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 - 사진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전민조 엮음 / 눈빛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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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꾸몄다고 다 책이 되지 않는다
 [다들 잘 모르는 사진책 1] 전민조 엮음, 《사진 이야기》(눈빛,2007)



 사진쟁이 전민조 님이 올 2010년 5월 19일부터 새로운 사진잔치를 엽니다. 이번 사진잔치는 〈담배 피우는 사연〉이라는 이름을 내겁니다. 나이가 들어 저절로 신문사 사진기자 일을 그만둔 뒤로 해마다 다른 사진감을 선보이며 사진잔치를 열고 있으신데, 여섯 해째 꾸준히 마련하는 새로운 사진잔치를 하나씩 들여다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놀랍고 반갑습니다. 전민조 님은 ‘새 사진감을 찾아 사진을 만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바쁜 틈을 쪼개어 ‘당신한테 가장 아름답고 좋을 사진을 찍어서 갈무리한’ 끝에 이렇게 해마다 당신 사진곳간에서 알찬 보배를 하나씩 꺼내어 우리들한테 선물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진쟁이들은 ‘무언가 톡톡 튀거나 남다르거나 뜻깊을 사진감’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괜찮다 싶은 사진감이 나오면 몇 해에 걸쳐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고는 사진잔치를 한 번 열거나 사진책을 하나 내놓고는 이 사진감 또한 슬며시 내려놓습니다. 꾸준히 이어가며 당신 마음밭을 일구는 사진찍기가 아니라 ‘작품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 사진찍기입니다.

 전민조 님은 지난 2007년에 엮은 책 《사진 이야기》에서 “셔터만 누른다고 모두 작품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정직하다. 벽에 걸어 놓기 좋은 아름다운 사진만 찾는 사람들, 또 그런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진의 발전은 어둡다(머리말).”고 이야기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고 모두 사진이 되지 않으나,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모두 사진이 됩니다. 찍은 사진을 그러모아 책을 묶는다고 모두 사진책이라 할 수 없으나, 찍은 사진을 그러모으면 모두 사진책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쏟아 아끼는 사이가 모두 사랑하는 사이라 할 수 없으나, 마음을 쏟아 아끼는 사이란 모두 사랑하는 사이일 때하고 매한가지인데, 이 대목을 곱다시 헤아리는 사진쟁이는 퍽 드뭅니다. 전민조 님이 “카메라는 정직하다”고 읊은 이야기를 속깊이 읽어내는 사진쟁이란 몇 안 됩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모두 사진쟁이는 아니나 사진을 찍으니 모두 사진쟁이요, 사진기는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을 종이에 담아내기는 하나 사진기는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을 종이에 담아내지 않기도 한데, 이를 우리들 가운데 몇몇이나 곱씹고 있으려나요.

 《사진 이야기》라는 사진책은 사진일을 하거나 사진밭에 몸담은 사람들이 쓴 글에서 ‘사진을 읽는’ 고갱이가 되는 넋을 담은 글을 간추려서 묶었습니다. 1994년에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님은 대낮에 술에 절어 있는 전두환 씨를 사진으로 찍던 일을 되돌아보며, 전두환 씨가 당신을 바라보며 “필름 아껴 쓰라우” 하고 큰소리를 쳤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남겨 놓습니다. 월간조선에서 사진팀장을 하던 이오봉 님은 당신 후배들한테 “취재현장에서 예의를 갖춘 사진기자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몽각 님은 “아이들은 우리 부부에게 자랑이요, 기쁨이었다”고 말하면서 당신 아이를 사진으로 담은 까닭을 밝히고,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만일 한국이 남태평양의 산호초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섬나라였다면 굳이 내가 취재하고자 마음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얼마 앞서 《황천의 개》라는 사진책이 옮겨진 후지와라 신야 님 1993년판 《인도방랑》이라는 사진책에는 “보잘것없는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말마디가 적혀 있고, 1926년에 태어나 1967년에 《포토그라피》라는 잡지에 글을 쓴 조중 님은 “사진이 예술이냐 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왜 찍었느냐에 따라 분간될 성질의 것이며, 한 장의 사진이 예술사진이냐 하는 것은 그 사진에 담겨 있는 내용이 문제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펼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꾸리며 다 다른 사진을 찍는 한편 다 다르게 사진을 바라봅니다. 《사진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사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보여주고, 백 사람으로 백 가지뿐 아니라 즈믄 가지 이야기를 엮을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 삶이니 사람에 따라 다른 사진이거든요. 사람에 따라 다른 눈길이니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양으로 사진뿐 아니라 글이나 그림을 일굽니다. 다 다른 이야기가 다 다른 아름다움과 눈물웃음을 자아내면서 다 다른 문화나 예술로 자리매깁니다.

 다 다른 자리에 있으면서 다 다른 내 목숨이요 넋임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어슷비슷하거나 그냥저냥 ‘벽에 걸어 둘 만한’ 작품만 태어납니다. 이래저래 ‘꽤 볼 만한 사진책’이 태어나거나 ‘세계 사진 역사’에 이름 하나 걸칠 작품이 나타날 뿐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넋을 보듬는 가운데 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이란 사진기 단추를 누르며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글이란 연필을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그림이란 붓을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그러니까, 살림이란 걸레 칼 도마 비누 따위를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이겠지요. 아이 하나란 어버이 손길과 마음길로 보듬으며 일구는 고운 목숨이면서 스스로 문화이며 예술일 테지요. 자연이란 풀과 나무와 짐승들이 골고루 어우러지면서 스스로 이루는 문화이며 예술이고요.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바로 우리 살림과 우리 목숨과 우리 자연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샘솟는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사진 이야기》는 우리들 누구나 다 알고 있으나 제대로 알려 하지 않는 대목을 건드리는 작은 사진책입니다. (4343.4.30.쇠.ㅎㄲㅅㄱ)


― 사진 이야기 (전민조 엮음,눈빛 펴냄,2007.8.20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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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살갑고 고운 사람들 살림집과 어깨동무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6] 노익상, 《가난한 이의 살림집》



- 책이름 : 가난한 이의 살림집
- 글ㆍ사진 : 노익상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10.1.20.)
- 책값 : 18000원


 (1)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


 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언제나 사진쟁이와 글쟁이와 그림쟁이 들한테 ‘좋은 취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가멸찬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사진감이 되거나 글감이 되거나 그림감이 된 적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벌써 열 몇 해가 지난 이야기인데 예전에 대통령 뽑는 자리에 나왔던 이회창 님이 살던 서울 가회동 달삯 2000만 원짜리 빌라를 두고 사진감이나 글감이나 그림감으로 삼는 문화예술쟁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수십억 원에 이른다는 아파트 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수십억 원까지는 아니어도 몇 억짜리 아파트를 골골샅샅 살피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사람 또한 못 보았습니다. 아파트 발자취를 다룬 학술책이 더러 나오기는 했으나 겉보기로 돌아보는 논문일 뿐, 어떤 이야기를 뽑아내거나 얻어내는 곳으로 삼은 적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이름난 맛집이나 멋집이라는 틀거리로 다루기는 합니다. 서울 홍대라느니 테헤란길이라느니 명동길이라느니 하면서 도심지 사람 북적이는 길거리를 다루는 이야기는 꽤 많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치고 ㅅㅋ을 달거나 ㅋㅅ를 놓으면서 ‘무인경비 시스템’을 갖추는 데란 없습니다.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집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기 일쑤요, 가난한 이들 골목동네에서는 속옷 빨래조차 골목 담벼락에 줄을 드리워 해바라기를 하기 마련입니다. 아무 아파트나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 하면 이내 지킴이 할배가 달려와 “당신 뭐 하는 사람이요?” 하고 팔뚝을 잡아끌겠지요. 중국에서 사진을 함부로 찍다가는 공안한테 붙잡힌다고 하는데, 중국이 아닌 한국땅 아파트마을에서도 사진을 함부로 찍다가는 아파트 지킴이한테 붙들려 갑니다. 그러나 골목동네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골목사람한테 붙들려 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란 없습니다. 집살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요, 사진을 찍는 사람들한테 속옷 고쟁이까지 송두리째 내보이는 가난한 이들 살림집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제 살림살이를 사진으로 담기 어렵습니다. 먼저 느긋하게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비싼 사진기나 장비를 장만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뽑을 돈이 없습니다. 굳이 제 살림동네와 살림집을 사진으로 찍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나 살림집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다루며 그림으로 그려서 보이는 사람은 언제나 ‘가난하지 않은 동네에서 가난하지 않은 살림을 꾸리는’ 이들입니다. 똑딱이 사진기이든 값싼 캠코더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이런 사진장비를 갖추면서 살아가는 골목동네 사람은 드뭅니다.

 가난, 가난, 가난 ……이라는 말을 되풀이하자니 더없이 멋쩍습니다만, 가난이란 잘못이 아니고 허물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이 아니고 창피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딱히 가난이라는 낱말을 들먹이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다들 똑같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자꾸 가난을 들먹이면서 ‘가난하다는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일컫거나 빗대곤 합니다.

 디제이디오시 노래 〈삐걱삐걱〉을 들으면 “몇 십 억이 애들 껌값인가요. 그중에 백만 원만 우리 줄 생각 없나요”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가난이 어쩌느니 저쩌느니 하기 앞서 돈이 있는 이들이 당신들 수십 수백 수천 억 원에서 백만 원을 덜어 나누어 주면 될 노릇입니다. 보증금 30만 원 달삯 6만 5천 원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장기방 여인숙에서 보증금 없이 15만 원에 살아가는 이들한테는 한 해 백만 원이라는 돈만 하여도 아주 어마어마합니다. 도시미화이니 관광개발이니 하면서 도심지에서 바닥돌을 갈고 무엇무엇을 하느라 수십 수백 억 원을 아주 껌값처럼 쓰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 달삯을 얼마쯤 보태어 준다면 도시는 저절로 깨끗해지며 도시에서 가 볼 만한 곳은 자연스레 늘어납니다.

