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59. 사진책을 읽는다



  사진책을 읽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려고 제법 크다 싶은 돈을 들이는 사람은 많아도, 사진책을 한 권씩 꾸준히 장만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책이 비싸다고들 하지만, 사진기만큼 비싸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사진책을 장만하려고 한 달에 십만 원이나 오만 원쯤은 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십만 원이나 오만 원을 사진책 장만하는 데에 쓴다면, 한 달에 사진책을 한두 권쯤 장만한다는 뜻입니다.


  소설책이나 시집을 한 번만 읽고 안 읽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즐겁게 읽은 소설이나 시라면 두 번 세 번 거듭 읽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장만한 사진책이라면 한 번 휘 훑은 뒤 안 쳐다보지 않습니다. 처음 장만한 날부터 두고두고 다시 읽고 되새겨 읽습니다.


  우리가 장만할 사진책은 꾸준히 다시 읽고 새롭게 읽을 만한 사진책입니다. 이름난 사진가가 선보였으니 장만할 사진책은 아닙니다. 이름값 있는 출판사에서 펴냈으니 장만할 사진책은 아닙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즐기려는 내 삶을 환하게 밝히거나 곱게 보듬어 줄 만한 사진책을 찬찬히 골라서 장만합니다.


  사진책을 읽는 사람이 눈을 넓거나 깊게 뜰 수 있습니다. 내 이웃과 동무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눈길로 온누리를 품에 안는가 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내 사진밭을 한결 알차면서 기쁘게 일굴 수 있습니다. 사진책을 읽는 까닭은, 무엇보다, 즐겁기 때문입니다. 따순 손길로 이웃한테 다가서면서 사진을 찍은 사진벗을 만날 수 있어 즐겁습니다. 따순 눈길로 이웃을 마주하면서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사진책을 내 가슴에 살포시 안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적어도 한 해에 열두 권을 장만해 보셔요. 사진책을 한 해에 열두 권씩 장만할 수 있게끔 차근차근 돈을 모아 보셔요. 가장 먼저 장만하고 싶은 사진책을 뽑고, 이 사진책을 한 권 장만했으면, 다음으로 장만하고 싶은 사진책을 하나하나 살펴요. 한 해 열두 권을 장만하고, 두 해와 세 해를 지나고 다섯 해쯤 되면 내 곁에는 사진책이 예순 권 있어요. 다섯 해가 더 흐르면 내 곁에는 사진책이 백스무 권 있어요. 자, 열 해 동안 사진책을 백스무 권 장만했다면, 이 사진책을 가만히 돌아봐요. 나는 열 해에 걸쳐서 ‘백스무 가지 이야기’를 꾸준히 갈무리했습니다. 나한테 아름답거나 반갑구나 싶은 이웃이 빚은 ‘사진 이야기’를 백스무 가지 살피는 동안, 나는 내 나름대로 ‘내가 길어올리는 사진 이야기’를 백스무 가지 찾은 셈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빠듯한 살림에 다달이 사진책 한 권 씩씩하게 장만하며 열 해를 살았으면, 바로 나 스스로 내 사진을 추려서 ‘내 사진책을 빚는 길’을 슬기롭게 알아챌 수 있다는 뜻입니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58. 남길 수 있는 사진



  사진은 남깁니다. 찰칵 하고 찍으면서 남깁니다. 사진은 무엇이든 남깁니다. 무엇이든 사진기를 들어 찰칵 하고 찍으면 필름이나 디지털필름에 남깁니다. 사랑하는 짝꿍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남깁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지나칠 수 없어 살며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으로 남깁니다. 눈에 띄는 무엇인가 보고는 오래오래 건사하면서 두고두고 돌아보려는 마음이 되어 사진으로 남깁니다.


  사진기를 써서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놀리면서 문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을 모아 값진 사진장비를 갖출 수 있고, 이럭저럭 쓸 만한 사진장비를 갖출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는, 천만 원짜리 사진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백만 원짜리 사진기이기에 더 사랑스럽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십만 원짜리 사진기이거나 1회용 사진기이기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스럽게 못 찍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사진으로 찍어서 남길 수 없다면, 값진 사진장비이든 값싼 사진장비이든 나오지 않습니다. 값이 다를 뿐, 사진으로 찍어서 우리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사진기입니다.


  나무를 찍다가 도끼를 못에 빠뜨린 나무꾼은 금도끼도 은도끼도 바라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금이나 은으로 만든 도끼로 나무를 찍을 수 있을까요? 못 찍지요. 돈값은 제법 할 테지만, 나무꾼은 나무를 찍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제 손에 익은 쇠도끼를 바라요.


  아마 누군가는 달리 생각하겠지요. 금도끼나 은도끼를 받으면 쇠도끼를 잔뜩 장만할 수도 있고, 앞으로 나무꾼 노릇을 더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고요.


