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 불온한 책 읽기의 문화사
강성호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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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4.7.

책으로 삶읽기 815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강성호

 오월의봄

 2021.7.29.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강성호, 오월의봄, 2021)은 책이름만으로 반갑게 집어들었는데, 정작 펼쳐서 읽자니 ‘혁명 꿈꾸기’하고는 다른 줄거리가 흐른다. 위아래(신분계급)를 갈라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고단하던 조선이 흔들거리며 무너질 즈음 새나라가 서려 하다가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서 더욱 어수선한 틈에서 그야말로 새빛을 스스로 찾아내려고 애쓴 사람들이 곁에 둔 책을 짚으려고 하는 줄거리이다. 지난날 어른이나 사람을 섣불리 ‘혁명가’라 할 수 없다고 느낀다. 아기를 낳아 보금자리에서 수수하게 돌보는 모든 어버이도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아기를 낳고 돌보는 손길이 ‘살림이자 혁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살림이고 혁명일까? 글을 써야 혁명이지 않고, 총을 들어야 혁명이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야 혁명이지 않다. 오늘 여기로 끝낼 마음이 아닌, 오늘 여기에서 씨앗을 심고서 모레에 자라날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꿈을 사랑으로 새롭게 들려주는 몸짓이 언제나 빛나는 살림이요 혁명이다. 이런 밑살림을 글님이 미처 못 보고 못 느끼고 몰랐구나 싶다. 이러다 보니 글님 글결부터 매우 딱딱하다. ‘혁명을 꿈꾼’ 사람들 발자취를 책읽기로 더듬으려고 하면서 정작 ‘혁명하고 동떨어진’ ‘일본 군사제국주의 낡은 글결’을 그대로 써야 한다면, 어떤 살림과 혁명을 밝힐 수 있을까? 한자말 ‘독서’는 왜 붙여서 쓰고, 우리말 ‘책 읽기’는 왜 띄어서 쓸까? 무엇이 살림이자 혁명인가? “-의 독서는 -讀의 책 읽기”처럼 자꾸 글을 쓰는데, 무늬도 한글하고 동떨어진 그냥 일본말씨이다. “당시 독서 인구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239쪽)” 같은 글은 무늬는 한글이지만 일본말씨이다. “그무렵 책을 읽는 이는 거의 학생이었다”처럼 수수한 말씨로 가다듬도록 마음과 눈길과 생각부터 먼저 ‘뜯어고치기(혁명)’를 할 적에 비로소 ‘혁명을 꿈꾸는 책읽기’를 누가 어떻게 왜 얼마나 어디에서 하면서 씨앗을 남겼는지 귀퉁이 한 자락쯤 짚을 수 있으리라.



홍명희의 독서는 완독完讀과 남독濫讀의 책 읽기였다. (18쪽)


번역을 할 때 그가 취한 방법은 ‘중역’이었다. 홍명희는 일본어를 경유한 중역 방식을 고수했다. (24쪽)


김구의 독서는 독행일치讀行一致의 독서였다. 그의 독서에서 책과 삶은 분리되지 않았다. (93쪽)


자신이 원하는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이들을 ‘신여성’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일찍이 조선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위협적인 존재였다. (119쪽)


일본 유학 시절 박원희는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에 관한 다수의 책을 읽었으리라 본다. (179쪽)


당시 독서 인구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살아가던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진학과 취업이었다. (2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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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낙서 수집광
윤성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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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2023.3.20.

인문책시렁 294


《헌책 낙서 수집광》

 윤성근

 이야기장수

 2023.2.8.



  《헌책 낙서 수집광》(윤성근, 이야기장수, 2023)을 읽었습니다. 아직도 한자말 ‘낙서’를 그냥 쓰는 분이 많습니다만, 우리말로 보자면 ‘쪽글·조각글’이나 ‘놀이글·말놀이’이거나 ‘글꽃’이거나 ‘끄적임·깨작질’입니다. 책을 읽고서 깨작거리는 사람이 있으나, 차곡차곡 쪽글을 남기는 사람이 있고, 이모저모 생각을 밝혀 글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한자말로 여러 가지 뜻을 나타냈다고 여기지만, 곰곰이 본다면 숱한 삶과 살림을 한자말로 아무렇게나 묶거나 눌렀다고 여길 만합니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왜 글을 몇 줄 끄적일까요? 아무 생각이 없다면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글쓴이나 지은이하고 마음이 맞거나 어긋나기에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 귀퉁이에 몇 마디를 남깁니다. 새롭게 읽으며 새삼스레 배우기에 문득 생각을 해보면서 이야기를 넣습니다.


