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의 그림자 철학하는 아이 14
크리스티앙 브뤼엘 지음,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 이마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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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래 아닌 ‘마음동무’를 바라는 아이들



《줄리의 그림자》

 크리스티앙 브뤼엘 글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이마주

 2019.7.15.



“말 좀 해 봐. 도대체 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책을 읽니?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굴 수는 없어?”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요, 엄마. 나는 줄리라고요!” (5쪽)



  장갑이 마음에 들면 안 추운 곳에서도 장갑을 끼고서 책을 읽습니다. 좋아하는 인형이 있으면 곁에 인형을 앉혀서 같이 책을 읽습니다. 바지가 좋으니 바지를 꿰고, 치마가 좋으니 치마를 두릅니다. 꽃이 좋아 꽃을 보며, 자동차가 좋아 자동차를 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같아요.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마음에 드는 길을 가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반가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른 자리에 서면 으레 아이를 쳐다보다가 따지지요. “넌 왜 그렇게 하니?” 하면서.



줄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걸 고양이에게만 살짝 털어놓지요. 둘은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재미난 놀이를 몰래 즐겨요. 그래도 줄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답니다. (7쪽)



  사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났으니 사내스러워야 한다고,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난 만큼 가시내스러워야 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내스러움이나 가시내스러움은 누가 틀을 세울까요. 아이 스스로 세울까요, 아니면 나라나 마을이나 다른 사람들이 세울까요.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크리스티앙 브뤼엘·안 보즐렉/박재연 옮김, 이마주, 2019)는 줄리라는 아이가 맞닥뜨려야 하는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데 모조리 어른 말을 따라서 해야 하느라 마음이 엉키고 힘들며 지친 모습’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언제나 재미나게 노래하고 수다쟁이에 마음껏 뛰놀던 아이가 어느 때부터인가 시커먼 구름을 껴안더니, 이 기운을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때에 아이 둘레에 있는 어른은 ‘아이가 떠안고 만 시커먼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해요. 아이를 돕지 못합니다. 더구나 ‘아이가 이제 얌전해졌다’면서 반기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답지 않게 머리를 빗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보다 더 얌전하게 앉아 있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만큼 떠들지 않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이제 줄리는 자기가 누구를 닮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거울조차도 줄리를 못 알아봐요.  (25쪽)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얌전하거나 조용히 있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는 아기를 억지로 울지 말라 할 수 없습니다. 어른처럼 또박또박 말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닌, 아직 ‘어른처럼 하는 말’을 하나도 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으니, 울거나 웃는 낯빛으로 마음을 드러내요. 게다가 무엇이든 낯설거나 새로우니, 무엇이든 만지고 싶고 해보고 싶어요. 뒤집기도 못하던 몸으로 기다가 서다가 걷는 기쁨에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 재미를 누리려고 신나게 뛰거나 달리는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더러 ‘조용하’라고, ‘얌전하’라고, ‘뛰지 말’라고 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이가 실컷 노래하고 떠들고 뛰놀 자리를 넉넉하면서 느긋이 마련해 주고 나서야, “자, 이제 차분히 뭘 하나 배울까?” 하고 물어야 앞뒤가 맞지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모름지기 마음껏 뛰놀거나 구르거나 까르르거리면서 스스로 배우기 마련입니다.



“나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여기 와서 울어. 이곳에는 나를 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다들 내가 여자아이처럼 운대. 생긴 것도 여자아이 같고. 근데 네 삽 말이야. 땅을 파기에는 좀 작은 거 같은데!” (38쪽)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에 나오는 줄리는 시커먼 기운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다스릴 길이 있을까요?


  갑갑한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집 바깥을 헤맵니다. 이때에 줄리 못지않게 시커먼 기운이 휩싸여서 괴로운 또래를 만납니다. 줄리는 가시내라는 몸 때문에 괴롭다면, 또래는 사내라는 몸 때문에 괴롭습니다. 둘은 마음이 맞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 셈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아이한테 또래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만, 아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아이나 어른한테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지 싶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한곳에 우르르 몰아넣는 자리가 아닌, 서로 아끼거나 돌볼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이 흐르는 사이가 되어서 어우러지고 놀고 일하는 터전이 되어야지 싶어요.


