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이론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학생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웁니다. 이론을 배운 학생은 이론을 받아들여 사진을 찍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가르치면 학생은 교과서를 배우면서 교과서에 따라 생각을 움직이고 교과서에 맞게 사진을 찍어요. 교사가 있으면 교사를 따르면서 사진을 찍겠지요.

  학교를 안 다니고 이론을 안 배우면 이론을 배우지 않았으니 이론대로 사진을 찍지 않아요. 교사가 없으면 교사가 내리는 지시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어요. 그러면 무엇을 따를까요? 바로 내 마음을 따라 사진을 찍겠지요. 삶을 찍고 사랑을 찍으며 노래를 찍겠지요. 4347.6.1. 해.ㅎㄲㅅㄱ

  (최종규 . 210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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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 나한테 찾아오는 사진


  내가 사진으로 찍을 모습은 늘 나한테 찾아옵니다. 내가 찍지 않을 모습은 나한테 찾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사진기를 곁에 둡니다. 곁에 사진기가 있어야 나한테 찾아오는 모습을 바로 그때에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진기가 오늘 이곳에 없어도 돼요. 왜냐하면 나는 사진기라는 기계로 옮기기 앞서 내 두 눈을 거쳐 마음자리에 먼저 담거든요.

  나는 늘 그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찍고 나면, 내가 찍은 모습은 가볍게 사뿐사뿐 보드라이 흘러서 지나갑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사진을 한 장 더 찍으며, 이 모습은 곧 조용히 지나가며, 이윽고 조용히 지나갑니다.

  굳이 이것저것 다 찍으려 하지 않아도 돼요. 애써 수없이 찍어야 하지 않아요. 천천히 기다립니다. 오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넉넉히 느낄 수 있으면 사진이 태어납니다. 오늘 한 장, 이튿날 두 장, 다음날 석 장을 찍습니다. 4347.5.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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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사진책을 외국배송으로라도 구경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분 사진책을 만날 길이 없다.

아마존에서는 구경할 수 있으리라.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71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

― Stone in the road, photographs of Peru

 누바 알렉사니안(Nubar Alexanian) 사진

 Cornerhouse pub 펴냄,1991



  사진을 찍으려고 페루를 찾아가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페루를 마음에 품고 찾아가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페루는 어떤 나라이기에 사람들 눈길을 끌까요. 페루는 어떤 삶터이기에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사진을 찍으려고 페루를 찾아간 사람은 페루를 찍습니다. 내 눈에 비친 페루를 찍고, 스스로 마음에 담은 모습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찍습니다. 페루는 사진쟁이 앞에 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사진쟁이는 자그마한 모습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지런히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누군가는 이레쯤 머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달포쯤 머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반 해쯤 머물고, 누군가는 한두 해쯤 머뭅니다. 누군가는 대여섯 해를 머물고, 누군가는 열 해나 스무 해를 눌러앉습니다. 아예 페루사람이 되어 서른 해나 쉰 해, 때로는 일흔 해를 페루에서 지냅니다.






  이레쯤 머물면서 찍은 페루란, ‘어떤 페루’가 될까요. 쉰 해쯤 살면서 찍은 페루는, ‘어떤 페루’가 되나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찾아간 페루라면 ‘어떤 페루’가 되고, 홀로 마을과 숲길을 거닐면서 느낀 페루일 때에는 ‘어떤 페루’가 될는지요.


  누바 알렉사니안(Nubar Alexanian)이라는 분이 페루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은 《Stone in the road, photographs of Peru》(Cornerhouse pub,1991)라는 책을 들여다봅니다. 1950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이녁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페루를 아홉 차례 밟습니다. 그러고는 1991년에 사진책 하나를 조촐히 선보입니다. 사진책 앞자락에서 “What will their loss mean for the rest of us?” 하고 묻습니다.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 삶에 페루는 무엇을 뜻할까요. 지구별에서 페루는 어떤 나라일까요. 서양 문명은 페루에서 어떤 일, 또는 어떤 짓을 했을까요. 오늘날 페루는 어떤 눈빛으로 삶을 가꾸는가요.


