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29. 바로 오늘 이곳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나중에 찍지 않습니다. 미리 찍지 않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찍습니다. 나중에 찍을 수 있다고 여겨 미룰 수 있지 않습니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미리 찍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해야 좀 기다려, 내가 나중에 올 테니, 그때까지 이 모습대로 있어야 해!’ 하고 바랄 수 없습니다. 아침에 뜨는 해가 아름답구나 싶으면,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침에 뜨는 아름다운 빛을 사진으로 담을 노릇입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온몸으로 아침빛을 느끼면서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진기를 손에 쥐어 찰칵 하고 누를 노릇이지요.


  사진을 찍는 얼거리는 세 가지입니다. ‘바로’와 ‘오늘’과 ‘이곳’입니다. 다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는 사진은 ‘스냅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는 사진일 뿐입니다. 어떤 사진을 찍든 우리들은 이 세 가지 얼거리로 찍습니다. 바로바로 찍고, 오늘 찍으며, 이곳에서 찍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늘 이 세 가지 얼거리로 움직입니다. 언제나 흐르는 오늘이요, 언제나 맞닥뜨리는 바로이며, 언제나 맞이하는 이곳입니다. 흐르는 우리 삶을 돌아보면, 늘 ‘바로 오늘 이곳’인데, ‘바로 오늘 이곳’은 늘 오늘(현재)이면서 어제(과거)가 되고 다시금 모레(미래)가 됩니다. 우리가 보내는 하루는 늘 세 가지 때가 함께 어우러지는 흐름입니다.


  사진찍기에서 바로와 오늘과 이곳이라는 세 가지 얼거리를 살피기에, 사진읽기에서도 바로와 오늘과 이곳이라는 세 가지 얼거리를 살핍니다. 사진을 읽는 우리 스스로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나름대로 바라보면서 느낍니다. 다른 사람 눈길로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바로 내 눈길로 읽는 사진입니다. 어제라면 어떻고 모레라면 어떻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늘 오늘 이곳에서 내 가슴에 다가오는 빛을 느끼면서 읽습니다. 이리하여, 오늘 이곳에서는 이렇게 느끼고, 며칠이 지난 뒤에는 그때대로 다르게 느끼며, 몇 해가 지난 뒤에는 그때대로 다르게 느껴요.


  다시 말하자면,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사람을 찍더라도, 오늘 찍을 때하고 며칠 뒤에 찍을 때하고 몇 해 뒤에 찍을 때에는 늘 다릅니다. 그때그때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4347.8.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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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8-0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 근처입니까? 골짜기 물이 시원해보입니다.고흥 하면 바다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사진을 통해서 산과 골짜기도 아름다운 곳임을 알 수 있겠지요.

숲노래 2014-08-03 12:52   좋아요 0 | URL
집에서 걸어가면 30분, 자전거로 달리면 10분이면 닿는 곳에 있어서
비가 안 오는 여름에는 거의 날마다 가는 곳이에요.

그나마 이곳은 아주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이었는데
'4대강사업 지류사업'으로 바닥을 다 뒤엎고
시멘트로 발랐답니다. 우리 식구가 놀러가는 골짜기는
시멘트로 안 덮은 깊은 곳이에요.

요새는 고흥 같은 두멧시골도
골짜기에 시멘트를 덮는다고 관청에서 '토목공사'를 벌이느라
참... 볼꼴사납답니다... ㅠ.ㅜ

이래서, 지난해와 올해에는
아직 개똥벌레를 못 봤어요...

노이에자이트 2014-08-03 22:1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요즘엔 사람들 출입 편하게 하려고 자연을 너무 파헤져서 문제입니다.

개똥벌레가 안 오는군요.얘들이 공해에 민감하죠.

숲노래 2014-08-04 07:37   좋아요 0 | URL
개똥벌레는 다슬기를 먹는데,
다슬기도 개똥벌레도
'흙땅'에 알을 낳고 살아요.

그리고 농약이 있으면 다 죽고
시멘트를 퍼붓거나
골짜기 모양을 바꾸면
또 죽고... 그러지요...
 

사진 찍는 눈빛 28. 바람한테서 읽는 빛



  바람이 불 적에 하늘을 보면 온갖 빛과 무늬가 흐릅니다. 구름이 잔뜩 낀 날 바람이 제법 많이 분다면, 하늘빛은 그야말로 수없이 바뀌고 달라지면서 거듭나는 놀라운 빛과 무늬를 보여줍니다. 거센 비바람이 태평양을 건너올 적에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비를 머금은 구름빛이 새롭습니다. 새로운 구름빛은 어느새 바람에 날려 흩어지거나 사라집니다.


