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37. 빛과 볕과 살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말을 틀리거나 잘못 쓰는 일이 없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말을 틀리거나 잘못 쓰곤 합니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노래를 즐기거나 꽃피웁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아가면 노래가 샘솟는 길을 못 느끼기 마련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사진이 즐겁기를 바라니 즐거운 생각을 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사진이 사랑스러운 빛이 흐르기를 꿈꾸니 사랑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햇빛을 보고 햇볕을 쬐며 햇살을 맞이합니다. 햇빛이 드리울 적에 빛깔을 살피고, 햇볕이 내리쬘 적에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햇살이 퍼질 적에 기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해님이 베푸는 세 가지를 곰곰이 받아들입니다. 빛이 있어 서로서로 알아봅니다. 볕이 있어 함께 어깨동무합니다. 살이 있어 다 같이 노래합니다.


  사진찍기나 그림그리기에서 흔히 ‘황금분할’을 말합니다. 차분하면서 한결 깊거나 넉넉한 느낌을 보여준다고 하는 비율이 황금분할이라고 합니다. ‘좋은 틀(구도)’이라고 하는 만큼, 이 비율을 잘 맞추거나 살핀다면 사진이 여러모로 보기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찍든 황금분할을 잘 맞추어야 할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네모난 틀을 들여다보면서 황금분할을 맞추는 데에 마음을 어느 만큼 기울여야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황금분할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저는 황금분할을 배운 적이 없고, 황금분할이 어떤 비율인지 모릅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늘 ‘스스로 가장 즐겁고 따사로우며 사랑스러운’ 빛을 찾습니다.


  지구별을 비추는 해님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빛이 언제나 다릅니다. 빛깔이 늘 달라요. 해님이 움직이는 결에 따라 빛이 달라질 뿐 아니라, 따스한 기운인 볕이 달라집니다. 빛과 볕이 달라질 뿐 아니라, 살 또한 달라져요.


  스스로 마음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마음속으로 그린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사진은 단추질이나 기계질이 아닙니다. 단추질이나 기계질이라면, 기계를 시켜도 사진을 찍어요. 사진은 단추질이나 기계질이 아닌 만큼,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이야기를 빚을 때에 태어납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사진입니다. 곧, 이야기를 담을 때에는 사진이요, 이야기가 없이 황금분할을 했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으면, 흔들리거나 조리개를 어설피 맞추었어도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담으면, 빗나가거나 기울었어도 사진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차분하거나 그윽하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차분하거나 그윽하다면 ‘구경거리’로 좋다는 뜻입니다. 사진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황금분할이라는 비율은 이러한 비율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만든 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맞출 비율이 아니고, 사진을 읽는 사람이 살필 비율이 아닙니다. 비율을 말하자면 순금분할이라든지 은분할이라든지 봄꽃분할이라든지 달빛분할도 있어요. 사진찍기에서는 사진을 헤아릴 뿐, 다른 것은 살필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빛과 볕과 살을 헤아리느냐 하고 묻겠지요. 왜냐하면, 빛과 볕과 살이 있어야 삶이 있거든요. 해님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비출 적에 지구별에 아름다운 삶이 있어요. 해님이 지구별을 사랑스레 비출 적에 지구별에 사랑스러운 삶이 있어요. 저녁으로 넘어가는 볕살이 드리우는 평상에서 아이들과 라면 한 그릇 먹으면서 따사로운 빛을 느꼈기에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습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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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36. 지켜보는 눈길

 


  사진은 ‘지켜보는 눈길’에 따라 태어납니다. 그윽하게 지켜보는 사람은 그윽한 맛이 감도는 사진을 빚습니다. 따사롭게 지켜보는 사람은 따사로운 맛이 감도는 사진을 낳습니다. 애처롭게 지켜보는 사람은 애처로운 맛이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똑같이 가난한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도, 어떤 눈길로 지켜보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그야말로 가난에 ‘허덕이는 빛’을 사진으로 담고, 누군가는 그야말로 가난하면서 ‘밝게 웃는 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어느 쪽이 참모습일까요? 어느 쪽이 참삶일까요?


  허덕이는 빛을 찍은 사진이 참모습일까요? 밝게 웃는 빛을 찍은 사진이 참삶일까요?


  그러나, 어느 쪽도 ‘찍힌 사람’이 보여주는 참모습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느 사진이든, ‘찍힌 사람’ 참삶이 아닌 ‘찍는 사람’ 참삶이라고 느낍니다.


