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5.21.


《만화가 시작된다》

이노우에 타케히코·이토 히로미 이야기/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9.10.25.



걷다가 넘어졌기에 다시 안 일어난다면 이제는 걸을 수 없다. 걷다가 넘어졌더라도 ‘넘어졌다’는 생각이 아닌 ‘걷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면 새롭게 걸을 수 있다. 만화책 아닌 이야기책 《만화가 시작된다》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재미있다. 만화 하나를 그리려고 이렇게 생각을 짜고, 밑그림을 엮으며, 꿈을 빚는구나. 그나저나 이노우에 타케히코 님하고 데즈카 오사무 님하고 살며시 이어졌다는 대목이 놀랍다. 먼 앞날을 바라보는 눈이란, 앞으로 그릴 새로운 만화를 읽은 눈이란, 오늘 이곳에서 씩씩하게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숨결한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밑힘이 되어 주는구나. 한국말로 나온 지 열 해 만에 손에 쥐는데, 지난 열 해 동안 이 책이 눈에 안 들어왔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여는 자리, 첫걸음을 떼는 자리, 처음으로 신나게 그림꽃을 피우는 자리, 이러면서 보람을 깨닫고 한껏 뛰어오르는 자리를 하나하나 생각한다. 한 자루를 얻은 대나무싹을 두 아이하고 손질하는데, 둘 다 처음에는 힘들다 하더니, 아버지가 보여주고 저희 나름대로 자꾸 해 보더니 어느새 일을 마쳤다. 다 마친 뒤에는 더 손질할 대나무싹이 없나 살피네. 아무 양념을 하지 않고 삶아서 식힌 채로도 맛나다. 살림길을 느긋이 열면서 나아간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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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20.


《쑥쑥》

로리 켈러 글·그림, 모 윌렘스 기획/이순영 옮김, 북극곰, 2018.5.19.



쑥쑥 자라는 아이, 쑥쑥 크는 풀, 쑥쑥 샘솟는 웃음, 쑥쑥 돋아나는 따사로운 사랑. 어버이는 즐거이 가꾸는 살림을 생각한다. 풀밭은 뭇목숨이 어우러지면서 사이좋게 노래가 피어난다.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할 적에 웃음을 터뜨리며 놀지. 그림책 《쑥쑥》을 천천히 읽는다. 풀밭에서 여러 풀이 나란히 자라면서 서로 한 마디씩 한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모습이지만 누가 누가 더 큰가 하고 얘기하다가 이 풀이 쑤욱, 저 풀이 쑤욱 하고 자란다. 누가 더 큰지 따지지 않아도 다들 한껏 자랄 테지. 그리고 모든 풀은 저마다 다른 빛깔이며 모습이라서,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예쁘다. 더구나 풀깎기가 슥 밀고 지나가면서 그만 애써 자란 줄기가 잘리더라도 앞으로 새로 자랄 줄기를 그리면서 더욱 씩씩할 수 있다. 삶이란 참 그렇다. 때로는 넘어지거나 쓰러질 수 있으나 꿋꿋하게 기운을 내어 일어난다. 제아무리 고되거나 벅찬 날이었어도 밤새 달게 잠들면서 아침에 새롭게 어깨를 펴고 일어난다. 단출하면서 싱그러운 풀동무가 나오는 그림책을 덮고서 생각해 본다.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리는 이야기꽃인데, 어른한테도 더없이 따뜻하며 힘이 된다. 우리 어른도 날마다 마음이며 몸이 쑥쑥 크면서 함께 씩씩해야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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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19.


《눈치 보는 넙치》

 강기원 글·손지희 그림, 한겨레아이들, 2018.4.24.



