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문학동네 시인선 99
안정옥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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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1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안정옥

 문학동네

 2017.12.9.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바람이 쌀쌀한 삼월 첫무렵에 제비꽃이 핍니다. 제비꽃은 봄가을에 제법 쌀쌀하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타고서 꽃망울을 터뜨려요. 올해로 아홉 해째 봄맞이를 하는 작은아이는 제비꽃을 톡톡 따더니 입에 대고 후후 붑니다. 자그마한 나팔이라고 여겨요. 작은 꽃송이가 작은 꽃나팔이라는 생각은 어린이만 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보다가, 어쩌면 작은 제비꽃나팔은 이 봄에 새롭게 깨어나려고 더 따스한 볕을 기다리는 숱한 풀동무를 부르는 노래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를 읽습니다. 시쓴이 말대로 돌아서면 그만입니다. 돌아서니 그만이고, 돌아서서 쳐다보지 않으니 우리한테 안 보이고 잊힙니다. 돌아선 등에는 찬바람이 휭하니 붑니다. 그런데 그이가 우리 눈앞에서 돌아섰기에 찬바람이 불지 않아요. 사랑을 우리 마음속이 아닌 ‘그이가 내밀거나 어루만질 손길’에서 찾기에 ‘돌아선 그이 등’에서 등쌀을 느끼면서 스스로 사랑을 짓이기지 싶어요. 제비꽃이 꽃나팔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쉬워요. 누가 알려주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스스로 ‘넌 봄꽃나팔이로구나’ 하고 여기기에 꽃나팔이 되어요. 그늘은 스스로 되고, 어둠은 스스로 되며, 미움이나 시샘이나 생채기도 스스로 되어요. 그리고 스스로 아물 뿐 아니라 스스로 샘물을 길어올려 사랑이 됩니다.



자는 척하면 아버지가 나를 안아 건넌방으로 가는 몇 초, 내리고 싶지 않은 비행, 허공에 떠 날아간 몇 초가 있었다 아버지의 그늘, 커서도 그런 그늘 뒤집어쓰고 싶은 탓에 구더기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이 그늘에서 저 그늘로 (그늘을 보내오니/3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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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네 점집 걷는사람 시인선 1
김해자 지음 / 걷는사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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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59


《해자네 점집》

 김해자

 걷는사람

 2018.4.30.



  비닐집에서 자라는 푸성귀는 빗물이나 햇볕·햇살·햇빛이나 바람을 모릅니다. 거름이나 수돗물이나 난로는 알 수 있지만, 벌나비라든지 새나 개구리도 모르기 마련입니다. 비닐집에서 자라는 푸성귀는 구름이나 눈이나 벼락이나 별도 모르겠지요. 비닐집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만큼 바라보면서 알 테고, 이러한 숨결이 잎사귀나 줄이나 열매에 그대로 스며듭니다. 《해자네 점집》에 흐르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시쓴이가 스스로 겪거나 부대끼는 이야기를 읽고, 시쓴이를 둘러싼 뭇사람이 저마다 치르거나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못난 사람 이야기는 못난 대로 아름답습니다. 잘난 사람 이야기는 잘난 대로 곱습니다. 시집 하나를 사이에 놓고서 못나거나 잘나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듯 어우러집니다. 오늘 우리가 선 곳이 어디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오늘이 지나 모레가 찾아올 적에 어느 길을 걸으려나 하고 헤아립니다. 하늘이 온통 먼지투성이라고들 하는데, 이 땅은 어떤 결일까요? 하늘에 앞서 이 땅이 먼저 먼지투성이가 되었기에 하늘도 온통 먼지투성이 모습은 아닐까요? 우리 스스로 이 땅에 뒤덮고 만 시멘트랑 아스팔트를 걷어내지 않는다면 하늘은 더더욱 뿌연 먼지구름이 되지 않을까요? 꼬리치레도룡뇽이 살 수 없는 터라면,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만한 터여야 사람도 노래합니다. ㅅㄴㄹ



이래 서로 올려다보이 얼매나 좋노? 쪼매만 기들려보래이, 고마 꽃멍울이 꽃때옷 될 날이 올끼니까네, 뻘소리 치던 그 여자 어느 날은 만만한 내 이름 두 자 빌려 돌라더니, 걸어 댕기는 점집을 차리고 말았으니 그 이름하야 해자네 점집이라 카더라 (해자네 점집/47쪽)


소녀가 채 되기도 전에 나는 소녀가장, 바보 같은 장발장, 나는 빵만 훔치지는 않아, 허공을 떠도는 포개지지 않는 입술들,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는 남의 살 내게 필요한 것은, 한 모금의 젖은 술과 함께 젖은 눈물뿐이었네. (여신의 저울/5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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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맛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3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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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2


《불맛》

 구광렬

 실천문학사

 2009.12.14.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헤아릴 수 있다면 글 한 줄은 언제나 노래가 될 만합니다. 스스로 어느 자리에 있는 줄 모르거나 등돌린다면, 스스로 선 자리에서 누구하고 손잡거나 어깨동무할 적에 즐거운가를 잊거나 잃는다면, 스스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한 이하고 사랑스레 걸음을 떼지 않거나 곰살궂지 않다면, 우리 이야기는 노래가 되지 못합니다. 《불맛》을 읽으며 글쓴이 마음이 어떻게 물결을 치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가를 느낍니다. 글로 옮긴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집 아이들을 가만히 새로 바라봅니다. 신나는 낯빛을, 시무룩한 낯빛을, 활짝 웃는 낯빛을, 눈물이 글썽한 낯빛을, 졸음이 가득한 낯빛을, 배불러서 꼼짝을 못하겠다는 낯빛을, 그야말로 온갖 낯빛을 헤아립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겪거나 치르는 삶이란, 이처럼 맞닥뜨리면서 새로 배우고 받아들여서 피어나려는 몸짓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그렇겠지요. 신문종이로 라면 냄비 뚜껑을 삼든, 신문종이로 불쏘시개를 삼든, 또 책으로 고운 넋을 읽든, 책을 베개 삼아 눕든, 책을 어디에 받침대로 삼든, 그때그때 배우는 숨결이 다르면서 아기자기합니다. 저한테는 모닥불을 성냥을 그어 붙이는 불맛, 이 모닥불에서 아이들하고 춤추는 저녁놀이가 더없이 애틋합니다.



