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4.6.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

요시오카 노보루 글·니시 슈쿠 그림/문방울 옮김, SEEDPAPER, 2018.3.12.



  사라지는 말이 많다. 쓰는 사람이 줄어드니 사라지고, 쓰던 사람이 도시로 떠나니 사라진다. 가만히 보면 한국말에서도 꽤 많은 낱말이 사라졌다. 시골을 떠난 사람이 대단히 많을 뿐 아니라, 손수 살림을 짓는 길에서 멀어지니 말이 나란히 사라진다. 말이 사라질 적에는 말만 사라지지 않는다. 말을 담아낸 살림이 함께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경상말이나 전라말도 가만히 보면 높낮이하고 밀당만 살짝 남을 뿐, 낱말은 빠르게 사라진다. 고장마다 제 터전에 바탕을 두는 삶이 사라진다는 뜻이겠지.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은 이 지구라는 별에서 곧 사라질 말하고 머잖아 사라질 듯한 말이 어디에 있으며, 그 말 가운데 한 마디를 뽑아서 들려준다. 자,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이다. 한국말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갈까? 한국말이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만하다고 한다면, 무늬나 껍데기만 남은 한국말일까, 알맹이가 야무진 한국말일까? 한글로 적기만 한대서 한국말일 수 없다. 우리다운 살림을 짓는 길에 우리다운 넋을 그릴 때에 비로소 한국말이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면서 숲이 사라진다. 숲짐승 한 마리가 사라지면서 이 땅이 아프다. 말 한 마디가 사라지면서 생각 한 줌이 떠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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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4.5.


《브레드위너 1》

데보라 엘리스/권혁정 옮김, 나무처럼, 2017.9.15.



  영화 〈브레드위너〉를 보았다. 얼결에 보았는데, 이 영화에 앞서 소설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예전 판은 일찌감치 끊어졌고, 영화에 맞추어 새로 나왔다고 하네. 모두 네 권으로 썼다는 어린이문학을 한꺼번에 장만한다. 이러다가 일본마실을 다녀와야 해서 한동안 잊었는데, 비도 오고 아이들하고 글씨쓰기 놀이를 하며 띄엄띄엄 읽다가 어느새 끝까지 읽어낸다. 글쓴이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깊이 알았을까?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써냈을까? 어쩌면 아프가니스탄은 아직 이런 삶에 얽매여 매우 괴로운 나날이 안 끊어졌을는지 모른다. 총칼을 앞세운 사내는 새로운 권력자 허수아비가 되어 작은 권력자 노릇을 하는 바보짓에서 헤어나올 줄 모르는 수렁일 수 있다. 총칼하고 폭탄으로 무너뜨리는 곳에서 이 권력자이든 저 권력자이든 무엇을 누리며 즐거울까? 총칼을 앞세운 권력자는 다른 총칼에 짓밟히기 마련 아닌가? 집안을 이끄는 열한 살 가시내는 아버지가 늘 들려준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면서 씩씩할 뿐 아니라 슬기롭고 상냥한 어른이 되기를 꿈꾸려 한다. 이 길에 이 가시내 같은 또래가 수두룩하고, 저마다 새로운 나라를 평화롭고 평등하게 짓기를 꿈꾼다. 가시내가 사내 구실까지 맡으니, 사내들이란 참말 뭔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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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8-04-08 12:01   좋아요 0 | URL
즐겁게 누려 주셔요.
책방 풀무질도,
책방 일기를 적은 책도
널리 사랑받으면 좋겠어요 ^^
 

오늘 읽기 2018.4.4.


《실수왕 도시오》

이와이 도시오 글·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17.4.10.



