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111 ― 내 가슴속에서 살고 있는 자연 찾기
 : 다케타즈 미노루,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책이름 :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글ㆍ사진 : 다케타즈 미노루
- 옮긴이 : 김창원
- 펴낸곳 : 진선books (2008.1.28.)
- 책값 : 13800원



 (1) 학교와 자연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 학교에서 내어주는 숙제 가운데 가장 하기 싫은 숙제는 ‘우리 동네 천연기념물 알아오기’나 ‘우리 동네 국보 알아오기’ 따위였습니다. 서울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로 삼는 나무가 있으며 국보로 삼는 보배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 땅 어느 곳에 가도 천연기념물이며 국보이며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천에서는 천연기념물도 국보도 만날 수 없었을 뿐더러, 보물로 치는 문화재를 만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아니, 천연기념물을 떠나 그 흔한 여느 새를 생각하기란 몹시 어려웠어요.

 나중에 커서 생각해 보면, 날마다 보던 갈매기를 애틋하게 여길 수 있고, 낚시하러 갯가에 가서 잡던 망둥이라든지, 동네에 있던 조그마한 논에서 잡던 미꾸라지를 살가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자연이나 사회 과목에서는 ‘우리 둘레 흔한 목숨붙이’는 그리 값할 만하지 않은 듯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개구리나 두꺼비를 사랑하는 일은 ‘자연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고 가르쳤고, 두루미나 오색딱따구리나 미선나무쯤 들먹여야 무언가 아는 셈이고 자연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듯 이야기했습니다.


.. 라디오에서는 저기압이 북쪽 해상을 통과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내일은 틀림없이 남풍이 불 것이다. 유빙을 데려가기 위해. “훗카이도 사람들은 보물섬에서 살고 있군.”  친구는 이 말을 남기고 도쿄로 돌아갔다 … 그 당시는 강물이 깨끗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아무도 강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하물며 강에 오줌을 누는 천벌 받을 짓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그맘때면 자연이 베풀어 주는 혜택을 그 강을 통해 받았기 때문이다 ..  (14, 105쪽)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또 고등학생이 될 무렵만 하여도, 인천에서 안개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툭하면 안개가 짙게 끼어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을 애먹었습니다. 그래 보았자 아홉 시가 넘어가고 열 시가 가까우면 걷혔는데, 이 짙은 안개가 오래오래 드리우면서 ‘우리도 학교를 좀 쉬어 봤으면’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코앞도 헤아릴 수 없도록 드리우던 안개가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 으레 나타난다고 말하던 교사란 없었고,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이라고 딱히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마땅한 노릇인지 모릅니다. 인천사람으로서 물때를 모른다면 바보이고 바다 날씨를 모르면 멍텅구리였을 테니까요. 아주 꼬맹이가 아니고서는 다 알아야 한다고 여긴 바다 날씨였으니 굳이 이야기할 까닭이 없었고, 안개이든 뭐든 철 따라 찾아오는 모습이었을 뿐입니다. 뭉게구름이나 소나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지개를 대단히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보니까요.

 집집마다 온갖 꽃을 어여쁘게 키우기는 했으나 이런 꽃은 ‘돈으로 따질 값나가는 천연기념물에 들지 않으’니 푸대접을 해도 괜찮은 듯 가르친 학교라고 할까요. 아니, 처음부터 아예 생각할 구석이 없는 듯 우리 매무새를 길들인 학교라고 할까요.

 국민학교 3ㆍ4ㆍ5학년 때에는 방학숙제로 식물채집을 즐겨했는데, 식물채집이건 곤충채집이건 ‘흔한 풀꽃과 벌레’를 거두어 오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해마다 ‘흔한 풀꽃’을 스무 가지에서 서른 가지 즈음 거두면서 숙제로 내었고, 다른 동무 가운데에는 흔한 풀꽃조차 대여섯 가지를 거두어 온 녀석이 없던 탓인지, 저는 늘 점수를 잘 받았습니다. 하기는. 바다로 흘러가는 개천 옆 아파트 꽃밭에서 자라던 들딸기 한 포기도 거두었고, 아빠 엄마랑 설악산 나들이를 했을 때에도 두어 가지 풀을 캐 왔고, 수봉공원과 자유공원 마실을 하면서 이 풀 저 풀 캐 오며 ‘이름 모르는 풀’이라고 척 붙여놓곤 했으니까요.


.. 말은 트랙터와 달라서 ‘따 따 따 따’하는 요란한 소리 따위를 내지 않는다. 기껏 나는 소리라야 목을 돌릴 때마다 목에 걸린 방울이 ‘땡강 땡강’ 하고 울리는 정도다. 그리고 언땅이 녹는 것이 밭의 지형에 따라 이르거나 늦어져 밭갈이가 일제히 시작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말은 경유만 넣어 주면 며칠이고 움직일 수 있는 기계와는 달라서 전날 일이 힘들었다 싶으면 쉬게 해야 했고, 어떤 때는 주인이 전날 밤 약주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오후 늦게 밭에 나오는 그런 식이었다. 여하튼 모든 것이 느긋하고 한가로웠다 … 그리고 얼레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길래 “얼레지 알뿌리를 갈아서 그것으로 경단을 만들면 어떤 맛일까요?” 하고 말을 꺼냈더니 모두들 나를 흘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맥주 기운이 좀 돌아서 별 생각 없이 “좋아하는 것은 먹어야죠. 먹을수록 더 좋아질 테니까요.” 했더니, 그중 한 사람이 “그럼 선생님, 여우 고기 맛은 괜찮아요?”라고 해서 내가 한방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  (30, 37쪽)


 요즈음도 학교에서 식물채집이나 곤충채집 숙제를 내어주는지 궁금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제는 식물채집이든 곤충채집이든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 아닌 목숨이 홀가분하게 숨쉬고 살아갈 터전이란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니까요. 아니, 우리 스스로 사람 아닌 목숨은 살아갈 수 없게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온땅을 뒤덮고 있으니까요. 아니, 우리들은 이웃사람조차 살아갈 수 없게끔 비싼집을 새로 짓고 값싼집은 허물면서 온통 아파트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으니까요. 돈이 없으면 사람으로 치지 않고, 돈 되는 일에 마음을 쏟지 않으면 사람값을 못하는 듯 따돌리니까요.


.. 지키는 농부는 긴 장대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어 댈 뿐, 소리도 크게 지르지 않아서 옆에서 보면 쫓는다기보다는 함께 놀고 있는 것 같은 느긋한 분위기였다. 농가의 뜰은 넓다. 저쪽에서 한 무리의 다람쥐들이 우르르 달려와 볼주머니에 밀을 채우고 있으면 농부는 달아나는 시간을 주려는 듯이 천천히 다가가서 장대를 흔든다. 그러면 또 다른 놈이 저쪽에 와서 붙는다. 참새들은 흔들거리는 장대가 아예 보이지 않는 듯 먹기에 바쁘다. 아무튼 적은 많고 끈질기다. 한 농가 주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하루에 한 가마니는 각오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그들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하고 덧붙였다 ..  (122쪽)


 그러고 보면 학교는 자연하고 울타리를 쌓습니다. 학교부터 자연하고 동떨어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자연을 벗삼는 일이란 없습니다. 봄가을에 맞추어 자연 터전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하여도 아이들은 먹고 쓰고 버리는 데에만 익숙하지, 자연을 아끼고 돌보면서 너른 품을 고이 껴안고자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하는 교사부터 자연을 넉넉히 껴안지 않기도 하고요.

 입으로는 물질만능주의 서양이 ‘동양사람들 마음밭 깊은 뜻 앞에 고개를 숙인다’고도 외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고 우리 얼이 어떠한지 곱씹지 않습니다. 되레 서양보다 깊디깊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며, 여기에 돈과 기계와 전쟁에 매입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이 아닌 이웃을 밟고 올라서는 길을 걷습니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등처먹는 경쟁과 장사속이 판치도록 하고, 서로를 지키고 다독이는 믿음이 아닌 서로를 괴롭히고 편가르는 학벌과 연고제와 조직을 키웁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든 중학교를 다니든 고등학교를 다니든 나아질 낌새가 없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든 대학원을 다니든 매한가지입니다.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왔어도 지식조각은 많이 갖추지, 마음바탕이 깊어지거나 넓어지지 않아요.


.. 백조나 쇠기러기의 대량 폐사 이전에도 물새들의 죽음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일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것은 훗카이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냥터에서도 똑같지 않았을까? 이름 없는 새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들 무관심했다. 백조와 쇠기러기에 이어서 참수리, 흰꼬리수리 같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의 희생이 발생하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  (240∼241쪽)


 우리 교실이 그렇잖습니까. 우리 교실 어디에도 자연이 숨쉴 수 없습니다. 우리 교실 어느 구석에 꽃그릇 하나 놓여 있는가요. 꽃그릇 하나 놓여 있다 한들 날마다 사랑하고 아끼는 꽃그릇입니까, 그저 모양새로 갖다 놓은 꽃그릇입니까. 밝은 한낮에도 전기불을 켜야 하는 교실 아닙니까. 밝은 한낮에 햇살을 듬뿍 쬐면서 신나게 뒹굴고 땀흘릴 수 있는 학교는 어디에 있습니까. 새벽별을 보고 찾아와 밤별을 보며 돌아가는 학교는 언제쯤 몰아낼 수 있습니까. 아니, 이런 입시지옥 거짓 배움터를 우리 삶터에서 쫓아낼 생각은 조금이나마 하고 있습니까.


 (2) 집과 자연


 예전에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일터 사장님은 저를 일본에 한 번 중국에 두 번 보내 주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나라밖 구경을 해 보았는데, 사진과 그림으로만 보던 나라밖 모습과 두 눈으로 들여다보며 몸으로 부대끼는 나라밖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어느 도심지가 되든 건물만 우죽우죽 올라선 곳은 메마르기 그지없습니다. 도심지에서는 모두 바빠맞으며 차갑고 매몰찹니다. 그런데 그 도심지에서도 살짝 골목 안쪽으로 접어들면 모두 느긋하며 따뜻하고 넉넉합니다.

 일본 간다 헌책방거리도 좋았지만, 헌책방거리가 아닌 여느 사람들 삶터가 깃든 골목 안쪽 또한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일부러 골목 안쪽으로 ‘길을 헤매고 싶은 사람’처럼 돌아다녔는데, 고즈넉한 길에 차는 한 대도 없이 걷는 내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집집마다 문간 둘레에 마련해 놓은 꽃그릇 냄새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북경이든 연길시이든 도심지하고 도심지에서 벗어난 곳은 크게 달랐어요.


.. 아이누족은 복수초꽃이 피면 한 해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해의 첫 달은 4월이 되는 셈이다 … 복수초는 북쪽 지방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그래서 이 꽃을 보고 한 해가 시작한다고 생각한 아이누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 하루는 하날다람쥐에게 줄 먹이를 얻으러 나갔다. 이 시기에 야생 하늘다람쥐는 버드나무의 꽃눈이나 자작나무의 꽃눈, 낙엽송이나 분비나무의 겨울눈을 즐겨 먹는다 … 연령초는 5월이면 잎이 시들고 열매를 맺는다. 달고 맛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매우 좋아하는데 청설모도 먹는 것 같다 ..  (18, 31, 54쪽)


 저는 서울내기가 아니고, 서울이라는 곳은 1994년에 처음 밟았으며, 1995년부터 2003년 가을까지 살았습니다. 이때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두어 곳씩 헌책방마실을 했고, 헌책방마실은 거의 언제나 두 다리로 걸어서 했습니다. 하루에 예닐곱 시간이나 여덟 시간 남짓도 걸어다녔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곧잘 걸어다녔고 한강다리도 숱하게 두 다리로 넘었습니다. 헌책방은 큰길가나 번화가에 없으니, 언덕배기를 따라 골목길을 수없이 누볐습니다. 2000년대를 넘어서고 2010년대에 가까워질수록 서울은 달동네 집자리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부쩍 늘어나는데, 이러는 가운데 헌책방도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헌책방을 비롯해 동네 작은 새책방도 많이 줄었고요. 학교 앞 문방구도 한두 군데 빼놓고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구멍가게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갑니다.

 작은 집을 허물고 커다란 집만 세우기 때문인데, 작은 집은 돈이 안 되고 커다란 집은 돈이 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작은 집에서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오순도순 지내던 맛과 멋을 우리 스스로 내버리고, 커다란 집에서 방마다 따로따로 처박혀 따로따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고 제 꿈나라로 빠져드는 놀이에 젖어들고 싶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꾸준히 땀흘려 번 돈으로 이웃돕기나 이웃사랑을 펼치기보다는, 내 집을 더 키우고 내 차를 더 키우며 내 씀씀이를 더 헤프게 하는 데에 빠지는 버릇에 젖어들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 우리들은 계절을 잃고 말았다. 봄의 바다가 잊혀져 가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얼마 안 가서 항구를 떠나는 고기잡이배를 한 척도 못 보는데도 생선은 여전히 가게에 쌓이는 날이 올지 모른다. 송어나 연어란 원래 토막난 몸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 도망갈 데가 얼마든지 있는 산속의 초지는 평소 토끼에게 안전하고 마음 놓이는 장소지만, 사람들이 그곳의 목초를 베고 거둬들이는 7월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토끼들의 낙원은 하룻밤 사이에 전쟁터로 바뀐다 ..  (48, 85쪽)


 다른 누구보다 우리 아버지가 이러합니다. 이런 아버지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느끼지만, 아버지는 저 같은 아들이 안타깝다고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들 된 저는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면 즐겁다고 느끼지만, 아버지 된 분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며 더 많이 누리면 좋다고 느낍니다. 더 많이 배우면 더 좋고,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리면 더 좋으며, 더 많이 번 돈으로 더 돋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더 좋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 집에도 꽃그릇은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 집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아파트에도 꽃그릇은 많습니다. 밖에서 보면 그예 시멘트덩어리이지만, 이 안쪽에는 온갖 꽃그릇이 그득그득 채워져 있다고 할까요.