라면을 끓이려 냄비를 찾으니 뚜껑이 없다 / 부스럭 신문지 한 장을 올린다 // 신문 속 사람들이 웃고 있다 / 무얼 보고 있나 / 눈동자의 초점을 따라가니 / 접힌 부분의 뒷면이 궁금하다 (오, 아프리카/14쪽)


어머닌, 사진만 보고 결혼하셨다 / 시집이라고 와보니 솥엔 구멍이 나 있고 / 양은 주걱은 닳아 자루까지 닿았으며 / 숟가락은 없고, 나뭇가지를 분질러 만든 / 짝 모를 젓가락들만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최무룡/7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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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의 기적 창비시선 395
박희수 지음 / 창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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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9


《물고기들의 기적》

 박희수

 창비

 2016.3.11.



  모든 말은 저마다 깊거나 넓습니다. 깊지 않은 말이 없고, 넓지 않은 말이 없습니다. ‘되살다’는 안 깊고 ‘재생’이 깊을 수 없어요. ‘하늘’은 얕고 ‘공중’이 깊을 수 없어요. “덧없는 무늬”는 하찮고 “허무한 문장”이 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글을 써서 돈하고 이름하고 힘을 얻으려는 이들은 ‘고요’라 하기보다는 ‘무음’이라 하고, ‘이물’이라 하기보다는 ‘선수’라 하면서 말멋을 낸다고 여깁니다. 《물고기들의 기적》을 읽으면서 시집을 아우르는 한자말 잔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이런 한자말 잔치는 쉰 줄쯤 넘은 시인이 으레 벌이는데, 쉰 줄도 마흔 줄도 아닌 젊은 시인이 이렇게 시를 쓰니 어느 모로는 놀랍습니다.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이물·고물’이란 말을 들었어요. 바닷가에서 늘 배를 보았고, 뱃말을 들었거든요.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가서 지내던 스무 줄 무렵, 서울내기가 ‘밀물·썰물’이란 말을 모르고 ‘미세기’는 더더구나 몰라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바닷물을 보지 않고서 살면 이런 말을 모르는구나 싶어 새삼스러웠어요. ‘물고기’를 모르면 ‘생선’이라 합니다. 좋거나 나쁜 갈래짓기가 아닌, 어느 자리 어느 삶인가를 돌아봅니다.



꽃의 재생(再生)을 생각하며 꽃대와 꽃받침은 공중에서 허무한 문양을 지웠다 (죽음의 집 1/10쪽)

그건 쥐씨(氏) 일가가 오늘 모두 죽었다는 뜻이었다 (삼면화三面畵/27쪽)


치죄자(治罪者) 구름이 맑게 흘렀다 (죽음의 집 2/81쪽)


무음(無音)을 만난 사람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라 말해주었다 (게의 다리를 지닌 남자/135쪽)


날카로운 선수(船首)가 들어오고 있었다 (시인의 말/17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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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두 애지시선 51
박승자 지음 / 애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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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1


《곡두》

 박승자

 애지

 2013.9.5.



  ‘게릴라성 호우’가 일본말인 줄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2019년에서야 이 말씨가 일본에서 스며든 줄 알아차렸습니다. 그렇다고 일본말이라서 안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갑자기 퍼붓는 비라면 예부터 ‘소나기·소낙비’라 했어요. 이런 말을 젖히고 굳이 ‘게릴라성 호우’라 해야 했을까요? 요새는 ‘물폭탄’ 같은 말을 쉽게들 쓰는데, 눈이 쏟아지면 ‘눈폭탄’이라 하려나요? 눈이 쏟아질 적에 ‘함박눈·큰눈’이라 했듯, 비는 ‘함박비·큰비’예요. 《곡두》를 읽으면서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은 자리를 되새깁니다. 이 땅에서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이들이 으레 겪으면서 빠져들거나 잠겨야 하는 고단한 눈물자국이 곳곳에 번집니다. 그럴 만하다고, 이렇게 읊을밖에 없다고, 노랫가락을 펴는 말에서도 이런 근심이며 걱정이 묻어나겠다고 느낍니다. 이제 이 나라는 좀 달라질 만할까요. 글을 마음껏 쓰는 가시내가 하나둘 늘면서, 집일뿐 아니라 바깥일을 거뜬히 해내는 가시내가 차츰 늘면서, 비로소 이 나라에 따스한 손길이 퍼질 만할까요. 목숨을 품는 마음일 적에 나라살림도 마을살림도 집살림도 살뜰히 건사합니다. 우리 손이며 다리가 싱그러운 숨결인 줄 알아차리는 하루일 적에 모든 말은 노래가 되겠지요.



버스 문이 열렸다 / 아무도 내리거나 타지 않았다 / 열려 있는 문으로 / 무슨 이유인지 / 한 번도 이 고장을 떠나 본 적 없는 바람이 / 긴 망토를 펄럭이고 / 버스 안을 천, 천, 히 둘러보고 / 다시 내렸다 (시월/8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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