 그나저나, 사람들은 도시에서 왜 아파트를 사진감으로 삼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같은 아파트일지라도 5층짜리 옛날 아파트는 아파트로 치지 않는데다가 꾀죄죄하다고 보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아파트숲 사람들이라고 해서 ‘살가운 이야기’가 없을 턱이 없는데, 왜 아파트숲에서 조곤조곤 올망졸망 오순도순 살 섞고 부대끼는 이야기를 엮어내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당신들 삶자리에서는 사진과 글과 그림을 엮어내지 못하면서, 마치 인도 순례를 하고 티벳 순례를 하듯이 ‘가난한 사람들 골목동네’로 출사나 취재를 나오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저마다 살고 있는 터전을 아끼고 사랑할 노릇인데, 시설 좋고 문화마당 많다는 아파트와 도심지 한복판에서 굳이 도시 변두리 골목길로 다리품을 팔면서 취재를 다니고 출사를 나오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산이 좋으면 산에서 살면 될 텐데, 산에서 안 살면서 산으로 자가용을 몰고 찾아가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사랑스러운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연이나 전원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껴 자연이나 전원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다면, 아파트에서 살 노릇이 아니라 자연이나 전원에서 살 노릇입니다. 자연이나 전원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이나 전원을 사진으로 담을 노릇입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사진이 태어날 테니까요. 제주 오름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김영갑 님이 스스로 제주 오름으로 녹아들면서 이곳에서 살아내는 가운데 사진을 담았듯이 말입니다.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준다든지 골목동네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나눈다든지 골목동네 터전을 그림으로 그려 펼친다든지 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썩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골목동네 사람(정주민)이 아닌 구경꾼(관광객)처럼 어쩌다 한두 번 찾아와 한두 시간 후다닥 사진 찍고 낼름 내빼기 때문입니다. 자연 사진을 찍더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스란히 담는 한편,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을 고루 담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나 살림집인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자고 한다면, 이때에도 마땅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스란히 담는 한편,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을 골고루 담아야 합니다. 맑은 날 흐린 날 비오는 날 눈오는 날 안개 낀 날을 찬찬히 담아야 합니다. 안개 서린 소나무숲만 그윽하겠습니까. 바다안개 낀 인천골목길 또한 그윽합니다.

 스튜디오에서 만듦사진을 일구거나 모델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네들 사진쟁이 살림살이하고 스튜디오 얼거리하고 한동아리입니다. 스스로 만듦사진이나 모델사진 얼거리와 같은 삶을 꾸립니다. 다큐사진을 한다고 말하려면 스스로 다큐사진 주제가 되는 터전에서 이곳 사람들하고 복닥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나오는 사진이고, 살아가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며, 살아가는 그대로 보여주거나 나누는 사진입니다.

 가난한 사람 살림집을 사진으로 담고자 한다면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어야 하고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한 살림집을 얻어 가난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게 일하면서 가난하게 나누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이 아니라, 땅에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찍는 다큐사진입니다. 먼발치에서 망원렌즈로 훔쳐보는 사진이 아니라, 곁에서 손 마주잡으면서 담는 다큐사진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살아가는 모양새가 고스란히 스며드는 다큐사진입니다. 같이 일하고 같이 놀면서 어우러지는 결이 꾸밈없이 녹아드는 다큐사진입니다.


 (2) 노익상 님과 다큐사진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


 다큐멘터리 사진쟁이로 일하는 노익상 님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읽었습니다. 책 머리말에서 노익상 님은 “물론 이런 집들에 대한 연구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큰 회사의 도움을 받아 낸 《한국의 주거 민속지》나 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로 조사한 민가의 기초조사들이 있다. 이 책들은 편중된 연구와 발표에서 그나마 가뭄에 단비처럼 여겨지는 귀한 연구서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돌려 읽으며 무릎을 치고 감동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렵고 학술적이었다. 우리 이웃들에게 섞여 들어가 가난한 이들의 안타까웠던 현실을 함께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게 아쉬움이었다(8쪽).”고 밝힙니다. 가난한 사람들 눈높이에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길어올리는 사람들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썼다고 합니다.

 노익상 님 말마따나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느 살림집을 학문으로 다룬 책은 몹시 드뭅니다. 나라나 기관이나 큰 회사에서 돈을 받아 학술논문을 내는 일은 더러 있기는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요모조모 깊이 살피고 어깨동무하며 ‘이웃사촌’으로서 이야기를 엮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살림동네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당신 삶을 알알이 담아내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 이는 밀쳐내고, 가르며, 하대를 일삼았던 오래된 상처였다. 쌀밥이 아닌 조 따위로 제사상을 차리는 ‘천한 것’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었다는 말에 이르러선, 금수강산 맑은 물이 새롭게 보이던 순간이었다. (농악은) 쌀밥 농사에서만 가능한 놀이였고 잔치였던 셈이었다. 조나 수수로 부꾸미는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백설기, 송편과 같은 떡을 만들지 못하는 물리적 한계는 이를 준엄히 증명해 주었다. 그래서 전통마을에서 치루는 세시행사는 밭농사를 중심에 두고 벌이는 게 아니라, 바로 논농사를 맘에 두고 즐기는 전통마을만의, 그 공동체에 순응하는 사람들만의 주류 행사였음을 그들을 만나 가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  (74쪽)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책은 사진쟁이 노익상 님이 만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러나 노익상 님이 만난 사람들 살림집 이야기를 담았다기보다는 노익상 님 스스로 살아내지 못했으며 살아갈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다가 마주해 본 적이 없던 삶자락을 귀동냥으로 얻어들으면서 엮은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노익상 님은 틀림없이 가난한 살림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고 여러 날 함께 어울리면서 바야흐로 깨닫거나 ‘처음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한 살림집에서 마주하기 앞서까지는 이들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는지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세 번 네 번 잇달아 들은 끝에 아주 조금씩 알아듣습니다.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지나며 세 해 네 해가 흐른 끝에 비로소 살짝 알아차립니다.

 책을 읽는 동안 자꾸 끊깁니다. 내처 읽지 못하고 자주 덮습니다. 노익상 님은 나라안에 손꼽히는 빼어난 다큐멘터리 사진쟁이입니다만, 이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 하나는 덜 여물었고 덜 무르익었으며 덜 고개숙였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만큼,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적바림하는데다가 때로는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노익상 님 또한 어쩔 수 없는 구경하는 사진쟁이일까요. 노익상 님한테 길손이나 사진손 같은 자리가 아닌 동네이웃이나 마을이웃 같은 자리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 교과서에 실린 이름 자체도 철수야! 영희야! 하고 부르며 논다는 사실이, 산간의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아이들에겐 제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논리밖에는 되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이기도 했다. 더욱이 당시 외딴집이나 화전촌의 아이들에겐 ‘논다’는 말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을 만큼, 제 아비어미를 도와야 겨우 호구를 지탱하는 절박한 노동의 현실이었음을 감안할 때, ‘철수야 영희야’는 이러나저러나 아이들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아픈 바늘 끝이었던 것이다 ..  (126쪽)


 저는 중학생이 되어 신문을 읽기 앞서까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그토록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인 줄 몰랐습니다. 중학생 세 해를 거치고 고등학생 세 해를 거치는 동안 제 동무들 살림동네가 나라안에서 손꼽히도록 밑바닥 살림동네인 줄 몰랐습니다. 다른 도시 사람들이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을 그토록 가난뱅이 동네로 바라보는 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처음 알았고, 인천사람 스스로 인천 골목동네를 제대로 모를 뿐더러, 인천 바깥사람은 인천 골목동네를 가엾고 딱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다닌 ㅅ국민학교는 이웃한 ㅅ국민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이 몰린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두 ㅅ국민학교이지만 학급 숫자이며 살아가는 집이며 아이들 부모 신분이며 하늘땅처럼 벌어져 있었습니다.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만석부두와 화수부두 품팔이 일꾼들 살림집이 ‘게딱지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습니다.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은 모두 아는 동일방직이라는 공장은 인천 만석동에 있습니다. 여공한테 똥물을 뒤집어씌운 자리는 골목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입니다. 여공들은 저한테 동네 누나이거나 이모이거나 고모인 분들이요, 제 동무한테도 동네 누나이거나 이모이거나 고모인 분들입니다. 불쌍하게 바라본다면 하염없이 불쌍할 테지만, 동네사람으로서 바라보기에는 불쌍하고 아니고가 아닌 그예 좋은 동무이고 이웃이고 누나이고 어머니이고 아주머니인 사람들입니다.


.. 만석동 막살이촌이나 여인숙 고을을 다녀 보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하나같이 그 집과 방들은 어른이나 가족이 들어가 살았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들 장난감 집처럼 오밀조밀 작고, 심지어 앙증맞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그림을 보면서도 아이들이 저 집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논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볕이 들지 않아 꿉꿉하기만 한 좁고 어두운 골목길은, 아이들에겐 호기심 많은 미로로 비치기에 충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당장 편을 갈라 숨바꼭질하기에 좋고, 작고 여린 몸을 숨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특히 그림에서처럼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운신할 만큼 낮은 다락방을 보면 나는 벌써 가슴이 뛴다. 거기에 숨어 들어가 제 새가슴을 한껏 부풀리며 재미지게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막살이집들이 현실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었으면 그이들이 처음 정착하여 일터로 나갔던 엄혹한 살림집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  (262쪽)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여러모로 반갑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습니다. 가난이라는 잣대가 무엇일까 궁금했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가난하면 못사는 살림인가 궁금했고 걱정스러웠으며, 가난하지 않으면서 슬프고 괴로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살림집을 바라보는 눈매가 ‘가난인가 아닌가’이니 두려웠습니다. 그저 ‘여느 살림집’이요 ‘이웃 살림집’이며 ‘도시 골목 살림집’이나 ‘시골 고샅 살림집’으로 바라보면 넉넉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느 살림집”이라 하거나 “살림집”이라고만 해도 넉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골목동네 살림집이든 이웃사람 살아가는 골목동네 살림집이든 누구네가 더 가난하거나 더 가멸차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마당 넓고 돈 많은 집이 있고, 설핏 보아도 루핑에 차바퀴를 얹어 비가림을 하는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 살아가는 동네사람이고 동네이웃이며 골목사람이고 골목이웃입니다. 한결같은 이웃이고 똑같이 고운 목숨 꾸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두 해에 뚝딱 하고 해치우듯 엮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 아니라 한다면 이와 같은 대목을 곰곰이 살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살림집 사진들은 거의 모두 ‘추운 겨울 추운 모습’인데, 가난한 이 살림집이든 가멸찬 이 살림집이든 이 땅에 찾아드는 철과 날씨에 따라 다 다른 살림새를 고이 담을 수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더욱이 만석동 쪽방골목에 나무 한 그루 없다는 대목에서는 쓴웃음이 납니다. 만석동 쪽방골목에 참말 나무 한 그루 없는지요? 이곳 골목이웃이 가꾸는 꽃그릇에서 피어나는 꽃과 푸성귀는 그토록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지요? 바깥 구경꾼 눈에는 ‘처연’하거나 ‘병약’할는지 몰라도, 이 동네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푸른나무’요 ‘푸른잎’입니다.


