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가 못을 그리워할 때 시인동네 시인선 45
주강홍 지음 / 시인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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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2


《망치가 못을 그리워할 때》

 주강홍

 시인동네

 2015.11.4.



  우리 어머니는 어릴 적에 부엌일을 거들겠다고 할라치면 “그럼 마늘부터 까.” 하고 시켰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한테 여쭈었지요. “마늘을 잔뜩 까 놓고 쓰면 어떨까요?” 어머니는 “안 돼. 그러면 맛없이.” 어릴 적에는 맛있고 맛없는 밥차림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끼니마다 마늘을 새로 까서 국이나 곁밥에 쓰는 살림을 지켜보고 거들면서 자라는 동안 어머니 손맛이 제 몸에 스몄을 테고, 이제 두 아이를 건사하는 살림으로 우리 아이들한테 “마늘을 까 주렴.” 하고 맡기면서 새삼스레 생각해요. 어울리는 맛이나 삶이란 처음부터 모른다 하더라도 어느새 자라서 즐겁게 피어난다고. 《망치가 못을 그리워할 때》를 읽습니다. 무슨 망치가 무슨 못을 그리워하느냐 물을 만하지만, 망치질이며 못질을 늘 하는 일꾼으로서는 망치하고 못이 서로 얼마나 애틋히 여기는 사이인가를 마음으로 알겠지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고, 마음으로 알다 보니 몸도 저절로 알아요. 삶이란 몸하고 마음으로 같이 느끼고 알고 배우고 받아들여서 가꾸는 기쁜 잔치랄까요. 저마다 다르게 짓는 삶을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한 올 두 올 풀어냅니다. 저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아침을 저마다 새로운 숨결로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마시면서 엽니다. 노래란 늘 우리 곁에서 흐릅니다. 우리가 이 노래를 알아보면 됩니다.ㅅㄴㄹ



상처에 상처를 덧씌우는 일이다 / 감당하지 못하는 뜨거움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 한쪽을 허물고 다른 한쪽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 애써 보지 말아야 할 일이다 / 처절한 비명 참아야 할 일이다 / 그리하여 끊어진 한쪽을 찾아야 할 일이다 (용접/2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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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거미의 사랑 창비시선 259
강은교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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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1


《초록 거미의 사랑》

 강은교

 창비

 2006.2.6.



  흔히들 ‘읽을 사람(독자)’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고 합니다만, 저는 달리 바라봅니다. ‘쓰는 사람’은 ‘스스로 읽으’려고 쓸 뿐, ‘남한테 읽힐’ 뜻으로 쓸 수 없어요. 남한테 읽히려는 글은, 남한테 예쁘게 보이려는 얼굴이나 옷차림 같다고 느껴요. 남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또는 안 나쁘게 보이려고, 또는 훌륭히 보이려고 얼굴이나 옷차림을 매만지는 몸짓이라면, 글쓰기에서도 ‘남한테 잘 보이려고 겉치레나 겉멋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되읽으려고 쓰는 글이라면 ‘남 눈치’를 볼 일이 없습니다. 오직 제 마음을 깊고 넓게 파헤칩니다. 그래서 스스로 되읽으려는 뜻으로 마음을 깊고 넓게 파헤치면서 쓰는 글일 적에는, 뜻밖에 ‘이웃도 같이 읽을’ 글로 거듭나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려고 쓰기에 아름다운 동시가 아니라, 어른 스스로 어린이 마음·삶·사랑이 되어 쓰는 동시이기에 아이도 나란히 읽을 만하다고 느껴요. 《초록 거미의 사랑》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쓴이는 독자나 평론가 눈치나 눈길이 아닌 시쓴이 마음을 바라보려는 넋으로 글을 썼구나 싶어요. 남 눈치를 안 보는 글을 얼마만에 만나는지! 다만 시쓴이는 자꾸 남 눈치나 눈길에 얽매이려 합니다. 한국에서 글쟁이란 자리는 아무래도 눈치나 눈길을 보는 몸짓이로구나 싶은데, 풀거미라면 풀밭에서 새 거미줄을 짜면 돼요. ㅅㄴㄹ



