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0) 선하다善 3 : 선하고 깊은 밤색 눈동자


.. 이 어린 아르덴 소년은 생김새가 무척 고왔습니다. 선하고 깊은 밤색 눈동자와 발갛게 홍조를 띤 얼굴에, 특히 목 언저리에서 살짝 삐친 금발 머리가 사랑스러웠지요 ..  《위다/노은정 옮김-플랜더스의 개》(비룡소,2004) 27쪽

 “발갛게 홍조(紅潮)를 띤 얼굴”은 잘못 적은 겹말입니다. ‘홍조’는 붉어진 모습을 가리키거든요. “붉어진 얼굴”이라 적거나 “홍조를 띤 얼굴”이라 적어야 올바릅니다.

 ‘특(特)히’는 ‘더욱이’나 ‘무엇보다’나 ‘게다가’로 다듬고, “금발(金髮) 머리”는 “금빛 머리”나 “노란 머리”나 “보리빛 머리”나 “샛노란 머리”나 “노랑 머리”로 다듬습니다. ‘금발’은 “금빛 머리털”을 뜻하니, “금발 머리”처럼 적을 때에도 잘못 쓰는 겹말이 돼요.

 선하고 깊은 밤색 눈동자
→ 착하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상냥하고 깊은 밤빛 눈동자
→ 따스하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착한 넋으로 살아가는 아이 눈동자를 들여다봅니다. 아이 눈빛이 착합니다. 상냥한 매무새로 살아가는 아이 눈동자를 바라봅니다. 아이 눈빛이 상냥합니다. 따스한 몸짓으로 살아가는 아이 눈동자를 마주봅니다. 아이 눈빛이 따스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결 그대로 눈빛을 가꿉니다. 저마다 사랑하는 마음씨 그대로 눈빛을 드러냅니다.

 착한 어른은 착한 동무를 사귀면서 착한 아이와 사랑스럽습니다. 상냥한 어른은 상냥한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상냥한 아이와 즐겁습니다. 맑은 어른은 맑은 사람으로 하루를 누리면서 맑은 아이와 살갑습니다.

→ 부드럽고 깊은 밤빛 눈동자
→ 맑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싱그럽고 깊은 밤빛 눈동자
 …

 착한 눈을 들여다보면서 부드러운 사랑을 헤아립니다. 상냥한 눈을 바라보면서 맑은 꿈을 살핍니다. 따스한 눈을 마주보면서 싱그러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마음을 착하게 보살피면서 말마디를 착하게 보살피는 사람들 삶자락을 생각합니다. 사랑을 착하게 보듬으면서 글줄을 착하게 여미는 사람들 삶무늬를 헤아립니다. (4344.11.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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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3) 네코무라이스 에그


.. “아, 그럼, 오늘은 ‘네코무라이스 에그’를 해 볼까? 여자니까 깜찍하게 에그로 장식하면 좋아하실지도 몰라.” ..  《호시 요리코/박보영 옮김-오늘의 네코무라 씨 (하나)》(조은세상,2008) 107쪽

 ‘장식(裝飾)하면’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꾸미면’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집살림 맡은 네코무라 씨가 ‘오무라이스’를 하는데, 밥을 볶아서 밥그릇에 담은 다음 접시에 뒤집어 놓고, 달걀을 노른자 터지지 않게 부쳐서 밥 위쪽에 예쁘게 얹습니다. 달걀을 얇게 부쳐서 볶음밥에 얹지 않아요. 그래서 여느 ‘오무라이스’가 아닌 ‘네코무라이스 에그’라는 새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쓰는 ‘장식하면’이니, “여자니까 깜짝하게 달걀(부침)을 얹으면”처럼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오무라이스(オムライス)’는 일본사람이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오믈렛(omelet)’ + ‘라이스(rice)’가 ‘오무라이스’가 되었어요. 그러나 이 일본말(일본 영어)을 거리끼지 않고 쓰는 한국사람이에요. 한국에 있는 밥집 어디에서나 ‘오무라이스’나 ‘오므라이스’라 적을 뿐, 이 밥을 우리 말글에 걸맞게 풀어내어 적지 않습니다.

 오믈렛 → 달걀 얇게 부침
 라이스 → 밥
 오믈렛 + 라이스 → 밥을 볶은 다음 달걀 얇게 부쳐 얹음


 달걀을 부친다 할 때에 두껍게 부치기도 할 테고 얇게 부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일본말 ‘오무라이스’는 ‘얇은달걀부침볶음밥’으로 적어야 가장 올바릅니다.