.. 또 다른 그림은 가까이에 헐벗은 나무가 서 있고 그 뒤로 막살이집들이 그려져 있다. 잎 진 앙상한 나무는 묘하게 뒤편 집들과 어울리며 그래도 살아 있음을 처연히 내세우고 있다. 만석동에 그런 나무는 없었지만 벽에 그린 꽃과 나무는 여럿 보았다. 강한 원색 페인트로 그려 넣거나, 미장으로 마감한 담벼락에 쇠못으로 긁어 그린 것이었다. 추레하고 볼품없는 바탕에 빼어난 선과 점으로 이어나간 그림은, 어느새 큰 면이 되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 인천 만석동이나 서울 거여동 막살이촌을 다닐 때만 해도 관목으로 피는 꽃나무를 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때는 추운 겨울이어서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 하나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의 병약해 보였던 화초들과는 분명 다른 것이어서 우선 반가웠다 ..  (272, 283쪽)


 외주물집이든 미관주택이든 막살이집이든 하고 살림집 갈래를 나누는 뜻과 값이 없지 않습니다. 학자님들이 알뜰살뜰 나누어 놓지 못하는 살림집 갈래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올바로 갈무리하는 일이란 무척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당신들 살림집을 이렇게 외주물집이라느니 미관주택이라느니 막살이집이라느니 하고 나눌는지요? 가난한 살림집 식구들 눈높이에서도 이렇게 나누는 살림집 갈래가 올바르다고 할 만하지요? ‘my sweet room’이라는 글씨를 떠서 커텐으로 삼기도 하는 골목사람들 막살이집이라면 그저 가난한 살림집이라는 틀에 뭉뚱그리거나 때려넣어도 괜찮은지요?


.. 하지만 철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도록 이 땅에서 살며 사랑한 이들에게 그것은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일 수 있으나, 가까운 일본이나 서구로 유학을 하거나 한 번이라도 구경을 해 본 이들에게 그것은 제법 성가신 풍경으로 비칠 수 있는 미개하고 낙후된 모습이었다 … 아이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기고 도심 속 문화와 생활로 섞여 드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비쳐진 일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도심에 살면서도 결코 합류할 수 없는 주변부적 삶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남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시민아파트는 체념 어린 미래가 익숙하게 녹아 있는 공간에 다름 아니었다. 이 또한 시민아파트가 지닌 본질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었는데, 우리 근현대사의 적나라한 자화상이었던 체념이, 가난한 이의 살림집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은 없었다 ..  (290, 356쪽)


 날이면 날마다 시끄러운 기차와 전철 소리를 듣고 컸어도 우리들한테는 평화로운 터전이었고 보금자리였습니다. 공장에서 매연과 석탄가루와 쇳가루 따위가 끝없이 날려 빨래를 못 널게 할지라도 우리들한테는 좋은 삶터였고 둥지였습니다. 그 좁다는 골목길에서 공차기를 하고 공치기를 했습니다. 야구방망이 없어도 부러진 각목을 주워서 방망이로 삼고, 철길가 돌멩이로 공을 삼았습니다. 굴러다니는 우유곽에 돌 하나 넣어 공으로 여기며 공차기를 했고, 갖가지 돌치기와 돌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아름답거나 싱그러운 지난날이거나 오늘날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날은 지난날대로 아픔이 있는 가운데 기쁨이 있고,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웃음이 있는 가운데 울음이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는 빛과 그늘이 함께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터에는 웃음과 눈물이 나란히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동네에는 생채기와 주름살이 아롱져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한테는 우리 삶이고 우리 발자국이요 우리 이야기입니다. 집에 따로 뒷간이 없어 주인집 눈치를 보며 똥오줌을 누는 삯집 사람들 이야기가 있고, 주인집에조차 뒷간이 없고 동네에 공동뒷간이 있을 뿐이라 줄을 서서 아랫배를 누르며 견디어야 하는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가멸찬 이하고 같은 시간을 일해도 같은 일삯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가멸찬 이와 견주어 더 오래 힘겨이 일해도 훨씬 적은 일삯을 가까스로 받으며 목숨을 잇고 살림을 꾸리며 딸아들을 보듬었습니다. 이런 살림살이가 막살이집이든 외주물집이든 미관주택이든 무엇이든, 저마다 사랑스럽고 애틋하며 믿음직하고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아무쪼록 노익상 님 다음번 다큐사진에서는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와 여느 이야기를 여느 자리에서 좀더 여느 사람다운 목소리와 결과 높낮이로 수수하게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막살이집 식구들이 제 살림집과 살림동네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어느 때에 담을까를 한번 곰곰이 헤아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4343.4.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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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진의 희망 분투기 - 중동, 브라질, 아프리카, 그리고 세상의 끝
정은진 지음 / 홍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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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사진가란 아름다움을 담는 이야기꾼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5] 정은진, 《정은진의 희망분투기》



- 책이름 : 정은진의 희망분투기
- 글ㆍ사진 : 정은진
- 펴낸곳 : 홍시 (2010.3.24.)
- 책값 : 12800원


 (1) 아름다움을 찍는 사진


 어디를 다니든 늘 사진기를 갖고 다닙니다. 아이를 안고 마실을 다니든 동네 구멍가게에 보리술 한 병을 사러 다녀오든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갖고 다닙니다. 어제는 옆지기와 아이와 저 세 식구가 충주 무너미마을로 나들이를 왔습니다. 여러 해 만에 모처럼 찾아온 이곳에 있는 자그마한 학교 밥집에서는 사진기를 놓고 밥술을 뜹니다. 밥먹는 자리에는 우리 아이한테 오빠와 언니뻘 놀이동무가 북적입니다. 아이는 밥먹을 생각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바람이 납니다. 무너미마을 할아버지가 밥집에 있는 건반을 두들깁니다. 아이는 노래소리 나오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 뒷짐을 지고 구경합니다. 건반 앞 걸상에 앉아 한손으로 건반 누르기를 하는데, 한두 번씩 건반을 누르고는 다시 뒷짐을 집니다. 이 녀석 참 귀여운 짓을 하네 하고 생각하다가는 사진기를 밥집으로 들고 오지 않았다고 깨닫습니다. 여기에서는 따로 사진 찍을 일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제가 제 사진감으로 헌책방과 골목길을 찍기도 하지만, 우리 딸아이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찍고 있음을 헤아렸다면 밥집으로 들어올 때에도 사진기를 목에 걸었어야 할 노릇입니다. 아이가 이렇게 두 손 곱다시 뒷짐을 지고 있다가 한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노는 모습을 다시 또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아이하고 내내 붙어서 살아가는 만큼, 오늘 아침이 되든 앞으로 또 언제가 되든 오늘과 같은 모습을 새삼스레 마주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엊저녁에 마주한 이 놀랍도록 귀여운 모습은 바로 엊저녁 이때에만 마주하는 느낌과 시간이기 때문에 나중에 찍더라도 이날 느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아마 이제부터는 이와 비슷한 모습을 두 번 다시 놓치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사진쟁이로서는 더없이 바보짓을 했습니다. 바보짓을 했다고 배웁니다. 속이 쓰리도록 배웁니다. 사진쟁이한테는 기회가 두 번 찾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사진쟁이한테는 언제나 한 번 기회만 있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곳을 찍는다 하여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고, 오늘 가운데에서도 아침과 낮과 저녁이 다릅니다. 똑같은 모습이란 한 장조차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만듦사진이라면 빛이며 장비이며 똑같이 해 둔 채 단추만 누르도록 마련해 놓았다면 똑같은 모습을 찍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처럼 만듦사진이 아닌 삶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똑같은 모습이란 두 번 다시 없을 뿐 아니라, 똑같은 모습을 찍을 일이 없어요. 언제나 다 다른 모습을 저마다 다른 깊이와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찍는 사진만 있습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를 담는 예술이라고 일컫습니다. 한자말로는 ‘순간’이나 ‘찰나’를 찍는다는 소리인데, 우리 말로는 ‘어느 한때’를 담는 사진입니다. 점과 점을 찍으면서 점과 점을 이어 주는 이야기를 엮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한 장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진이라 할 때에는 한 장으로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북극성처럼 움직이지 않는 큼직한 사진 한 장으로 우리 가슴을 크게 울리며 촉촉히 적실 수 있는 한편, 숱한 별자리처럼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빛깔로 모두 다른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어지는 사진이 참된 길을 걷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사진 낱낱은 별자리 하나를 이루는 별 낱낱과 같고, 이렇게 하여 별자리 하나를 이룰 만한 사진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별자리를 이루는 무리별처럼 무리사진이 하나 나오고, 이러한 무리별로 밤하늘 가득 아름다이 빛나는 별들이 되듯, 무리사진이 우리 삶터 가득 아름다이 빛나는 사진들이 된다고 느낍니다. 떨어진 듯하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고, 모조리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 조금씩 떨어진 채 가로놓여 있다고 할까요.

 이 사진 하나는 이 사진 하나대로 이야기가 있는 한편, 다른 사진 하나로 이어지는 징검돌 노릇을 합니다. 징검다리는 숱한 징검돌이 알맞게 어우러지면서 다리 노릇을 하는데, 이렇게 다리 노릇을 하면서도 물살 흐름을 막거나 거스르지 않습니다. 징검돌은 촘촘하게 놓아서는 안 되지만 너무 성기게 놓아도 안 됩니다. 꼭 알맞춤한 숫자로 놓되 물살이 끊이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하고, 물살이 거세어질 때에는 휩쓸리지 않게끔 단단히 놓아야 합니다.

