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 고향은 영어를 참 좋아한다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인천입니다. 서울 옆에 있다지만 인천은 인천입니다. 부천은 부천이고 수원은 수원이며 안산은 안산이에요. 서울 둘레에 있대서 서울하고 한동아리일 수 없고, 서울을 쉬 찾아갈 수 있대서 서울 문화를 누릴 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울하고 곁에 있어서 그런지, 인천사람은 퍽 예전부터 서울을 자주 드나듭니다. 똑똑하다 싶은 아이라면 일찌감치 서울로 보내서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대학교를 다녀도 인천에 있는 대학교가 아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공부 좀 한다고 여기며, 일자리를 얻어도 인천 아닌 서울에서 얻어야 제대로 일하는 줄 여겨 버릇합니다. 이런 탓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서울에서 하면 인천도 뒤따르고 마는 요즈음 흐름입니다. 서울시에서 ‘Hi Seoul’이라고 내세우니 인천시에서는 ‘Fly Incheon’을 내세웁니다. 다만, 서울시 누리집을 들어가면 서울시는 ‘서울특별시’라고 한글로 적고 나서 누리집 맨 아래쪽에 ‘Hi Seoul’이라는 글월을 넣지만, 인천시는 누리집 대문 가장 잘 보이는 데부터 ‘Fly Incheon’을 넣습니다. 누리집 맨 아래쪽에서야 비로소 한글로 ‘인천광역시’라고 적어요.

 우리 나라는 무엇이든 서울로 쏠립니다. 우리 나라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는 소식이 되고, 큰 신문사이든 방송사이든 출판사이든 회사이든 서울에 모이기만 합니다. 서울에 있대서 잘못이 아니라, 서울에만 있으니 골칫거리이거나 말썽거리가 됩니다. 이리하여, 서울시가 ‘Hi Seoul’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썼을 때에 언론사마다 날카롭게 꾸짖으면서 이래서야 이 나라 얼굴이 제대로 서겠느냐고 따졌으나, 서울하고 맞붙은 인천시에서 아예 ‘인천광역시’라는 이름조차 뒤로 숨기거나 안 쓰면서 ‘Fly Incheon’이라고만 쓸 때에는 어느 누구도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어요. 아니, 이렇게 이름을 쓰는 줄 몰랐겠지요. 이러다가 한글날 즈음 되어서야 비로소 인천시가 ‘Fly Incheon’을 쓰는 일을 나무라고, 대전시가 ‘It's Daejeon’을 떠벌이는 모습을 꾸짖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달이 《굿모닝 인천》이라는 소식지를 받아보니까, 이 소식지를 들여다보면서 인천시가 얼마나 영어를 사랑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요 한두 달 사이에 나온 소식지를 들추다가 2011년 5월치가 눈에 뜨여 빙그레 웃으면서 펼칩니다. 강원도 평창에서는 겨울올림픽을 이끌었다면서 기뻐 하는데, 인천에서는 2014년에 아시아 경기대회를 이끌었다며 즐거워 합니다. 2011년 5월치에는 겉에 이 소식이 하나 나옵니다. 다만, ‘아시아 경기대회’나 ‘아시안 게임’이라 안 쓰고 ‘AG’라 쓰는군요.

- 굿모닝 인천 Good Morning INCHEON

 그러고 보면, 소식지 이름은 《굿모닝 인천》이지만, 이렇게 알파벳으로 “Good Morning INCHEON”이라고 덧답니다. 나라밖 사람들, 그러니까 외국사람도 읽을 소식지라면 이렇게 알파벳 이름을 함께 붙일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굿모닝 인천》은 한글로 만드는 소식지입니다. 영어로 기사를 넣지 않아요.

 다른 지자체나 관공서나 회사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지자체 소식지이든 관공서 소식지이든 회사 소식지이든, 알파벳으로 소식지 이름을 밝힐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 대한민국은 ‘우리 말을 한글로 적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곳이지, ‘영어를 알파벳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식지 겉에 적힌 몇 가지 눈에 뜨이는 글을 알리는 대목을 봅니다.