  마음이 맞지 않기에, 아니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기에, 시커먼 기운이 자랍니다. 마음이 맞기에, 아니 마음을 읽으면서 즐거이 어우러지려고 하기에, 우리 곁에 밝으면서 맑은 기운이 샘솟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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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4
정주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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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억누른대서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

 정주진

 철수와영희

 2019.9.4.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싸우다 보니 우리는 항상 전쟁을 생각하고 전쟁을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24쪽)


독재자와 정치인은 오히려 국민의 무관심과 무지에 힘입어 남북 대립과 군사적 대결을 강화했습니다. (54쪽)


그렇지만 증오만 생각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63쪽)


남북관계와 북한에 대해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을 너무 증오해서 북한과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방해합니다. 다른 하나는 가짜뉴스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90쪽)


국방부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국민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강한 국방’이라는 구호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무력 강화가 곧 평화를 보장하고, 국민이 원하는 바이며,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호는 7조 4000억 원을 들여서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108쪽)


(산불 진화용) 250억 원짜리 대형 소방헬기와 (전쟁용) 1150억 원짜리 스텔스 전투기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잘 말해 줍니다. 거의 쓸 일이 없는 스텔스 전투기에는 막대한 돈을 쓰면서 안전을 위해 정말 필요한 소방헬기에는 돈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요. (110쪽)


함께 살아가려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북한은 우리 이웃이라는 점입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우리는 북한과 서로 위협하고 싸우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162쪽)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묻고 이웃나라에도 물어보아야 할 때입니다. ‘서로서로 군대를 이렇게 키우고 해마다 어마어마한 돈을 군대에 쏟아부어서 우리가 여태 평화로웠나요, 아니면 더 다투거나 싸우면서 군대에 돈을 더 쏟아부어야 했고, 더 아슬아슬해야 했으며, 더 미워하는 길을 걸었나요?’ 하고요. 군대가 있었기에 참말로 평화를 지켰을까요, 아니면 군대가 있었기에 참으로 평화하고는 동떨어졌을까요?


  흔히 말하기를, 저쪽이 무기를 안 버리는데 우리부터 먼저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저쪽도 우리하고 똑같이 말하겠지요. 우리가 무기를 안 버리니 저쪽도 먼저 무기를 버릴 수 없다지요.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19)는 이 나라 푸름이가 앞으로 이 나라를 새롭게 가꾸는 든든하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평화와 전쟁이라는 이름에 감추어진 민낯을 드러내고, 남북녘 모두 군대에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느라 정작 무엇을 안 하거나 못 하는가를 낱낱이 비추어서 들려줍니다.


  따지고 보면 남북녘뿐 아니라 미국도 매한가지입니다. 미국도 그토록 군대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붓느라 정작 여느 미국사람 살림살이는 엉망이라고 하지요. 미국에서는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군인이 되는 길을 가야 비로소 살림을 펼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다지요.


  평화를 지킨다고 하는 군대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지 싶습니다. 모든 군대는 ‘쳐들어오는 저쪽을 막으’려고 있지 않습니다. ‘먼저 쳐서 끝장을 내’려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핵폭탄이든 미사일이든 먼저 퍼부어대면 모든 전쟁은 바로 끝납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그렇게 폭탄이며 미사일을 퍼부어대면, 이쪽도 똑같이 ‘나만 못 죽는다. 너도 죽어라’ 하면서 똑같이 폭탄하고 미사일을 퍼붓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평화를 지키는 듯 보이’는 모든 모습은 허울입니다. 어느 한쪽이든 먼저 치면 저쪽을 무너뜨리기 쉬우나, 그렇게 나섰다가는 다같이 죽음수렁으로 갈밖에 없으니, 그렇게 군대하고 무기를 잔뜩 갖추었어도 쳐들어가지 않고, 더 센 군대하고 무기를 거느리려고 치달을 뿐입니다.


