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77. 스스로 찾기



‘졸업장 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인데, 아이만 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두 어버이도 ‘우리 집 학교’를 함께 다닌다. 둘레에서는 이를 늘 제대로 모른다. 아이들만 배우지 않는다. 어버이도 늘 함께 배운다. 모든 배움터에서는 학생하고 교사가 함께 배우는 사이, 서로 배움벗이다. 이웃이 우리한테 “집에서 어떻게 가르치나요?” 하고 물으면 우리는 “우리 집 학교에서 가장 크게 삼는 대목은, 스스로 배울 길은 스스로 찾기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스스로 찾아나서고 찾아내어, 이를 어떻게 배워야 할는지도 스스로 찾도록 하려고 합니다.” 하고 이야기한다. 매우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무엇을 배울는지’를 스스로 찾느냐고 궁금해 하곤 하시는데, 언제나 스스로 찾아내기 마련이다. 기다리면서 두고보면 된다. 지켜보면서 모든 살림을 함께 이야기해 보면 된다. 우리는 졸업장 학교에 길들면서 ‘스스로 찾기’하고 ‘스스로 배우기’를 잃거나 잊는다. 이러다 보니 ‘한국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조차도 스스로 찾지 않고 배우지 않기 일쑤라, 한국말을 잘 모르거나 제대로 모르는 한국사람이 너무 많다. 어릴 적부터 집이나 마을이나 졸업장 학교 모든 곳에서 거의 하루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생각한 적이 없는 탓이겠지. 모든 배움터는 ‘스스로 찾아서 배우는 길’을 스스로 배우도록 이끌어야 참다운 노릇을 하리라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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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76. 겉말이랑 속짓



겉으로 드러나는 말에 움찔할 수 있다. 겉으로 무슨 말을 하든 속에 흐르는 말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몸짓에 놀랄 수 있다. 겉으로 어떤 몸짓을 하든 속에 흐르는 생각에 마음을 쓸 수 있다. 겉말을 듣고 겉훑기로 가르칠 수 있고, 속말을 들으며 속살림을 가르칠 수 있다. 겉짓을 보고 겉핥기로 가르칠 수 있으며, 속짓을 보며 속사랑을 가르칠 수 있다. 어느 쪽으로든 나아가기 마련이니, 어버이로서 늘 두 갈래 가운데 한쪽을 슬기롭게 고르자고 생각한다. 서두르지 말자고, 차분히 듣고 보면서 어우르자고 생각한다. 겉말이나 겉짓에 따라 움직인다면 아이하고 맞서는 어버이가 되지 싶다. 속말이나 속짓을 살피며 손을 잡을 적에는 함께 누리면서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되지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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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75. 윽박지르는 학교



여덟 살 아이를 제도권학교에 안 보내고 ‘우리 집 학교’에 보내는 도시 이웃님이 있다. 이분은 서류를 쓰느라 학교를 드나들면서 매우 힘들다고 한다. 제도권학교에서는 집에서 배우는 아이를 ‘안 배운다’고 여길 뿐 아니라 ‘학교를 안 다닌다’고 여기고, 더 나아가 ‘사회 관계와 또래 친구’를 어찌하겠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단다. 이런 말을 묻는 이를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생각이 얕은지 쉽게 알 만하다. 아이들이 졸업장 받는 학교를 다니건 안 다니건 또래라면 서로 아끼도록 가르쳐야 올바를 테지? 졸업장 받는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참답고 슬기롭게 배운다면 ‘우리 집 학교’를 다니는 또래벗을 수수하게 맞이하면서 사이좋게 어울리는 마음이 되겠지? 제도권학교에서는 졸업장을 손사래치는 어른하고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셈일까? 무엇보다 제도권학교는 폭력하고 따돌림하고 성적지상주의하고 입시지옥이 드세다. 이런 말썽거리를 여태 하나도 제대로 안 풀면서 ‘우리 집 학교’를 다니는 야무지고 씩씩한 아이랑 어버이한테 왜 윽박질을 일삼을까? 제도권학교가 숲을 가꾸면서 살림짓기를 누구나 손수 하도록 가르치는 슬기롭고 아름다우면서 착한 배움터라면 어느 어버이가 이곳을 마다 하겠는가를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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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74. 아픈 뜻



작은아이가 먼저 감기로 며칠 앓고, 큰아이가 엊그제부터 감기로 끙끙 앓는다. 앓는 두 아이인데 어제는 발포 바닷가로 마실을 다녀왔다. 아프기 앞서부터 바다로 마실가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래저래 일이 많이 여태 못 갔다. 물에는 안 들어가고 모래밭을 밟으며 물결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놀았는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큰아이는 조금 더 앓는다. 두 아이를 바라보며 얘기한다. “너희들은 왜 아픈 줄 아니?” “음, 크으려고?” 이제 왜 아픈 줄 살짝 알지 싶다. “그러면 이 아픔을 씻어내려면 무엇을 그려야 할까?” “안 아프기?” “아니야. 안 아프기를 그리면 머잖아 다시 아파. 아픈 까닭은 우리가 낡은 몸을 이룬 세포를 모두 떨쳐내고 오롯이 새로운 세포로 거듭나서 튼튼한 몸을 맞이할 날이 되었기 때문이야. ‘안 아프기’ 아닌 ‘눈부시게 튼튼하기’를 그리렴. 눈부시게 튼튼해서 바람도 햇볕도 마음껏 받아들이면서 너희 하고픈 놀이도 신나게 하고 새로운 배움길도 걸을 수 있도록 해 보자. 튼튼한 마음에 튼튼한 말에 튼튼한 몸을 그리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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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73. 새롭게 들려주기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 읽어 주던 날은 끝났다. 끝이라 했지만 아예 안 읽어 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 읽어 주기를 좋아한다. 저희가 재미나게 읽은 책을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가지고 와서 종알종알 웃음띤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다. 곁님은 며칠 앞서부터 《아나스타시아》를 첫걸음부터 다시 읽기로 한다. 처음에는 혼자 읽다가 이 책을 아이들한테 읽어 주기로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블라지미르 메그레가 어리석게 내뱉는 말씨는 걸러내고서 네 사람이 우리 배움집에서 새로 바라볼 대목을 조곤조곤 부드러이 읽는다. 며칠째 곁님 목소리를 듣다가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아쉽거나 얄궂은 번역 말씨라든지, 글흐름에 잘 안 맞는 대목을 몽땅 손질해서 종이에 뽑아 보자고. 어버이가 목소리로 새롭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좋고, 아이 스스로 찬찬히 새기며 거듭 읽도록 해 보자고 생각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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