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 아이들 발끝

 


  아이들과 살아오며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 으레 ‘아이들 발가락’이나 ‘아이들 발’이나 ‘아이들 발끝’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한다. 사진기를 손에 안 쥘 적에는 밥을 차려서 아이들 부르며 밥상맡에 앉힐 적에 ‘밥상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먹는 아이들 뒷모습’이 꼭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더러 무릎 꿇고 앉아서 먹으라 시킨 적 없으나, 아이들은 밥상맡에서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이렇게 앉을 적에 허리가 곧게 펴면서 아이들 앉은키하고 밥상 높이가 맞기도 할 테지.


  발가락을 보고 발을 보며 발끝을 보는 동안, 아이들이 어른과 견주어 몸피가 얼마나 작은가를 또렷하게 느낀다. 튼튼하게 자라는 모습은 어느 몸 어느 모습을 보더라도 느끼지만, 저 작은 발로 씩씩하게 뛰놀며 씩씩하게 크는구나 하고 새롭게 깨닫곤 한다.


  누구나 스스로 마음에 와닿을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며 사진으로 찍는다. 내가 우리 아이들 발끝에 눈길이 꽂힌다면, 나로서는 우리 아이들 발끝을 바라볼 적마다 우리 시골살이 이야기를 들려줄 실마리를 얻는다는 뜻이라고 본다. 아이들 발끝만 사진으로 담다가, 때때로 내 발끝을 아이들 발끝 사이에 살짝 섞으면, 참말 내 발끝은 우락부락 거칠고 되게 크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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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사진 여덟 (4346.9.23.달.ㅎㄲㅅㄱ)

 


살림돈 모자라
필름사진기 더는 못 찍겠다고
이제 그만두어야겠다고
앞으로 살림돈 넉넉히 벌면
그때에 다시
필름사진기 손에 쥐어
필름 척척 감아
천천히 천천히
한 장씩 담자 생각하면서,

 

지난 몇 해 사이에 찍었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며
집일 하느라 바쁜 나머지
미처 긁지 못한 필름을
뒤늦게 긁는데,

 

빛을 제대로 못 맞추어
조금 허옇게 되거나
조금 까맣게 된 사진
드문드문 보이지만,
빛을 사랑스럽게 맞추었을 뿐 아니라
느낌도 생각도 이야기도
모두 곱게 여민
사진을 보다가,
한참 보다가,

 

디지털사진기를 쓰면서도
필름사진기를 왜 내려놓지 않았는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디지털사진기를 흑백 설정 해 놓고
얼마든지 흑백 느낌 살릴 수 있겠지.
그러나,
필름을 찾을 때까지 가슴으로 설레고,
필름을 찾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스캐너 돌리며 가슴이 떨리는 빛은,
필름사진기에만 있다.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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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새 사진기 손에 쥐면서

 


  큰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새 사진기를 장만하지 못하면서 지낸다. 그동안 쓰던 사진기는 낡고 닳아 더는 쓸 수 없다. 그렇지만, 둘레에서 사진기를 빌려주면서 사진찍기를 이을 수 있었다. 빌려서 쓰던 사진기도 차츰 낡고 닳아 못 쓸 만큼 되는데, 그때마다 부속품을 갈고 손질하면서 사진찍기를 잇는다.


  고치고 손질한 사진기가 하나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란, 새 사진기 장만하기. 어떻게 장만할 수 있을까, 언제 장만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내는데, 형이 새 사진기를 장만해 준다. 새 기계를 만진 지 얼마만인가 하고 헤아리며 살살 쓰다듬는다. 낡은 사진기는 내부청소를 맡겨도 이내 먼지가 스며들어 ‘사진을 찍을 때마다 구석구석에 먼지 자국’이 함께 찍혔다. 새 사진기는 새로 쓰는 사진기인 만큼 ‘하늘에 대고 사진을 찍어도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늘빛을 사진으로 담으며 살그마니 응어리가 풀린다. 요 몇 해 동안 사진을 찍으며 ‘먼지가 안 찍히’도록, 또 ‘사진기 거울에 생긴 티끌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고 요모조모 살피며 찍느라 애먹던 앙금이 풀린다. 새 디지털사진기인 만큼, 예전 디지털사진기보다 화소수 높아 한결 또렷하게 보인다.


