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6. 곁에 있는 사진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감’, 곧 ‘사진에 담을 이야기(주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면, 사진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진감을 가슴으로 품을 때에 즐겁게 사진을 찍을까요.


  어쩌면, 남이 아직 안 찍은 무언가를 찍으려 하면 멋있거나 재미있거나 놀라울는지 모릅니다. 남이 찍었어도 어딘가 아쉽거나 모자라다 싶은 무언가를 살펴서 새롭게 찍으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그윽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남이 아직 안 찍은 사진이란 무엇이 될까요. 남이 찍었으나 아쉽거나 모자란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내가 찍’습니다. 남이 찍지 않고 내가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내가 봅’니다. 남이 보지 않고 내가 보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내가 읽’습니다. 남한테 보여주기도 하지만, 남한테 보여주기 앞서 내가 맨 먼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읽습니다.


  남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는 사진이고, 남한테서 부탁을 받아 찍기도 하는 사진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진이든 스스로 즐거울 때에 찍습니다. 스스로 즐거울 때에 찍고 나서 비로소 남한테 보여주거나 건넵니다.


  아직 남이 찍지 않은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아주 쉽습니다. 내가 찍을 사진입니다. 남이 찍었으나 아쉽거나 모자라다 싶은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아주 쉬워요. 내가 즐기거나 누리는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찍으려고 하는 사진은 아직 어느 누구도 찍지 않았습니다. 내가 걸으려고 하는 길은 아직 어느 누구도 걷지 않았습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하루는 아직 어느 누구도 살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내 모습과 삶과 넋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오직 나만 알아요. 그러니, 내 눈과 마음과 손길과 넋으로 찍으면 ‘내 사진’이 되고 ‘내 사진감’이 됩니다. 내가 즐기거나 누리는 삶은 바로 내가 가장 잘 찍습니다. 남이 찍어 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가 되는데, 이웃이 즐기거나 누리는 삶은 이웃이 사진으로 가장 잘 담습니다. 내가 이웃보다 이웃 삶을 더 잘 담을 수 없습니다.


  곁에 있는 사진입니다. 곁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곁에 두고 찍는 사진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을 적에도 구경꾼이나 나그네 눈길로 찍을 적이랑, ‘마을사람이 되는 넋이나 매무새’로 찍을 적에는 아주 다릅니다. 스스로 우뚝 서서 찍는 사진이 맑게 빛납니다.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으며 잎과 꽃을 피우는 몸짓과 손길로 찍는 사진이 곱게 빛납니다.


  사진을 ‘빛그림’이라고 일컫는 까닭은, 즐겁고 아름답게 찍은 사진은 환하게 ‘빛나기’ 때문이에요. 빛을 담기에 빛그림이 되기도 하지만, 내 마음과 이웃 마음을 환하게 비추듯이 고운 결과 무늬가 되기에 빛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감은 늘 곁에서 찾습니다. 사진감은 스스로 걸어가는 길에 맞추어 살핍니다. 4347.5.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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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5. 삶을 그리다



  사진으로 삶을 그립니다. 새롭게 살아가고 싶은 꿈을 담아서 차근차근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으로 찰칵 한 장 찍은 모습은,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몇 초에 이런 모습이었다고 하는 기록이 아닙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모습을 아로새기면서, 이제부터 새롭게 살아갈 빛을 보여줍니다.


  사진으로 남은 모습은 화석이 아닙니다. 굳어진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 살아나는 모습입니다. 사진 한 장 주머니에 넣고 늘 들여다보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오래오래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곁님으로 삼는 사진 한 장입니다.


  사진에 깃든 사람은 서른 해가 지나거나 예순 해가 지나도 늙지 않는달 수 있어요. 참말 그렇지요. 사진과 달리, 삶에서 사람들은 자꾸 나이를 먹으니 살결이 쭈글쭈글 바뀐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진에 깃든 모습과 오늘 살아가는 모습은 늘 같습니다. 이 사진 한 장에 아로새긴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과 몸에 깃들어 하루하루 새롭게 일구는 밑힘이 됩니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헤아려 보셔요. 사진을 왜 찍고 싶은지 헤아려 보셔요. 사진을 찍어 삶을 어떻게 누리고 싶은지 헤아려 보셔요. 사진 한 장으로 이웃과 동무하고 어떤 삶을 나누고 싶은지 헤아려 보셔요.


  잘 찍는 사진은 우리한테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셔요. 멋있게 찍는 사진으로 우리 삶이 얼마나 나아질는지 생각해 보셔요. 나한테 참으로 즐겁고, 이웃과 동무한테 더없이 사랑스러울 사진은 어떻게 찍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셔요.