 그러나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꽃그릇이요, 시멘트 울타리 안쪽에 갇힌 꽃그릇입니다. 비바람을 머금을 수 없고, 햇볕을 고루 받을 수 없습니다. 꽃냄새이든 풀냄새를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벌나비를 부르지 않습니다. 씨앗을 퍼뜨리지도 못합니다. 새로 지어지면 새로 지어질수록 우리네 자연하고는 멀어지는 아파트요, 더 늘어나면 더 늘어날수록 우리네 자연을 무너뜨리는 아파트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흐름을 살갗으로 느끼지 않는 가운데, 우리한테 넘치는 돈을 어디에 들여서 우리 주머니를 어떻게 더 부풀리느냐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 판자 대신 모르타르와 함석으로 둘러쳐진 창고는 그 주변에 생물들이 사는 것을 차갑게 거부했다. 나무줄기에 생기기 마련이던 크고 작은 구멍들도 모습을 감췄다. 큰 나무들은 재목으로 잘렸고, 오래된 고목은 쓸모없는 나무로 취급되어 잘려 없어졌기 때문이다. 먹이가 줄어들고 보금자리를 잃은 생물들이 처하게 될 운명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대로 됐을 뿐이다 … 일반 숲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 즉 생물들의 요람 구실까지 고려하면 이처럼 귀하고 고마운 숲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고마워하지 않더라도―흔한 것을 고맙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해도― 적어도 학자나 연구자, 그리고 관청의 행정관이라는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것은 천벌 받을 일이 아닐까. 한편 일부의 연구자나 학자들에게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보호하거나 기념물입네 하고 떠들어대는 작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93, 114∼115쪽)


 우리 나라는 땅이 좁아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우리 나라가 땅이 좁아 아파트를 짓지는 않습니다. 돈이 되니 지을 뿐입니다. 돈굴리기에 좋으니 짓습니다.

 어느 아파트이든 아파트 크기만큼 동과 동 사이가 벌어져야 하며, 아파트 넓이만큼 빈터가 넓어야 합니다. 창문까지 꼭꼭 틀어닫고 전기불에서 책상머리 일만 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기 때문에 1층이건 꼭대기층이건 ‘햇볕이 들어와야’ 하거든요. (그래도 그늘이 지는 동이 생기도록 짓는 아파트이긴 하지만) 볕이 들도록 지어야 하는 아파트인 가운데, 놀이터와 꽃밭과 쉼터가 있도록 짓는 아파트입니다. 여기에 자가용 댈 곳은 얼마나 넓어야 합니까. 요사이는 한 집에 자가용 두어 대는 으레 굴리고 있잖아요.

 이런 아파트 지음새를 돌아본다면, 그만한 넓이를 위로 높이 올려세우기보다는, 땅바닥에 달라붙도록 알맞게 2층이나 3층으로만 지으면 훨씬 넓은 자리를 온 동네 사람이 넉넉히 쉼터로 삼을 수 있으며, 어느 집이건 햇볕과 비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느 집이든 툇간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빨래를 널 수 있고, 어느 집이든 층간소음에 시달리지 않는데다가, 집구석이 아닌 골목골목 뛰쳐나와 놀 수 있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사이좋게 지내는 길을 익힙니다.

 우리가 참삶을 바란다면 자연하고 가까울 수 있는 도시로 다시 짜야 하고, 우리가 돈삶을 바란다면 오늘날 흐름과 같이 아파트만 때려짓는 도시로 치달아야 합니다.


 (3)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라는 책은


 1937년에 태어나 1963년부터 일본 훗카이도 가축진료소에서 수의사로 일하다가 1991년에 일터에서 그만둔 ‘다케타즈 미노루’라는 분이 쓴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스물여섯 살부터 쉰네 살까지 수의사로 일한 셈인데, 이분이 쓴 책에는 서른 해 가까이 산마을 깊은 데에 옹크리면서 뭇짐승을 만난 발자취며 느낌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알뜰히 묻어나 있습니다. 이분이 쓴 《새끼 여우 헬렌이 남긴 것》이라는 책은 영화로 만들어 2006년에 극장에 걸리기도 했답니다.

 다케타즈 미노루 님 책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청어람미디어)은 2007년 2월에 우리 말로 옮겨졌고, 《아기 여우 헬렌》(청어람미디어) 또한 2008년 7월에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 10년 전에는 마을 주변의 다섯 개의 호수와 늪은 물오리와 큰기러기, 도요새 등의 물새 떼들이 노니는 평범한 가을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수렵 금지가 해제되면 네 개의 호수와 늪에서는 단 한 마리의 새도 찾아보기 힘들고, 반대로 사냥 금지 구역인 도후쓰 호는 온통 새들로 북적였다. 살기를 바라는 생물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간도 산다는 문제에서는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극성이었다. 밀렵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당시에는 사냥이 금지된 호수에서 무선으로 조종하는 작은 모형보트를 달리게 하고, 놀라 날아오르는 새를 호수의 경계선 바깥쪽에서 기다렸다가 총으로 쏘는 사람도 있었다 ..  (144쪽)


 짐승을 돌보는 의사로 일했으니 누구보다 짐승을 사랑하던 분이라 할 만합니다. 글쓴이뿐 아니라 글쓴이 옆지기와 아이들도 더없이 짐승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을 테고요.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쓴이는 ‘짐승사랑’이라든지 ‘자연사랑’을 펼쳐 보였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똑같은 목숨이기 때문에, 똑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던 이야기를 펼쳐 보였구나 싶습니다. 짐승들 살아갈 자연 터전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넘어, 짐승이 살아가지 못하는 터전이라면 사람도 살아가지 못하는 터전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싱그럽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이야기를 그려 보였구나 싶어요.

 글쓴이 다케타즈 미노루 님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도 손을 거들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내셔널트러스트도 그러하지만, 이 운동은 ‘내 땅 지키기’가 아니라 ‘내 삶 지키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삶 지키기’는 ‘내 마음 지키기’로 하는 일이며, 내 마음 지키기란 나를 나답게 하는 수수하고 조촐한 길이 아닌가 싶어요.


.. 다음날 아침, 옆집 아주머니에게 “어젯밤은 시끄러웠죠?” 했더니 “어머나, 그랬어요? 저희 집에서는 몰랐는데요.” 한다. 20년쯤 전이라면 으레 그런 인사가 서로 통했는데 요즘 와서는 안 통한다. 다른 집들이 모두 방한과 방음이 잘 되는 밀폐된 집으로 바뀌면서 시각적인 면은 제외하고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근대 문명은 입으로는 ‘자연과 친하게 살자’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기술의 확립에 바쁜 것 같다. 자연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  (183∼185쪽)


 세발이까지 갖추면서 사진을 찍고, 좋은 사진 하나 얻고자 추위를 무릅쓰기도 하던 글쓴이인데, 글쓴이가 찍은 사진은 작품사진이 아닙니다. 예술사진도 아닙니다. 풍경사진 또한 아닙니다. 자연사진이라 말하려 한다면 자연사진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자연사진보다는 삶사진이라고 해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글쓴이는 언제나 자연하고 ‘살았’거든요. 언제나 자연에서 뭇목숨붙이를 제 이웃으로 삼으며 함께 ‘살았’거든요.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담은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사진’이라고만 글쓴이 사진을 바라보면 한 가지만 읽어내고 맙니다. 또한, 이런저런 어여쁘고 애틋한 짐승 모습을 담아낸 짐승사진이라고만 들여다보면 이때에도 한 가지밖에 읽어내지 못합니다.


..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은 이런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요즘 시대는 모든 것이 지식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어린이들 마음속에 있는 동물들은 도망가 버린다. 뭔가 새로운 것을 뒤쫓는 것이 과학이요, 연구라는 발상 속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어린이들은 자연의 불구가 되고 만다. 어디에나 있는 자연의 감동을 맛보지 못하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  (255쪽)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는 ‘자연일기’입니다. 어김없이 자연에서 지내온 일기입니다. 글쓴이 또한 자연 가운데 하나임을 느끼며 살았던 이야기입니다. 글쓴이 스스로 자연을 지킨다는 어설픈 외침이 아닌, 스스로 자연으로 녹아들며 하루하루 즐겼던 삶자락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말나눔입니다. 잔잔한 수다라고나 할까, 따사로운 옛이야기라고나 할까, 푸근한 글줄, 곧 시라고 할까요.

 우리 누구나 자연일기를 쓸 수 있으며, 우리 누구나 자연삶을 즐길 수 있고, 우리 누구나 자연임을 책 하나에 오롯이 담아 나누어 줍니다. 자연은 우리들 가슴 어디에나 고요히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려 하는 만큼 깨어날 자연이며, 우리가 깨달으려 하는 만큼 거듭날 자연이고, 우리가 부대끼려 하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자연입니다. (4342.6.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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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한무영 지음 / 그물코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06 - 착한 사람은 빗물을 받아 먹는다
 : 한무영,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 책이름 :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 글 : 한무영
- 펴낸곳 : 그물코 (2009.5.10.)
- 책값 : 1만 원


 (1) 비를 생각하다


 엊저녁부터 내린 비는 아침이 되어 멎습니다. 말끔하게 갠 하늘이지만 해는 나지 않습니다. 해까지 나면 빨래를 해서 널 텐데, 빨래를 해서 밖에 내다 넌다 하여도 비가 오나 안 오나 마음이 쓰일 만한 하루입니다.

 낮나절에 방송국에서 취재 나온 분이 있습니다. 제가 이참에 새로 낸 책을 읽고 방송 풀그림에 내보내고 싶다 하십니다. 이런 말 저런 말을 묻다가 마지막에 ‘요즈음 살면서 좋았던 일이 무엇이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갑작스런 물음이지만, 제 느낌 그대로 “아기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 쨍쨍할 때 빨랫줄에 탁탁 털어서 널면 아주 짜릿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이 두루뭉술해서 밖에 내다 널지는 못할 듯하네요. 이따가 해가 살짝이라도 비춰 주면 좋을 텐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방송국 리포터 되는 분은 ‘손빨래를 하는 짜릿함’이 가슴에 뭉클하게 느껴진다며, 당신께서 집으로 돌아가서 한번 손빨래를 해 보아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양말이라도 빨아 보시면 다르게 느끼실지 몰라요.” 하고 한 마디 붙입니다. 마음속으로 ‘참 고맙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 아이들에게 날마다 주스와 요구르트를 주면서 산성을 걱정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음료수보다 훨씬 산성도가 약한 빗물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것은 왜일까요?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  (19쪽)


 비 갠 골목길을 자전거를 타고 잠깐 휘 돌았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사진찍는 모임’ 분들이 서울에서 스무 분 남짓 인천을 찾아왔습니다. 이분들이 오기 앞서 먼저 슥 돌았고, 제 일터인 도서관으로 잠깐 돌아와서 몇 가지 볼일을 본 다음 다시 이분들과 어울릴 텐데, 빗물을 머금은 골목꽃은 한결 싱그럽다고 느낍니다.

 다른 날에도 빗물 머금은 골목꽃과 골목풀은 더욱 싱그럽다고 느꼈습니다. 낡은 스티로폼 상자도 버리지 않고 잘 간수하여 꽃그릇으로 쓰는 골목 이웃인데, 비가 오면 큰 통을 골목 한켠에 놓아 두고 빗물을 받곤 합니다. 집에서 수돗물을 호스로 이어 물을 주는 분들도 많지만, 빗물을 받아 물을 주는 분도 제법 많습니다.

 큰 통에 받은 빗물은 꽃이 먹는 밥이 되기도 하지만, 골목길을 쓸고 닦을 때에 쓰는 물이 되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비가 오면서 저절로 골목길 물청소가 되는 셈인데, 이렇게 물청소가 되고 며칠 지나면서 자동차들이 내뿜고 흩날리는 온갖 먼지로 다시 더럽혀지면, 이 더럽혀진 골목을 씻어내는 데에 쓰인다고 할까요.

 한 동네에 온삶을 바쳐 살아온 골목 이웃들은 으레 빗물을 받아서 씁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당신이 처음 태어나거나 자라던 시골마을에서도 마땅히 빗물을 받아서 쓰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떨어지는 빗물을 아깝다고 여겼으며, 이 통 저 그릇 온통 마당에 내놓고는 빗물을 받느라 부산했다고 생각합니다. 하기는, 아파트가 아니고서야 어느 골목집이든 예나 이제나 빗물을 받느라 바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비록 인천 골목길은 ‘서울로 올려보낼 물건을 만드는 공장들’마다 내뿜는 먼지와 연기 때문에 퍽 매캐하고 먼지가 많다 하여도.


.. 도시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도심 거리는 어디나 할 것 없이 온통 콘크리트 건물과 포장된 도로뿐입니다. 풀 한 포기 자라거나 흙 한 줌 날리는 땅을 보기가 힘든 것이 우리 나라 도시의 모습입니다. 그로 인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도시의 홍수 피해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그 빗물이 포장도로 밑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하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쳐 홍수 피해를 더하는 것이지요 … 나무가 클수록 뿌리가 깊듯이 건물이 높을수록 지하도 깊어지겠지요. 깊어질수록 지하층 방수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흔히 사용하는 공법은 지하 벽면 둘레를 막고 지하수를 한 곳에 모아 뽑아내 하수도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도시에 건물이 한두 채입니까. 거의 모든 건물에서 이런 식으로 지하수를 뽑아내 버리니 지하수위가 내려가고 하천이 메마르며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하수라인은 도시에서 가장 깊은 건물의 바닥과 같은 높이가 되어 버립니다. 즉 도시의 모든 지하수위가 떨어지는 것이지요. 도시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눈에 보이는 스카이라인을 해치는 것은 신경을 쓰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라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  (33, 67쪽)


 요즈음은 아기를 돌보느라 빗길 자전거질은 잘 안 합니다. 빗길을 신나게 달리다 자칫 고뿔이라도 걸리면 아기를 돌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 아기한테 고뿔이 옮을 수 있고요.

 빗길을 한참 달리면 자전거도 망가집니다. 빗길을 달린 다음에는 자전거에 묻은 흙탕을 잘 닦고 말려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빗속을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란 맑은 날 달리는 맛하고 사뭇 다릅니다. 빗속을 우산을 받고 거니는 맛하고 빗속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거니는 맛하고 사뭇 다르듯이.

 생각해 보면, 우리 형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우산을 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뽀르르 달려가 우산을 받쳐 주기라도 할라치면 걸음을 재게 놀리며 우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냥 비를 쫄딱 맞았습니다. 저도 우산을 안 챙긴 날은 비를 쫄딱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방에 든 책까지 적신 적이 잦지만, 책도 말리고 몸도 말리고 옷도 말리면 그만입니다. 어쩐지 비가 올 때에는 비를 맞아야 하지 않느냐고 몸으로 느꼈다고 할까요. 형한테 옮았는지 모르지만.


.. 댐을 높인다면 얼마나 더 높여야 하며, 그때 지역주민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하천의 본류에만 댐을 만들면 하천 이외의 지역이나 지천에서 일어나는 작은 규모의 하수도 침수는 또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 많은 지자체들이 하천을 복원할 때 청계천을 본보기로 삼고 싶어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복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천을 복원하고 관리하는 데는 민과 관이 힘을 합하여 돈이 적게 들고,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60∼61, 82쪽)


 나중에 신문배달 일을 할 때에는 비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자전거 타고 신문을 돌리는데 우산을 받고 돌릴 수 있겠습니까. 내 몸은 옴팡 젖어들어도 신문에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장마철만 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느 날보다 두 시간씩 일찍 일어나서 두 시간씩 늦게 일이 끝나 죽을맛이었고, 신문사지국에는 비 냄새로 가득했는데, 맑은 날 신문 돌리던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비오는 날 신문 돌리던 일은 이제까지 하나도 안 잊힙니다.

