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꽃 만지는 시간 민음의 시 234
이기철 지음 / 민음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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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4


《흰 꽃 만지는 시간》

 이기철

 민음사

 2017.5.22.



  우리가 서로 따스하게 손을 맞잡으면 우리는 서로 따스한 기운을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등돌리다가 차갑게 쏘아보면 우리는 서로 차가운 기운을 끌어들입니다. 싱그러이 흐르는 냇물을 손으로 만지면서 마시기에 냇물을 알고 배우고 스스로 냇물이 되어요. 시멘트덩이에 가둔 수돗물을 그냥그냥 마시기에 수돗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수돗물에 젖어듭니다. 《흰 꽃 만지는 시간》은 흰꽃을 만지며 스스로 흰꽃이 되는구나 하고 느끼는 이야기가 살짝 흐릅니다. 때로는 흰꽃을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받아들이고, 때로는 흰꽃이 곁에 있어도 못 알아보고 못 느끼고 못 배우는 하루라고 해요. 왜 어느 때는 제대로 보면서 받아들이고, 왜 어느 때는 감쪽같이 못 보면서 못 끌어들일까요? 두 눈으로만 보려 하기에 놓칠 수 있고, 두 눈을 떴으나 마음을 트지 않기에 모를 수 있어요. 우리는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아요. 마음으로 함께 봅니다. 마음에 담은 씨앗을 키우면서 나란히 보고, 마음에서 씨앗으로 자라는 생각을 돌보면서 새롭게 봅니다. 볼 줄 알기에 느끼려 하고, 느낄 줄 알기에 배우려 해요. 배울 줄 알기에 사랑하려 하고, 사랑할 줄 알기에 바야흐로 기지개를 켜면서 활짝 피어나려 합니다. 삶자리에 어떤 꽃을 두는 하루인가요? 삶자리에 꽃이 없다면 무엇을 두는 아침인가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은 / 내 입던 옷이 깨끗해진다 / 멀리서 부쳐 온 봉투 안의 소식이 / 나팔꽃 꽃씨처럼 우편함에 떨어진다 / 그 소리에 계절이 활짝 넓어진다 / 인간이 아닌 곳에도 위대한 것이 많이 있다 (스무 번째의 별 이름/2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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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 실천문학 시인선 21
윤재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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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0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

 윤재걸

 실천문학사

 2017.9.16.



  시골이라는 곳에는 일자리가 많습니다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 하면서 시골은 나날이 텅 빕니다. 이 빈자리는 나라밖에서 돈을 벌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하나 메꿉니다. 오늘날 시골을 돌아보면 시골에서 일자리를 스스로 찾아서 즐겁게 뿌리내리도록 하는 길에는 마음을 안 씁니다. 하나같이 서울로 보내어 ‘서울 일자리’만 찾도록 돈을 들이고 힘을 쏟아요. 서울은 미어터지고, 서울에 모이는 이들은 서로 다투어야 하며, 집값이나 물건값이나 일삯을 둘러싸고 복닥일밖에 없어요. 이제라도 온나라가 ‘시골 일자리’를 알려주고 가르치는 길로 바꾸어야지 싶습니다.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는 온통 서울나라가 된 흐름을 안타깝고 슬프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줄줄이 흐릅니다. 예부터 서울을 높이고 시골을 낮추던 삶길이 얼마나 억지스러운가를 차근차근 짚습니다. 임금하고 벼슬아치가 있대서 서울을 높이고, 흙지기가 있대서 시골을 낮추던 버릇을 못 떨치는 모습을 나무라는 목소리도 함께 흐릅니다. 글쓴이는 묻습니다. 서울에서 떠나야 하기에 밀려난 삶이라고 여길 까닭이 없지 않느냐고. 서울을 떠나는 길이야말로 하늘나라 꿈나라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맑은 물하고 바람하고 숲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답도록 북돋우는 아름터이지 않느냐고. 서울은 다툼이요, 시골은 지음이 아닌가 하고. ㅅㄴㄹ



사람 사는 일의 / 올곧음을 숭상하고 // 삶의 바른 자세를 / 세상에 깨우치기 위해 // 언제 어디서나 / 바른 말과 글로써 // 사람의 도리를 닦고 / 세상을 밝히며 // 앞장서 이를 전하리라! / 조상님들의 뜻 끝내 펼치리라! (경의재―기산 별업 2/23족)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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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손경하 지음 / 산지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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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8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손경하

 산지니

 2015.8.24.



  작은아이가 스스로 저녁을 끓이는 저녁입니다. 아홉 살을 살아가는 작은아이는 스스로 배고프면 스스로 챙길 줄 압니다. 다만 스스로 못 챙기거나 안 챙길 때도 있는데, 신나게 놀 적에는 배고픈 줄 몰라서 안 먹습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함께 살아가며 가만히 지켜보다가 싱긋 웃습니다. 이러면서 제 어린 나날을 되새깁니다. 틀림없이 몸애 새겼을 테지만 좀처럼 못 떠올리는 어린 나날, 제가 어떻게 하루를 지었나 하고 돌아봐요. 저도 틀림없이 우리 아이들처럼 신나게 놀 적에는 배고픈 줄 잊거나 몰랐습니다. 아홉 살 무렵이면 손수 밥을 끓일 수 있었어요. 스스로 하고 손수 짓는다는 하루란 참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무엇이든 새롭거든요.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를 읽는데, 책끝에 붙는 비평이 대단히 깁니다. 비평을 덜어내면 단출한 시집일 텐데 길어도 너무 깁니다. 더구나 갖은 이론을 줄줄이 짜맞추느라 시를 말하는 글인지, 이론잔치를 벌이는 셈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홀가분한 길손으로 이 땅에 왔다면, 두 손을 고이 내려놓고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보다는, 두 손으로 무엇이든 새롭게 짓는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홀로 가볍기에 홀가분하다인데,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배우며 스스로 사랑하는 걸음입니다. 시가 좀 투박하다면, 시를 말하는 글도 좀 투박하다면 좋았을 텐데요. ㅅㄴㄹ



