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 사진기 없는 사진작가

 


  내가 쓰는 사진기는 형한테서 받은 기계이다. 내가 쓰던 사진기는 한 해 반쯤 모두 망가져서 더는 쓸 수 없다. 형은 동생이 사진작가 길 씩씩하게 걸어가라며 사진기를 물려주었다. 게다가 렌즈도 하나 넘겨주었다. 그런데 이 사진기도 요 며칠 간당간당하다. 그제 낮에는 멀쩡하던 사진기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어제는 겨우 다시 살아나는가 싶더니 오늘도 죽었다 살았다 되풀이하면서 찍히다 안 찍히다 오락가락한다.


  사진기 한 대로 사진을 너무 많이 찍은 탓일까. 여러 해째 쓰는 캐논450디는 이제 조용히 내려놓고 새로운 사진기 장만할 길을 찾아야 할까. 캐논 회사에서는 어느덧 700디 기종까지 내놓았다. 나는 빛느낌 때문에 450디를 오랫동안 쓴다고 말하며 살았지만, 형한테서 받은 사진기도 한 번 부품갈이를 해서 썼는데 다시 죽을 동 살 동하는 모습을 보자니, 아무래도 새 사진기로 가야 하는구나 싶다.


  새 사진기는 어떻게 장만해야 할까. 어떤 새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을까. 새 물건이 아니어도 될 텐데, 언제쯤 새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길 앞으로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까. 사진기 없는 사진작가로 살아가려나, 내 사진삶 뒷바라지 해 줄 손길을 받을 수 있을까. 어쨌든, 오늘까지 해마다 삼만 장씩 사진을 베풀어 준 내 헌 사진기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이제껏 많이 힘들었지? 내 사진기야. 참말 네가 쉴 때가 다가왔는가 보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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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사진 일곱 (4346.8.1.쇠.ㅎㄲㅅㄱ)

 


지난해 봄
우리 시골집 처마에
제비 두 마리 찾아들어
헌집 바지런히 고쳐
새끼 다섯 마리 낳아
모두 씩씩하게
가을날
저 먼 바다 건너
따스한 나라로 갔어요.

 

올해 봄
어미제비 두 마리는
못 만났지만
우리 집 처마 밑에서 태어난
새끼제비 다섯 마리는
고스란히
다시 찾아왔어요.

 

그런데
우리 집 처마 밑에서 깨었어도
사진 한 장 찍으려 하니
모두 재빨리 마당 밖으로 날아가서
저 먼 전깃줄에 앉는군요.

 

하는 수 없이
부엌 모기장을 그대로 둔 채
조용히 제비들 날갯짓 지켜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모기장 그물눈 때문에
사진에 희뿌윰한 빛 어립니다.
맑은 무늬와 빛깔로 찍고팠는데
좀 서운하구나 하고 여기다가
여름날 한낮에 아이들 마당 평상에서
뒹굴며 노는 모습 슬그머니 찍으니
어, ‘모기장 필터’ 되네요.
와, 재미난걸.
요것 참.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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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삶터, 사진터, 사랑터, 이야기터

 


  따로 어느 곳을 콕 집어서 ‘사진마실(출사)’을 다닐 수 있다. 사진마실을 다닌대서 남들 흉내를 내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스스로 아름답거나 즐겁다고 여기는 데를 찾아다니면 저절로 아름답게 찍는 사진이나 즐겁게 찍는 사진을 얻는다. 다만, 사진마실을 다니면서 ‘어떤 사진을 찍으면서 내 삶을 어떻게 누리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이 있으면 먼 나라로 사진마실을 다니곤 집 둘레 골목동네를 걷든 사진 한 장 사랑스레 얻는다.


  집에서 어린 아이들 돌보는 어버이라면 좀처럼 멀리 다니기 어렵다. 어린 아이가 둘이나 셋이나 넷쯤 된다면 더더욱 바깥마실이 어려울 만하다. 이런 삶에서 사진마실은 꿈과 같다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먼 나라로 가야만 사진마실이 되지 않는다. 마을 저잣거리를 걸어도 사진마실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저잣거리를 걸어 보라. 아이들은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바쁘고, 저잣거리 아지매와 할매는 아이가 귀엽다며 빙그레 웃는다. 이보다 더 훌륭한 ‘사진연출(?)’이 어디 있으랴. 억지로 웃으라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아이들 바라보며 웃으니, 목에 사진기 걸었으면 퍽 손쉽게 사진 한 장 얻는다. 콩나물 한 봉지 사면서 놀라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다.


  집에서도 부엌과 마루와 방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 바라보며 사진마실 새롭게 누린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다니더라도 사진마실이 된다. 아이 키높이로 엎드리거나 쪼그려앉으면서 걸어 본다. 이렇게 하면서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 이제껏 느끼지 못한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 ‘집안 사진마실’이 된다.