 이렇게 적자니 너무 길다면 ‘달걀부침볶음밥’이나 ‘달걀부침밥’처럼 적을 수 있어요. 어떻게 마련해서 먹는 밥인가를 살핀다면 가장 알맞으면서 올바르고 쉬운 이름 하나 얻습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도 됩니다. 아이한테 ‘오무라이스’를 마련해 준 다음, “자, 오늘은 무슨 밥일까?” 하고 물어 보셔요. 아이들이 아직 ‘오무라이스’라는 일본말을 모를 때 물어야 하는데, 오무라이스를 모르는 아이들은 달걀을 얇게 부쳐서 볶음밥에 얹을 때에 무어라 이야기를 할까요. 아이들한테 묻듯 나 스스로한테 차분하게 물어도 돼요. 나는 이 밥을 바라보면서 어떤 밥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네코무라이스 에그 : 네코무라 씨가 만든 달걀부침 얹는 볶음밥
→ 네코무라 달걀밥
→ 네코무라 달걀부침밥
→ 네코무라 달걀부침볶음밥
 …


 여느 달걀부침밥(오무라이스)하고는 좀 다르게 마련하는 밥인 만큼 ‘부침’이라는 낱말을 덜어 ‘달걀밥’이라고만 할 때에 더 알맞을 수 있습니다. 또는 “네코무라볶음밥 달걀얹기”처럼 조금 길더라도 새 이름을 붙일 만해요.

 스스로 예쁘게 꾸미려 하는 맛난 밥인 만큼, 스스로 예쁘게 돌보려 하는 살가운 말이요 이름이라면 한결 반갑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나날이라면, 스스로 아름다이 보살피는 말이며 글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인다면 몹시 즐겁습니다.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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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41) 충동적 3 : 충동적인 말

.. 충동적인 말이라 앞일은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코우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마키 우사미/서수진 옮김-사랑 소리 (1)》(대원씨아이,2009) 26쪽

 ‘앞일’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입니다. 말 그대로 앞날 일어날 일이기에 앞일이에요. 뒤에 일어나는 일은 ‘뒷일’입니다. ‘미래(未來)의 일’이나 ‘장래(將來)의 일’처럼 적지 않아도 돼요.

 ‘전(全)혀’는 ‘하나도’나 ‘조금도’나 ‘참말’이나 ‘아무’로 다듬습니다. “생각하고 있을까”는 “생각할까”나 “생각하며 지낼까”나 “생각하려나”로 손질합니다.

 충동적인 말이라
→ 불쑥 꺼낸 말이라
→ 불쑥 튀어나온 말이라
→ 갑작스러운 말이라
→ 갑작스레 한 말이라
→ 갑자기 꺼낸 말이라
 …

 나도 모르게 꺼내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고이 품다가 문득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들려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갑작스럽다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뜬금없다 여길는지 모릅니다. 참 뜻밖이라 할 만합니다. 생각하지 못하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마디가 오가면서 다 함께 마음을 엽니다. 갑자기 터져나온 말마디로 사랑을 맺습니다. 좀처럼 터뜨리지 못하던 말마디가 활짝 열리면서 새로운 넋과 꿈이 피어납니다.

 나도 모르게 한 말이라
 얼떨결에 나온 말이라


 얼결에 나오는 말이 있고, 오래도록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얼떨결에 새어나오는 말이 있으며, 그동안 하고프던 말이 있습니다.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늘 느꼈으니까요. 새롭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오갔거든요.

 누구 부추긴대서 사랑이 자라지 않습니다. 옆에서 쑤석거린대서 사랑이 샘솟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라는 사랑이고, 스스로 샘솟는 사랑입니다. 스스로 돌보는 따스한 말이요, 스스로 일구는 너그러운 글입니다. (4344.11.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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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58) 존재 158 : 핵심을 이루는 존재


.. 편집자는 출판계의 핵심을 이루는 존재이다. 곧, 편집자란 독자의 한 사람인 동시에 독자의 대표자격이어서 독자가 바라는 정보나 지식을 저작자에게 쓰게 하거나 저작자가 작성한 저작물을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의 모습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이다 ..  《김성재-출판 현장의 이모저모》(일지사,1999) 27쪽

 ‘출판계(出版界)’는 ‘책마을’로 다듬고, ‘핵심(核心)’은 ‘알맹이’나 ‘큰 몫’이나 ‘고갱이’로 다듬습니다. “독자(讀者)의 한 사람인 동시(同時)에”는 “독자이면서”나 “책을 읽는 한 사람이면서”로 손보고, “독자(讀者)의 대표자격(代表者格)이어서”는 “독자를 대표해서”나 “읽는 사람 뜻을 헤아리면서”로 손봅니다. ‘저작자(著作者)’는 ‘글쓴이’나 ‘글을 쓸 사람’으로 손질하고, “저작자가 작성(作成)한 저작물(著作物)을”은 “글쓴이가 일군 글을”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 일군 열매를”로 손질하며, “책의 모습으로 만들어 제공(提供)하는 사람”은 “책으로 만들어 내놓는 사람”이나 “책으로 만들어 나누는 사람”으로 손질해 봅니다.

