아 주고 기름칠 좀 해 주지. 자전거 꼬라지가 그게 뭐냐?” 친구가 내게 그런다. “야∼ 오버하지 마. 청소는 뭣 하러 하는데?” 당당한 그의 한마디에 뭐라 해야 할지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  (366쪽)


 할아버지 아저씨한테는 짐자전거가 당신들 생활자전거, 곧 ‘삶자전거’입니다. 할머니와 아주머 가운데에도 짐자전거를 타는 분이 있으나, 으레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이를테면 ‘장바구니 자전거’인데, 장바구니 자전거가 바로 당신들한테 ‘삶자전거’입니다.

 자전거로 살아가는 할매 할배 아재 아지매는 언제나처럼 자전거를 몹니다. 빨리 내닫는 자전거가 아니라 알맞게 바람을 느끼는 자전거요, 길을 느끼고, 동네사람을 만나 인사하며, 짐을 싣는 자전거인 가운데, 서로서로 태워 주는 자전거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가운데 학교를 오가며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제법 있기는 있으나, 어느 아이도 ‘짐자전거’나 ‘장바구니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 ‘유사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신문 경품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도시에서 돈 제법 받는 회사원쯤 되면 ‘겉보기에 멋지거나 예쁘장한(이른바 뽀대나는)’ 자전거를 큰돈 들여 지릅니다. 멋져 보이는 자전거를 지른 다음에는 자전거옷을 갖추어 입고, 자전거장갑에 자전거모자에 자전거수건에 자전거안경에 자전거가방에 자전거물병에 자전거속도계에 자전거등불에 …… 목돈이 쏠쏠히 빠져나가는 물품 사들이기에 빠져들고 맙니다.
 





 (2) 자전거 ‘매니아’야말로 자전거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김준영 님이 쓴 자전거책 《자전거홀릭》을 읽었습니다. 인천에서 파주로 자전거 수업을 하러 가는 전철길에서 금세 읽습니다. 인터넷 네이버까페 ‘자출사’에서 ‘쭈니’라는 또이름을 쓰는 김준영 님은, 모임이름마따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생활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이 아닌 ‘산악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이지만, 자전거 사랑이 남다르며, 섣불리 겉멋을 내세우는 자전거꾼 또한 아닙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자전거홀릭》이라는 책, 우리 말로 하면 ‘자전거중독자’ 또는 ‘자전거에 미친 사람’ 또는 ‘자전거에 푹 빠진 사람’이라는 책을 써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라이더들에겐 속도 줄이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빠르게 달리다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아슬하게 피하거나, 호각이나 벨을 신경질적으로 불거나 울려 상대가 피하게끔 만든다. 잠시 멈추었다가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  (107쪽)


 자전거책 《자전거홀릭》에는 ‘후회하지 않는 자전거 구입’, ‘자전거 구조와 명칭에 대한 이해’, ‘내 몸에 자전거를 맞추는 방법’, ‘중고 자전거 구입 요령’, ‘자전거 레이서의 자세’, ‘주행 기술 익히기’,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기 위한 계명’, ‘기어비 계산하기’, ‘이상적인 페달링 익히기’, ‘자전거 용품 총정리’, ‘자전거 도난 예방하기’, ‘사계절 자출 요령’, ‘자전거 응급 조치 요령’, ‘자전거 사고 시 대처법’, ‘자전거- 업그레이드’, ‘일상적인 자전거 점검’, ‘본격적인 자가정비의 세계로’, ‘주기적인 자전거 청소’, ‘환상의 루트’, 이렇게 여러 가지 자전거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날개에는 “자전거 초보와 숙련된 레이서 모두에게 꼭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틀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도움되는 정보’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들이 ‘꼭 있어야 할’ 이야기라든지, ‘자전거 새내기가 꼭 익힐’ 이야기라든지, ‘자전거 오래 타거나 잘 타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둘’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자전거를 사면 딸려 나오는 자전거제품설명서’에 차근차근 실려 있거든요. 더구나 ‘자전거제품설명서’에는 ‘교통법규 및 도로주행 시 유의사항’이나 ‘승차 전 필수 확인사항’도 나와 있으며, ‘점검, 조정의 시기와 방법’에다가 ‘주차 및 보관 시 유의사항’까지 나와 있고, ‘올바른 승차자세와 핸들과 안장 조립 및 높이 조절’이 그림과 함께 낱낱이 실려 있습니다.