전국에서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은 고흥군은 2018년에 ‘새로운 군청 건물’을 엄청난 돈을 들여 커다랗게 세웠다. 사람이 줄어 머잖아 사라질 지자체 가운데 뒤에서 2등을 차지한 고흥군은 어린이·푸름이가 제 고장을 사랑하도록 북돋우는 행정이 없고, 공무원 숫자만 늘어난다. 이런 고흥에서 군수나 교육지원청장이나 군의원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리송하다. 교육도 문화도 복지도 농업도 무슨 정책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 6월 선거를 앞두고 군수 후보·군의원 도의원 후보한테 교육 정책 제안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후보들은 중앙정부에서 돈을 타야 한다는 소리 말고는 하는 얘기가 없다. 시골 군의원 도의원 후보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는 자리를 다녀오는 길에 동시집 《눈치 보는 넙치》를 읽었다. 동식물 이름에서 재미난 말놀이를 길어올리는 동시가 나쁘지는 않구나 싶지만, 그리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름으로 엮는 말놀이보다는, 동식물하고 함께 짓거나 살피는 흙살림·집살림을 다룬다거나, 어린이가 뭇 동식물하고 이웃이 되어 보금자리하고 마을을 가꾸는 길을 밝히면, 저절로 말꽃이 피고 이야기도 될 만하지 싶다. 정치나 교육 정책뿐 아니라 어른문학 어린이문학도 말잔치만 너무 짙지 싶다. 속알맹이는 어디에 있을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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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18.


《루드비히 B.》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조민경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7.10.12



익살맞으면서 아름답고, 아프면서 사랑스러우며, 기쁘면서 슬픈, 사람이 서로 짓는 삶을 만화로 찬찬히 담는 데즈카 오사무 님 《루드비히 B.》를 읽는다. 한국말로 옮긴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를 읽을 수 있으니 고마우면서 반갑다. 더구나 이 만화책은 데즈카 오사무 님이 숨을 거두기 앞서까지 붓을 놓지 않은 작품이요,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라고 한다. 베토벤이라는 사람하고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구나 싶어 놀란다. 두 권으로 안 나누고 한 권으로 두툼히 엮은 판짜임에 더 놀란다. 처음에는 두툼해서 성가셨으나 이야기에 사로잡히면서 두께를 잊었다. 끝맺지 못한 작품인 터라 외려 두툼하게 한 권으로 묶어서 더 나았구나 싶기도 하다. 《루드비히 B.》를 읽으며, 《피아노의 숲》이나 《노다메 칸타빌레》가 이르지 못한 길을, 또 두 작품이 데즈카 오사무 님한테서 배운 길을, 이러면서 앞으로 새로운 베토벤이나 데즈카 오사무 같은 아름다운 노래가, 만화가, 이야기가, 글이, 사진이, 흙짓기가, 배움살림이, 또 정치나 경제나 모든 살뜰한 꿈이 피어나면 참 좋겠네 하고 생각한다. 5월 18일, 한국 현대사에 아픈 생채기가 새겨진 이날, 앞으로 이날에 기쁜 꽃이 피어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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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17.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조영주 글, 파사주, 2018.4.20.



한국에서 만화비평을 쓴다는 이들은 하나같이 ‘순정만화’를 깎아내리거나 아예 만화 역사로 안 치기 일쑤이다. 이를 진작부터 알아서 나 스스로 만화비평을 새롭게 쓰자고 생각하며 살았다. 2018년이나 2019년에 내 나름대로 누린 ‘만화읽기’를 책으로 여미려고 하는데, 마침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이 새로 나왔대서 아주 반가웠다. 이런 책을 쓴 이웃님이 있구나! 머리말에 적은 얘기는 내 생각하고 같다. 그러나 이분도 하나를 놓친다. 순정만화는 ‘가시내만 읽지 않’는다. 순정만화이고 명랑만화이고 무슨무슨 만화이고 떠나서 ‘이야기 흐르는 만화’를 사랑하는 이는 만화 갈래를 따지지 않는다. 글쓴이가 이 책에서 다루는 웬만한 작가하고 작품은 다 읽었다. 글쓴이가 밝히듯이 한국 만화잡지가 거의 모조리 무너질 무렵부터는 ‘읽을 만화책’이 나란히 사라져서 슬펐고, 나는 웹툰은 안 보는 터라, 누리그물로 옮긴 분들 작품은 모른다. ‘남자 만화비평가’는 죽어도 안 쓸 듯한 책을 써낸 글쓴이가 고맙다. 한 줄 두 줄 읽는 내내 예전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아름다운 만화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만 모든 순정만화가를 못 담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누구보다 ‘강유선’ 님 이름이 빠져서 서운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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