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5.6.


《3월의 라이온 6》

우미노 치카 글·그림/서현아 옮김, 시리얼, 2011.6.10.



여섯 해 만에 《3월의 라이온》 여섯째 권을 집는다. 다섯째 권까지 읽고는 이제 그만 읽을까 싶었다. 지난 여섯 해를 돌아보면 아이들하고 걸어온 길에 ‘책을 차츰 줄이자’는 생각이었다. 줄이고 줄여도 아직 책이 참 많은데, 여섯째 권을 쥐고 나니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 …… 잇달아 손에 쥔다. 웬 만화책을 이렇게 한꺼번에 잔뜩 읽어치우는지. 만화로 이야기를 담는 이웃님한테서 어떤 눈썰미나 마음길을 배우려고 만화책을 꾸준히 읽을까? 《3월의 라이온》에 나오는 사람들은 장기판을 둘러싸든, 수수한 살림집에서 길을 찾든, 이 언저리에서 제 넋을 잃으면서 헤매든, 다들 한 가지를 바라본다. 어디로 가야 좋을는지 뚜렷하게 잡아채지는 못하더라도 어디로든 가려고 하는 눈으로 삶길을 바라본다. 때로는 힘있게 제길을 바라보면서 잡아채려 하고, 때로는 뚜렷하게 보았다 싶은 길에서 멍하니 주저앉는다. 때로는 시샘을 하고, 때로는 괴롭히며, 때로는 바보짓을 한다. 서로 착하게 살면 좋으련만 좀처럼 착한 마음을 안 찾는 사람은 무슨 생각인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그러나 착함이란 밖에서 오지 않는다. 착한 마음은 휘둘리지 않는다. 고요히, 고이, 마음자리 거울을 바라보면서 앞길로 한 걸음씩 내딛으려 하면 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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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5.


《치이는 조금 모자라》

아베 토모미 글·그림/정은서 옮김, 박하, 2018.4.30.



우리 식구는 모두 어린이. 모두 하루를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니 어린이. 네 사람 모두 아장걸음 걷듯이 살림을 배우는 길에 서니 늘 어린이. 우리는 언제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려나 하고 헤아려 보는데, 어쩌면 앞으로도 내내 어린이로 살는지 모른다. 스스로 어린이인 줄 똑똑히 느끼면서 만화책 《치이는 조금 모자라》를 읽는다. 이 만화를 읽으며 ‘치이만이 아니라 이 만화를 읽는 나야말로 좀 모자란 사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니, 좀 모자라지 않고 제법 모자랄 수 있다. 크게 모자란 사람일 수도 있을 테고. 모자란 줄 느낀다면 배울 테고, 모자란 줄 못 느낀다면 못 배울 테지. 모자란 줄 알기에 앞으로는 넉넉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길을 찾아서 배우려 한다. 그나저나 이 만화책은 제법 도톰하기는 한데 어영부영 끝나 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둘째 권이 있지는 않은 듯한데, 한창 이야기를 펴다가 뚝 끊어졌다. 모자란 치이하고, 이 모자란 치이 곁에서 오랫동안 동무로 지낸 두 아이가 ‘우리는 앞으로도 모자란 채 오래오래 동무로 지내자’ 하고 얘기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이렇게 마무리를 지어도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뭔가 말하려다가 아무 말을 못 하고 얼렁뚱땅 마감을 넘긴 만화 같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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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4.


《해와 그녀의 꽃들》

루피 카우르 글/신현림 옮김, 박하, 2018.4.26.