 징검돌 노릇을 하는 사진이란 사람들이 발을 디딜 때에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튼튼해야 합니다. 이는 곧, 사진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어 보더라도 이 사진 하나로 내 가슴이 뭉클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하나가 다른 사진 하나로 넘어가도록 이어주는 노릇을 못하거나 안 한다면 큰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서로서로 이어 주되 서로서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 사진이거든요. 또한, 사진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이 사진에 얽매이지 않도록 우리 눈과 머리와 마음을 놓아 주어야 합니다. 징검돌 사이를 물살이 제 결대로 고이 흐르듯, 사진을 보고 가슴이 움직이고 머리가 맑아지는 우리들은 ‘사진을 다 보고 뒤돌아섰을 때’에 저마다 살아갈 자리에서 새로운 마음과 넋과 매무새가 되어 새로운 사람으로서 새로운 일과 놀이를 한결 튼튼하고 힘차고 맑고 아름다이 펼치도록 돕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사진들은 하나하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면서도 아무것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엊그제까지는 허구헌날 골목길만 걷다가 모처럼 산길을 걷고 고샅길을 걸었습니다. 산길과 고샅길을 걷는 동안 제가 요 몇 해 사이에 걷던 골목길이란 다름아닌 산길과 고샅길을 닮은 도시 한켠이었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어린 나날 달리고 뛰고 놀고 먹고자고 어울리던 동네와 길이란 바로 도시에 깃든 산길과 고샅길이라 할 만한 골목길이었구나 하고 비로소 느낍니다. 비록 흙이 아닌 시멘트였다 할지라도, 비록 돌이 아닌 아스팔트였다 할지라도, 도시 골목길에는 도시라는 갑갑한 잿빛 터전에 푸른빛 숨결을 불어넣고픈 고즈넉한 손때가 배어 있달까요. 모든 도시 골목길에 푸른빛 숨결이 깃들지는 않습니다만, 자동차하고 멀어지거나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샛골목이 될수록 골목사람은 푸른사람을 닮아 가고 골목길은 푸른길을 닮아 가며 골목꽃은 푸른꽃 푸른잎을 닮아 가는구나 싶습니다.

 삶이란 우리가 깃든 어느 자리에나 고루 있되, 삶이 맑고 밝게 깃드는 자리라 한다면 우리 목숨을 살리는 흐름을 붙잡고 있고, 우리 목숨을 살리는 흐름이란 밥을 낳는 흐름이요, 밥을 낳는 흐름은 논밭과 산바다가 있는 터전이며, 이러한 터전이 어떤 기운을 끌어안고 있는가를 느끼면서 살며시 이어지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싱그러운 사랑이 꽃피어 납니다.

 사랑은 참사랑일 노릇임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참사람일 노릇임을 새삼 헤아립니다. 사진은 참사진일 노릇임을 거듭 돌아봅니다. 참사랑이랑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참사람이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참사진이란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내가 누구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랑하든 참사랑일 노릇이고,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놀이를 어떻게 즐기든 참사람일 노릇이며, 내가 어떤 갈래로 어떤 이야기 사진을 엮는다 하더라도 참사진일 노릇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진으로 걸어갈 노릇입니다. 






 (2) 보도사진가가 찍는 사진


..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을 취재할 때, 모든 취재원들에게 허락을 얻어내기도 힘들고, 특히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리를 찍는다고 우리 삶에 무슨 변화가 온다고 그러죠? 그동안 수많은 기자들이 다녔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아프간 경찰관의 지인, 카불의 정신병원 원장,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빌라 미모사’라고 알려진 창녀촌, 그리고 아프리카 민주콩고의 성폭력 피해자 병동 …… 이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불평을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가? 나는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내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차라리 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는가? … 이제는 내 사진 한 장이 세상을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허황된 꿈은 갖지 않기로 했다 ..  (12, 15쪽)


 《정은진의 희망분투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바깥에서 보도사진을 취재하고 담아내는 일을 하는 정은진 님이 중동과 브라질과 아프리카 땅을 밟으면서 만난 사람과 삶터와 아픔을 글과 사진으로 묶은 책입니다. 빛깔이 저마다 다른 세 곳인데, 이 세 곳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거의 흰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곳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아픔이 생기는 까닭은 바로 흰둥이 때문입니다. 흰둥이들은 온누리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돈벌이를 하고자 토박이를 끝없이 끔찍하게 죽였을 뿐 아니라 노예로 부렸고 내전을 부추기는 한편, 이와 같은 다툼과 아픔을 보도사진으로 담는 일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병 주고 약 주고는 아닙니다만, 북 치고 장구 치고 또한 아닙니다만, 온누리를 흰둥이들이 망가뜨리면서 또다른 흰둥이들이 망가지고 있는 온누리를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리며 글로 씁니다.

 정은진 님은 바로 이 흰둥이 판에 뛰어든 누렁둥이입니다. 흰둥이들 스스로 온누리를 평화롭고 사랑스레 보듬기를 바라지 않는 마당에 끼어든 누렁둥이입니다. 세계 보도사진가 가운데 한국사람 같은 누렁둥이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 일본 누렁둥이 사진작가는 꽤 많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보도사진가를 살피면 미국사람 다음으로 일본사람이 가장 많이 죽었는데, 일본 누렁둥이 보도사진가는 온누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흰둥이 눈길과 다른’ 보도사진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자, 그렇다면 한국 누렁둥이 정은진 님은 어떤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넋으로 ‘흰둥이가 벌여 놓은 싸움판’에서 사진으로 보도기사를 쓰는 취재기자 노릇을 하고 있을까요. 부질없는 꿈을 꾸며 마음앓이를 했다가 부질없는 꿈은 내려놓기로 했다는 정은진 님은 무슨 사진으로 당신이 마주하고 부대낀 ‘이웃사람 삶’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 어느 날 저녁 맷이 바에서 나를 조용히 불러 이런 얘기를 했다. “진, 다 좋은데……. 사진기자 조끼는 좀 입지 말지 그래? 너무 깨.” 그때 나는 뉴욕의 B+H라는 사진 기자개 가게에서 산, 엄청나게 크고 주머니가 수십 개 달린 카키색 사진기자용 조끼를 입고 있었다 … 아일랜드식 영어를 구사하는 앤드류는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에 삐쩍 마른 편이었다. 그는 2008년 콩고에서 취재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하룻밤에 미화 10달러를 내는, 아주 허름한 ‘슈슈’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난민촌에는 매일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가 혼자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같이 촬영하니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한다 ..  (38, 201, 202쪽)


 《카불의 사진사》(동아일보사,2008)와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2008)를 내놓은 정은진 님 세 번째 보고서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홍시,2010)는 지난 두 차례 보고서를 쓴 뒤 당신이 밟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돌아보는 뒷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정은진 님은 이번 보고서에서 지난 두 차례 보고서 때와 견줄 수 없이 ‘아픔 서린 땅’에 비자와 취재허가를 얻어 들어가는 일이 몹시 힘들고 바가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었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한두 해가 아닌 여러 해에 걸쳐 ‘아픔 서린 땅’에 취재를 갔다는 정은진 님임에도 아직까지 “뉴욕의 B+H라는 사진 기자개 가게에서 산 …… 사진기자용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다른 동료가 이를 일깨울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마 지난 두 차례 보고서를 내놓는 동안에도 이런 차림새였을까요. 설마 보도사진을 배우고 취재기자로 뛰는 몸이었음에도 이런 몸차림으로 ‘아픔 서린 땅’ 사람을 마주할 마음이었을까요. ‘아픔 서린 땅’에 멀디먼 구경꾼으로 찾아가는 ‘아픔 서린 땅을 만든 흰둥이’하고 똑같은 매무새로 찾아가고 있었을까요.

 그러고 보면,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라는 책을 읽으니 ‘아픔 서린 땅’에서 정은진(Jean Chung) 님을 마주한 토박이들은 정은진 님을 가리켜 ‘흰둥이(백인)’라고 부릅니다. 정은진 님은 흰둥이 아닌 누렁둥이요, 미국사람 아닌 한국사람일 텐데,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토박이한테 당신들 이웃으로 찾아오거나 당신들 동무로 다가서는 사람으로는 잘 비치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 밝히기도 하지만, 정은진 님은 조금도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보여주나,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즐기는 사진이란 훌륭한 사진을 바라지 않고, 더군다나 ‘작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즐기’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껍데기마저 훌훌 벗어 놓습니다. 그저 옆지기나 동무로서 ‘아픔 서린 땅’에 발을 디딥니다. 아니, 온몸과 온마음을 담급니다. 스스로 ‘아픔 서린 땅’ 사람이 되어 아픔을 듬뿍 맛봅니다. 정은진 님은 ‘남자 보도사진가’가 되어야 ‘한 달 동안 목욕도 안 하면서’ 취재를 잘할 수 있구나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하는데(책 곳곳에 이 이야기가 되풀이됩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이 당신들 몸을 얼마나 자주 씻고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주 씻거나 못 씻거나에 마음을 쓸 겨를이 있다면, ‘아픔 서린 땅’ 사람들 삶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하나로 묶을 수 있어야 합니다. 씻기 힘들거나 씻지 못할 뿐 아니라 마실물조차 모자란 곳에서 무슨 사치를 바라는지요.


.. 나는 그들에게 6년 전 촬영한 사진과 한국에서 모은 성금 중 일부를 기부하러 왔지만, 모슬렘 가정에서 용건만 전하고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슬람 교도들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기 때문에 집을 찾은 이에게 꼭 차를 대접하고, 자신들의 먹을 것 중 일부를 나누어 준다. 아무리 피난민 가정이라도 초콜릿과 사탕은 꼭 내주는 법이며,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아야 예의다 ..  (61쪽)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성금을 나누어 줍니다. 그렇지만 성금을 받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이 돌려주는 예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예의라고 적어 놓았으나 예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몇 해에 한 번 목돈 들고 찾아와 비행기에서 구호물자 툭툭 떨어뜨리고 가듯 돈다발을 안겨 주는 산타클로스? 사진 찍혀 주는 대가로 성금을 받아드는 취재원?