익숙한 솜씨로 회를 치고 있다 / 나는 군침이 도는 입맛을 다시며 / 그 살육의 현장을 돌아앉아 / 잔인한 쾌감을 등 뒤로 음미하고 있지만, / 실은 나는 속이 편칠 않다 / (나는 죽이질 않았어. 내가 죽이지는 않았어. / 보라. 나의 손은 깨끗해. 나의 손에는 피가 묻질 않았어. 나는 다만 회가 먹고 싶을 뿐이야.) (공범자/138∼13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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꿘투 삶창시선 33
이장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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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7


《꿘투》

 이장근

 삶이보이는창

 2011.9.8.



  배운 적이 없기에 모르는 채 아무렇게나 하기도 합니다. 배운 적이 없지만 스스로 길을 찾아서 새롭게 하기도 합니다. 배운 적이 있기에 함부로 굴기도 합니다. 배운 적이 있으나 스스로 떨쳐내어 새롭게 하기도 합니다. 배웠기에 잘하지 않고, 안 배웠기에 못하지 않아요. 언제나 마음으로 흐르거나 움직이는 삶이지 싶습니다. 슬기로운 길을 배웠어도 안 가는 사람이 있고, 바보스러운 버릇을 배운 바람에 그대로 가는 사람이 있어요. 《꿘투》를 읽으며 얼핏얼핏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이 시집이 나온 2011년 즈음만 해도 ‘사내인 문학평론가나 시인’은 이러한 시를 꾸밈없다(정직하다)고 말했겠구나 하고요. 2020년대를 앞둔 요즈음에도 이 시집을 똑같이 말할 만할까요? 삶이나 어깨동무를 배우지 못한 채 함부로 풀어낸 이야기로 느끼다가 책을 덮습니다. 제아무리 사내란 몸을 입고 태어났어도 가시내를 노리개로 삼을 수 없고, 이를 글로 나타내는 일이 꾸밈없는 문학이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서로 사람이요 사랑인 줄 안다면 아무 글이나 안 쓰리라 느껴요. 아직 몰랐으면 이제부터 배울 노릇이요, 아직 덜 배운 채 섣불리 시나 문학이란 이름을 앞세우지 말 노릇이지 싶습니다. 누구나 무엇이나 홀가분하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노래란 총질이나 송곳질이 아닙니다. 노래란 어깨동무하는 춤사위입니다. ㅅㄴㄹ



각 방의 소리가 드나들던 문. 깊은 밤에는 그녀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녀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방에는 밥그릇이 몇 개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외로운 밤이면 문에 귀를 대고 잠들기도 했었는데, 한번은 가까운 곳에 누워 신음을 뱉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나도 따라 자위를 한 적이 있다. (소리의 조감도/35쪽)


뜨거운 밥그릇을 들고 오는 손 / 밥집 아주머니의 닳은 손 / 아직 폐경은 멀었는데 / 잡아도 설레지 않을 것 같은 손 / 저 손 잡고 / 연애는 할 수 없으나 / 저 손 잡고 / 실컷 울 수는 있을 것 같아서 (손/3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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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 시인선 35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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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3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문학과지성사

 2009.5.15.



  시를 쓸 수 없다면, 시쓰기를 못한다기보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는 줄 모른다는 뜻이곤 합니다. 삶을 고스란히 시로 옮기면 되는데, 아직 제 삶을 그리고 싶지 않다든지, 제 삶을 시로 그린들 대단하지 않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맞닥뜨리거나 맞이하면서 지을 살림을 헤아리면서 즐겁거나 바쁘기에 굳이 시를 떠올리지 않기도 해요. 그런데 종이에 글로 옮기기에 시가 되지 않습니다. 슬프거나 기쁜 모든 이야기를 혀에 얹어서 입으로 터뜨리면 바로 시라고 할 만합니다. 글로 옮기지 않더라도 시요, 말로 읊는 모든 이야기는 노래이면서 시이곤 합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을 읽는데, 무엇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벼이 수다를 풀고 흘려보내도 될 만하지 싶습니다. 꼭 문학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꼭 작품이란 모습으로 깎거나 다듬어야 하지 않습니다. 꼭 시집으로 묶는다든지, 시인이라는 이름을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시라는 이름을 붙이자면, 먼저 즐거이 수다를 펼 노릇이요, 살림을 노래할 일이고, 하루를 꿈으로 그리는 길로 가야지 싶습니다. 짜서 맞춘다고 해서 시가 되지 않아요. 짜서 맞출 적에는 짜맞춤입니다. 짜맞춘 조각이겠지요. 이 땅에 시집이란 이름이 붙은 수다가 너무 많지 싶어요. 노래가 되지 못한 수다가 참 많구나 싶어요. ㅅㄴㄹ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 맑게 씻은 / 접시 하나 꺼낸다 //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 아무것도 없구나 /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2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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