  오늘날 어른은 앞으로 어른이 될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군대하고 전쟁무기로 가득한 이 나라를 물려주어야 평화로울까요?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거느리느라 나라살림이 얼마나 휘청이는데, 이런 휘청살림을 물려주어야 평화일까요? 아니면 남북녘이며 일본이며 미국이며 중국이며 러시아이며, 모두 평화로 나아가자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아나서면서 ‘새로운 무기 개발을 끝장내’고서, 이런 데에 쏟아부은 돈을 온나라에 푸른 숲을 이루는 아름다운 살림길로 바꾸어내야 평화일까요?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에서 여러모로 짚기도 하지만, 소방헬기는 갖추지 못하지만 무시무시한 갖가지 전쟁무기는 잔뜩 갖추려는 나라살림입니다. 굳이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을 거두지 않고도 의료 도움이나 밑살림을 누구나 느긋이 꾸릴 만한 돈이 어엿이 있습니다. 다만 이 돈은 언제나 새로운 무기(요새는 무인 군사드론 개발)를 뚝딱거리는 데에 다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먹여살리는 데에 다 쓸 뿐이고요.


  ‘전쟁 억제력’은 평화가 아닌 전쟁길입니다. 전쟁이 안 터지게 군사힘을 키워서 억누르는 길은 낡았습니다. 이 낡은 길이 아닌, 사람들 살림살이를 남녘도 북녘도 제대로 바라보면서 돌보는 길을 가야지 싶습니다. 그 길이 바로 평화일 테니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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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HaHa)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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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하하 HaHa》

 오시키리 렌스케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8.5.31.



“부모의 의견과 가지꽃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하잖니?” “어차피 나 같은 가지는 꽃도 안 피워.” …… “나는 아직 18세 꽃다운 소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서 술판을 벌이지. 그거야말로 나다운 인생이야. 벌써부터 어른이 될 걸 걱정하면서 살면 반대로 손해잖아. 어떤 것도 나를 묶어놓을 수는 없어!” (10쪽)



  오늘 이곳에서 바라보는 살림이 매우 팍팍하다 싶은데 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요? 궁금한 아이는 어머니한테 여쭙니다. 어머니는 새롭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럼, 웃을 일이 있는데 웃지, 우니?”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이한테 어머니는 몇 마디를 보탭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즐거운 일은 웃으면서 살아야지. 아무리 힘들더라도 스스로 웃어야 즐겁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웃음으로 풀어서 넘겨야지.”


  아이는 어머니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아이는 어머니 말을 언제쯤 알아듣고서 찬찬히 철이 들 만할까요?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어릴 적에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요?



“타에 언니, 그렇게 심하게 혼내도 괜찮은 거야?” “어머, 노부. 야단 좀 맞았다고 그만둘 것 같으면 이 일 못하지.” “그건 그래.”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거야. 그걸 생각하면 야단 좀 맞는 건 별것 아니지.” (30쪽)



  만화책 《하하 HaHa》(오시키리 렌스케/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8)는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흐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늘은 어머니였으나 어제는 아이였던 삶을, 그리고 어제 아이였던 사람한테 어머니나 아버지였던 분이 더 옛날에는 어떤 아이로 살았으려나 하고 어림해 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짚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이로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우리 어머니는 왜 저 따위야?’라든지 ‘우리 어머니는 늘 저래서 못 이긴다니까!’ 같은 생각이 왜 불거지고 어떻게 풀리는가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엄마의 뇌리에는 지금까지 홀대받은 애견들의 원통한 얼굴이 떠올랐고, 그 원한이 쌓이고 쌓여 할아버지에게 대들기 충분한 용기가 갖춰져 있었다. “그만두렴, 노부. 아버지는 딸의 기분도, 개의 기분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66쪽)



  ‘하하’라는 말소리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똑같이 웃음소리를 나타냅니다. 무척 재미난 말이에요. 어쩌면 세 나라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나라에서 ‘하하’는 웃음을 가리키는 말소리이지 않을까요? 사람한테뿐 아니라 새한테도 나무한테도 별한테도 ‘하하’는 즐거운 웃음이요 슬픔을 씻는 웃음이며 아픔을 달래는 웃음이지 않을까요?


  일본에서는 ‘하하(はは)’에 다른 뜻도 깃듭니다. 바로 ‘어머니’예요. 웃음소리이자 어머니를 가리키는 ‘하하’입니다.


  재미나지요. 다른 말소리도 아닌 웃음소리를 가리키는 말하고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 같아요. 어머니라고 하는 자리는, 어머니라고 하는 숨결은, 어머니로 나아가는 길은, 몸뚱이만 크고 나이만 먹는 삶이 아닌, 슬기로우면서 따뜻하고 즐거운 살림이겠구나 싶습니다.