 “용건만 전한다”는 말이란 더없이 무섭습니다.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아픔 서린 땅’에 무슨 용건만 남기려 하는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성금 몇 푼이 더없이 도움이 되기도 할 터이나 몇몇 집에만 도움이 되지 모든 ‘아픔 서린 땅’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도움이란 세상을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진을 일구는 길이 아닙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과 나눌 사랑과 손길이 성금으로만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를 정은진 님 스스로 헤아려야 하며, 당신이 찍는 사진이 ‘아픔 서린 땅’ 사람들과 삶터를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지는 않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 프레드도 이 파벨라에 처음 와 보기 때문에 주택 앞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여성에게 길을 물어 보았다. 그녀는 파벨라에서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갑자기 검지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보지 마세요.” … 인터뷰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허시냐 빈곤 지역을 통과했다. 다음날 찾아야 할 곳이었다. 석양의 파벨라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마약 밀매와 갱단이라는 어두운 그늘 말고도 결핵이라는 치염적인 적이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었다 …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못한다니. 히타는 우리를 안전하다는 어느 주차 공간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주차장 주인의 허락을 받아 주차장 내부가 아닌 바깥쪽에 보이는 파벨라 전경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 해가 질 무렵, 파벨라의 집에 켜진 전깃불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다. ‘이곳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곳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하다니 너무 안타까워.’ ..  (124, 126, 129, 137쪽)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라는 책에는 정은진 님이 밟은 ‘아픔 서린 땅’에 어떤 아픔이 얼마만큼 있는가를 3/4쯤에 걸쳐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아픔이 왜 생기고 어떻게 생기며 언제부터 생겼으며 누가 생기도록 이끌었는지는 한 줄로도 적어 놓지 못합니다. 뿌리를 캐지 않고 잎사귀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뿌리에 난 혹은 파 보지 않으며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지는 모습만 붙잡고 있습니다.

 보도사진이란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말라비틀어진 잎사귀’ 모양새 그대로만 담는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라비틀어진 잎사귀 모양새 그대로 사진으로 찍으면서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진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보도사진입니다. 뿌리없는 생각 뿌리없는 삶 뿌리없는 사진으로는 이름으로 내세울 ‘포토저널리스트’는 될는지 몰라도, 참다운 ‘보도사진가’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참말 아름다운 곳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하는 까닭은 갖가지 통제와 금지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은진 님 스스로 ‘아픔 서린 땅’에 ‘아픔을 먹고사는 사람’으로 녹아들지 못한 탓입니다.


.. “이 아이들은 엄마들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에 괜찮지만 다른 아이들은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에 부모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학교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해요. 지금 내 말을 안 듣고 학교로 가서 꼭 취재를 해야 한다면 당신과 나는 이제 끝입니다. 나는 당신을 파벨라로 데리고 들어왔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람들은 나에게 책임을 돌릴 거예요. 여기에는 당신 말고도 여러 사람이 와서 취재를 하고 가지만 항상 몰래 촬영을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리기도 해요. 당신은 이곳이 얼마나 심각한 곳인지 잘 몰라요. 여기는 내전 지역이라고요. 학교는 못 갑니다. 나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어요.” 세상에 이렇게 취재하기가 힘들다니. 게리 나이트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안 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 그러나 그건 게리 나이트고 나는 나 아니겠는가. 이곳은 빈민촌이고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간단한 카포에이라 취재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히타에게 불평을 할 수도 있었다 ..  (176∼177쪽)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를 읽으며 정은진 님이 몸으로 부대끼며 깨달은 앎보다는, 정은진 님이 취재하도록 도운 ‘아픔 서린 땅’ 토박이 입에서 나온 목소리하고 동료 보도사진가가 들려준 목소리에서 ‘무언가 깨달은 이야기’를 엿봅니다. 정은진 님은 희망을 찾고자 애써 싸웠다며 세 번째 보고서를 내놓습니다만, 정은진 님이 찾으려던 희망이란 ‘정은진 님 당신이 사진을 왜 찍어야 할까’ 하는 희망이지, ‘아픔 서린 땅 사람 스스로 희망을 찾는 길에 정은진 님이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서 희망을 들여다볼까’ 하는 희망이 아닙니다.

 어느 분은 굳이 중동이니 브라질이니 아프리카이니를 찾아가지 않아도 나라안에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감이 가득 있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나라안에 사진감이 많다 하더라도 나라밖에 나가지 않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나라안에는 나라안대로 이야기가 있고, 나라밖에는 나라밖대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라밖에서만 살아간다면 나라밖 이야기에만 눈을 두고 삶을 맞출 터이나, 나라안에서 나라밖을 찾아다닌다면 나라 안팎 이야기를 골고루 눈을 두며 삶을 맞추면 됩니다. 정은진 님으로서는 한국에서 중동을 보듯 중동에서 한국을 볼 수 있고, 한국에서 브라질을 보듯 브라질에서 브라질을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 아프리카를 보듯 한국에서 한국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은진 님 보도사진과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에서 몹시 모자라거나 텅 빈 대목이라 한다면, 세상을 보는 눈길과 눈높이와 눈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희망인 사람이 나라안에 있을 때에는, 나라안 희망이 둘레 어디에나 희망을 나누며 희망을 담고 희망을 어깨동무합니다. 정은진 님 스스로 당신 삶을 희망으로 어루만지고 있으면, 애써 나라밖으로 나가는 때마다 희망을 찾고 나누고 선물받을 수 있는 한편 나라안 어디에서나 희망으로 넘실거릴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기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인 ‘보도사진가가 되는 곧고 착하고 슬기롭고 맑은 매무새’를 기를 수 있다면, 훌륭한 사진을 찍든 못 찍든 대수롭지 않으며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사진 한 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착한 보도사진가로서 당신 길을 씩씩하게 걸으면, 맨몸뚱이로도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당신 둘레 사람들을 착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보도사진가로서 당신 삶을 곱게 다스린다면, 후줄근한 똑딱이 하나로도 이 땅 어느 자리에서나 당신 곁 사람들을 아름다이 얼싸안을 수 있습니다.

 보도사진가란 아름다움을 담는 이야기꾼입니다. 네 번째 보고서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아무쪼록 참다운 보도사진가 길하고 참다운 아름다움에다가 참다운 이야기를 낮은자리에서 고개숙이며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돌아보면서 손수 일구고 손마디에 꾸덕살을 박으며 땀을 흘리시면 좋겠습니다. (4343.4.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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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사랑한 사진 - 마이 러브 아트 3
김석원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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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사랑하는 사진 이야기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3] 김석원, 《영화가 사랑한 사진》



- 책이름 : 영화가 사랑한 사진
- 글 : 김석원
- 펴낸곳 : 아트북스 (2005.11.5.)
- 책값 : 15000원



 (1) 사진을 이야기하기


 뭇 사진쟁이들이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면서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를 읽어내는 삶이 바로 ‘사진책 읽기’ 또는 ‘사진읽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읽기라면 책 하나에 담은 줄거리만을 헤아리는 일이 아니라, 책 하나를 써낸 사람과 엮은 사람 들이 당신들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당신들 삶을 어떻게 담아냈느냐를 읽어내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림읽기에서도 매한가지이고 노래읽기와 영화읽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줄거리나 소재나 주제를 헤아리거나 알아차리기도 해야겠지만, 이에 앞서 예술쟁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껴안았는가를 먼저 가슴으로 느끼야지 싶습니다. 가슴으로 느끼자고 하는 사진이요 책이요 노래요 영화이지, 머리속에 지식쌓기를 하자는 사진이거나 책이거나 노래이거나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사진읽기를 다룬 글을 읽다 보면,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이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 앞에 내보이기까지 얼마나 웃고 울며 기쁘고 슬펐는가’를 느끼는 가슴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날선 이론과 딱딱한 논리로 비평과 평론을 할 뿐입니다. 따순 손길과 넉넉한 눈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어느 갈래보다 사진읽기가 메말랐다고 느끼는데, 곰곰이 헤아려 보면 책읽기를 다룬 글이나 노래읽기를 다룬 글이나 영화읽기를 다룬 글에서도 이런 딱딱함과 메마름은 엇비슷합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아닌 학문을 쌓고 이름값을 올리는 비평과 평론이 되기 때문인가 싶으나, 다름아닌 문화요 예술을 함께하자는 사진이거나 책이거나 노래이거나 영화임을 떠올린다면 퍽 슬픕니다.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오고 아무아무 스승한테서 배웠으며 나라밖 어디를 다녔고 하는 발자취로는 사진쟁이 삶을 읽을 수 없습니다. 소재가 어떻고 주제는 무엇을 다루려 했다는 지식조각으로는 사진쟁이 마음을 껴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 눈앞에 마주한 사진 한 장으로 사진읽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 손에 쥐어든 사진책을 차근차근 넘기면서 사진읽기를 해야 합니다.


.. 사진은 결코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진이란 도구를 통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될 수도 있다 ..  (6쪽)