 새벽 네 시까지는 비소식이 없어 느긋하게 돌렸는데 여섯 시 즈음부터 갑자기 쏟아져서, 애써 돌린 신문이 죄 젖는 바람에 다시 돌린 일. 지하에 있던 신문사 지국에 물에 잠길 뻔한 일. 지국장 님 댁을 비롯해 이문동 반지하집이 모조리 물에 잠겨서 지국장 님 댁에 있던 가구며 옷이며 지국으로 옮겨다 놓고 대피하던 일. 허리춤까지 잠긴 물길을 자전거로 헤치면서 신문을 돌리던 일. 비가 오면 가뜩이나 신문으로 무거운 자전거가 브레이크도 잘 안 들어 비탈길에서 내려오며 조마조마하던 일. …….

 옆지기가 아기를 배기 앞서 둘이 장대비를 주룩주룩 맞으면서 한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던 일도 떠오릅니다.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면서도 빗길을 느끼며 걷는 골목 맛은 다른 그 어느 날 느끼던 골목 맛하고 견줄 수 없었습니다. 온몸 가득 빨려들고 스며드는 빗줄기로 몸과 마음과 눈을 한꺼번에 씻어내곤 했습니다.
 





 (2) 물을 생각하다


 이달부터 옮겼는데, 우리 살림집과 도서관이 깃든 오래된 건물은 수도가 샙니다. 이리하여 물값이 삼사만 원 훌쩍 넘게 나오곤 했습니다. 집임자는 줄줄줄 새는 물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달삯에서 이 애먼 물값을 덜어 주지도 않습니다. 고쳐 주기는커녕, 물값을 덜어 주기는커녕.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인가 싶으면서도, 돈이 많아서 이 모양이라기보다 사람된 길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 싶었습니다. 참 사랑을 나누고 참 믿음을 나누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었습니다.

 당신 사는 아파트에서 물이 샌다면 어찌 했겠습니까. 그 애먼 물값이 어찌 되는지 얼마나 가슴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물값만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 물값이야 내주지요 뭐. 사만 원? 아주 짜증스러운 값이지만 내주지요 뭐. 그렇지만, 이 물값보다도 ‘애써 수도국에서 걸러낸 물이 아무 보람 없이 버려진다’는 데에서 안타깝고 슬픕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전기로 수도물을 끌어와서 흘려버리는 일하고 똑같잖아요. 아무 데에도 안 쓰고 흘려보낼 물을 뭣하러 수도국에서 걸러내어 수도관을 타고 흐르게 합니까. 물 자원이 아깝게 버려지는 일을 그치게 하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밖에는 물 한 모금 없어서 목말라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건물임자는 떼부자이면서도 ‘새는 물관’ 고치는 몇 푼에 돈을 들이지 않으니, 달삯을 얹혀 사는 사람이 어떻게 손을 쓰나요.


.. 빗물 이용은 빗물이 더러워지기 전에 받아서 사용하자는 것이고, 빗물 ‘재이용’은 더러워진 빗물을 정수 처리한 다음에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더러워지기 이전의 빗물을 이용하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습니다 … 우리 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관리를 잘 못하는 나라라고 해야 맞습니다 … 환경부의 관련법은 수질이나 물 절약과 관련된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다루고 있지만, 가뭄이나 산불 방지, 홍수는 다루지 않습니다. 건교부의 관련법에서는 홍수만을 위주로 다룰 뿐, 하천 환경을 좋게 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재해특별법 역시 자연재해만을 한정시켜 다루고 있지요. 그것과 연관된 다른 사안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  (29∼30, 37, 53쪽)


 저는 늘 손빨래를 합니다만, 손빨래를 하면 물을 아주 조금만 써도 넉넉합니다. 비누거품 헹군 물을 잘 갈무리해서 걸레를 빨아도 되고, 새로 나온 빨래를 담가 놓은 다음 애벌헹굼을 할 때에 쓰면 됩니다. 그렇게 애벌헹굼을 조금씩 하면서 새 빨래 비누거품을 가시고, 세벌이나 네벌헹굼쯤 될 때에 새 물을 받아서 헹굽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벌이나 네벌쯤 되는 헹굼물은 다시 갈무리해서 다음 빨래를 할 때에 씁니다. 어떻게 보면 버려지는 물이 하나도 없는 셈이라 할 텐데, 이렇게 헹군 물로는 씻는방 바닥이나 벽을 닦은 다음에 개수구로 흘려보냅니다. 또는 씻는방 거울을 닦는다든지.

 정 몸이 힘들다면 세탁기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몸이 힘들지 않으면서 세탁기를 쓰는 사람은 죄를 짓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물을 허투루 내버리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더욱이, 기계 아닌 우리 몸을 써서 빨래를 하면 손발 운동이 착착착 잘 됩니다. 따로 헬스클럽 같은 데에 돈 갖다 바치면서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헹굼물로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고 집치우기를 하면 더더욱 운동이 잘 됩니다. 집에서 빨래 한 가지만 하여도 우리 몸에는 군살이 붙지 않아요. 여기에다가 자전거로 일터나 학교를 오간다면 우리 몸매는 아주 날렵하고 훌륭히 가꿀 수 있을 테지요.

 저는 자전거를 타니 자전거를 닦습니다만, 차를 닦는 분들은 어마어마하게 물을 써대며 차 껍데기를 번쩍번쩍 빛나게 합니다(자전거를 닦을 때에는 물이 거의, 아니 한 방울도 안 듭니다). 그런데 차 껍데기는 왜 번쩍번쩍 빛나도록 닦아야 하나요. 비오면 알아서 닦이는 차 껍데기 아닌가요. 애먼 물을 따로 들여서 써야 하나요. 차 껍데기를 얼마나 깨끗하게 해야 하고, 우리는 수도물을 얼마나 많이 써야 하나요.


.. 빗물을 모으고 관리하는 이유는 내 필요와 목적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남을 위해, 즉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만일 내 집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모으지 않으면, 하류에 있는 다른 사람 집은 넘치는 빗물로 잠겨 버릴 것입니다 ..  (49쪽)


 우리 나라는 기술이나 과학이나 또 무엇무엇이나 거의 ‘가장 앞(최첨단)’을 달린다고들 합니다. 온 나라에 새로 짓는 아파트를 보면 갖가지 전자시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시설 가운데 ‘전기 없이 쓸’ 수 있는 시설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기름 없이 쓸’ 만한 시설은 한 가지라도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계단을 타는 사람도 없는데 20층 30층까지 계단을 놓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옥상이든 벽이든 창문 어디에든 햇볕을 받아들여 전기를 뽐아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집집마다 들어갈 전기까지는 아니라 하여도 승강기나 골마루 등불쯤은 햇볕전지판으로 갈음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이라는 책에도 얼핏 나오지만, 아파트 옥상에 ‘빗물 모음통’을 마련해, 집집마다 뒷간 물 내리는 데에 쓴다면 물이며 자원이며 전기며 한껏 줄이거나 아낄 수 있습니다.


.. 우리 나라는 여름에 잠깐 집중해서 비가 오는데 여기에 맞춰 크고 비싼 시설을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 모습일까요? … 대개, 계속해서 물에 잠기는 지역에 거대한 빗물 펌프장을 만드는데 이때 돈이 수백억 원이나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돈을 들인 시설을 일 년에 며칠이나 사용합니까? … 비워 두는 날이 많은 댐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 댐을 짓기 위해 살던 곳이 물에 잠기게 된 주민들의 원망을 듣습니다 … (117, 131∼132쪽)


 그렇지만 나 몰라라처럼 되어 있습니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짜여 있습니다. 내 돈 내가 쓴다는 생각으로 굳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맙니다. 아예 등을 돌리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나요. 귀를 막아 버리고 눈을 감아 버리는데 어찌 손짓 발짓 하나요. 돈이 넘쳐서 펑펑 쓴다는데 어떻게 말리는가요.
 





 (3)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이라는 책


 서울대학교에서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일하며 빗물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한무영 님이 책 두 권을 한꺼번에 펴냈습니다. 하나는 《빗물을 모아쓰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이고, 다음 하나는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입니다. 한무영 님은 그동안 《수돗물의 미생물학》과 《WHO 음용수 수질 가이드라인》과 《정수시설의 종합설계 및 유지관리》와 《하수와 우수의 관리를 위한 환경친화적 기술》 같은 책을 펴내 왔습니다.

 저는 이분이 해 온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빗물을 살피는 학자가 있음도 처음 알았는데, 한무영 님이 낸 책 두 가지를 읽으면서 ‘지구 물 문제’에서 빗물 문제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겠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빗물을 제대로 알아가는 길은 물을 제대로 알아가는 길이며, 물을 제대로 알아갈 때 우리 삶터를 좀더 또렷하게 받아들이거나 알아챌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빗물이 깨끗한 물인지, 깨끗하지 않다면 왜 깨끗하지 않은지, 빗물이 지저분하다면 왜 지저분한지, 그리고 지저분하면 얼마나 지저분한지를 ‘제대로 모르’면서 살아왔다고 느꼈습니다.


.. 서울대학교에 새로 지은 기숙사에는 200톤 규모의 빗물 저장 시설을 본보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 5개월 동안 날마다 6톤 정도의 물을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1000톤의 물을 화장실 물로 사용해 수도요금을 크게 줄였습니다. 사무용은 1톤에 1100원을 부담하므로 달마다 22만 원으로 쳐서 5개월 동안 11만 원을 절약한 것이지요. 만약 이 물을 수도요금이 1.6배 정도 비싼 가정용으로 사용했다면 약 200만 원 정도 줄어든 셈입니다 … 수돗물을 아끼면 개인은 수도요금을 적게 내는 이득이 있는데, 사회는 더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즉 빗물을 이용하면 댐의 취수량이 줄고, 물을 정수 처리하는 양이 줄어 그 비용 또한 절감되며, 운반비용 역시 줄일 수 있습니다 ..  (86∼87쪽)


 오늘날 삶터에서는 무엇이든지 ‘자원’이라 하고, 자원은 ‘관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정부에서는 사람도 ‘자원’으로 다루려고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으로 고치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놓고 적잖은 사람들이 거세게 나무랐지만 말마디 나무람으로 그치고 더 크게 나아가지 못했으며,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을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이름이야 어떻게 붙든 큰 일은 아닙니다. 얄딱구리한 이름이 붙어 있더라도 교육 행정을 옳고 바르게 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닦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스레 바라보고 껴안고 어깨동무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터전을 세우면 되니까요.

 그런데 사람을 자원으로 여기며 다루는 우리 나라는 교육 기틀을 제대로 다스리고 있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부터 사람답게 다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데 사람 아닌 숱한 자원은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껴안으면서 즐기고 돌보고 가꾸는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우리 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283밀리리터 정도인데 대부분 여름 장마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름에 전체 강수량의 약 35퍼센트인 400억 톤의 빗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지요. 이 아까운 빗물만 잘 모아 두어도 섬과 산간 지역의 물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입니다. 반면 독일은 연평균 강수량이 700밀리리터이지만, 평소에 독일사람들은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비가 일 년에 걸쳐 고르게 오기 때문이며, 이를 충분히 모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물은 늘 넉넉하게 흐르고 지하수 또한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요. 독일의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 쓰는 모습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입니다 ..  (42쪽)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들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매무새를 돌아봅니다. 여느 사람들 집부터 일터까지, 학교와 관공서까지, 골목과 큰 찻길까지, 우리들 살림살이는 어찌 이루어져 있는가 돌아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을 어떻게 추스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독일에서는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 쓰는 모습이 아주 ‘흔한 삶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독일사람은 빗물 받아서 쓰기에서만 ‘훌륭한 삶매무새’를 보여주지는 않을 테지요. 다른 자리에서도, 다른 삶자락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매무새를 보여주고 있을 테고요.

 그리고, 우리 나라는 빗물 받아서 쓰기에서만 젬병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나라는 다른 자리에서도, 다른 삶자락에서도 젬병입니다. 거의 날마다 터지는 비정규직 문제나 이주노동자 문제만 보아도 쉬 알 수 있습니다. 입시지옥을 보아도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돈에 따라 계급이 갈리고, 가방끈에 따라 신분이 나뉘는 사회 얼거리를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빗물을 알뜰히 받아서 쓰기 앞서, 먼저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먼저 참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빗물이야 마땅히 알뜰히 받아서 쓰고자 애쓰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4342.5.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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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의 경제학
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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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하나 103 - 가난한 이웃끼리 사랑을 나누는 살림살이, ‘생협’
 : 가가와 도요히코, 《우애의 경제학》


- 책이름 : 우애의 경제학
- 글 : 가가와 도요히코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 (2009.2.10.)
- 책값 : 9000원


 (1)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옆지기 어머님이 지난해께였나, 인천 관교동에 다녀오실 때 그곳에 빼곡하게 들어찬 술집으로 이루어진 거리마다 자동차가 촘촘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은 듯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노동자날부터 어린이날까지 징검다리 쉬는날이 이루어졌습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일하는 곳에서 함께 일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모처럼 나들이를 해 보려고 차편을 알아보는데 닷새에 걸쳐 예약이 꽉 차 빈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며,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하나도 안 그런’ 듯하다고 말씀을 잇습니다.

 이런 말을 따로 듣지 않더라도 배부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배부른 삶을 이어갑니다. 배부른 사람이 몇 퍼센트이고 배곯는 사람이 몇 퍼센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라살림이 기우뚱하더라도 배터지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나라살림이 넉넉하더라도 배고픈 사람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우리 세상은 고르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이웃과 고르게 나누려는 마음이 적습니다.


.. 오늘날 가난은 물질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풍부에서 생기고 있다. 물질이나 기계의 과잉생산, 과잉노동이나 지식층의 존재에서 오는 고통이다. 우리들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부는 아주 작은 한 줌 사람들의 손에 쌓여 있고, 사회의 일반 대중은 헛된 외침을 부르짖고 있다. 물자가 넘치는 창고 밖에는 한없이 많은 실업자가 굶주리고 있다 …  ..  (14쪽)


 자전거를 타고 인천과 서울을 가끔 오가곤 하는데, 이때마다 길거리를 가득가득 누비는 자동차물결을 구경합니다. 전철을 타고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동안에도 한강을 따라 이어진 찻길에는 자동차가 빼곡합니다. 때때로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볼일을 보러 움직이노라면, 버스가 많이 막혀 제대로 못 가곤 합니다.

 기름값이 하늘 모르게 치솟는다 하여도 찻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기름 먹는 자동차만 달리는 길’을 새로 닦는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자원을 걱정하는 마음도 없고, 제 살림을 줄이면서 모자라거나 어려운 이웃을 보듬으려는 마음 또한 없습니다.