.. 내가 자출을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다. 자출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이들 중에 헬멧 쓰는 이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도로에서도 강변에서도 자전거 타는 이들의 대다수가 쓰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연세 있는 분들이나 나이 어린 친구들이 헬멧 쓴 모습은 더욱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교복 차림의 학생이 헬멧을 쓴 경우는 자전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본 기억이 없다 ..  (179쪽)


 대안학교 아이들과 자전거 수업을 하면서 “친구들은 자전거를 살 때에 자전거제품설명서를 받았나요?”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어느 아이도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못 받았을 수 있는데, 못 받았다기보다 받았는데 쓰레기통에 넣었다고 해야 옳지 않으랴 싶습니다. 가스렌지를 사든, 연고를 사든 어디에나 설명서는 꼭 들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사는데 설명서가 안 들어 있겠습니까. 손전화기를 다루는 설명서만 해도 100쪽이 넘어요. 그런데 자전거 설명서가 없겠습니까.

 저는 제가 단골로 다니는 자전거집에서 여러 가지 자전거설명서를 잔뜩 얻어 놓고 있습니다. 제 둘레에서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한테 주려고요. 아직 자전거를 사지 않았더라도 자전거설명서를 읽으면서 하나하나 익혀 나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리 익힌 이야기를 자전거를 타면서 몸으로 받아들이거나 새기고, 나중에는 스스로 ‘설명서에 못 담은 더 깊은 이야기를 다룬 자전거책’을 한 권 두 권 읽으며 배우도록 이끌어 줍니다.

 자전거설명서 맨 앞에는 “본 제품 사용 설명서는 자저거 사용 전에 잘 읽으시고 올바르게 사용해 주십시오” 하는 말이 적혀 있고, 다음에 빨간 빛깔로 “어린이에게는 반드시 읽어 주고 지도하여 주십시오” 하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오늘 우리 삶터에서 아이들한테 자전거를 사 주는 어버이 가운데 ‘자전거설명서를 읽어 주는 아빠 엄마’는 몇 사람쯤 될까요? 아이들은 이런 설명서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뿐더러, 생각조차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어떠하지요? 우리 어른들은 ‘산악자전거’를 장만하든 ‘경주자전거’를 마련하든 ‘작은자전거’를 사들이든 ‘짐자전거’를 사서 타든, 이 자전거가 어떤 자전거이며 어떻게 타야 즐겁고 올바르고 서로한테 도움이 될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 헬멧을 잠깐 벗더라도 두건이 없으면 헬멧에 눌리고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가 좀 흉해 보인다. 또 라이딩 시에 몇 무더기 머리카락이 헬멧 구멍 사이로 나와 휘날리는 경우도 보는데,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 대부분의 고급 기종 자전거에는 물병 케이지를 걸 수 있도록 작은 나사 홈 두 개가 약 10센티미터 간격으로 있다. 생활자전거에 있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  (191, 195쪽)


 자전거책 《자전거홀릭》은 예쁘장한 그림과 부드럽고 쉬운 말씨로 ‘자전거 새내기’와 ‘자전거 솜씨쟁이’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전거설명서’에 담긴 밑바탕 이야기 틀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자전거집에서 자전거를 장만하든 인터넷으로 자전거를 마련하든, 우리가 ‘거저로’ 얻는 설명서에서 다루는 이야기 깊이보다 깊게 파고들지 못했고, 널리 아우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자전거는 길에서 달립니다. 길이란 사람이 걷는 거님길일 수 있고, 자동차가 함께 달리는 찻길일 수 있으며, 서울 같은 데에서는 한강길일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길에서 달리는 자전거’입니다. 그런데, ‘길에서 자전거를 어떻게 달려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하나도 안 실려 있습니다. 글쓴이 스스로 ‘길에서 자전거를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는 몇 줄로 짤막하게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면서 ‘자전거 물품과 장비’를 갖추거나 장만하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지름신’ 이야기까지 합니다만, 자전거를 타는 분들 가운데 지름신에 따라 물품을 더 갖추는 분도 있습니다만, ‘자전거가 내 삶이 되며 언제까지나 즐거운 길동무가 되는’ 분도 무척 많습니다.

