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상을 주고받기 : 종이나 물건에 새겨서 상을 주고받곤 한다. 이런 종이나 물건은 모두한테 안 주기 일쑤이다. 몇몇만 받도록 한다. 게다가 숫자를 매겨서 1·2·3처럼 가른다. 이때에 상을 받는 이는 남보다 앞서거나 위에 선다면서 좋아하기 일쑤요, 상을 못 받는 이는 남보다 뒤처지거나 밑바닥이라면서 싫어하기 일쑤이다. 다만, 상을 받든 안 받든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숫자가 덧없는 줄 알아차리는 이도 있다. 상을 왜 줄까? 상을 누가 줄까? 우리한테 상을 주려는 이는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일까? 뭐를 했으니 잘하거나 못하거나를 갈라서 상을 주거니받거니 해야 할까? 아니면, 뭐를 하든 말든 오늘 하루를 차분히 되새기면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될까? 모름지기 참다운 상이라 하면 종이나 물건에 새길 수 없다. 더구나 몇몇 사람끼리 주고받을 수도 없다. 참다운 상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준다. 바로 내가 나한테 주지. 너는 너 스스로 너한테 주고. 남이 우리한테 상을 줄 수 있을까? 남들은 왜 우리한테 다가와서 상을 주려고 할까? 남들이 내미는 상을 우리가 덥석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이 내미는 상으로는 우리를 일으키거나 가꾸거나 사랑하는 길하고 멀어진다고 느낀다. 언제나 스스로 기쁘게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펴면 넉넉할 뿐, ‘상’이란 이름조차 쓸 일이 없다고 느낀다. 2019.10.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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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알았을까 : 마음으로 알았으면 스스로 넉넉하면서 포근한 기운이 돌기 마련이다. 이 마음빛은 몸으로도 조용히 퍼지면서 몸에서 넉넉하면서 포근한 숨결을 깨어나도록 이끈다. 마음으로 알지 않거나 못한다면 스스로 넉넉하면서 포근한 기운이 마음으로 다가와도 못 받아들인다. 마음을 안 열거나 못 열기에 마음빛이 퍼지지 않고, 이러면서 몸은 몸대로 새롭게 깨어나는 길하고 멀어진다. 마음이 먼저 나서지 않고 몸으로만 바란다면 마음은 외려 더 단단히 잠긴다. 몸이 먼저 나서기 앞서까지는 그냥 잠긴 채라 한다면, 몸이 자꾸 먼저 나서려 들면 마음은 단단히 잠길 뿐 아니라, 쇠사슬로 친친 감기기까지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마음으로 무엇을 보고 느끼며 받아들여야 즐거울까? 누가 해줘야 하는 삶일까? 누가 도와줘야 낫는 몸일까?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일으켜서 깨울 마음빛이 있다. 우리는 참말로 스스로 돕고 스스로 가꾸고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빛이 있다. 초에 불을 당기듯, 그동안 스스로 닫고 잠가 둔 마음을 열면 된다. 스스로 열면 스스로 빛난다. 그리고 스스로 고요하게 긴긴 잠에서 깨어나 활짝 날갯짓을 한다. 보라, 새는 어떻게 날아다니는가? 나비는 어떻게 깨어나는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 사랑으로 일깨운 몸짓이 되기에 바람을 가른다. 2019.10.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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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개바람하고 놀기 : “너, 곧 이 나라에 온다며?” “응? 넌 어느 나라에 사는 누구야?” “난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는 숲노래라고 해. 오늘은 고흥 아닌 다른 고장에 나왔어.” “그래, 반갑구나. 네가 사는 나라에서 나한테 말 건 사람은 꽤 오랜만인데?” “어. 내가 고흥을 비운 사이에 네 동무가 찾아와서 비를 흠뻑 뿌렸다더라. 이레쯤 뒤에 네가 온다고 해서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래? 무슨 일인데?” “넌 네 이름을 어떻게 생각해?” “무슨 이름?” “왜, 사람들이 네가 찾아오면 ‘물폭탄’을 내린다고들 하잖아?” “아, 그 짜증나는 이름! 어쩜 너희는 그러니? 내가 어떻게 폭탄이니? 너희가 나를 폭탄으로 여기니까 너희한테는 그저 폭탄이 되어 줄 수밖에 없어. 그렇잖아? 너희가 나더러 폭탄이 되기를 바라니 나는 기꺼이 폭탄이 되어 주겠다는 말씀이야.” “그렇구나. 그래서 난 너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 “그래? 그럼 넌 어떻게 부르는데?” “이 나라에는 예부터 함박꽃이라는 꽃이 있어. 그 함박꽃은 매우 크고 아름답고 향긋한데, 겨울에 오는 눈을 놓고서 함박눈이라고도 해.” “그 이름 좋네.” “그래서 나는 네가 이끌고 잔뜩 베푸는 비를 놓고서 ‘함박비’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하고 싶어.” “아, 함박비! 