 나를 살리는 씀씀이와 이웃이 함께 사는 씀씀이를 헤아리는 눈썰미를 찾기 힘듭니다. 내 살림을 즐기거나 누리자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살피는 눈매를 찾기 어렵습니다. 내 앞날을 걱정하며 돈을 쌓아두는 손길은 있으나, 바로 오늘 걱정스러운 삶을 가까스로 잇는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손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 우리는 형제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도시 생활을 비참하다. 도시가 크게 될수록 범죄가 많아진다. 법률만으로 범죄자나 빈민가 소년들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의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일본에서 우리들이 농민조합을 만들고 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도둑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좋은 협동조합이 있으면 도둑질 하려는 욕망이 사라진다.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도 그렇다. 그들 나라에는 도둑이 적다. 그러나 미국에는 많은 경찰관, 감옥 그리고 범죄자가 있다. 좋은 국민실업보험, 노령연금, 큰 도시가 있으면 연기로 뒤덮인 문명이 있다. 그리고 좋은 협동조합운동이 있으면 그 나라에 절도가 사라진다 ..  (32쪽)


 그래도 이웃을 보듬는 손길을 아예 못 찾지 않습니다. 배부르거나 배터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만, 똑같이 배고프거나 배곯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쉽게 찾아보곤 합니다. 이랜드 일반노조 사람들 목소리가 담긴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같은 책에도 나옵니다만, 예배당에 몇 억도 아닌 수십 수백 억에 이르는 돈을 척척 갖다 바칠 줄은 알아도,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안 쓰고 비정규직으로 쓰다가 내치려고 하는 기업주들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말해요 찬드라》 같은 책에도 나옵니다만, 똑같이 힘겨운 일을 하는 노동자 사이이지만,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가볍게 손찌검을 하고 자연스레 일삯을 떼먹는 일이 버젓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더 안쓰러운 일이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목아지까지 날아가 길거리로 쫓겨나기까지는 이런 얼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아니, 있는 그대로 느끼려 하지 않습니다. 정작 나 또한 길바닥에 내팽개쳐질 그때가 되어서야 ‘그렇구나. 이런 일이 거짓이 아니구나. 이렇게 길바닥으로 내몰리니까 악을 쓰며 내 권리를 찾으려 하고, 평등과 평화를 바라게 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진작 우리 스스로 정규직 자리에 있을 때부터 비정규직을 보듬으며, 어느 누구라도 똑같은 일에 똑같은 대접을 받는 평등과 평화를 이루려는 마음을 못 품습니다. ‘정규직이라는 이름이라지만 나 또한 당신처럼 힘들다’는 핑계 한 마디로 고개를 홱 돌릴 뿐입니다.


.. 중세의 길드는 착취 없는 경제활동의 조직화를 이루었지만, 그 조직은 비조합원까지 형제애를 미칠 수 없었다. 다른 한편, 현대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그 서비스를 지역사회 전체에 확대하는 것이다. 옛 조합은 서비스를 자기 조합에 한정하였다 … 조합의 기본 신조의 하나는 정치와 종교 양쪽에서 중립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현대의 협동조합은 단일한 조직 속에 일정한 사회집단의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런 단일 조직은 어느 땐가는 기능을 계속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 강제 협동조합에서는 개개인이 비밀 매매로 협동조합의 본질에 어긋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다 보면 시스템 전체가 헛돌게 되고, 계획경제는 무너지게 된다. 다른 한편, 자발적인 조직에서는 이런 유혹이 없을 것이다. 협동조합 경제의 진정한 모습은 착취 없는 계획된 경제체계라는 데 있다 … 소비자협동조합은 단지 먹을거리 잡화를 사기 위한 가게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협동조합이란 새 사회의 경제 단위이고, 조합원은 거기에 충실히 협력해야 한다. 설령 서비스가 조금 늦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조합원은 그 이익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 노동으로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목적의식적인 견실한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은 암초에 부딪쳐 버린다 … 조직된 조합 사회에는 형제애가 필요하다. 자본가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그들이 교정되도록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  (94, 100, 105, 108∼109쪽)


 홍세화 님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같은 책에도 썼지만, 고리끼 같은 분은 일찌감치 《러시아 이야기》나 《이탈리아 이야기》 같은 책에서,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제 권리를 되찾고자 주먹 불끈 쥐며 어깨동무를 할 때에, 옆에서 이들이 손을 놓은 일 때문에 전차도 못 타고 가게에조차 못 가게 되더라도 얼굴 찡그리지 않고 똑같이 어깨동무를 해 주는 노동자 벗’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못 느끼는 일이지만, 지난날 이 나라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민란’이나 ‘소작쟁의’ 같은 일 또한,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어깨동무’가 아니었으랴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를 역사책에 적바림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까닭이라든지 이 움직임은 어떠했는가 같은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품앗이나 두레와 같은 모둠일을 헤아리면서, ‘있는 사람이 나누어 주는 고마움’보다 ‘없는 사람이 종이 한 장 맞잡는 나눔’이 훨씬 오래도록 이 땅 구석구석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과 낮과 저녁 사이 골목길 쓰레기를 줍는 할매와 할배 같은 손길이 바로, 없는 가운데 낮은자리에서 이웃을 생각하며 서로 돕는 매무새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 현재 노동조합은 소비자협동조합에 아무 주목도 하지 않고, 신용협동조합에 대해서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조합이 그와 같이 근시안적인 정책을 유지하는 한, 설령 정치권력에 아무리 이기더라도, 자본주의적 압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 자본가가 파산을 하고 노동자가 실업에 빠졌을 때, 노동자들은 수요자인 자본가로부터 공장을 맡아 자기 임금을 조정하는 권리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체제와 비교하여 수입은 줄었지만 실업은 벗어날 수 있었다 … 만일 사람들이 새 지하철 건설에 도시 공채 발행보다 협동조합 자본을 이용하면, 자본가들이 합법적 이익을 도시에서 빨아들이는 것을 막을 것이다 … 현재 시스템에서는 예를 들면, 철도나 항만, 시장이나 해운 등 자체 공익사업은 정치의 돈잔치가 된다. 정권과 정당이 바뀐다 해도 다음 선거 뒤에는 포기할지 모르는 계획이 세워지게 된다 ..  (116, 118, 132∼133쪽)


 새 살림집 보증금을 빌리려고 은행에 찾아가며 느꼈는데, 나라에서는 우리 식구 같은 사람한테 도움을 준다면서 ‘저소득자 전세자금 대출’이나 ‘무주택자 전세자금 대출’ 같은 제도를 마련했다고 합니다만, 정작 저소득이든 무소득이든 무주택자이든 영세민이든, 우리 같은 사람은 대출을 받을 수 없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저소득자라 하여도 ‘돈 좀 있고 정규직으로 느긋한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싼 대출, 이를테면 전세돈 천만 원이나 오백만 원을 빌릴 수 있었고, 다문 백만 원이나 이백만 원조차 빌려 주는 대출이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광고에서 수없이 떠드는 ‘대출 대부업’이 그토록 판치고 넘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없는 사람은 은행문을 두드릴 수조차 없음을 익히 알기에 그런 대출 대부업이 넘칠 테지요.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은 그 같은 대출 대부업에 손을 뻗게 되면, 그날부터 죽는 날까지 빚잔치 하느라 살아가는 즐거움을 싹 잊고 주름살이 늘어갈 테고요.


 (2) 베푸는 삶, 나누는 삶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안이나 부평 둘레에만 가도 우람한 예배당 건물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중ㆍ동구 옛 도심지에도 비죽비죽 뾰족탑 높이 올린 예배당이 꽤 많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받이 꼭대기마다 천주교회나 성공회교회니 감리교회니 장로교회니 안식일교회니 또 무슨무슨 교회니 하면서 우람한 건물이 지붕 낮은 집을 내려다봅니다. 구멍가게 숫자와 맞먹는, 어쩌면 구멍가게 숫자를 훨씬 뛰어넘을 만한 예배당 숫자입니다.

 집없는 사람 많으나 예배당 어느 곳도 이들한테 사랑을 베풀지는 않습니다. 드넓는 예배당은 하느님 사랑을 노래하고 하느님 뜻을 따르겠다고 비손을 올리지만, 예배당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쳐다보지 않습니다. 길 가는 사람한테 티슈꾸러미를 안기며 교회 나오시라며 꾸벅하고 절을 할 줄은 알아도, 집집마다 어떤 근심과 걱정으로 하루하루 실낱 같은 삶을 붙잡는 줄 들여다볼 줄 모릅니다.

 예배당한테 가난한 사람들 눈높이에 서라고 하는 일은 처음부터 잘못이었을까요.


.. 일본에는 1800개 교회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 도시에 있다. 시골에는 3천만 명의 사람이 있고 9천 개의 마을이 있지만, 그 사람들을 위한 전도소는 겨우 170개가 있을 뿐이다 … 예수 종교의 위대함은 그의 가르침이 우수한 데 있지 않고, 그의 의식이 하나님의 그것과 하나라는 것,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끝마친 짧은 삶에서 사람이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정신적 발달을 체현한 데 있었다. 실제로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사랑의 완전한 융합을 보인 것이다 ..  (23∼24, 38쪽)


 낡고 헐어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든지, 신자 숫자가 늘어 큰 건물을 지어야 한다든지 하는 말은 옳습니다. 거룩한 집을 새로 지어야 하기에 신자들이 돈을 바쳐야 한다는 말도 옳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집에 바쳐지면서 거룩한 집이 지어진 다음에, 이곳은 누구한테 문을 열어 놓습니까. 그 넓디넓고 따뜻하거나 시원한 거룩한 방 한 칸쯤 우리들한테 내어주면서 다리를 쉬고 몸을 뉘일 수 있게끔 열어 놓고 있습니까. 또는, 예배당에 쌓이는 돈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몇 해 앞서 몇몇 재벌회사 우두머리 되는 분들이 몇 천 억씩 턱턱 ‘사회에 바치겠다’고 내놓은 돈을 보면서, 그만한 돈을 일찌감치 나눌 수 없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돈이란 우리한테 입이 쩍 벌어지는 크기이지만, 그이들한테는 그리 큰돈도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이들은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할까요. 너무 많지만 너무 많은 줄 모르고, 탱자탱자 써도 다 쓰지 못할 그 끔찍한 돈에 갇혀 사람을 못 보고 사랑을 못 느낀다고 할까요.


.. 유감스럽게도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의 실천에 관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귀의하는 데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 신앙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믿는 그 자체가 인간의 행동을 요구한다 … 만일 하나님만 생각하고 인간을 무시한다면 종교는 무의미하게 되고 인간을 창조한 이유도 없게 된다 … 사실 사랑은 인간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활동이다 … 신앙이란 언뜻 봐서 약하게 보이는 사랑의 힘이 인간 폭력의 힘보다 위대함을 믿는 데 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은 같은 일, 하나의 일이 되어야 한다 … 그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 개신교는 신앙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을 제한한다. 한편 가톨릭은 사랑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한다 … 신앙을 단지 이론적인 것으로 알고, 삶 전체의 문제로 삼지 않는 신학자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 햇볕을 받으면서 그것을 통과시키지 않는 유리창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  (40∼43, 46쪽)


 사랑을 베풀라고들 하지만, 사랑은 베푸는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랑은 나누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말장난이 아니라, 나눌 수 있으니 사랑이요 믿음이지, 베풀 수 있다면 사랑이나 믿음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나한테 넉넉히 있기에 베풀 수 있는 사랑이나 믿음이 아닙니다. 내 온몸으로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내 온몸으로 함께하는 삶이기에 나누게 되는 사랑이요 믿음이라고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이면서 얼마든지 나누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난하면서 조금도 안 나누는 분들이 있습니다. 때때로 조금 베푸는 척 시늉을 하지만, 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아닌 자랑이 되기 때문에 이름을 팔고 얼굴을 팔 뿐인 겉치레로 그칩니다. 베푸는 사람은 저한테 넘치거나 많은 무엇을 덜어내지만, 나누는 사람은 ‘나누어 받을 사람한테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온마음으로 느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돈을 쥐어 주어야 할는지, 일을 거들어야 할는지, 밥상을 나란히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할는지를 그때그때 알맞게 느낍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랑이란 돈으로만 할 수 있지 않거든요. 이웃집 꽃그릇에 물을 주는 일도 사랑이요, 이웃집 할매 다리를 주물러 주어도 사랑이며, 이웃집 할배한테 책을 읽어 주어도 사랑입니다.


.. 오늘날 방탕에 쓰이는 막대한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에서 공인 매매춘과 사적 매매춘에 쓰이는 금액은 연간 10억 엔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쌀의 연간 소비는 15억 엔으로 그 금액의 1.5배에 지나지 않는다(1936년) … 거룩한 생활을 가르치기 위하여 종교단체가 늘어나, 미국에서만 건물 유지를 위하여 약 7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사용되고 있는가. 그 총액은 아무도 계산할 수 없다 ..  (60∼61쪽)


 하기는. 지나온 제 삶을 돌아보니, 먹고 입고 쓰고 마시고 하는 모두를 아끼거나 줄이면서 악착같이 살림을 꾸려 몇 천만 원짜리 전세집에서 산 적이 있는데, 이렇게 아끼고 전세집에서 살 때에는 이만한 ‘집크기’를 지키거나 ‘조금 더 큰 집자리’를 알아보려고 내 자리만 더 돌아보게 되지, 좀더 값싼 전세집으로 옮기면서 ‘그만큼 덜어진 돈’으로 이웃과 나누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저 한다는 생각이라면, 한 달에 십육만 원 벌면서 살던 때에는 오백 원이나 천 원을 동냥그릇에 넣으면서 나눈다고 하다가, 한 달에 백만 원 넘게 벌면서 지내니 만 원짜리나 오천 원짜리도 넣으면서 나눈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십육만 원 벌며 천 원을 내는 푼수라면, 백육십만 원을 벌 때에는 만 원을 내는 일이 ‘손 떨리는’ 일이 아닐 텐데, 손이 떨렸습니다. 몹시 우스꽝스럽지만 참말 그러했습니다.