 그러면, 《자전거홀릭》은 누구와 자전거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책일는지요. ‘자전거 매니아’한테? ‘자전거 생활인’한테? ‘자전거 출퇴근 일꾼’한테?


.. 자전거에 취미를 가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고 싶은 용품이나 부품도 늘어난다. 이것도 써 보고 싶고, 저것도 써 보고 싶다. 그러한 것들 중에는 매달 받는 용돈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비상금보다 가격이 높은 경우도 허다하다. 처음에는 남편의 건강을 위한 투자로 생각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아내도 계속적인 지원 요구에는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다. 이때도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 가족을 위해 하나를 양보하면 두 개 세 개의 양보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배려와 이해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가족들은 나를 이해하게 되고, 다음번에는 기꺼이 남편과 아빠를 위해 그들의 시간을 양보해 줄 것이다 ..  (86∼87쪽)
 





 (3) 자전거로 살아가는 기쁨과 사랑을 찾길 바라며


 《자전거 홀릭》을 읽는 내내, 글쓴이 생각과 삶이 아무래도 ‘서울에서 사무직 회사에 다니는 청장년 남성, 이 가운데 혼인해서 아이가 하나쯤 있는 남성’한테만 눈길을 맞추어 놓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한테는, 또 자전거를 타는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는, 또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 아줌머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조금도 눈길을 안 맞추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참말로, 자전거는 남자만, 그러니까 아빠만 타야 할까요? 자전거는 도시에서만, 더욱이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만 타야 할까요?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도시에서 가게를 꾸리는 사람은,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좋을까요?

 더구나, 책 앞머리에서 ‘자전거 갈래’를 나눌 때에 ‘생활자전거 = 유사 산악자전거’라고 못박으면서 이야기를 펼치는데, 이 대목은 몹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생활자전거는 생활자전거이고, 유사 산악자전거는 유사 산악자전거입니다. 생활자전거는 ‘짐자전거’와 ‘장바구니 자전거’를 아우르며, 여느 산악자전거이든 경주자전거이든 작은자전거이든 이러한 자전거를 늘 타고다니면 이 자전거들은 곧바로 생활자전거가 됩니다.

 유사 산악자전거는, 이 이름 그대로 ‘산악자전거 비슷하게 만든 짝퉁’으로, 이런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닙니다. 값싼 물건입니다. ‘유사 사진기’와 ‘유사 핸드폰’이 있겠습니까? ‘유사 가스렌지’와 ‘유사 버너’라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그래서, ‘유사 산악자전거라는 짝퉁 물건을 만드는 자전거회사는 법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자전거 아니면서 모양만 자전거처럼 만들어 아이들 눈을 홀리고 아이들을 위험에 내모는 녀석이 바로 ‘유사 산악자전거’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여느 자전거집 매출 거의 모두를 차지하는 녀석은 바로 유사 산악자전거입니다). 이런 자전거는 만들어서도 팔아서도 타서도 안 됩니다.

 그래, 《자전거홀릭》은 나중에 2쇄를 찍을 때에, 다른 어느 대목보다도 이 대목, 생활자전거를 다루는 자리는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정보와 생각으로 사람들한테 잘못된 이야기를 퍼뜨리면 안 될 노릇입니다.


.. [생활자전거 (유사 산악자전거)] 보통 우리 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자전거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생활자전거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문을 구독하면 주는 자전거 또는 주유소 경품용 자전거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하철 입구 옆에 묶여 있는 자전거의 80∼90퍼센트가 이런 유의 자전거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가까운 거리의 출퇴근이나 생활용으로 이용하는데, 도난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고가의 고급 자전거를 사용할 이유는 없으므로 어찌 보면 이러한 생활자전거가 더 적합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  (18∼19쪽)


