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실험



  국민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합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이니 1980년대 첫무렵입니다. 몇 년 몇 월 몇 일인지까지 떠오르지 않으나,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과학실험이면 언제나 이와 같았습니다. 어떠했느냐 하면, 과학실이라는 데에 가서 과학실험을 하는데, 맨 처음에는 교사가 ‘그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켜보면서 결과를 적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실험 규칙과 차례에 맞추어서 하나하나 하되, 내 마음대로 지켜봅니다. 교과서대로 지켜보지 않고, 교과서는 모르는 채 아주 홀가분하게 지켜봅니다.


  과학실험을 마치고 나서, 그러니까 과학실험을 하는 내내 지켜본 결과를 모두 꼼꼼하게 적지요. 이렇게 적은 뒤 교사한테 보여주면 “뭐야? 이 터무니없는 숫자는?” 하면서 벼락처럼 소리를 지릅니다. 나만 이런 숫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죄 터무니없다는 숫자를 적었다고 교사가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실에서 커다란 몽둥이로 실컷 두들겨맞습니다.


  교사는 맨 처음에 우리한테 말했지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도록 하지 말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켜보고 나서, 이렇게 나온 결과를 적으라’ 하고 말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마음대로’ 실험을 했고, ‘마음대로’ 결과가 나왔으며, 우리가 한 결과에서 나오는 숫자는 모두 달랐습니다. 모든 아이가 그야말로 모두 다른 숫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서너 아이는 ‘교과서에 나온 실험결과 숫자’가 나옵니다. 이때 아주 크게 놀랐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실험결과 숫자를 적은 아이는 교사한테서 칭찬을 받으면서 ‘한 대도 안 맞’습니다. 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아이들은 엉덩이가 시뻘개지도록 커다란 몽둥이로 맞고, ‘아이 짜증 나. 과학실험 참말 싫어. 과학실 싫어.’ 하고 말합니다.


  나중에 동무한테 묻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실험결과 숫자’를 적어서 매를 안 맞은 동무한테 묻습니다. “야, 너 대단하다. 어떻게 너는 맞혔니?” “쉿. 다른 아이한테 말하지 마. 나는 전과에 나온 숫자를 외워서 적었어. 나도 실험결과 숫자는 전과에 나온 숫자하고 달라.”


  우리는 무슨 과학실험을 하는 셈일까요? 우리 사회는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까요? 우리 학교는 어떤 짓을 하는 셈일까요? 우리 학교교육은 아이를 어떤 넋으로 몰아세우거나 윽박지르면서 ‘터무니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종(노예)’이 되도록 길들이는 셈일까요?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 여섯 해, 다음으로 중학교 세 해, 그 다음으로 고등학교 세 해, 열두 해에 걸쳐 ‘과학실험’을 해야 하는 때에는 늘 ‘거짓 숫자(전과나 참고서에 나온 숫자)’를 적어서 안 얻어맞는 길을 살폈고, 시험을 치를 적에도 ‘거짓 숫자’를 외워서 적었으며, 과학실험을 해야 하면 ‘내 마음 그대로 내 눈으로 지켜보는 숨결’을 몰래 지켰습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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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안 먹으면서 살기



  사람은 밥을 꼭 먹어야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밥 때문에 몹시 힘들었기에 곧잘 이 생각을 했다. 어릴 적부터 ‘먹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김치를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니, 오늘날 한국에서는 밥상맡이 늘 거북할 뿐 아니라 고단했다. 아무리 씹어도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우물거리다가 삼켜야 했는데, 김치를 억지로 씹어서 삼키면 뱃속이 좋을 턱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김치를 먹지 않았으면, 나는 어릴 적에 밥을 즐겁게 먹었을까? 어쩌면 그러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김치뿐 아니라 찬국수(냉면)도 못 먹는다. 어릴 적에는 크림이 조금이라도 있는 빵이나 케익을 손에 대지도 못했다. 크림빵이나 케익을 먹으면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언젠가는 생일상에 올라온 크림케익을 먹다가 그만 왈칵 게우고 나서 넋까지 잃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달걀이나 떡도 잘 먹지 않았다. 여느 때에는 그럭저럭 먹지만, 한동안 안 먹다가 모처럼 먹으면 꼭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새로운 먹을거리’를 자꾸 먹이셨다. 내가 태어나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80년대에는 공장에서 찍는 가공식품이 쏟아질 때였고, 유럽에서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때문에 우유를 몽땅 내버려야 하던 터라, 우유를 ‘가루’로 만들어서 한국에 아주 값싸게 팔기도 하던 때요, 이러저러해서 ‘새로운 유제품’이 무척 많이 나왔다. 요플레라든지 푸딩 비슷한 것이라든지 요구르트라든지, 그리고 우유라든지 참으로 많이 돌았다. 이런 것 가운데 처음 내 입에 닿는 것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불렀고, 아무리 먹어도 입에 맞지 않아서 누가 거저로 주어도 먹고픈 마음이 없었다.