 이제 다시 아주 작은 살림을 꾸리고, 벌이 또한 아주 낮아진 이즈음에는, 때때로 만 원이나 이만 원 거들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손 떠는’ 일이 없습니다. 척척 바칩니다. 돈을 바쳐야 할 때에는 돈을 바치고, 몸을 바쳐야 할 때에는 기꺼이 자원봉사를 합니다. 더 있다고 베풀 수 없는 사랑이며, 아무것도 없다 하여 나누지 못하는 사랑이 아님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 일반적으로 현대의 입법부는 설령 사회민주주의 성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대중이 프롤레타리아트화하는 것을 막거나 그들을 공황과 불황에서 구출하는 데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의회의 기구가 주로 입법의 여러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산업이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인 직업의 기본적 사항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생활의 여러 문제를 파고들지 못한다 … 산업조직은 윤리 의식이 부족할 수 있다. 그래서 의원들이 자기중심의 이윤 추구자가 되어, 국내 문제에는 공정한 법안을 가결하지만 국제관계에는 지나치게 국가주의가 되는 수가 있다 … 소는 잡초가 40퍼센트 이상이면 먹이로 할 수 없으나, 염소는 90퍼센트 잡초 사료로도 훌륭하게 자라난다. 덴마크에서는 젖 짜는 염소의 대규모 사육장이 72군데 있지만, 일본에는 한 군데도 없다. 사람이 염소 키우는 법을 알고 젖을 식재로 받아들이면 일본의 식량 공급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농업과 낙농 제품의 새로운 계획을 무시해 왔다. 우리가 현재 군비에 쓰는 돈을 그런 사업에 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 군인들은 이런 경제의 문제를 잘 모른다. 그들은 칼만을 절거덕절거덕 울리고 싶어 한다 … 유일한 해결은 경제 기획에 쓰는 돈을 더 늘리고 군사비를 줄이는 것이다 … 가난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개선해 가려면, 현재 군사비로 낭비되는 몇 백만 파운드 돈을 가난한 나라의 경제 상태 개선에 쓰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  (140, 147, 166∼167, 174쪽)


 새로 옮길 달삯집에 아침에 찾아가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서, 집임자 할매는 ‘십 년 전에도 월세를 30만 원 받았고, 이제도 35만 원 받는데, 더 달라고 하기가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30이든 35이든 달삯을 낼 사람한테는 만만하지 않은 돈이지만, 두 어르신은 그렇게 삯 사는 사람이 쥐어주는 돈으로 고만고만하게 살림을 꾸립니다. 집임자라고 하나 자가용도 없고, 2층과 3층에 삯을 놓고 1층에서 마흔 해 남짓 살아오면서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집을 돌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씀을 가만히 들으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당신들이 처음 이곳에 자리잡고 지낼 때에 둘레는 죄다 풀집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벌써 마흔이 넘은 딸아이도 이 집에서 키웠고 적잖은 사람들이 당신 집을 거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아홉 달짜리 갓난쟁이가 밤에 빽빽 울어댈지 모른다 하여도 ‘사람 사는 데에 다 그러하지 않느냐’면서 ‘삯집이 비니까 허전하고 심심하다’면서 ‘손주 뻘 애들 구경하는 일이 즐겁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도장을 안 갖고 가 손으로 이름을 적으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로서는 달삯 35만 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이랄 수 있지만, 골목집을 곱게 가꾸면서 뿌리내려 온 이분들한테 앞으로도 튼튼하고 즐겁게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내어드리는 선물로 여긴다면 아무것 아닌 돈이라고도 여길 수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주제에 무슨 베풂이 있겠느냐만, 그저 이만큼이라도 나누면서 우리 어버이를 떠올리고, 우리 어버이와 비슷한 또래인 할매 할배를 생각하면서 하루 한삶을 고맙게 맞아들이자고 생각합니다.


 (3) 어깨동무하며 살아갈 길을 말하는 《우애의 경제학》


 1888년에 태어나 1960년에 세상을 떠난 ‘가가와 도요히켜(賀川豊彦)’ 님이 1936년에 내놓은 책 《우애의 경제학》이 나라안에 처음으로 옮겨졌습니다. 자그마치 일흔 해나 묵은 책입니다만, 여느 ‘고전’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묵은 세월’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깊고 너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책이 천 해가 훨씬 넘은 세월을 ‘묵었’으나, 참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에 두루 읽히듯, 《우애의 경제학》 또한 사람이 슬기롭게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흔 해가 넘은 책임에도 기꺼이 옮겨서 읽을 만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 내 조상은 봉건사회에서 19개 마을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커다란 집과 많은 하인을 두었다. 그러나 아무 사랑도 없는 커다란 집에 사는 일은 내게는 지옥이었다. 내 가족은 부자였으나, 그들의 행동양식은 가혹한 것이었다. 나는 밤낮으로 울면서 세월을 보냈다 ..  (18쪽)


 가가와 도요히코 님은 목사이면서 사회운동을 하는 분이었고, 가난한 이웃한테 전도를 하는 가운데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했습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던 때에는 반전운동을 하면서 옥살이를 했고, ‘가난을 떨치자면 노동운동과 농민운동만으로는 안 된다’고 깨달으면서, ‘올바른 소비자-생산자 운동’을 일으키고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듭니다.

 이 책 《우애의 경제학》은 바로 낮은자리 사람들이 어떻게 생협(생활협동조합)을 꾸려 서로 돕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밝힙니다. 생산은 어떻게 소비는 어떻게, 그리고 유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생협은 어떤 마음과 뜻으로 해야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돈이 많다고 이룰 수 없는 생협이요, 또한 돈을 벌자고 하는 생협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생산자 스스로 참다이 생산을 하면서 일하는 보람을 얻고, 소비자 스스로 올바르게 소비를 하면서 제 삶을 한껏 넉넉하게 꾸리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 있다고 더 잘할 수 있는 생협이 아니요, 빈손이라 하여 못할 수 있는 생협이 아님을 들려줍니다.


.. 우리들은 부자만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 자선과 교육에 관심을 갖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의 지원 기초는 더 굳건하게 된다 … 우리가 있어야 하도록 생활하면 식량 결핍의 위험은 없다. 큰 위협이 되는 것은 탐욕이다. 사람은 사치와 미식을 갈망하고 돈을 갈망한다. 그것이 투쟁과 알력을 일으킨다 ..  (160, 167쪽)


 나라안에는 ‘우찌무라 간조’라는 이름은 제법 알려지기는 했으나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이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알의 밀》이나 《신과 걷는 하루》 같은 책, 또는 《사선을 넘어서》 같은 책이 알려지고 읽히면서 ‘하느님과 예수를 따르는 믿음을 바탕으로 저마다 제 삶터에서 바른 길을 찾아 즐겁게 어우르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가 조곤조곤 스며들기도 했습니다. 비록 1990년대 접어들어 처음으로 《우애의 경제학》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1993년에 《사선을 넘어서》가 다시 옮겨진 뒤로는 이번이 첫 책).

 그리고, 이번에 나온 《우애의 경제학》은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분이 ‘하느님 사랑’만 외친 분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외치는 까닭’을 보여주는 첫 책이라 손꼽을 수 있고, ‘하느님 사랑은 어떻게 외쳐야 하는가’를 들려주는 첫 책이라 할 수 있으며, ‘하느님 사랑을 참되이 이루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첫 책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을 키우는 믿음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믿음이어야 하며, 모든 독재권력을 물리치는 믿음이어야지 사람을 억누르는 믿음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첫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신조만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신조나 교리와 함께 사회에서 속죄애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 20세기에는 물질주의적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적 공산주의는 다함께 포기해야 한다 ..  (6∼7쪽)


 지금 우리 식구는 두 군데 생협에 회원으로 들어가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있습니다. 쌀은 홍성 풀무학교생협에서 받아 먹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생협 먹을거리를 먹지 않았습니다. 옆지기가 생협 물건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깨우쳐 주어, 뒤늦게 알아차리라 함께하고 있습니다.

 으레 생협 물건은 ‘비싸다’고 여기곤 하지만, 비싼 물건이 아니라 ‘생산자한테 알맞는 대가를 치러 주는 값’이 붙은 물건입니다. 우리 스스로 생산자한테 알맞는 대가를 치르면서 ‘싼 물건을 억수로 쟁여 놓고 먹지 않게 되’니, 몸이며 마음이며 살림살이이며 한결 넉넉하고 따뜻해진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알맞는 만큼 밥을 먹으면 되며, 우리 식구들한테 알맞는 만큼 돈을 벌면 됩니다. 조금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즐기고, 어느 만큼 넘치면 넘치는 대로 나누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더 먹으려 하고 더 가지려 하고 더 쓰려 하니까 생협 물건을 쓰기 어렵다고 느낄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더 나누려 하고 더 함께하려 하며 더 흐뭇하고자 한다면, 저절로 생협 회원이 되거나 생협 물건을 가까이하리라 믿습니다.

 이는 종교가 가르치는 슬기이기도 하지만, 종교 없는 사람 스스로도 옳고 바르고 착하게 살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참된 종교란 종교라는 울타리가 없고, 참된 사람이란 종교가 있건 없건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이란 가난한 자리에 나란히 서면서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합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즐거움을 언제까지나 누리고 싶기에. (4342.5.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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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전희식.김정임 지음 / 그물코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66 ― 어린이와 늙은이, 딸아들과 어버이는 한몸
 : 전희식과 김정임, 《똥꽃》



- 책이름 : 똥꽃,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 글 : 전희식, 김정임
- 펴낸곳 : 그물코 (2008.3.5.)
- 책값 : 12000원


 (1) 할배 자전거와 어린이 자전거


 인천에 있는 ㅈ대학교 사진학과 ㅂ교수님과 낮밥 약속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찾아갑니다. 사진학과 교수님은 도서관장 일도 맡고 있어 본관에서 뵙기로 했기에, 본관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어디에다 잠가 놓으면 좋을지를 헤아립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ㅂ교수님한테 손전화를 거는데, 학교문에서 지켜서는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거, 어디 가려고 왔어요?” 하고 묻습니다. 뻔히 이 대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온 사람보고 이렇게 묻다니, 아마 제가 양복을 차려입고 까만 자가용을 끌고 왔다면 이런 말투나 말이 나오지 않았겠다고 느낍니다. “여기(ㅈ대학교) 왔어요.” 하고 짧게 끊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않습니다. 차 댄 자리 끄트머리에 자전거를 댈까 하다가, 사람들 눈에 잘 뜨이는 자리가 도둑 안 맞는 자리임을 생각하며, 본관 들머리 옆으로 길게 나무를 심어 놓은 한켠에 자전거를 묶습니다. 이리로는 걸어다닐 사람이 없어 걸리적거리지 않고, 저로서도 볼일 마치고 나오면 곧바로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문 지킴이는 다시 다가와 “자전거 거기 세우면 안 돼요.” 하고 가로막습니다. “여기 세우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거기 세우면 안 돼요. 거기 세우면 다른 사람도 오토바이 거기다 세워 놔.” “여긴 사람들 다니지 않는 자리인데 여기 세우면 안 될 까닭이 있습니까?” “안 되니까 저기 구석으로 갖다 놔요.”

 방송국에 가도 신문사에 가도, 또 어느 건물에 볼일을 보러 가도, 건물 지킴이는 자전거꾼한테 푸대접입니다. 때때로 반말을 놓기도 하고 멱살잡이라도 할 듯 우락부락거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워낙 자주 겪어 보았고, 어느 규칙이나 교칙이나 회칙에도 ‘건물 앞 빈터에 자전거 세우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터라, “이거 손대지 마세요. 손대면 신고합니다.” 한 마디로 으름장을 놓고 건물로 들어갑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한테 으름장을 놓아야 하니 마음 한켠이 켕기지만, 자전거꾼 권리를 생각한다면 물러설 수 없게 됩니다. 전철을 탈 때에도 이런 일이 흔한데, 나이를 제법 잡수신 분들은 자전거꾼을 밉보거나 뱀눈으로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이 가난한 마음자리를 느낄 때마다, 왜 이분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얕은 우물에 가두려고 하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마땅히 타니까, 자전거 세울 자리가 마땅히 있어야 하는데, 자동차 세울 자리는 있어도 자전거 세울 자리란 없습니다. 그러면 자전거를 걱정없이 알뜰히 세워 놓을 자리를 찾아볼 노릇이건만, ‘비싼돈 들여 멋들어지게 지은 건물 옆에 자전거가 비죽이 서 있으면 보기 나쁘다’는 말로 자전거를 못살게 굽니다.


.. 어머니 목소리가 바뀌는가 싶더니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젤 불쌍항 기 너라. 묵을 끼 남아 있어도 묵으락꼬 안 카믄 묵을 줄도 모르고, 형들 안 묵었닥꼬 냉가두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의 누르스름한 조끼를 입었다. 등짝이 넓적한 게 보기 좋다며 어머님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좋아하셨다.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태우지 말고 니가 입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누가 머락카믄 그래야. 우리 어무이 생각나서 어무이 옷 입는닥꼬.” ..  (224∼225쪽)


 퍽 예전 일인데, 아버지가 모는 차를 얻어타고 아버지 살던 동네를 달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이었음에도, 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을 타거나 걸어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 앞에서 빵빵거리며 욕을 몇 마디 하시곤 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교사 된 아버지가 이렇게 하실 수 있나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라, “아버지, 조금 기다렸다가 가도 되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빵빵거리면 놀라잖아요?” 하고 여쭙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날은 더 빵빵거리지 않으시지만, 다음에 또 얻어탈 때 보면 또 그 빵빵거림을 그치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자동차를 몰게 되는 분들은 교육자이건 아니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길에서 차 앞에서 얼쩡거리는 무엇’이라도 있으면 짜증스러워서 이내 빵빵질을 하게 되지 않느냐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차를 몰 때만이 아니라, 여느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습니다.


.. 돌아오는 길에 봉투랑 선물들을 가리키며 내가 “우리 어머니 부자가 되셨다”고 부러워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날라 댕긴다 칸들 누가 나보고 이런 걸 주건노. 다 니 얼굴 보고 중기지.” 공덕을 나에게 돌리고 사리를 분별하시는 어머니 모습은 아침과 비교하면 거짓말 같았다. 절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어머니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음식뿐 아니라 마실 물까지 챙겨다 주며 곁에 와서 일부러 말을 걸면서 정성을 다해 받들어 모시는 것에 어머니의 긴장과 경계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정성스런 모심’이 백 가지 약보다 나았다 ..  (84쪽)


 자전거한테 빵빵거리는 자동차, 건물 벽에 자전거를 바짝 붙인다고 하여도 ‘건물 보기 흉해진다’며 손사래치며 자전거를 발로 툭툭 차는 늙수그레한 건물 지킴이들한테 때때로 묻고 싶어지곤 합니다. 아니, 앞으로는 물어 볼 생각입니다. 늙어 허리 굽은 할매 할배가 엉금엉금 기듯 길을 걸어간다고 할 때에도 그처럼 빵빵거리거나 얼른 비키라고 소리를 치실는지를. 당신님들은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저 할매 할배와 같은 나이가 될 텐데, 그때 당신님들한테도 그렇게 못살게 굴면 느낌이 어떠하실는지를.