  그러면, 참말 생각해 보셔요. 나무꾼이 나무를 더 하지 않으면 삶이 즐거울까요? 탱자탱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노닥거리면 삶이 즐거울까요? 나무꾼은 아침마다 밥 한 그릇 비운 뒤 깊은 숲속으로 도끼 한 자루 메고 걸어서 올라온 뒤, 나무마다 인사를 하고는 한 그루 골라서 즐겁게 쩍쩍 찍으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리라 봅니다. 그러니, 나무꾼은 날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쉬며 알맞게 노래하는 이 삶을 놓치거나 버리지 않으려고 ‘쇠도끼’를 고릅니다. 나무꾼이 너무 고단한 삶이었다면, 나무꾼이 굶주리거나 종과 같은 삶이었다면, 아마 금도끼나 은도끼를 바랐을 수 있어요. 나무꾼이 쇠도끼를 고른 까닭은 스스로 앞으로도 즐겁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진장비를 손에 쥐든 사진을 찍어서 남길 수 있습니다. 자, 어떤 사진기를 손에 쥐겠습니까? 무엇을 찍겠습니까? 어떤 마음이 되어 찍겠습니까?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57. 서로 재미있습니다



  글을 아직 잘 모르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글을 배웁니다. 어버이는 글씨를 하나하나 천천히 쓰면서 보여줍니다. 아이는 글씨를 하나하나 천천히 보면서 눈에 익히고 손에 익힙니다. 쓰고 쓰고 또 쓰면서 글씨가 익숙합니다.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글씨를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글씨를 한창 익히는 아이가 어버이 손길을 받지 않고 혼자 처음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 때에는 어떤 느낌일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처음으로 혼자 사진기를 다루면서 찰칵 하고 한 장을 찍을 때하고 비슷하겠지요. 아이가 마음속으로 흐르는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을 손수 글 한 줄로 적을 적에는 어떤 느낌일까 짚어 봅니다. 사진을 두 장 석 장 넉 장 꾸준히 찍으면서 스스로 그리고픈 모습을 마음껏 그릴 수 있을 때하고 서로 비슷하겠지요.


  이제 막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이제 막 배움에 눈뜨도록 이끄는 사람도 곁에서 즐겁습니다. 이제 막 글씨를 익히는 아이도, 이제 막 사진을 익히는 어른도, 다 함께 즐겁습니다. 그리고, 아이한테 글씨를 알려주는 어버이도, 사진찍기를 새내기한테 알려주는 길동무나 이슬떨이도 다 같이 즐겁습니다.


  배우는 재미와 가르치는 재미는 같습니다. 새롭게 맞아들이는 재미와 새롭게 알려주는 재미는 같습니다. 물려받는 재미와 물려주는 재미는 같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새로운 모습을 보기에 재미있고, 가르치는 사람은 새로운 모습을 가르치기에 재미있습니다. 배움과 가르침은 언제나 서로 새롭기에 재미있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맨 처음에만 배우지 않아요. 한글은 어릴 적에 배우고 더는 안 배우지만, 한글에 담을 말은 늘 새롭게 배웁니다. 글에 담을 이야기는 늘 새롭게 삶을 가꾸면서 배우지요. 사진에 담을 숨결을 늘 새롭게 배웁니다. 사진에 담을 이야기를 언제나 새롭게 삶을 가꾸면서 배웁니다.


  나이 마흔에 글쓰기를 새로 돌아보면서 배웁니다. 나이 쉰에 사진을 새로 되새기면서 배웁니다. 나이 예순에 살림을 새로 살피면서 배웁니다. 나이 일흔에 한국말을 새로 짚으면서 배웁니다. 나이 여든에 풀과 꽃과 나무와 씨앗을 새로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나이 아흔에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래를 새로 들으면서 배웁니다.


  사진길을 오래 걸었다고 해서 안 배우지 않습니다. 쉰 해나 예순 해쯤 사진길을 걸었어도 날마다 새로 배우니 날마다 새로 찍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지 이제 닷새나 엿새가 지났어도, 날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남을 흉내내는 데에서 그치며 따분한 사진만 만듭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삶을 아끼고 북돋울 때에 서로 재미있게 나눌 사진을 얻습니다. 4347.10.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56. 같이 걷는 길에서



  하늘이 새파랗게 열린 날에는 새파란 하늘빛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나서 사진기를 들면 내 사진에 새파란 하늘빛이 고스란히 스며듭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잔뜩 낀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고 나서 사진기를 들면 내 사진에 구름빛이 하나하나 젖어듭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조용히 듣고 나서 사진기를 들면 내 사진에 빗소리가 넌지시 물결을 치듯 노래하면서 감겨듭니다.


  무엇을 찍고 싶은가요? 찍고 싶은 무엇을 생각해 봅니다. 찍고 싶은 어느 한 가지를 생각했다면, 이 한 가지하고 나란히 길을 걷습니다.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 바라봅니다.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 생각합니다.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사진은 언제 어떻게 우리한테 찾아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한테 찾아오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게 맞아들이면 됩니다.


