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47. 뒷모습과 앞모습



  갓꽃이 핍니다. 갓이라는 풀에서 피는 꽃이기에 갓꽃입니다. 갓풀은 잎사귀를 나물로 삼아서 먹기도 하고, 갓김치를 담가서 먹기도 합니다. 갓김치를 먹어 본 분들은 많을 텐데, 막상 갓풀에서 피어나는 갓꽃을 본 분은 드물리라 생각합니다.


  유채꽃이 핍니다. 유채라는 풀에서 피는 꽃이기에 유채꽃입니다. 요즈음은 웬만한 시골마다 논이나 빈터에 유채씨를 뿌리는 경관사업을 합니다. 구경거리로 볼 만하게 가꾸는 일이 경관사업입니다. 겨울 지나고 새봄인 삼월부터 사월까지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입니다.


  경관사업을 벌이며 심는 유채는 노란 꽃이 지고 나서 씨앗을 맺는데, 이 씨앗이 바람 따라 날리며 곳곳에 드리웁니다. 꽃만 보도록 심은 유채이지만, 바람 따라 숲이나 들이나 마당에 내려앉은 유채씨는 해를 거듭하면서 나물로 거듭납니다. 잎이 펑퍼짐하게 퍼지고, 야들야들 맛난 나물이 됩니다.


  예부터 갓이나 유채는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꽃이 진 뒤 맺는 씨방이 무르익어 터지면 바람 따라 곳곳에 퍼져요. 겨울과 봄에 갓잎이나 유채잎이 돋으면 사람들은 즐거우면서 고맙게 갓잎과 유채잎을 얻었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갓꽃과 유채꽃은 거의 똑같다 할 만합니다. 꽃으로만 놓고 본다면 갓꽃과 유채꽃에다가 배추꽃을 가리기란 퍽 어렵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갓이랑 유채랑 배추를 돌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보리라 생각해요. 늘 보고 언제나 함께 있으면 못 알아볼 턱이 없습니다.


  어버이라면 누구나 제 아이를 멀리에서도 알아봅니다. 수백 사람이 함께 찍어 머리만 깨알같이 나온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어버이는 제 아이를 알아봅니다. 어버이라면 뒷모습으로도 제 아이를 알아봅니다. 앞모습도 알고 뒷모습도 아는 우리 아이예요. 몸과 마음을 함께 알고,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입니다.


  우리 집 옆밭에서 돋는 노란 갓꽃을 아이가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갓꽃을 바라보는 아이 뒤에 서서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람이 고요하고 햇살이 포근합니다. 봄볕이 흐르고 봄바람이 살랑입니다. 갓꽃이 흔들립니다. 아이는 한참 꽃을 구경하다가 다른 데로 가서 까르르 웃으며 뛰놉니다. 나도 이제 꽃은 그만 구경하고 아이 뒤를 따라 다른 데로 가서 함께 놉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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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6. 함께 걷는 사진



  네 식구가 함께 걷습니다. 시골버스는 우리 마을 어귀를 두 시간에 한 차례 지나갑니다. 버스 타는 때가 안 맞으면 이웃마을로 걸어갑니다. 네 식구가 이십 분쯤 걸려 이웃마을 큰길로 걸어갑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저 앞에서 걷습니다. 몸도 키도 작으나 걸음이 잽니다. 총총총 날듯이 나비걸음으로 앞장섭니다. 뒤에서 동생이 곁님 손을 잡고 걷습니다. 작은아이는 날마다 다리힘이 붙습니다. 얼마 앞서까지 이 길을 혼자서 걷지 못해 업히거나 안겼으나, 이제는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아이들은 몸이 차츰 자랍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둘레 삶자락을 바라봅니다. 어른들은 마음이 차츰 자랍니다. 어른들은 자라면서 둘레 삶터를 헤아립니다.


