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76) 천하의 1 : 천하의 남사고도
천하의 남사고도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의 묏자리는 잘 보면서 정작 자신의 아버지 묏자리는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말예요
《강난숙-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을까?》(청년사,2008) 23쪽
“다른 사람의 묏자리”는 “다른 사람 묏자리”로 다듬습니다. “자신(自身)의 아버지 묏자리”는 “제 아버지 묏자리”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천하(天下)’는 “(1) 하늘 아래 온 세상 (2) 한 나라 전체 (3) 온 세상 또는 한 나라가 그 정권 밑에 속하는 일 (4) (일부 명사 앞에 쓰이거나 ‘천하의’ 꼴로 쓰여) 매우 드물거나 뛰어나서 세상에서 비길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토씨 ‘-의’를 붙이는 말꼴은 넷째 뜻으로 쓰는 셈입니다.
그런데, “천하를 다스리다”라 해도 나쁘지 않지만, “온누리를 다스리다”라 하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공산당 천하”라면 “공산당 판”이나 “공산당 누리”나 “공산당 나라”처럼 적을 수 있겠지요.
천하의 남사고도
→ 내로라하는 남사고도
→ 온누리에 비길 바 없는 남사고도
→ 묏자리 잘 보는 남사고도
→ 그 잘난 남사고도
→ 그 똑똑한 남사고도
…
온누리에 비길 데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둘도 없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놓고 “그 잘난”이라든지 “그 똑똑한”이라든지 “그 대단한”을 꾸밈말로 넣어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에서는 묏자리를 잘 보는 사람을 이야기하니, “묏자리 잘 보는 아무개”라고 적어도 됩니다.
천하 갑부 → 알아주는 갑부
천하 절경 → 끝내주는 모습
천하의 명기 → 아주 훌륭한 기생
천하의 못된 놈 → 더없이 못된 놈
한자말이건 한국말이건, 쓰는 만큼 더 익숙하게 쓸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대로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한자말 ‘천하’를 써 버릇하면 토씨 ‘-의’가 자꾸 달라붙습니다. 어떤 말씨로 생각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삶이 차츰 달라지는 줄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4341.3.21.쇠./434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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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똑똑한 남사고도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 묏자리는 잘 보면서 정작 제 아버지 묏자리를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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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05) 천하의 2 :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중년의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북새통》 67호(2008.4.) 28쪽
“중년(中年)의 위기(危機)는”은 “아찔한 중년”이나 “아슬아슬한 중년”이나 “흔들리는 중년”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습니다. ‘중년’이 한 사람한테 어느 나이 때인가를 헤아려 봅니다. 나이 마흔을 넘기는 때부터 쉰 살 언저리입니다. 흔한 말로 “꺾이는 나이”가 한자말 ‘중년’으로 가리키는 때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는 “파인만 씨도 나이가 꺾이니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나 “파인만 씨한테도 꺾이는 나이에는 위기가 어김없이 찾아왔다”로 손보면 어떨까 싶군요.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 한결같던 파인만 씨한테도
→ 거침없던 파인만 씨한테도
→ 잘나가던 파인만 씨한테도
→ 훌륭한 파인만 씨한테도
…
보기글에 나오는 ‘천하의’는 거침이 없거나 씩씩하거나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뜻과 느낌 그대로 적을 때에 가장 알맞습니다. 통째로 고쳐쓸 수 있겠지요. “한결같던 파인만 씨한테도 중년이라는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나 “거침없던 파인만 씨한테도 꺾이는 나이에는 위기가 어김없이 찾아왔다”로. 4341.4.11.쇠./4346.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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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던 파인만 씨도 꺾이는 나이는 어김없이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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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7) 천하의 3 : 천하의 나쁜 놈
혹시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면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욕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죠
《노을이-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철수와영희,2012) 59쪽
‘혹시(或是)’는 ‘아마’나 ‘어쩌면’이나 ‘문득’이나 ‘이를테면’으로 손볼 수 있어요. 이야기 나누는 흐름을 살펴 알맞게 손봅니다. “욕(辱)할 것 같아”는 흔히 쓰는 말투로 여겨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나무랄 듯해서”나 “꾸짖을까 봐”나 “손가락질하겠다 싶어”로 손질하면 한결 나아요. 국어사전 말뜻을 살피면 ‘욕’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말로 쉽고 알맞게 하면 됩니다. “마음이 불편(不便)하죠”는 “마음이 안 좋지요”나 “거북하지요”나 “꺼림칙하지요”로 다듬습니다.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 천하에 몹쓸 놈이라고
→ 이 나쁜 놈이라고
→ 이런 나쁜 놈이라고
→ 몹시 나쁜 놈이라고
→ 대단히 나쁜 놈이라고
…
이 보기글은 겉으로는 한국말처럼 보이지만, 조금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천하의 나쁜 놈” 같은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를 껍데기만 한글로 적은 모습입니다. 토씨 ‘-의’ 넣은 자리를 고쳐 “천하에 나쁜 놈”처럼 적으면 그나마 한국말 맛이 살짝 난다 할 텐데, 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한국사람은 차츰 줄어듭니다.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이 다 있나”처럼 말하고, “이 벌건 대낮에 무슨 짓이람”처럼 말합니다. 이 보기글처럼 쓰는 자리에 한국사람은 ‘-에’를 넣습니다. ‘-의’를 넣지 않아요.
글흐름을 더 헤아리면, ‘천하의’는 꾸밈말 구실을 합니다. 나쁜 놈을 말하는데, 어떻게 나쁘다 하는 뜻을 북돋우는 구실입니다. 그래서 ‘몹시’나 ‘매우’나 ‘아주’나 ‘참말’이나 ‘대단히’나 ‘무던히’ 같은 낱말을 넣으면 잘 어울립니다. ‘이’나 ‘이런’이나 ‘이렇게’나 ‘이다지도’나 ‘이 따위로’ 같은 말마디를 넣어도 썩 어울려요.
이런 말투 저런 말씨 그런 낱말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 ‘-의’ 말씀씀이는 단단히 들러붙어요. 스스로 아름답게 쓰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말투는 아름답게 거듭나지 못해요. 스스로 곱게 추스르려고 힘쓰지 않으면, 우리 말씨는 곱게 빛나지 못해요. 434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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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면 아주 나쁜 놈이라고 나무랄 듯해서 거북하지요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