“그거야, 그 감정. 남을 탓하는 감정을 억누르질 못하잖니. ‘개똥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새들까지 똥을 날리는 거야. 이상한 사람들이 금방 시비를 거는 것도 네가 비슷해 보이니까, 시비 걸고 싶도록 하고 다니기 때문이지. 정신을 맑게 유지해야 해.” (106쪽)



  말 한 마디로 가르칩니다. 몸짓 하나로 보여줍니다. 웃음 하나로 일깨웁니다. 말 두 마디로 같이 배웁니다. 새로운 몸짓으로 나란히 지켜봅니다. 웃음 두 판째로 깨우칩니다.


  낯을 찡그리고 다닌들 나아질 일이 없습니다.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로는 달라질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는 낯이 되면? 글쎄요. 엇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웃는 낯일 적에는? 글쎄요, 아마 다르지 않을까요?


  누가 우리를 괴롭혔다고 한들,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으면서 웃음으로 흘려보낼 수 있거나 살짝 튕겨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누가 우리를 못살게 굴거나 들볶거나 힘들게 하더라도, 이를 가볍게 여기면서 웃음으로 휙 넘기거나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갈 수 있으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 네가 다가가기만 하면, 분명 그쪽도 그렇게 할 거야.” (191쪽)


“싫은 일도 상관없어. 괴로운 일도 덤비라고 해.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전부 통틀어서 즐기는 거야. 살아가면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니까.” (216쪽)



  다시 돌아봅니다.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어떻게 웃음으로 하루하루 살아내고서 오늘 이곳에서 아이한테 웃음 띤 낯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아이로 자라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어버이(어머니나 아버지)가 되어 활짝활짝 웃음꽃으로 웃음어른이 될 만할까요?


  모두 웃음으로 품을 줄 알기에 웃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모두 웃음으로 안는 몸짓이기에 우스우면서 즐겁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비웃을 수 있어요. 남들이 우리를 손가락질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일 뿐, 우리는 그들도 저들도 아니랍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오늘 이곳을 누려요. 우리는 우리답게 오늘 여기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고 살림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즐겁게 일어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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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니스 5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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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잔뜩 두려운데, 어떡해야 할까요



《해피니스 5》

 오시미 슈조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9.8.25.



“나도 죽여 줘. 스스로는 죽을 수 없어, 나. 틀렸어. 난 이제. 아아, 왜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53쪽)



  털어놓기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에 참으로 어렵겠지요. 힘이 들기도 할 테고요. 제발 빨리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나, 차라리 죽어서 사라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죽으려 해도 도무지 스스로 못 죽겠구나 싶어 더욱 가슴이 조이면서 더더욱 두려웁기까지 합니다.


  뭔가 잘 해내거나 멋진 모습을 보였다면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일이 없겠지요. 뭔가 안되거나 틀렸거나 일그러지거나 잘못되었다고 느낄 적에 ‘제발, 이 오늘이여 빨리 지나가 주오’ 하고 바라곤 합니다.


  참으로 그 털어놓기 어려운 일이 왜 찾아올까요? 왜 우리는 그런 일을 겪어야 할까요? 꼭 그런 일을 겪어야만 할 까닭이 있을까요?



“난 알아.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유우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필사적으로 노력했어.” (58쪽)



  곪은 곳은 터지기 마련입니다. 곪은 곳이 터지는 까닭은 이제 고름덩이를 더는 안 품고 싶기 때문입니다. 낫고 싶어서, 곪은 살점이 아닌 말끔한 살점이 되어 싱그럽고 튼튼하게 살아나고 싶어서, 드디어 곪은 곳이 터집니다.