 어제 서울마실을 하면서 사진잡지를 내는 포토넷 출판사에 살짝 들렀습니다. 이곳 일꾼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포토넷 출판사 최재균 대표하고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고, 최재균 대표 옆지기가 엊그제까지 했던 사진잔치 소식을 여쭈었습니다. 최재균 대표 옆지기 최정혜 님은 2010년 1월 27일부터 2월 9일까지 〈최정혜 with ye-ahn〉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당신이 낳아 키우는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진 서른 점으로 추려서 보여주었는데, 집에서 아이 키우는 아빠 된 몸으로서 이 사진잔치를 꼭 보고 싶었으나 갖은 집일에 얽혀 사진잔치 나들이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며 사진잔치 안내종이를 한 장 얻어서 읽습니다. 사진잔치 안내종이에는 ㅂ대학교 사진과 ㅈ교수님 글이 실려 있습니다. ㅈ교수님은 “그녀가 보여주는 대상과 상황에 우리는 초대되어 조밀한 감정을 고르게 펴면서 그 <사/아/이>를 배회할 기회를 얻는다. 침실의 벽과 거실에 놓인 탁자, 그리고 정원으로 향하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장난감의 순서, 그리고 자고 일어난 침대의 여전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낱낱한 시선의 증명은 곧 작가의 배회가 이룬 것이다. 그녀의 배회와 우리의 배회가 공유되면서 비로소 초대의 의미가 완성될 터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잔치 안내종이에 잔글씨로 찍힌 글을 읽으며 숨이 턱턱 막힙니다. 사진을 보라는 소리인지 사진읽기를 즐기라는 소리인지 알쏭달쏭하면서 가슴이 꽉꽉 눌립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 손길과 눈길이 고루 스며든 사진 한 장 앞에서 이런저런 말잔치를 늘어놓아야 비로소 ‘사진비평’이거나 ‘사진평론’이 될는지요? 사진 한 장은 이런 사진비평이나 사진평론이 붙어야 바야흐로 ‘사진작품’이라는 딱지가 붙을는지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를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영화 시디를 종이접기를 하는 어린 벗한테 빌려주었습니다. 영화 시디를 돌려받으면 틈틈이 이 영화를 다시 볼 테지요. 여러 차례 본 영화임에도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고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시디를 셈틀에 넣고 다시 돌릴 때마다 예전에 보았던 모습이 더 짙은 느낌으로 가슴으로 스며들고, 예전에 스치고 지나갔던 모습을 새록새록 곰삭입니다. 문화예술 갈래로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를 빚은 사람은 우리한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란 다름아닌 우리들 누구나 다 다른 땅에서 다 다른 모양새로 다 다른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는 ‘삶’이구나 싶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노래쟁이이든 아바나에서 살아가는 수수한 사람들이든 그저 그대로 그곳에서 그 모습이 곱습니다. 그 목소리가 살아 있고 그 손길이 살아 있으며 그 눈빛이 살아 있습니다. 이들은 당신들 삶에서 무엇을 붙잡고 사랑하고 껴안으면서 즐거움을 나누면 좋을까를 잘 알고 있다고 느낍니다. 원추리도 진달래도 아닌 치자꽃 한 송이를 노래하는 할배 노래결에서, 우리들 스스로 고운 빛살이 담긴 노래를 늘 놓치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한테는 언제나 우리 삶을 빛내는 고운 빛살 담긴 노래가 가득가득 있었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빛살을 뿌리치고 우리 노래를 내팽개치면서, 우리 두 눈으로 바라보는 삶터를 우리 눈결로 담아내는 사진찍기하고도 차츰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사진찍기를 이야기하는 사진읽기에서도 한결 반갑고 알차고 아리따운 길을 놓칠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나한테 깃든 넋을 보지 못하니, 나 스스로 무슨 글을 쓰고 무슨 그림을 그리며 무슨 사진을 찍겠습니까. 나한테 서린 얼을 감싸지 못하니, 나 스스로 무슨 영화를 찍고 무슨 춤을 추며 무슨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만화책 《한낮에 뜬 달》(요시다 아키미 그림,애니북스 펴냄,2009)을 읽으면 끄트머리를 매조지하면서 “서로 건강하게 지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193쪽).” 하고 속말을 합니다. 말 그대로 서로 몸 튼튼히 지내면 이대로 넉넉합니다. 내 몸이 튼튼하고 옆지기 몸이 튼튼하며 딸아이 사름벼리 몸이 튼튼하면 이대로 넉넉합니다. 나한테 대학교 졸업장이 없고 옆지기한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딸아이가 나중에 학교에 가고파 할지 안 가고파 할지 모릅니다만, 초등학교조차 안 간다 하여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삶을 따사롭게 보듬는 손길이란 종이조각에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영화는 사진을 사랑했다지만


 영화를 보는 눈은 영화를 보는 사람 숫자만큼 갖가지입니다. 사진을 보는 눈 또한 사진을 보는 사람 숫자만큼 갖가지입니다. 그런데, 참말로 영화를 보는 눈이 갖가지요, 사진을 보는 눈 또한 갖가지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다 다른 영화를 다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요. 우리는 다 다른 사람으로 영화를 보아도 어슷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는지요.

 지난 2005년에 나온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을 뒤늦게 읽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글쓴이는 당신 글을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글쓴이가 당신 글을 돌이켜보았을 때 2005년에 쓴 이 글을 2010년에 돌아보아도 괜찮다고 여길는지 어딘가 아쉽다고 바라볼는지 무언가 모자라다고 생각할는지 궁금합니다. 2005년에 쓴 이 글을 올 2010년뿐 아니라 다가올 2020년이나 2050년에 돌아보아도 괜찮다고 여길는지 궁금하며, 당신 글을 손질하거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올 2010년에 한 번 손질하거나 고치면 된다고 여길는지 궁금하고, 앞으로 2020년에 다시금 2050년에 새롭게 다시금 손질하거나 고쳐야 한다고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 사진가들은 어떤 여자를 예쁘게 찍어야 될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순간만큼은 상대방의 외모에 관계없이 자신의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는 얘기를 ㄷ르은 적이 있다.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아도 억지로 그런 감정을 만드는 것인데, 정원처럼 좋아하는 사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이 최고의 사진으로 찍힐 것이다. 찍히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찍어 줄 때 가장 예쁘고, 아름답고 보기 좋은, 사랑이 느껴지는 사진이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가들이 사진사들보다 기술적ㆍ감각적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 혹은 야박하게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머니를 가장 아름답게 찍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이며, 사랑하는 여인을 가장 예쁘게 찍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사진가들이 아니라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닐까? ..  (99쪽)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에는 ‘사진기나 사진이 소재가 된 영화’를 다룹니다. 또는 영화에 언뜻선뜻 스치거나 나타나는 사진기나 사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이름은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지만, 하나하나 파고들어 살핀다면 영화들마다 꼭 ‘사진을 사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진을 사랑한 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영화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펼치는 동안 ‘사진도 한 가지 살며시 곁들였다’고 보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쟁이가 주인공이 된 영화이든 사진기나 사진이 줄거리에서 굵직한 고빗사위를 이루는 영화이든, 영화감독이 들려주고픈 이야기는 ‘사진이나 사진기하고는 다른 자리에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틀림없이 사진기 하나와 사진 한 장이 큰 자리를 차지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여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고 말하기에는 힘듭니다. 만화 《슬램 덩크》 주인공이 읊은 한 마디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말처럼, “사진은 거들 뿐”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사진은 영화작품에서 ‘거드는 노릇’을 하면서 우리한테 저마다 다 다른 뜨거움과 뭉클함과 애틋함을 선사한다고 할 수 있어요.


.. 사진첩을 대충 보는 폴에게 오기는 “천천히 보라”고 충고한다. 폴이 “다 똑같지 않냐”고 반문하자 오기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맑은 날 아침, 흐린 날 아침, 여름 햇볕, 주말, 주중, 우산을 든 사람, 겨울 코트를 입은 사람, 짧은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 등등, 다른 사람이 같아질 때도 있고, 똑같은 사람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햇빛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지나가는 차가 다르고, 심지어 바람의 움직임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니, 결국 같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  (111쪽)


 저는 영화를 그리 즐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느긋하게 볼 겨를이 없다고 해야 맞다고 느낍니다. 영화를 안 즐긴다기보다 영화를 즐길 겨를이 없습니다. 책읽기를 할 때에 늘 느낍니다만,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즐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전철을 타고 먼 마실을 할 때에 여러 권을 읽어치우기도 하지만, ‘읽어치우기’이지 ‘즐기기’는 아닙니다. 아니, 이렇게 바쁜 틈을 쪼개어 읽는 책이 바로 ‘즐기기’요 ‘읽어치우기’가 아닌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조각읽기가 됩니다. 나눠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겹쳐읽기를 얼마든지 합니다. 어제 옆지기가 묻더군요. “당신은 (만화쟁이가 연재를 띄엄띄엄 하느라 뒤엣책이 여러 해 만에 나와서) 몇 해 만에 보는 만화도 예전 줄거리가 다 생각나요?” “그럼.” “나는 하나도 생각 안 나는데.” 대답을 해 놓고 곰곰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참말로 책읽기를 조각읽기를 하고 나눠읽기에다가 겹쳐읽기를 숱하게 하는데, 새로 이 책을 집어들어 읽으며 ‘예전에 보던 대목’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어쩌면, 영화를 볼 때에도 십 분 보다가 끊고 다음에 또 십 분을 보고, 또 다음에 십 분을 보아도 잘 떠올리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연속극 또한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 않고 꾸준히 이어서 보여주는 셈이니, 책으로는 조각읽기라면 방송으로는 ‘조각보기’가 됩니다.

 제 깜냥껏 생각을 갈무리하며 영화읽기와 사진읽기와 책읽기를 나란히 놓고 곱씹어 봅니다. 영화이든 사진이든 책이든 사람들은 누구나 저한테 가장 반갑고 즐겁고 흐뭇하며 살가운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사랑 나누는 이야기이든, 수수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이든, 아이 키우는 이야기이든, 나라밖 이야기이든, 전쟁 이야기이든, 꿈나라 이야기이든 …… 좋아하는 갈래가 다르지만, 모두들 ‘다 다르게 좋아하는 갈래’에서 ‘다 다르게 좋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다 다르게 좋아하는 다 다른 갈래 다 다른 문화예술 매체 이야기라 할 때에는, 이 문화예술 매체를 즐긴 다음에 풀어내는 ‘느낌글’은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적바림하는 느낌글이라 할지라도 이 책과 저 책에서 다 다른 삶과 눈길과 생각에 따라 다 다른 틀거리와 짜임새와 매무새로 느낌글을 적바림합니다. 비슷하거나 어중간한 느낌글이란 나올 수 없습니다. 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면서 아름다운 눈물과 빛나는 웃음 하나 선사한 작품일 테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에서는 바로 이 ‘눈물’과 ‘웃음’을 찾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눈물과 웃음이 빠져 있구나 싶습니다. 영화를 즐길 때에는 영화를 즐기는 나름대로 어떻게 눈물과 웃음을 즐겼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사진을 만나며 부둥켜안을 때에는 영화에 나오는 사진 이야기가 당신 가슴에 어떻게 눈물과 웃음으로 아로새겨졌는가 하는 대목이 빠져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고, 책을 덮으면서 갑갑했습니다. 교수님이든 평론가이든 비평과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내놓기 앞서, 무엇보다도 당신들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빛줄기를 우리한테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착한 사람들 일색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가장 착하게 여겨지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눈이다 ..  (204쪽)