 글쓴이는, 일본 자전거 문화를 이야기하며 “그들은 헬멧도 없고, 자전거 복장 차림도 아니었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한국 자전거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교복 차림의 학생이 헬멧을 쓴 경우는 자전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본 기억이 없다”고 밝힙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일본에서 ‘자전거 = 삶’이라고 말한 글쓴이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자전거란 무엇일까요. 일본 청소년한테는 ‘헬멧 없이 자연스럽게 타고다니는 자전거 삶’인데, 한국 청소년한테는 자전거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또한, 글쓴이는 한강 자전거길에서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전거꾼을 꾸짖는 이야기를 씁니다만, 이들 ‘무시무시 내달림꾼’이란, ‘자전거 헬멧과 장갑과 가방과 이것저것 다 갖춘 비싸구려 자전거’를 모는 분들입니다. 이들이 타는 자전거 부품은 무척 값비싸며, 이런 값비싼 부품은, 한국을 뺀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자전거 선수나 쓰는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 ‘무시무시 내달림꾼’들은 처음부터 한강길이든 어디에서든 씽씽 달리며 당신들 비싸구려 자전거를 뽐내려 하는 분들입니다. 처음부터 다른 이한테 마음쓸 그릇이 없는 분입니다.

 찻길에서 자전거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자동차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똑같은 차를 몰더라도 남 앞에서 잘나 보이거나 번듯해 보이는 더 비싼 자동차를 장만하려는 사람들 매무새하고 똑같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나라에서 자동차이든 자전거이든, 또 책이든 영화이든, 옷이든 화장품이든, 집이든 일자리이든, 나 스스로 참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길을 찾는다기보다 남 앞에서 우쭐거리거나 자랑하거나 내보이려는 쪽으로 헛걸음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자전거홀릭》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 자전거가 삶의 작은 행복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흡족할 듯 싶다 ..  (머리말)


 《자전거홀릭》을 쓴 글쓴이께서 첫마음으로 고즈넉하게 돌아갈 수 있다면, 아니, 첫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가 우리 삶에 작은 즐거움을 나누는 열쇠”가 될 수 있는 길을 새롭게 찾고 느낄 수 있으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그래서 아빠 혼자서만 낼름낼름 즐기다 그치는 ‘자전거 마니아’가 아니라, 글쓴이 아내한테도 자전거를 가르쳐 주며 함께 타고, 또 글쓴이 아이한테도 자전거를 가르치면서 같이 타는, 이리하여 ‘세 식구가 함께 자전거 타기’를 자전거책에 담을 수 있으면 반갑겠고, ‘세 식구 자전거 장만하기’ 이야기를 새롭게 자전거책에 담을 수 있으면 고맙겠으며, ‘세 식구가 나란히 자전거를 즐기는 길은 어떠한 모습’인가를 차근차근, 더 느리게, 더 천천히, 더 오래 삭이고 묵히면서, 더 깊이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더 길게 내다보고 어깨동무를 하는 삶자락을, 자전거책에 살포시 담아 준다면 저 또한 흐뭇하겠습니다. (4342.7.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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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16 09:49   좋아요 0 | URL
된장님,자전거 운전 조심하세요.슬쩍 사람만 쳐도 차사고로 간주된답니다.^^

숲노래 2009-07-16 10:57   좋아요 0 | URL
그러믄요. 인도에서는 웬만하면 내려서 끄는데, 인도에서 탈 때에는 아기 아장걸음보다 느리게 달립니다 ^^

말씀 고맙습니다~
 
살림살이 (양장) 겨레 전통 도감 1
윤혜신 글, 김근희.이담 그림, 토박이 기획 / 보리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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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전통문화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만 머물까?
 [잠깐 읽기 45] 토박이+윤혜신+김근희ㆍ이담, 《살림살이》



- 책이름 : 살림살이
- 기획 : 토박이
- 글 : 윤혜신
- 그림 : 김근희(세밀화), 이담(펼친그림)
- 펴낸곳 : 보리 (2008.12.30.)
- 책값 : 35000원



 (1) 집안살림과 집밖살림


 우리 어머니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집밖일을 도맡아 하는 분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삶을 들여다보면서, 저 또한 이러한 길을 걸었음직하지만,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걸었던 길은 조금도 안 걷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와 옆지기가 낳아 키우는 아이도 제 엄마 아빠가 걷는 길을 안 걸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남자 = 집밖일’, ‘여자 = 집안일’처럼 가르는 길이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며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이 길을 거스릅니다. 옆지기가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 집안일을 제가 거의 도맡고 있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할지라도, 저는 언제나처럼 집안일과 집밖일을 많이 맡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집안일을 제가 거의 다 하고 집밖일은 옆지기한테 맡긴다든지요.


