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다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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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푸른책 2021.12.16.

사랑인가 아닌가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0.10.25.



  《이치고다 씨 이야기 1》(오자와 마리/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0)를 오랜만에 되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책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이 빛은 두고두고 흐릅니다. 이와 달리 장사하는 책은 언제나 장사스럽습니다.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장삿속은 사그라들지 않아요.


  민낯은 틀림없이 불거집니다. 민낯을 감추며 살면 언제까지나 창피도 부끄러움도 감추는 나날입니다. 민낯을 밝혀서 나쁠까요? 민낯은 민낯일 뿐입니다. 얄궂은 짓을 했다면 스스럼없이 털어놓고서 새길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았다면 이 바보짓을 이제 씻고서 새롭게 살아갈 노릇입니다.


  감춘대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숨긴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털어내려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창피한 지난날을 천천히 달래지요. 씻어내려고 마음을 쓰기에 부끄러운 어제를 하나하나 다독여요.


  그림꽃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푸른별 사람하고 바깥별 사람이 만나서 엮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깥별 사람은 ‘몸’이 없어도 넉넉한 숨결로 살아왔는데, 어느 날 그만 이녁 별이 터지는 바람에 푸른별로 스몄다고 합니다. 몸이 없이 살아가던 바깥별 사람은 죽음이 따로 없고, 밥을 먹을 일조차 없다지요. 순이돌이(여남)로 가르는 겉모습마저 없고요.


  이와 달리 푸른별은 몸뚱이가 있어 밥을 먹고 옷을 입습니다. 순이돌이로 갈라서 짝을 맺으려고 합니다. 바깥별 사람한테 푸른별은 수수께끼투성이에 낯설고, 푸른별 사람한테 바깥별은 얼토당토않거나 믿기지 않는 삶일 만합니다. 이리하여 두 다른 별사람이 이곳에서 서로 다른 몸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다른 마음을 새롭게 읽을 만합니다.


  다만, 둘 사이에 앙금이나 티끌이 없는 맑은 사랑일 적에 마주할 만해요. 이렇게 하면 좋거나 저렇게 굴면 나쁘다고 울타리를 세우면 어느새 엇갈립니다. 돈이나 밥이나 옷을 주기에 사랑이 된다는 터무니없고 바보스러운 생각에 아직 사로잡혀서 살아가나요? 오직 마음을 띄우고 받을 적에 시나브로 사랑이 싹트는 줄 아직 모르는 채 오늘을 맞이하나요?


  오롯이 사랑이기에 빛납니다. 사랑일 적에만 오롯이 빛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거짓에 눈가림에 속임짓입니다. 둘레를 봐요. 삽차로 밀어대는 저 손길에 사랑이 깃들었나요, 아니면 돈을 바라는 생각이 가득한가요? 숱한 나라지기에 벼슬아치에 글바치는 이 땅에서 사랑을 펴려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그들 자리값을 거머쥐면서 이름하고 돈을 움켜잡는 생각에 사로잡힌 마음인가요?


ㅅㄴㄹ


“너, 설마 전엔 고양이였니?” “아, 응. 어떻게 알았어?” “바로 오늘 아침에 들었거든.” “뭐, 말하자면 길긴 한데. 내 고향은 지구와는 다른 공간이야. 사람들은 더 이상 육체라는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다툼도 기아도 없느 평화로운 세계.” “천국?” “아니. 아마 우주 어딘가의 진화한 혹성일걸.” (19∼20쪽)


“기껏 수화 가르쳐 줬는데, 쓸 기회가 없었네.” “응, 하지만 뭐, 급할 거 없잖아?” “그래.” ‘이 아인 어리버리하지만, 중요한 건 파악하고 있어.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필요한지.’ (77쪽)


“이치고다 씨도 고향이 그리울 텐데 나만 가는 것도 미안하고, (내가) 시골에서 돌아왔는데 (이치고다 씨가) 집에 없으면 엄청 충격받을 것 같아. 내 고향 보고 싶지 않아?” (89쪽)


 “슬슬 가야지. 누나가 걱정하겠다.” “정말 그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그럼 누나 결혼도 축하해 줘.” “좋은 사람이면 축하해 줄 거야.” “진짜지?” “그럼.” (113∼114쪽)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야.” “뭐어? 충분히 수상하잖아. 역시 반대야.” “그냥 질투 아니고?” “당연하지! 아냐. 그런 녀석한테는 누나가 아까워. 누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못 돼.” (133쪽)


“음. 행복해.” “맛있어?” “응. 먹어 볼래?” “마음만 받을게.” (15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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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6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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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12.11.
모든 곳에는 저마



《행복한 타카코 씨 6》

 신큐 치에

 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1.9.15.



