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와 책읽기


 일본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터졌다. 원자력발전소가 말썽이라기보다 지진과 큰물결에 휩쓸리면서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터졌다. 지진과 큰물결 때문에 무너지거나 망가지는 시설과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련만, 다른 무엇보다 원자력발전소 터지는 일이 말썽이 된다.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을 써서 전기를 얻도록 한다. 우라늄을 쓰면 방사능이 새어나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방사능을 두려워 한다. 방사능으로 물과 바람과 흙이 더러워지면 사람 삶터는 종잡을 수 없다. 그런데 방사능에 앞서 전기를 쓰지 못한다. 방사능도 방사능일 테지만, 앞으로 어느 곳에서건 원자력발전소이든 다른 발전소이든 걱정일밖에 없다. 오늘날 도시 삶터는 전기 없이는 돌아가지 못한다. 전기 없는 도시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전기 없으면 아무런 기계도 건물도 움직이지 못한다. 전기 없이는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공장을 돌리지 못하거나 기계를 쓰지 못하면 석유를 뽑아올리지 못할 뿐더러, 석유를 뽑아올리더라도 기계를 움직일 기름을 거르지 못한다.

 머지않아 종이책은 사라지고 전자책이 태어난다고들 말한다. 틀림없이 전자책이 눈부시게 태어날 뿐 아니라 널리 사랑받으리라 본다. 그런데 전자책은 어떻게 읽지? 전기가 없이도 전자책을 읽을 수 있나. 전기가 없으면 손전화나 셈틀을 쓸 수 있나. 전기가 없으면 도시사람은 무엇을 하지. 전기 없는 시골에서는 어떤 기계를 써서 흙을 일구지. 사람이 손으로 조그맣게 일구는 논밭이라면 전기 먹는 기계를 다루지 않아도 된다만, 더 값싸게 얻는다는 푸성귀나 곡식을 얻자며 기계를 써야 하는 농사일은 어찌 될까. 똥거름 먹을거리 아닌 화학농 먹을거리는 앞으로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값싸게 사들일 수조차 없을 텐데, 이때에 이 나라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회사를 다니며 무슨 삶을 일굴 수 있는가. 은행계좌에 돈은 넘칠 테지만 밥 한 그릇 먹을 수 없는 노릇인데, 전자책이란 우리한테 무슨 마음밥이 되거나 어떤 이야기보따리가 될까.

 전자책이 훨훨 날아도 종이책을 밀어낼 수 없다. 그런데, 종이책이 전자책에 밀리지 않고 살아남더라도, 전기이며 석유이며 쓰지 못하는 나날에는 종이책 또한 무슨 쓸모가 있을까 궁금하다. 몸을 쓰고 손을 놀려야 하는 사람이 되기 앞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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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날갯짓과 책읽기


 봄날 깨어난 나비 날갯짓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바야흐로 봄이 되었고, 이 봄에 숱한 나비들 날갯짓을 볼 수 있다면서 기뻐할 수 있다. 나비 날갯짓을 바라보는 사람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에 나비 날갯짓을 담으려고 할 테지.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자가용을 몰며 오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가용 창밖으로 마주하는 모습이 두 눈으로 들어오고, 이러한 모습에 따라 삶을 느낄 테며,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이러한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지.

 더 많은 책이란 참 부질없다. 더 좋은 책 또한 몹시 덧없다. 더 아름다운 책이든 더 놀라운 책이든 더 훌륭한 책이든 얼마나 쓸모있을까.

 나한테는 더 많은 돈이나 더 나은 이름값이나 더 큰 힘이 보람찰 수 없다. 고운 사랑 나눌 살붙이가 보람찬 삶이며, 고운 손길로 고운 풀숲을 마주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보람찬 나날이다.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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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치며 책읽기


 토요일 낮, 음성 읍내 빵집에 찾아간다. 빵집에서 빵 한 조각 산다. 내가 셈할 때 어느 아가씨가 내가 셈한 빵조각을 옆으로 밀치며 당신 초콜릿을 셈하자며 내민다. 이 아가씨와 내가 거꾸로일 때 아가씨는 어떤 느낌 무슨 생각일까.