 힘여린 이를 아낄 줄 알고, 힘없는 이를 보듬을 줄 알며, 힘앗긴 이를 사랑할 줄 알아야 참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아끼고 어린이를 보듬으며 할매 할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들은 바른 사람으로 우뚝 서면서 이 땅 이 겨레와 어깨동무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계남면에서 장수읍으로 넘어가는 국도를 따라 ‘에프티에이FTA 결사반대’라는 장수군 농민회의 노란 깃발이 죽 꽂혀 있는 걸 보셨다. “저거는 먹꼬? 새 쫓을락꼬 꼬자 난나?”라고 하셔서 글자를 읽어 보라고 했더니 바람에 펄럭거려서 잘 못 읽으신다. 읽는다 해도 영어를 모르니 ‘결사반대’만 읽으셨을 것이다. 노인들만 있고 문맹자도 만만찮은 시골길에 농민회에서 만든 영어로 쓰인 ‘FTA’라는 남의 나라 말 깃발이 참 낯설어 보였다 ..  (81쪽)


 자전거를 타고 골목마실을 하다가 곧잘 큰 찻길로 접어들어 달리다 보면 거슬러 달리는 할배 자전거를 드문드문 마주칩니다. 무척 아슬아슬한 노릇인데, 할배 자전거가 ‘역주행’을 몰라서 이리 하실 수 있는 한편, 지난날에는 역주행이고 순주행이고 없이 ‘길에서는 자전거가 가고픈 대로 달렸다’는 생각으로 그리 달리시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날이라고 해 보아야, 인천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신호등이 놓인 때는 고작 마흔 해밖에 안 되었으며, 마흔 해 앞서 신호등이 놓였을 때에도 북적이는 곳에 한두 곳만 놓였을 뿐, 어디에서도 신호등이란 없이 사람과 자전거가 마음껏 오갔습니다. 이런 지난날 삶자락이 몸에 밴 할배 자전거는 찻길에서 스스럼없이 ‘거슬러 달리기’를 하십니다. 그래, 이런 할배 자전거질을 몰랐을 때에는 “할아버지! 그렇게 달리면 위험해요!”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제는 소리를 치지 않습니다. 뒷거울로 뒤에 차가 있는가 살피며, 제가 찻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며 할배 자전거가 느긋하게 지나가도록 뒷차를 막아서 빠르기를 늦추도록 하고 왼손을 들어 줍니다.


.. “어무이, 오줌 눌 때 안 됐어요? 오줌 좀 누러 가입시다.” “오줌? 여따 눠 삐리지 뭐.” “예?” “불도 따끈따끈해서 싸도 잘 마르겠네, 하하하하.” “안 돼요. 여따 누면 안 돼요! 옷 빨기 힘들어요!” “옷 빨드래도 내가 빠나 니가 빨지!” ..  (59쪽)


 할배들한테, 또 아이들한테, 자전거를 걱정없이 몸 튼튼히 지키며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자동차한테서 당신들 몸을 지키는’ 자전거질만 가르칠 노릇이 아니라, 자동차 모는 사람이 먼저 ‘자전거 타는 사람’을 눈여겨볼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줄 때에는 길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한테 어떻게 얼마나 마음쓸 줄 아는가를 돌아보면서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골목을 걷는 할배 할매와 어린이 앞에서 어떻게 차를 모느냐를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면허를 주든 말든 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르신을 모실 줄 알자면 어린이를 받들 줄 알아야 하고, 어린이를 받들 줄 알자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한테는 우리 스스로 사람됨을 잃어 가는 가르침과 사람됨을 내다버리는 돈벌이만 판치고 있지 않느냐 느낍니다.


 (2) 골목길 할매와 할배


 ㅈ대학교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자전거머리를 돌립니다. 집으로 돌아가 할 일이 산더미같고, 어제부터 몸살이 돌아 얼른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지만, 오늘처럼 볕이 좋을 때 골목마실을 안 하면 두고두고 안타까워 하리라 생각하면서 버티어 보기로 합니다.

 마침 오늘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 으슬으슬 추운 몸은 더 고단합니다. 그러나 송림4동을 거쳐 도화3동 골목집 사이사이를 도는 동안, 마음이 활짝 펴고 눈이 맑게 뜨입니다.

 틀림없이 이 동네는 말끔하게(?) 밀려 아파트가 될 곳인데, 곧장 내일부터 아파트로 바뀌게 된다 하여도, 이 골목길 사람들은 ‘헐리고 비어 버린 집터’를 치우고 흙을 고르고 땅을 일구어 텃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곳곳에, 사람 오가는 길자리를 뺀 모든 ‘빈 집터’가 골목밭이 되어 있습니다.


.. “나 같은 거는 사람도 아잉기 농띠처럼 죽지도 않고 니 짐떵어리다, 니 짐떵어리.” “너 없을 때 내가 그만 칵 죽어 삐리야 이도 저도 안 보고 내가 눈을 감아야 안 보지.” “나 땜시 니가 딴 살림 함스로 두벌 고생하는 거 내가 눈을 감아야 안 보지.” 자식이 집에서 부모 모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시간이 남아돌 때 하는 것도 아니요,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려도 통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가 정신을 놓고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본정신일 때 자식 보기 미안하고 똥오줌 범벅인 이부자리가 창피해서 하는 면피용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저런 극단의 말씀을 하시는 순간의 심정은 어머니 건강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어무이, 어무이가 나 어릴 때 기저귀 갈아 채우고 똥걸레 다 빨아 주고 했잖아요. 그것도 몇 년 동안을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그거 어머니한테 갚아 드리는 거예요. 저는 괜찮아요.” “애 키울 때는 다 그라지. 앙 그라는 사람 누가 있노.” “마찬가지죠, 어머니. 자기 어머니가 나이 잡숫고 몸 아프면 자식이 다 그라능기라요. 오줌 누믄 옷 갈아입히고 똥 묻으믄 빨아드리고요.” “요새 세상에 그라는 사람이 오대 있노. 지 밥 묵끼도 바쁜데.” “아이 차암, 옷에 똥오줌 누시는 사람보다 그거 빨 수 있는 사람이 몇 배 행복한 거예요. 저 아무리 고생한닥캐도 어머니하고 안 바꿔요, 절대.” ..  (210∼211쪽)


 길그림책에는 ‘도화3동 20번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눈앞에 펼쳐진 도화3동 20번지는 딱 한 집만 남고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저는 도화1동에서 태어났으니 도화3동하고는 그리 애틋한 느낌이 없다 할 수 있지만, 제가 태어난 바로 이웃 동네인 까닭에 한참 동안 바람을 맞으며 빈 들녘 아닌 허물어 쓸려나간 집자리에 멀뚱멀뚱 섭니다.

 아직 가까스로 살아남은 나무전봇대를 쓰다듬습니다. 도화3동 나무전봇대까지 하면, 인천 옛 도심지에서 송림1동과 내동과 중앙로2가까지 해서 저로서는 네 번째로 찾아낸 나무전봇대입니다. 조금 거닐다 보니 송림4동에 나무전봇대가 두 군데 더 남아 있습니다. 하루 사이에 나무전봇대를 세 군데나 보게 됩니다.

 나무전봇대 살아남은 둘레로도 어김없이 텃밭이 일구어져 있습니다. 고추를 심고 푸성귀를 심었으며, 아직 싹이 돋지 않아 무슨 씨를 심었는지 모를 밭이랑이 그득그득 보입니다.

 빈 집자리에 동그랗게 꽃밭을 일구기도 합니다. 버려진 꽃그릇에 한 포기씩 심긴 고추줄기가 싱그럽습니다. 그 위로 다닥다닥 붙은 빨래집게와 빨래줄을 바라보면서, 당신님들 마지막 삶자락 이곳에서 밀려나게 될 마지막 그때까지 ‘나무 심는 사람’처럼 ‘골목길 텃밭 일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들 손길을 가슴 찡하게 느낍니다.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바지런히 담으며, 송림4동과 도화3동 둘레에서 대학생으로 배우는 이들이 이 삶터를 꾸밈없이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무엇인가 가슴에 고이 껴안는다면 얼마나 반가우랴 생각합니다.


..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뒤로 밀렸다. 거추장스런 짐덩어리가 되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은 가슴에 그 잘난 카네이션 한 송이가 대롱거리다 만다. 명절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든여섯의 몸 불편한 어머니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 장례식장에서 울컥울컥 울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실 때 잔치를 하고 싶었다 … 면사무소에 가도 그렇고 병원에 가도 그렇다.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간병인도 그렇고 하물며 우체부 아저씨도 그랬다. 여든여섯인 우리 어머니에게 쉽게 반말을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어디가 아픈데?” “이거 아니야. 할머니, 주머니 다시 찾아봐요. 다른 도장 없어?” 나이 잡수시고 몸 어딘가가 불편한 노인을 대하는 건강한 사람들의 태도는 단순한 무시를 넘어서 무례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호호백발 할아버지 환자에게 반말을 하던 어느 대학병원 간호사는 “친근하게 하느라고 그런다”며 자기들의 반말을 변명했다. “아, 그래? 반말하니까 할아버지도 친근해서 좋다고 그러더냐?” 내가 바로 받아쳤더니 그 간호사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  (150∼151, 155∼156쪽)


 곳곳이 허물린 집이라 어찌 보면 으스스한 동네이지만, 길바닥에 자잘한 쓰레기 나뒹굴지 않습니다. 집마다 문간에 쓰레받이와 빗자루가 놓여 있는데, 여느 사람들이 안 보는 때에 골목집 할매와 할배는 부지런히 쓸고 치우고 하셨을 테지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당신 집을 사랑하고 당신 동네를 아끼는 마음으로.

 저잣거리 길바닥장사라도 할 기운마저 남아 있지 않을 듯 구부정한 할매와 할배가 곡괭이를 들고 빈 집자리 돌을 고른다든지, 호미와 괭이로 밭을 일군다든지, 그러면서 푸성귀 몇 손을 거두어들인다든지 하는 모습이란 바로 당신님들 스스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을 당신님들 딸아들한테 기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신님 마지막 삶을 알차고 싱싱하게 꾸릴 수 있음을 갖은 몸뚱이로 드러내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 그동안 내가 읽어 온 책들은 좀 건조했다. 《노년기 정신장애》는 치매 중에서도 혈관성치매인 뇌졸증이나 우울증 같은 증상에 대해서는 도움이 될 책이다. 그러나 노년기의 심리변화나 노년기 적응의 과제 등은 너무 도식적이었다. 책 구성이 논문처럼 딱딱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없고 ‘노인기계’를 관리하고 보수하는 실용서 같았다는 말이다 ..  (102쪽)


 햇볕에 빨래를 말립니다. 길가 빨랫줄에 빨래를 넙니다. 오가는 이웃이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집마다 문간에 마련한 걸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니 걸상은 모두 비어 있습니다.

 이제 이곳 이 골목이 죄 사라질 판이 되자, 민속학을 한다느니 국문학을 한다느니 지역학을 한다느니 건축학을 한다느니 사진을 찍는다드니 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할매와 할배한테 ‘이 동네에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며 부산을 떨곤 합니다. 주말이 되면 인천 골목길은 서울 둘레에서 사진 찍으러 나들이 오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합니다. 다만, 인천역 차이나타운과 배다리 헌책방골목 언저리와 북성포구 둘레에서 맴돌 뿐이지만, 어찌 보면 ‘사라지거나 없어질 즈음’ 되니 뒤늦게나마 한 장쯤이라도 건져 보려고 찾아드는 사람으로 어수선합니다.

 할매와 할배는 난데없이 모델이 되고 뜬금없이 무대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 할매 이름과 할배 이름을 여쭈던 젊은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할매 나이가 얼마이며 할배 이름이 무엇인가를 여쭈는 젊은이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고작 한두 번 찾아와서 듣고는 끝입니다. 할매 할배 스스로 오래도록 풀어내는 긴 나날을 듣기보다는, 곶감 빼먹듯 알짜가 될 법한 몇 마디만 얼른 듣고 서울로 돌아가려는 몸짓들입니다.


.. 어머니한테 다가갔다. 똥이 발에 밟혔다.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어머니 얼굴이 반쪽이었고 훨씬 굵어진 주름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어머니 곁에서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어머니 눈은 겁을 머금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겁먹은 눈초리. 그것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어머니 어깨를 감싸고 꼭 안았다. 울컥하고 울음이 솟았다. 어머니가 천천히 돌아앉으며 내 팔을 잡았는데 미끈거리는 똥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어머니 얼굴에 볼을 대고 속삭였다. “어무이 똥재이.”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우스웠다. 그래서 웃었다. 그러자 눈물이 볼을 타고 굴러 내렸다. “어무이 똥박사∼” 소리를 높여 말하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알아들었나 보다. 어머니 굳어 있던 얼굴이 풀렸다. 어머니도 내 웃음에 감염되었는지 따라 웃었다. “어무이 똥대장∼” 다시 소리쳤다. 우리는 서로 똥 묻은 상대를 손가락질해 가며 마구 웃었다. 불을 환히 밝히고 보니 여기저기 발린 똥덩이들이 몇 년 잘 묵은 된장 같았다 ..  (49쪽)


 골목마실을 하면서 옆지기와 아기를 생각합니다.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우리 옆지기와 아기가 우리 삶터인 골목길을 몸으로 마지막으로 부대낄 요 몇 해를 생각합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와 형을 낳아 길렀을 그 옛날 이 골목길 자취를 떠올립니다.

 할매 할배와 저하고는 아무런 사이가 아닐지 모르나, 어쩌면 이웃 사이였을는지 모릅니다. 골목마실을 하며 할매 할배한테 고개숙여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일부러 말을 섞지 않습니다. 저절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나눌 뿐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제가 이 동네에서 태어났을 때 이쁜 아기가 태어났다며 기뻐해 주었을는지 모르고, 제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저런!’ 하면서 일으켜세우고 빨간약을 발라 주었을는지 모릅니다.

 한 목숨은 늙어 쭈그렁뱅이가 되었습니다. 한 목숨은 아기에서 ‘아기 낳아 기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3) 《똥꽃》이라고 하는 이야기책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전희식 님이 농사짓는 이야기가 아닌 어머니 돌보는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냅니다. 아니,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라기보다,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 해야 옳겠구나 싶습니다. 늙어서 죽을 날을 코앞에 둔 어머니 똥오줌을 치우고 밥해 먹이고 ‘좋은 데’ 찾아 함께 놀러 다니는 이야기라고 해야 맞겠구나 싶습니다.


.. 어머니를 보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다. 노인이 되면서 정신을 살짝 놓은 덕분에 저렇게 남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자식 흉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맨정신이라면 저럴 수 없을 것이다. 분노는 더욱 내면화되고 화석처럼 굳어져 병을 키울 것이다 ..  (138쪽)


 전희식 님은 당신이 어린 날 어머니가 당신 똥오줌을 치워 주고 먹이고 키웠기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지 않습니다. 전희식 님 또한 늙은 할배가 될 줄을 알고 어머니를 보듬지 않습니다.