  아이들이 새 신을 얻어 신을 적에도 이런 느낌일까. 아이들이 새 옷을 선물받아 처음 입을 적에도 이런 빛일까. 4346.9.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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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01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런지 고추밭의 빨간 고추까지 정말 사진이 더 또렷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저도 제 아이 태어나던 해 (2001년) 구입한 사진기를 아직도 쓰고 있답니다. 고맙게도 아직 잘 버텨주고 있네요.
새로운 사진기가 앞으로도 함께살기님이 보여주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들에 날개를 달아주겠지요.

숲노래 2013-09-02 06:38   좋아요 0 | URL
잘 건사하시니 오래오래 쓰시겠네요.
저는 한 해에 여러 만 장을 찍다 보니
사진기 부품이 곧 낡고 닳아서
몇 해를 쓰면 아주 바스라지고 맙니다 ^^;;;
이 사진기로는 아마 서너 해쯤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appletreeje 2013-09-0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가에게 사진기는 또 하나의 '눈'이겠지요.
형님께서 선물하신 새 사진기로, 그동안의 애먹던 앙금이 풀린다는 말씀에 저까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문득, 새로 맞춘 안경을 끼고 바라본 세상이 너무나 환하고 맑았던 그 기쁨이 생각납니다~ 보슬비님의 말씀처럼 앞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랄까 저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9-02 06:37   좋아요 0 | URL
앞으로 즐겁게 두고두고 잘 써야지요.
한결 맑은 눈 되어서요.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5

 


잘 읽히고 싶은 사진
― 無花果の木の下で
 시마 유키히코(嶋 行比古) 사진
 美術出版社 펴냄, 1998.12.20.

 


  한국사람은 ‘무화과나무’나 ‘밤나무’나 ‘능금나무’처럼 말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사람은 ‘無花果の木’이나 ‘栗の木’이나 ‘りんごの木’처럼 말해요. 삶이 다르니 말이 다를 테고, 말이 다르니 새삼스레 삶이 다를 테지요. 하늘이나 바다를 가리키는 낱말이 다른 만큼,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이나 ‘바다’라 말하는 느낌이 다릅니다. 꽃을 바라보며 ‘꽃’이라 말할 적에도, 나라와 겨레마다 쓰는 낱말이 다르니, 저마다 다른 빛과 느낌과 이야기를 얻겠지요.


  사진책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를 내놓은 시마 유키히코(嶋 行比古) 님은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요. 시마 유키히코 님한테 사진이란 무엇이며, 사진에 담는 삶은 또 무엇이며, 사진에 담는 삶에 깃들도록 이끄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온누리에 태어나는 사진은 모두 ‘잘 찍은’ 사진입니다. 따로 ‘잘 찍는’ 사진을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잘 찍을’ 사진을 배울 만한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나 사진을 ‘잘 찍는’걸요.


  ‘못 찍은’ 사진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못 찍는’ 사진이 있나요? 없어요. 사진학과를 안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안 들었어도 ‘못 찍을’ 사진이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찍고 싶은 만큼 사진으로 찍습니다.


  모델을 누구로 삼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를 모델로 삼든 아가씨를 모델로 삼든 할배를 모델로 삼든 대수롭지 않아요. 낯익은 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모델로 삼아도 대수롭지 않아요. 이름 널리 알려진 사람이나 이름 거의 안 알려진 사람을 모델로 삼아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내 사진을 내 눈길로 바라보며 찍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내 사진기를 써서 담습니다.


  사진책 《無花果の木の下で》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요? 아주 마땅한 노릇일 텐데, 이 사진책에는 시마 유키히코 님 이야기가 담깁니다. 시마 유키히코 님 넋과 눈길과 손길과 마음이 담겨요. 왜냐하면, 시마 유키히코 님이 찍은 사진을 담거든요.

 

 

 


  사진은 이론으로 읽지 않습니다. 사진은 예술이나 문화라는 얼거리로 읽지 않습니다. 사진은 누구나 스스로 읽습니다. 어떤 전문가 한두 사람이 이렇게 말했기에 사진을 이렇게 읽어야 하지 않아요. 어떤 전문가 서너 사람이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까 나도 사진을 이렇게 찍어야 하지 않아요.