.. 살림살이 가운데에는 지금 아줌마가 즐겨쓰는 것도 있고 처음 보는 것도 있어. 이런 살림살이는 사람들이 더 쉽고 편하게 살림을 하려고 만들어 낸 거야. 저마다 쓰임새에 맞게 만들어 조금씩 고쳐 가면서 점점 더 쓸모있게 만들었어. 정말 놀라운 일이지? 살림을 하는 데 이 많은 살림살이가 다 쓰이고, 또 쓰임에 딱 맞는 것이 있다는 게 말이야. 아줌마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이 ‘살림’이라는 말이야. 말 그대로 살림은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일이지. 우리는 살리는 일, 살림. 사람들은 살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자라는 것 같아 ..  (머리말)


 어머니는 ‘가정 주부’였습니다. 이 나라 숱한 어머니는 모조리 ‘가정 주부’라고 봅니다. 엊그제 옆지기네 고모님 댁에 다녀왔는데, 옆지기네 고모님은 하나같이 ‘가정 주부’입니다. 빈 그릇 치우기라도 거들고 싶지만,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을 치울라치면, “최 서방이 일어나니까 우리가 앉아 있을 수 없네.” 하고 말씀하시니 오히려 제가 몸둘 바를 모릅니다. 사위를 고이 여겨 주시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예 밥상머리에 눌러앉아 밥술만 떠야 하니 속이 메슥거리고 방귀만 뿡뿡 나올 듯해서 힘듭니다. 잠깐이라도 일어나 빈 그릇도 나르고 설거지라도 하며 몸을 놀려야 할 텐데, ‘가정 주부’로 집안일을 도맡아 오신 당신님들한테는 사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일이 외려 바라보기 힘든 노릇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목구멍까지 먹을거리가 차넘칠 때까지 겨우 견디며 밥상과 과일상 들을 받는데,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스스로 너무 오래도록 남자 다르고 여자 다르다는 울타리를 쌓는 바람에 모두 이렇게 생각이 굳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 조상들은 우리네 옛 살림이 사람힘으로만 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어. 세상 모든 일들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라고 생각해서, 늘 자연을 벗삼고 공경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지. 봄이 오면 그 따스함에 고마워하고 반기는 마음으로 잔치를 벌였고, 부드러운 봄바람, 따뜻한 햇볕, 단비를 내리는 하늘에 진심으로 고마워했어. 산과 들에 가득한 풀을 뜯고 나무에서 물을 받을 때는 땅에 절을 했지.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서 사람들은 봄의 충만한 생명력을 즐겼던 거야 ..  (14∼15쪽)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늦도록 아기하고 씨름하느라 고달픕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우리 옆지기는 우리 아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살림을 꾸리며 아이 돌보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 않은 셈입니다. 우리 아이는 많이 얌전하다(?)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아이를 키우며 보내는 하루하루란 아이 없이 지내던 하루하루하고 견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이 없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아이 없이 지내는 삶이 얼마나 단출하고 홀가분하고 호젓하고 손쉽던 나날이라고 떠오르는지. 아이하고 씨름하고 부대끼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 뿐 아니라 힘들고 벅차다고 느껴지는지.

 그렇지만, 이렇게 고단하고 지치는 하루하루가 싫지 않습니다. 고단하고 지치며 보내는 하루하루이기 때문에 한결 크고 깊은 보람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기보다 먼저 곯아떨어지는 나날이라 하여도 이 삶을 끝끝내 붙잡도록 하는 새힘이 돋고, 이 일 저 일 밀리고 치이면서도 이렇게 밀리고 치이기 때문에 내 이웃 아이를 새삼스레 돌아보고 내 이웃 어른을 다시금 헤아릴 수 있습니다.


