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27. 사진으로 웃는다

 


  날마다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 하고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볕을 바라봅니다. 아침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동이 트는 볕살이 창호종이문으로 스며드는 기운을 느낍니다. 기지개를 켜는 아이들이 하품을 길게 하고는 “잘 잤어요?” 하고 건네는 인사를 듣습니다.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고 머리를 빗깁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재미나게 놉니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에서도 놀고 마루에서도 놉니다. 마당에서도 놀고 마을길에서도 놉니다. 이렇게 놀라거나 저렇게 놀라고 이끌지 않습니다. 이런 놀잇감이나 저런 장난감을 건네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잇감입니다. 아이들로서는 언제나 놀이터를 누립니다.


  사진을 찍는 어른은 무엇을 사진으로 찍어야 할까요. 그럴듯하게 보이는 곳에 가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진을 찍어야 하나요. 대단하다 싶은 곳에 가서 대단하다 싶은 사진을 찍어야 하나요.


  사진 작품을 얻으려면 놀라운 사진장비를 갖추어야 할는지요. 사진 예술을 하자면 엄청나게 사진 공부를 해야 할는지요.


  사진을 배우려고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이 땅에 내 삶을 더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이웃과 한결 깊고 넓게 사귈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대학교에 가거나 사진강좌를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내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가꾸면서 이 땅 곳곳 두루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이론을 배우면 이론에 맞추는 사진을 찍습니다. 이론을 익히면 이론에 따라 사진을 읽습니다. 삶을 배우면 삶에 맞추어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익히면 삶에 따라 사진을 읽습니다.


  더 나은 사진은 없습니다. 덜 떨어지는 사진은 없습니다. 더 나은 삶이나 덜 떨어지는 삶은 없습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가면서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빛을 헤아리면서 즐기는 사진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예쁘게 웃고 싶어서, 시골빛 묻어나는 사진을 한 장 얻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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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26. 가슴에 담기

 


  돈이 있는 사람들이 어느 그림 하나를 수십억 원이나 수백억 원을 치르며 사들이는 삶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그림을 건사하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 그림이 더없이 좋아서, 그만 한 돈은 ‘돈이 아니로구나’ 하고 느끼도록 이끌기 때문이에요. 사진 한 점을 천만 원 주고 장만하는 분들한테서도 이런 모습을 느껴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베풀잖아요.


  사진을 찍어 종이에 앉힐 때 생각합니다. ‘이 사진 하나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성에 계신 할매 할배하고 일산에 계신 할매 할배한테 우리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띄울 적에, 이 사진 하나에 깃든 빛과 이야기를 함께 보냅니다. 온누리 어떤 돈으로도 이러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삶을, 온누리 어떤 권력으로도 이러한 사진을 만들 수 없는 빛을 조용조용 선물합니다.


  가슴에 담기에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가슴으로 아끼기에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가슴으로 읽기에 아름다운 글입니다. 가슴으로 부르기에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붓질이 아름다운 그림을 낳지 않습니다. 비싼 물감과 종이가 아름다운 그림을 낳지 않습니다. 비싼 기계나 장비가 아름다운 사진을 낳지 않습니다. 사진학과를 다녔거나 사진유학을 다녀왔기에 아름다운 사진을 낳지 않습니다.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을 때에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고, 가슴속에서 빛나는 이야기 있을 때에 아름다운 사진을 낳습니다.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생각하더라도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즐겁게 살아야지’나 ‘아름답게 살아야지’나 ‘사랑스럽게 살아야지’나 ‘착하게 살아야지’나 ‘재미나게 살아야지’처럼, 스스로 삶길을 씩씩하게 다스리면서 돌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을 찍어요. 비로소 이야기 하나 깃든 사진을 낳아요.


