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4.21.


《ぼおるぺん 古事記 1 天の卷》

 こうの史代(코노 후미요) 글·그림, 平凡社, 2011.5.25.



말을 알 수 있으면 더 많이 보고 배운다. 말을 알 수 없으면 코앞에서 보더라도 못 느끼거나 못 배우기 일쑤이다. 삶이나 살림은 말이랑 함께 보고 들으면서 배운다. 말이 없이는 삶하고 살림을 못 보거나 못 들으면서 못 배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익혀서 어떤 삶하고 살림을 찬찬히 익힐 적에 즐거울까? 《ぼおるぺん 古事記 1 天の卷》을 읽는다. 아니, 한자하고 히라가나를 살피고, 그림을 훑으며, 둘째 권하고 셋째 권도 이렇게 돌아본다. 이 책이 그림 아닌 글만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거의 모를 텐데, 그림이 있기에 어렴풋이 어림한다. 그러나 글을 낱낱이 짚지 않으면 그림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결 깊거나 넓게 받아먹을 수 없다. 일본 학자 倉石武四郞(구라이시 다케시로) 님이 쓴 《한자의 운명》이 1974년에 한국말로 나온 적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권력자가 일부러 어려운 글을 내세워 사람들을 억누르고, 이 글힘으로 새로운 생각을 가로막았구나 하고 느꼈다. 하늘이란 뭘까? 하늘을 읽는 책이란 뭘까? 하늘을 누가 어떻게 읽어 말이나 글로 어떻게 아로새길 만할까? 하늘을 ‘하늘’이라 하지 않고 온갖 한자를 끌어들일 적에 우리 생각은 얼마나 하늘로 뻗을 만할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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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4.20.


《방언의 발견》

정승철 글, 창비, 2018.3.30.



사투리를 이야기하는 책이 나오니 반갑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사투리’를 이야기하지는 않네. ‘방언’을 다루는구나. 《방언의 발견》에서 여러 옛책을 바탕으로 ‘방언’이란 중국한자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밝히기도 하는데, ‘방언’은 한국사람 스스로 쓰던 말이 아니다. 고장말을 억누르거나 얕보면서 태어났다. ‘사투리’란 말이 어엿이 있는데 왜 이 말을 안 쓸까? ‘고장말·마을말’이라 해도 되며, ‘텃말’이라 할 수 있는데, 왜 안 쓸까? 글쓴이는 책·신문·방송·영화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사투리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밝히기에, 사투리를 널리 받아들여 엮는 잡지인 〈전라도닷컴〉이라든지, 이 잡지에서 꾀하는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라든지 다루려나 싶어 찬찬히 읽는데, 한 줄로도 도움책으로도 건드리지 않는다. 살아숨쉬는 전라말로 192호(2018.4.)가 되도록 사투리 북돋우기를 하는 잡지를 놓치고서 사투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놓치는 책이나 자료가 있을 수 있다지만 빈틈이 많다. 일제강점기하고 독재정권이 힘으로 억눌러 사투리를 몰아내려 했다는 고갱이를 뒷받침할 자료로 《방언의 발견》을 채우느라, 오늘 이곳에서 즐겁고 야물딱지게 고장말로 고장 이야기를 다루는 손길을 못 볼 수 있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http://jeonlado.com/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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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4.19.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양이》

로이드 알렉산더 글/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1999.3.15.



