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2.28.


《우리말은 서럽다》

김수업 글, 나라말, 2009.8.3.



  비가 시원하게 온다. 들이붓고 퍼붓고 쏟아붓는다. 문득 돌아보니 겨우내 눈이나 비가 드물었다. 무척 고마운 비가 거세게 내린다. 빗줄기를 보며 우체국마실을 이튿날로 미룰까 생각하다가 그냥 가기로 한다. 달력을 안 보고 사니까 날씨도 안 보고 살자는 생각이다. 마침 비가 오니 반바지에 맨발 고무신으로 우산 받고 가면 되겠지. 비가 드센 탓인지 시골버스에 손님이 나까지 둘. 읍내에서도 어린이랑 푸름이 몇을 빼고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적다. 읍내로 나오는 길에, 볼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우리말은 서럽다》를 읽는다. 글쓴이 김수업 님이 책이름으로 “우리말은 서럽다” 하고 붙인 뜻을 잘 알 만하다. 국립국어원에서 내는 사전도 엉망이고,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말을 말답게 가르치는 얼거리가 없다. 대학교라 해서 나아지지 않는다. 사회에서도 말넋을 가꾸는 길이 흐리멍덩하다. 2009년을 지나 2018년 요즈음은 어떨까? 글쓰기 책이 쏟아지고 글쓰기에 마음 두는 분이 많은데, 이제는 한국말이 새롭게 살아나는 길을 열면서, 이웃나라하고 온갖 말을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꽃피우는 말살림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우리말은 즐겁다”는 생각으로 말꽃을 피우고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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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7.


《꼬마 철학자 소라와 플라톤 1》

타나카노카 글·그림, 대원씨아이, 2013.5.15.



  면소재지 철물점에 연모를 장만하러 갔다가 김치에다가 감귤에다가 쑥떡에다가 김까지 얻었다. 철물점에 아직 학생인 아이가 둘 있구나 싶어서, 더없이 고마운 마음에 내가 쓴 사전하고 책을 여러 권 챙겨서 드렸다. 월요일에 받은 김을 화요일에 우체국에 가서 음성 할머니하고 일산 할머니한테 부치려고 생각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하루 쉬고 수요일에 부치자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낸다. 밥을 차려 놓고서 두 아이는 부엌에서, 나는 평상에 앉아서 먹는다. 머잖아 아이들도 “우리도 평상에서 해바라기 하며 먹을래요.” 하고 따라나오리라 본다. 밥그릇을 비운 뒤에는 만화책 《꼬마 철학자 소라와 플라톤》 첫째 권을 편다. 이 만화책이 처음 나온 해에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잊고 지나쳤다. 어른, 아이, 거북, 이렇게 셋이 입과 마음으로 나누는 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는다.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기운이 흐르는 만화책이지 싶다. 세 사람은 서로 기대기도 하고 스스로 서려고 하기도 하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한다. 우리도 이와 같으리라. 때로는 넘어질 수 있고, 씩씩하게 일어서거나 그냥 자빠질 수 있다. 어떠하든 다 좋다. 내가 너를 바라보고, 네가 나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노래가 싹튼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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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6.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

황혜주 글, 행성비, 2017.12.22.



  대학교수이면서 흙집짓기를 가르치는 분이 쓴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조금씩 읽는다. 집살림을 가꾸는 길을 걷는 이라면 수수하게 말할 텐데, 대학교수 자리에 있으면 자꾸 겉치레 어려운 말씨가 된다. 이 책에는 ‘흙집 짓는 길’보다는 ‘왜 흙집인가?’를 밝히는 글이 거의 다 차지한다. 한참 읽으며 생각하니, ‘흙집 짓는 솜씨’는 그리 어렵잖이 누구나 배울 수 있어도 ‘흙집을 어떻게 지어 어떻게 살 생각인가’라는 대목은 뜻밖에도 거의 헤아리지 않을는지 모른다. 글쓴이 스스로 이 대목을 털어놓는다. 흙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살피려는 분이 처음에는 거의 없단다. 전기무자위가 말썽인지 보일러가 말썽인지 아리송하나, 보일러가 물을 방바닥에 돌리도록 하는 부품이 망가진 듯해서 이 녀석을 떼어 자전거를 몰아 면소재지 철물점에 간다. 수도공사를 하는 집은 전화를 걸어도 늘 시큰둥. 자전거로 면소재지를 두 차례 오간 끝에 새 부품을 단다. 보일러 물관에 찬 흙물을 뺀다. 이제 전기무자위가 조용히 잘 돌아간다. 면소재지 철물점 아지매가 주신 신김치로 곁님이 김치국수를 삶았다. 등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누워 돌아본다.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나오듯이 우리 집 안쪽 벽에 흙을 발라 볼까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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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5.