  삶을 노래하기에 사진입니다. 삶을 그리기에 노래입니다. 삶을 밝히기에 사진입니다. 삶을 누리기에 사랑입니다. 4347.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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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25. 사진이 없는 사진

 


  사진을 꼭 찍어야 하지 않다. 사진이 없던 지난날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자. 사진이 없던 지난날 신문을 내거나 책을 찍는다 할 적에, 글을 어떻게 써서 신문이나 책을 엮어야 할는지 헤아려 보자. 오직 글만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길을 떠올려 보자.

  사진을 꼭 찍어야 한다면, 반드시 사진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와 빛을 헤아리자. 사진이 없으면 안 될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을 찍는다. 사진으로만 들려주거나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사진을 찍는다.


  사진만 기록이 되지 않는다. 사진보다 또렷하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이 있다면, 굳이 사진이 없어도 된다. 알뜰살뜰 알차며 또렷하게 쓴 글이 있다면, 이 글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집을 지을 수 있고 마을까지 꾸밀 수 있다. 비록 사진이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알맞게 찍은 사진이 아니라면, 이 사진으로는 집도 못 짓고 마을도 못 꾸민다.


  이야기를 알차게 담을 수 있으면 된다. 글이 길어야 하지 않아. 글이 꼭 있어야 하지 않아. 사진을 꼭 넣어야 하지 않아. 사진이 여러 장 있어야 하지 않아.


  글이 깃들 자리와 그림이 머물 자리와 사진이 들어설 자리를 생각하면 된다. 글로 빚을 꿈과 그림으로 나눌 사랑과 사진으로 밝힐 빛을 헤아리면 된다. 사진보다 또렷한 이야기이면 넉넉하다. 글보다 똑부러진 이야기이면 즐겁다. 그림보다 빈틈없는 이야기이면 살갑다. 4347.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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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1-0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너무 예쁘고 너무 너무 귀엽습니다~!!!*^^*

숲노래 2014-01-06 02:36   좋아요 0 | URL
언제나 맨발로 노는 아이들은
참... 예쁘지요 ㅠ.ㅜ

착한시경 2014-01-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상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귀여운데요...^^ 알차고 또렷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사진만큼이나 오랫동안 남겨둘 수 있을텐데...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4-01-06 02:36   좋아요 0 | URL
스스로 즐겁게 쓰면
어느 글이든 다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착한시경 님 새해 하루하루
늘 즐거우면서 곱게 빛나리라 믿습니다~
 

사진쓰기
― 양달과 응달

 


  사진을 찍을 적에 빛이 늘 알맞게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 바로 이런 빛이지!’ 할 적이 있으나, ‘이런이런, 이런 빛으로 사진을 어떻게 찍나?’ 할 적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잦은지는 모릅니다. 다만, 빛이 알맞든 알맞지 않든, 사진으로 찍고 싶으면 스스로 사진기 노출을 잘 맞추어야 할 뿐입니다.


  지난날 필름사진기만 있던 때에는,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빛을 아주 잘 살피고 알지 않으면 사진이 모두 엉망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디지털사진기는,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빛을 썩 잘 모르거나 제대로 못 살피더라도, 사진기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제법 괜찮게 사진을 찍어 줍니다. 다만, 내가 찍고 싶은 자리에 있는 내가 찍고 싶은 모습이 양달과 응달로 또렷하게 갈린다면, 아무리 디지털사진기라 하더라도 갈팡질팡 망설여요. 양달로 맞추어야 하는지 응달로 맞추어야 하는지, 사진기가 오락가락합니다.


  누군가는 양달에 빛을 맞춥니다. 누군가는 응달에 빛을 맞춥니다. 누군가는 양달과 응달 사이에 빛을 맞춥니다. 양달에 빛을 맞추면 응달이 아주 어둡습니다. 응달에 빛을 맞추면 양달이 아주 하얗습니다. 가운데 언저리에 빛을 맞추면 이럭저럭 괜찮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설픈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쪽에 맞추어야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가를 알려면, 세 가지를 모두 찍어야 합니다. 양달에도 맞추어 보고, 응달에도 맞추어 보며, 가운데쯤으로도 맞추어 봅니다. 디지털사진기로는 곧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 이렇게 석 장 찍고 나면, 내 마음을 사로잡는 빛을 깨달을 만해요.