  아마 도시에서는 하늘이 넓게 트인 모습을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높다란 아파트와 건물이 가득하고, 어디이든 자동차가 득시글거리기 때문입니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 올라야 비로소 눈길이 확 트일 텐데, 높은 건물 꼭대기에 오르든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시골로 찾아가든, 틈틈이 하늘바라기를 해 보기를 바라요. 하늘바라기를 할 적에 우리가 느끼고 맞아들이는 빛과 무늬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갓 지은 밥을 주걱으로 퍼서 밥그릇에 담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물을 알맞게 맞추었으면 밥알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물이 질구나 싶으면 밥알이 질척거립니다. 물이 모자라다 싶으면 밥알이 뻣뻣합니다. 날마다 되풀이하는 밥짓기라 여길 수 있지만, 새로 밥을 지어 그릇에 담을 때마다 가만히 살펴보면, 밥알빛을 읽으면서 새로운 무늬와 결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풀잎과 꽃잎을 바라봅니다. 흙에 뿌리를 박은 풀줄기에서 돋은 풀잎과 꽃잎은 무척 싱그럽습니다. 참 예쁘구나 싶어 풀잎이나 꽃잎을 톡 끊을 수 있겠지요. 이때에 풀잎과 꽃잎은 어떤 빛으로 달라질까요. 어떤 잎이든 풀줄기에서 끊으면 이내 시듭니다. 끊은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았어도 축 처집니다.


  빛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습니다. 스스로 눈여겨볼 때에 빛은 환하게 퍼집니다. 스스로 눈여겨보지 못할 때에 빛은 아무 느낌도 이야기도 없습니다.


  해가 떠야만 빛이 나지 않습니다. 전깃불을 켜야 새롭게 빛을 다룰 수 있지 않습니다. 젓가락 끝에도 빛이 있고, 옷자락 한쪽에도 빛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읽으려고 할 때에 빛을 읽습니다. 마음 깊이 샘솟는 빛을 찍으려고 할 때에 빛을 찍습니다.


  바람한테서 빛을 느낄 수 있으면 바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구름한테서 빛을 느낄 수 있으면 구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하는 짝꿍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려면, 사랑하는 짝꿍이나 동무한테서 빛을 느껴야 합니다. 내 어머니나 아버지를 사진으로 찍으려면, 먼저 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샘솟는 빛을 느껴야 합니다. 빛을 느껴서 즐겁게 우리 가슴에 담아서 이루는 이야기가 사진입니다. 4347.8.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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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27. 가고 싶어서 간다



  여름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참말 바다로 가고 싶으니 갑니다. 겨울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참으로 바다로 가고 싶으니 갑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있기에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다로 갑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없으면 누가 자가용에 태워 데려다 주더라도 못마땅하기 마련이요, 즐거움이나 재미를 못 누리기 일쑤입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없을 적에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닐 적에는 글 한 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라면 따스한 볕이나 시원한 바람을 살갗으로 못 느낍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담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하고, 사진 한 장으로 담아서 보여주고픈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나입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늘 나입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맨 먼저 읽습니다. 내가 찍으려는 사진을 내가 가장 먼저 읽습니다. 나부터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서 삭히고 다시 삭히며 거듭 삭힌 사진을 이웃한테 보여줍니다. 내가 스스로 한 번 찍고 두 번 찍으며 세 번 찍으면서 가다듬고 추스르며 어루만진 사진을 동무한테 보여줍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갑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몸이 흐릅니다. 마음이 우러나오는 대로 사진이 우러나옵니다. 무엇을 골라서 사진으로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사진을 찍으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살피면 됩니다. 어떤 장비를 갖추어 사진을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빛으로 거듭난 뒤 사진을 찍느냐 하는 대목을 돌아보면 됩니다.


  꽃 한 송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밭을 찍을 수 있습니다. 꽃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잎에 앉은 나비나 파리나 벌이나 잠자리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이 질 무렵 찍을 수 있습니다. 시멘트 틈바구니에서 돋은 꽃을 찍을 수 있습니다. 떨어진 꽃씨를 찍을 수 있고, 꽃씨를 물어 나르는 개미를 찍을 수 있으며, 꽃내음 맡는 아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내음 흐르는 마을을 찍을 수 있고, 꽃내음이 퍼지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는 마음인지 읽고 삭혀서 찍으면 언제나 사진이 됩니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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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26. 대문을 여는 나이


  아이가 대문을 엽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스스로 대문을 열지 못합니다.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나이를 먹으면서 키가 자라기에 드디어 스스로 대문을 열 수 있습니다. 스스로 대문을 여는 아이는 스스로 집 바깥으로 나갑니다. 다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멀리 나다니지 않습니다. 그저 ‘대문 열기’를 해낸 기쁨 하나로도 넉넉합니다. 누나 손이나 아버지 손을 빌지 않아도 혼자 씩씩하게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넓게 트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곁에 누군가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이 있으면 무척 좋다고 할 만합니다. 모르거나 궁금할 적에 바로 여쭐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곁에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떠할까요. 이때에는 안 좋다고 할 만할까요. 모르거나 궁금한 일을 여쭐 사람이 없으면 사진길을 어떻게 걸어갈 만할까요.