.. 예전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어려웠어. 그래서 아줌마네 어머니는 여름철이면 끼니때마다 식구들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만드셨지. 특히 열무김치는 사나흘에 한 번 조금씩 담그셨어. 김치를 담글 때마다 어머니는 빨간 고추와 마늘, 생강을 돌확에 넣고 확확 갈아서 양념을 만드시는 거야 ..  (120쪽)


 살림살이란 내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란 오늘 하루 내 모습이면서,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리거나 이끌어 나갈 내 모습이면서 꿈과 생각입니다. 내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대로, 내가 앞으로 다른 곳에서 살아갈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란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기에, 입으로만 읊는 말마디나 믿음이 아닌 온몸으로 보여주는 말과 믿음이 됩니다.

 내가 갖추는 살림살이는 바로 오늘 내 생각과 매무새를 보여주고, 내가 갖춘 살림살이를 다루는 모습은 바로 오늘 내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길과 눈높이를 이야기합니다.


 (2) 살림살이는 ‘죽은 유물’이 될 수 없는데


 집살림 잘 꾸리는 사람을 일컬어, 또 돈을 허투루 안 쓰고 잘 갈무리하는 사람을 가리켜 ‘살림꾼’이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어느 모임이나 일터를 잘 꾸린다든지 이끈다든지 하는 사람을 두고도 ‘살림꾼’이라 합니다. 집안 울타리에 머물던 살림꾼이 집밖 울타리 너머까지 뻗는 셈입니다.

 ‘겨레 전통 도감’이라는 이름을 걸고, 《살림살이》라고 하는 그림백과사전이 하나 선보였습니다. 그림백과사전 《살림살이》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에 따라, 우리네 여느 살림집에서 어떤 연장을 썼는가를 그림 하나와 글 하나로 나누어 엮어 보여줍니다.

 먼저 봄에는, “장독, 소쿠리, 체, 가마솥, 표주박, 빗자루, 이남박, 조리, 수저, 주걱, 밥통, 주전자, 칼과 도마, 양푼, 푼주, 냄비, 단지, 초병과 초 단지, 기름병, 기름틀, 자라병, 다래끼, 광주리, 동고리, 도시락, 찬합, 보자기”까지 스물아홉 가지를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여름에는, “두레박, 바가지, 물동이, 방구리, 물두멍, 물지게, 살강, 찬탁, 그릇, 신선로, 수세미, 밀판과 밀방망이, 국수틀, 국자, 곰박, 확과 확돌, 화덕, 불씨 항아리, 손풀무, 석쇠, 돗자리, 죽부인”까지 스물네 가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멱둥구미, 바구니, 흡·되·말, 저울, 맷돌, 다식판, 약과 판, 상술 빗기, 술병, 뒤주, 채반, 망태기, 뒤웅박”까지 열다섯 가지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젓갈 항아리, 옹배기, 자배기, 앵병, 절구, 메주 틀, 두부 틀, 시루, 떡판과 떡메, 함지박, 쟁반, 가위, 화로, 곰방대와 장죽, 등잔, 요강, 약달이기”까지 열아홉 가지를 보여줍니다. 이리하여 모두 여든일곱 가지 살림살이를 보여주는데, 오늘날 살림꾼 가운데 이 여든일곱 가지를 옹글게 떠올리거나 헤아리는 분은 얼마쯤 되려나 궁금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 여든일곱 가지를 또렷하게 알거나 쓰거나 다룰 줄 아는 분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운데 오늘날까지 두루 쓰는 살림살이는 많지 않거든요.

 《살림살이》에 나오는 ‘도시락’이나 ‘찬합’은 예전에 쓰던 살림살이이지, 요즈음 쓰는 살림살이가 아닙니다. 설거지를 하며 수세미를 쓴다고 하여도, 《살림살이》에 나오는 ‘수세미’를 집에서 길러 마련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손풀무를 쓰는 사람도 없으며, 물지게를 일 사람 또한 없고, 살강 놓인 부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골 부엌도 죄다 ‘서양 입식 가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살림살이》에 나오는 ‘바구니’는 농사짓는 사람이 자연에서 거둔 들풀로 엮거나 짠 바구니이지, 플라스틱으로 공장에서 뽑아낸 바구니가 아닙니다. ‘가위’ 또한 대장간에서 불을 달궈 쇠망치로 두들겨 만든 가위입니다. 절구는 돌을 깎았을 테며, 떡판이나 시루, 다식판은 나무를 깎았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살림살이를 장만하지 못하란 법은 없습니다. 부모가 이와 같은 살림살이를 간직하고 있다면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한테 없다면 돈을 치러 살 수 있습니다.