길게 줄지어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중 한 아이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이가 뛰어나간 곳은 울퉁불퉁한 흙더미. 아이의 얇은 발이 흙더미를 헤쳤다. 노란 바탕에 검은 점이 무수히 찍힌― 야아, 나비!― (나비/43쪽)


그래, 시는 넘쳐난다. 우리 시대에 시인은 너무 많다. / 시인들이 넘쳐나는 탓에 평화의 노래도 넘쳐나는구나. / 전쟁의 반대가 평화가 아닐 수 있다고. (어떤 회의장에서, L.J.N.을 추모하며/13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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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훗사람 문학동네 시인선 39
이사라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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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0


《훗날 훗사람》

 이사라

 문학동네

 2013.4.17.



  누구이든 글을 쓰고 나면 그 글은 그이 혼자만 누리지 않습니다. 혼잣것이 아닌 셈이에요. 곰곰이 따지면 온누리 모든 것은 어느 것도 혼잣것이지 않습니다. 혼자서 이루거나 거두거나 얻을 수 없어요. 어마어마하게 가멸찬 사람도 아주 빈털터리라고 하는 사람도 혼자 모두 움켜쥐거나 내려놓을 수 없어요. 모두 이어지기 마련이요, 서로 얽히기 일쑤입니다. 우리 몸을 돌고 도는 바람이면서 물입니다. 우리 몸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물이고 바람이에요. 햇볕도 이와 같겠지요. 《훗날 훗사람》에 흐르는 마음은 글쓴이 혼잣마음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나 헤아리는 마음일 수 있어요. 혼자서 부대끼거나 앓는 마음일 수 있으면서, 누구나 부대끼거나 앓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글을 써서 나누거나 함께 읽는다면, 시라는 이름으로 삶을 노래하는 말을 주고받는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잣것이지 않으나 홀로 가슴에 품고서 삭여낸 이야기를 새롭게 피운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우리 손에서 태어난 글 한 줄은 우리가 스스로 짓는 삶이 있기에 우리 손으로 오늘 이곳에서 씁니다. 우리를 이룬 터전은 숱한 사람하고 바람하고 물이 얼크러지면서 녹아든 숨결이기에, 이 숨결을 우리 가슴으로 받아안아서 새삼스레 글 하나를 여밉니다. 뒷날 뒷사람은 어제 그 사람이면서 오늘 이 사람입니다. ㅅㄴㄹ



혼자서도 잘 노는 혀처럼 / 숨차게 달려온 시간이 / 여기 찜통에서 / 마침내 숨을 내쉰다 (김을 쐬는 사람들이 있는 겨울 풍경/60쪽)


뒷산에서 이 여름 / 죽도록 사랑했던 것들이 / 빛깔로 풀어진다 (뒷산 녹음/10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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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사는 생쥐 문학동네 동시집 15
박방희 지음, 홍성지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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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5


《머릿속에 사는 생쥐》

 박방희

 문학동네

 2010.9.8.