  《행복한 타카코 씨 6》(신큐 치에/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1)을 읽었습니다. 이 꾸러미는 여섯걸음으로 매듭짓습니다. 그림님이 나란히 선보이는 《와카코와 술》은 어느덧 열일곱걸음까지 나오는데, 저로서는 “술꾼 와카코”보다는 “소리꾼 타카코” 쪽으로 마음이 갑니다. 수수하게 하루를 살아내면서 둘레를 마음으로 아우르는 이야기가 흐르는 《タカコさん》이요, 오늘 하루를 애쓴 스스로한테 술 한 모금을 올리는 줄거리를 잇는 《ワカコ酒》입니다.


  가만 보면 하나는 ‘와카코’요, 둘은 ‘타카코’입니다. 둘 모두 ‘카코’이면서 술을 즐기고, 소리에 감도는 숨빛을 읽는 사람입니다. 다만 “술꾼 와카코”는 먹을거리에 기울고, “소리꾼 타카코”는 조용히 살림을 지으면서 나누는 길로 갑니다.


  모든 곳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잇는 길’입니다. 멈춘 소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마디로 멈춘 소리가 아닌, 생각을 담은 소리로 가며 ‘말’로 거듭나고, 생각을 담은 소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는 사이에 삶을 얹어서 이야기로 피어납니다.


  삶을 얹지 않거나, 살림을 들려주지 않으면, 텅 빈 말이면서 잔소리이기 일쑤입니다. 삶을 얹기에 아무리 수수해 보여도 이야기요, 살림을 담기에 아무리 하찮게 여겨도 이야기입니다. 이와 달리 겉으로 그럴듯하게 꾸미지만 삶이나 살림하고 동떨어지면 잔소리나 헛소리에 그쳐요. 혼자서만 떠들면 혼잣말이랍니다. 마음에 웅크리기만 할 적에도 혼잣말이에요. ‘이야기’란, 우리가 저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사람으로 가는 길인 줄 스스로 느끼면서 말에 생각을 심는 하루요, 소리에 뜻을 얹어 담아내려고 하는 몸짓이라는 속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여러모로 보면 《행복한 타카코 씨》가 여섯걸음에서 멈추어 아쉽지만, 굳이 늘어뜨리지 않고 끝내기에 한결 빛나는 그림꽃책으로 꼽을 만하겠다고도 생각합니다.


ㅅㄴㄹ


‘남의 입을 빌린 ‘쓴소리’는 그저 무책임한 험담일 뿐이다.’ (55쪽)


‘민폐 행위라고 느끼는 우리가 속이 좁아진 걸까?’ (75쪽)


“타카코 씨의 본 모습은 그런 느낌이구나! 엄마한테 온 전화예요? 고향이 시코쿠였던가?” “다들 언제 본래 모습이 나와?” “난 본가의 개한테 개의 언어로 말해.” (85ㅉ고)


‘원래부터 다양한 것들이 말을 하고 있다.’ (99쪽)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렇게 기뻐하는 것 자체가 분명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도 깨달은 나는 역시 행복하다.’ (120∼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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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eShinkyu #新久千映 #タカコ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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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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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센티미터의 일생 1 - SC Collection SC컬렉션 삼양출판사 SC컬렉션
시라카와 긴 지음, 심이슬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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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10.8.

키높이하고 다른 눈높이


《50센티미터의 일생 1》

 시라카와 긴

 심이슬 옮김

 삼양출판사

 2020.9.21.



  《50센티미터의 일생 1》(시라카와 긴/심이슬 옮김, 삼양출판사, 2020)는 고양이가 서서 걸어다니는 키높이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사람 키높이가 아닌 고양이 키높이로 삶을 바라볼 적에는 확 다를밖에 없다는 줄거리를 들려주지요.