《입술을 열면》

김현 글, 창비, 2018.2.10.



  빨래터 물이끼를 걷어내는 날. 아이들은 아침부터 날이 덥다며 시원한 바다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조잘조잘. 반바지 차림으로 물이끼를 걷는 아버지 곁에서 바짓단을 걷어올리고 함께 물이끼를 걷는 두 아이는 이제 놀이를 넘어 어엿한 일꾼이로구나 싶다. 두 아이가 기운차게 거들어 빨래터 치우기를 일찍 마친다. 담벼락에 셋이 걸터앉아 발을 말린다. 시집 《입술을 열면》을 편다. 김현 시인이 두 가지 책을 나란히 냈기에 어느 책을 고를까 하다가 시집으로 골랐는데, 반 즈음 읽는 동안 무슨 소리인지 거의 못 알아듣겠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노래한다. 시집을 덮고 집으로 가서 밥을 짓는다. 잘 먹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서 누리신문에 오른 글을 살피니 이녁이 시를 왜 이렇게 썼는가를 어림할 만한데, 문득 궁금하다. 고은 시집을 많이 낸 출판사는 바로 창비. 이 창비에서 시집을 낸 김현 시인. 고은 시인도 창비 출판사도 딱히 말이 없다. 오랫동안 글마을 막짓이나 막말을 한복판에서 지켜본 창비 출판사일 텐데, 한 손으로는 고은으로 장사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김현으로 장사하는 셈일까. 오늘날 한국에서 글이란 책이란 글마을이란 책마을이란 무엇일까. 시골마을이나 숲마을이나 노래마을 이웃 가슴을 적실 입술은 언제 열 수 있을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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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4.


《명탐정 코난 1》

아오야마 고쇼 글·그림/이희정 옮김, 서울문화사, 1996.12.20.



  둘레에서 읽거나 좋아하는 분이 많은 《명탐정 코난》이지만 나는 아직 한 권도 안 들여다보았다. 오늘 비로소 첫째 권을 처음으로 펴 본다. 먼저 간기를 살피는데, 일본에서 1994년 한국에서 1996년에 나왔네. 아, 1996년 12월 20일 1쇄라. 이때는 내가 군대에서 비무장지대에서 비로소 벗어나 도솔산 대우선점이라는 외딴섬 같은 중대에 있다가 강원도로 들어왔다는 잠수함 때문에 매복이며 24시간 경계근무를 섰지. 아주 죽어났다. 1996년은, 또 1997년은, 이해에 나온 책을 거의 하나도 모른다. 이 만화책이 바로 이무렵에 나왔으니 나하고 참으로 동떨어졌구나. 첫째 권에 이어 둘째 권까지 읽는데, 줄거리에 군살이 적다. 그림결도 군더더기가 적으니 무척 쉽고 재미있게 볼 만하지 싶다. 널리 사랑받을 만한 까닭을 하나하나 느낀다. 옮김말도 썩 좋다. 아주 훌륭한 옮김말은 아니지만 이만 하면 어디인가. 낮에는 처마 밑 평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만화책을 읽었다. 뒤꼍에 쑥이 조물조물 올라온다. 이레쯤 있으면 올해 첫쑥을 뜯어서 쑥지짐이를 하고 쑥국도 끓이겠네 싶다. 어제그제 잇달아 낮무지개를 보았으나 오늘은 못 본다. 그래도 하늘이며 구름이며 참으로 곱다. 저녁에는 별빛도 곱다. 아름다운 삼월이 거의 다 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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