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42. 이야기가 쏟아진다



  즐겁게 지켜보면서 기쁘게 노래하다가 사진을 찍으면 예술이 되리라 느낍니다. 이름난 작가가 찍든 일곱 살 아이가 찍든, 즐겁게 지켜보다가 찍는 사진은 늘 예술이 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사진길 걸은 지 마흔 해가 넘든 사진기 붙잡은 지 넉 달이 되든, 기쁘게 노래하면서 찍는 사진은 언제나 예술이 된다고 느껴요.


  예술품을 만들려고 하기에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즐겁게 누리는 삶이 예술입니다. 예술가들이 만들기에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삶이 예술입니다.


  송송 썰어서 접시에 얹은 가지런한 오이채와 무채가 예술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들보들한 밥을 정갈하게 담은 밥그릇이 예술입니다. 개운하면서 구수한 맛이 나는 된장국이 예술입니다. 갓난쟁이 똥오줌이 묻은 기저귀를 척척 비비고 헹구고는 빨랫줄에 널어 해바라기 시키는 하루가 예술입니다. 아이들이 한글을 처음 익힌 뒤 연필을 야무지게 쥐어 또박또박 깍두기공책에 적는 글이 예술입니다.


  오이채와 무채가 예술인 까닭은 오이채와 무채에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밥 한 그릇이 예술인 까닭은 밥 한 그릇에서 이야기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된장국이 예술인 까닭은 된장국에서 이야기가 샘솟기 때문입니다. 기저귀 빨래가 예술인 까닭은 기저귀를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다리는 삶에서 이야기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한글 익히기가 예술인 까닭은 글빛을 처음 느끼는 아이들이 눈빛을 또랑또랑 밝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예술입니다. 사진이라는 갈래가 예술이기 때문에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이 이야기를 찍어서 나누기 때문에 예술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문화입니다. 사진찍기와 사진읽기가 문화생활이기 때문에 문화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고 읽는 동안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에 문화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는 이야기를 생각하셔요. 내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거나 이웃이 찍은 사진을 바라볼 적에는 이야기를 헤아리셔요. 나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이 사진에 담았는지 살피고, 내 이웃은 이녁 이야기를 저 사진에 어떻게 담았는지 돌아보셔요.


  사진은 이야기밭이 됩니다. 사진은 이야기바다가 됩니다. 사진은 이야기누리가 됩니다. 사진은 이야기숲이 되고, 이야기터가 되며, 이야기빛이 됩니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과 함께 41. 꽃과 꽃

 


  하늘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하늘을 찍는 한편, 하늘에 깃든 숨결을 찍고, 하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찍습니다. 하늘을 사랑하는 넋을 사진으로 담고, 하늘과 마주한 내 삶을 사진으로 담으며, 하늘숨 함께 마시는 이웃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어머니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무엇을 찍는다고 할 만할까요. 어머니를 마주하는 내 모습과 매무새, 어머니가 살아온 나날과 이야기, 어머니가 그리는 사랑과 꿈, 어머니를 사랑하는 내 마음과 빛, 어머니가 들려주는 웃음과 노래 들을 골고루 사진으로 찍을 테지요.


  매화꽃이 활짝 피어난 우리 집 뒤꼍에서 매화꽃내음을 아이와 함께 맡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는 벚꽃 무늬를 새긴 긴옷을 입습니다. 꽃빛이 곱다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꽃옷입니다. 꽃옷을 입고 꽃나무 앞에 섭니다. 나는 매화꽃을 찍으면서 꽃아이를 찍습니다. 꽃빛과 꽃내음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꽃아이 목소리와 몸가짐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나 스스로 꽃이 됩니다. 스스로 꽃이 되기에 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백두산을 사진으로 찍는 분이 있다면 백두산과 하나가 되기에, 아니 그분 스스로 백두산이 되기에 백두산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픈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스스로 아픈 마음과 몸이 되겠지요. 살가운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스스로 살가운 골목사람이 될 테고,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스스로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마음과 몸이 되리라 느껴요.