  《헌책 낙서 수집광》을 읽으면 《초인생활》이라는 책을 다루기도 하는데, ‘정신세계사’에서 내기 앞서 1978·1985년에 《히말라야 성자들의 초인생활》이란 이름으로 나왔으며, ‘정신세계사’ 판은 처음 새로 낼 적에도 옮김말이 틀렸다는 손가락질을 꽤 받고서 2020년에 새 옮김판을 내놓았으나 어설프거나 엉성한 옮김말씨는 썩 안 가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Life and Teaching of the Masters of the Far East”라는 이름이기에 ‘초인생활’로 옮긴 이름하고는 동떨어져요. 아무래도 일본판을 들여다보며 옮기던 낡은 버릇 탓에 우리말로 옮길 마음을 못 키웠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초인생활’이 아닌 ‘깨달은 삶과 가르침’이 무엇인지 짚고 밝히면서 나누려는 줄거리를 담은 책이 ‘초인생활이란 이름으로 나온 책’입니다.


  헌책이라는 이름은 ‘헌 : 손을 댄’을 밑뜻으로 삼습니다. 예부터 ‘새책’이란 말은 잘 안 썼습니다. 딱히 놀랄 일이 아닙니다. 모든 책은 그저 책일 뿐이니, 구태여 ‘새책’이라 안 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고서 책장사를 할 무렵에라야 비로소 ‘新刊·新書’ 같은 한자말이 쏟아졌고, 이 일본스런 한자말을 우리는 아직도 붙잡습니다. 적어도 ‘새책’으로 옮겨야 할 텐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굳이 ‘새책’ 같은 낱말을 잘 안 썼을 뿐 아니라, 2023년에 이를 무렵까지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헌책’만 올림말로 삼고 ‘새책’은 올림말이 아닐까요?


  낱말로만 보면 ‘헌책·새책’이 나란히 올림말이어야 하고, ‘헌책집·새책집’처럼 적어야 맞습니다. 아무튼 우리로서는 “모든 책은 그저 책이고, 모든 책은 손길을 닿아서 읽혀야 비로소 책이다.”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따로 ‘헌책’만 예부터 한 낱말로 삼아서 가리켰고, 가난하던 일제강점기에도 헌책집이 꽤 열었으며, 한겨레싸움(한국전쟁) 한복판에 나라 곳곳에 헌책집이 한꺼번에 잔뜩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헌책 = 손이 닿은 책 = 손길책’입니다. 손이 닿은 책이란 “읽힌 책”이니, “읽히는 책 = 손길이 닿아 빛나는 책 = 손빛빛”입니다.


  이 얼거리를 안 살핀다면, 언제까지나 ‘헌책은 구질구질하거나 지저분하거나 낡거나 케케묵거나 뒤떨어진 옛날 책’이라는 꼰대스러운 마음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헌책’은 낡은 책이 아닙니다. ‘낡은책 = 줄거리·이야기가 낡은 책 = 지은이 마음이 낡아빠져서 새길을 하나도 안 쳐다보거나 못 알아보는 책’입니다. 종이가 허름하대서 낡은 책이지 않아요. ‘헌책’이란 이름에 붙는 ‘헌’은 ‘한·하늘’하고 맞물리는 말뿌리입니다. ‘헌집·헌옷’을 가리킬 적에 쓰는 ‘헌-’은 모두 “손길을 받아 새롭게 쓰이고 빛나는 살림”을 속뜻으로 품어요. 이러한 말결은 바로 ‘하늘’하고 닮지요. 우리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우리가 늘 ‘새롭게 마시고서 새삼스레 뱉은 숨(바람)’이 하나로 이룬 덩이입니다.


  《헌책 낙서 수집광》은 ‘낙서 수집광’처럼 부러 예스러이 한자말을 여미는 책이름에, 다룬 책이나 줄거리도 조금 예스러운 티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굳이 예스러운 티를 내야 할는지 아리송해요. 모든 책은 책이면서 헌책일 뿐이기에 새책인데, ‘새롭게 읽는 마음’으로만 바라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낙서 수집’을 하기보다는 ‘우리 마음을 담아 쪽글을 새로 넣고서 다시 헌책집 책시렁 한켠에 깃들도록 내놓아서 두고두고 되읽히는 책으로 나아가는 길’을 고즈넉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낙서 수집광’처럼 멋부리는 이름은 그만 내려놓고서, ‘기담 수집’처럼 멋내기는 이제 그만하면서, ‘이야기 찾기’하고 ‘이야기 새로짓기’에 마음을 둘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야기가 흐르기에 책이요 헌책입니다. 이야기가 없이 장사에 마음을 빼앗기기에 새책이자 낡고 고리타분한 꼰대책입니다.