  함께 걷는 길을 사진에 담습니다. 네 식구가 걷지만 사진에는 언제나 세 사람만 나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떤 모습인지 사진에 안 나옵니다. 그러나, 사진에 찍힌 식구들 모습을 살피면 사진 찍은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마음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함께 즐겁게 걷는 길이라면, 사진 찍은 사람 모습이 없어도 모두 즐거운 빛이 흐릅니다. 함께 걷되 즐겁지 못한 길이라면, 찍힌 사람도 찍은 사람도 모두 즐겁지 못한 빛이 감돕니다.


  사진이 태어나는 곳은 우리가 살아가는 곳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우리 삶을 사진으로 찍든, 이웃이 우리 보금자리로 찾아와서 사진으로 찍든, 모두 삶을 찍습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먼먼 나라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도, 먼 곳에 있는 이웃이 누리는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스튜디오나 사진관에서 찍을 적에도, 이제껏 살아온 발자국이 고스란히 사진에 깃듭니다.


  한 발 두 발 걷습니다. 천천히 걷습니다.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천천히 찍습니다. 사진은 오늘 하루에 다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에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어 건사할 수도 있으나, 여러 날에 걸쳐 찍을 수 있는 사진이요, 여러 달에 걸쳐 찍을 수 있는 사진이며, 여러 해에 걸쳐 찍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사진감으로 삼았으면,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과 새벽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살펴보셔요. 여러 날에 걸쳐 다시 바라보고, 여러 달에 걸쳐 꾸준히 바라보며,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바라보셔요. 삶길을 함께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 내 삶도 이웃 삶도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피어납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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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5. 손으로 찍는 사진



  사진을 발로 찍느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는데,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다면 ‘발로 찍는다’고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발로 해도 이보다 잘 하겠다’와 같은 말을 하니까요. 그런데, 사진은 손으로도 찍고 발로도 찍습니다. 사진을 손으로 찍을 적에는 기계를 만집니다. 사진기를 만지고 인화지와 필름과 컴퓨터를 만집니다. 손으로 찍는 사진이란 기계와 장비를 다루며 빚는 사진입니다.


  발로 찍는 사진이란 발로 온누리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한 차례 찾아갔대서 사진찍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열 차례나 백 차례, 또는 한두 해나 열 해쯤 찾아갔기에 사진찍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천 차례 만 차례 다시 밟고 또 밟습니다.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를 줄기차게 밟습니다. 발로 찍는 사진은 두 발로 이 땅을 밟으면서 빚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손과 발뿐 아니라 마음과 사랑으로도 찍습니다. 마음에 담는 따사로운 빛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과 동무를 살피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풀과 나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작은 벌레와 아픈 짐승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요.


  사랑으로 찍는 사진은 어떤 그림이 될까요. 사랑으로 마주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으면 어떤 노래가 될까요.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삶을 사진으로 찍으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사진은 손과 발뿐 아니라 마음과 사랑으로 찍는데, 꿈으로도 찍고 느낌으로도 찍습니다. 귀로도 찍고 살갗으로도 찍습니다. 때로는 돈으로 찍을 수 있겠지요. 때로는 주먹다짐으로 찍거나 권력이나 신분으로 찍을 수 있어요.


  무엇으로 찍든 사진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찍기에 더 나은 사진은 아닙니다. 다만, 찍는 매무새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깃듭니다. 찍는 몸가짐에 따라 다른 숨결이 감돕니다.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고 싶은가요. 어떤 사진을 누구와 찍고 싶은가요. 어떤 사진을 언제 어디에서 찍어 누구하고 나누고 싶은가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내 마음과 이웃 마음을 함께 보듬습니다. 사진을 읽을 적에는 내 넋과 이웃 넋을 함께 껴안습니다.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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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4. 그림자에서



