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49. 시골을 등진 도시에서 사진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통계 숫자로는 91%가 넘는 사람이 도시에 산다고 나옵니다. 몇 해 앞서 나온 통계 숫자입니다. 요즈음은 92%가 넘는 사람이 도시에 산다고 나올는지 모르는데, 통계에 감추어진 속살을 살피면 99%나 99.9%는 도시에서 살아가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거의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갑니다. 이 아이들은 도시로 가면서 아직 주민등록을 도시로 옮기지 않습니다. 나중에 한참 지나고서야 주민등록을 옮기기 마련이라, 막상 시골에 없이 도시에서 지내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시골을 아는 사람’이 대단히 적다는 뜻입니다. 시골에서 살지도 않고, 시골에서 지내는 일도 드물며,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두는 사람도 아주 적어요. 신문이든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으레 도시 이야기를 다룹니다. 시골 이야기는 거의 안 다룰 뿐 아니라, 시골로 기자가 취재를 가는 일조차 드뭅니다.


  도시에 살건 시골에 살건 밥을 먹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빵을 먹거나 피자라든지 햄버거를 먹을는지 몰라요. 그러면, 밥이 되는 쌀은 어디에서 날까요? 빵이나 피자나 햄버거가 되는 밀은 어디에서 날까요? 돼지고기와 닭고기와 소고기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모두 시골에서 나옵니다. 시골이 없으면 시골사람도 굶고 도시사람도 굶어요. 손전화나 인터넷이 없어도 안 굶어죽지만, 시골이 없어 논밭을 못 일구고 돼지우리나 소우리나 닭우리가 없으면 모든 사람이 몽땅 굶어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건 시골이 무너지면 다 죽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시골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는 매체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대통령 곁에 달라붙든 시장이나 국회의원이나 장관한테 달라붙어서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고, 경찰서나 검찰 같은 데에 눌러앉아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습니다만, 시골 논밭에 앉아서 풀을 뜯으면서 기사를 쓰는 기자는 한 사람조차 없습니다. 시골 들이나 숲에 깃들어 풀내음이나 숲내음을 먹으며 기사를 쓰는 기자는 그야말로 한 사람도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쌀 한 톨이나 밥 한 그릇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쌀도 밥도 제대로 모르는 오늘날 사람들인데, 시골 이야기도 농사꾼 이야기나 쌀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거나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려 한다면, 무엇을 나타내거나 보여주거나 드러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이 없으면 굶어서 죽지만, 정작 학교에서 시골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시골 논밭이 없으면 밥을 못 먹지만, 막상 대학교이든 회사이든 공공기관이든 시골을 살리거나 가꾸려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진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까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꿈꿀 때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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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8. 노래해 노래해 노래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기를 손에 쥐고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연필을 손에 쥐고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살림을 꾸리는 사람은 부엌칼로 밥을 짓거나 비누로 빨래를 하거나 비와 걸레로 쓸고닦거나 따순 손길로 아이를 돌보면서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시골사람은 낫과 호미로 흙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고기잡이는 배를 몰아 바다를 마주하며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노래하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일까요? 내 노래는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흐르면서 사랑이 피어나거나 꿈이 자랄까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기 앞서 가만히 생각해요. 오늘 하루 어떤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며 어떻게 지내고 싶은가를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마음으로 그리고, 내가 꿈꾸는 길은 어디로 흐르는가를 차근차근 짚어요.


  이것이거나 저것인 사진은 없습니다. 이렇게 찍어야 하거나 저렇게만 다루어야 하는 사진은 없습니다. 내가 너하고 다르듯이, 나는 내 사진을 찍고 너는 네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에 우리는 모두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이를테면, 사진감이 똑같다 하더라도 우리는 참말 모두 다르게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다 다른 우리들이 똑같다 싶은 사진을 찍는다면? 이때에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테지요. 서로 마음이 꼭 맞았다는 뜻이거나, 서로 생각이 틀에 박혔다는 뜻입니다.


  노래를 하고 싶은 사람은 노래를 하고, 노래를 하고 싶어 노래를 하는 사람은 늘 노래에 안겨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생각합니다. 부르려는 노래를 곱게 가다듬습니다. 꿈을 꾸고 싶은 사람은 꿈을 꾸고, 꿈을 꾸고 싶어 꿈꾸는 사람은 늘 꿈누리를 가꾸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가슴에 담고 싶은 꿈을 생각합니다. 가슴에 담고 싶은 꿈을 날마다 정갈히 가다듬습니다.