ㅅㄴㄹ


솔직히 내가 상상으로 그리던 초인의 모습도 바로 이렇게 평범한 느낌이다. (46쪽)


사실 이 문장이야말로 책 탕진의 정석이라 부를 만하다. 우선 탕진은 무엇보다 충동적이어야 한다. (177쪽)


사실 사회과학서점에서 책을 싸주던 이유는 책을 보호하기보다는 그 책을 가진 사람을 보호한다는 목적이 컸다. (191쪽)


어린이였을 때 나는 이미 어른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어른의 경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256쪽)


책을 빼앗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살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건 얼마나 맥빠지는 일인가. (3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 붙임

: 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쓴 책싸개는 ‘그 책을 가진 대학생을 보호하는 목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이 뜻만 있다고 할 수 없고, 이 뜻이 크다고 할 수도 없다. ‘대학교 앞 책집 이름이 깃든 책싸개’는 ‘그 대학 출신임을 자랑하려는 뜻’이 훨씬 컸다. 책싸개는 인문사회과학서점뿐 아니라 ‘대학 구내 서점’에서도 나란히 썼고, 대학 구내 서점은 1950∼60년대에도 있었는데, 그때에도 그 대학 구내 서점은 ‘책싸개’에 ‘대학교 이름’을 큼지막하게 넣었다. 틀린 이야를 함부로 쓰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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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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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18.

인문책시렁 281


《한 권의 책》

 최성일

 연암서가

 2011.10.25.



  《한 권의 책》(최성일, 연암서가, 2011)을 열 몇 해 만에 되읽다가 2011년에 이 책을 책집에서 서서 읽었을 뿐, 굳이 안 산 까닭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글님은 틀림없이 여러 갈래 책을 찬찬히 읽고서 느낌을 밝히는 듯하지만, 참말로 ‘여러 갈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안 읽는 책을 꽤 즐기는구나 싶어 마음도 눈도 안 갔더군요. 이 책이 첫머리에 다루는 《즐거운 불편》조차 글님 스스로 ‘즐겁게 서울살림(도시문명)을 끊고서 하나씩 차근차근 바꾸며 아이들하고 살림빛을 새롭게 짓는 하루’인 줄 느끼지 못 하는 채 서둘러 느낌글(서평)을 쓴 듯싶습니다. 그래도 최성일 님은 ‘잘난책’을 덜 읽는 듯싶으나 ‘작은책’으로까지 눈망울을 더 뻗지는 못 했다고 느껴요.


  꼭 어느 책을 읽고서 느낌글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숱한 글바치(작가·비평가)는 어린이책을 너무 안 읽고, 그림책·만화책·사진책은 아예 안 들여다보다시피 합니다. 그림책·만화책·사진책을 읽고서 느낌글을 쓰는 이들은 너무 어렵게 쓸 뿐 아니라, 하나같이 ‘서울내기 눈’으로 줄거리를 풀어낼 뿐입니다.


  온누리 아름다운 그림책·만화책·사진책을 여민 지음이 가운데 서울(도시)하고 등진 채 시골이며 숲에서 호젓하고 조용하게 살림을 짓는 분이 꽤 많습니다. ‘지은이가 시골이며 숲에서 호젓하고 조용하게 살림을 지으며 살기’에 ‘글바치(비평가)도 똑같이 시골이며 숲에서 살면서 글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책을 지은 사람이 어떤 터전에서 날마다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글을 여미었는가’는 헤아릴 노릇입니다.


  후쿠오카 켄세이 님이 쓴 《즐거운 불편》을 못 읽어내는 눈이라면, 팀 윈튼 님이 쓴 《블루 백》이라든지, 다이애나 콜즈 님이 쓴 《영리한 공주》라든지, 엘사 베스코브 님이 지은 《펠레의 새 옷》이라든지,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 지은 《슈렉》이나 《도미니크》도 못 읽어낸다고 느껴요. 아니, 이런 책을 읽을 엄두를 못 낸다고 해야겠지요.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여민 《아나스타시아 1∼10》을 읽고서 느낌글을 찬찬히 써내려면 어떤 하루를 살아야 할까요? 머리(지식·정보)로는 이러한 책을 못 읽게 마련입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님이 쓴 《허울뿐인 세계화》를 잿집(아파트)에서 살며 읽는들 무엇을 바꿀 만할까요?


