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04. 빛과 그림자



  겨울이 지나 봄이 다가올수록 해가 길어집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면 해는 더욱 길어집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해가 짧아집니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해는 더욱 짧아집니다.


  가만히 햇볕을 느껴도 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줄 느끼고, 마루로 들어오는 햇살을 살펴도 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줄 느끼며,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줄 느낍니다.


  그림자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철 따라 그림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곧 알아차립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서 키가 부쩍 커졌다고 여깁니다. 그림자만 보아도 아주 길거든요.


  겨울이 되어 무척 비스듬하게 눕는 햇살은 더 깊은 데까지 포근하게 어루만집니다. 여름에는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꽂듯이 내리쬐는 햇볕이라면,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구석까지 보드랍게 어루만지는 햇볕입니다.


  빛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퍼질까요. 그림자는 언제 지며 어느 만큼 드리울까요.


  해는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날마다 다르게 지구별을 비추면서 새로운 빛과 그림자를 빚습니다. 날마다 다른 빛과 그림자를 마주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빚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다른 빛과 그림자이기에 이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언제나 새로운 사진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4347.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103. 바지런한 손놀림


  삶은달걀을 까는 두 아이는 오직 삶은달걀만 바라봅니다. 밥상에 여러 가지를 올리면 우리 집 두 아이는 맨 먼저 삶은달걀을 집습니다. 아직 뜨거워도 아 뜨거 아 뜨거 하면서 삶은달걀을 안 놓습니다. 바지런히 손을 놀리면서 껍질을 벗깁니다. 삶은달걀을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으로 신나게 손을 놀립니다.

  어떤 사진을 찍으면 될까요? 바지런히 손을 놀려서 단추를 신나게 누를 만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찍고 또 찍어도 질리지 않거나 물리지 않을 만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쉬지 않고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사진을 찍으면 되고, 기쁘게 노래가 흘러나올 만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진이 나한테 즐겁거나 기뻐서 손을 신나게 놀릴 만할까요? 어디에서 사진을 찍을 적에 손을 바지런히 놀릴 만할까요?

  사진감은 남이 골라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살피면서 헤아려야 합니다. 언제 즐겁고 기쁜지 스스로 알아채야 합니다. 즐겁거나 기쁜 일이 없다면 사진을 찍지도 못할 뿐 아니라, 여느 때에 웃을 일도 드물고 노래가 흘러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 내 모습을 살펴야 합니다. 언제 신나게 웃고 언제 기쁘게 노래하며 언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는지 알아채야 합니다. 내 사진은 내가 웃고 노래하면서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에서 바지런히 손을 놀리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4347.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102. 밝은 눈빛



  일곱 살 아이가 마을 어귀에 있는 빨래터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소리쟁이’라는 풀을 한 잎 뜯어서 가지고 옵니다. 아이는 이 풀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소리쟁이’야.” 하고 알려줍니다. 아이는 “‘소리쟁이’? 아, 소리쟁이로구나.”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한 번 듣고 나서 풀이름을 곧바로 머리와 몸과 손과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풀이름을 까맣게 잊은 뒤 나중에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도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을 곧잘 까먹었습니다. 언제나 어머니한테 여쭈었어요. 어머니는 나한테 도감이요 사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치지 않고 풀이름과 나무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때때로 어머니도 “나도 몰라. 그냥 풀이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리쟁이’라는 풀은 무척 맛있습니다. 풀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도시내기도 소리쟁이라는 풀은 무척 달고 맛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상추나 배춧잎이나 깻잎 말고는 거의 풀을 구경해 보지 못한 도시내기라 하더라도, 눈을 살며시 감고 소리쟁이 잎사귀 하나를 잎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 ‘풀이 이렇게 맛나네?’ 하고 놀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소리쟁이는 아주 흔한 풀입니다. 다만, 흔한 풀이되 아무 데에서나 아무렇게나 자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도 아무 데에서나 아무렇게나 자라는 풀을 다 뜯어서 먹지는 않습니다. 망가진 땅이나 더러워진 땅에서 나는 풀은 굳이 먹지 않습니다. 왜 안 먹을까요? 망가진 땅이나 더러워진 땅에서 나는 풀은 망가지거나 더러워진 흙을 되살리는 일을 해요. 그러니, 이 풀이 씩씩하게 흙을 되살리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지켜봅니다. 두 해 네 해 여섯 해 가만히 지켜보면, 풀은 씩씩하고 기운차게 올라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나면서 돋고 시들고 죽고 다시 돋고 시들고 죽고를 되풀이하면서 흙을 살립니다.


  봄이든 늦가을이든, 소리쟁이잎을 보면 갓 돋을 적에는 멀끔하지만 조금 자란다 싶으면 어느새 진딧물이나 풀벌레가 잔뜩 달라붙어서 갉아먹습니다. 더없이 맛난 풀인 줄 진딧물과 풀벌레가 재빠르게 알아챕니다.


