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51 | 452 | 453 | 4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오늘 읽기 2018.2.18.


《신통방통 도깨비》

서정오 글, 보리, 1999.2.10.



  일요일이 저문다. 설날이 지나간다. 면소재지나 읍내쯤 나갈 적에는 긴바지를 입지만, 집에서는 늘 반바지를 입을 뿐 아니라, 오늘부터는 웃옷마저 한 벌만 반소매로 걸친다. 참으로 따뜻하구나. 겨울에만 쓰던 ‘포근하다’라는 말도 이제는 떠나보낼 때로구나 싶다. 큰아이가 옛이야기를 좋아하기에 《신통방통 도깨비》를 들춘다. 이 책을 오랜만에 집는다. 1998년 8월에 보리출판사에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갔고, 이 옛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읽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에는 몰랐는데 큰아이하고 이 책을 읽으려고 펼치니 ‘구수하다는 입말’ 사이사이 얄궂은 말씨나 좀 어려운 한자말이 보인다. 스무 해 앞서는 이 대목을 몰랐네. 스무 해 지난 오늘에는 이 대목이 환히 보이네. 옛이야기를 입으로 들려주는 말씨로 잘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옛이야기를 들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출 수 있어야 하고, 되도록 더 쉽고 맑은 말씨가 되도록 손볼 수 있어야지 싶다.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이야기이다. 더 사랑을 쏟아 더 손보고 추스를 이야기이다. 책이란, 말이란, 글이란, 삶이란, 사랑이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따사로운 봄볕이란 달력에 적힌 숫자가 아닌, 시나브로 젖어들며 피어나는 고운 숨결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2.17.


《바람의 지문》

조문환 글, 펄북스, 2016.12.22.



  어느 책이든 ‘바람’이라는 말을 쓰면 으레 눈이 간다. 시집도 만화책도 사진책도 수필책도, 참말 ‘바람’ 한 마디에 눈길이 쏠린다. 왜 이렇게 바람에 눈이 갈까? 왜 이다지 바람이 마음에 들까? 나는 바람에서 왔을까? 저 먼먼 별누리에서 바람 같은 빛줄기를 타고서 이 별에 닿았을까? 수십억 해에 이르는 나날을 바람을 타는 작은 먼짓조각으로 살다가 어느새 사람이라는 몸을 입었기 때문일까? 경상도 작은 시골인 악양면에서 면지기 일을 한다는 조문환 님이 쓴 시집 《바람의 지문》을 읽으며 사뭇 놀란다. 사진책을 두 권 내놓기도 한 조문환 님인데 ‘면지기’ 일을 하셨네! 시골 면지기로서 사진을 찍고 시를 쓰셨네! 어쩜 이리 멋스러울까. 시골자락을 사랑하는 손길이 바람이 되어 사진으로 태어나고 시로 흐르리라 느낀다. 시집을 읽으니 슬쩍 멋을 부리려는 대목이 엿보이는데, 멋부림을 좀 누그러뜨리신다면, 시골스럽게, 그저 시골스럽게 참말로 시골 티를 물씬 내면서 시를 써 보신다면 악양뿐 아니라 하동을 넘고 경상도를 지나 이 땅뿐 아니라 온누리 골골샅샅에 봄바람을 일으키는 상냥한 노래가 될 만하지 싶다. 바람을 바라보며 바람을 그릴 수 있을 적에 시가 태어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2.16.


《거짓말풀이 수사학 1》

미야코 리츠 글·그림/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2016.1.25.