  다시 말하자면, 《즐거운 불편》을 읽을 적에 스스로 자전거를 달리면서 집이랑 일터를 오가는 살림으로 확 바꾸고서 다시 이 책을 읽어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쓸 느낌글은 너무도 다릅니다. 권정생 님이 쓴 《몽실 언니》나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었다면 ‘시민단체 뒷배가 아닌 작은이웃 어깨동무’라는 길을 생각하면서 살림을 바꿀 줄 알아야겠지요. 이오덕 님이 쓴 책을 읽었으면서 정작 일본말씨를 스스로 털어내지 않고서 ‘일본 천황제·군국주의’나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나무라기만 한다면, 우리 스스로 두동진 꼴입니다.


  좋은책이나 나쁜책은 없습니다. 읽는 눈길·손길·마음길에 따라서 모든 책을 새롭게 헤아려 우리 삶에 스스로 밑거름으로 삼아 오늘 하루를 새록새록 가꿀 뿐입니다. 흙으로 돌아간 최성일 님이 부디 하늘누리에서 포근히 쉬면서 하늘빛을 읽는 꿈길을 가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하지만 김 교수가 사서의 전문적 자질에 대해 꾸준히 문제의식을 가진 점을 감안해도 이번 책에서 도서관인의 자기성찰보다 신분보장에 더 주의를 기울인 것은 약간 유감스럽다. (26쪽)


‘자화상’의 일부 내용은 친일로 매도될 여지마저 있다. 하지만 선생의 담담한 고백은, 전두환 장군 찬양 기사를 작성한 것에 대해 지금껏 따져 물어온 이가 없었다는 기자 출신 소설가의 떨떠름한 말투와 얼마나 다른가! (36쪽)


이태 전, 한 출판단체가 주관하는 추천도서 선정 모임에 참여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절반 넘게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도서선정위원 주소록에 나타난 주거 형태가 아파트 일색이었다. (49쪽)


이에 비하면 환경운동에 대한 비판은 약간 물렁하다. “비판은 언제나 두렵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이 속한 분야를 향한 비판은 더욱 그래서일 것이다. (9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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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 - 다른 세대, 공감과 소통의 책·책·책
옥영경.류옥하다 지음 / 한울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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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30.

인문책시렁 275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

 옥영경·류옥하다

 한울림

 2022.12.30.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옥영경·류옥하다, 한울림, 2022)는 어머니하고 아들이 함께 여민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밝히는 책을 차근차근 읽고서, 이 책으로 온누리를 새삼스레 헤아리며 나아갈 길을 풀어내는 얼거리입니다. 두 분은 충북 영동이라는 삶터에서 하루를 봅니다. 시골사람으로서 시골빛을 품고서 온누리를 헤아려요.


  시골·서울 두 낱말은 사람이 이룬 삶터를 저마다 달리 나타냅니다. 오늘날은 시골·서울이란 말꼴로 굳었는데 옛말로 스가발·서라벌이란 말꼴이 있고, ‘골’은 ‘고을’을 줄인 낱말이면서 “멧자락에서 깊이 패여 샘물이 싱그러이 흐르는 곳”도 ‘골’이요, “불타듯 일어나는 부아처럼 일어나는 기운”도 ‘골’이고, ‘골백번’이라 할 적에 붙이는 ‘10000’이나 ‘숱하다’를 가리키는 우리말인 ‘골’이 있고, 움푹 들어간 자리를 ‘골’이라 하며, 무엇을 이루려도 짠 틀을 ‘골’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시-’라는 앞말은 ‘심·심다·씨’를 나타내고, ‘심·씨’는 ‘싱그러움·싱싱함(맑음)’을 가리킵니다. ‘서울·서라벌·새벌’이 모두 같은 말이자 땅이름이고, “새롭게 지은 너른터”라는 뜻이면서 ‘서·서다·세우다’하고 ‘새·새롭다·사이’라는 앞말에, ‘벌·벌판’이나 ‘울·울타리·우리·아우름’이라는 뒷말인 얼개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시골 = 심는 곳 + 싱그런 기운이 숱하게 일어나는 고갱이(알맹이)를 이루는 곳”인 얼개요, “서울 = 새로 선 곳 + 시골 사이에서 높이 올려 밝게 아우르면서 함께하는 곳”인 얼개입니다. 말밑하고 말뜻을 돌아본다면 “시골 = 스스로 살림을 짓도록 힘(심)을 들여 기운(빛)을 얻고 나누려고 풀꽃나무하고 숲을 품는 보금자리”라면, “서울 = 새롭게 일으키는 힘(심)을 하나로 함께 모으려고 사람들이 북적이도록 맺은 일터”라고 하겠습니다.