  이것을 찍기에 더 좋지 않습니다. 저것을 찍기에 더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찍습니다. 좋거나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만한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들려줄 목소리가 있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글을 쓰는 이들은 글을 쓸 까닭이 있어서 글을 써요. 누군가는 전태일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고, 누군가는 쌍용자동차를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지요. 누군가는 박정희나 박근혜를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며, 누군가는 정약용과 정약전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지요. 무엇을 이야기하든 글은 글입니다. 무엇을 찍든 사진은 사진입니다. 스스로 쓰려는 글감에 녹아들면서 글이 태어납니다. 스스로 찍으려는 사진감에 스며들면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꽃과 꽃입니다. 찍는 꽃과 읽는 꽃입니다. 보는 꽃과 ‘(스스로 하나가) 되는 꽃’입니다. 피어나는 꽃과 저무는 꽃입니다. 맑은 꽃과 밝은 꽃입니다. 잠자는 꽃과 숨쉬는 꽃입니다. 노래하는 꽃과 춤추는 꽃입니다. 꽃으로 살고 꽃으로 사랑합니다. 4347.4.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과 함께 40. 어둠을 밝히는 빛에

 


  빛이 있어 어둠을 밝힙니다. 빛이 사라지며 어둠이 짙습니다. 빛이 있는 자리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지거나 그림자가 생기곤 하지만, 그늘과 그림자는 어둠이 아닙니다. 두 가지 모습이요, 두 가지 빛입니다.


  모든 목숨은 힘차게 움직입니다. 힘차게 움직이다가 쉽니다. 눈을 감고 포근하게 잡니다. 쉬거나 자지 않으면서 그저 움직이기만 하는 목숨은 없습니다. 어떤 목숨이든 반드시 쉬거나 자기 마련이요, 쉬거나 잘 적에는 새로운 누리로 갑니다. 이른바 꿈누리예요.


  그늘진 자리에 씨앗이 떨어져도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랍니다. 그늘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은 한결 밝으며 짙습니다. 그늘진 자리에서 꽃이 진 뒤 열매를 맺으면 한결 달콤하며 깊은 맛을 냅니다. 햇빛을 듬뿍 쐬는 자리에서 나는 들딸기도 무척 달지만, 그늘진 곳에서 나는 들딸기는 새빨갛게 빛나면서 매우 달콤해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빛만 살피지 않습니다. 빛을 살피면서 그늘과 그림자를 함께 살핍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진에 드리우는 어둠이란 어둠이라기보다 ‘그늘’이나 ‘그림자’입니다. 어둠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적에는, 어둠은 어둠으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빛’으로 환하며 곱습니다.


  흑백으로 찍는 사진이 아닌 무지개빛으로 찍는 사진에도 빛과 그늘이 함께 있습니다. 꽃그림자가 집니다. 골목집 담벼락 따라 곱게 그늘이 집니다. 깜깜한 저녁이나 밤에 등불을 켜면 둘레는 새까맣지만 등불 언저리는 환합니다. 이때에 어떠한 빛이 우리를 맞이하는 셈일까 헤아려 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은 우리 가슴에 어떻게 깃들까 생각해 봅니다.


  그늘진 자리에서도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까닭은, 햇빛이 들지 않더라도 햇볕이 포근하게 감싸기 때문입니다. 건물이나 큰 나무에 가리더라도 볕은 막지 못합니다. 빛은 가로막힐 수 있지만, 빛살은 옆으로 퍼지면서 밝은 기운을 살며시 나누어 줍니다. 빛살조차 꽉 막힌 데에 있더라도 볕은 천천히 스며들어요. 가로막은 벽을 타고 볕이 스며들어요. 볕이 지구별 곳곳을 따사롭게 덥히면서 땅속으로 따스한 볕이 감돌아요.


  사진 한 장 찍을 적에 어떠한 빛을 맞아들이는지 살핍니다. 사진 한 장 찍으면서 어느 곳에 그늘이 지거나 그림자가 생기는지 돌아봅니다. 사진 한 장 읽을 적에 빛살과 함께 볕살을 헤아립니다. 사진 한 장 읽으면서 따사로운 기운과 손길과 숨결이 어떻게 퍼지는가 가만히 그립니다. 4347.4.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과 함께 39. 밝은 하루를 느끼며

 