  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 대문 밖으로 나갈 적에도 사진마실을 한다고 느낀다. 마당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 적에도 사진마실을 한다고 느낀다. 참말 내 삶터는 어디나 사진터이다. 삶터이기에 사랑을 나누는 곳, 사랑터가 되고, 사랑터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으니 이야기터가 되기도 한다.


  한여름에 벼포기 무럭무럭 자라는 곁에 선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사진 한 장 찍으며 스스로 즐겁다. 이 푸른 빛깔이 물결치면서 아이들 가슴속에 어떻게 스며들까. 내가 아이들 뒤에서 따라가며 담은 사진 한 장은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어떻게 맞아들일까. 마실을 가면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서서 달린다. 나는 짐과 가방을 들고 뒤에서 어기적어기적 따라가느라 바쁘다. 그런데 이렇게 마실을 다니며 아이들이 무엇을 들여다보고 어디에서 걸음을 멈추어 물끄러미 살펴보는가 지켜보면, 이 모습도 그림이 되고 저 모습도 사진이 된다.


  하루하루가 모여 삶이 되듯, 한 장 두 장 찬찬히 찍어 사진이야기 태어난다.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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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아름답게 아름답게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을 얻고 싶다면, 마음 깊이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아름답게 일구면 됩니다. 황금분할이나 구도를 맞춘다고 해서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구도나 틀이 아닌 마음이요 빛입니다.


  손꼽히는 사진작가 몇 사람 작품을 흉내내거나 따른다고 해서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을 얻지 못합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담아낼 때에 즐겁게 바라볼 사진을 얻습니다. 나 스스로 즐겁게 바라볼 사진이 될 때에 비로소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이 됩니다. 그럴듯하거나 멋들어지다는 모습은 오래도록 바라보기 어려워요. 겉멋이나 겉치레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담아서 찍은 사진 한 장은 썩 그럴듯하지 못하거나 그리 멋들어지지 못하다 하더라도, ‘마음이 담겼’기에 두고두고 바라볼 만합니다. 살짝 흔들리거나 빛이 덜 맞더라도 ‘마음을 담은’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립니다.


  서로를 아끼는 사랑이나 꿈이란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얼굴이 잘생겼기에 서로를 아끼는 사랑이나 꿈이 되지 않아요. 돈이 많기에 서로를 보살피는 사랑이나 꿈이 되지 않아요. 이름값이 높기에 서로를 어루만지는 사랑이나 꿈이 되지 않아요. 마음으로 우러나올 때에 사랑과 꿈이 되고, 마음으로 샘솟을 때에 사랑과 꿈으로 자라며, 마음으로 빛날 때에 사랑과 꿈을 이루어요.


  사랑을 떠올리면서 ‘사랑스럽게 살자’ 하고 생각해요. 그러면 시나브로 사랑스러운 빛 사진에 담기 마련이고, 사랑스러운 빛을 하나둘 사진으로 담다 보면, 저절로 아름다운 빛깔로 거듭나요. 내 삶을 아끼면서 마음속에 고운 꿈을 심자고 생각해요. 그러면 어느덧 고운 꿈이 아름다운 빛살로 태어나요. 사랑을 생각하기에 사랑이 되고, 꿈을 생각하기에 꿈이 되며, 아름다움을 생각하기에 아름다움이 됩니다.


  이제껏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면, 나 스스로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못했으면, 아름답게 살아갈 마음이 되지 못하고, 온누리를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지 못해요.


  여느 때에 마음을 아름답게 써요. 이웃을 바라볼 적에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봐요. 동무를 사귈 적에 아름다운 손길을 내밀어요. 풀과 꽃과 나무를 마주하며 아름다운 마음길이 되어요. 아름답게 걸어가는 삶길이 되면, 아름답게 일구는 사진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어요.


  나는 우리 아이들과 마을빨래터를 청소하고 함께 물놀이를 하면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에 구름 하얗게 흐르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여겨, 사진 한 장을 얻습니다.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은 누구나 언제라도 즐겁게 얻습니다. 4346.7.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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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사진 여섯 (4346.7.10.물.ㅎㄲㅅㄱ)

 


빛이 드리웁니다.
하늘에서
빛 한 줄기
살포시
이 땅으로
새록새록 드리웁니다.

 

한여름에는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볕살과 함께
온 들판과 숲
푸르게 밝히는
눈부신 빛입니다.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붙는 추위와 함께
온 멧골과 바다
하얗게 감싸는
포근한 빛입니다.

 

풀과 나무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햇살을 먹으면서
씩씩하고 튼튼하게
푸른 숨결 베풉니다.

 

사람은
봄에도 가을에도
푸른 숨결 있어야
비로소 삶을 일구며
서로 어깨동무하는 사랑
살가이 빚습니다.

 

빛이 드리웁니다.
해님이 풀한테
풀은 사람한테
사람은 고즈넉히 하느님한테
다 함께 빛으로 하나됩니다.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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