 그저 똑같은 한 목숨으로서 어머니를 사랑할 뿐입니다. 어디 먼 데에서 나누는 사랑이 아닌,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할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 “빼뿌재이 나왔네. 저거 생주리 해 묵어도 좋고 삶아서 된장 끓여 묵어도 된다.” “이거 질경인데요?” “빼뿌재이라. 내가 빼뿌쟁이도 모륵까이!” 이 외에도 ‘나시래이(냉이)’나 ‘질금다지(빌금다지)’ 등의 봄나물 이름도 익혀 나갔다. 어머니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신 있는 것은 도시의 세련된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각종 전기제품과 거기에 딸린 리모컨들은 귀신 붙은 방망이였고, 가스레인지나 진공청소기, 믹스기도 만지기가 무서웠다 ..  (70쪽)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나날이 새로움을 봅니다. 날마다 새로움을 배웁니다. 그리고 늙은 어머니도 젊은 아들한테 새로운 모습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배웁니다. 서로서로 새 세상을 보고, 서로서로 새 날을 맞이합니다. 저마다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 되는 하루를 맞이하고, 같이 얼싸안으면서 시골살림을 꾸립니다.


.. 아이들도 어른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것이 시골일이고 생태 집짓기다. 도시일과 달리 힘이 세건 신체조건이 열악하건 다 조건에 합당한 일거리가 있는 게 시골일이다. 그래서 누구도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자부심과 어른들의 뿌듯함은 최대치가 된다 … 자다가 오줌 누러 가려면 총총한 별도 봐야 하고, 얼어붙는 겨울바람도 쐬야 한다. 손빨래를 하면서 빨랫감 하나하나에 얽힌 내력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된다 …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목표 중심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되살려내겠다는 원칙이다 … 일을 서두르거나 일정을 빠듯하게 세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 일이다. 기다려야 하고 느긋해야 한다 …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여든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어머니가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  (24∼25, 32쪽)


 섣부른 목소리로 ‘늙은 어버이 모시자’고 외치는 《똥꽃》이 아닙니다. 늙은 어버이 똥은 꽃과 같다고 내세우려는 《똥꽃》이 아닙니다. 억지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내려는 《똥꽃》이 아니요, 못난쟁이는 못난쟁이대로 즐겁다는 이야기를 값싸게 팔아치우려는 《똥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저마다 참살길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선 자리에서 찾아내기를 바라는 《똥꽃》입니다. 내 몸과 마찬가지로 내 이웃 몸과 내 식구들 몸과 내 동무들 몸을 사랑할 슬기로운 길을 찾자는 《똥꽃》입니다. 낮은 목소리도 아니요 높은 목소리도 아닌 《똥꽃》입니다. 어울리는 삶, 땅에 발을 디딘 삶, 하늘을 우러를 줄 아는 삶을 조곤조곤 나누어 보고픈 《똥꽃》입니다. (4342.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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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승려가 된 히피 의사 - 행복과 평화에 이르는 길
툽텐 갸초 지음, 김인이 옮김 / 호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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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7 ― 살아가는 즐거움을, 나는 어디에서 찾는가
 : 툽뗀 갸초, 《티베트 승려가 된 히피 의사》



- 책이름 : 티베트 승려가 된 히피 의사
- 글 : 툽뗀 갸초(에이드리언 펠트만)
- 옮긴이 : 김인이
- 펴낸곳 : 호미 (2009.3.9.)
- 책값 : 11000원



 (1) 나와 식구들 삶


 옆지기 어머님과 집 보러 아침부터 낮까지 돌아다닙니다. 일산에서 전철을 타고 도화역에서 내려 도화동을 거쳐 숭의동과 송림동, 그리고 금곡동까지 여러 부동산집을 돌고 골목골목 집 사이를 누비면서 큰식구가 함께 지낼 만한 마땅한 집을 헤아립니다.

 인천은 아파트 아닌 자리는 모두 재개발이 된다고 하기 때문에 ‘들썩이지 않은 집값’에 따른 집삯 낮은 데를 찾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딱히 옮기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집임자도 보일러나 시설을 더 손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곧 뜯어서 없앨 집이니 굳이 삯 준다면서 돈을 들이지 않게 됩니다.

 한 번 지을 때 고작 서른 해도 못 가고 허물 집을 짓기보다는, 백 해나 이백 해는 거뜬히 버티면서 그 동네에 고유한 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인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꿈을 꿉니다. 이러한 꿈을 우리 나라에서 이루기란, 말 그대로 꿈만 같지만, 그래도 이 꿈이 꿈으로만이 아닌 삶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우랴 하고 새삼 꿈을 꿉니다.


.. 아버지가 밤에 호통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성냄과 무분별함 때문에 사랑이 녹스는 일이 없는, 완벽한 관계를 찾으리라고 마음먹었다 … 나는 새로운 사상에 언제나 마음이 끌렸지만, 이른바 정통 종교에는 그렇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자인 내 부모님은 자식들 머리속에 어떤 종교도 심어 주지 않았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에게 언제나 삶에서 자신의 생각을 따를 자유를 주었다 ..  (23, 40쪽)


 다리에 알이 배길 만큼 집을 둘러보고 나서 옆지기 어머님과 함께 늦은 낮밥을 먹습니다. 젓갈백반 집에서 육천 원짜리 밥을 받아서 먹는데, 젓갈이 남달라 괜찮기는 하지만 너무 짭니다. 짠 반찬 때문에 목이 더 마르고, “집이 없나? 돈이 없지.” 하는 어머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기는. 우리 식구들이 살 집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집에 들어가서 큰식구가 지내기에는 돈이 없을 뿐입니다. 달삯이야 어찌어찌 치른다고 하지만 보증금을 짐지어내기란 아득합니다.

 어느 나라라고 하든가, 아니 우리 나라 말고는 보증금 놓고 달삯 내고 하는 틀이 거의 없다고 했지 싶은데. 그러나 우리들이 우리 나라를 떠나 어디 딴 좋은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니, 이러하든 저러하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야 합니다. 좋든 싫든 가난이란 짊어질 무게이고 삶입니다. 반갑든 괴롭든 오늘 이 자리에서 더욱 옥죄는 일과 무게에 눌리면서 버티고 견디어야 합니다.

 밥집을 나선 다음 어머님은 연수동에 사는 막내이모님 뵈러 가시고, 저는 사진기를 어깨에 걸고 골목마실을 조금 더 잇습니다. “옛날은 북적북적하던 데가 (인천) 동구였는데, 이제는 아주 조용한 동네가 되었어.” 하는 말씀처럼, 지금 저희 살림집이 있고 도서관이 있는 인천 동구는 아주 조용합니다. 함께 골목집 구경을 하는 동안 “옛날에 송림동 깡패 하면 아주 알아주고 무서웠는데” 하고 말씀하시는데, 송림동에는 지금 깡패고 건달이고 하나도 없습니다. 깡패 스스로 이 동네에서는 깡패 짓으로 재미 볼 만한 일이 없을 테니까 모두 북적거리는 다른 동네로 옮겨 갔습니다.


.. 우리는 여전히 한낱 즐거움만 좇을 뿐이었고, 그러다 보니 늘 목마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집으로 돌아오자 마음의 평안이 사라져 버렸다. 옛 친구들이 찾아오고 내 귀향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다. 누군가 초록색 대마초를 가득 채운 물담배통을 내 손에 건넸고, 낯익은 얼굴들이 내 둘레에서 소용돌이쳤다 … “사실 불행한 것 이상이에요. 제가 미쳐 가고 있는 건지, 멜버른 전체가 제정신이 아닌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행복한 척하지만 고통과 고민투성이예요 ..  (51, 169, 171∼172쪽)


 골목집 개나리를 보고 벚꽃을 보고 진달래를 봅니다. 활짝 피어난 목련을 보고, 곧 꽃망울 터뜨릴 목련을 봅니다. 이제 이 다음으로 어떤 꽃들이 피어나며 꽃그릇마다 가득할까 헤아립니다. 어느 집에는 파가 오르고 어느 집에서는 상추가 잎을 틔우기도 하는데, 머잖아 한 달쯤 뒤부터 갖가지 푸성귀가 가득한 가운데 싱그러운 풀빛을 뽐낼 테지요.

 앞뜰 조그맣게 있는 집을 들여다보고, 햇볕이 창문으로 가득 들어가는 집을 눈여겨봅니다. 지금 사는 저희 살림집은 다른 모두는 다 나쁘지만 빨래 널기에는 어느 집보다 좋습니다. 햇볕 쬐기를 따로 돈으로 따질 수 없을 테지만, 햇볕 하나만으로도 사람 삶이 한껏 달라지지 않느냐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낮밥을 먹을 때 옆지기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둘레에서 최 서방 사위로 잘 두었다고들 한다고,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나느냐고, 차라리 돈없는 사람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어느 만큼 좋은 사위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저로서는 옆지기한테나 옆지기 식구한테나 또 저희 식구한테나 형제한테나 다른 동무한테나 ‘돈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앞으로도 돈으로 도움될 구석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없는 제가 손을 벌리면 벌리지, 제가 손을 내밀 일이란 있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돈이 없으니 돈을 나누어 줄 수 없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다른 여러 가지가 있기에 다른 여러 가지를 나눕니다. 책을 나누고 책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진을 나누고 사진이야기를 나눕니다. 글을 나누고 글이야기를 나눕니다. 몸을 써서 함께하는 일을 나누고, 처남 졸업식 같은 자리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한편, 여느 날 치르는 제사에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아기와 함께 장인 어른 댁에서 여러 날 느긋하게 머물면서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기가 선사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 “교육 제도, 광고, 종교, 통속적인 신념 같은, 사회의 모든 장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고 저런 것을 하게 만들면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합니다. 자발성의 자유가 없지요. 사람들이 단순히 자기 삶의 행복과 의미를 찾기 위해서 규범에 저항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지요. 적절한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먹고, 모두가 하는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를 보세요! 부모들, 교사들, 정치인들, 종교 지도자들, 그들은 스스로 몹시 비참해 하면서도 젊은이들이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한다고 나무랍니다 … 사회는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우리는 또 그렇다고 믿지요. 자유로운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참된 행복과 평화를 추구할 자유라곤 없습니다 … 사회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저희 자신을 바꾸려는 겁니다. 되든 안 되든 그렇게 한번 해 볼 자유를 바랄 뿐인 거죠. 그렇게 해서 값진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따르고 싶어하겠지요 … 사회는 우리가 더는 먹히지도 않는 옛 전통을 따르기를 바라느니, 더 나은 현실을, 그게 아니면 적어도 다른 현실을 찾는 것을 허용하고 북돋울 힘이 있어야 합니다.” ..  (193∼194쪽)


 어느 모로 보면, 우리 어머니나 형한테 “어머니, 아들이 살림이 참 힘들어서 그러는데 돈 좀 보태 주셔요.” 하고 올리는 말씀이나 “형, 동생이 어찌어찌 해 보아도 안 되어서 부탁을 하네, 미안해, 좀 도와줘.” 하고 드리는 부탁이란 멋쩍으면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손 벌리는 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떳떳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떳떳하지 않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돈이 없으니 돈을 보태 달라고 할 뿐이고, 저보다 돈이 더 있는 분들이 도와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싶을 뿐입니다. 그분들도 힘들면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힘들더라도 보태실 수 있으면 보태어 줍니다. 돈이란 우리 삶에서 ‘모든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길 가운데 하나’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다른 데에서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를테면 어떤어떤 공부를 할 때에 어떤어떤 책을 찾아서 읽으면 좋다든지 하는. 판이 끊어진 책을 어디에서 찾으면 좋을까 하는. 판이 끊어져 도무지 없는데 빌려 줄 수 있느냐 하는. 사진기를 장만하려고 하는데 어떤 녀석을 사면 좋을까 하는. 돌잔치나 혼인잔치 때 사진 찍어 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 같은. 때로는 이삿짐을 날라 주고, 때로는 책 정리를 해 주고. 마음이 힘들어하는 동무한테는 밤늦은 때에 술동무가 되어 주고. 우리 살림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우리 뒤에서 무럭무럭 커 가는 젊은 벗들한테 밥이나 술 한번 사 주고.


.. 어떻게 이런 천국 같은 곳에서조차도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단 말인가. 이곳 사람들도 결국 닳고 닳아 머리속이 복잡한 서양사람들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만족할 줄 모르고, 쉽게 화를 내고, 또 보답에 대한 기대 없이는 서로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은 어디서나 같았다 … 여객선 사무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도에 있는 코카콜라 자동판매기를 바라보느라고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것을 보고는 서양 문화가 어머니 인도를 침략한 것에 진저리를 치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 남자가 코카콜라 한 병을 사서 내게 주고는 갔다. 그 남자도 틀림없이 나를 돈 한 푼 없는 마약 중독자라고 생각했으리라. 나는 그 남자의 친절함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비록 내 마음은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더 평화로웠지만 내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  (262, 303쪽)


 옆지기 식구가 일산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기게 되면 여러 가지 걱정이 있는데, 이 가운데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간 처남이 가장 크게 걱정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까이 지낸 동무들하고 모두 떨어져야 하는 가운데, 낯선 동네에서 낯선 동무하고 새로 어울리면서 아주 다른 교과과정으로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천에 있는 중학교는 하나같이 건물이 오래되었습니다만, 일산에 있는 중학교는 지은 지 몇 해 되지 않아 시설을 견줄 수 없습니다.

 다만, 처남도 마냥 어린이가 아니니, 식구들이 겪는 어려움을 제 나름대로 삭이고 헤아리면서 받아들이리라 믿습니다. 또한, 처남이 마냥 어린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어른이라 하는 사람’들이 더욱 살가이 어울리고 함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새롭게 꾸릴 삶을 차근차근 일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돈이 아주 넉넉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살아간다고 즐거움은 아닐 테니까요. 떠나는 만큼 만나는 삶이며, 잃는 만큼 얻는 삶일 테니까요. 돈이 없어 쪼들리기도 하고, 낯선 곳으로 갑작스레 집을 옮기기도 해야 하며, 때로는 학교를 옮기기도 하지만, 없는 살림이라 기쁜 날이 있고, 낯선 동네라 재미난 날이 있으며, 학교를 옮기면서 새롭게 틔우는 눈이 있을 테니까요. 서로가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르게 커 나가게 되는 새로운 발판이기도 할 테니까요.


 (2) 나와 책과 삶


 저소득가구전세자금대출이라는 돈을 받을 수 있나 궁금하여 은행에 다녀옵니다. 여러 가지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은행에서 내어주는 돈은 보증금에서 70%까지 빌려 준다고 합니다. 보증금 10%를 계약금으로 건 계약서를 동사무소와 은행에 내어 보름이나 한 달에 걸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데, ‘저소득가구’인 사람한테는 거의 보름 남짓 하는 동안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일이라든지, 많아야 70%를 빌릴 수 있는 벽이 버겁다고 느껴집니다. 무엇을 하든 밑돈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에서는 저보고 “고객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글쎄, 저는 무슨 일을 할까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소득신고는 하셨습니까?” 글쎄, 제가 뭐 글삯을 많이 받는 사람도 아니고, 글삯 받을 때 보면 다 세금이 잘려서 들어오던데. “출판사나 언론사에서 다 세금 떼고 주던데요.” “귀하 같은 경우는 무소득자로 간주해서 …….” “네, 그렇군요.”


