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2.23.


《황야의 헌책방》

모리오카 요시유키 글/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1.25.



  고흥읍에서 청정고흥연대 모임이 있다. 청정고흥연대에서는 벌써 백서른 날이 넘도록 고흥군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다. 고흥군수가 숱한 반대를 무릅쓰면서 ‘경비행기 시험비행장 유치’를 한다면서 170억 원이 넘는 돈을 썼고, 앞으로 돈을 더 퍼부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가 온나라에서 거의 밑바닥인데 그동안 쓴 돈이며 앞으로 쓸 돈이란 무엇일까. 이만 한 돈이면 농약이나 비닐 없이 참말 깨끗한 시골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폈으리라.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 《황야의 헌책방》을 읽는다. 어제부터 읽는데 이야기가 쏙쏙 들어온다. 옮김말은 매우 어설프다. 일본 영어를 무늬만 한글로 옮긴 대목이 너무 많다. 글쓴이는 책을 좋아하고 책방이며 골목마실을 무척 즐기지 싶다. 지나온 발자국하고 맞물려 지나갈 발자국을 여러모로 사랑하지 싶다. 오래된 책으로 배우되 새로운 길을 걷고픈 꿈을 품으면서 살아가지 싶다. 3월 끝자락에 일본 간다 ‘책거리’로 이야기꽃을 펴려 마실을 하는데, 그때 ‘모리오카 책방’도 찾아갈 수 있으려나. 글쓴이가 일했던 곳이며 걸었던 길이며 드나든 책방 모습이 낱낱이 그림이 되어 머리에서 흐른다. 앞으로 한 달 뒤, 이 그림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구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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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2.


《승냥이 구의 부끄러운 비밀》

기무라 유이치 글·미야니시 다쓰야 그림/양선하 옮김, 효리원, 2009.10.15.



  아이들은 어버이 마음을 언제 읽을까? 어버이는 아이 마음을 언제 읽을까? 언제나처럼 밥을 짓고 빨래를 한다. 날마다 아이들하고 살을 맞댄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내 목소리를 들려준다. 우리는 예전에 서로 어떤 이음줄이 있었기에 오늘 이렇게 어버이하고 아이 사이로 하루를 누릴까? 그림책 《승냥이 구의 부끄러운 비밀》을 읽는다. 어미 잃은 새끼 승냥이를 암족제비가 건사해서 돌봤단다. 어린 승냥이는 어릴 적에는 어버이가 그저 족제비인 줄 알았으나 차츰 크는 동안 동무 승냥이한테서 놀림을 받았단다. 저만 어버이가 족제비였기 때문이란다. 어릴 적부터 길러 준 어버이는 승냥이한테 부끄러울까? 동무들이 놀려대는 소리에 스스로 마음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에 부끄러울까? 아이가 어버이 마음을 못 읽는 그림책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풀개구리 옛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미 개구리가 하는 말은 꼬박꼬박 거꾸로 하던 풀개구리 옛이야기. 아직 철이 없기에 어버이가 곁을 떠나 혼자 남은 뒤에라야 깨달을까. 아직 철이 없어도 어버이가 곁에 있을 적에 깨닫기란 그렇게 어려울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잃고 나서야 깨닫는지 모른다. 성추행·성폭력을 일삼은 문단·예술 권력자를 보라. 그들은 아직도 철이 없지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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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1.


《클레오파트라의 꿈》

온다 리쿠 글/박정임 옮김, 너머, 2017.12.20.



