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9.5.


“넌 어디에서 태어났니?” 하고 물으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병원이요’나 ‘산부인과요’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요? 또는 ‘서울이요’나 ‘부산이요’ 같은 말을 할 테고요. 그런데 우리는 병원이나 서울에서만 태어나지 않아요. 우리가 어머니 몸을 거쳐서 이 땅에 나온 자리가 병원이나 서울일 수 있지만, 우리 숨결이나 넋을 이루는 바탕은 언제나 숲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목숨을 이으려고 먹는 밥도 모두 숲에서 비롯하고요. 그림책 《내가 태어난 숲》을 가만히 읽습니다. 바느질이 한 땀 두 땀 흐르면서 이야기가 한 꼭지 두 꼭지 어우러집니다. 붓끝을 넘어 바늘끝으로 이야기꽃이 피어요. 그림책은 투박하게 흐릅니다. 할머니가 찬찬히 놓은 바늘땀은 조용하면서 싱그러운 웃음입니다.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웃음을 새롭게 피우려는 손길은 상냥한 노래입니다. 가을비가 옵니다. 잔잔하게 옵니다. 이 가을비를 맞으면서 마당에서 무화과를 두 소쿠리 땁니다. 말벌도 모기도 파리도 개미도 나비도 무화과 달콤한 열매맛을 보려고 모두 모입니다. 직박구리도 박새도 물까치도 무화과 달달한 열매맛을 보고 싶어 옆에서 저를 지켜봅니다. 그래 그래, 우리 같이 먹자.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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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9.4.


15시 55분에 고속버스역에 닿는다. 당산역에서 9호선을 갈아탔는데 내가 탄 전철은 느리게 가는 듯했다. 이 전철은 자꾸 서더니 한참 동안 기다린다. 빠른 전철이 먼저 지나가야 한다면서 이 역에서 몇 분, 저 역에서 몇 분을 쉰다. 이러다 보니 고속버스역에 생각보다 많이 늦게 닿는다. 16시에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탈 줄 알았는데, 표를 끊는 데에 들어서니 16시 1분. 1분이 늦어 버스를 놓친다.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숨을 돌린다. 17시 30분 버스를 타기로 한다. 고흥으로 가는 막버스이다. 이 막버스를 타면 고흥읍에서 택시를 불러야 한다. 빈 걸상을 찾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서 쪽잠에 들기도 하고, 무릎셈틀을 꺼내어 글을 쓰기도 하다가, 만화책 《신 이야기》를 읽는다. 고다 요시이에 님이 빚은 이 만화는 퍽 재미있다. 하느님이라고 하는 넋이 지구나 우주를 왜 지었고, 지구가 왜 값어치가 있고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면서 따사롭게 들려준다. 좋네. 이야기도 줄거리도 좋네. 살짝 우스개를 곁들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람다이 살아가며 어깨동무하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잘 밝혀 주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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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9.4.


서울 공덕역 언저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가만히 그린다. 어제 만난 이웃님을 떠올리고, 오늘 만날 이웃님을 생각한다. 서울에서 볼일을 잘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합정우체국에 들러서 새로 나온 내 책을 몇 곳에 부친다. 고흥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두 아이한테 엽서를 한 장씩 적어서 부친다. 우체국 앞 빨간 우체통에 엽서를 넣는다. 집에 한 권 장만해 두었으나 뜻밖에 품절인지 절판이 되고 만 그림책 《시간 상자》가 있다. 제법 사랑받는 그림책인데 왜 품절이나 절판이 될까? 합정역 앞에 있는 알라딘 매장에 들렀다가 이 그림책을 만난다. 여러 권 건사할 만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해서 또 장만한다. 한 권은 집에 두고, 한 권은 책숲집에 두면 좋겠지. 《시간 상자》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온누리 아이들이 꿈을 그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즐거움을 찬찬히 보여준다. 사람인 아이들이 나오고, 별나라 아이들이 나오며, 바닷속 ‘새끼 물고기’도 나온다. 모두 어리면서 여리고 아리따운 숨결이다. 이 모든 어린 숨결은 사진기를 주고받으면서 새롭게 웃음을 짓는다. 앞으로 마실길에 이 그림책을 또 만난다면 그때에도 더 장만하려 한다. 나중에 세 권째 장만해서 새삼스레 읽는다면, 그때에는 그때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겠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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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9.3.