  고발할 까닭이 없는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되는 사진입니다. 패션사진은 패션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보도사진이나 다큐사진은 무언가를 고발하나요? 얼핏 본다면 고발할 만한 사진일 수 있지만, 어느 사진이든 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픈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쁜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눈물에 젖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만큼 지켜본 뒤에 찍는 사진이냐에 따라 빛이 바뀝니다. 어떤 마음결로 지켜보면서 찍는 사진이냐에 따라 빛이 다릅니다.


  사랑으로 지켜보기에 사랑스럽게 누리는 사진입니다. 꿈꾸면서 지켜보기에 꿈이 피어나는 사진입니다. 사진에 담을 넋을 헤아리면서 지켜볼 노릇입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어깨동무하고픈 얼을 살피면서 지켜볼 일입니다. 4347.3.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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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35. 두 아이 눈빛

 


  우리 집 두 아이가 바라보는 눈빛이 다릅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숨결이니, 두 아이로서는 어느 한 가지를 바라볼 적에 저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우리 형과 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두 사람이지만, 우리 형과 내가 바라보는 눈빛이 다릅니다. 그러면, 쌍둥이로 태어난 두 사람은 어떻게 바라볼까요. 둘은 서로 똑같이 바라볼까요, 아니면 둘도 둘 나름대로 다르게 바라볼까요.


  얼굴이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목소리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새로 나고 죽는 사람 사이에서도 똑같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 다른 숨결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도 모두 다른 숨결입니다. 말과 소도 모두 다른 목숨입니다. 잠자리와 메뚜기도, 개구리와 달팽이도 모두 다른 목숨입니다. 똑같다고 할 목숨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지구별입니다. 다 다른 사람인 만큼 다 다른 눈빛을 밝힙니다. 다 다른 눈빛을 밝히기에 다 다른 사진을 빚습니다. 똑같은 자리에 서며 사진 한 장 찍더라도, 다 다른 삶에 비추어 다 다른 넋이기에, 다 다른 이야기를 담은 사진을 빚어요.


  다만, 표절이나 도용을 할 적에는 ‘거의 똑같다’ 싶도록 베낍니다. 스스로 삶을 헤아려서 찍는 사진이라면 ‘똑같은’ 모습이 태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표절도 도용도 될 수 없어요. 그러나, 스스로 삶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표절이나 도용으로 흐릅니다. 스승이나 동무한테서 배워 즐겁게 찍을 적에는 찬찬히 거듭나는 사진이지만, 남이 일군 아름다운 빛을 가로채거나 훔치려는 마음일 적에는 ‘거의 똑같다’ 싶은 모습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사진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깃들지 못합니다.


  다 다른 눈빛으로 바라본다고 할 적에는 다 다른 이야기가 숨쉰다는 뜻입니다. 다 다른 눈빛이란 다 다른 삶이요 다 다른 사랑입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틀로서 ‘다른 사랑’이 아닙니다. 저마다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에서 ‘다른 사랑’입니다.


  개 한 마리를 놓고,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가 마주하는 모습하고 네 살 작은아이가 마주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마음으로 품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서로서로 마음밭에 드리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내 사진’을 찍습니다. 내 사진을 찍는다고 할 적에는 ‘내 삶’을 찍는다는 소리입니다. ‘내 사랑’을 찍고 ‘내 꿈’을 찍으며 ‘내 빛’을 찍어서 ‘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소리예요. 4347.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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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34. 발자국이 예쁘다

 


  눈이 오는 날에 발자국이 찍힙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일 적에 비로소 겨울 발자국놀이를 합니다. 눈밭을 지나간 작은 짐승도 발자국을 남기고, 먹이를 찾으며 마당에 사뿐사뿐 내려앉은 새들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들고양이도 발자국을 남기며, 얼굴로 눈을 받아먹으며 노는 아이들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뽀독뽀독 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밟는 소리는 맑습니다. 바람이 살랑 불면서 눈발이 날리면 사락사락 눈이 천천히 쌓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잠들면서 눈송이가 굵어지면 스륵스륵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눈이 내리는 소리는 무척 낮습니다. 나즈막하면서 투박합니다. 먼 데서 별이 흐르는 소리와 같고, 봄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는 소리와 같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소리와 함께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가랑잎이 지는 소리를 가만히 그립니다. 감잎이 질 때와 후박잎이 질 때에는 소리가 다릅니다. 매화잎이 질 때와 모과잎이 질 때에도 소리가 다릅니다. 나뭇잎이 다른 만큼 잎이 떨어지면서 퍼지는 소리는 저마다 다릅니다.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다 다른 소리를 알아챕니다. 마음을 열 수 있으면 다 다른 소리를 포근히 껴안습니다.