  그때그때 모든 것을 챙겨 주는 스승이나 이슬떨이나 길동무가 있어도 삶은 즐겁습니다. 둘레에 아무도 없어 나한테 아무것도 챙겨 줄 수 없는 삶도 이 삶 나름대로 즐겁습니다. 도와주는 이가 있으면 도와주어서 즐겁고, 도와주는 이가 없으면 스스로 모든 일을 맺고 푸는 동안 즐겁습니다.

  책을 읽으면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즐겁습니다. 책을 안 읽으면 책이 아닌 온몸으로 삶을 부대껴서 지식을 얻어야 하니, 이때에는 이때대로 즐겁습니다.

  스승이나 이슬떨이나 길동무가 있다면 한결 빠르게 사진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나 이슬떨이나 길동무가 없어도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사진을 빠르게 익힐 수 있고, 오랜 나날에 걸쳐 천천히 익힐 수 있습니다. 옆에서 늘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에 ‘기대는 버릇’이 드는 바람에 혼자서는 사진을 제대로 못 찍는 사람도 있겠지요.

  밥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려 줄 수 있습니다. 밥은 스스로 차려서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은 내가 차려서 식구들 모두를 먹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밥차림’이요 ‘밥먹기’이자 ‘밥나눔’입니다.

  다만, 밥을 먹자면 스스로 숟갈을 들어야 합니다. 밥을 먹자면 스스로 입을 움직여 씹어야 합니다. 밥을 먹은 뒤 스스로 몸을 움직일 노릇입니다. 사진도 언제나 스스로 찍습니다. 도와주거나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이웃이 있더라도, 사진은 언제나 스스로 조용히 즐겁게 찍습니다.

  문을 열어요. 씩씩하게 스스로 대문을 열어요. 스스로 대문을 열어젖힌 뒤 마음도 활짝 열어젖혀요.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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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25. 사진잔치를 연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잔치를 엽니다. 흔히 ‘전시회’라는 이름을 많이 쓰는데, 나는 늘 ‘잔치’라는 이름을 씁니다. 한자말 ‘전시회(展示會)’는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를 가리킬 뿐이지만, 한국말 ‘잔치’는 “사진을 놓고 함께 기뻐하면서 즐기는 삶”을 나타냅니다. 책을 놓고 ‘책잔치’를 하듯이, 사진을 놓고 ‘사진잔치’를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사진잔치는 조촐히 열 수 있고, 커다랗게 열 수 있습니다. 전시관을 빌려서 사진잔치를 마련해도 되고, 마을에서 담이나 골목을 빌어 사진잔치를 꾸려도 되며, 우리 집 한쪽에 사진을 걸어서 이쁘장한 잔치판을 이루어도 됩니다.


  사진잔치를 할 적에는 사진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전시회에서는 ‘사진을 판다’는 뜻도 있을 텐데, 사진잔치에서는 ‘사진 팔기’를 할 수도 있지만, ‘사진 함께하기’나 ‘사진 나누기’ 뜻이 한결 짙습니다. 나 스스로 즐겁게 찍은 사진을 이웃과 동무한테 선보이면서, 이 사진을 홀가분하게 선물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선물받은 사람은 나한테 값을 치러 줄 수 있지만, 그냥 가져갈 수 있어요.


  사진을 종이에 앉히자면 돈이 듭니다. 돈이 들지요. 그런데 잔치를 여는 까닭은 ‘돈을 벌’ 뜻이 아닙니다. 돈을 모으고자 꾸미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즐기거나 노래하고 싶은 뜻에서 마련하는 잔치입니다. 그동안 내가 찍은 사진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내가 보기에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추립니다.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알뜰살뜰 엮어서 널리 선보입니다. 이때 나는 내가 그동안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되새깁니다. 이웃과 동무는 내가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진 이야기’가 넘칩니다.


  비평이나 평가나 이론이 오가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즐기는 사진을 놓고 오순도순 이야기잔치를 꽃피우면 넉넉합니다.


  사진을 즐긴다면 사진잔치를 열어요.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교실 한 칸이나 골마루 한쪽에 꾸밀 수 있습니다. 여느 아저씨나 아주머니라면 ‘우리 집 마루나 방’에 사진을 예쁘게 꾸며 놓고 먹을거리를 기쁘게 마련한 뒤 이웃과 동무를 불러요. 즐겁게 사진을 찍는 나를 북돋웁니다. 나한테 반가운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빛을 나누어 줍니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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