  벌레 먹는 풀과 벌레 안 먹는 풀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벌레가 먹는 풀이란 그만큼 싱그럽고 맛난 풀이라는 뜻입니다. 벌레가 안 먹는 풀이란 ‘벌레가 싫어하는 풀’일 수도 있으나, 요즈음은 농약과 비료 때문에 벌레조차 가까이하지 못하는 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풀을 먹을 적에 우리 몸이 살아날까요? 어떤 풀을 알고 사귀면서 가까이할 적에 우리 눈빛을 밝힐 수 있을까요?


  소리쟁이라는 풀이름을 아는 사람은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러다가 한 잎을 톡 끊어서 입에 넣지요. 소리쟁이라는 풀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옆에 이 풀이 우거져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쳐다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는 무엇을 사진으로 찍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는 누구를 이웃이나 동무로 삼고, 어느 마을에서 어떤 삶을 가꾸는지 살필 노릇입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101. 코앞에 있다



  사진으로 담아서 나눌 이야기는 늘 코앞에 있습니다. 코앞에 있는 사람을 기쁘게 마주하면서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코앞에 있는 골목집이나 아파트를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코앞에 있는 풀숲이나 길가 한쪽에서 살그마니 고개를 내미는 풀과 꽃을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구름을 바라보고 빗줄기를 바라봅니다. 해를 바라보고 바다를 바라봅니다. 멀리 멧자락을 바라보고 온갖 건물이 들쑥날쑥 솟은 도시를 바라봅니다. 어느 곳을 바라보든, 나 스스로 즐거운 눈길로 바라보면 사진에 즐거운 기운이 서립니다. 무엇을 바라보든, 나 스스로 고운 눈빛으로 바라보면 사진에 고운 기운이 깃듭니다. 어디에서 바라보든, 나 스스로 따스한 눈매로 바라보면 사진에 따스한 기운이 감돕니다.


  멀리 있는 무엇을 찾아나서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이웃을 만나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빛이나 소리나 냄새나 숨결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마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내가 선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코앞에 있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내 둘레에서 피어나는 빛이나 소리나 냄새나 숨결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내가 사는 이 마을과 보금자리에서 이야기를 새롭게 가꾸어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코앞을 볼 줄 알 때에 먼 곳을 봅니다. 코앞을 보지 못할 적에 먼 곳을 보지 못합니다. 코앞을 느끼면서 눈빛을 밝힐 때에 먼 곳에 있는 아스라한 빛이 흐르는 결을 밝힐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이야기를 반가이 마주할 때에 멀리 있는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슬기로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4347.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14-12-0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세상에 저렇게 야채를 잘먹는군요.. 기특해라 ㅎㅎㅎ 아이가 자라서 이 사진들만 봐도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 알겠어요.

숲노래 2014-12-01 20:43   좋아요 0 | URL
풀이기에 먹는다기보다
그저 즐겁게 먹는다 할 수 있어요.
잘 먹으면 늘 참으로 고맙습니다...
 

사진 찍는 눈빛 100. 골고루 어우러진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이것을 넣거나 저것을 빼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빼야 할 것을 빼거나 넣어야 할 것을 넣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나 스스로 찍고 싶은 이야기를 한 자리에 골고루 어우릅니다.


  어떤 이야기를 찍으려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무엇을 찍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내 뒤에 태어나서 살아갈 아이한테 남기고 싶은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이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떠올려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랑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꿈꾸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별이 흐르고 바람이 불며 해가 뜹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냇물이 흐릅니다. 구름이 모이고 무지개가 뜨며 새가 지저귑니다. 풀벌레가 짝을 찾고 개구리가 깨어나며 자전거가 달립니다. 냉이가 나고 민들레가 피며 무화과알이 맺습니다.


  밥을 끓입니다. 국내음이 퍼집니다. 수저를 딸각거리는 소리가 감돕니다. 오늘 하루를 새롭게 엽니다. 글을 한 줄 쓰고 책을 한 쪽 읽습니다.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때 묻은 옷을 빨래합니다. 설거지를 하고 방바닥을 걸레로 훔칩니다.


  삶이 흐르면서 이야기가 흐릅니다. 삶과 이야기가 흐르기에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생각이 자라면서 마음이 자랍니다. 생각과 마음이 자라기에 사진 두 장 찍습니다. 노래가 샘솟고 웃음이 터집니다. 노래와 웃음이 어우러지기에 사진 석 장 찍습니다.


  아름다운 하루는 늘 이곳에 있습니다. 이곳에 서서 내 하루를 바라봅니다. 사랑스러운 하루는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랑을 돌아보면서 내 길을 걷습니다. 내 사진은 내 하루에서 태어납니다. 내 사진은 내 사랑으로 자랍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