  요즈막에는 도시 아이들이 자동차 소리를 다 가눈다고 해요. 회사마다 다른 자동차에 따라, 바퀴 구르는 소리가 다르다지요. 시골마을 우리 집 아이들도 군내버스 지나가는 소리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와 짐차 지나가는 소리가 다 다른 줄 알아챕니다. 자동차마다 소리가 다르듯 가랑잎 지는 소리가 다르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부는 바람이 내는 소리가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내는 발걸음 소리가 달라요.


  발자국 모양과 크기가 다르니 발걸음 소리가 다르겠지요. 눈밭에 남기는 발자국을 들여다보면서 이 발자국을 남기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일곱 살 아이 발자국은 일곱 살을 살아가는 아이다운 빛이 서려 예뻐요.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며 열 살이 되면, 그때에는 여덟 살과 아홉 살과 열 살이 되는 결에 따라 예쁜 빛이 서리겠지요.


  기계 단추를 누르는 일이 사진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저마다 꾸리는 삶을 읽을 줄 아는 눈길이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공책에 연필로 적는다고 모두 글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저마다 일구는 삶을 읽을 줄 아는 마음씨가 글이라고 느낍니다. 마음을 실어 이야기를 지으니, 사진이 되고 글이 됩니다.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며 웃는 삶일 때에, 사진이 태어나고 글이 태어납니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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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4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과 함께 33. 손빛을 살며시

 


  얇고 동그랗게 썬 무 한 조각을 한손에 들고는 소매를 척척 걷어붙인 매무새로 그림을 그리며 노는 일곱 살 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림을 그리는 손놀림이 얼마나 야무진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가끔 아이한테 물어 봅니다. “이 예쁜 아이야, 너는 어디에서 왔니?” 너도 이 지구별 사람이니? 아니면 다른 머나먼 별에서 지구별에 따숩고 살가운 사랑을 나누어 주려고 찾아온 사람이니?


  사진가 가운데 ‘일하는 사람’ 손을 사진으로 꾸준히 찍는 분들이 있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손을 사진에 담으면서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빛을 선보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갓난쟁이 손을 어른 손과 맞잡도록 하며 사진을 찍어, 사람들 삶이 흐르는 빛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는 어버이가 이녁 아이를 스무 해쯤 꾸준히 찍어, 갓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어떤 모습인가를 알뜰살뜰 그러모으곤 합니다. 이때에 흔히 얼굴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몸빛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런데, 손빛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좀 드물지 싶어요. 조그마한 손에서 차츰 커지는 손으로 달라지는 흐름을 찍는 사람은 퍽 드물지 싶어요. 손과 함께 발을 차근차근 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꼭 어떤 대단한 작품을 만들자는 뜻으로 찍는 손빛이 되기보다는, 한 사람이 사랑을 받아 살아가는 결을 손빛에 실어서 보여준다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둘레 사람들 손은 둘레 사람들 손대로, 내 손은 내 손대로, 여기에 아이들 손은 아이들 손대로 꾸준히 바라보면서 어루만지고 토닥이면서 사진 한 장으로 담아요.


  그림을 그리는 손빛을 담습니다. 밥을 먹는 손빛을 담습니다. 춤을 추는 손빛을 담습니다. 책을 쥔 손빛을 담습니다. 호미를 잡고 땅을 쪼는 손빛을 담습니다. 한겨울에 흙놀이를 하거나 눈놀이를 하는 손빛을 담습니다.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손빛을 담습니다. 나무를 쓰다듬고 조그마한 꽃송이를 아끼는 손빛을 담습니다.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가서 품에 꼬옥 안기는 손빛을 담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는 손빛을 담습니다. 혼자서 가방을 척 메고는 들마실 하는 손빛을 담습니다.


  얼마나 많은 손빛이 있는가 헤아립니다. 얼마나 깊고 너른 손빛이 그득한가 돌아봅니다. 내가 살아가는 손빛을 오늘부터 스무 해 동안 찍을 적에도 예쁜 이야기가 새삼스레 태어납니다.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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