  페루로 찾아가서 페루라는 나라를 밟기에 페루를 찍습니다. 페루로 찾아가지 않으나 한국이나 미국에서 살아가며 페루를 찍습니다. 그곳에 있을 때에는 으레 그곳에서 눈으로 보는 대로 찍고, 그곳에 없을 때에는 마음으로 그곳을 생각하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눈으로 본 대로만 찍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려면 먼저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찍으려 하면, 먼저 이 나무를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나무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마당에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하니 볼 수 없어요. 마당을 찍으면서 사진에 나무를 담지 못해요.


  페루로 찾아갔다 하더라도 페루를 못 찍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리마에 있는 공항에 내려서 페루라는 나라를 두 발로 밟았어도, 페루라는 곳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으면, ‘페루에서 본 미국’이나 ‘페루에서 본 한국’을 찍을 뿐입니다. ‘페루를 느낄 수 있는 페루’를 사진으로 찍으려면, 먼저 페루를 페루대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지구별 이웃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한다면, 지구별 이웃이 누구인가를 느껴야 합니다. 지구별 이웃이 어디에서 살아가는지를 느껴야 하고, 지구별 이웃이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지구별 이웃한테 즐거움과 기쁨과 슬픔과 아픔이 무엇인지 느껴야 하고, 지구별 이웃한테 사랑과 꿈과 노래와 춤이 무엇인지 느껴야 하지요. 웃음과 눈물을 고루고루 느끼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느낄 적에 비로소 글도 한 줄 쓰고, 그림도 한 장 그립니다.






  돈이 있으면 누구나 페루로 찾아가겠지요. 돈이 있으면 누구나 값진 사진기를 장만하겠지요. 그런데, 돈만 있대서 페루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요? 못 찍지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페루를 찍고, 한국을 찍으며, 미국을 찍습니다. 퍽 자주 미국을 드나든다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미국을 사진으로 못 찍어요.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간다지만, 마음이 없으면, 정작 내가 한국사람이면서도 한국을 못 찍어요. 서울이 고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서울이 어떤 모습인지를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아름다운 시골이 고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아름다움과 시골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없기에 못 느끼고 못 보며 못 알아보거든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음속에 맑은 넋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넋을 맑게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이웃을 나란히 사랑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꿈을 키울 때에, 비로소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합니다. 너와 나를 한몸으로 아끼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하려는 몸짓이 아닐 적에는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하지 않습니다.


  따사로이 바라볼 수 있고, 따뜻하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매무새일 때에, 마음으로 느낍니다. 마음으로 느끼면, 이때부터 페루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음으로 못 느끼면? 마음으로 못 느끼면 ‘작품’이나 ‘예술’이나 ‘기사’나 ‘기록’으로 사진을 만들는지 몰라도, 사진을 들여다볼 이웃한테 푸른 숨결을 불어넣지 못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 한국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페루로 흐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한들한들 바람이 불어 페루에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유럽과 터키와 네팔과 중국을 지나 한국으로 흐릅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Nubar Alexanian is a documentary photographer whose worked has been featured in major magazines i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ncluding The New York Times Magazine, Life, Fortune, GEO, Time and Newsweek. For the past 35 years he has travelled to more than 30 countries focusing on long term personal projects which describe the human condition. In 2008 he completed his fifth book, "NONFICTION" PHOTOGRAPHS BY NUBAR ALEXANIAN FROM THE FILM SETS OF ERROL MORRIS, (Walker Creek Press) a 15 year collaboration with filmmaker Errol Morris. Solo exhibitions of this work have been shown at The Walker Art Center, The Corcoran Gallery of Art, Caren Golden Fine Art Gallery (NYC) The Atlanta Contemporary Art Center, The LOOK3 Festival, and Clark University.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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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7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으며