- Special
- 인천 孝
- 2014 인천AG
- Old But New 용현동

 한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인천’과 ‘용현동’만큼은 알파벳으로 적으면 알아보기 더 힘드니까 한글로 적은 듯해요.

 소식지를 넘깁니다. 첫 쪽부터 ‘차례’가 아닌 ‘Contents’라 적습니다. 그러네요. 이제 이런저런 소식지이든 잡지이든 으레 ‘차례’나 ‘벼리’ 같은 말마디는 구지레하다 여기면서 이처럼 ‘Contents’라 적기 일쑤예요.

 ‘Contents’라는 자리에 어떤 말을 쓰는지만 돌아보더라도, 인천에서 내는 소식지 빛깔을 알겠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Contents’는 이렇게 짜였습니다. 하나하나 읽다가 입에 쩍 벌어집니다.

- Event : 5월 페스티벌
- INCHEON 2014 : AG 포스터
- Special : 어린이 꿈제작소
- 가정의 달 5월 : 인천 孝
- 책 읽는 인천 : 독서가족
- 2014 인천AG : Tibet, 라싸
- Old But New : 용현동
- Culture News : 문화뉴스, 이달의 공연전시
- 사람과 사람 : 조학영, 김효민
- Civic News : 시정뉴스
- Council News : 의정뉴스
- Infobox : 생활정보
- Spot the Difference : 틀린그림 찾기
- Reader's Photo : 김치찰칵
- 모닝커피 한잔 :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페스티벌’과 ‘포스터’와 ‘뉴스’는 왜 한글로 적는지 궁금합니다. ‘Tibet’은 알파벳으로 적는데 ‘라싸’는 왜 한글로 적을까요. 인천시에서 내놓는 이 소식지를 읽는 사람은 차례 아닌 Contents에 실린 이런저런 이름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좋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으로 찾아온 외국사람이 한글을 신나게 배우면서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힘쓰는데, 인천시에 살 집을 마련해서 인천시 소식지를 펼치면서 이러한 Contents를 읽어야 할 때에 무슨 생각을 할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소식지 간기 자리를 봅니다. 한글로는 따로 적는 말이 없이 “Incheon monthly magazine vol.209”라고만 적습니다. ‘209호’라고 적는 줄 몰라서 ‘vol.209’로 적었을까요. ‘인천시 월간지’라고 적을 줄 몰라서 ‘Incheon monthly magazin’로 적었을는지요.

 소식지 겉에 실은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Cover Story’라 적습니다. 그렇군요. ‘Cover Story’가 되겠네요. 우리 나라 중앙일간지 가운데 신문이름을 한글로 붙인 곳에서 내는 주간잡지에도 ‘커버스토리’가 실립니다. 다만, 이 주간잡지에서는 알파벳으로 ‘Cover Story’라 하지 않고 한글로 ‘커버스토리’라 합니다.

 인천시가 다달이 내는 소식지를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차례 자리를 비롯해 소식지에 실은 글에도 영어는 곳곳에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하나 들자면 끝이 없겠다고 느낍니다. 히유 한숨을 내쉬고는 소식지를 덮습니다. 인천시가 내세운 상징이름이라 할 ‘Fly Incheon’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인천시는 꼭 이렇게 영어로 상징이름을 지어야 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날자 인천’이라든지 ‘난다 인천’이라든지 ‘나는 인천’처럼 이름을 붙일 수 없었나 아리송합니다.

 모르는 노릇이기는 한데, ‘나는 인천’이라 이름을 붙였다면, “하늘을 나는 인천”이면서 “나라는 사람은 바로 인천”이라는 뜻이 됩니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며 일하는 모든 삶이 곧 인천이니까, 나 스스로를 자랑스레 여기면서 씩씩하고 사랑스레 아끼자는 뜻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Fly Incheon’일 때에는 그저 영어 이름이요, 한국사람한테나 인천사람한테나 그다지 가슴으로 와닿을 만한 아름다움이 깃들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싶어요.