.. 여권에 도장을 받고 나서 밖으로 나갔더니, 누더기를 걸치고서 누가 봐도 저희 것이 아닌 돈을 한 줌씩 들고 있는 소년들 한 무리가 나를 에워쌌다. “돈 바꿔, 아저씨?” “고맙지만, 됐어.” “해시시 좋아?” “고맙지만, 됐어.” 아이들은 그래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내 관심을 끌려고 서로를 떼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주 기운차 보였다. 이런 장면에는 내가 곧 익숙해질 터였다. 장난감이며 이런저런 도구들이 없어도, 그러니까 우리 서양사람들이 아이가 잘 자라려면 꼭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그런 것들이 없어도, 그 아이들은 대부분의 서양 아이들보다 더 행복하고 더 생기가 넘쳐 보였다 ..  (44쪽)


 언젠가 어느 출판사 사장이 당신이 낸 책을 들고 은행에 가지고 가서 ‘다음 책을 찍을 돈을 빌린 적이 있다’는 소리를 귀동냥으로 들었기에, 저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제가 써낸 책 몇 권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무소득자’라는 말에 기운이 꺾여 달리 무슨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무소득자’라는 사람한테는 천만 원에서 천오백만 원까지 빌려 주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는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렇지만 천만 원을 빌린다 하여도 70% 벽이니까 1500만 원쯤 되는 보증금을 대는 집을 얻어야 빌린다는 소리이고, 보증금 천만 원쯤이라면 칠백만 원을 빌릴 수 있다는 소리인데.

 뒤에 기다리는 다른 손님이 없지만, 은행에 앉은 엉덩이가 근질거립니다. 더 꺼낼 말도, 딱히 들을 말도 없습니다. 머뭇머뭇하다가는 가방에 챙겨 온 책을 꺼내 은행 직원한테 “시간 나면 한번 읽어 보셔요.” 하고 내밀고는 뒤돌아 나옵니다.


.. 파키스탄사람들은 아프간사람들보다 확실히 너그럽고 속이 깊었지만, 그들은 서양의 물질주의가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 비록 학생들의 말은 변혁을 일으킬 만했지만, 그들은 조만간 저희가 고른 직업에 안주하며 사회적 지위를 누릴 것이다. 그 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슬픈 것은 저희 나라와 민중이 지닌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었다. 그들 삶의 진짜 목표는 서양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태도가 안쓰러웠고, 파키스탄이 안쓰러웠다 … 우리를 초대한 세 사람은 우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저희의 생활과 낮은 급여에 실망해서 서양의 생활 양식을 갈망하고 있었다. 우리는 속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나라의 다른 사람들에 견주어 부자인데다 그들의 환경은 대부분의 서양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것보다 한결 평온했다. 우리는 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을 진심으로 추켜올림으로써 그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애썼다 … 아프가니스탄과 인더스강을 따라 내려간 여행은 행운이 가득한 마법 같았다. 위험을 만났지만 잘 모면했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우려고 애썼다. 우리는 파키스탄의 진면목을 본 것이다.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나는 이 세상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  (66, 83, 97, 153쪽)


 집으로 돌아와 밥을 끓입니다. 요즈음 즐기고 있는 만화 《좋은 사람》을 펼쳐 읽습니다. 혼자서 밥과 시금치를 먹으며 만화책을 넘기다가 눈물이 뚝뚝 듣습니다. 참 좋다는 느낌, 그러나 참 좋다는 이 느낌을 함께 나누기란 참 힘들다는 느낌.

 그렇지만 참 좋다는 느낌이 들도록 애쓴 만화쟁이는 이 만화책을 일곱 해에 걸쳐서 바지런히 이어갔다고 하니, 나 또한 한 작품을 책으로든 사진으로든 무엇으로든 다부지게 붙잡고 걸어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그래도 여태껏 배 곯지 않고 용케 책 만들고 책과 함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생각.


.. 강에서 만난 이 음악의 오르내림은 소떼가 다음 모래톱으로, 또 그 다음 모래톱으로 헤엄쳐 가는 동안, 그리하여 건너편 둑으로 완전히 건너갈 때까지 되풀이되었다. 마침내 소떼가 사막으로 사라지면서 음악은 사라져 갔다. 소떼가 건너는 데 이십 분쯤은 걸렸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소떼의 장엄한 워낭 연주를 지켜보았다. 기계가 없는 상태에서 소리가 새로운 차원을 얻은 것이었다. 새 울음소리, 파도 소리 그리고 강물의 속삭임이 우리와 늘 함께했다.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어쩌다 말을 할 때면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 내가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말했다. “사람들 생활에서 늘 되풀이되는 허섭쓰레기들 말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야. 여기에서도 사람들은 저희 속에 갇혀서 주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잖아.” ..  (119, 131쪽)


 책상맡에 놓아 둔 책 가운데 《엘리노어 마르크스》가 아직 다 읽히지 못한 가운데 제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날 때면 틈틈이 꺼내어 열 몇 쪽씩 들추어 읽는데, 아버지 마르크스와 딸 엘리노어가 보내야 했던 삶과 품었던 꿈을 곰곰이 짚으면서, 마르크스는 그저 수수한 아버지였을 뿐이고 엘리노어 또한 그예 수수한 딸이었을 뿐임을 느낍니다. 마르크스가 이루고 싶어한 세상이든, 엘리노어가 바꾸고자 했던 삶터이든, 늘 온몸으로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그때그때 맞추고 받아들이면서 바라보고 있었음을 느낍니다.

 아직 몇 쪽 못 읽은 타르코프스키 책 《봉인된 시간》은 《엘리노어 마르크스》와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야금야금 읽어 나가고자 하지만 자꾸자꾸 눈에 걸리는 얄딱구리한 옮김말 때문에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파고들지 못합니다.

 그 옆에 꽂아 둔 《사람은 왜 사는가》(이노우에 쇼지)라는 책을 들춥니다.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는 것은 예수가 제일 싫어한 자세입니다(132쪽).” 같은 대목이 부드러이 제 마음결을 사로잡습니다. 깔끔한 옮김말과 함께 단출한 글투가 몹시 사랑스럽다고 느끼는데, 문득문득 제가 쓰는 글도 이런 분들 글처럼 내 둘레 사람들 마음결을 부드러이 사로잡을 수 있는지 뉘우치게 됩니다. 제 깜냥껏 단출하게 추스른다고 하는 제 글이 참말로 단출한지, 단출하면서 알맹이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 나는 그가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반드시 그런 함정들을 피해, 고통보다는 즐거움을 나누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라마 예셰는 늘 그런 식으로 우리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북돋았다. 만일에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낟 해도, 라마 예셰는 우리가 우리 결정대로 행동하고 그 결과로 시련을 겪게 내버려 둘 것이다 … 앤과 주디가 모두 타라 하우스에 왔다. 나는 두 사람 다한테 애착을 느꼈지만, 서원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그들과의 우정은, 어떻게 하면 서양 사회에서 승려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체특해 나가는 과정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대신 그 욕망을 관찰했고, 더불어 여자들과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데에서 생기는 장점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불을 갖고 노는 것만큼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 만일 타 버릴 거라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는다면 내 마음은 서양 사회의 관능성에 저항하는 힘을 훌륭히 단련한 것이 될 터이다 ..  (306, 334, 342∼343쪽)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는 동안 제 마음 또한 좋아지도록 하자고 다짐합니다. 조금씩 제 마음이 좋아진다면 이 좋은 마음으로 내 일손을 한결 기쁘고 홀가분하게 다잡게 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읽으며 받아들인 그 좋은 느낌을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잊거나 잃지 않는가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마흔 평이 넘는 도서관에 빼곡하도록 갖가지 책을 갖추어 놓았다지만, 이 책들 가운데 몇 권이나 내 숨결로 고이 자리잡았는가 헤아리면 멋쩍습니다.

 사람들한테 ‘더 많은 책’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저 스스로 ‘더 많은 책’에 휘둘리거나 빠져 버리지 않는가 돌아봅니다. 혼자만 좋은 책 읽겠다면서 아이 키우는 일에서 살짝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는가 되뇌입니다. 남보다 먼저 어떤 책을 읽었거나 남은 모르는 어떤 책을 뜻밖에 만나서 알게 되었다고 우쭐거린 적은 없었는가 뒤돌아봅니다.

 좋은 책에 내 삶을 맞추는 일도 괜찮을 수 있으나, 책만 보다가 내 삶을 못 보지는 않는가 곱씹습니다. 내 삶에 따라 좋은 책을 찾는 일도 괜찮겠지만, 내 삶을 앞세워 좋은 책을 코앞에 두고도 주머니가 가볍다든지 짬이 모자란다든지 하면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는가 되씹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책에 담긴 ‘좋음’을 꾸밈없이 달게 빨아먹고 삭이려는 매무새를 잊은 적은 없었는가 뉘우칩니다.


 (3) 의사가 하는 일, 스님이 만나는 사람


 이야기책 《티베트 승려가 된 히피 의사》를 덮습니다. 아기를 품에 안으면서 읽어 보려고 했지만, 아기는 책장을 휙휙 잡아채어 북북 뜯으려 하고, 책을 바닥에 놓으면 엉금엉금 기어와 입에 집어넣습니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책을 쥘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구나, 아기를 돌본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아기만 생각해야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든지 딴짓을 해서는 안 되겠구나. 머리통을 가볍게 툭툭 때리고는 책을 가방에 집어넣습니다. 인천과 일산을 오가는 전철길에서 읽고, 아기가 잠들고 난 다음 읽으며, 새벽에 좀더 일찍 일어나서 읽자고 생각합니다.


.. 우리를 들여보낸 사람 말고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고, 소리라고는 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뿐이었다. ‘낙원이 따로 없군.’ 런던에서 그칠 줄 모르는 자동차 소음 속에서 일하던 것이 떠오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무실에서와 같은 그런 평화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살고 있을꺼나. 보좌관은 주변 환경만큼이나 조용했다 … 내가 5루피를 주자 좀더 큰 (거지) 소녀가 내게 천금에 값하는 웃음을 살짝 던졌다. 다른 승객들이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나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인도의 계급 제도가 혐오스럽기만 했다 ..  (95, 159∼160쪽)


 이야기책 《티베트 승려가 된 히피 의사》는 책이름 그대로 ‘티베트 승려’가 된 호주사람 삶을 담습니다. 이 호주사람은 책이름 그대로 ‘히피’였고 ‘의사’입니다.

 우리로서는 꿈도 꾸기 어렵지만 대마초를 비롯한 수많은 마약을 즐겨 먹고 마시고 피웠으며, 이러는 가운데에도 ‘서양 물질문명으로는 안 된다. 어딘가 잘못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서양 물질문명이라고 느끼면서도 당신 스스로 잘못된 물질문명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핑계를 댑니다. 물질문명을 한손으로 붙잡고 있으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깨달음을 붙잡고자 합니다.

 어쩌면, 두 가지 모두 이루는 길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제대로 못 찾아서 그렇지, 두 가지뿐 아니라 서너 가지를 한꺼번에 이루는 길 또한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참말 이런 길이 있을까요. 자연 삶터를 무너뜨리지 않고 자연자원을 얻어 쓰는 길이 있을까요. 돈 많이 벌면서 착한 마음 아름다이 지키는 길이 있을까요. 오래오래 많이많이 배우면서 자기 머리에 쌓은 지식을 손쉽게 풀어내어 나누는 길이 있을까요. 자가용을 몰면서 걷는 사람한테 마음쓰는 길이 있을까요.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길이 있을까요. 돈없는 사람 마을에 아파트를 세우면서 돈없는 사람이 깃들일 집자리를 지키는 길이 있을까요.


.. 오래된 건물들을 밀어내고 현대 도시를 세운다는 리관유(이광요) 수상의 정책이 우리 눈에는 그 도시를 죽이는 것으로 보여, 그길로 말레이시아의 페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  (224쪽)


 아주 슬기로운 길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그 슬기롭다고 하는 길이 펼쳐지는 모습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제 둘레에서는 아직 못 느끼고 있습니다. ‘착한 마음’과 ‘돈’ 두 가지가 우리 앞에 있고, 이 가운데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할 때에, ‘돈’ 아닌 ‘착한 마음’을 선뜻 집어드는 이웃이나 동무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배가 좀 고프게 되더라도 착한 길을 걷는 이웃이란, 내 몸이 더 고되게 되더라도 착한 길을 반기는 동무란, 아무래도 못 만날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남들한테 바란다면 힘들 일이라고 느낍니다. 남들이 나서 주기를 기다린다면 끝이 없다고 느낍니다.

 제가 나서야 할 일입니다. 저부터 걸을 길입니다. 좋은 깨달음이 있다면, 온갖 잇속과 밥그릇과 이름값과 힘을 등져야 할 노릇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했던 싯말만 욀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나한테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껍데기를 훌훌 털어낼 노릇입니다. 돈 많이 벌어 떵떵거리게 된다면 착한 일을 할 생각이 아니라, 바로 오늘부터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서 가난한 살림으로 함께할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고 나눌 노릇입니다.


.. 우리가 바나나를 말리고 있을 때 마약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전에 톰의 집에 해시시를 몰래 숨겨 놓고는 그를 체포한 적이 있었다. 이 경건한 백인 노동자들의 동네는 남부에서 온 긴머리 히피들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모글 꽉 죄는 셔츠와 넥타이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그들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마약을 만들고 있다고 책잡으면서도, 여기저기 널린 것이 마약인데도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  (200쪽)


 티베트가 중국한테 무너진 까닭은 이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티베트사람이 중국 군인한테 끔찍하게 짓밟히고 들볶이다가 죽여 나가는 까닭은 이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평화와 자유와 민주와 자치가 있던 티베트에서 어마어마한 지하자원을 뽑아내고, 티베트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며, 지금으로서는 중국땅이 아주 넓고 힘도 센 듯 느껴질 테지만, 간도 허파도 내주면서 스스로 사랑이 되는 티베트이기 때문에 주먹다짐이 아닌 눈물과 웃음으로 가여운 중국을 끌어안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히피이며 의사였던 글쓴이 ‘에이드리언 펠트만’은 아프가니스탄부터 파키스탄과 인도와 태국과 말레이사아를 두루 거친 다음 티베트에 뿌리를 내리면서, ‘툽뗀 갸초’라는 새 이름으로 새 삶을 꾸리게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저는 제 이름 석 자를 내려놓고 ‘함께살기’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꾸리자며 열 몇 해째 바둥거리는데, 아직까지 그저 바둥거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져 남우세스럽습니다. (4342.4.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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