― yesterday

 박신흥 사진

 공간 루 펴냄,2012./비매품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오늘 읽을 수도 있으나, 오늘 찍고 나서 곧바로 사진을 읽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곳에서 찍은 사진조차, 디지털사진기 화면에 뜰 적에는 적어도 1초는 지나야 하고, 1초가 지나면 언제나 ‘어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찍기를 으레 ‘기록’으로 여기는데, 사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보셔요. 오늘 이야기를 글로 쓴다 하더라도 언제나 ‘지나간 때 이야기’입니다. 오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도 언제나 ‘지나간 때 모습’입니다. 바로바로 돌아보지 못해요. 그때그때 지나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박신흥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yesterday》(공간 루,2012)는 책이름부터 아예 ‘어제’라고 밝힙니다. 참말 이 사진책에 깃든 모습은 우리가 ‘어제’ 살았던 모습입니다.





  다만, 어제라고 할 때에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어제가 되지 않아요. 쉰 살인 사람한테 어제하고 열 살인 사람한테 어제는 다릅니다. 일흔 살인 사람한테 어제하고 마흔 살인 사람한테 어제는 달라요.


  누군가한테는 스무 해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합니다. 누군가한테는 하루나 이틀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합니다. 누군가한테는 마흔 해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하지요. 누군가한테는 달포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해요.


  나는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놀도록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다니고, 아이들과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저잣마실을 다니기도 합니다. 오월을 맞이해서 들딸기 따러 소쿠리를 들고 아이들하고 숲을 헤칩니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집에서 놉니다. 밤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달콤하게 꿈나라로 날아갑니다. 언제나 오늘은 ‘오늘’ 누리는데, 오늘 이곳에서 ‘오늘’을 누리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새삼스레 어제로 바뀝니다. 앞날은 언제나 오늘이 되고, 오늘은 다시 어제가 되어요.


  흐르는 삶입니다. 지나가는 삶입니다. 차근차근 거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기록을 하기 때문에 뜻있지 않습니다. 어느 한때를 잘 담은 사진이기 때문에 값있지 않습니다. 1975년 어느 날 찍은 사진을 2012년에 선보일 수 있어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2012년에 찍은 사진을 앞으로 2049년에 선보여야 대단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있으면 ‘하루 앞서’ 찍은 사진을 꾸려서 오늘 사진책을 선보일 수 있어요. 이야기가 아름다우면 ‘달포 앞서’ 찍은 사진을 엮어서 오늘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을 만한 까닭이란 오직 하나입니다. 이야기가 있으면 사진을 읽을 만합니다. 글(문학)을 왜 읽을까요? 이름난 작가가 썼으니 읽는 글일까요? 이야기를 살피지 않고 작가 이름에 따라 책을 장만해서 읽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림을 왜 들여다볼까요? 비싼값에 사고팔리는 작품이라서 그림을 들여다보나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림을 말할 일이 없어요. 예술이거나 문화이기 때문에 그림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읽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기록이 되기에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지나간 어느 한때 모습을 남겼기에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마음에 아로새긴 애틋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조곤조곤 들려주기에 사진을 읽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긴 살가운 이야기를 노래하듯이 글로 썼기에 문학을 읽습니다. 마음에 넓게 드리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꿈꾸듯이 그림으로 그렸기에 빙그레 웃으며 반깁니다.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까닭은 오늘 어떤 모습 하나를 앞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까닭은 앞으로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 저희 어릴 적 모습을 남겨 주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뛰놀며 활짝 웃고 좋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즐거우며 좋은 기운이 시나브로 사랑으로 피어나기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노래하듯이 사진을 찍고 춤추듯이 글을 쓰며 밥을 짓듯이 그림을 그려요.