 글쓴이 김석원 님은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에서 영화를 말하고 싶었을까요? 사진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영화와 사진을 아울러 말하고 싶었을까요? 사진과 영화가 어깨동무하는 삶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사람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르고, 사람마다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눈썰미가 다릅니다. 똑같은 기계요 장비라 할지라도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매무새로 사진을 이루어 냅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장비로 일구어 낸 작품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두 작품을 바라보면서 다른 느낌입니다. 한 사람 한 작품일지라도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눈물과 웃음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은 어떤 ‘다 다른 영화와 사진이 어우러지는’ 이야기일까요. 어떤 목소리를 어떤 결로 어느 자리에서 누구하고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일까요. 사진기와 사진을 다루며 영화 하나에 깊은 사랑과 너른 믿음을 담은 영화감독들 땀방울과 꾸덕살을 《영화가 사랑한 사진》에서는 어느 만큼 건드리거나 어루만지고 있다고 해야 좋을까요. (4343.2.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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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세월
윤주영 / 눈빛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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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기기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2] 윤주영, 《어머니의 세월》


- 책이름 : 어머니의 세월
- 사진 : 윤주영
- 펴낸곳 : 눈빛 (1997.11.7.)
- 책값 : 2만 원 






 (1) 사진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문화재단들은 저마다 제 고장을 빛낼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원사업이 있는 줄 안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알고 난 다음에는 지원서류 쓰기가 퍽 까다롭고 골치가 아파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골치가 아프더라도 한 번은 써 봐야 하지 않느냐 싶어, 인천골목길을 찍은 사진을 놓고 지원금을 신청해 보았습니다. 제가 인천골목길을 두루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책으로 엮은 다음, 제가 사진으로 담은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분들한테 하나씩 선물로 나누어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골목이웃한테 당신들 삶자리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두 장씩 드리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당신들이 가꾸는 이 보금자리가 참 아름답습니다’ 하고 말씀을 건네지만, 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들 ‘저 젊은이가 그냥 입발린 소리로 읊는 인사치레’로 여깁니다. 그래서 인천골목길을 통째로 들여다보는 사진책을 하나 마련해 한 집씩 찾아다니며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꿈을 이루자니 돈이 없는 저로서는 꿈 같은 소리입니다. 그예 꿈입니다. 살림돈 한푼도 모자란 주제에 무슨 사진책을 내겠습니까. 찍은 사진은 더없이 많고, 오늘도 바지런히 찍으러 돌아다닐 테며, 앞으로도 찍겠지요. 사진 몇 장 만들어서 나누어 드리는 일이야 어느 만큼 한다 치더라도 책으로 드리기는 몹시 버겁습니다. 집삯과 도서관삯 내기에도 빠듯한 살림이니까요.

 지원사업 공모에 붙을는지 안 붙을는지 모르나, 붙든 안 붙든 내 보고 나서 생각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 모르지만 인천문화재단에서 면보기 하러 오라고 연락이 와서 지난주에 찾아갔습니다. 면접관은 “제(면접관)가 인천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이런 지역 특성을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전시하는 공간을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이런 물음은 도무지 걸맞지 않을 뿐더러, 면접관 스스로 ‘인천에서 인천골목길 사진을 전시하고 책으로 엮어서 나누는 뜻’을 읽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참말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저 스스로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몸이지만,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스스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요. 골목동네가 고향이라고 밝히는 사진작가 가운데 골목동네를 가끔이나마 사진으로 담는 사람조차 드뭅니다. 삶터로 여기며 꾸밈없이 골목 사진을 즐기고 나누려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이 나라에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적어도 인천에는 없습니다.

 저는 인천골목길을 굳이 제 사진감으로 삼을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자주 찍으니 괜히 저까지 인천골목길을 안 찍어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인천골목길을 찍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른 데’에서 놀러오는 사람들이고, 인천이라고 하는 터전을 사랑하든 아끼든 들여다보든 헤아리든 하는 마음가짐이나 눈길이 아니었습니다. 골목동네 주민으로서 퍽 짜증스럽고 어이없는 사진이 많았습니다. ‘그 좋은 장비를 쓰면서 이 따위 엉망진창 사진을 찍느냐? 그러면 차라리 내가 찍어서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창작과비평》이라는 잡지에 실린 시를 읽다가 ‘이만한 시가 시라면 나도 시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시길’을 걸었는데, 제가 김남주 시인 같은 그릇은 못 됩니다만 이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제 값싼 장비로 골목 삶터가 왜 골목 삶터인지를 말하는 사진을 담아내어 조용히 동네 이웃하고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면접관이 저한테 한 마디 물은 뒤’ 이런저런 생각이 뒤죽박죽 엉켰습니다. 입을 꾹 다물고 앉아만 있으면 안 되기에 헛기침을 하고 나서 몇 마디를 줄줄줄 풀어놓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동네 골목길이 참 예쁘다고 느껴요. 그래서 골목길 사진을 찍는데, 이 사진을 찍은 다음에 그 집에 다시 찾아가서 우체통에 사진을 넣든 앞에서 인사하고 드리든 하면서 ‘집이 참 예쁘고 좋아서 찍었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골목길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는데, 이렇게 동네 주민으로서 골목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으며 다니다 보면 동네사람들이 ‘뭐 하러 사진 찍어요?’ 하면서 따져요. 인천시에서는 오래된 동네를 빨리 허물고 아파트로 재개발하려고 하는데, 이러면서 오래된 골목동네가 꾀죄죄하고 낡고 못났다는 생각을 심거든요. 그러면서 일부러 낡고 꾀죄죄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공무원들이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동네사람이 그렇게 물으면 ‘집이 예쁘잖아요’ 하고 말씀드리는데, 다들 웃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곳에 뿌리내리며 살아오는 분들이 집과 동네를 참 예쁘고 곱게 꾸미고 있는데, 당신들 스스로 이 동네가 얼마나 예쁘고 고운 줄을 모르셔요. 제가 괜히 집이 예쁘다고 말하는 줄 생각하셔요. 음, 이 같은 골목길 모습을 다른 지역에 보여주는 일도 틀림없이 뜻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분들 스스로 당신 보금자리가 얼마나 곱고 예쁜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난 다음에 서울이든 다른 지역이든 이 사진을 들고 가서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해요. 동네사람들한테 자부심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어요.”

 지난주에 여러 차례, 그제와 그끄제 잇달아 ‘골목마실 길잡이’가 되어 사람들한테 인천골목길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오래오래 걷는 나들이를 합니다. 지난 2007년에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뒤 홀로 조용히 골목마실을 해 오며 혼자서(또는 옆지기와 아기하고) 사진찍기를 해 왔는데 요 보름 사이에 갑자기 ‘골목마실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인천에 뿌리를 둔 가톨릭환경연대에서 해마다 벌이는 ‘청소년 환경기사단’ 강사 노릇까지 어쩌다 보니 덥석 맡아, 2010년 올해에 인천 중ㆍ동구 푸름이들하고 동네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하면서 사진찍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요사이는 도서관에 가만히 있기 추워서, 사진을 좋아하는 손님이 찾아왔으면 “괜찮으시면, 구경해 보기 어려운 골목길 나들이 해 보시겠어요? 알려지지 않은 인천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하고 넌지시 말씀을 여쭈며 함께 길을 나서곤 합니다. 따로 길잡이가 되거나 탐방해설가나 그런 이름을 붙이는 나들이가 아닌, 조용히 몇몇 사람이 뚜벅뚜벅 골목을 거닐면서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도록 이끄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이런 골목마실이란 몇 해에 걸쳐 온 골목을 수없이 밟고 또 밟았기 때문에 이제서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될 테지요. 골목동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저 스스로 눈을 뜨고 생각을 열면서 골목마실을 해 온 여러 해가 밑거름이 되며 저절로 발걸음이 떨어지는 일일 테지요.

 제 사진감인 ‘헌책방’을 처음으로 찍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1999∼2000년에 헌책방 사진을 처음 찍으며 2001∼2002년에 바야흐로 손놀림을 익혔고, 이렇게 찍은 사진을 헌책방 일꾼들한테 드리면서 ‘이런 사진을 좋아하시는구나. 저런 사진은 썩 안 좋아하시네.’ 하고 느꼈습니다. 사진을 받으실 때에 얼굴빛이 다르기에, 반갑거나 좋게 여기는 사진을 눈여겨보고, 썩 달갑잖게 여기는 사진을 곱씹습니다. 헌책방 일꾼들 입맛과 눈맛에만 맞추는 사진이라기보다, 헌책방 일꾼들 스스로 흐뭇해 하고 반길 수 있으면서도 제 손길을 트고 눈길을 열 수 있는 사진찍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헌책방에서 사진찍기’가 열두 해째입니다. 열두 해째 되고 보니, 헌책방에서 책방 일꾼 얼굴 사진을 슬쩍 한두 장 찍는 일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찍히는 사장님들이 허허 웃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찍고 뭘 또 그렇게 찍어요?” 하고 손사래를 치시면, “예전에는 예전 모습이고 지금은 또 지금 모습이니까요. 찾아올 때마다 한 해 두 해 쌓이는 세월과 모습이 다른걸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참말, 저로서는 헌책방이든 골목길이든 한두 번 왕창 찍어내며 ‘일 끝내기(작업 종료)’를 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목숨이 붙어 있고, 제 손아귀에 힘이 남아 있으며, 제 낡고 값싼 사진기가 마지막까지 움직여 주는 그날까지 찍어야 할 사진감이라고 여깁니다. 앞으로 예순 살까지 살 수 있다면, 스물네 해를 더 찍을 수 있는 헌책방이며 골목길입니다. 앞으로 일흔 살까지 살 수 있다면 헌책방을 놓고는 마흔 해 남짓 찍는 셈이고, 골목길을 놓고는 서른 몇 해를 찍는 셈입니다.

