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4. 늘 살아서 속삭이는



  사진 한 장을 바라봅니다. 사진에 찍힌 모습은 언제나 ‘어제’입니다. 사진을 찍는 날은 늘 ‘오늘’인데, ‘오늘’이 깃든 사진은 모레가 되거나 글피가 되어도 한결같이 ‘어제’입니다. 그런데, 사진에 깃든 ‘어제’는 열 해가 흐르거나 백 해가 흘러도 똑같은 ‘어제’입니다.


  사람은 몸이 늙습니다. 열 살 어린이가 쉰 해를 더 살면 예순 살이 됩니다. 열 살에 찍은 사진에 깃든 ‘오늘’은 앞으로 열 해가 흐르든 쉰 해가 흐르든 똑같은 ‘어제’로 이어갑니다.


  목숨을 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로서는 ‘죽은’ 사람이 아직 ‘살아서’ 빙그레 웃거나 즐겁게 노래하던 때에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까요. 이 사진은 무엇을 노래할까요.


  오늘 이곳에 없으나 어제 그곳에 있던 사람을 사진으로 만납니다. 오늘 이곳에 없지만 어제 그곳에서 만나며 즐거웠던 사람을 사진으로 마주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찍는’ 사진이기에 앞으로 기나긴 해가 흘러도 반가운 님을 오래도록 한결같이 만납니다. 오늘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품에 안으면서 두고두고 기쁘게 마음에 빛을 껴안습니다.


  사진은 늘 오늘 이곳을 찍습니다. 늘 오늘 이곳을 찍는 사진이라고 할 때에는, 사진 한 장으로 ‘늘 살아서 속삭이는 이야기’를 누린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몇 해가 흐르건, ‘오늘 이곳 이야기’가 언제까지나 싱그러이 흐르면서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빛으로 잇고 새로 이으며 거듭 잇는 징검다리 구실을 합니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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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 어떤 마음을 찍을까



  마음속에 품는 빛이 사진으로 나타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어떤 빛을 건사하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 아닌, 마음에 품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요. 우리 눈은 무엇이든 언제나 바라봅니다. 눈을 감지 않는다면 바라보기를 그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두 눈을 뜬 채 살면서 하루 스물네 시간을 쉬지 않고 사진찍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까닭은 ‘늘 바라보는 모습’ 가운데 ‘스스로 마음에 품은 모습’과 맞닿은 이야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마음에 품은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사진기를 꺼내어 찰칵 하고 찍습니다.


  곧, 마음에 품은 모습이 없다면 사진으로 찍을 모습이 없습니다. 마음에 그린 빛이 없으면 사진으로 담을 빛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내 마음에 와닿을 모습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새겨야 합니다. 내 마음에 즐겁거나 기쁘거나 뿌듯하거나 사랑스러운 기운이 감돌도록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야 합니다. 남들이 많이 찍으니까 따라서 찍는다든지, 남들이 안 찍으니까 내가 찍어 보겠다거니, 하는 마음일 때에는 사진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르기는 하더라도 ‘나부터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찍’었으니, 사진답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언제든 남들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은 언제든 남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나요?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어떤 마음을 보여주고 싶나요? 어떤 생각을 읽히고 싶나요?


  나는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마실을 즐겁게 다닙니다. 두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면 혼잣몸으로 달릴 때보다 세 곱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아이들과 즐겁게 다닌다는 생각입니다. 자전거를 몰며 시골 들길을 달릴 때에는 푸른 바람을 생각하고 푸른 숲을 떠올립니다. 이 조용하며 한갓진 들길에서 함께 자전거를 달리는 이웃이 있으면 더없이 반갑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에 이웃마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로 나들이를 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봅니다. 내가 모는 자전거 뒤에 앉은 아이들은 아직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마음속에 ‘자전거 타는 이웃’을 담지 않았거든요. 잘 달리던 자전거를 천천히 멈춥니다. 그러고 나서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자전거 타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뒤에 앉은 일곱 살 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자전거 왜 멈춰? 뭐 찍어?” “왜 멈췄을까? 뭘 찍을까?” “글쎄.” “자, 저 앞을 봐. 무엇이 보이니?” “음, 산! 나무!” “저 산 밑에 무엇이 보일까?” “아, 저기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있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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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 푸르게 물드는 마음



  사진을 찍는 까닭은 ‘멋진 모습’을 찍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는 멋진 모습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적에도 멋진 글이나 멋진 그림을 얻으려는 마음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멋진 글을 쓰고 싶다고 바랄 수 있고, 멋진 그림을 뽐내고 싶다고 바랄 수 있어요. 노래나 춤은 어떨까요. 멋진 노래를 불러야 하거나 멋진 춤을 추어야 할까요?