  사진은 언제나 빛을 찍습니다. 빛을 찍기에 빛나는 사진입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인데, 빛을 찍기에 빛납니다. 그러니까, 어둠을 찍으면 어둡습니다. 사진이 처음부터 어둠을 찍으려 했다면 무척 어두웠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예나 오늘이나 어둠을 찍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둠을 찍는 이들은 더없이 마땅히 어둡구나 싶은 사진을 선보입니다. 좋거나 나쁘게 바라볼 대목이 아닙니다. 어둠을 찍으니 어두운 사진입니다. 어둡대서 나쁜 사진이 아니요 좋은 사진도 아닙니다. 어둠을 찍으니 어두운 사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밝은 빛을 찍을 적에도 똑같이 느낄 노릇입니다. 밝은 빛을 찍으면 밝은 사진일 뿐입니다. 더 낫거나 한결 나은 사진이 아닙니다. 밝은 빛을 찍은 사진일 뿐입니다.


  사진에서 우리가 바라보거나 느낄 대목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느 만큼 사랑하느냐입니다. 살짝 어둡게 찍거나 많이 어둡게 찍는대서 사랑스러운 사진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살짝 밝게 찍거나 많이 밝게 찍는대서 사랑스러운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사진이 되자면 사랑스럽게 찍어야 합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사진이란 사랑이 깃들지 않은 사진이에요.


  잘 생각해 보셔요. 얼굴로는 웃는 빛이어도 웃음이 아닐 수 있어요. 말씨는 부드럽다지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어요. 사진은 겉보기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사진은 빛깔로 따질 수 없습니다. 무지개빛 감도는 사진으로 찍기에 밝지 않습니다. 까망하양 두 가지 빛깔로 찍기에 어둡지 않습니다. 마음과 사랑이 밝을 때에 밝은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도 사랑도 어두우면 어두운 사진을 찍습니다.


  그림자를 바라보셔요. 내 그림자는 어떤 빛인가요. 내 그림자는 어떤 삶인가요. 내 그림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숨결인가요.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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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3. 꽃을 만지는 손길로



  꽃을 만지는 손길로 이웃한테 다가서면 나와 이웃 사이에 꽃내음이 흐릅니다. 꽃을 어루만지는 손길로 밥을 지으면 밥상맡에 둘러앉은 식구들 모두 꽃밥을 먹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손길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서로서로 꽃빛이 흐르는 웃음을 짓습니다. 꽃을 노래하는 손길로 사진기를 손에 쥔다면? 이때에 우리는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꽃을 아끼는 손길로 사진 한 장을 마주한다면? 이때에 우리는 사진에서 어떤 넋을 읽을 수 있을까요?


  마음이 힘들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고단할 적에 찍는 사진을 떠올려 보셔요. 마음이 홀가분하거나 기쁘거나 환하거나 개운할 적에 찍는 사진을 떠올려 보셔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찍으면서도 사뭇 다른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무언가 싫은 마음이 가득한 채 내 아버지나 어머니를 찍어 보셔요. 무언가 좋은 마음이 그득한 채 내 아버지나 어머니를 찍어 보셔요. 어떤가요?


  내가 아주 잘 아는 동네에서 나들이를 하면서 사진을 찍어 보셔요. 처음 찾아가는 동네에서 헤매면서 사진을 찍어 보셔요. 어떤가요?


  우리는 아는 만큼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만큼 바라봅니다.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마주합니다. 우리는 즐겁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꿈을 꾸고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길어올리면서 까르르 웃고 즐겁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사이좋게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꽃을 만지는 손길로 책을 읽어 보셔요. 꽃을 만지는 손길로 자전거를 달리거나 자가용을 몰아 보셔요. 꽃을 만지는 손길로 편지를 써 보셔요. 꽃을 만지는 손길로 영화를 보거나 만화를 펼쳐 보셔요. 꽃을 만지는 손길로 전화를 걸거나 길을 걸어 보셔요.


  스스로 삶을 바꿀 적에 사진이 바뀝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할 적에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삶을 밝힐 적에 사진이 해맑게 빛납니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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