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창비시선 313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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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0


《정말》

 이정록

 창비

 2010.3.25.



  비가 오니 비를 맞으며 걷습니다. 어린이로 살 적부터 어버이로 사는 오늘에 이르도록, 비를 맞으면서 싫은 일이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볕이 쨍쨍 내리쬐니 불볕을 실컷 맞습니다. 어린이로 놀 적부터 어버이로 일하는 요즈막이 되도록, 불볕이건 땡볕이건 꺼린 일이 없습니다. 둘레에서는 그러지요. ‘이쪽으로 와서 비를 그으라’거나 ‘그늘로 와서 해를 가리라’고요. 그렇지만 비맞이도 볕맞이도 즐기고, 바람맞이도 밤맞이도 아침맞이도 즐깁니다. 모두 ‘맞이’합니다. 《정말》을 펴면, 시쓴님이 걸어가는 길에 맞이한 삶이 이런 이야기하고 저런 줄거리로 흐릅니다. 어머니한테서 들은 삶노래가 시로 태어나고, 이웃하고 나눈 하루가 시로 거듭납니다. 가만히 보면, 늙건 젊건 어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삶노래’입니다. 따로 ‘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구성진 가락입니다. 구성질 뿐일까요? 멋들어지지요. 멋들어지기만 할까요? 곱지요. 곱다뿐인가요? 사랑스럽지요. 우리 곁에 숱한 삶노래가 어머니 입에서 아버지 손에서 할머니 다리에서 할아버지 눈빛에서 흐릅니다. 이 삶노래를 넌지시 받아서 글로 옮길 줄 안다면, 누구나 시님이 되고 노래님이 되겠지요. 글쓰기 강의나 수업을 받지 않아도 시님이 됩니다. 아니,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 모든 사람이 노래님입니다. ㅅㄴㄹ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야 할 시인 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16쪽)


시골 엄니를 위해 누님은 에어컨과 스카이 라이프를 달아드리고 아우는 텔레비전과 청소기를 사드렸는데, 맏아들인 나는 병아리 눈곱만큼 나오는 전기료와 벙어리 전화세 내드리는 게 전부다 (하늘접시/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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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온 최측의농간 시집선 6
사윤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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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7


《파온》

 사윤수

 최측의농간

 2019.1.24.



  글을 적어 놓기에 나중에 되새깁니다. 아니, 글을 적어 놓지 않더라도 마음에 제대로 새겼으면 언제라도 또렷이 돌아봅니다. 글을 빚은 뒤로 숱한 이야기를 옮겨적어서 누구라도 들여다보도록 해놓았다면, 글을 빚는 바람에 숱한 이야기를 마음에 차곡차곡 새겨서 노래를 부르며 물려주던 살림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파온》에 적힌 글을 읽습니다. 온누리를 떠돌던 숱한 이야기를 하나둘 갈무리한 살림자국을 읽습니다. 작은 꾸러미에 깃든 노래는 지난날에 누구나 입으로 흥얼거리던 삶이요, 저마다 노래로 주고받던 살림이며, 서로서로 춤이랑 잔치로 피워올리던 사랑이었지 싶어요. 오늘 우리는 시인이란 이름을 얻기도 하고, 소설가란 이름을 쓰기도 합니다. 글쓴이나 책쓴이가 있고, 글읽기나 책읽기를 합니다. 여기에서 살짝 생각한다면, 지난날에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말을 지었어요. 누구나 손수 살림을 가꾸면서 노래를 가꾸었어요. 저마다 사랑을 스스로 길어올리면서 이야기도 새삼스레 길어올렸습니다. 평화박물관을 찾아가던 노래님 걸음걸이를 떠올립니다. 배롱나무가 철 따라 거듭나는 몸빛을 헤아립니다. 서울버스도 시골버스도 똑같이 달리는 길을 그립니다. 논 둠벙 못마다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하는 여름입니다. ㅅㄴ



꽃을 벗은 배롱나무 / 한 그루 하얀 불꽃이네 (배롱나무/13쪽)


서울에 있는 평화박물관 / 조계사 근처에 있다던데 찾지 못하겠네 / 행인들에게 여러 번 물었으나 / 모른다, 들어본 적 없다 하네 / 내가 평화! 라고 속삭이면 암호를 주고받듯 / 박물관! 하며 서울 사람들은 다 알 줄 알았는데 (평화박물관/38쪽)


천 원만 내면 누구에게나 평등한 온기 / 벌벌 움츠렸던 몸 나른하게 녹여준다 (겨울시내버스/10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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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우르르르 흘렀다 시놀이터 8
다섯수레 엮음 / 삶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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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6


