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눈물은 눈물로 (2024.5.11.)

― 부산 〈카프카의 밤〉



  지난달에 이은 ‘이응모임, 이오덕 읽기 모임’ 두걸음을 폅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이오덕을 읽는 눈으로 우리 마음과 살림을 읽자’는 줄거리를 들려주고 나누다가 쪽글을 슥 씁니다. 무슨 글을 써야 할는지 지난달에도 이달에도 모르겠다는 이웃님 말씀을 가만히 듣다가, “눈물이 나올 듯하다 / 오늘은 / 여기까지만 적어 본다.” 이렇게 석 줄을 그대로 옮겨도 글이자 노래(시)이고, “뭘 써야 할는지 몰라서 / ‘뭘 써야 할는지 모르겠다’ 하고 / 적었다”처럼 우리 오늘 이곳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도 넉넉히 글이자 노래라고 보탭니다.


  글은 잘 써야 하지 않고, 말은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말더듬이로 살지만, 둘레에 나누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려서 소리를 옮기는 말을 폅니다. 제가 쓰는 글이 얼마나 읽히는지 알 턱이 없지만, 이웃하고 나누려는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어서 그림으로 담는 글을 여밉니다.


  살림을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살림을 하면 됩니다. 사랑을 잘 해야 하거나, 첫사랑을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알아보고 맞아들이고 품어서 씨앗으로 돌보면 됩니다. 좋은 살림과 나쁜 살림이 없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없습니다. 좋은 사랑과 나쁜 사랑이 없고,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없습니다.


  살림과 사랑도, 말과 글도, 좋거나 나쁘다고 가르지 않아요. 살림을 하기에 살림이고, 사랑을 하기에 사랑입니다. 말을 하기에 말이고, 글을 쓰기에 글입니다.


  떠난 어른 이오덕 님은 우리한테 바로 이 대목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같은 말을 남기면서, “어른도 아이로 태어나서 어린이로 자랐으니, 어린이하고 똑같이 시인이다” 같은 말씀을 남겼다고 느껴요.


  눈물이 나는 말은 눈물을 그대로 옮기니 노래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읽을 책을 먼저 즐겁게 읽는다면, 아이는 저절로 어버이랑 함께 즐겁게 책을 폅니다. 아이하고 함께 지을 살림을 즐겁게 가꾸면, 아이는 언제나 스스럼없이 어버이 곁에 나란히 살림짓는 손길을 펴면서 사랑으로 빛납니다.


  우리가 어른이나 어버이라고는 하더라도, 막상 스스로 먼저 이슬받이라는 길을 안 간다면, 아이들이 책을 싫어하거나 살림하고 등져요. 들에서는 들풀이고, 숲에서는 숲풀이에요. 우리 보금자리에서는 보금빛이요 보금사랑이면서 보금글과 보금책입니다. 꾸미지 않으려 하면, 꾸리고 가꾸고 일굽니다.


  어미새는 새끼새한테 사랑·살림。숲을 삶으로 물려주려고 온마음을 기울입니다. 낳은 아이랑 이웃집 아이를 모두 사랑으로 마주한다면, 누구나 늘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노랑의 미로》(이문영, 오월의봄, 2020.5.18.)

《실험이 땡긴다》(이나무, 그린유니버시티, 2024.3.15.)

《산복도로 골목을 품다》(수정4동 르네상스 주민협의회, 갤러리수정, 2018.11.15.)

《연산동 300-17》(은성군, 은성군, 2023.11.)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창비, 2016.5.16.)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이오덕 엮음, 양철북, 2018.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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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자랄 틈 (2024.5.11.)

― 부산 〈책방 감〉



  나무가 없으면 새가 없습니다. 매캐하고 시끄러운 큰고장이어도 잿빛(시멘트)하고 까망(아스팔트)으로만 덮으면 모든 사람이 숨막힙니다. 아무리 들숲과 논밭을 밀어내어 잿더미(아파트)를 죽죽 올리더라도 시늉으로 나무를 심습니다. 새마을(신도시)이 열 해나 스무 해를 지나면, ‘시늉박이 나무’도 어느 만큼 줄기가 굵어요.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넘기면, 바야흐로 ‘마을나무’로 거듭납니다.