  밥도 힘들고 주전부리도 고단했다. 다른 사람은 단팥빵이니 크림빵이니 무엇이니 저것이니 하는 빵을 즐긴다지만, 내가 가장 즐긴 빵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식빵’이고, 그나마 ‘식빵 아닌 빵’을 고르라 할 적에는 ‘소보루빵’만 골랐다. 식빵도 기름을 많이 쓴다지만, 식빵보다 기름을 더 쓴 빵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낳았다.


  어릴 적에 ‘하루 세 끼니’란 죽음과 같았다. 아침 낮 저녁에 먹어야 하는 밥은 그저 무시무시했다. 동무네 집에 놀러갔는데 동무네 어머님이 ‘밥 먹고 가라’고 하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김치처럼 삭힌 것을 못 먹는데, 이런 반찬이 있으면 동무네 집에서까지 얼마나 끔찍한가. 게다가 김치를 못 먹는 모습을 바깥에서 들키면 학교나 동네에서 얼마나 놀림을 받는가. 아니, 알 사람은 웬만큼 알아, 동네에서 놀다가도 아주머니들이 “쟤는 김치를 못 먹는 아이라지?” 하고 수다를 떨면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밥은 왜 먹을까? 밥은 왜 먹어야 할까?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즐겁게 일하거나 놀려고 밥을 먹는가? 그러면, 즐겁게 먹어야 하지 않을까? 못 먹는 것을 억지로 먹이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부피를 먹을 수 있지 않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고, 많이 먹어도 모자란 사람이 있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줄이고 줄여서 거의 안 먹다시피 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며, 그예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리라. 국민학교 산수 수업에서, 나는 혼자 이런 ‘수열’을 생각했다.


  나흘째 아무것도 못 먹고, 닷새째 밥이나 물을 조금도 입에 못 대면서 보낸다. 엿새나 이레가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뭘 조금만 입에 대도 곧바로 물똥이 나온다.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하니 밥을 차려서 주지만, 나는 멀거니 구경을 하거나 자리에 드러눕는다. 밥내음은 따로 욕지기가 나지 않는다. 밥을 보아도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배앓이와 물똥 때문에 안 먹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밥을 부르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에는 그때대로 즐겁게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를 또렷하게 깨닫는다. ‘단식’이나 ‘금식’이 아니어도 ‘밥 없는 삶’이 될 수 있고, 밥에다가 물조차 없는 삶으로 여러 날 보내면서 몸이 허전하거나 힘들지 않다.


  어릴 적에 한 가지 더 생각한 적이 있다. 하도 밥먹기가 힘들다 보니 ‘밥 안 먹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는데, 풀이나 나무를 보면 뿌리가 땅속에서 양분을 빨아들인다지만, 따로 ‘밥을 먹는 얼거리’는 아니다. 해와 바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여기에 비가 있으면 무럭무럭 자란다. 아니, 모든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즈믄 해를 살 수도 있다.