  스스로 즐겁게 부르는 노래가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추는 춤이 사랑스럽습니다. 노래는 남이 듣기도 하지만, 남이 듣기 앞서 내가 듣습니다. 춤은 남이 보기도 하지만, 남이 보기 앞서 내가 봅니다. 사진도 ‘남이 내 사진을 보기’ 앞서 ‘내가 내 사진을 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삶을 즐기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이야기를 한 타래 지어서 누리고 싶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나와 가까운 살붙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담을 적에 ‘빙그레 웃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아무 낯빛이 안 보이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자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눈물짓는 모습을 찍어도 좋고,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어떤 모습을 찍든 나 스스로 사진 한 장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으면 됩니다. 어떤 사진을 얻든 사진 한 장을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애틋한 웃음과 눈물이 섞인 이야기를 누릴 수 있으면 됩니다.


  앞모습이 더 낫지 않습니다. 뒷모습이 더 좋지 않습니다. 어느 때에는 앞모습이 싱그럽고, 어느 때에는 뒷모습이 맑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찍히는 사람’ 모습뿐 아니라 ‘찍는 사람’ 마음을 담기 때문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바라보는 사람이 마음 가득 푸르게 물드는 빛이라면, 어떻게 찍는 사진이든 푸른 숨결이 서립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 사진은 어디에 써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마셔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아, 삶이 즐겁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 오늘 이 삶이 아주 즐거운걸’ 하는 느낌이 들 때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노래가 흐르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야, 오늘 하루는 더없이 즐겁네’ 하는 느낌이 들 때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이야기가 빛물결처럼 출렁이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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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1. 오월에는 오월빛



  삼월에는 삼월빛을 마주합니다. 오월에는 오월빛을 마주합니다. 칠월에는 칠월빛이고, 구월에는 구월빛이며, 십일월에는 십일월빛입니다. 섣달에는 섣달빛이지요. 시골에서 살아야 달마다 다른 빛을 느끼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갈 적에도 마음을 열면 다달이 다른 ‘달빛’을 느낍니다. 날마다 다른 ‘날빛’도 얼마든지 느낍니다.


  아침저녁으로 흐르는 바람맛을 보셔요.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햇볕을 쬐셔요. 아침저녁으로 물 한 잔을 들이키셔요. 맛이 언제나 다릅니다. 결이 언제나 다릅니다.


  달빛과 날빛이 언제나 다르구나 하고 느낀다면, 내 삶빛과 이웃 삶빛이 언제나 다른 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한식구라 하더라도 저마다 삶빛이 다르고, 아이들도 저마다 삶빛이 다른 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까닭은, 나와 네가 다르고 너희와 우리가 다르며 이곳과 저곳이 다른 줄 느끼는 눈빛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와 네가 같다고 느끼면, 또는 나와 네가 어떻게 다른 줄 느끼지 못하면,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다 똑같아 보이면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보나 저것을 보나 모두 똑같다면 사진도 못 찍지만,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 써요. 어느 쪽을 바라보더라도 모두 똑같다면,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 춥니다.


  쳇바퀴란 무섭습니다. 쳇바퀴란 늘 같아요. 언제나 같은 흐름인 쳇바퀴예요. 쳇바퀴에 갇히면 늘 쉴새없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쉬지 않으나, 다른 빛이 깃들지 못합니다.


  쳇바퀴이면서 사진을 찍는다면, 이른바 ‘틀에 박힌 사진’이 됩니다.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틀에 박힌 사진’을 찍으면, 소재는 달라도 모두 똑같이 되고 맙니다. 틀에 박힌 사진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틀에 박힌 사진은 어느 모로 보면 빼어난 솜씨와 손놀림으로 담았구나 싶을 수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거나 사랑을 건드리지 못해요.


  나와 네가 다르면서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라고 느낄 때에 비로소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와 너희가 다르지만 서로 사랑스럽게 일구는 삶이라고 깨달을 때에 비로소 사진을 빚습니다.


  오월에 오월빛을 물씬 누리는 이야기를 담아 사진을 찍어요. 유월에는 유월빛을 찍어요. 칠월에는 칠월빛을 엮고, 팔월에는 팔월빛으로 노래해요. 사진 한 장 아름답게 찍으려면 삶을 아름답게 빛내면 됩니다. 4347.5.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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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을 수 없는 사진이 있다고 말하는 분이 있어요. 이분한테는 참말 찍을 수 없는 사진이 있어요.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이와 달리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처음부터 조김도 그리지 않는 분이 있어요. 이분은 늘 마음속에 그린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이를테면, 사랑에 국경이란 없다고, 아니 사랑을 하며 국경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던 분은 국경 없는 사랑을 해요.

  다만, 사회라는 눈길로 볼 적에는 국경이 없는 사랑이고, 이분들로서는 그냥 사랑입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찍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녁 사진을 틀에 가두는 사진이 있습니다. 스스로 보는 대로 스스럼없이 맞아들여 스스럼없이 찍는 사진이 있어요.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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