  책집을 들르려고 ‘부산교대나루’로 곧잘 오갔으나, 이 둘레에 열린배움터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어요. 오직 책집만 바라보았거든요. 〈책방 감〉을 찾아가면서 둘러보니 부산교대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책집 바로 건너가 부산교대로군요.


  배움터를 드나드는 사람은 책집이 곁에 있는 줄 알까요, 모를까요? 모든 책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오고, 우리가 마시는 물도 멧숲에서 샘솟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도, 우리가 입는 옷도, 멧숲이 있기에 비로소 누립니다.


  종이꾸러미만 펼 적에는 배움길하고 멉니다. 종이를 마련하기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지 헤아리고 살피고 가눌 적에 배움길이지 싶습니다. 종이에 적힌 글씨만 읽거나 외운들 배움길하고 멀지요. 붓 한 자루를 묶기까지 어떤 살림을 짓는지 돌아보고 짚고 가꿀 적에 배움길이라고 느낍니다.


  수박 이야기를 그리고 싶으면, 가게 시렁에 놓인 수박만 쳐다보지 말고, 수박이 자라나면서 맞이하는 해바람비를 들판에서 함께 품을 노릇입니다. 어린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어린배움터 둘레에서 그치지 말고, 어린이가 신나게 누리면서 일굴 아름누리와 들숲바다를 같이 품을 노릇입니다.


  늦봄 한낮을 〈책방 감〉에서 보냅니다. 다 다른 목소리가 다다를 곳이 가만가만 고즈넉이 숲빛이기를 바라면서 여러 책을 읽습니다. 이렁저렁 한 꾸러미를 살피고서 다시 부산교대로 들어갑니다. 커다란 나무 곁에 걸상이 있습니다. 걸상에 앉아서 눈을 감습니다. 돈(경제적 이익)보다는 마음(문화적 이익)을 헤아리고 싶기에, 품과 길삯(차비)을 들여서 마을책집으로 사뿐히 찾아가서 깃듭니다. 누구나 돈보다 살림을 그리면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뜻이라면 살림책을 손에 쥐겠지요.


  배우는 사람은 나이가 안 듭니다. 배우기에 철이 듭니다. 안 배우기에 나이가 듭니다. 안 배우니 철이 안 듭니다. 나이듦이란 늙음이요, 늙음이란 죽음길이요, 죽음길이란 스스로 판 수렁입니다. 철듦이란 어짊이요, 어짊이란 어른길이요, 어른길이란 얼이 차오르면서 스스로 빛나는 사랑입니다.


  나무가 자랄 틈이 있어야 숲입니다. 아이가 자랄 틈을 열어야 마을입니다.


ㅅㄴㄹ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16.1.18.)

《자연에 이름 붙이기》(캐럴 계속 윤/정지인 옮김, 윌북, 2023.10.11.첫/2023.11.20.3벌)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책세상, 2012.3.25.첫/2013.6.30.))

《사랑을 찾기 위하여》(박주관, 학민사, 1989.8.30.)

《김종란의 시와 산문》(김종란, 드림, 2009.12.15.)

《익살꾼 성자 나스룻딘》(이드리스 샤아 엮음/이아무개 옮김, 드림, 2010.10.1.)

《북아뜨리에 20 알베르 까뮈》(쟝 그르니에/이재형 옮김, 고려원, 1987.12.15.)

《형자와 그 옆사람》(김채원, 창, 1993.12.17.)

《오늘도 핸드메이드! 2》(소영, 비아북, 2017.11.1.)

《天皇과 免罪符》(김문숙, 지평, 1994.11.20.)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이상업, 소명출판, 2016.11.20.)

《왕자와 거지》(마크 트웨인/이희재 옮김, 시공주니어, 2002.4.15.첫/2014.4.5.40벌)

《그 책은》(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양지연 옮김, 김영사, 2023.6.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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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빗질 (2024.3.29.)