좋은걸!” “그렇지만, 난 네가 이레 뒤에 찾아올 적에 네가 베풀 함박비 말고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뭘?” “나는 돌개바람, 또는 회오리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네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멋진 구름인 줄 알아.” “그래, 우리가 구름으로 그림을 멋지게 그리지. 그런데 너희들은 내가 아무리 하늘에 멋지게 구름 그림을 그려도 안 쳐다보더라.” “다른 사람은 이야기하지 말아 주지 않겠니? 난 너랑 이야기하는걸.” “아차, 그렇지. 미안해.”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너하고 이야기할 줄 다 알았는데 다 잊었을 뿐이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아니 아니. 그런데 넌 어디에 사니?” “아까 말했을 텐데? 난 고흥이란 고장에 살고, 우리 집에서 살아.” “그 ‘우리 집’이 어디야?” “고흥에서 도화면이란 데가 있고, 동백마을이란 데에서도 후박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또 뒤꼍에 뽕나무랑 모과나무랑 매화나무랑 유자나무랑 석류나무랑 감나무랑 흰민들레랑 온갖 푸나무가 어우러진 조그마한 보금자리이지.” “그래, 너희 보금자리를 잘 알아두겠어. 고마워.” “그런데, 내가 너한테 말을 건 까닭은 하나야. 난 너한테 마음으로 찾아가서 말을 걸 수 있고, 참말로 말을 걸고 싶어. 네가 비를 뿌리고 싶다면 비를, 네가 바람을 날리고 싶다면 바람을, 네가 구름을 그리고 싶다면 구름을, 모두 오롯이 마주하고 싶어. 다만, 내가 고흥에 있을 때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 “그래그래. 그러면 너한테는 구름 그림을 보여주지.” “그래도 될까?” “뭐 어때. 그리고 너희 보금자리 언저리만 그럴 테고, 다른 곳은 그러지 않겠어.” “왜?” “왜냐니? 너도 듣잖아?” “뭘?” “네가 사는 그 마을에도 방송이 나오더군. 내(태풍)가 찾아가면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고 방송이 흐르던데?” “아, 군청이란 데에서 날마다 숱하게 내보내는 그 방송?” “그래. 그 방송대로 너희 보금자리를 뺀 다른 곳에는 너희들 사람이 바라는 그 말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혀 주지. 그리고 네가 사는 그곳에는 구름 그림을 보여주고.” “왜? 왜 그렇게 가르는데?” “왜냐니? 너희가 나한테 그걸 바라잖아? 넌 나한테 구름 그림을 바라고, 딴 녀석은 물폭탄을 바라고, 딴 녀석은 막대한 피해를 바라지. 나한테 바라는 그대로 주고 싶을 뿐이야.” “아,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아무튼 난 네가 보여줄 엄청난 구름 그림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볼게.” 2019.10.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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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야 장난 : 곁님이 읽고 싶다는 책이 있어서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나 요새는 ‘아마존’이 있다. 나는 우리 곁님 ‘때문’에 아마존에서 책을 사는 길을 익혔다. 매우 즐겁게 영어를 배우는 길이기도 했다. 아무튼, 아마존에서 영어로 이모저모 읽고 훑으며 영어로 된 책을 한 자락 장만하려 하는데, 이 책을 파는 곳에 있다는 다른 책이 눈에 뜨여서 네 자락쯤 같이 시켰다. 그런데 막상 ‘곁님이 읽고 싶다’고 해서 시킨 책은 안 올 뿐 아니라, 같은 책집에서 네 가지 책을 다 다른 날에 하나씩 따로 보내었다. 왜? 아니 왜? 하나로 묶어서 보내면 되지 않아? 왜 이래야 해? 정작 시킨 책은 아직도 안 오는데, 문득 마음으로 어떤 소리가 흐른다. “킬킬킬.” “뭐야? 왜 웃어?” “장난이야, 장난.” “무슨 장난?” “네가 바라고 기다리는 책이 안 오는 그거.” “뭣?” “그러니까 장난이라고.” “아아, 왜 장난을 치는데?” “그냥. 장난을 치고 싶으니 장난을 치지, 뭐.” “…….” “장난을 치는데 무슨 까닭이 있나? 그냥 놀려고 장난을 치지.” 으그그그, 장난이요 놀이라고 하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나. 그러려니 하고 여기면서 마음소리를 뚝 끊는다. 2019.10.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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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대로 : 누구나 그이 눈높이(수준)대로 잘한다. 그리고 누구나 그이 눈높이대로 못한다. 언뜻 보면 잘하는 듯도 하고 못하는 듯도 하지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모습이다. 늘 그이 눈높이대로 할 뿐이다. 그러니 누구나 하는, ‘우리 눈높이대로 하면서 나아가는 삶’을 보다가 옆에서 북치거나 장구치거나 할 까닭은 없다. 더 잘하지도 않도 더 못하지도 않으니까. 2019.9.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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