 독일사람은 독일말로 상징이름을 짓습니다. 프랑스사람은 프랑스말로 상징이름을 지어요. 네덜란드사람은 네덜란드말을 쓰고, 스웨덴사람은 스웨덴말을 씁니다. 베트남사람은 베트남말을 쓰고, 스리랑카사람은 스리랑카말을 써요. 모두들 제 나라 제 겨레 말을 씁니다. 한국사람은 일본사람이 ‘김치’를 ‘기무치’라고 고쳐서 말할 때에 못마땅해 합니다만, 정작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사랑스럽거나 착하거나 참답게 쓰지 않아요.

 아, 저는 제 고향을 사랑해야 할까요. 우리 말글은 아끼거나 좋아하거나 보듬거나 돌볼 줄 모르는 이 고향을 사랑해야 하나요. (4344.7.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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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3] 하루맞이

 첫 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날부터 하루맞이는 남다릅니다. 첫 아이를 맞아들이고부터 아이보다 훨씬 일찍 깊은 새벽에 일어나 아이 기저귀를 살핍니다. 이러고 나서 밤새 쌓인 오줌기저귀를 천천히 빨래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래한 기저귀와 옷가지가 어느 만큼 말랐는가 만지고는, 다 말랐으면 개고, 이 자리에는 새벽에 새로 빤 기저귀와 옷가지를 넙니다. 이윽고, 아침맞이 글쓰기를 조금 하다가, 곧 일어날 식구들 먹일 밥을 어떻게 차릴까를 생각하며 쌀을 씻어 불립니다. 머잖아 아이가 깨어나면 이때부터 쏜살같이 흐르는 하루는 온 넋과 얼을 쏘옥 빼며 해가 하늘 높이 떴는지 저쪽으로 기울었는지 모르는 채 휙휙 흐릅니다. 저녁이나 밤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무는구나 돌아보면서 하루마감을 해 보고 싶지만, 내 몸에 남아난 기운이 거의 없어 어느새 아이 곁에서 폭 고꾸라집니다. 오늘 하루도 여느 날과 똑같이 엽니다. 하루맞이는 새벽빨래부터입니다.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두 손으로 꼭 쥐고 비벼서 물기를 짜고 탕탕 텁니다. 손에서 물기 마를 틈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낳아 어버이로 살아온 이 땅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하루맞이를 이렇게 했겠지, 하고 돌아봅니다. 고마운 하루맞이입니다. 퍽 힘에 부치지만 보람차면서 아름다운 하루마감을 꿈꿉니다. (4344.7.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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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2] 우리들 친구

 혀가 짧아도 애쓰다 보면 혀짤배기 소리를 안 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혀가 짧기에 더 힘쓰면서 혀짤배기 소리에서 벗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혀가 짧기에 혀짤배기로도 낼 수 있는 소리를 찾아 나한테 걸맞거나 즐거울 말마디를 찾기도 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국어를 배우는 때에 으레 책에 적힌 글을 읽도록 시키는데, 나로서는 “우리의 무엇무엇” 하고 나오는 대목이 읽기 힘들었습니다. 천천히 똑똑 끊어 읽으면 읽을 만하지만, 어느 교사이든 이렇게 읽지 못하도록 했고, 동무들은 깔깔거리며 놀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웃음소리와 꾸지람을 무릅쓰고 빨리 읽을라치면 소리가 새거나 혀가 꼬였어요. 이때에 내가 했던 생각은 ‘책에 적힌 글을 그대로 읽으라면 어찌할 수 없지만, 내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는 이렇게 안 하겠어.’였어요. 어린 날 동무들이 많이 듣고 부르던 노래 〈빨간머리 앤〉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대목을 나는 혼자서 조용히 “우리들 친구”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이제 네 살 된 딸아이한테도 아버지는 〈빨간머리 앤〉 노래 끝자락을 “우리들 친구”로 고쳐서 부릅니다. 아이 어머니는 “우리의 친구”로 똑똑히 부를 줄 알고, 아이도 이렇게 배우지만, 아버지가 “우리들 친구”라 하니, 요새는 아이도 이렇게 부릅니다. (4344.7.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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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로 옮기는 일본 만화책