  사람은 어떠할까? 사람도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사람이 살 수 있으면, 입으로 넣는 것이 없으니, 밑으로 나올 것도 없다. 입으로도 밑으로도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이 없으니 몸은 늘 그대로 흐를 테며, 몸에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다시 넣어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하는 흐름이 사라진다면, 몸이 아프거나 늙을 일도 없으리라 느낀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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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몸이란


  우리 집 큰아이와 곁님 동생(나한테는 처남)한테 참으로 모질고 끔찍한 일이 터졌다. 이 일을 추스르는 동안 나는 아주 모질면서 끔찍하게 앓는다. 나흘에 걸쳐 밥 한 술과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하고, 섣불리 밥 한 술이나 물 한 방울 댔다가 속이 제대로 얹히며, 속에 넣은 밥이 없는데에도 두세 시간에 한 차례씩 물똥을 꽤 누는 나날이었다. 오늘은 똥구멍이 너무 아파서 두세 시간마다 치를 볼일을 겨우 버텨서 서너 시간이나 너덧 시간에 보기도 했지만, 고되며 힘들기는 참 고되며 힘들다.

  그렇다고, 늘 하던 대로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고 재우고’ 하던 일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못한다.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이를 악물면서 버티지는 않았다.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견디지는 않았다. 아파서 말이 안 나온다는 얘기를 온몸으로 느꼈고, 아플 적에 힘겨이 말을 쥐어짜내는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오롯이 깨달았다. 내가 열 살 안팎이던 때이지 싶은데, 똥을 못 가리고 드러누운 할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나와 형과 어머니)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셨다고 떠올린다. 내가 많이 어려서 잘못 떠올릴는지 모른다.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인 만큼 제대로 떠올릴 수 있으리라. 아무튼, 몸져누운 할아버지는 말이 아주 드물었고 어쩌다 말문을 열 적에 참으로 부드러웠다. 이때 나는 한 가지가 궁금했다. ‘아니, 아픈 할아버지가 어떻게 얼굴도 안 찡그리고 말을 이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는 틈틈이 몸져누워 끙끙거리다가 아이들을 부른다든지, 밤에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른다든지 하면서, 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목소리는 참으로 부드러웠다. 아마 지난 일곱 해를 돌이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였구나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아이들과 주고받을 목소리요, 이 목소리로 곁님과 다른 이웃 모두를 마주할 삶을 열겠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나흘이 지나 닷새로 접어들려는 무렵에 살몃살몃 ‘옛 목소리’가 불거지려고 한다. 옛 목소리가 몇 마디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이내 ‘새 목소리’에 눌려서 사라진다. 나 스스로 내 ‘옛 목소리’와 ‘새 목소리’를 느끼면서 빙긋 웃는다. 무엇보다, 요 나흘 사이에 내가 아이한테 들려준 목소리는 바로 내가 ‘열일곱 살’까지 지키던 목소리였다고 불현듯이 알아챈다. 나는 내 ‘마음 시계’를 그동안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멈추어 놓고 살았구나 싶다.

  두세 시간마다 똥구멍이 아프도록 물똥을 눌 적에 ‘내가 아프게 한 이웃’이 누구였을까 하고 마음에 그린다. 자리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펴고 세 가지만 마음에 그렸다. 첫째, 옳게, 둘째, 바르게, 셋째, 아름답게.

  옳게 가고 바르게 가야지, 그런데 아름답게 가야지. 아름답지 않다면 옳지도 바르지도 않아.

  나는 다시 깨어나려고 한다. 몸살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한다. 묵은 똥을 내보내어 새로운 몸이 되려고 한다. 헌 몸이 1차원에 있든 2차원에 있든 3차원에 있든 대수롭지 않다. 3차원에 있어도 1차원보다 높지 않다. 3차원에 있는 몸은 곧 1차원으로 떨어지고, 1차원에 있는 몸은 이윽고 3차원으로 올라올 수 있지만, 다시 1차원으로 돌아간다. 4차원을 지나 5차원과 6차원을 그릴 수 없다면, 이리하여 7차원으로 옷을 벗을 수 없다면, 1차원과 2차원과 3차원 사이에서 맴돌이를 하는 몸은 무엇이 될까. 도토리 키재기를 할 삶이나 몸이나 지식이 아니라, 깨어나야 할 삶이나 몸이나 지식이다.