  뭔가 일그러지거나 틀렸구나 싶은 일을 스스로 저지르고 말았다면, 스스로 마음에 맺힌 어떤 응어리나 고름이 이제는 터져서 사라져야 할 때라는 뜻이지 싶어요. 다만 응어리나 고름이 터질 적에는 좀 아픕니다. 아니, 꽤 아플 수 있고, 어쩜 이다지도 아프냐 싶어, 차라리 죽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속으로 이렇게 속삭이거나 외쳐 봐요. ‘어디까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앞으로도 내내 아픈지, 다 맞아들여 주겠어’ 하고요. 기쁜 날에 이 기쁨을 한껏 누리듯, 슬프거나 괴로운 날에는 이 슬픔하고 괴로움을 고스란히 맞아들여서 삭여내고는 훌훌 날리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 봐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 다 말해 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르쳐 줘요. 도망치면 안 돼요.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좀 닥치지 그래. 별것도 아닌, 무지몽매한 고깃덩이 주제에.” (79∼80쪽)



  《악의 꽃》이란 만화책이 있습니다. 모두 열한걸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펴는데, 이 열한걸음을 읽어내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아이가 왜 그러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러면서 왜 그러한 말을 터뜨리는지, 이러고서 왜 그러한 길을 가는지, 모두 어지럽고 어수선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스스로 스스럼없이 털어놓거나 밝히지 못할까요? 어느 때에 어떻게 속내를 터뜨려서 털어놓아야 할까요?


  《악의 꽃》을 그린 분은 《해피니스》라는 이름을 붙인 만화도 그립니다. 《해피니스》는 이제 다섯걸음째 나옵니다. 《해피니스 5》(오시미 슈조/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9)까지 읽어내면서 ‘마음앓이·마음생채기(트라우마)’란 무엇이고 어떻게 씻거나 달랠 수 있는가를 고요히 곱씹습니다.


  스스로 뜻하지 않았으나 ‘흡혈 괴물’이 된 아이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흡혈 괴물’이 참말로 괴물인지, 흡혈 괴물을 괴물로 여기면서 바라보고 실험체로 삼는 어른들이 괴물인지 헷갈릴 노릇입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학교 안팎에서 ‘학교 폭력’이나 ‘학교 따돌림’ 같은 말을 꺼내곤 하는데, 학교가 배움터 아닌 입시싸움터인 흐름으로 치닫게 하기 때문에 폭력이나 따돌림이 불거진 셈 아닐까요? 또 어른들은 툭하면 ‘청소년 언어파괴’ 같은 말을 툭툭 내뱉는데, 정작 어른들부터 한국말을 엉터리로 쓰면서 망가뜨릴 뿐 아니라, 이 삶터에 불법이나 무법이 판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아, 아뇨. 정말 괜찮아요. 그냥, 10년 전 사고났을 때 상처예요. 자꾸 눈에 띄면 주위 분들도 신경 쓰일 테고, 폐가 되잖아요? 그래서 감췄던 건데, 덕분에 벗는 계기가 됐어요.” (178쪽)



  만화책 하나로 얼마나 마음앓이를 달래거나 마음생채기를 씻을 수 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잔뜩 두려울 적에는 그 두려움을 그대로 마주할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무엇이 얼마나 두려운가를 똑바로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에서 누구 잘못인가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잘못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잘못은 언제라도 따질 수 있습니다만, 먼저 살필 대목은 ‘오늘 이곳에서 어떤 마음’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어떤 마음’으로 다잡아야 스스로 두려움을 새로움으로 바꾸어 내면서 ‘사랑이란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이지 싶습니다.


  두려운 어떤 일이 우리 마음에 있다면, 우리 스스로 아직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을 등졌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이웃이나 동무나 한식구를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판에, 내가 누구를 사랑할까요?



“누나. 벌써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면 안 돼.” “토모오, 어째서? 이제 겨우 다시 만났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진짜 많은걸.” “안녕. 누나.” (102쪽)