  어느 날에는 열 시간 즈음 기다려서 사진 한 장 얻습니다. 어느 날에는 1초마다 재미나고 예쁜 사진을 얻습니다. 어느 날에는 딱히 사진을 얻지 못하면서 지나가는데, 열흘이나 보름 만에, 또는 석 달이나 세 해 만에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을 얻습니다.


  1분에 사진 한 장 얻어서 더 기쁘지 않습니다. 10분에 사진 한 장 얻어서 덜 기쁘지 않습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을 얻으면 언제나 기쁩니다. 사진을 얻기까지 천천히 기다리는 나날이 기쁩니다. 사진을 얻고 나서 온누리를 새삼스레 돌아보는 나날이 기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찍기에 기쁘고 따로 사진을 찍지 않으면서 기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기에 기쁘고 따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서 기쁩니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기 때문입니다. 기쁜 사람은 이러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밥을 지어 아이한테 차려 주거나, 곱게 바느질을 해서 뜨개옷을 선물하거나, 언제나 스스럼없이 홀가분합니다.


  먼저 이 길을 같이 걸어요. 같이 걸으면서 마음에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요. 그림을 기쁘게 그리고 나서, 이 아름다운 그림을 사진 한 장으로 옮겨요.


  사진기만 들 적에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찍고 싶은 모습을 마음으로 환하게 그리고 난 뒤라야 비로소 사진을 찍어요. 아름답게 살고 싶은 하루를 마음으로 그려야 날마다 아침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사랑을 품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습니다. 4347.10.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55. 꽃과 하늘과 구름과 나무



  마음이 맑고 시원하다면, 사진을 찍을 적에 맑고 시원한 기운이 스밉니다. 마음이 어둡고 무겁다면, 사진을 찍을 적에 어둡고 무거운 기운이 감돕니다. 찍히는 사람이나 터전이 어떠한 모습인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기도 하고, 찍는 사람 마음에 따라 사진은 더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람이나 터전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 모습이 나타나곤 해요.


  어떤 사람을 바라볼 적에, 이 사람이 마음이 아파서 우는구나 하고 느끼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이 사람이 떼를 쓰며 우는구나 하고 느끼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울음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사진은 사뭇 달라집니다. 신문에 실리는 보도사진을 보면, 신문 매체가 어떤 마음으로 기사를 쓰려 하는가에 따라 글과 사진이 모두 다른 이야기로 흐릅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하늘빛을 사진으로 옮길 적에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흐르는 구름이나 우뚝 선 나무를 사진으로 담을 적에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마음이 하나도 안 움직이는데 그냥 사진기 단추를 눌러대지 않나요? 그저 멋있어 보이기에 서둘러 찍으려 하지는 않나요?


  어느 곳에서 어떤 것을 사진으로 찍더라도, 내 마음에서 이야기가 샘솟지 않는다면, 서로 즐겁게 나눌 만한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사진으로 찍더라도, 내 마음에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지 않는다면, 다 함께 기쁘게 나눌 만한 사진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빌어 마음을 나타냅니다. 사람 얼굴을 찍을 적에는, ‘찍히는 사람 마음’뿐 아니라, ‘찍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 하는 이야기를 나란히 나타냅니다. 숲을 찍거나 꽃을 찍을 적에는 ‘이쁘거나 멋있어 보이는 숲이나 꽃’뿐 아니라 ‘숲과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 되어 바라보려 하는가’ 하는 이야기와 숨결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마음에서 뭉클하고 무엇인가 움직일 때에 사진을 찍어요. 마음에서 이야기를 살며시 길어올리면서 사진을 찍어요. 마음을 넉넉하거나 푸근하게 살찌우면서 사진을 찍어요. 마음 가득 따사로운 사랑을 가꾸면서 사진을 찍어요.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잘잘라 2014-09-2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꽃가지를 배경으로 파란 하늘을 찍으신 건지,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꽃을 찍으신 건지, 여름인듯 가을인듯, 풍경인듯 계절인듯,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붉은 꽃보다 파란 하늘이 더 강렬하게 느껴져서 놀랐습니다. 다시 봐도 역시..

숲노래 2014-09-28 13:19   좋아요 0 | URL
이 사진을 찍던 날 깜짝 놀랐어요.
붉은 배롱꽃도, 파란 하늘도,
살짝 흩어지면서 사라지는 구름도,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사진기로 얼마까지 담을 수 있나 하고 올려다보며
석 장을 찍었어요.

사진기로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하지 않고
보통대로 두면서
(저는 콘트라스트 강조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눈에 보이는 느낌 그대로 담으려 하던 날이었어요.

참말 하늘이 새파랗게 열린 날에는
그저 보이는 대로 담으면
엄청나구나 싶은 사진이 나오는구나 하고 깨달은 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