  내 마음속에 먼먼 옛날부터 깃들어 오래도록 잠든 넋을 깨우려고 비로소 한 꺼풀을 벗는다. 아니, 예전에도 수없이 많은 꺼풀을 벗었으니, 아직 나한테 남은 꺼풀을 한 번 더 벗은 셈이다. 꺼풀은 벗을 만큼 앞으로 더 벗으리라 본다. 그리고, 굳이 꺼풀을 벗기보다 ‘홀가분한 넋과 얼’이 된다면, 어떤 꺼풀을 뒤집어쓴 몸이라 하더라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을 만하리라 느낀다. 아직 내가 걸을 길은 ‘꺼풀 벗기’이니, 꺼풀부터 제대로 벗자고 생각을 모은다. 4347.12.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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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이 되자



  아마 열다섯 살이었지 싶다. 이무렵부터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은 모두 거짓말투성이라고 깨달았지 싶다. 그러나 이무렵에는 이렇게 깨닫기만 할 뿐, 달리 무엇을 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어 비로소 글쓰기를 할 무렵, 나 스스로 한 가지를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이 모두 거짓말투성이라 한다면, 덧없고 부질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가득 채워 애먼 나무를 괴롭히는 짓만 일삼는다면, 내가 스스로 신문이 되자고 생각한다.


  신문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신문이 될 생각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꾸준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삶을 가꿀 때에 아름답기 때문에 ‘어떤 글이나 말’을 꾸준히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 스스로 신문이 되자’ 하고 생각한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하루하루 맞이하는 이야기를 글로 찬찬히 갈무리하여 날마다 꾸준하게 띄울 수 있으면, ‘사람을 바보나 종이 되도록 가두는 굴레’인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 이웃과 동무부터 천천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느꼈다. 나부터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지어서 배우고, 내가 배운 내 삶을 이웃과 동무한테 보여주는 동안, 내 이웃과 동무는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짓는 슬기를 깨달으리라 느꼈다.


  참말 내 꿈대로 나는 천천히 신문이 된다. 종이신문도 누리신문도 아닌 ‘이야기신문’이 된다. 마음을 열어 생각을 지으려 하는 이웃이나 동무라면, 내가 쓴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으리라 본다.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은 이웃과 동무는, 또 이녁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겠지.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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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 숨을 쉬지 못할 적에



  권정생이라는 할배가 숨을 거둔 때가 2007년 봄이다. 나는 2003년 여름부터 2007년 이월까지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고, 이동안 경상도 안동에 몇 차례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때 권정생 할배한테서 들은 말 가운데 늘 가슴에 남는 대목은 “나 대신 아파 해 달라”이다. 권정생 할배는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끼운 노란 고무호스를 보여주었다. 오줌을 이렇게 빼내야 한다면서, 이 고무호스를 아침저녁으로 갈아끼우는데 참으로 아프다고 했다. 이런 일을 마흔 해나 하며 살자니 아주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찬찬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때에나 이제에나 거의 없지 싶다. 권정생 할배가 손님들한테 자주 들려준 말, “나 대신 아파 해 달라”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하다.


  나는 코로 숨을 잘 못 쉰다. 때때로 코가 잘 뚫려서 숨을 그럭저럭 잘 쉬기도 하지만, 입을 꾹 닫고 지내자면 숨쉬기가 갑갑하기 일쑤이다. 어느덧 마흔 해를 이렇게 산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면 그야말로 숨을 쉬는 일이 고단하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어 코를 훌쩍이거나 풀지만, 아무리 풀고 풀어도 콧물은 끝없이 나온다. 콧물이 나올 뿐 아니라 코가 꽉 막힌다. 나중에는 골이 아프고 온몸을 비틀어 용을 쓰지만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 밤새 코를 풀고 다시 풀기를 여러 시간 하면 아주 깊은 밤에 겨우 한쪽 코가 살짝 뚫려 가늘게 숨을 쉴 수 있다. 이때에 비로소 잠이 든다.