 일본사람은 한국사람보다 영어를 즐겨쓴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일본사람은 웬만한 낱말을 으레 영어로 적어 버릇한다고까지 합니다. 일본말을 배우는 이는 따로 ‘일본 외래어 사전’을 곁에 두지 않으면 일본말을 익히지 못한다고 합니다.

 집에서 네 살 아이하고 일본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노라면, 어린 네로가 파트라슈와 함께 끌고 다니면서 거두어 도시로 가져가는 것은 ‘우유’ 아닌 ‘미루크(milk)’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본사람이 그린 만화책을 읽을 때에도 엇비슷합니다. 일본 만화책을 한글로 옮긴 이들은 일본사람이 쓰는 영어를 고스란히 옮겨 적기 일쑤입니다. 《네가 없는 낙원》(학산문화사,2006) 11권 106쪽에 “내 휴대폰으로 메일 주세요.”라는 대목이 나오고, 107쪽에는 “머리 위에서는 지금 지상의 눈보라로 인한 3D 아트 전개 중. 타이틀은, 으음.”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손전화’까지 바라기는 힘들다지만, ‘휴대전화’라 적을 수 있었을 테고, ‘쪽지’나 ‘쪽글’까지 바라기 힘들더라도 ‘문자’라 적을 수 있어요. 그나저나 “3D 아트 전개 중”은 어떻게 살펴야 할까요. 어쩌면, 번역하는 분마저 이런 말은 도무지 어쩔 수 없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놀라운 예술이 펼쳐진다”라든지 “꿈 같은 예술이 펼쳐짐”이라든지,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면 좋겠습니다. 122쪽에는 “한 장밖에 티켓을 구하지 못했어.”라는 대목하고 “이 메모 순서대로 병원으로 가.”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꽤 흔히 쓰는 낱말이라지만, ‘티켓(ticket)’은 우리 말이 아니에요. 영어예요. 들온말이니 아니니를 따질 수 없는 바깥말인 영어입니다. ‘메모(memo)’야 워낙 자주 많이 쓰니 바깥말이라 느끼는 사람이 적다 할 텐데, 한국말은 ‘쪽글’이나 ‘쪽지’입니다.

 《치무아 포트》(대원씨아이,2011)라는 만화책 69쪽에서는 “나라는 샘플을 원하고 있지.”라는 대목을 봅니다. 한자말 ‘견본’이나 한국말 ‘보기’를 쓰지 않습니다. 123쪽에서는 “서비스로 드리지요!”라는 대목을 봅니다. “덤으로 드리지요!”나 “더 드리지요!”나 “그냥 드리지요!”라 적지 않아요.

 《봄으로 가는 버스》(대원씨아이,2007) 4권에 나오는 “선생님! 나이스 슛이에요!”는 일본사람만 흔히 쓰는 영어라 할 수 없습니다. 한국사람도 이제는 이런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아주 보드랍게 써요. 농구를 하건 축구를 하건 “나이스 슛”이라고만 해요. “멋진 슛”이나 “멋져”라 하지 않습니다.