  어느새 여섯째 권까지 나온 《거짓말풀이 수사학》을 장만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첫째 권부터 읽기로 한다. 번역 말씨나 일본 한자말을 거르지 못한 대목은 몹시 거슬리지만 이야기는 재미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내는 떨림을 읽을 줄 아는 아이는, 이와 마찬가지로 참말을 하는 사람이 드러내는 따스한 숨결을 읽을 줄 안다. 그렇다. 거짓말을 알기에 참말을 알고, 참말을 아니 거짓말을 안다. 따스한 마음으로 어우러지기를 바라기에 거짓이 아닌 즐거운 참길을 걷고 싶다. 우리가 거짓말을 읽을 줄 모른다면 참말도 읽을 줄 모른다는 뜻이지 싶다. 우리가 참말을 할 줄 모른다면 거짓말에 길들었다는 소리이지 싶다. 속 깊이 서로 헤아리면서 아끼는가에 따라 어떤 말이 흘러나올는지 사뭇 다르다. 속을 살피지 않으면서 그저 내뱉는 말이라면 참말도 참것도 없는 껍데기이기 일쑤이다. 설날이 조용하다. 금요일 밤에 ‘윤식당’을 볼 수 있나 했더니 안 했다고 하네. 이 풀그림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기도 하지만, 오직 연기자 한길만 걷던 이들이 맨 밑바닥부터 부딪히며 밥을 지어 손님을 맞이하는, 어쩌면 ‘또 다른 연기’일 수 있는,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몸짓으로 흘리는 땀방울이 살뜰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2.15.


《내일의 노래》

고은 글, 창작과비평사, 1992.4.25.



  이튿날이 설인 듯하다. 아니 이튿날이 설일 테지. 오늘은 무척 푹하구나 싶어 아침부터 방문을 열어젖힌다. 어제는 처음으로 평상에 앉아서 포근한 볕살을 누리며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오늘은 한결 포근해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저녁에 해가 진 뒤에는 살짝 쌀쌀하지만 좋다. 작은아이는 우리 뒤꼍에 봄꽃이 폈다며 빙그레 웃는다. 저녁이 되니 그동안 캄캄하던 마을이 온통 불빛잔치이다. 올해에도 불꽃을 터뜨릴 서울아이가 있으려나. 책숲집에 가서 《내일의 노래》를 챙긴다. 1992년에 나온 고은 시집을 읽어 본다. 책끝에 송기숙 소설가가 고은 시인하고 얽힌 이야기를 적고, 고은 시인 스스로 니나노집 사람들하고 술자리를 마주한 이야기를 적는다. 그래, 그무렵에는 그들 몸짓도 술자리도 술짓도 ‘객기·기행’ 따위로 얼버무렸지. 허벌난 술짓을 벌인 뒤에는 ‘술김’이라는 말로 덮어버렸지. 이러면서도 한 가지를 느낀다. 고은이라는 이는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술에 절어 살면서도 용케 글을 썼네. 그러나 송기숙 소설가가 책끝에 적었듯이 이들은 술에 절어 사느라 ‘강의·강연’에서 해롱거리기 일쑤였단다. 그러고 보니, 2008년이던가 2009년에 신경림 시인이 술에 절어 해롱해롱 지분거리는 강의를 구경한 적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2.14.


《재일의 틈새에서》

김시종 글/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12.29.



  설을 앞두고 읍내에 과일을 사러 다녀온다. 설 언저리에는 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가 매우 한갓지다. 그러나 읍내에는 자동차물결로 엄청나다. 더구나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마저 넘친다. 설 언저리에는 그동안 서울이며 큰도시에 살던 사람이 시골로 몽땅 찾아드니 찻길에는 자동차로, 거님길에는 사람으로 물결이 친다. 시골버스도, 짐차도, 서울서 온 자가용도 찻길에서 꼼짝을 못한다. 나는 《재일의 틈새에서》라는 살짝 도톰한 책을 챙겼다. 잘 챙겼지 싶다. 뜻밖에 길에서 오래 보내야 했으니.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나날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일본말이나 조선말을 어떻게 배웠는가를 낱낱이 밝힌다. 훌륭한 역사 이야기이지 싶다. 그런데 대학교수인 옮긴이는 ‘번역 아닌 토씨 바꾸기’만 했구나 싶어서, 재일 지식인이나 한국 지식인이 어떤 ‘일본 말씨·번역 말씨’를 쓰는가를 엿볼 수 있다. 긴 나날에 걸쳐 쓴 글을 묶다 보니 똑같은 줄거리가 자꾸 나온다. 똑같은 줄거리라면 덜어내어 부피를 줄여도 되었지 싶다. 옮김말도 엮음새도 아쉽다. 책이 퍽 무겁다. 우리가 돌아볼 무게는 ‘재일·남북녘·역사·갈라섬·제국주의·독재·따돌림·가르침’일 테지. 시골버스에 앉아서 읽어도 책무게 탓에 손목이 저리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51 | 452 | 453 | 4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