  한 해 내내 숨쉬기가 힘겨운 나날이다 보니, 냄새와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웬만한 일에는 무디거나 무덤덤하게 지내자고 여기곤 한다. 숨을 한 차례 쉬는 일보다 대수로운 일이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늘 막히고 갑갑하던 코가 처음으로 뚫린 때는 군대에서이다. 스물한 살 나이에 비로소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시골이라기보다 두멧자락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야 했는데, 군대에서는 숨을 쉬는 걱정이 없었다. 다만, 군대에서도 한겨울이나 한여름은 괜찮았으나 봄과 가을은 죽을 노릇이었다. 그래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는 코가 확 트인다고 깨달았다. 예부터 몸이 나쁜 이들이 시골로 가서 맑은 바람과 밝은 햇볕을 머금으면서 싱그러운 물과 꽃내음과 나무노래를 들으면서 몸을 되살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잘 느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몸이니, 군대라는 데에도 안 가야 했다. 신체검사를 맡은 군의관은 나더러 어떻게 군대에 가려 하느냐며 거꾸로 나한테 따졌다. 그래서 신체검사를 받던 때 군의관더러, 그렇게 잘 알면 그렇게 검사 결과가 나온 대로 하십쇼 하고 말했는데 면제가 아닌 현역을 주었다. 군대를 안 갔다면 내 오늘이 어떤 모습이었을는지 모르겠는데, 군의관이 부정을 저질러 준 탓에 나는 ‘두멧시골’이라는 터전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군대를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니 다시 괴로운 나날이 이어진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었다. 참말 다들 어떻게 이런 도시에서 같은 바람을 마시면서 살는지 아리송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도시를 떠나지도 못했다. 시골에 아는 사람이 없고, 밑돈도 없었으니까.


  숨을 쉬기 몹시 어려운 몸이기에 ‘몸이 아픈 사람’을 볼 때면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몸이 아플 적에는 작게 다쳤건 크게 다쳤건 똑같이 아프다. 더 아프거나 덜 아픈 일이란 없다. 그런데 나는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생각한다. ‘자네는 숨을 쉴 수 있잖아? 숨을 못 쉬니?’


  숨은 쉬더라도 숨통이 안 붙은만 못하다 싶은 삶도 있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워 골골대야 할 적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 한다.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그리고 숨을 쉬지도 못한다.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한다. 참으로 어정쩡하게 코를 부여잡고 산다.


  코가 없으면 입으로 숨쉬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다문 십 분만 입으로 숨을 쉬어 보라고, 아니 일 분만 입으로 숨을 쉬라고 말해 주고 싶다. 입으로도 숨을 쉴 수야 있겠지. 그런데 입으로 숨을 쉬면 곧 목이 막힌다. 목이 말라서 재채기가 끝없이 나온다. 재채기가 나오다가 나중에는 피가 나오고, 입으로 더는 숨을 쉴 수 없다.


  우리 몸은 왜 밥을 먹어야 할까. 우리 몸은 왜 숨을 쉬어야 할까. 우리 몸은 왜 물을 받아들여야 할까. 어릴 적부터, 아주 어릴 적부터 숨쉬기가 몹시 힘들어 날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다 보니, 참말 나는 어릴 적부터 ‘밥·숨·물’이 왜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했다. 밥도 숨도 물도 없는 몸으로는 살 수 없는가. 넋이 깃드는 몸은 오롯이 홀가분할 수 없는가. 스물다섯 살 무렵이던가, 권정생 할배가 쓴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동화책에서 토끼가 풀잎이 아닌 이슬과 바람만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하느님한테 눈물로 이야기하는 대목을 읽었는데, 참말 나는 토끼와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게다가 이슬과 바람조차도 없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꼭 한 가지를 느낀다. 숨을 제대로 쉬기 벅차서 몸은 가없이 힘들고 괴롭지만, 내 넋은 몸과 달리 참으로 고요하다. 아프기 때문에 배운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왜냐하면 안 아파도 얼마든지 배우기 때문인데,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아픈 몸으로 넋과 마음을 늘 새삼스레 되돌아볼 수 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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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ilob 2015-04-04 12:03   좋아요 0 | URL
저도 코가 막혀 거의 잠을 못자요

garilob 2015-04-04 12:03   좋아요 0 | URL
글에 공감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