  시골은 숲빛으로 피어나는 삶자리이고, 서울은 일빛으로 북적이는 삶터예요. ‘자리 = 자위 = 가꾸는 땅’을 가리키고, ‘터 = 텃 = 가꾸는 땅’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시골은 잊히거나 내버리거나 등돌리는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시골일을 맨손으로 노래하면서 누리는 사람은 가뭇없이 사라져 한 줌도 안 남았습니다. 다들 ‘기름틀(기계)’을 부려요. 소똥구리가 없고 들노래가 사라진 시골이에요. 어깨동무하듯 뭉치며 일빛을 세우기에 새로 밝은 서울이어야 어울리는데, 이제 우리네 서울·큰고장은 그저 잿더미(아파트)를 끝없이 세우고 쇳덩이(자동차)가 끝없이 매캐하면서 돈벼락에 휩쓸리는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두 시골내기가 여민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에서 밝히는 ‘자유·불편’을 우리말로 옮기면 ‘나다움·거북함’입니다. 내가 나답게 날갯짓을 하는 길을 한자말로 ‘자유’라 합니다. 내가 나답게 날갯짓을 하지 못 하도록 억눌린 굴레를 한자말로 ‘불편’이라 합니다. 시골다운 시골이 사라지고, 서울은 서울답지 못 한 오늘날 이 나라를 바라보는 마음은 즐겁지 않을 만합니다. 그래서 시골내기나 서울내기 모두 ‘딱딱하고 골때리는 어려운 책’보다는 ‘부드럽고 푸르며 싱그러운 책’을 곁에 둔다면 사뭇 다르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슬픈 미나마타》라든지 《회색곰 왑의 삶》이라든지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든지 《모래 군의 열두 달》이라든지 《나무처럼 산처럼》이라든지 《영리한 공주》라든지 《펠레의 새 옷》이라든지 《미스 럼피우스》라든지 《작은 새가 좋아요》라든지 《작은 새가 온 날》 같은 책을 곁에 둔다면, 새길(대안)이 아닌 꽃길(평화)을 이야기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한 구석에》나 《맨발의 겐》이나 《천상의 현》이나 《80세 마리코》나 《블랙 잭》이나 《불새》나 《토성 맨션》이나 《미요리의 숲》이나 《은빛 숟가락》 같은 만화책을 곁에 둔다면, 생각도 꿈도 마음도 새삼스레 다독여 사랑빛으로 물들일 길을 스스로 밝히며 걸어갈 만하리라 봅니다. ‘인문사회과학책’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직 숱한 인문사회과학책은 ‘똑똑책’에 머물 뿐, 풀내음이나 숲내음이나 흙내음이나 비내음하고는 등진 터전에서 맴돌지 싶어요. 쉽고 부드러운 말씨로 어린이하고 소꿉살림을 짓는 사람이어야 어른이듯, 우리말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가부터 맨손으로 읽어내 보면, 모든 길은 스스로 찾고 열면서 가꿀 만합니다.


ㅅㄴㄹ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살아남으라고 했다. 나는 고쳐 말하기로 한다. 살아 있자! 같이, 함께 살아 있자. 나도 뭔가 해 볼게. 너도 내 뒤에 있어 주기를! 좋은 세상은 그렇게 온다. (52쪽)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가면 된다고? 어디가 안전한 곳인가? (83쪽)


한순간의 혁명이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두 힘이 경쟁하면서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117쪽)


아이들은 옷이 자기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자기 존재가 거기 있는 줄 안다. 그건 마치 더이에 사느냐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는 아파트 광고처럼, ……. (178쪽)


그러나 우리 너무 열심히 산다. 꽃 피고 새 울고 날 좋다. 삶에도 바람구멍 있어야지. 오늘은 구들더께 되어 주전부리 물고 뒹굴고 … 그리고 책 좀 볼까? (19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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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
화수분제작소 지음 / 화수분제작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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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7.