 《조폭 선생님》(대원씨아이,2011) 완결편 185쪽에서 보는 “어쩌고 하는 작업멘트를 날리다 그만”에서는 ‘작업멘트’라는 대목이 돋보입니다. “어쩌고 하며 작업을 거는 말을 날리다 그만”처럼 적지 않을 뿐더러, “작업을 거는 말”을 ‘작업말’이라 이야기하는 일이 없어요. 으레 영어로 ‘멘트(ment)’라 해야 어울린다고 여깁니다. 더 들여다보면 ‘作業’이라는 낱말부터 알맞지 않게 쓴 셈인데, ‘꼬드기다’나 ‘꾀다’라 적어야 하는데, 이렇게 엉뚱한 낱말을 쓰면서 영어 또한 얄궂게 들러붙는구나 싶어요. 180쪽에서 보는 “내 휴대폰 벨소리인데?”에서는 어느덧 한국말로 뿌리를 내렸다고 할 만한 ‘벨소리’가 보입니다. “휴대전화 소리”나 “손전화 울림소리”나 “손전화 노랫소리”처럼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1) 5권 114쪽에 나오는 “아니, 오버야.” 같은 말 또한 어느새 영어로 느끼지 않는 한국말처럼 받아들입니다. “아니, 지나쳤어.”나 “아니, 김치국 마시지 마.”나 “아니, 헛물 켜지 마.”처럼 주고받던 말씨는 이제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는 듯합니다.

 《아빠는 요리사》(학산문화사,2011) 112권 107쪽에는 “둘이서 크리스마스 & 해피 버스데이 파티를 여는 거 어때?”라는 대목이 보이고, 111쪽에는 “몽자들은 이웃의 홈파티에 간 모양이다.”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그나마 ‘생일파티’조차 아닌 ‘버스데이 파티’라 하고, 꾸밈말을 덧달아 “해피 버스데이 파티”라 말하는군요. 일본사람이 이렇게 영어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더라도, 한국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이 보는 만화책에는 “둘이서 성탄맞이와 즐거운 생일잔치를 열면 어때?”처럼 적기란 어려웠을까 궁금합니다. ‘홈파티’라는 말도 그렇지요. 집에서 여는 잔치라면 ‘집잔치’일 텐데요.

 《신의 물방울》(학산문화사,2005) 1권 37쪽에는 “와인을 만들기에는 최고의 빈티지였어.”라는 말마디가 나옵니다만, ‘빈티지(vintage)’는 포도술을 가리킵니다. 어느 해 어느 곳에서 만든 좋은 포도술을 가리킨다고 하는 만큼 “와인을 만들기에는 최고의 빈티지였어”는 말이 될 수 없어요. “포도술을 빚기에는 가장 좋은 해였어.”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그나저나, ‘빈티지’라는 영어를 ‘구제(舊製)’라는 한자말과 같은 뜻으로 쓰면서 “오래되면서 무언가 멋이 있는 옷이나 물건”이라 여기곤 하는데, 이렇게 쓰는 일은 알맞지 않아요. 빈티지이든 구제이든, 한국말로는 ‘헌옷’입니다. 낡은 옷이거나 오래된 옷이에요. 헐거나 낡거나 오래되었으나 빛이 난대서 달리 영어로 나타내려 하는지 모르나, ‘헌책’이든 ‘헌집’이든 값이나 뜻을 찾는 사람은 나 스스로입니다. 물건은 물건 그대로 꾸밈없이 가리키면서 내 마음을 따스히 돌보아야지 싶어요. 41쪽에는 “신의 솜씨 같은 그의 디켄팅이 쇠사슬에 묶여 있던 떨떠름한 리쉬부르를 해방시켜 줬고”라는 말마디를 봅니다. ‘디켄팅(Decanting)’이라고만 해야 전문 낱말인 듯 생각하기에 그대로 영어로만 적는구나 싶은데, 한국말 ‘옮겨따르기’나 ‘옮겨담기’로 적으면 됩니다. 번역하는 일이란 ‘옮기기’나 ‘옮겨적기’입니다. 옮기어 따르는 동안 찌꺼기를 거르는 만큼, 이렇게 ‘옮겨따르기’라고만 하면서 얼마든지 포도술 거르기를 보여줄 수 있어요.