  그런데 고양이 키높이는 50센티미터가 맞을까요? 고양이는 땅바닥에서만 살지 않아요. 나무도 지붕도 담벼락도 거뜬히 올라탑니다. 고양이가 하루를 보내는 곳은 으레 사람 키높이보다 훨씬 높아요.


  고양이가 바라보는 높이라면 50센티미터가 아닌 2∼3미터쯤으로 여겨야 어울리겠다고 생각합니다. 낮에도 슬렁슬렁 돌아다니지만 밤에도 슬렁슬렁 마실을 하는 고양이입니다. 밤에도 잠을 자지만 낮에도 잠을 자는 고양이예요. 사람 사이에 섞이기도 하나, 사람이라면 진저리를 치면서 멀리 떨어지기도 하는 고양이입니다.


  사람은 어떠 키높이일까요? 멀뚱히 서서 내려다보는 키높이가 있을 테고,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거나 무릎을 꿇고서 함께 보는 키높이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는 키높이가 있고, 부릉이(자동차)에 올라탄 키높이가 있어요. 높다란 잿빛집에 들어선 키높이라든지 숲으로 둘러싼 시골집에서 노래하는 키높이가 있어요.


  고양이라 해서 나란한 키높이가 아니요, 사람이기에 똑같은 키높이가 아니에요. 눈을 맞출 줄 안다면 고양이랑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 샘솟아요. 눈을 맞추지 않으면 사람 사이에서도 아무런 사랑이 안 솟습니다.


  마음으로 보려 하기에 마음을 읽을 뿐 아니라 즐겁게 만나요. 마음으로 보려는 생각을 짓지 않으니 마음조차 못 보고 삶이며 살림을 등돌려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눈빛이요 숨빛이면서 삶빛인가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ㅅㄴㄹ


“고양이야 천지에 널렸는걸. 넌 정말이지,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나.” “아니, 4마리나 나란히 걷고 있더라니까? 귀여워라!” (21쪽)


“뭐 하는 거야?” “뭐 하냐니? 이름 지어 주고 있잖아.” “에엑? 대, 대체 왜?” “당연히 그래야 애착이 가잖아. ‘길고양이’라는 통칭이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불러 주면.” (59쪽)


‘문득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다. 저렇게 끝나면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다.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된다. 끝나면, 지금 이러고 있는 내 마음도 틀림없이 …….’ (91쪽)


“그래도 우린 고양이야. 누구든 마지막에 의지하는 건 자신뿐. 결국 혼자 살고 혼지 죽지.” (157쪽)


#白川蟻ん #ゴジュッセンチの一生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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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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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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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낌글은 2010년에 처음 썼습니다.

어느덧 열한 해를 묵은 느낌글이기에

요모조모 손질했습니다.

이동안 이 만화책은 판이 끊어졌습니다.

헌책집에서 찾아내는 이웃님이 늘기를 바라며.

그리고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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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9.17.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리나요



《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0.7.15.



  고양이를 다루는 그림꽃(만화)이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글책이나 그림책도 차츰 늡니다. 예부터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늘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부쩍 나오지 않았습니다. 집고양이 얘기이든 골목고양이 삶이든, 이렇게 이래저래 다루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책이나 그림꽃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낸 이들은 참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리나요? 그저 바람(유행)처럼 그리지는 않나요? 집에 고양이 한 마리쯤 으레 키우니 손쉽게 고양이 이야기를 그리지는 않나요?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고양이를 그린다면, 나와 ‘똑같이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다른 삶을 얼마나 들여다보며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글붓(연필) 한 자루 이야기이든, 걸상 하나 이야기이든, 책 한 자락 이야기이든, 신 한 켤레 이야기이든, 슈룹(우산_ 하나 이야기이든 얼마든지 그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보며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그림꽃책 《고양이 동네》(이와오카 히사에/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0)를 만나고 나서 이 그림꽃님이 선보인 《토성 맨션》이며 《파란 만쥬의 숲》이며 《하얀 구름》을 만났습니다. 흔히 다룰 만하면서도 깊거나 넓게 파고드는 일이 드문 이야기를 수수하게 짚어 나가는 붓끝이 정갈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려니 여기거나 그렇겠다고 여기면서 지나칠 대목을 왜 그러하려나 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숨빛을 붓끝으로 담는구나 싶어요.