인문책시렁 268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

 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5.10.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쓴 분들은 아직 책집마실을 즐기지 않는구나 싶더군요. 아직 책집이 어떤 터전인가를 읽는 눈이 아니로구나 싶고요. 책집마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책집이 사라질 걱정’을 안 합니다. 그냥 책집으로 책마실을 갑니다. 책집마실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책집이 사라질 걱정’을 합니다.


  책집이 어떤 터전인가를 읽는 눈이라면, 책집마실을 할 적에 ‘아무 책이나 고르지 않’습니다. 책집이 마을에서 빛나는 길에 이바지할 책이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책을 고르고 장만할 줄 알기에 비로소 ‘책손’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책손’조차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래저래 잘 알려지거나 널리 팔리는 책을 ‘사들이는(소비하는)’ 사람은 ‘책손’이 아닌 ‘소비자’입니다.


  책집을 꾸리는 사람이 ‘책집지기’라는 이름을 스스로 쓰려면, ‘소비자한테 소비상품을 건네는 몫’을 넘어야겠지요. 책집지기는 늘 ‘팔리는 책을 팔아야 하느냐, 팔아야 할 책을 알려야 하느냐’를 놓고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책집지기라는 길이 ‘나라가 시키는 대로 졸졸 따라가는 허수아비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널리 알려진 책을 자랑하듯 잘 보이는 자리에 쌓아두는 짓을 안 합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 책시렁’을 놓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을 붙이려 한다면, 아직 ‘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집지기나 책손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려면, ‘읽고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바지하는 책’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훌륭한 책이나 아름다운 책이나 놀라운 책이나 멋진 책’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읽으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스스로 배우면서, 오늘 하루를 사랑으로 살아낼 살림을 짓는 마음을 가꾸도록 북돋우는 책’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삶을 노래하도록 북돋우는 책은 만화책일 수 있고 그림책일 수 있습니다. 사진책일 수 있고 노래책(시집)일 수 있습니다. 이름난 책일 수 있고, 묻혀버린 책일 수 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사읽는 책이 아닌, 우리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사읽을 책입니다. ‘눈치’란 무엇일까요? ‘이런 책을 읽어야 훌륭하다’는 눈치라든지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던데’ 같은 눈치가 있습니다. ‘세계명작이나 고전’이라는 눈치가 있고, ‘한국 작가를 읽어야 한다’는 눈치가 있어요.


  책집을 말하는 책을 쓰고 싶다면, ‘적어도 열 해에 걸쳐서 책집마실을 꾸준히 다니되, 적어도 이레마다 책집마실을 하루쯤 꼭 하면서, 적어도 이레에 두어 자락쯤 책을 읽는 나날’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제가 책집마실을 다니면서 책을 배울 적에 ‘책손’이라는 이름을 받고 싶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하고 알려준 ‘책어른’이 나라 곳곳에 꽤 있었습니다. 책어른이 알려주신 바로는, “‘책을 좀 본다’고 말하고 싶다면, ‘책집 손님’이라는 이름을 듣고 싶다면, 책집 한 곳을 스무 해는 다니고, 그 책집 한 곳에서만 사읽은 책이 3000 자락을 넘어야 하지 않을까?”입니다.


  우리 곁에 책집은 한 곳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손’이려면, 여러 책집을 두루 누릴 줄 아는 다리품을 팔 줄 알아야겠지요. 그리고 ‘숱한 책’을 두루 넓게 깊게 헤아리면서 ‘추천도서 목록이 아예 없는’ 책살림을 지을 줄 알아야 할 테고요.


ㅅㄴㄹ


‘책값은 결코 비싸지 않습니다.’ 캠페인이라도 하고 싶다. 필요한 일이다. (30쪽/산책)


재미있는 건, 헌책방의 기억이 있는 50∼60대 동네 분들은 꼭 책을 사간다는 것이다. (36쪽/산책)


전에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어느 동네에 갔는데 쉴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들어가서 다리도 풀면서 차 한 잔 마실 곳이 없는 것이다. 결국 무더운 날씨에도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주안동은 그런 동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 동네 정말 재미있다. 또 오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75쪽/딴뚬꽌뚬)


어떻게 보면 역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들을 팔고 싶은데,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은 안 팔리는 책이기도 하다. 안 팔리는 책을 사다가 판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 책방에 자기계발서나 베스트셀러만 갖다 놓을 수는 없다. (85쪽/딴뚬꽌뚬)


같은 책을 동네책방에서 정가를 내고 살 때는 본인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을 그만큼 포기하는 거다. 따라서 그만한 반대급부를 동네책방에서 제공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많은 동네책방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116쪽/사각공간)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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