 《미녀는 못 말려》(서울문화사,2004) 3권 85쪽에 “자아, 클린 스태프는 이쪽으로 모여 주십시오.” 하는 말이 나옵니다. ‘클린 스태프’라 해서 무언가 했더니 ‘청소 일꾼’, 곧 ‘청소부’를 가리킵니다. 말놀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청소하는 분”이나 “청소를 맡는 분”으로도 옮길 수 있고, ‘맑음이’나 ‘깔끔이’처럼 새말을 지을 수 있어요. 그런데 8쪽을 보면, “집에서 얘랑 디너하기로 했거든.” 하고 나옵니다. ‘저녁’이나 ‘저녁잔치’처럼 쓰지 않아요. 영어로 겉멋이나 겉치레를 부리는 아이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111쪽에는 “빅뉴스야, 빅뉴스!” 하고 나옵니다. “대단한 소식이야!”나 “놀라운 이야기야!”처럼 이야기하지 않아요. ‘빅’이든 ‘뉴스’이든 가볍게 써요.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1) 2권 6쪽에서는 “하루카의 걸프렌드 사호구나!” 하는 글월을 봅니다. 여자인 친구이니 ‘여자친구’이지만, 이렇게 영어로 가리키는 일을 더없이 마땅하다는 듯 여깁니다. 143쪽에는 “모처럼 즐거운 피크닉에 와서” 같은 글월을 볼 수 있어요. “즐거운 나들이”나 “즐거운 들놀이”나 “즐거운 봄나들이”라 적지 않습니다. 일본사람이 제아무리 영어로 온갖 삶과 이야기를 나타낸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만화책은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즐기도록 해야 할 테지만, 한국말을 어떻게 가다듬으면서 알맞게 적바림해야 좋을까 하는 대목을 거의 돌아보지 못한다고 하겠어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이러하며 이듬날도 이와 마찬가지가 되리라 느낍니다. 사랑을 깊이 담아 주고받는 말이 되지 못합니다. 생각을 알뜰히 기울여 나누는 글이 되지 못합니다. 즐거이 놀이하듯이 어우러지는 이야기로 뻗지 못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여기에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즐겨 읽는 만화책에서도,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예쁘게 맞아들이면서 곱게 아로새기기란 너무 힘듭니다. (4344.6.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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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1] 막대기빵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아 읍내 장마당으로 가는 길에 옆지기한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옆지기는 사올 수 있으면 ‘막대기빵’도 사오라고 이야기합니다. 장마당에 나오는 김이니, 사올 수 있으면이 아니라 이곳저곳 뒤져서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네, 막대기빵이요?” 하고 묻습니다. 옆지기는 “막대기빵. 바게트빵.” 하고 덧붙입니다. “아, 바게트빵.” 손전화를 끊고 앞가방 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니, 옆지기는 곧잘 ‘막대기빵’이라 이야기했습니다. 막대기처럼 생겼기에 막대기빵이라 할 수 있겠구나 싶은데, 집에 와서 더 얘기를 들으니, 프랑스사람이 구워서 먹는 ‘바게트빵(baguette  pain)’에서 바게트는 ‘막대기’를 뜻한다더군요. 그러니, 프랑스사람으로서는 삶말로 ‘막대기빵’이라 이름붙인 셈이고, 한국에 있는 빵집 이름을 돌아보자면 ‘파리 막대기’예요. 다음 장날에 다시금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에 나가 막대기빵을 둘 사옵니다. 아이 손을 잡고 빵집에 들어서며 막대기빵을 한손에 하나씩 집고는 썰어 달라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이게 뭐야?” 하고 묻습니다. “응, 막대기처럼 생긴 이 녀석은 막대기빵이야.” “응, 막대기빵. 막대기빵 맛있어?” “응, 맛있어.” (4344.6.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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