.. 발효하는 것이 많은 우리 나라 음식에는 장독이 가장 잘 어울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꾸려 온 살림살이는 참 지혜로웠지 ..  (18쪽)


 그림백과 《살림살이》는 책 사이사이 틈틈이 나오는 “우리 조상들이 꾸려 온 살림살이는 참 지혜로웠지”라는 말마디처럼 우리 옛사람이 ‘슬기롭게 살아온 모습’을 오늘날 아이들한테 보여주며 가르치려는 매무새로 엮었습니다. 이 모든 살림살이는 꼭 알맞춤하게 만들었고, 어느 살림살이나 자연에서 나왔으며, 망가져도 버려지는 일이 없이 되쓰이거나 썩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왜 우리 옛사람 ‘슬기로운 살림살이’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네 슬기로운 살림살이’는 어짜하여 오늘날 거의 안 쓰이고 있을까요?


.. 옛날에는 빗자루가 흔해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어른들이 빗자루채를 거꾸로 들고 혼을 냈어. 커다란 빗자루에 몇 대 맞아도 별로 아프지도 않고 다치는 일도 없었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빗자루는 사랑의 매였던 거지 ..  (30쪽)


 그림백과를 덮으며 또다른 대목에서 궁금합니다. 우리네 슬기로운 살림살이라 하고 우리 옛사람 살림살이라고 하지만, 그림백과에서 보여주는 거의 모든 살림살이는 ‘조선 후기에 쓰던 살림살이’입니다. 그나마 ‘조선 전기에 쓰던’ 살림살이는 몇 가지 안 되며, ‘고려’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때 쓰던 살림살이까지 헤아리자면 얼마 없으며, 더 오래도록 이 나라 사람들이 써 온 살림살이가 무엇일까 하고 가누어 보면 거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참말 ‘살림살이란 무엇일까?’ 하고 새삼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두고 살림살이라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림백과 《살림살이》에 나오는 살림살이는, ‘이 나라 여느 살림집에서도 두루 쓰던 살림살이’일는지, 가난한 집에서는 쓰지 않던 살림살이가 있는지, 돈 많거나 사대부집안에서만 쓰는 살림살이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더욱이 ‘옛사람 슬기’라 하지만, 그림백과 《살림살이》에 보여지는 모습은 하나같이 ‘여자 손이 가는 물건’일 뿐입니다. 남자 손이 가는 물건이란 없으며, 그림백과 사이사이 곁들인 ‘펼친그림’에 비춰지는 사람들 모습 또한 ‘남자 = 위, 여자 = 아래’인 듯한 가부장 모습 그대로일 뿐입니다. 비록, 지난날 조선 때에 사람들 삶이 ‘여자는 죽도록 집안일을 하며 허리가 휘고, 남자는 양반다리 하고 앉아 높은 자리에서 밥상을 받았다’ 할지라도, 이런 모습을 굳이 그대로 보여주는 일을 ‘전통’이나 ‘문화’라는 이름으로, 또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통문화가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아름답거나 훌륭한 우리네 전통문화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 아줌마가 시어머니께 살림을 하나씩 배워 가는 초보 주부였을 때 일이야. 한번은 시어머니께 크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어.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혼이 났냐고? 쌀을 씻다가 그만 쌀알을 조금 흘려 버렸지 뭐야. 한 스무 톨쯤? 시어머니는 귀한 쌀을 많이 버렸다고 혼쭐을 내셨지. 그때는 시어머니 말씀이 너무 서운했어. 먹다 남은 밥도 버리는데 그깟 쌀 몇 톨에 왜 그러실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아줌마가 직접 농사를 지어 보니까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그 쌀 한 톨이 나오기까지 수고한 농부의 손길과 땀, 벼가 뜨거운 햇빛과 차가운 밤이슬을 견디고 자란 그 시간을 생각해 봐 ..  (32쪽)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그림백과 《살림살이》는 ‘조선 후기 퍽 넉넉한 살림집 모습’을 바탕으로 ‘우리네 슬기로운 옛사람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틀로 짜여 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펴내는 다른 전통문화 그림책과 이야기책에서도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네 전통문화 연구가 ‘조선 후기 문화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편, 조선 전기나 고려나 더 앞선 때 문화와 삶을 헤아릴 자료가 없는 탓이라 할 테지만, 연구와 상상력을 모두어 더 뿌리깊고 넉넉한 ‘참다운 전통문화 찾기’를 해 본다면 더 뜻이 있고 보람이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리고, 옛날 문화재 더듬어 보기에만 그치지 말고, 오늘날 우리가 기쁘게 즐기면서 앞으로 우리 뒷사람한테 신나게 물려줄 ‘오늘 우리가 누리는 전통문화란 무엇일까’에도 눈길을 둔다면 더욱 싱그럽고 아름답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여자아이들은 예닐곱 살만 되면 작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 나르는 연습을 했어.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물인 만큼 그것을 길어 나르는 것도 큰일이었지. 그래서 부엌에 놓인 물두멍에 물이 얼마나 차 있는지를 보고 그 집 안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가늠하기도 했대. 어머니들이 지칠 줄 모르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던 힘은 아마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 박 오가리는 졸여 먹기도 해. 껍질까지 잘 말려서 그릇으로도 쓰니,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다 쓰는 것이,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치는 어머니나 할머니와 마음을 꼭 닮은 것 같아. 박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던 셈이야 ..  (86, 88쪽)