 책방에서 앞사람 셈이 끝나지 않았을 때에 밀치며 파고들 사람이 있던가 떠올려 본다. 꽤 드물지만 아주 드물게 겪은 적 있다.

 앞사람을 밀치거나 새치기를 해서라도 먼저 볼일 마치려는 사람은 어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일까. 이이는 책을 얼마나 빨리 읽을 수 있으며, 남보다 먼저 읽은 책으로 어떤 삶을 꾸릴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를 밀치거나 새치기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한집에서 같이 살 수 없다. 아마 우리 옆지기도 내가 이처럼 남을 밀치거나 새치기를 일삼는다면 따로 살자 얘기할 테지.

 남을 밀치거나 새채기하는 사람은 어떤 짝꿍을 만나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떠한 나날을 보내며 한삶을 꾸릴까. (4344.3.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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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서 휴가 나와 책읽기


 군대에 들어가서 책을 읽는 아이가 더러 있다. 군대에 들어간 다음 휴가를 얻어 나왔을 때에 책을 읽는 아이가 아주 더러 있다. 군대에 들어가기 앞서 책을 읽는 아이가 몹시 더러 있으며, 군대에서 나온 뒤에 책을 읽는 아이가 참으로 더러 있다.

 읍내에 식구들이 함께 나간다. 가락국수집에 들어가서 늦은 낮밥을 먹는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듯한 한 사람과 또래동무 한 사람이 들어온다. 밥집에 들어설 때부터 입에 욕지꺼리를 붙인 아이 둘은 손전화를 켜고 군대에 있는 다른 또래동무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첫인사부터 욕으로 열어 이야기 거의 모두를 욕으로 채우는 아이들은 둘레에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어른만 있는 줄 생각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보는 둘하고 손전화로 얘기 나누는 다른 하나만 생각한다.

 아이들은 군대에 들어가기 앞서부터 욕을 했을까. 아이들은 몇 살 적부터 욕을 들었을까. 아이들은 언제부터 모든 말끝마다 욕을 붙일까. 이 아이들은 제 어버이 앞에서도 욕을 일삼을까. 이 아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욕을 달까. 어쩌면 제 어버이나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는 마주하거나 마주보거나 어울리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제 여자친구하고는 어떤 말을 섞을까. 여자친구한테도 욕을 쉬 내뱉으며, 여자친구도 이 아이한테 욕을 거침없이 쏘아붙일까.

 내가 군대에 끌려들어가 스물여섯 달을 지내는 동안 내가 있던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짜기 군부대로 면회롤 오는 숱한 사람들을 보았다. 나한테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너무 외진 곳이라 아버지 어머니한테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한 번 찾아와 주셨다. 이때에 나도 한 번 외박을 할 수 있었는데, 외박을 한 번 나와 보니 외박이나 외출이라는 제도가 왜 있는지를 알 만했다. 다른 군부대는 어떠한지 모르나, 내가 있던 군부대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애인이 찾아올 때에만 외박을 시켜 준다. 여느 ‘남자’친구가 오면 외출만 되는데, 양구 읍내에서 내가 있던 군부대까지는 한참을 들어와야 한다. 우리가 휴가를 받아 밖으로 나가자면, 새벽 여섯 시 십 분에 중대장신고를 하고 여섯 시 반에 대대장신고를 한 다음, 여섯 시 사십 분에서 오십 분쯤에 연대본부로 편지나 물품을 받으러 떠나는 짐차에 얹혀 타고 나가야 한다. 이때에 대대 짐차 짐칸에 짐짝으로 실려 연대에 닿으면 한 시간인가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연대본부에 닿는 때는 으레 일곱 시 반이나 사십 분쯤이고, 여덟 시인가 여덟 시 반에 시골버스를 탔으며, 읍내에 닿기까지 한 시간 즈음 달린다. 읍내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타자면 열 시 반 차였고, 새벽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늦은아침이나 이른낮밥을 먹어야 할 텐데, 이무렵 문을 연 밥집이란 거의 없다. 쭐레쭐레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구멍가게에 들러 술 몇 병과 과자부스러기를 사서 버스를 기다리며 마시다가는, 고참들이 열한 시 반이나 열두 시 반 버스를 타자 하면서 이곳에서 밥 먹으며 술 한잔 하자면 이렇게 하곤 한다.