  노래해요. 노래하고 또 노래해요. 즐겁게 노래해요. 활짝 웃으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노래해요. 사진기를 손에 쥐기 앞서 노래를 해요. 사진기를 손에 쥐고 나서 노래를 해요. 사진기 단추에 손가락을 얹기 앞서 노래를 해요. 사진기 단추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누르면서 노래를 해요. 4347.9.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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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7. 무엇을 찍고 싶은가



  사진을 찍으려는 분들이 잘 알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무엇을 찍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은 ‘소재 아닌 주제’를 찍습니다. 다른 갈래에서도 이와 같아요. 글을 쓸 때에도 ‘글감이 아닌 이야기’를 씁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적에도 ‘소재 아닌 주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릴 적에는 어떠할까요? 정물을 그린다고 하면 그저 정물을 그립니다. 배를 그리든 딸기를 그리든 나무를 그리든 풀이나 꽃을 그리든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그리려 하는 정물’을 즐겁게 잘 그리면 됩니다. 사람을 그릴 적에도 그렇지요.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를 그리든, 내 짝꿍이나 동무를 그리든, 길에서 마주친 사람을 그리든, 시골 흙지기나 고기잡이를 그리든, 공장 일꾼이나 버스 일꾼을 그리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누구를 그리든 ‘사람을 그리는 내 마음’이 오롯이 깃들도록 그려야 합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무엇을 찍어야 할까요? 사진감(소재)에 매이지 않으면서 내가 담아서 나타내고 싶은 이야기를 찍으면 됩니다. 성노예 할머니를 찾아뵙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고, 청소부를 찍을 수 있을 테며, 시골 할아버지를 찍을 수 있을 테지요. 이름난 시인이나 연예인을 찍을 수도 있어요. 누구를 찍든 참말 대수롭지 않습니다. 찍힌 사람 숨결이 드러나면서 찍는 사람 숨소리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어야 사진다운 사진이 됩니다.


  사람을 찍을 적에는 무엇보다 한 가지를 잘 헤아려야 합니다. 내가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나와 얼마나 가깝거나 살갑거나 반갑거나 고맙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님인지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을 제대로 모르는 채 찍는다면 어떤 사진이 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을 ‘안다’면 얼마나 알고 어떻게 아는가를 짚어야 합니다.


  ‘난 저 사람을 잘 알지’ 하는 마음일 때에 어떤 사진이 나올까 생각해요. ‘나는 저 사람을 얼마나 알까’ 하는 마음일 때에는 어떤 사진이 나올는지 생각해요. ‘내가 저 사람한테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를까’ 하는 마음이라면 어떤 사진이 나오겠는가 하고 생각해요. ‘내가 아직 모르거나 못 느끼는 저 사람 숨결은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라면 어떤 사진이 나올 만한지 생각해요. ‘내가 더 알고 싶으며 더 만나고 싶은 저 사람 숨소리는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 되면 어떤 사진이 될는지 생각해요.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빈틈없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남보다 더 낫거나 덜떨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뛰어나지도 허술하지도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그저 사진기를 손에 쥐고 이웃과 동무를 만납니다. 이웃과 노래하는 사진이고, 동무와 꿈을 꾸는 사진입니다. 무엇을 찍어야 할까요? 내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이야기를 찍고, 내 동무와 사랑을 속삭이는 이야기를 찍습니다. 4347.9.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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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6. 무엇을 알아야 할까



  사진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진뿐 아니라, 글쓰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글쓰기뿐 아니라, 그림을 배운다든지 악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요즈음은 텃밭 일을 배운다거나 들풀이나 들꽃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무엇을 배우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교를 찾아가면 될까요? 강의나 강좌를 찾아서 들으면 될까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챙겨 읽으면 될까요? 이 모두를 해야 할가요?


  무엇을 배우고 싶다면 배우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을 배우려 할 적에는 온마음을 기울여 사랑하면 됩니다. 온마음을 기울일 뿐 아니라 사랑을 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온마음을 기울이지 않거나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해요.


  바둑을 배우든 장기나 오목을 배우든, 온마음을 기울여야 비로소 배울 뿐 아니라, 바둑사랑이나 장기사랑이나 오목사랑으로 나아가야 제대로 배웁니다. 흙땅에 금을 그으면서 하는 땅따먹기놀이도 온마음을 기울여야 하고, 제기차기나 공기놀이도 내 온 사랑을 쏟으면서 배워야 즐겁게 제대로 익힙니다.