 아쉬운 대목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림백과 《살림살이》는 ‘세밀화’와 ‘펼친그림’ 두 가지 그림을 나누어 싣습니다. 먼저 펼친그림으로 이야기 흐름을 두루 보여주고, 다음으로 세밀화로 낱낱 살림살이를 도드라져 보이도록 합니다. 한쪽에 그림 하나를 큼지막하게 넣습니다.

 이렇게 넣은 펼친그림은 구수하고 따스하다 싶은 느낌이 배어들게 하고, 찬찬히 그린 세밀화는 ‘이제는 눈으로 구경하기도 어렵게 된 살림살이’ 모습을 잘 살펴보도록 돕습니다. 그림 짜임새를 돌아본다면, 으레 말하는 ‘여백의 미’, 그러니까 ‘빈자리를 두는 아름다움’을 살리려 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백과 《살림살이》에서 베푸는 ‘빈자리 두는 아름다움에 따른 큼지막한 그림 하나’는, ‘사진으로 찍어도 되는데 왜 그림으로 굳이 그렸을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사진으로 찍는 모습하고 다를 다 없다’는 느낌도 듭니다.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쁨과 재미가 없다’는 느낌에다가, ‘덩그러니 하나만 보여주는 그림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판짜임을 줄이고 작은 그림으로 넣더라도’ 괜찮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35000원짜리 큰 판짜임으로 할 까닭이 없고, 주머니도감으로 엮어 한결 값싸고 가벼운 책으로 묶었다면 더 보람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왜냐하면, 살림살이는 ‘박제’가 아니요 ‘박물관 유물’ 또한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가까이에서 부대끼는 연장이요, 우리가 늘 만지는 연장이거든요. 이제는 흙으로 빚는 살림살이가 아닌 스테인리스로 찍어내는 살림살이라 할지라도, 살림살이란 다루는 살림꾼이 어떤 마음밭이요 매무새이느냐에 따라 빛이 나기 마련입니다. 옻이 아닌 니스를 바른 밥상이라 할지라도, 살림꾼 마음이 애틋하다면 살갑고 사랑스러운 손길이 배어들기 마련입니다.

 보리출판사에서는 앞으로도 ‘겨레 전통 도감’이라는 이름으로 그림백과를 더 펴낸다고 밝히고 있는데, ‘겨레 전통 도감’ 2번을 펴낼 때에는 1번인 《살림살이》에서 보여준 좋고 나쁨을 널리 굽어살피고 보듬어 준다면 좋겠습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로 겨레 전통문화를 나누는 길을 찾으면 좋겠고, 죽어 버린 박물관 유물유먹 같은 값비싸고 껍데기 우람한 길은 이제 그만 접어두면 고맙겠습니다. (4342.7.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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