  사진을 읽는 길은, 백 사람 있으면 백 가지입니다. 사진을 찍는 법은, 백 사람 있으면 백 갈래입니다. 사진을 읽는 길과 사진을 찍는 법은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르면서 곱게 얼크러집니다. 다 다르면서 재미나게 어우러집니다.


  배운 대로 사진을 찍으면 배운 틀에 갇힙니다. 어깨너머로 흉내를 내면서 사진을 찍으면 흉내 틀에 사로잡힙니다.


  빛은 늘 살아서 움직입니다. 빛깔은 언제나 싱그럽게 드리웁니다. 빛줄기는 노상 곧게 나아갑니다. 빛과 빛깔과 빛줄기를 내 마음속으로 느껴요. 내 마음속으로 느낀 빛과 빛깔과 빛줄기를 사진 한 장에 담아요.


  작품전시를 하려고 찍는 사진인가요? 예술이 되거나 공모전에 붙으려는 사진인가요? 1등상에 뽑히려는 사진인가요? 왜 찍는 사진인가요? 그러니까, 왜 살아가려 하고, 왜 삶을 즐기려 하며, 왜 삶을 노래하면서 웃고 우는 이야기를 엮으려 하나요?

 

 

 


  스스로 내 삶을 읽을 때에 사진을 읽습니다. 스스로 내 삶을 일굴 때에 사진을 일굽니다. 이녁 삶을 읽지 못하고서야 이녁 사진을 빚지 못합니다. 이녁 삶을 가꾸지 않고서야 이녁 사진이 발돋움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잘 읽어 주셔요. 삶을 잘 읽어 주셔요. 사랑을 잘 읽고, 마음과 꿈과 생각을 잘 읽어 주셔요. 그러면, 내가 걸어갈 사진길을 깨달으면서, 내가 이룰 사진빛이 어떻게 아름다이 빛나는가를 알아차려, 내 사진이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한껏 누릴 수 있습니다. 4346.8.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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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사진을 남기는 어버이

 


  우리 집 아이들 살아가는 모습을 날마다 꾸준히 사진으로 담으며 생각한다. 나는 이 아이들이 예쁘다고 여겨 사진을 찍는가? 그저 우리 집 아이들이니까 사진으로 담는가? 틀림없이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 할 텐데, 나는 왜 우리 아이들 삶을 사진으로 꾸준히 적바림하는가?


  어제 낮, 신나게 노는 아이들 바라보며 사진을 몇 장 찍다가, 문득 나도 모르게 한 마디 새어나온다. “얘들아, 너희들 자라면,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찍은 사진으로 아름다운 이야기 실컷 엮어서 펼쳐 보이렴. 그러면 이 사진만으로도 너희는 알뜰살뜰 먹고살 만한 살림이 될 수 있어. 그러면서 너희는 너희가 가장 하고픈 일을 즐겁게 하면서 이 땅에서 환하게 빛나렴.”


  문득 터져나온 말마디를 돌아본다. 내가 어버이로서 찍는 아이들 사진은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남는 몫’이 된다. 어버이인 나는 돈을 그다지 못 모았으나, 사진만큼은 알뜰히 모았고,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면서 사진책을 살뜰히 건사했다. 이 사진과 사진책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엮고 맺어 선보인다면 참 놀라운 사진빛이 되리라 느낀다. 나는 어버이로서 내 나름대로 바라본 눈길로 내 이야기를 선보일 테지만, 아이들은 어버이와는 또 다른 눈길로 이녁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겠지.


  어떤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가 태어나서 우리 둘레 어여쁜 이웃한테 고운 삶빛 북돋울 만할까. 어떤 이야기가 태어나면서 우리 삶자락을 포근하게 감싸면서 넉넉하게 살찌우는 밑거름이 될까.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이렇게 흐뭇한 삶을 날마다 몇 장씩 꾸준히 사진으로 찍어서 아로새길 수 있는 대목 또한 기쁘며 반갑다. 삶이란, 사진을 찍는 삶이란,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빛내는 삶이란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리라. 4346.8.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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