 편집자는 출판계의 핵심을 이루는 존재이다
→ 편집자는 출판계에서 핵심을 이루는 사람이다
→ 편집자는 책마을에서 알맹이를 이루는 일꾼이다
→ 편집자는 책마을에서 큰 몫을 맡는다
 …


 일본사람이 널리 쓰면서 이 나라 사람들 말투로 스며든 ‘존재’입니다만, 이 낱말 한 가지만 깊이 스며들지 않아요. ‘고갱이’나 ‘알맹이’나 ‘알짜’를 잊은 채 쓰는 ‘핵심’또한 일본사람 말투요, “출판계의 핵심”처럼 ‘-의’를 넣을 때에도 일본사람 말투입니다.

 낱말은 어쩔 수 없다 여기면서 한국사람 말투를 헤아린다면, “편집자는 출판계 핵심이다”처럼 적바림해야 알맞습니다. 또는 “편집자는 출판계에서 핵심이다”처럼 적바림합니다. 이 말투 결과 무늬를 돌아보면서, “편집자는 책마을에서 첫손 꼽히는 자리이다”라든지 “편집자는 책마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라든지 “편집자는 책마을에서 더없이 큰 몫을 맡는다”라고 손볼 수 있어요.

 편집자는 사람입니다. 편집자는 존재가 아닙니다. 편집자는 일꾼입니다. 일하는 사람입니다. 영업자도 사람이고 사장도 사람입니다. 회계를 맡건 제작을 맡건 누구나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 어디에 서는 사람인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나부터 어느 곳에서 누구하고 말을 섞는 사람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슬기로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참답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편집자는 책마을을 이루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편집자는 책마을을 이루는 기둥 가운데 하나이다
 편집자는 책마을을 이루는 밑바탕 구실을 한다
 편집자는 책마을을 이루는 대들보와 같다
 …


 생각을 기울이지 않을 때에는 말을 말다이 하지 못합니다. 생각을 들이지 않으면서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생각을 쏟지 않으면서 내 삶을 어여삐 돌보지 못합니다.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에요. 생각하면서 일구는 사랑이에요. 생각하면서 누리는 삶이에요. 고운 생각으로 고운 말을 빚고, 고운 생각으로 고운 사랑을 북돋우며, 고운 생각으로 고운 삶을 가꿔요. (4344.11.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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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2) -의 : 인체의 아름다움


.. 인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다 ..  《박용현-정당한 위반》(철수와영희,2011) 167쪽

 ‘인체(人體)’는 ‘사람몸’이나 ‘몸’으로 다듬습니다. ‘대답(對答)하기’는 ‘말하기’나 ‘이야기하기’로 손보고, “어려운 질문(質問)이다”는 “어려운 말이다”나 “어려운 물음이다”나 “어렵다”로 손봅니다. 그러니까, 이 글월은 “이야기하기 참 어렵다”나 “말하기 참 어렵다”로 손보면 돼요.

 인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아름다운 몸이란 무엇인가
→ 사람들 몸은 어떻게 아름다운가
→ 사람들 몸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


 학문으로 따지자면, ‘사람을 이루는 몸’을 ‘사람몸’이라 일컬으면 됩니다. 애써 ‘사람 人 + 몸 體’라는 한자를 빌어 ‘인체’로 가리켜야 하지 않아요. 더 헤아리면, 예부터 ‘몸’이라는 낱말로 ‘사람을 이루는 몸’을 단출히 가리켰어요.

 어떻게 말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하며 생각했는가를 느껴야 합니다. 말이 이루어지는 결을 살펴야 합니다. 말과 말을 맺는 이음고리를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 몸은 어떻게 아름다운가
 우리 몸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내 몸은 무엇 때문에 아름다운가
 내 몸은 어떤 모습이 아름다운가
 …


 “인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글월은 우리 글월이 아닙니다. 한겨레 글월이 될 수 없습니다. “책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든지 “지구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또한 우리 글월이 아닙니다. 한국말이 될 수 없어요.

 “책은 무엇이 아름다운가”라 말하거나 “아름다운 책이란 무엇인가”라 말해야 우리 글월이 되고 한겨레 글월이 됩니다. “지구는 무엇이 아름다운가”라 말하거나 “아름다운 지구란 무엇인가”라 말해야 우리 글월이요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을 잊는 사람한테는 한국말을 어떻게 쓰더라도 대수롭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한국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한국말로 꾸는 꿈이란 너무 멀리 떨어진 아스라한 아지랑이일는지 모릅니다. (4344.11.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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