  ‘사람들’이라기보다 ‘어른들’이 보이는 앞뒤 다르거나 겉속 다른 모습에 펄펄 끓는 마음을 그냥 꾹꾹 누르던 ‘아이들’이 어느 날 하나둘 이 불길을 터뜨린다고 해요. 이 불길을 터뜨리면서 그만 이 불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몰라 헤맨다고 합니다. 이 불길에 맞아 일찍 삶을 마감한 여러 아이가 있고, 이렇게 삶을 마감한 아이를 동생으로 눈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모두 ‘기쁨’이나 ‘보람’하고는 멀다고 할 만한 노릇인데요, 이러한 삶길을 담아낸 만화책 이름이 《해피니스》입니다. ‘해피니스’ 아닌 ‘언해피니스’여야 알맞지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쁨이나 보람을 찾으려다가 자꾸 헤매고, 넘어지고, 서로 생채기를 내거나 건드리면서, 끝내 두려움이란 마음을 쌓지 싶습니다. 늘 이 한 마디로 돌아오고야 마는데, ‘스스로 사랑하기’라는 마음으로 그 커다란 두려움을 찬찬히 바라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두려움한테 이렇게 속삭여 봐요. ‘두려움아, 넌 내가 아니야. 아니, 넌 또다른 나일 수 있지. 그런데 두려움아, 네 옷을 벗으렴. 넌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잖아. 네 참모습을 보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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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 - 스포츠를 통해 보는 세상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2
탁민혁.김윤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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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구경거리 스포츠’는 이제 그만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

 탁민혁·김윤진

 철수와영희

 2019.5.31.



  1982년이라는 해에 프로야구가 생겼어요. 곧이어 프로축구나 프로씨름이나 프로농구나 프로배구가 생겼는데요, ‘프로’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운동경기·스포츠는 이른바 웃돈이 오가면서 돈벌이가 되는 길로 확 달라집니다. 이런 이름이 붙기 앞서까지는 누구나 가볍게 배워서 즐거이 누리는 놀이판이었다고 할 만해요.


  저는 인천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라면서 프로야구를 실컷 보았습니다. 그러나 프로야구 때문에 야구를 실컷 보지 않았고, 프로야구가 없었어도 마을야구를 했어요. 그무렵에는 어느 마을이든 아이가 넘실거렸는데요, 조금 살림이 좋은 집 아이라면 방망이를 챙겨 오고, 살림이 덜 좋으면 공을 챙겨요. 살림이 모자라면 맨손으로 오거나 국민학교에서 쓰는 갓, 이른바 학교 모자를 챙깁니다. 방망이 있는 아이가 안 오면 마땅한 나뭇가지를 주워서 공치기를 했어요. 어느 날에는 공 하나로 모여 공차기를 했고요.



한국이 올림픽 메달을 딸 정도로 잘하는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우리들이 쉽게 배우고 접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아요. (33쪽)



  텔레비전이 이제 슬슬 집집마다 하나씩 놓이던 이무렵, 아버지 어깨너머로 여러 운동경기를 지켜보았고, 동무들하고 야구장 가까운 언덕을 찾아가서 먼발치로 경기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요새야 경기장을 판판한 터에 올립니다만, 예전에는 마을 한복판에 경기장이 선 터라, 언덕받이라든지 건물 옥상을 찾아가서 슬쩍슬쩍 넘겨다보곤 했어요.


  이무렵 야구장갑을 사주는 어버이는 드물었습니다. 야구장갑은 만지기도 어려웠는데, 아무튼 푼푼이 돈을 모아 공 하나를 장만하면, 이 공으로 온 아이들이 신나게 하루를 누릴 만했어요.



왜 축구 연맹은 힘이 센 ‘대기업’의 광고는 환영하면서도, 힘이 약한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골 세리머니는 ‘정치적’이라고 금지하는 걸까요? 당연히 돈 때문이에요. (92쪽)



  이제 텔레비전뿐 아니라, 셈틀로, 또 손전화로 운동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운동경기를 틀어주는 곳은 광고삯을 받는데, 경기를 틀어주는 틈틈이 광고를 곁들일 뿐 아니라, 운동선수는 옷에 온갖 광고를 덕지덕지 붙입니다. 오로지 돈으로 경기를 뛰고, 돈으로 경기를 이기거나 지며, 돈으로 이 지구별 곳곳에 운동경기 이야기가 퍼집니다.


  문득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이름난 사람이나 구단이 경기를 할 적에 이를 지켜보는 기자가 매우 많아요. 경기 이야기를 글로 담는 기자도, 사진으로 찍는 기자도 많지요. 그리고 이런 글하고 사진을 읽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거나 짚거나 챙기거나 알아보는 기자는 얼마나 될까요? 여느 삶터를 깊이 파고들거나 여느 삶자리를 두루 돌아보면서 글이나 사진으로 담아내는 기자는 몇이나 있을까요?