  일본에서 나온 이름은 “ねこみち”입니다. 우리말로는 “고양이 동네”라기보다 “고양이길”이 어울립니다. 고양이가 가는 길, 고양이가 바라보는 길, 고양이가 살아가는 길, 이런 길을 다룬다고 할 만한데, 찬찬히 읽노라면 “엄마길”이나 “엄마가 바라보는 길”이나 “엄마가 살아가는 길”을 그리네 싶어요.


  처음부터 주루룩 읽고 나서, 군데군데 문득문득 펼쳐서 읽습니다. 그림꽃님은 “고양이를 맡아 기르고 챙기며 보살피는 엄마”가 바라보는 길을 고양이하고 나란히 놓으면서 그렸구나 싶습니다.


  이 《고양이 동네》에 나오는 고양이 ‘타이츠’는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머무릅’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고양이 타이츠는 가장 느긋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고양이 타이츠한테 늘 말을 겁니다. 고양이 타이츠는 사람 말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듣는데, 못 알아들어 가만히 있는다 여길 수 있고,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으로 새긴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도 ‘고양이가 내 푸념을 들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집님과 매한가지로 고양이 타이츠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말을 거는 엄마가 이 《고양이 동네》를 이어가는 고갱이일 수 있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펼칩니다. 그래, 이름은 “고양이 동네”이지만, 이 고양이 마을을 오롯이 그리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마을 한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담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마을에 머물며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빠도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어깨동무(성평등)이니 무어니 떠들어도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일본도 돌이(남자)는 돌이끼리 바깥일을 합니다. 이 나라도 저 나라도 순이(여자)는 집에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꾸립니다. 순이돌이(남녀)가 함께 집일을 하며 함께 집에서 지내고 함께 마을을 들여다보거나 함께 사랑하는 일은 너무 드뭅니다. 마을을 깨끔하게 가꾸거나 정갈하게 돌보는 몫은 온통 순이가 합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아이를 배움터로 보냅니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이불을 말린 다음 가게로 가서 저녁거리를 마련합니다. 마른 빨래를 걷어 옷칸에 넣고 ‘어제와는 다른 저녁거리’를 생각하다 보면 곧 하루가 저뭅니다. 참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23쪽)” 하는 생각이 절로 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숨을 짓는 엄마 옆에 고양이 타이츠가 다가와 살며시 앉습니다. 고양이 타이츠가 엄마 곁에 앉아 마을을 함께 바라봅니다.


  고양이랑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이야기를 살가이 풀어내는 책을 보면 반갑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반갑기도 하지만, ‘살가이 풀어내는 그린이 마음결’이 더없이 반갑습니다.


  곁에서 노상 같이 살아가는 님을 살가이 보듬으며 이야기 하나 엮는 일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이든 그림이든 그림꽃이든 빛꽃(사진)이든, 우리 곁 살가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거나 껴안으며 알뜰살뜰 담는 사람은 아직 드물구나 싶습니다. 가까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졌다고 할는지, 가까이 있어 흔하고 쉬우니까 아예 젖혀 놓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받으니 사랑이라고 안 느끼는 어머니 품일 수 있겠지요. 한결같이 누리니까 믿음이라 깨닫지 못하는 어버이 숨결일 수 있을 테지요.


  그림꽃책 《고양이 동네》는 ‘숨쉬니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 삶을 차분히 담아 주어 반갑습니다.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고이 실어 주어 따스합니다. ‘애쓰기보다 사랑해 주자’고 말하는 엄마 손길을 느끼도록 해주어 사랑스럽습니다.