 지난 2008년 여름부터는 아이 사진도 찍습니다. 아이와 늘 지내고 있으니 아이 사진을 찍을밖에 없습니다. 2007년 여름부터는 옆지기 사진을 찍었지요. 그러니까, 이제는 아이와 옆지기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찍는다고 하겠습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나중에 어떤 사진책을 꾸리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좋은 벗님들이요 길동무이니 사진기를 집어듭니다. 저한테 헌책방이라는 사진감은 저 멀리 동떨어진 세상사람들 터전이 아닌, 바로 내 삶터요 이웃 모습입니다. 저한테 골목길이라는 사진감은 남다르거나 애틋한 추억이 어린 곳이 아닌, 바로 내 보금자리요 이웃들 어우러진 삶자락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또한, 사진쟁이들이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할지라도 마침내 ‘삶을 담는 삶사진’에 이르고야 만다고 느낍니다. 우리들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는 그 훌륭하고 거룩한 사진쟁이들은 예술사진이었든 상업사진이었든 기록사진이었든 무슨 사진이었든 하나같이 ‘당신들 삶으로 녹여내고 받아들인 삶사진’이로구나 싶습니다. 레니 리펜슈탈도 삶사진이고, 김기찬도 삶사진입니다. 살가도나 쿠델카도 삶사진이며, 조선희나 한영수도 삶사진입니다. 한영수 님은 아예 《삶》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진책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 바야흐로 만나면서 당신들 사진 불꽃을 활활 불태우면서 곱디고운 사진꽃으로 피어나는 자리란 바로 ‘삶사진’이라고 느낍니다.
 











 (2) 삶을 담으려고 하는 사진으로


 옆지기도 한번 보라고 《어머니의 세월》이라는 사진책 하나를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함께 놀던 옆지기가 “아빠가 엄마 보라고 사진책을 가지고 왔네.” 하면서 주욱 펼치다가는 “뭐야, 이 사진은? 이 사진에서 할머니들은 찍히고 싶지 않은 얼굴이잖아.” 합니다. 무슨 사진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 슬쩍 건너다보니, 장터에서 국수를 자시는 할머니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얼굴이며 손이며 온통 주름진 할머님들 매무새가 잘 드러난 사진입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할머님들은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 ‘밥먹는 자리에서 저 양반 뭐 하는 짓이여?’ 하는 눈빛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옆지기는 사진쟁이 이름을 모르고, 사진쟁이 발자국을 모릅니다. 이분이 어떠한 길을 걸었는지 모르며, 이 사진책에 어떠한 뜻이 담겨 있는가를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옆지기를 섬깁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이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를 알아야만 그 사진쟁이 사진을 읽어낼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과 책쟁이 한 사람이 무슨 뜻으로 사진책 하나를 엮었는지를 알아야만, 이들이 묶어낸 사진책에 담긴 사진을 즐길 수 있지 않습니다. 옆지기는 지아비가 쓴 글이나 사진을 놓고도 알차게 못 쓴 글이나 제대로 못 찍은 사진을 놓고 “뭐야, 이 글은? 뭔데, 이 사진은?” 하고 한 마디 톡 쏘거나 거듭니다. 당신하고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아닌, 당신 가슴으로 스며들 만한 글이냐 그림이냐 사진이냐를 헤아리는 눈썰미입니다. 더없이 고마운 옆지기입니다.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그동안 《어머니》(눈빛,2007), 《그 아이들의 평화》(생각의나무,2004), 《석정리역의 어머니들》(솔,2003), 《장날》(현암사,2001), 《행복한 아이들》(현암사,2001), 《중국》(눈빛,1999), 《안데스의 사람들》(눈빛,1999), 《일하는 부부들》(눈빛,1998), 《어머니의 세월》(눈빛,1997), 《베트남 전후 20년》(타임스페이스,1995), 《탄광촌 사람들》(사진예술사,1994), 《동토의 민들레》(호영출판사,1993),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조선일보사,1990), 《내가 만난 사람들》(열화당,1987) 같은 사진책을 펴냈습니다. 열네 권 가운데 아직 네 권은 사지 않았으나, 사지 않았을 뿐이지 책방에서 모두 보았습니다. 네 권은 따로 안 사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여태껏 안 샀는데, 이제는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모두 갖추어 놓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고려대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에서 일곱 해 동안 정치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1961년에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어 이태 동안 신문을 만듭니다. 그 뒤 정계로 나아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열여섯 해 동안 민주공화당 대변인과 사무처장과 무임소장관과 칠레대사와 문화공보부장관과 국회의원을 두루 거쳤습니다. 1979년에 정치판을 떠난 다음 사진판으로 뛰어드셨는데, 중남미며 네팔이며 인도며 부탄이며 파키스탄이며 터어키이며 그리스이며 이집트이며 모로코이며 튀니지아이며 유럽이며를 골고루 다니며 사진찍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태껏 펴낸 사진책에서도 알 수 있듯, 윤주영 님은 1993년에 《동토의 민들레》라는 작품으로 러시아 사할린에서 고향나라를 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발자취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1994년에는 《탄광촌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탄광마을 일꾼 발자국을 사진으로 여미었습니다. 《베트남 전후 20년》은 말 그대로 전쟁 피해자 뒷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행복한 아이들》은 입양되는 아이들 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윤주영 님은 무엇보다도 ‘어머니(할머니)’ 사진을 많이 자주 찍었습니다. 《어머니의 세월》이든 《일하는 부부들》이든 《장날》이든 하나같이 ‘어머니 되는 분’이 사진 주인공입니다. 다만, 윤주영 님한테는 ‘어머니’이지만, 저한테는 ‘할머니’입니다. 마땅한 소리이겠지만, 어느덧 여든 줄 나이로 접어든 할아버지 사진쟁이 윤주영 님한테는 ‘당신한테 어머니라 할 분은 그야말로 할머니’이겠지요. 윤주영 님 사진을 보면서 느끼지만, 윤주영 님이 가장 잘 잡아채며 담아내는 사진감은 바로 ‘나이 든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주영 님부터 흰머리 할아버지인 만큼, 할머니들 앞에서 서로 동무가 되기도 하고 누나로 삼기도 하며 동생으로 만나기도 할 테지요. 스스럼없이 사진기를 들 수 있고, 사진기를 들기 앞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저는 윤주영 님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할아버지가 되면 아주 저절로 ‘나로서는 아버지이고 내 뒷사람한테는 할아버지로 보이는 아버지’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러한 사진찍기는 퍽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새롭게 눈을 뜨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은 만큼 ‘젊은이가 다가서기에 아직 어려운 사진감을 담아내는 솜씨’를 보여주면서 뒷사람을 가르친다고 할까요.

 그런데 윤주영 님 사진책을 보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탄광촌 사람들》을 뒤적일 때마다 《김재영(글),김종성(사진)-검은 산 검은 하늘》(눈빛,1991)이 떠오르고, 《동토의 민들레》를 뒤적일 때마다 《이토 다카시-사할린 아리랑》(눈빛,1997)이 떠오르며, 《장날》을 들출 때마다 《양해남-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이 떠오릅니다. 똑같이 탄광을 사진감으로 삼았지만 윤주영 님 사진책에서는 웃음과 눈물을 살피기 어렵구나 하고 느낍니다. 광부 삶을 담은 사진책으로 《신병태-광부, 그 묻혀진 얼굴》(호영,1999)이 또 있는데, 《광부, 그 묻혀진 얼굴》에서도 ‘광부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얼굴’은 드러나지만 삶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윤주영 님 사진에서도 비슷합니다. 《장날》이나 《행복한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평화》에서 ‘넉넉한 구도’와 ‘아름다운 화면’은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구도와 화면에 어떠한 이야기를 따스하게 담는지까지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눈물을 보여야 하는 사진에서 눈물을 보이기 힘들고, 저절로 ‘아!’ 하는 마음이 샘솟지 못합니다.

 사진길을 걸어가며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고 온갖 자리에서 온갖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골고루 만나고 있는 윤주영 님은 우리 세상 온갖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갖 ‘모습’을 담는 가운데 온갖 ‘이야기’까지 엮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다루는 사진감은 많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모습으로 그치고 이야기로 뻗어가지 못하는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자락을 보여주지만 삶을 말하지는 못하는 사진이 아니랴 싶습니다. 삶결을 건드리지만 삶자리 깊숙하게 스며들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일하는 부부들》과 《어머니의 세월》이라는 사진책을 여러 해 동안 사진밭 선배한테 빌려 준 적 있습니다. 선배는 《일하는 부부들》은 잃어버리고 《어머니의 세월》은 돌려주었습니다. 한 번 잃어버린 《일하는 부부들》은 헌책방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배한테 이 사진책을 빌려 줄 때에 선배한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저보다 사진 솜씨가 좋고 사진 찍히는 사람들한테 스스럼없이 잘 다가서는 선배야말로 ‘이 땅에서 낮은자리에서 부둥키고 얼크러지는 이웃이자 바로 이러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부부들’하고 ‘어머니가 보낸 세월’을 사진으로 담아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진일은 한두 해로 이룰 수 없고, 적어도 열 해나 스무 해에 걸쳐 해야 할 텐데, 이제부터 차근차근 해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선배가 제 도움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지 잊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선배한테 도움말을 했듯 저는 저 스스로한테도 제 둘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사진으로 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저한테는 ‘일하는 사람들’이란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일 테지요. 그리고 저한테 ‘어머니가 보낸 세월’이란 바로 우리 아이를 키우는 옆지기가 젊음부터 늙음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아내는 발자취일 테고요.

 얼핏설핏 윤주영 님이 새 작품을 내놓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떠한 작품을 어떠한 빛깔로 내놓으실는지 궁금합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윤주영 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당신 스스로 ‘여든이 되든 아흔이 되든 사진길을 걸어가며 새 사진감을 찾아 새 창작을 선보이는’ 좋은 이슬떨이가 되어 주고 있거든요. 윤주영 님은 한 해 두 해 사진길을 걸어가면서 당신 사진밭을 조금씩 갈고닦으며 가다듬고 있다고 느낍니다. 비록 윤주영 님 당신이 벗어나지 못하는 틀과 굴레가 있지만, 제아무리 틀과 굴레가 있다 하여도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은 사진으로 말하면 됩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세월》은 1997년 작품입니다. 2007년도 아닌 2010년이라면, 《어머니의 세월》에서 엿보인 아쉬움들을 말끔히 털어내었을 수 있겠지요. 또는, 2017년에도 사진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차근차근 가다듬거나 추스를 수 있을 테고요.

 구도와 화면으로도 얼마든지 곱고 멋진 사진을 일굴 수 있지만, 이야기와 삶을 담아낼 때에는 ‘흔들린 사진’이든 ‘빛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사진’이든 사람들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사진이 되거나 따뜻하게 감싸안는 사진이 됩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마무리되는 대목을 한결같이 되새겨 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4343.1.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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