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29. 하늘타리 붉은 잎잔치 2013.11.26.

 


  고샅길 쪽에 있는 우리 집 헛간 벽을 타고 하늘타리가 다닥다닥 뻗는데, 늦가을이 되니 이 잎사귀가 온통 붉게 물든다. 이웃 다른 집들은 벽이나 담에 넝쿨 뻗으면 보기 싫다며 모조리 걷어내시지만, 우리 집만큼은 그대로 둔다. 여름에는 푸르니 싱그럽고, 가을에는 짙붉게 물드니 그야말로 그림이 된다.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가려고 자전거를 고샅길로 빼고 대문을 닫으려다가 한참 서서 이 가을빛을 바라본다. 잎빛과 하늘빛과 구름빛이 어쩜 이리 고울까. 고샅길이 옛날처럼 흙길이었으면, 길바닥 흙빛이 한결 곱게 얼크러졌겠지. 헛간이 시멘트벽 아닌 흙담이었으면 훨씬 어여쁜 무지개빛으로 해맑았을 테고.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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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7. 무엇이든 놀이 (2013.11.26.)

 


  아버지가 앞에서 수레와 샛자전거를 이끄는 자전거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아버지 자전거 발판을 손으로 잡고 휘휘 돌리더니, 큰아이부터 자전거 밑으로 빠져나가는 놀이를 한다. 너희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이가 되는구나. 아버지 자전거 들여다보아도 놀이, 아버지 자전거 발판을 손으로 돌려도 놀이, 이 자전거 밑으로 기어서 빠져나가도 놀이, 또 대문을 활짝 여니 대문 바깥으로 달려나가도 놀이, 온통 놀이로 하루를 누리는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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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6. 손 시리지 (2013.11.26.)

 


  늦가을부터는 자전거를 타려 할 적에 장갑을 챙겨야지. 네가 스스로 챙겨야 하는데, 아직은 아버지가 챙겨 주어야 했다고 할 만하다. 네 장갑이 아니더라도 실장갑 몇 수레에 놓고는 네가 장갑을 깜빡 잊을 때에 끼도록 해야겠다. 손이 시리고 얼굴이 얼어도 가을바람 쐬며 달리니까 즐겁니? 힘들면 너도 수레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서 코 자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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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21. 2013.11.26.

 


  단풍꽃은 봄에 핀다. 단풍나무 새잎 돋을 무렵 일찌감치 단풍꽃이 피고, 단풍꽃이 흐드러진 봄날이 지나면 어느새 단풍씨 맺힌다. 단풍씨는 포로로롱 빙글빙글 돌면서 땅으로 떨어진다. 단풍나무처럼 꽃과 씨를 빨리 맺어 떨구는 나무도 없으리라. 단풍나무는 꽃도 씨도 없는 채 무척 오랫동안 지낸다. 봄부터 가을까지 잎사귀만 팔랑팔랑 바람춤 추면서 지낸다. 이윽고 가을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꺼번에 짙붉게 물든다. 어쩜 이리 곱게 물들 수 있을까. 아이들과 가을빛 누리려 마실을 나오는데, 두 아이 모두 이웃마을 오리를 구경한다며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다. 나 혼자 단풍빛을 들여다보다가 갓 떨어진 작은 잎사귀 둘 줍는다. 하나는 큰아이 주고 하나는 작은아이 주어야지. 수첩에 잘 눌러 놓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오늘(아니 어제) 꽃아이 말고 꽃어른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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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8. 가을나무 2013.11.26.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학교는 1998년부터 문을 닫았다. 이곳에 농약을 치는 마을사람 없고, 학교나무를 가지치기 하는 사람 없다.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가. 나무는 비와 바람과 햇볕으로 씩씩하게 자란다. 나무는 나무결 그대로 건사하며 하늘바라기를 한다.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면서 가을빛을 뽐낸다. 나무 앞에 서며 한참 가을노래 듣는다. 바람 따라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쏴르르 물결소리 들려주는가 싶더니, 장끼 한 마리 포도독 꽁꽁꽁 하면서 날아간다. 너도 이 나무 한쪽에 앉아서 가을노래를 함께 들었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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