 서로서로 욕밖에 할 말이 없나 싶은 아이 둘 말소리가 꽤 크게 들리는 바람에 지난날 군대에 붙들리며 지내던 나날 일 몇 가지가 떠오른다. 나는 군대라는 데에 끌려가지 않았으면 욕지꺼리를 한 마디도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사회도 군대하고 마찬가지이니까, 사회살이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욕지꺼리를 배워 내 입과 손을 욕지꺼리로 물들였을 테지 싶기도 하지만, 슬픈 사회 슬픈 사람들하고는 등을 진 채 착한 사회 착한 사람을 찾아 조용한 곳으로 숨어들지는 않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사회 이 나라에서 살아가자면 군대에 끌려가서 욕지꺼리를 실컷 배우거나 욕지꺼리판에서 살아남는 길을 익혀야 하는지 모른다. 나 스스로 더 모진 욕지꺼리를 내뱉는 사람이 되든지, 둘레에서 온갖 욕지꺼리를 퍼붓더라도 그러려니 하며 한귀로 흘리도록 마음을 닦을 노릇인지 모른다.

 한 걸음을 떼고 두 걸음을 떼면서도 모든 말마디에 욕이 붙는 아이들로서는 욕이 욕 아닌 여느 말투인지 모른다. 이 아이들한테 욕이란 아주 다른 말씨이거나 훨씬 거칠며 끔찍한 말마디로 튀어나올는지 모른다.

 이 아이들은 제 짝꿍하고 사랑놀이를 해서 아이를 낳을 때에 제 새끼를 보면서 “야 이 개새끼 존나 더럽게 귀엽네.” 하고 말하려나. 욕하는 아이들은 어떤 집에서 어떤 살붙이하고 어떤 살림을 꾸리면서 살아가려나. 욕하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떤 교과서를 배우고 어떤 책을 읽었으며 어떤 동무나 어른을 사귀었으려나. 욕하는 아이들 마음을 따사로이 보듬으며 씻어 줄 책을 조용히 일굴 어른은 우리 둘레에 있을까. (4344.3.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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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가에서 책읽기


 무덤자리는 으레 볕이 잘 들고 바람 살랑살랑 부는 자리에 씁니다. 무덤자리는 살림집 얻어 지내기에도 퍽 좋은 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덤자리는 풀이 알맞게 자라도록 돌보기 마련이고, 꽤 이름난 분들 무덤자리는 꽤 크기 마련이라, 이 너른 무덤자리 잔디밭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에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이랄는지 철 덜 든 아이들이랄는지 ‘신채호’가 누구인지 아는가 모르는가 아랑곳하지 않으며 무덤자리 언덕받이에서 끝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풀밭미끄럼놀이 하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한테 신채호라고 하는 한 사람은 ‘풀밭미끄럼놀이 재미나게 하는 무덤자리 어르신’으로 자리잡을까요. 아니, 이런 어르신 이름조차 모르고 오늘 하루 또 신나게 놀았다며 가끔 떠올릴 만할까요.

 어른한테 무덤가란 식구들이 함께 찾아들어 절 몇 번 하고 나서 도시락 펼쳐 젯밥이랑 술 한잔 나누기에 좋은 자리이면서, 한동안 드러누워 낮잠 자기에 좋은 자리요, 낮잠에서 깨어났다면 책 한 권 펼쳐 읽기에 좋은 자리입니다. 어쩌면, 무덤자리를 퍽 좋은 볕자리에 마련하는 까닭은, 여느 때에는 쉬 만나지 못하던 살붙이들이 도란도란 어울리면서 이야기꽃 피울 좋은 만남터가 되도록 하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4344.3.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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