  어른도 어린이도 살아가는 만큼 이야기를 엮어서 글로 씁니다. 살아가지 않는 모습을 이야기로 엮는다면 으레 꾸미기 마련이요, 꾸며서 엮는 이야기를 글로 담을 적에는 어깨너머로 구경하거나 어림한 줄거리가 흐릅니다. 어린이가 꾸며서 쓴 글은 확 티가 납니다. 잘 모르거나 제대로 못 살핀 채 어깨너머 구경 이야기를 쓰거든요. 이와 달리 어른은 스스로 살지 않는 모습을 꾸며서 쓸 적에 글재주를 부려요. 이러면서 어린이보다 티가 덜 나지만 꾸며쓰기는 이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머릿속에 사는 생쥐》는 어떤 동시집일까요? 글쓴이가 살아가는 결을 찬찬히 담아낸 동시집일는지, 아니면 스스로 살지 않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구경하거나 어림하면서 낸 동시집일는지요? 살아가는 결을 고스란히 글로 담을 적에는 글치레를 할 일이 없습니다. 살아가는 결을 쓰지 않고서 어깨너머 구경질을 글로 옮길 적에는 자꾸 글치레를 하거나 글멋을 부리거나 글장난을 칩니다. 멋이란 글재주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멋이란 살아가는 결에서 저절로 피어납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릇 하나는 수수한 살림살이에 어울리는 손맛을 담기에 두고두고 멋스럽습니다. 오래도록 읽을 동시라 한다면, 수수한 글쓴이 삶을 고스란히 담아서 나누려고 할 적에 비로소 멋이 자라나겠지요. ㅅㄴㄹ



하얀 / 앵두꽃 피어도 / 눈 안 주던 까치 // 초록 / 물방울 같던 앵두가 / 발갛게 불을 켜자 // 오며 가며 / 눈독 들이네 // 그 바람에 앵두가 빨리 익네 (앵두/12쪽)


고개 넘는 할머니 / 갈수록 힘드시나 봐 / 일흔 고개 여든 고개 / 고개를 넘을수록 / 가빠지는 숨 고개 (고개/9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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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그 길 시놀이터 3
연꽃누리 엮음 / 삶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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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57


《우연히 만난 그 길》

 시흥 어린이

 삶말

 2017.12.5.



  가르쳐 주어도 알지만, 가르쳐 주어도 몰라요. 보여주어도 알지만, 보여주어도 몰라요. 그림으로 그려도 알지만, 그림으로 그려도 몰라요. 똑같이 하는데, 한쪽에서는 바로 알고 다른쪽에서는 도무지 몰라요. 아이를 둘 낳은 어버이라면 두 아이가 많이 닮았으나 서로 다른 숨결인 줄 압니다. 셋이나 넷을 낳으면 서너 아이 모두 닮았으나 다른 줄 알아요. 학교에서 뭇아이를 마주하는 교사는 모든 아이가 저마다 다른 줄 알 테지요. 때로는 아이들이 다 다른 줄 헤아리지 않고서 밀어붙이는 교사도 있을 테고요. 《우연히 만난 그 길》은 경기 시흥에서 어린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이 교사하고 함께 동시를 쓴 자취를 담아냅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눈길로 살아가는 다 다른 숨결을 글줄로 드러냅니다. 어느 아이 글이 더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마다 새롭고, 다 다르게 이야기가 흐릅니다. 즐거운 이야기도, 아픈 이야기도, 신나는 이야기도, 괴로운 이야기도 여러 갈래로 섞입니다. 아이들은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울까요? 아이들은 교과서나 책으로 배운 대로만 자랄까요? 우리 어른들이 문득문득 읊는 말은 아이들 마음에 어떤 숨결로 깃들까요? 노래하는 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길을 걷습니다. 어느 날 문득 만난 그 길에서 사근사근 속삭입니다. 나무라는 이름을, 꽃이라는 이름을, 조약돌이라는 이름을. ㅅㄴㄹ



지구를 위한 한 시간 동안 / 불을 끄기로 했다 / “엄마, 불 끄자.” / “안 돼. 된장 담가야 돼.” / 엄마는 된장을 1시간 동안 담갔다 / 엄마는 지구보다 / 된장을 더 소중히 여긴다 (지구 대신 된장을 살렸다, 5년 김채은/우연히 만난 그 길 52쪽)


이름을 산에 있는 나뭇가지, 돌, 나뭇잎으로 만드니 아름답다. / 우리는 자연에서 왔을까? (자연에서 왔을까?, 5년 전사비/우연히 만난 그 길 9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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