  무엇을 해도 고꾸라질 수 있다. 애써 해 보지만 엉망이 될 수 있다. 아주 천천히 글씨를 그리려 하지만 영 삐뚤빼뚤 날림이 될 수 있다. 밥을 지었다 하면 태우거나 설익을 수 있고, 바느질을 할라치면 손가락만 찌를 수 있다. 길을 걸었다 하면 넘어지거나 부딪히기 일쑤요, 들고 가던 짐을 흘리거나 쏟을 수 있다. 이런 아이가 있으며, 이런 어른이 있다. 그림책 《실수왕 도시오》는 어릴 적부터 잘못투성이로 자랐다고 하는 그린이 어린 모습을 담아낸 책이다. 그린이는 누나들한테서 늘 ‘실수왕’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어쩌면 ‘실수왕’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느라 더 큰 잘못투성이가 되었을는지 모른다. 잘하거나 잘하지 못하거나 따지지 않는다면, 잘 먹고 잘 놀고 잘 웃고 잘 울고 잘 자고 잘 큰다고 하는 대목을 눈여겨볼 수 있다면, 어쩌다 잘못하거나 자주 엎어지더라도 부드러이 받아넘길 만하지 싶다. 넘어져도 일어서서 걷는 아기는, 서서 걷는 기쁨을 알기 때문에 넘어져도 울지 않는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도 ‘자라는 기쁨’이며 ‘스스로 부딪히고 다시 하는 기쁨’을 마주하면서 씩씩하게 삶길을 걸을 테지. 그리고 어릴 적 늘 헤매던 몸짓이 있었기에 오늘날 아이들한테 기운을 북돋울 그림책을 그렸을 테고.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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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4.3.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글, 스토리닷, 2018.4.15.



  어제 아침에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나리타로 갔고, 열두 시 사십오 분에 비행기를 탔으며, 낮에 부산에 닿아 경전철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읍에 닿았다. 늦은 저녁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열 시가 가깝다. 이튿날 저잣마실을 할까 싶었으나 살짝 일을 하고 자리에 누우니 다섯 시가 되도록 다리에 힘이 안 붙는다. 누워서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를 읽는다. 1인출판을 하는 아주머니 이웃님이 쓴 책으로, ‘글쓰기’를 넘어 ‘책쓰기’로 나아가고 싶은 분들한테 나긋나긋하고 즐거운 벗님다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야흐로 글쓰기를 넘어 책쓰기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써서 나무를 종이로 바꾸어 우리 곁에 둘 만할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된다. 전문 지식을 그러모으는 책이 아닌, 삶을 새롭게 가꾸어 아이들이 두고두고 물려받을 수 있는 이야기꽃인 책을 쓸 수 있다. 어떻게 첫머리를 열까, 어떻게 줄거리를 엮을까,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 어떻게 새 이웃님한테 책을 널리 알리고 함께 누릴까, 같은 이야기를 쉽게 밝힌다. 그렇다. 참말로 쉬운 책쓰기이다. 쉽기에 즐겁고, 즐겁기에 고우며, 곱기에 알뜰하고, 알뜰하기에 사랑스레 챗짓기라는 길을 걸을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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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4.2.


《책방 풀무질》

은종복 글, 한티재, 2018.4.1.



  서울 ‘인문사회과학책집’ 풀무질이 서른세 돌을 맞이한다고 한다. 서른세 해째 지키는 책집에서, 스물다섯 해째 책집지기로 일하는 은종복 님이 세 권째 책을 써낸다. 오늘 4월 2일 〈풀무질〉에서 조촐히 책잔치를 연다고 한다. 《책방 풀무질》이 빛나도록 도움벗이 되고 싶어서 그동안 〈풀무질〉을 다니며 찍은 사진을 몽땅 책집지기한테 드렸고, 이 사진을 즐겁게 써서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도록 꾸몄다고 한다. 나는 오늘 일본 도쿄에서 한국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15시에 내렸다. 사상 버스역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알아보니 빈자리가 없네. 짐이 많아도 ‘풀무질 책잔치’에 가 보려 했으나, 버스표가 동났으면 어쩔 수 없다. 마음으로 풀무질을 기려야지. 작으면서 큰 책집이 서른세 돌을 지나 삼백서른 돌을 맞도록 마을 한켠에서 책빛을 흩뿌릴 수 있기를 빈다. 오늘 비행기에서 풀무질 책집지기한테 드리려고 쓴 동시가 있다. 곧 손전화 쪽글로 보내려 한다. 한 손에는 호미, 다른 한 손에는 연필을 쥐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라를 맑고 밝게 꿈꾸는 책집지기 곁에 든든한 마을이웃이랑 책벗이랑 삶벗이 즐겁고 넉넉히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빈다. 책과 책집과 마을을 사랑하는 이웃님 손에 《책방 풀무질》이 있기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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