  맛있게 함께 먹는 밥은 어떻게 차릴까요? 즐겁게 듣는 노래는 어떻게 부를까요? 기쁘게 누리는 춤은 어떻게 출까요? 겉보기로 그럴듯하기에 맛있는 밥이 되지 않습니다. 대단한 악단을 데리고 와야 즐거이 듣는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학원이나 학교를 다녀서 춤사위를 배워야 기쁘게 누릴 춤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무엇을 배우는가요. 사진강좌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요. 사진을 찍으려고 어떤 책을 들추는가요. 어떤 스승한테서 무엇을 배우려고 사진강의를 듣는지요.


  삶을 그릴 때에 글입니다. 삶을 그릴 때에 사진입니다. 삶을 그릴 때에 살림입니다. 삶을 그릴 때에 꿈이 되고 사랑이 됩니다. 사진찍기는 작품찍기 아닌 삶찍기가 될 때에 다 같이 즐거우면서 아름답습니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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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 사진은 어디에 있나



  빛이 있어야 사진이 있는데, 삶이 있어야 빛이 있습니다. 모든 목숨이 싱그럽게 살아야 빛이 있으며, 이 빛은 모든 숨결이 즐겁게 살아가는 밑바탕입니다.


  배를 굶는 곳에 사진은 없습니다. 전쟁이 물결치는 곳에 사진은 없습니다. 독재와 폭력이 날뛰는 곳에 사진은 없습니다. 따돌림과 미움이 불거지는 곳에 사진은 없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삶이 있는 곳에 있는데, 삶은 빛이 있는 곳에 있으며, 빛은 사랑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사진과 빛은 언제나 한몸입니다. 빛과 사랑은 언제나 한몸입니다. 사랑과 삶은 언제나 한몸입니다. 삶과 이야기는 언제나 한몸입니다.


  배를 굶는 곳에 누군가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기록’을 하거나 ‘다큐’를 만들 수 있어요. 전쟁이 물결치는 곳에도 누군가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독재와 폭력이 날뛰는 곳에도 누군가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살가도 님이 찍은 사진이든, 로버트 카파 님이 찍은 사진이든, 남아프리카공화국 뱅뱅클럽 젊은 작가들 사진이든, ‘사진이 없는’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이들은 어떤 사진을 찍으려 했을까요. 삶이 삶답게 흐르지 못하고 이야기가 이야기답게 꽃피우지 못하는 곳으로 왜 찾아가서 어떤 사진을 찍으려 했을까요. 고발하려는 사진일까요. 돈을 벌려는 사진일까요. 작품으로 삼으려는 사진일까요. 이웃을 도우려는 사진일까요.


  아파서 드러누운 아이는 놀지 못합니다. 마냥 누운 채 심심하면서 아픕니다. 심심하면서 아픈 아이 곁에 있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지어 들려줍니다. 노래를 불러 주고 빙긋빙긋 웃음을 지어 줍니다. 아이가 아프대서 아이가 늘 아픔만 생각하지 않도록 이끌려 합니다. 아이가 아프니 아이가 늘 ‘안 아프고 즐거운 삶’을 생각하도록 이끌려 합니다. 아픈 아이한테 ‘아이고 얼마나 아프니?’ 하고 날마다 재우쳐 묻는 바보스러운 어버이는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바보스럽게 재우쳐 묻는 사진을 찍는 이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아프고 심심한 아이를 달래면서 맑은 빛을 선물하’듯이 사진을 찍는 이가 있습니다.


  아픈 아이한테 때로는 ‘아픔’을 그대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픔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이 아픈 데가 곧 낫는다는 생각을 심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잘 보렴. 이 생채기는 차근차근 낫는단다. 네 몸한테 스스로 말해 줘. 아픈 데야 얼른 나아라, 씩씩하게 뛰놀면서 웃자, 다 괜찮아, 다 좋아, 하고.’


  사진은 어디에 있는가요. 사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요. 사진은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나아가려 하는가요.


  한 곳에 똑같이 머무르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새롭게 살아가는 힘을 길어올리는 사진입니다. 언제까지나 똑같은 모습으로 머무르라고 다그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어제에 이은 오늘과 오늘에 이은 모레와 글피가 아름답게 빛나도록 북돋우는 사진입니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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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3. 빛으로 읽는다



  사진을 찍으려면 빛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면, 빛을 읽으며 찍은 사진을 읽을 때에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바로 빛을 읽어야 할 테지요. 빛을 읽어서 찍은 사진이라면, 이 사진을 읽을 적에 무엇보다도 빛을 살피거나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담을 노릇입니다.


  빛을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빛은 어디에서 찾아올까요. 빛은 어디에 있을까요. 빛은 어디에서 환할까요.