  박신흥 님은 꽤 지나간 예전에 찍은 사진을 ‘오늘’ 선보이면서 어떤 ‘어제’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박신흥 님이 마음에 담은 ‘어제’는 이녁 삶에 어떤 이야기로 드리운 노래일까요.


  엄청나다 싶은 모습이기에 오늘 돌아보는 어제가 아닙니다. 동생을 업고 노는 아이 모습은 수수합니다. 나무를 타거나 소꿉을 하거나 책을 들여다보는 아이 모습은 수수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며 빨래를 하는 모습은 수수합니다. 그저 수수하지요. 다만, 수수한 삶자락 하나에 사뿐사뿐 이야기를 실으면 따사롭습니다. 수수한 삶빛에 살몃살몃 이야기를 담으면 살갑습니다. 이야기가 빛으로 번지면서 곱게 퍼집니다. 이야기가 빛이 되어 촉촉히 드리웁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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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 즐겁게 찍는다



  곁에 있는 사진을 찍는 길은 하나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찍자’입니다. 시골에서 살든, 도시 한복판에서 살든, 지옥철을 아침저녁으로 타야 하든, 우람한 송전탑 그늘 둘레에서 일을 하든, 자전거로 나들이를 다니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느라 부산하든, 아파서 끙끙 앓으며 드러눕든, 비행기를 타고 퍽 먼 나라까지 찾아가든, 언제나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물 한 잔을 마실 적에도 즐겁게 마실 일입니다. 밥 한 술을 뜨더라도 즐겁게 먹을 일입니다. 말 한 마디를 나눌 적에도 즐겁게 나눌 일입니다. 글 한 줄을 적어 편지를 띄울 적에도 즐겁게 쓸 일입니다. 삶을 이루는 바탕은 늘 ‘즐거움’입니다. 사진을 이루는 밑틀은 늘 즐거움입니다.


  사명이나 목표나 책임이나 의무나 취미나 사상이나 기록이나 패션이나 직업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들이대면서 사진을 찍지는 못합니다. 직업이 요리사이기에 요리를 한다고 하면, 마스터셰프라는 이름이 붙은 분이 지은 밥조차 그리 맛있지 않습니다. 세계에 손꼽히는 사진가라는 이름이 있더라도 직업이 사진가이기에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이녁이 찍은 사진조차 그리 대수롭지 않으며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반갑지 않습니다.


  교사라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칠 적에 즐겁기에 가르치고,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교사라고 둘레에서 말할 뿐입니다. 사진가라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즐거우니 찍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사진가라고 둘레에서 말할 뿐입니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사진감을 하나 골랐다면, 내 사진감을 즐겁게 마주하면서 즐겁게 누립니다. 골목길을 사진감으로 골랐으면, 골목마실을 즐깁니다. 골목이웃과 즐겁게 인사하고, 골목놀이를 즐겁게 바라보다가 함께하기도 하며, 골목집에서 가꾸는 골목꽃과 골목나무를 즐겁게 마주하면 됩니다. 사람을 사진감으로 골랐으면, 나부터 꾸밈없이 바라보고 곁에 있는 식구를 스스럼없이 마주하면서 우리 둘레 모든 이웃을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면 됩니다.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모두 이웃이자 벗입니다.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내 사진감으로 오순도순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면 사진을 자꾸 억지스레 만들고야 맙니다. 즐거운 눈빛이 아니라면 사진을 끝끝내 어거지로 뒤틀거나 비틉니다. 이른바, 속임수 사진은 즐거운 마음이 아닐 때에 나타납니다. 보도사진 가운데 참을 숨기고 거짓을 내세우는 사진 또한 즐거운 눈빛이 아닐 때에 나타나요. 스스로 즐거운 사람이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고, 거짓사진을 만들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즐거운 사람이 사진에 사랑과 꿈을 싣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즐겁지 않기에 자꾸 ‘만들려’ 할 뿐입니다. 4347.5.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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