고흥읍으로 나와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수를 지날 무렵까지 일요일인 줄 몰랐다. 시외버스가 싱싱 달리다가 전라북도를 지나 충청남도로 접어들려고 하니 찻길에 자동차가 제법 많다. 때로는 시외버스가 느리게 달리기도 한다. 이 길에 웬 차가 이리 많나 하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바로 일요일, 그러니까 금요일이나 토요일을 맞이해서 서울을 빠져나간 분들이 서울로 돌아가는 때이다. 길이 막힐 만한 때에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구나. 나는 참말 요일도 모르고 사네. 서울에 닿으니 새삼스럽도록 많은 자동차와 사람을 스친다. 그냥 길에서도 전철에서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묻히거나 밀리면서 이리저리 휩쓸린다. 이 또한 새삼스럽지만 참 많은 분들이 이렇게 사람물결에 늘 휩쓸리면서 이곳에서 사는구나. 전철에서 시집 《박정희 시대》를 읽는다. 전문 시인이라기보다 반도체 빚는 일을 하는 기술자로 살아온 분이 지난 ‘박정희 유신’이 어떠했는가 하고 돌아보는 이야기를 썼다. 때로는 재미있다가, 때로는 너무 문학스럽게 어려운 말을 섞어서 알쏭달쏭하다. 서울대 화공과 선배라는 이가 화학물질이 얼마나 몸에 나쁜가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수수한 싯말로 적바림하듯이, 글쓴이가 부대낀 박정희 유신독재를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투박하며 조금 더 자그맣게 목소리를 옮기면 한결 나았을 텐데 싶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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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9.3.


인문잡지 《퀘스천》이 첫 돌을 맞이한다. 오늘 서울 한글전각갤러리에서 조촐히 잔치를 마련한다고 한다. 겨레말큰사전위원회 누리잡지에 처음 쓴 뒤 《퀘스천》으로 자리를 옮겨서 쓰던 글이 있다. 남·북녘 국어사전에서 엉성하거나 잘못 풀이한 말뜻을 바로잡는 글인데, 이 글을 묶어서 며칠 앞서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돌림풀이와 겹말풀이 다듬기》라는 책으로 나왔다. 기쁜 잔치에 한몫 보태려는 마음으로 ‘읽는 우리말 사전’ 첫째 권을 챙겨서 길을 나선다. 아침에 무화과를 따서 함께 챙긴다. 서울 사는 이웃님한테 시골맛(고흥맛)을 살짝 나누어 주려 한다. 시외버스에서 도시락을 먹고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읽는다. 올 2월에 나온 책인데 나는 이제서야 장만해서 읽는다. 어제 순천마실을 하며 장만했다. 그런데 어제 순천에서 두 군데 책방을 찾아갔는데. 처음 들른 책방에서 이 책을 장만하고 다음 책방에 가니, 딱 며칠 앞서 ‘새로 그린 그림을 넣은 큼지막한 판짜임’인 책이 나와서 잘 보이는 자리에 있네. 그림이 훨씬 시원한 책으로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앞서 들른 책방에서 작은 책을 벌써 샀으니 하는 수 없는 노릇. 고흥을 벗어난 시외버스가 벌교를 지나 오수에 이르도록 읽는다. 그림마다 마을가게를 비롯해서 나무하고 꽃이 곱게 어우러진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분은 마을가게를 그렸다고 밝히지만, 막상 마을가게치고 나무나 꽃이 없이 덩그러니 있는 곳은 드물지 싶다. 도시 한복판 마을가게조차 크고작은 나무나 꽃이 으레 나란히 있다. 가게도 사람도 나무요 꽃이다. 나무도 꽃도 사람 곁에서 싱그러이 피어나며 자란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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