더 많은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더 잘하는 운동선수들이 필요하고, 그런 선수들을 키워 내기 위해서 학교는 어린이 때부터 맘껏 놀 틈도, 수업을 들을 기회도 주지 않고 운동만 시켰거든요. (60쪽)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탁민혁·김윤진, 철수와영희, 2019)를 읽으면서 ‘스포츠·운동경기’를 생각합니다. 1988년에 태어난 ㅎ신문은 ‘운동경기’라든지 ‘방송편성표’라든지 ‘주식시세표’를 다루지 않겠노라 했으나, 이 당찬 몸짓은 몇 해 가지 못했습니다. 운동경기를 안 다루는 신문이나 방송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로지 운동경기만 하는 이들이 늘면서 여느 사람들이 쉽게 누릴 수 있는 놀이판은 사라지고, 돈을 들여야 구경할 수 있는 커다란 경기장하고 돈을 들여서 이모저모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운동경기가 퍼집니다. 그리고 운동경기 이야기만 다루는 신문이나 잡지가 무척 많아요.



‘스포츠는 남자들만의 것’이라고 담을 쳐 놓고 오랫동안 거기에 여성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 아닐까요? (123쪽)



  몸을 튼튼히 다스리면서 마음을 맑게 북돋우려는 뜻으로 운동경기를 한다는 말을 이제는 더 안 하지 싶습니다. 이름을 더 날리고 돈을 더 버는 길로 치우치는 운동경기이지 싶습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나라사랑이 되고, 더 빼어난 솜씨인 몇몇 사람을 지켜보면서 손에 땀을 쥔다는데, 이러다 보니 메달에 눈이 멀어 주먹다짐이나 뒷돈이 불거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운동경기에 돈을 걸고, 운동선수 스스로 뒷돈을 받아서 경기를 이리저리 꾸미는 일까지 벌어져요. 또, 갖가지 볼썽사나운 일을 터뜨리기도 하고, 어린이나 푸름이를 마치 ‘메달 기계’가 되도록 다그치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어느 누구라도 약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기사도라고 하면 어떨까요? (134쪽)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는 참으로 드문 책입니다. 푸름이한테 스포츠가 무엇인가 하고 알려주는 책도 드뭅니다만, 어른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운동선수나 기록’이 아닌 ‘스포츠하고 얽힌 숱한 삶과 삶터 이야기’를 짚는 책도 드뭅니다. 생활체육이란 이름이 낡은 말이 되어 버렸구나 싶은 흐름을, 입시지옥 못지않게 또아리를 튼 엘리트체육이라는 흐름을, 앞으로는 같이 어울리고 함께 아끼면서 나아갈 길을 새로 찾자고 하는 목소리를 내는 책이 참으로 드뭅니다.



(뉴질랜드는) 농장에서 일하다 장화를 신고 와서 골프를 치는 현지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국이었으면 격식에 어긋난다며 쫓겨났을 텐데 말이죠. (219쪽)



  어떤 옷이나 연장을 챙겨야 그 운동경기를 할 만한 터전인지, 아니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가볍고 즐겁게 몸을 움직이면서 하루를 누릴 만한 터전인지를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돈을 치러서 구경하러 가는 경기장이 더 커져야 하는지, 집 가까이 너른터에서 누구나 마음껏 여러 가지 운동을 누릴 수 있어야 즐거울는지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자동차를 줄이고 찻길을 줄여서 마을마다 너른터를 넓히면 좋겠습니다. 나무를 심는 빈터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어른도 가볍게 공을 차거나 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숱한 운동선수가 풋풋한 나이에만 전문 운동선수로 뛰다가 아주 젊은 나이에 그만두는 흐름은 사라지면 좋겠어요. 엄청난 돈을 퍼붓고 아름드리 숲을 짓밟으면서 큰 경기장을 짓는 세계대회나 올림픽은 이제 그만해도 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아늑하면서 즐거운 삶을 지을 터전이 있고 난 뒤에라야 큰 경기장을 짓든 세계대회를 치를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생활체육이 없이 엘리트체육만 넘실댄다면, 아이들이 어떤 놀이라도 신나게 벌일 빈터나 풀밭이 없이 우람한 경기장만 늘리려 한다면, 우리 몸이며 마음도 그리 안 튼튼하고 썩 안 아름답겠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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