  아이하고 짓는 살림을 생각해 본다. 늘 생각하고 거듭 돌아본다. 아이를 가르치는 하루가 아니라, 아이랑 나란히 배우는 하루를 살핀다. 내가 아이한테 가르칠 수 있는 한 가지는 “너희 어머니 아버지도 늘 스스로 새롭게 배우려고 해” 하는 한 마디가 아닐까. 가르치고 돌보는 어버이가 아닌, 늘 새로 배우면서 이 삶길을 즐거이 걷는 어버이가 아닐까. 이를 날마다 새롭게 깨달으면서 기쁘게 웃음짓는 살림이 될 적에 비로소 우리 집을 ‘보금자리’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양이》에 고양이가 나온다. 아침에 우리 집 들고양이가 나한테 쥐 한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 아플 적에 돌봐 준 줄 떠올리는 듯하다. 날마다 밥을 주는 줄 아는 듯하다. 우리 집 들고양이한테 속삭였다. “고마워. 마음을 받을게. 쥐는 네가 먹으렴. 쥐 맛있지 않니?” 1분쯤 뒤, 우리 집 들고양이는 나한테 준 쥐를 도로 가져갔다. 먹었구나 싶다. 낮에는 뒤꼍에서 쥐잡이를 하며 논다. 동화책에 나오는 고양이는 사람으로 어느 날 바뀌어 뭇사람을 부대끼면서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길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삶을 짓고 연다. 스스로 한다. 늘 그렇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살림하고 스스로 사랑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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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4.18.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

오치 다이스케 글·그림/노인향 옮김, 자연과생태, 2018.4.23.



  아직 일본에서 나오지도 않은 책이 한국에서 먼저 나온다면? 으레 일본에서 널리 팔린 책이 한국에서 나오곤 하는데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는 이런 틀을 확 깬다. 흙짓기를 하면서 틈틈이 그림그리기를 즐기는 일본 젊은이가 수수하게 적바림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갈래 이야기가 고이 흐른다. 하나는 그림을 그리며 배운 이야기, 다른 하나는 흙을 지으며 배운 이야기.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마음을 돌아보고, 흙을 지으면서 스스로 몸을 헤아린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이웃을 새로 바라보고, 흙을 지으면서 어느새 내 삶을 새로 느낀다. 아이들하고 순천마실을 다녀오는 시외버스에서 이 책에 사로잡힌다. 시외버스에서 퍼지는 할머니들 수다도, 시외버스 일꾼이 틀어 놓은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도, 내 귀에 꽂아서 들으려던 노래도, 책에 사로잡혀 하나도 안 들렸다. 마지막 쪽을 덮고서야 비로소 여러 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가만히 보면 그렇다. 우리는 여러 일을 함께 하면서 살아가면서 즐겁다. 나로 본다면, 아이들을 돌보고, 곁님을 지켜보고, 사전을 짓고, 책숲집을 가꾸고, 살림을 건사하고, 흙을 밟으며 풀을 만지고, 하늘숨을 쉬면서 바람맛을 읽고, 이 여러 가지를 아우르며 기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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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4.17.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

나승위 글, 파피에, 2015.12.28.



  스웨덴에서 살며 스웨덴이 어떤 나라인가를 몸으로 부대끼려고 한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저녁에 읍내마실을 하며 읽는다. 읍내 가는 길에는 아직 밝다. 저녁 여섯 시 오십 분 시골버스를 탔는데. 저녁버스를 타면 시골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다. 매우 조용하고 호젓하다. 읍내도 무척 조용하다. 도시에서 시골 군청이나 학교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모두 빠져나갔으니. 가만히 보면 한국에서도 시골은 저녁 예닐곱 시 즈음이면 웬만한 가게는 문을 닫는다.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를 읽으면서 닐스가 거위 등을 타고 가로지른 스웨덴 곳곳을 어제하고 오늘에 맞추어 어떤 삶을 느꼈는가를 새삼스레 헤아린다. 한국에서도 닐스처럼 이 땅 구석구석을 거위 등을 타고 하늘을 누비며 새로 돌아보는 이야기를 누가 써 볼 만할까? 또는 개미 등을 타고 느릿느릿 온나라를 누비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 테고, 제비 등을 타고 온나라를 누비는 이야기도 재미있으리라. 그런데 글쓴이는 스웨덴에서 ‘걷는다’기보다 ‘자동차를 몰고’ 다녔다. 다만 글쓴이한테 자동차는 닐스한테 거위였을 테고, 닐스가 두 발로 스웨덴 곳곳을 느꼈듯 글쓴이도 아이들하고 곁님이랑 스웨덴에서 새로운 모습을 구석구석 배웠구나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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