― 서울 〈씨도씨〉



  14:40 시외버스로 고흥으로 돌아가기 앞서 어느 마을책집을 들를까 하고 어림하다가 ‘바다빗질’ 보임꽃(전시회)을 펴는 〈갤러리 사진적〉과 〈문화온도 씨도씨〉가 나란히 있는 서울 광진으로 갑니다. ‘바다빗질’은 2020∼21년 무렵에 여러모로 헤아리면서 지은 낱말입니다. 영어 ‘비치코밍’이나 한자말 ‘해변청소(해변정화)’보다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만한 우리말이 있어야겠다고 여겼어요.


  우리말은 여러모로 즐겁고 재미나면서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바다를 빗으로 살살 쓸기에 ‘바다빗질’이요, ‘바다쓸기’입니다. 바다에 밀려드는 쓰레기를 치울 적에는 ‘바다치움’입니다. ‘바닷가빗질·바닷가쓸기·바닷가치움’처럼 쓸 수 있고, ‘바다빛질’처럼 살짝 달리 써도 어울립니다. 바다를 빗질을 하면 어느새 반짝반짝 빛날 테니, “빛이 나도록 손길을 보낸다”는 뜻으로 ‘바다빛질·바다빛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어린이쉼터가 곁에 있는 ‘능동’ 안골목에 〈갤러리 사진적 + 식당 사사로운〉이 함께 있고, 디딤돌을 따라 윗칸으로 가면 〈문화온도 씨도씨〉가 있습니다. 서울이기에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일구는구나 싶습니다. 고흥처럼 작은 시골에서도 이렇게 여러 살림터가 오순도순 이웃하는 터전이 자라난다면 아름답겠지요.


  시골이 시골인 까닭은, 싱그럽게 흐르는 냇물이 있는 곁으로, 멧골이 숲을 품으면서 아늑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이 서울인 뜻은, 서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너른 벌판에 새길을 벌이면서 즐겁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모이거나 모으는 자리는 이제 걷어낼 때라고 느낍니다. 더 작게 조용히 모이고 만나는 자리로 바꿀 때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뽑기(선거)를 앞두고서 목소리를 내려는 이들은 ‘쉰 사람 넘게 모이는 자리’를 열지 않도록 틀을 잡을 노릇입니다. ‘구름떼(대중 동원)’는 사라져야 합니다. 우두머리 혼자 떠드는 구름떼가 아니라, ‘사람들 목소리를 하나하나 듣고 나누는’ 자리로 바꿔야지요.


  지킴이(경호원)는 한 사람만 두면 됩니다. 일할 사람이 일터에서 비질과 걸레질도 하고, 밥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몸소 걸어다니며 마을이웃을 마주하는 나라로 바꾸어야, 어느 쪽(정당)이 일꾼으로 서도 제자리를 잡으리라 봅니다.


  〈씨도씨〉 지기님이 읽고 나누는 그림책을 돌아보다가, 〈씨도씨〉 지기님이 여민 그림책을 살피다가, 시외버스를 타야 할 때에 맞추어 일어납니다. 쓰거나 그리거나 짓거나 엮거나 나누는 사람은 언제나 온힘을 다합니다. 다 꺼내어 빈털터리가 되도록 땀흘립니다. 모두 쏟아내면 새롭게 채울 이야기가 신나게 샘솟습니다.


ㅅㄴㄹ


《할머니 체조대회》(이제경, 문화온도 씨도씨, 2023.8.12.첫/2023.12.22.2벌)

《장거리전화》(셰리 도밍고/추영롱 옮김, 문화온도 씨도씨, 2023.11.22.)

#Ferngesprach #ShereeDomingo

《함마드와 올리브 할아버지》(한지혜·정이채, 문화온도 씨도씨, 2022.12.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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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승배기 책집 할아버지는

오늘도 잘 계실까?

어느새 닫았을까?

시골에서 살다 보니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다음에 서울에 갈 적에

꼭 찾아가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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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푸른책 세 가지 (2021.11.5.)