  해가 뜨기에 빛이 있습니다. 해가 뜨면서 빛이 퍼집니다. 해가 뜬 뒤 온누리가 따스합니다. 여름에 때때로 불볕더위가 찾아오고, 겨울에 곧잘 강추위가 찾아오지만, 해가 있기에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있습니다. 해가 뜨면서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해가 뜨고 지기에 꽃이 피고 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를 살피면, 해가 없이도 밤을 낮처럼 밝히곤 합니다. 깊은 땅속에 길을 닦기도 합니다. 지하상가는 낮밤이 따로 없습니다. 실내경기장은 바깥에서 비바람이 불거나 벼락이 내리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바깥이 아닌 건물 안쪽에 있으면 해가 뜨거나 지는 흐름을 살피지 않아요. 바깥이 아닌 건물 안쪽에서는 해가 없어도 전기로 불을 밝힙니다. 전기로 불을 밝힐 적에는 빛줄기를 요모조모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전등불을 밝히면 한밤이나 새벽에도 아주 눈부신 빛살을 얻습니다.


  사람이 만든 빛도 빛입니다. 다만, 사람이 만든 빛으로는 목숨을 살리지 못합니다. 해가 지구별에 비푸는 빛일 때에만 모든 목숨을 살립니다. 햇빛만 모든 목숨과 사람까지 살려요. 햇빛이 비추면서 햇볕이 내리쬐어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요. 햇빛과 햇볕에 햇살이 드리우면서 따스한 기운이 지구별에 감돌아요. 전깃불로는 풀이나 나무나 꽃을 살리지 못합니다. 전깃불로는 사람 목숨도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건물 안쪽에서 전깃불을 밝혀서 사진을 찍을 적에는 ‘빛줄기’ 하나는 있으며 ‘볕’과 ‘살’은 없습니다. 이를 읽을 수 있겠습니까? 사진은 빛을 읽으면서 찍는데, 삶을 이루는 빛과 볕과 살이 골고루 있을 때에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삶이 없이는 사진이 없습니다. 삶이 있기에 사진뿐 아니라 글과 그림이 있습니다. 삶이 없으면 글과 사진도 없습니다. 이를 마음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4347.5.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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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2. 이야기 나누기



  삶이 그대로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기록은 사진이 아닙니다. 기록은 늘 기록일 뿐입니다. 사진을 바란다면 사진을 찍고 읽을 노릇입니다. 삶이 그대로 사진인 만큼, 삶을 찍으면 되고 삶을 읽으면 됩니다.

  기록을 하는 사진은 기록물이 됩니다. 기록을 하는 사람은 기록자입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셔요. 기록자가 되고 싶은가요, 사진가로 살고 싶은가요.


  기록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기록은 기록대로 뜻이 있어요. 그리고, 사진은 사진대로 뜻이 있어요. 사진이 더 좋지 않으며, 기록이 더 나쁘지 않습니다. 저마다 뜻과 값이 있을 뿐입니다.


  사진을 찍으려 할 적에는 스스로 어떤 마음이거나 뜻이거나 생각인지 먼저 추스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즐기려고 찍는 사진인지, 무언가 기록해서 남기려는 사진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노래하려는 사진인지, 전시회를 열거나 작품집을 묶고 싶은 사진인지, 사진길 걸어가면서 사진가로서 돈을 벌고 싶은지, 찬찬히 돌아보면서 스스로 가닥을 잘 잡고 살필 노릇입니다.


  어느 자리에 서더라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예술은 예술입니다. 어느 자리에 놓더라도 기록은 기록이며, 삶은 삶입니다.


  암수 서로 살가운 제비 두 마리를 바라봅니다. 제비는 해마다 사월에 한국으로 찾아옵니다. 그러고는 예전 둥지를 손질한 뒤 오월에 알을 낳습니다. 유월에 새끼를 먹여서 키우고 칠월에 날갯짓을 가르쳐서 팔월에 따뜻한 나라를 찾아 다시 한국을 떠납니다. 제비가 한국에서 지내는 이야기는 과학책이나 자연책을 살펴도 알 수 있으나, 제비와 함께 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책을 읽어 아는 지식은 평균치일 뿐, 우리 집에 깃드는 제비가 누리는 삶하고는 다릅니다. 책에는 제비가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적지 않습니다. 책에는 제비가 어떤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 집을 짓거나 고치는지를 적지 않습니다. 책에는 제비 날갯짓이 어떤 모습인지를 적지 않습니다. 책에는 제비가 몇 시에 깨어나 몇 시에 잠드는지를 적지 않습니다. 책에는 제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디를 날아다니면서 어떻게 놀거나 먹이를 찾는지를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생각하면 머릿속으로 그림을 환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으면, 구도와 소재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찍고 읽으면서 즐거운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를 보여주고 나누면서 아름다운 사진이 됩니다. 4347.5.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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