  사진 한 쪽이 하얗게 날아가도 됩니다. 사진 한 쪽이 까맣게 어두워도 좋습니다.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를 맨 먼저 헤아리셔요.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가 참말 내가 바라는 이야기인가 아닌가를 살피셔요.


  나는 내 사진을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어 찍습니다.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면 그늘진 자리에서도 얼굴빛이 살그마니 살아나면서 하얀 데가 덜 하얗습니다. 이불놀이를 하는 우리 집 아이들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다가 사진 한 장 찍으며 생각합니다. 응달 자리를 더 찍으면 ‘사진멋’은 한결 살아날 수 있겠다고 느꼈는데, 나는 ‘사진멋’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골빛’을 사진에 넣고 싶어요. 그래서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느라 대문 너머 시골마을 모습이 좀 하얗게 날아가는 느낌이 되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이 사진을 새삼스럽게 돌아본다면, ‘아하, 우리들이 어릴 적에 놀던 집과 마을이 이런 모양 이런 빛이었구나’ 하고 되새길 수 있어요. 이불을 말리느라 빨래줄에 널어 마당에 그늘이 넓게 드리우는 겨울날인데, 마당이 넓게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으면 응달빛이 퍽 멋스러운 사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처럼 아이들 웃음빛과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골빛을 나란히 담고픈 마음에 대문 너머 모습이 살짝 하얗게 날아가더라도 이곳을 더 넓게 사진에 담겠지요.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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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9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과 함께 24. 환하게 빛나라, 내 사진

 


  사진을 찍으면 으레 남이 본다고 할 테지만, 남한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나 스스로 읽으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다만, 요즈음은 처음부터 작품이나 예술로 내놓으려고 사진을 찍는 이들이 부쩍 늘었어요. 다큐사진도 처음부터 남한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으로 나아가는 흐름이고, 상업사진 또한 잡지에 실어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으로 굳어지는 흐름입니다.


  혼자만 보거나 읽으려고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거나 노래를 지을 적에도 혼자만 즐길 마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을 생각하면서 찍는 사진일 수 없어요. 남을 살피며 쓰는 글이 될 수 없어요. 남을 헤아려 짓는 노래일 수도 없지요. 왜냐하면, 무언가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사람은 스스로 즐겁기에 새로 짓습니다. 씨앗을 심어 곡식이나 나무를 돌보는 흙지기 또한, 남한테 잘 보이려고 씨앗을 심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꽃을 즐거이 구경하라고 씨앗을 심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기쁘게 맞이해도 즐겁습니다만, 나 스스로 즐겁기에 흙을 일구고 풀과 나무를 가꾸어 꽃을 맞이합니다. 다른 사람이 기쁘게 바라보아도 반갑지만, 나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삶이기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노래를 지어요. 다시 말하자면, 남들이 아무리 좋다 말한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보람이 없어요. 남들이 아무리 추켜세우거나 우러른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빛이 없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저 사진’을 아주 좋아하거나 반긴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이 사진’을 마음 깊이 좋아하거나 반기기 일쑤입니다. 평론가들이 ‘저 사진’을 아주 추켜세우거나 자주 이야기해 주더라도, 나로서는 ‘이 사진’을 사랑하거나 애틋하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삶을 환하게 빛내고 싶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손에 사진기를 쥐고 단추를 누르는 동안 가슴속에서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때로는 눈물꽃이 피어나고, 때로는 노래꽃이 피어나요. 때로는 사랑꽃이 피어나고, 때로는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온갖 꽃이 사진 한 장과 함께 피어납니다.


  햇볕처럼 따사롭게, 바람처럼 싱그럽게, 꽃처럼 곱게, 냇물처럼 시원하게, 구름처럼 그윽하게, 무지개처럼 눈부시게, 별빛처럼 포근하게, 사진 한 장 마음으로 기쁘게 맞아들여 즐겁게 찍습니다. 4346.12.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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