  미국 아마존에서 수백만 권 팔린 시집이라고 아예 딱지로 박은 《해와 그녀의 꽃들》을 읽는다. 이런 딱지를 끌어들여야 이 시집을 널리 팔 만할는지 모를 노릇이나, 시가 훌륭하거나 아름답다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사랑받겠지. 시를 쓴 분이 참 고달프게 하루하루 살았네 싶다. 때로는 벼랑에 굴러떨어지는 마음이요, 때로는 벼랑끝에서도 씩씩한 몸짓이다. 글쓴이는 벼랑에서도 굴러떨어져 보고, 벼랑끝에서도 견디어 보았기에, 또 굴러떨어진 벼랑길을 기어오르기도 해 본 터라, 사람들 마음을 잔잔히 건드리는 이야기를 길어올렸을 수 있다. 벼랑끝에 놓인 삶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앞날이 달라진다. 다만, 옮김말이 퍽 아쉽다. 번역이란 뭘까? 시를 옮기는 일이란 뭘까? 우리는 한글로 적힌 영어 시를 읽는가? 번역 말씨로 휩싸인 글을 읽는가? 줄거리를 읽으면 되나? 한글로 옮기는 영어 시를 ‘영어 가락’에 맞추어 글잣수나 말마디를 나누면 될까? 겉모습이 한글이라 해도 ‘한국말로 읽는 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요새는 한국말이나 한국 말씨나 말결이나 말길을 제대로 배우거나 꾸준히 살피는 이가 매우 드물지 싶다. 내 눈에는 너무 엉성한 번역 말씨이지만, 이 번역 말씨가 오늘날 한국말일는지 모르겠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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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3.


《모야시몬 1》

이시카와 마사유키 글·그림/김완 옮김, 학산문화사, 2015.4.25.



만화책 《모야시몬》 첫째 권을 말 그대로 ‘뭐야?’ 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두 달 넘게 책꽂이에 얌전히 두고 잊다가 낮에 쉬려고 가만히 누워서 펴는데 뜻밖에 무척 재미있다. 하늘에 떠다니는 세균을 맨눈으로 볼 줄 아이들은 세균하고 사이좋게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세균마다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하고, 세균이 하는 놀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어떤 몸인가를 읽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이는 만화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일 테지만, 참말로 세균이나 여러 가지를 맨눈으로 보는 사람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 안 밝히면서 살아가겠지. 《모야시몬》에 나오는 아이가 어릴 적에 둘레에서 들은 꾸지람이나 따돌림을 돌아본다면, ‘여느 사람이 못 보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늘 보는 사람’은 외롭기 마련이다. 나는 이 만화책에서 ‘읽는 마음’하고 ‘읽으며 사이좋게 어울리는 몸짓’이 반갑다. 그리고 첫째 권에서 일본사람이 홍어를 먹으며 내뱉는 말이 참 훌륭하다. 어쩜 이렇게 잘 그릴 수 있을까? 삭힌 홍어를 먹은 느낌을 이렇게 잘 짚어서 들려줄 수 있다니. 쉬려고 누워서 읽다가 어느새 가만히 앉아서 마지막 쪽까지 넘긴다. 곧 다음 권을 장만해서 뒷이야기에 빠져들어야겠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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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2.


《조선 영화의 길》

나운규 글, 가갸날, 2018.4.20.



말린 담배잎을 장만하러 읍내로 나간다.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나선다. 나는 《조선 영화의 길》을 챙겨서 시골버스를 탄다. 낮 두 시 버스를 탔기 때문인지 이웃 면소재지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많이 탄다. 읍내에서도 길에 아이들이 많다. 나운규 님이 남긴 글하고 말을 모두 책 하나로 꾸렸다고 하는데 얼마 안 된다. 영화를 찍느라 일이 많으셨을 테니 글이나 말을 남기기 수월하지 않았으리라. 얼추 백 해쯤 묵은 글이라 할 텐데 오늘날 읽어도 그리 낯설지 않다. 함경도 사투리로 영화를 찍으려 했으나 함경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이 많을 듯해서 어쩔 수 없이 서울말을 썼다는데, 이렇게 하고 보니 ‘함경도를 바탕으로 영화를 찍는 맛’을 살리지 못해 섭섭하다고 밝히기도 한다. 문득 〈지슬〉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제주말로 영화를 찍어 서울말로 글씨를 붙였다고 하는 영화. 고장마다 말이 다르면서 삶이 다르고, 살림이 다르면서 말이 다른데, 어느덧 고장말은 제 빛이나 결을 잃는다. 그나저나 일제강점기에 영화를 찍기 너무 어렵고 고달팠다는 이야기를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으며 한숨이 폭 나온다. 오늘 우리 삶터는 어떠할까? 오늘 우리는 할 말을 얼마나 홀가분하게 펼 만할까? 옛날만 한 가위질은 없는 오늘날 어떤 영화가 흐르는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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