― 서울 장승배기 〈문화서점〉



  환하게 퍼지는 햇빛을 느끼면서 걷습니다. ‘당곡역’ 둘레 〈책이당〉에서 상도3동을 가로질러서 ‘장승배기역’까지 갑니다. 그리 멀잖으니 걷지만, 이쯤만 해도 다들 버스를 타는 듯싶습니다. 장승배기역 넷째 나들목 옆에는 오랜 헌책집 〈문화서점〉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던 1995∼2003년에는 이곳이며 〈책방 진호〉하고 〈대방 헌책방〉에 〈뿌리서점〉까지 나란히 곧잘 드나들었으나, 시골로 터전을 옮긴 뒤로는 좀처럼 찾아오지 못 했습니다.


  오랜 마을책집 앞에 서서 햇볕을 쬡니다. 어느새 할배가 된 〈문화서점〉 지기님은 드문드문 찾는 책손을 반가이 맞이합니다. 이곳을 처음 찾아온 1994년에도 쪽책집이었고, 오늘도 쪽책집입니다. 요즈음 새로 태어나는 여러 마을책집 가운데 이곳보다 작은 쪽책집은 아직 못 봤습니다.


  쪽책집인 “장승배기 문화서점”이라서, 손님이 책을 보려고 들어오면, 책집지기는 밖으로 나옵니다. 한 사람이 책을 보는데 다른 손님이 찾아오면, 먼저 온 책손은 밖으로 나와서 서성입니다. 먼저 와서 살핀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지요. 이러다가 나중 책손이 안에서 나오면, 먼저 온 책손은 다시 들어가서 둘러보고, 이렇게 서로 갈마들면서 띄엄띄엄 슬렁슬렁 천천히 책빛을 누리는 얼거리입니다.


  요사이는 거의 사라졌으나, 1995년 언저리나 2005년까지도 ‘쪽헌책집’이 나라 곳곳에 꽤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작은책집인데, 책을 더 많이 못 갖다 놓을 뿐 아니라, 이미 있는 책도 몇 겹으로 쌓지만, 쪽책집에는 알게 모르게 곳곳에 숨은 책이 있어요.


  엊그제 누가 “푸름이가 읽을 책을 골라 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셔서 꼭 세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아나스타시아 1∼10》(블라지미르 메그레)하고 《영리한 공주》(다이애나 콜즈)하고 《우리 마을 이야기》(오제 아키라)입니다. 셋은 결과 줄거리가 다르되 바탕은 모두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보금자리와 마을과 이 별을 짓는 길을 저마다 다르게 들려줍니다.


  살림하면서 쓰면 살림돈입니다. 살며 나누면 삶돈입니다. 사랑으로 일하고 펴면 사랑돈입니다. 혼자 쥐면 살림도 삶도 사랑도 아닙니다. 돌고돌아야 돈이라고 하는 뜻을 생각할 일입니다. 살림을 짓고 삶을 나누며 사랑을 심는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면서 두레를 이루기에 ‘돈다운 돈’이에요. 쪽책집에 “돈을 버는 책”은 없되, “삶을 읽는 책”은 있습니다. 작은책집에 “잘팔리는 책”은 없으나, “곁에 놓을 책”은 있습니다. 마을책집으로 걸어가는 마실길을 누립니다.


ㅅㄴㄹ


《將棋妙手풀이》(七段 이정석, 일신서적, 1975.7.15.)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바스콘셀로스/편집부 엮음, 글수레, 1988.4.30.)

《동·서문명과 자연과학》(김필년, 까치,1992.9.1.)

《중국 고적 발굴기》(陳舜臣/이용찬 옮김, 대원사, 1988.12.17.)

《중국 전통문화와 과학》(김영식 엮음, 창작사, 1986.8.25.)

《노동의 의미》(淸水正德/편집부 옮김, 한마당, 1983.10.10.첫/1988.4.1.중판)

《진정한 노동조합운동》(에일러/일꾼 자료실 옮김, 만민사, 1989.6.10.)

《농민층분해와 농민운동》(서울대 사회학과 사회발전연구회, 미래사, 1988.1.15.)

《노동자와 통일》(편집부 엮음, 나라사랑, 1988.9.25.)

《열린 글 15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와 헤게모니론》(권유철 엮음, 한울, 1984.10.15.)

《人間理解 第1輯》(김인자 외, 서강대학교생활상담실, 1979.6.8.)

《遺言詩》(비용/송면 옮김, 문학과지성사, 1980.12.25.)