  마음을 끄는 짝이 있을 적에 어떻게 할는지 헤아려 보셔요. 그 사람 취미나 좋아하는 것이나 생일 따위만 알면 될까요? 아닙니다. 온마음을 기울여 그 사람한테 다가서야지요. 그리고 내 마음을 끄는 그 사람을 오롯이 사랑해야지요.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배웁’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 하면, 삶을 알아야 합니다. 네 삶과 내 삶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알자면 제대로 보아야 하고, 제대로 보면서 느껴야 하며, 제대로 느끼는 동안 제대로 배워야겠지요. 제대로 배우기에 제대로 살아갈 수 있고, 제대로 살아간다면 제대로 사랑하는 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어요.


  사진을 배우려면, 기계도 알아야 하고 사진책도 보아야 하며 사진이론도 이럭저럭 들어야 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이런저런 것으로는 언제나 겉훑기로 그쳐요. 겉훑기만 해도 넉넉하다면 겉훑기로 그쳐도 됩니다만, 애써 품과 말미와 돈까지 들여서 어느 한 가지를 배우려는 생각이라면, 아무쪼록 온마음을 기울이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찍기는 멋진 모습 찍기가 아닙니다. 사진찍기는 대단한 모습을 찍어서 남한테 자랑하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찍기는 내가 가장 사랑할 삶을 깨달아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진기를 빌어서 나타내거나 나누는 놀이입니다. 4347.9.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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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5. 네 손길이 닿는 곳에



  나이가 들어서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함께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쯤이라면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함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따로 잠자리에 들리라 느껴요. 열 살이나 열두 살이어도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함께 잠자리에 들지 않으려 할 수 있어요.


  내 나이가 서른 살이나 마흔 살쯤 된다면, 꽤 나이를 먹은 어버이하고 함께 잠자리에 들 일이 없을 수 있는데, 내 나이가 쉰 살이나 예순 살쯤 된다면, 나보다 늙은 어버이하고 함께 잠자리에 들면서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나눌는지 모릅니다.


  어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고 보면, 나는 어버이한테 아이입니다. 늙은 어버이는 젊은 아이가 잠자리에서 이불을 차는지 뒹구는지 살핍니다. 젊은 아이는 그냥 내처 잘 테지만, 늙은 어버이는 자다가 곧잘 깹니다. 아이가 잘 자도록 이불깃을 여미거나 반듯하게 누여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아직 밤잠을 느긋하게 누린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집 아이들이 나이를 제법 먹는다면 밤잠을 느긋하게 잘 수 있으리라 보는데, 아직 그때까지는 퍽 멀지 싶어요. 왜냐하면, 우리 집 아이들이 많이 어렸을 적에는 천기저귀를 가느라 밤잠을 잘 수 없었고, 천기저귀를 뗀 뒤에는 밤오줌을 누이느라 잘 수 없었으며, 요즈음은 이불깃을 여미느라 잘 수 없습니다. 자다가 문득 잠을 깨면 어김없이 두 아이 모두 이불을 걷어찼기에 찬찬히 이불깃을 여밉니다. 밤새 이렇게 보내요.


  나는 내가 예닐곱 살이나 서너 살 적에 어떻게 지냈는지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무렵 내 어머니가 밤마다 어떻게 하셨을는지 그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우리 집 아이들한테 하듯이, 내 어머니도 밤마다 내 이불깃을 여미어 주느라 잠을 제대로 못 이루셨겠지요. 내가 처음 밤오줌을 가리려 할 적에도 밤잠을 쫓으면서 쉬를 누여 주셨겠지요.


  사진은 사진기라고 하는 기계에 있는 단추를 눌러야 찍습니다. 필름이든 디지털파일이든 단추를 눌러야 태어납니다. 그런데, 단추를 누르기 앞서, 우리 손길이 먼저 닿아야 할 곳이 있어요. 내가 사진으로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 마음으로 손길이 먼저 따스하게 닿아야 합니다. 내 손길이 내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따사롭게 다가갑니다. 네 손길이 나한테 따사롭게 다가옵니다. 서로서로 따사롭게 마주보면서 즐겁게 손을 잡습니다.


  굳이 어떻게 만들거나 꾸며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서로 아끼는 사랑이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고 아름답게 사진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4347.9.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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