ㅅㄴㄹ


“와, 이 아이예요?” “네, 마지막 한 마리예요. 괜찮으세요?” “네. 열심히 키울게요.” “열심히는 안 해도 되니까, 많이 귀여워 해 주세요.” “네.” (165쪽)


“있잖아, 아빠, 오늘 타이츠가 …….” “그랬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잘못이니까. 새 옷 사 달라고 그랬어.” “리쿠, 요즘 엄마가 새 옷 입은 거 본 적 있니?” “응?” “엄마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지 않니?” “그런가?” (123쪽)


“리쿠는 잘 있니?” “아, 응. 이제 5학년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해.” “어머, 기특해라.” “이대로 리쿠도 타이츠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 “벌써부터 쓸쓸해 하지 마.” “쓸쓸해 한 거 아니거든!” “그러셔?” “괜찮아. 둘 다 자립해도. 나도 어른인걸. 안 놀아 줘도 괜찮아.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쓸쓸해 하는 거 맞구먼.” (67쪽)


“응? 타이츠? 밤에 보는 넌 아이돌만큼이나 귀엽구나. 혹시 엄마 기다린 거니?”(60쪽)


 “네가 창가에서 자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돼.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할 일도 많은데. 가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고 말야. 리쿠 아빠도, 리쿠도 많이 사랑해. 하지만 조금 지친 걸까. 응? 타이츠.”(23쪽)


“어머, 타이츠도 왔니? 응? 저리 가. 타이츠. ……. 엄마가 졌다.” ‘숨쉬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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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ねこみち #岩岡ヒサエ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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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로봇 퐁코 2 - S코믹스 S코믹스
야테라 케이타 지음, 조원로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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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9.6.

나이를 먹기에 늙지 않으니


《고물 로봇 퐁코 2》

 야테라 케이타

 나민형 옮김

 소미미디어

 2021.1.14.



  《고물 로봇 퐁코 2》(야테라 케이타/나민형 옮김, 소미미디어, 2021)을 읽으면 덜컥덜컥 낡은 심부름꾼이 보내는 하루는 덜컹덜컹 오락가락이지만, 이처럼 흔들리기에 오히려 이야기가 새롭게 태어나는구나 싶습니다. 심부름을 하는 아이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입니다. 숱한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살갗이 늙는다지만, 심부름꾼은 늘 아이 모습이에요. 다만 자꾸 삐그덕거릴 뿐입니다.


  늙으면 낡습니다. 낡기에 늙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늙거나 낡지 않아요. 생각이 고이고, 말이 멈추며, 스스로 새롭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잊기에 늙으면서 낡아요. 생각이 흐르고, 말을 즐겁게 가꾸며, 스스로 새롭게 살아가려는 마음이라면 언제나 젊으면서 맑고 밝아요.


  누가 곁에 붙어서 말을 걸어야 이야기가 피어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말을 북돋우고, 스스로 새롭게 걸어가는 하루이기에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똑부러지게 하지 못해도 즐거워요. 똑똑하게 해내지 못해도 재미나요. 아이들이 까르르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을 배워 봐요. 넘어지고 자빠져도 깔깔깔 웃고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어나는 아이한테서 삶길을 배워 봐요.


  먼곳에서 이야기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야기는 늘 우리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에서 찾으면 됩니다. 먼곳에서 스승을 만나야 배우지 않아요. 우리는 늘 우리 스스로 배울 뿐 아니라, 우리 곁에서 노래하며 노는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그림꽃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조그맣습니다. 낡고 삐그덕거리는 심부름꾼 아이가 스스로 어떻게 이야기를 짓는지 들려줍니다. 나이를 잔뜩 먹고서 생각을 멈추어 버린 사람이 왜 어떻게 늙으며 낡는가 하고 보여줍니다. 나이가 아직 어리거나 젊다지만 생각이 갇힌 채 낡은 틀에 사로잡히는 사람도 함께 보여주고요.


ㅅㄴㄹ


“이래 봬도 30년째 가사 도우미 로봇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5쪽)


‘퐁코는 병아리 무덤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역시 로봇도 슬픔을 느끼는 건가?’ (52∼53쪽)


“퐁코. 네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단다.” “그런가요?” “사람이 늙으면 이유도 없이 슬퍼지거나 힘들어지곤 하거든. 얼마 안 가 평소의 똥고집 영감탱이로 돌아올 거야.” (126쪽)


“거짓말이지? 걸으라고? 말도 안 돼. 자율주행 택시도 없다니. 거기다 로봇은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구형.” “아직 현역입니다!” “로봇뿐만이 아니야. 마을도 사람도 죄다 케케묵었어.” (142쪽)


“해가 지니까, 되게 빨리 깜깜해지네!” (152쪽)


#ぽんこつポン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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