《카뮈를 추억하며》(장 그르니에/이규현 옮김, 민음사, 1997.8.30.첫/2014.6.18.9벌)

《現代韓國新作全集 5 長詩·詩劇·敍事詩》(김종문·홍윤숙·신동엽, 을유문화사, 1967.12.25.첫/1971 .5.25.재판)

- 경성 중·고등학교 도서관

- 신동엽 〈금강〉

《이민별곡》(해동, 한강,2010.11.18.)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최성혁, 이웃, 1991.9.10.)

《구로아리랑》(이문열, 문학과지성사, 1987.12.1.첫/1993.1.25.18벌)

《韓國人의 價値觀 硏究》(김태길, 문음사, 1982.7.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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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당'은 이제 닫았습니다.

새터로 옮겨서 새로 열 수 있으나

아직 새로 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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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노래를 품고서 (2021.11.5.)

― 서울 〈책이당〉



  지난밤에 신림동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서울 어느 곳이 안 시끄럽겠습니까만, ‘별빛거리’란 이름이 붙은 언저리는 술에 전 사람들이 새벽까지 떠드는 소리가 우렁찹니다. 허울은 ‘별빛거리’라지만, 속으로는 ‘술노닥질’입니다. 저야 하룻밤 머물다 떠나지만 이 둘레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괴롭겠어요. 밤새 술을 푸는 사람이 아닌, 늘 이곳에서 지낼 마을사람한테는 밤에 별을 보러 나오기조차 꺼릴 만할 텐데, ‘술집거리’에 뜬금없는 이름을 붙인 마음이 얄궂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을빛을 헤아리면서 새벽에 노래를 한 자락 적습니다. 동틀녘까지 질러대는 소리를 귓가로 흘리면서 〈책이당, 책 이는 당나귀〉라는 마을책집한테 건넬 열여섯 줄을 여밉니다.


책을 이면 안 무겁느냐 / 묻는 그대한테 / 별빛을 이면 무겁느냐 / 넌지시 되묻는다 // 책을 펴며 뭐가 즐겁느냐 / 궁금한 너한테 / 날개를 펴면 안 즐겁느냐 / 가만히 속삭인다 // 책을 써서 돈이 되느냐 / 따지는 분한테 / 사랑을 돈으로 쓸 수 있느냐 / 조용히 대꾸한다 // 나귀 등잔에 나비가 앉아 / 나긋나긋 날갯춤이다 / 나는 나풀나풀 빛살을 / 나즈막이 나누어 누린다 (책 이는 당나귀 : ㅅㄴㄹ 2021.11.5.)


  술을 마시고픈 어른이라면 곁에 아이를 둘 노릇입니다. 아이 곁에서 아이가 지켜볼 만한 몸짓과 말짓을 참답게 하는지 스스로 돌아볼 줄 알아야 비로소 ‘술 한 모금’ 누릴 어른입니다. 아이들이 도무지 못 봐줄 몰골이나 꼬락서니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얼른 술을 떼거나 멀리할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은 별빛을 품고서 태어납니다. 별빛을 잊은 사람은 새카맣게 마음이 타버리지만, 별빛을 늘 그리는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눈부십니다. 모든 책은 나무를 품고서 태어납니다. 나무빛을 헤아리는 줄거리를 담은 책이라면 아름다운데, 나무빛하고 등진 채 돈·힘·이름에 사로잡힌 책이라면 안쓰럽습니다.


  잘 팔리거나 많이 읽혀야 할 책이 아닙니다. 끝없이 되읽으며 사랑을 되새기고 이 삶을 사랑으로 짓는 살림길을 아름다이 생각하는 밑거름이어야 할 책입니다.


  마음으로 오가면, 마음에 닿는 실 한 올로 이야기가 즐거이 흐릅니다. 마음을 잊거나 닫은 채 마주하면, 서로 아무런 실이 닿지 않으니 겉도는 말만 고이다가 어느새 덧없이 스러집니다. 모든 책이 나무노래를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사라진 색깔》(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아킨 두자킨 그림/정철우 옮김, 분홍고래, 2019.7.10.)

《곁책》(숲노래 밑틀·최종규 글, 스토리닷, 2021.7.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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