  밝은 아침을 느끼면서 하루를 열면 밝은 기운이 마음과 몸에 그득하게 퍼집니다. 날마다 똑같다 싶은 하루가 되풀이된다고 여기면서 아침을 맞이하면 찌뿌둥한 기운이 마음과 몸에 가득 깃듭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고 여름이며 가을이요 겨울입니다. 섣달이 저물고 설을 맞이할 적에 한 살을 더 먹는구나 하고 여길 수 있지만, 섣달이 지나고 설을 맞이하면 곧 봄이 찾아오면서 봄꽃잔치 이루겠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따순 봄이라 하더라도 햇볕을 쬘 수 없는 건물에서 일하느라 봄볕을 못 느낄 수 있고, 따순 봄이기에 즐겁게 햇볕을 쬐면서 흙을 만지거나 풀을 뜯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삶이 다릅니다. 도시 한복판에 살림집이 있어 언제나 매캐한 배기가스에 숨막힌다고 여길 수 있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 복닥거리거나 치이느라 고단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이와 달리, 도시 한복판에서도 골목동네에 깃들어 지내면서 골목밭을 가꾸거나 골목꽃을 돌볼 수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빈터에 씨앗을 심어 스무 해나 서른 해에 걸쳐 감나무를 건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도 흙하고는 동떨어진 채 지낼 수 있겠지요. 마당을 풀밭이나 잔디밭으로 가꿀 수 있는 한편, 마당을 시멘트로 덮어 주차장으로 삼을 수 있어요.


  날마다 동이 틉니다. 동이 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날마다 햇볕이 조금씩 바뀌고 날마다 바람맛 또한 살짝살짝 다르다고 느낍니다. 봄에 새로 돋는 풀을 바라보며 쪼그려앉아 살살 쓰다듬습니다. 봄에는 봄대로 봄풀을 뜯어서 먹을 수 있기에 고맙다고 풀한테 인사하며 톡톡 끊거나 뜯습니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여름풀과 여름열매를 얻고, 가을에는 가을대로 감이며 까마중이며 나락이며 즐겁게 얻을 뿐 아니라, 싱그러운 가을빛이 드리운 들과 숲을 누립니다. 겨울에는 무와 배추와 시래기를 누리면서 차가운 바람과 하얀 눈을 만나요. 달력으로 마주하는 하루가 아닌, 해와 눈비와 바람과 풀빛으로 마주하는 하루입니다.


  겨울이 지나면서 날씨가 포근하니, 아이들과 마당과 평상에서 퍽 오랫동안 놀 수 있습니다. 평상에 종이를 펼쳐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햇볕도 햇살도 햇빛도 밝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느낄 해님은 얼마나 밝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망울은 얼마나 밝을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밝은 눈길이 되어 밝은 손길로 밝은 사진을 찍자고 생각합니다. 밝은 마음이 되어 밝은 몸으로 밝은 삶을 일구자고 생각합니다. 삶 그대로 빚는 사진이라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얼싸안느냐에 따라 삶뿐 아니라 사진이 새롭게 빛날 수 있습니다. 4347.4.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과 함께 38. 그림을 그리는 사진

 


  사진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속에 깃든 이야기를 사진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겪거나 느낀 이야기를 사진을 빌어 그림으로 그립니다. 늘 마주하는 즐겁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진이라는 틀에 맞추어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마음속에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이야기가 피어나지 않으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답게 누린 삶이 없으면 사진을 안 찍습니다.


  그럴듯하거나 멋들어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해요. 그런데, 그럴듯하거나 멋들어지다고 느끼려면, 이런 모습을 마음속으로 바라거나 담으려고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다면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보더라도 그럴듯하거나 멋들어지다고 생각하지 못해요.


  이야기가 있을 때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붓을 들어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비로소 글을 쓰고 노래를 불러요.


  그림은 두 가지입니다. 종이에 붓이나 연필로 빚는 그림이 하나 있고, 마음속에 이야기로 엮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진이란, 마음속에 엮은 이야기를 그린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서 자라는 이야기가 있을 때에 종이에 그림을 그리듯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그림놀이를 할 적에 마냥 그림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피어나는 이야기가 있기에 그림놀이를 해요. 아이 스스로 제 얼굴을 그리든 어머니나 아버지 모습을 그리든 풀이나 꽃이나 나무를 그리든 하늘이나 빗방울을 그리든, 스스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가 있어야 그림놀이를 합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으로 담으려는 주제’를 먼저 찾으라고들 말해요. ‘사진으로 담으려는 주제’란 ‘내가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나 스스로 ‘삶을 누리면서 즐긴 이야기’입니다. ‘내가 누구보다 나한테 속삭이고 싶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옮길 수 있고, 그림이나 글이나 노래나 춤으로 옮길 수 있어요. 마음그림이 시나브로 사진빛이 됩니다. 4347.4.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