  겉절이를 할 배추를 사러, 우체국에 들러 책숲집 지음이 이웃님한테 책을 부치러, 읍내마실을 간다. 작은아이는 기꺼이 따라나선다. 읍내 놀이터에서 땀을 빼고 짐돌이가 되어 준다. 배고 고프다는 작은아이를 이끌고 읍내 국수집에 들르는데, 이곳에서 내주는 모든 밥이며 국물이 맵다. 너무한다. 매운양념은 스스로 따로 넣도록 하면 되지 않나. 그러나 ‘배고프다는 핑계’로 오늘도 꾸역꾸역 먹었다. 엉터리로 나오는 밥은 밥값을 밥상에 올려놓고 그냥 나오기로 했으나, 막상 이렇게 못하네. 마음만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오늘은 소설책 《클레오파트라의 꿈》을 챙겨서 나왔다. 소설책을 읽을 적에는 몹시 망설인다. 나하고는 매우 안 맞는 얼거리라고 느낀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의 꿈》을 읽다가, 가시내랑 사내마다 결이 다르다는 일본말 이야기에 자꾸 눈이 간다. 그렇구나. 일본말은 성별에 따라 쓰는 말씨가 다르구나. 가만히 보면 한국도 이와 같지 싶다. 얼핏 들으면 한국에서는 가시내랑 사내가 똑같은 결로 말하는 듯 여길 수 있으나, 곰곰이 따지면 서로 다르다. 외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을 들으면 이 대목이 또렷하다. 하긴. 어린이하고 어른도 말결이 다르고, 서울하고 시골도 말결이 다른데, 모든 사람이 다 다를 테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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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0.


《드론》

조성준 사진, 눈빛, 2015.7.20.



  고흥군은 경비행기 시험장을 끌어들이려고 백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한다. 경비행기 시험장을 짓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이런 이야기는 언론을 타지 않는다. 어째서 그러한지는 알 길이 없다. 조용하고 깨끗한 시골자락에 비행장 아닌 비행시험장을 들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꼬막이며 김이며 미역이며 바닷물고기이며 날마다 나라 곳곳으로 숱하게 실어나르는 남녘 바닷가를 더럽히는 막개발이 자꾸 들어서면, 이곳 작은 시골뿐 아니라 서울이며 부산 같은 큰도시한테도 좋을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고흥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드론 고등학교’로 바꾸기까지 했다. 오늘날 드론이란 적은 돈과 품으로도 멋진 모습을 찍어 주는 사진벗이라 할 만하니 무척 고맙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경비행기뿐 아니라 드론 시험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가도 헤아려 보아야지 싶다. 이러다 보니 사진책 《드론》을 펴는 마음이 무겁다. 작은아이는 이 사진책에 나오는 모습이 멋지다며 좋아하는데, 하늘에서 찍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홀가분하게 반길 만할까?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터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이 어떻게 고단한가를 서울사람은 얼마나 알까? 설 언저리에 경비행기가 고흥 어느 하늘을 한동안 나는데, 마당에서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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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9.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글, 문학과지성사, 2004.8.27.



  스텐 우묵판을 사려고 순천으로 마실을 간다. 두 아이도 가방을 꾸려 함께 길을 나선다. ‘우묵판’은 큰아이랑 이야기를 하며 얻은 이름이다. ‘웍’을 큰아이하고 살펴보며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면 좋을까?” 하고 물으니, “음, 깊은 프라이팬?” 한다. ‘프라이팬’은 ‘부침판’이나 ‘지짐판’으로 고쳐쓰니 ‘웍’이라면 ‘우묵부침판·우묵지짐판’이라 해 볼 만하려나. 아무튼 셋이서 시외버스를 타며 노래를 함께 듣는다. 두 아이가 좋아하는 ‘R.I.O. serenade’를 자꾸자꾸 듣는데 세 차례쯤 들을 무렵 노랫말에 살짝 귀에 스민다. 그동안 숱하게 들으며 노랫말을 좀처럼 못 알아챘는데 이제 조금 트이지 싶다. 귀가 즐거우니 눈도 즐거워서, 《채소의 신》을 오늘 끝내고 시집 《사라진 손바닥》을 읽는다. 《채소의 신》은 매우 엉성한 번역 말씨가 아니라면 참으로 훌륭한 밥책이지 싶다. 우리 몸을 “하느님이 깃든 거룩한 곳”이라고 말하며 멋지게 맺는다. 맛책이자 멋책을 마치고 나서 읽는 《사라진 손바닥》은 심심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심심한 시집이 외려 수수한 맛으로 즐거울 만하지 싶다. 거룩한 척 떠벌이거나 떠받들린 En시인을 떠올려 보자. 시마을에는 거룩한 이가 아닌 수수한 이가 있을 노릇이라고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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