《내 마음이 우르르르 흘렀다》

 평택 아이들 104명

 다섯수레 엮음

 삶말

 2018.12.5.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빈틈없이 가눌 줄 아는 어린이가 드물게 있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성하기도 하지만, 아직 한글을 잘 읽지 못하기도 하고, 제 뜻이나 생각을 한글로 담아내기 어려운 어린이가 무척 많습니다. 어른은 어떨까요? 우리는 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살펴야 할까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보다는, 글에 담을 이야기를 살필 노릇 아닐까요? 먼저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살짝 손질해 줄 일이라고 느낍니다. 또는 사투리로 여겨 가볍게 지나가 주어도 됩니다. 《내 마음이 우르르르 흘렀다》는 평택 어린이 이야기가 흐르는 동시집입니다. 아이들은 입으로 말하듯 홀가분하게 글을 씁니다. 때로는 글씨가 틀리고, 때로는 띄어쓰기가 어긋납니다. 그러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ㄱ이나 ㄲ 받침을 틀린들, ㅅ이나 ㅊ을 가리지 못한들,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 어른도 매한가지예요. 어른도 맞춤법이며 띄어쓰기를 얼마든지 틀릴 만합니다. 한글을 못 읽어도 되어요. 입으로 말을 술술 하면 넉넉하고, 스스로 살아낸 이야기하고 살아갈 꿈을 신나게 들려주면 아름답습니다. 우르르르 마음이 흐릅니다. 쏴르르르 마음이 물결칩니다. 화르르르 마음이 타오릅니다. ㅅㄴㄹ



학교 끝나고 / 차에서 엄마가 말했다. / “오늘은 저녁으로 피자 먹자.” /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 마음껏 먹으라 해놓고선 /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했다. / 그래도 좋다. (운수 좋은 날, 죽백초 4년 손형주/24쪽)


걸어가는데 벚꽃을 봤다. / 벚꽃은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쳐서 피는데 / 겨우 일주일밖에 못 산다. / 벚꽃에게 힘을 돋우어 주고 싶다. (벚꽃, 죽백초 4년 이지성/27쪽)


내 시험지에 빨간 비가 내리면 / 생각나는 / 엄마 // 오늘은 / 집에 / 늦게 들어가야겠다. // 엄마한테 / 혼나기 전에 / 놀다 가야겠다. (시험지, 평택이화초 5년 서희석)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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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지문 펄북스 시선 3
조문환 지음 / 펄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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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8


《바람의 지문》

 조문환

 펄북스

 2016.12.22.



  사다리를 받치고 뽕나무 곁에 섭니다. 먼저 풀밭에 두 발을 디디고서 손이 닿는 나뭇가지에서 오디를 훑습니다. 잘 익은 오디는 손가락을 살짝 대기만 해도 토옥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옛날에는 장대로 뽕나무를 살살 털어서 오디가 후두둑 떨어지게 했다는데, 그 말을 알겠습니다. 익은 오디는 쉽게 떨어지고 덜 익은 오이는 안 떨어지거든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서 톡톡 오디를 훑으면 땅바닥하고 다른 바람이 훅훅 끼칩니다. 이러면서 뽕나무 말소리를 들어요. 너희가 올해에는 우리를 눈여겨보아서 이렇게 오디를 잔뜩 내놓는다고, 실컷 누리라고 하는 말을. 《바람의 지문》에 흐르는 노랫소리는 시쓴이가 바람을 맞으면서 들은 이야기일 테고, 하루하루 살아낸 나날이 가만히 되짚으니 바람인 듯싶다고 느낀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손그림(지문)’은 손이 있어야 생깁니다. 바람한테도 손이 있을까요? 아마 바람은 따로 손이 있지는 않되,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껏 손을 쭉쭉 내밀 수 있지 싶어요. 바람은 온몸이 손이면서, 손이 온몸이라 할까요. 바람은 손이 없으면서 있다고 할까요. 예부터 “바람이 어루만진다”라든지 “바람이 쓰다듬는다” 같은 말을 쓴 사람들 마음을 읽어 봅니다. ㅅㄴㄹ



봄이가 짖는다 / 바람 보고 짖는다 / 나는 새 보고 짖는다 / 비행기 보고 짖는다 (봄이/13쪽)


육학년 가을 소풍 가는 날 / 백 원짜리 지폐가 위대하게 여겨지던 시절에 / 아버지는 돈 백 원을 주셨다 // 어떻게 그 돈 만드셨는지 알았기에 / 소풍 따라나선 보따리장수들 기웃만 거리다 / 내 그림자 손잡고 돌아왔다 (백 원/4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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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희망이 아니다 삶창시선 52
표성배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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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3


《내일은 희망이 아니다》

 표성배

 삶창

 2018.11.14.



  없을 적에는 빈손이요, 빈손일 적에는 홀가분합니다. 텅 비어서 쓸쓸할 수 있지만, 텅 비었으니 어디에도 매이지 않으면서 훨훨 날아오를 만합니다. 그리고 텅 빈 터라 밑바닥부터 새롭게 걸음을 내딛을 만하고, 밑바닥에 있으니 더 고꾸라질 데도 없어요. 이제부터 날아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내일은 희망이 아니다》는 어제도 오늘도 꿈을 그리기 어려운 나날에서 허덕이는 숱한 이웃을, 또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살려고 버틴다기보다 살아남으려고 버티는 몸짓을 애틋하면서 눈물섞인 손끝으로 담아내요.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꿈같은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모레가 꿈이 아니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어요. 다가오는 모레에 우리 마음에 품은 뜻을 이룰는지 못 이룰는지 까마득할는지 모르더라도, 우리한테 꿈이 없다고 어느 누구도 입을 꿰매지 못합니다. 해가 사라져 이 땅에서 자라던 푸나무가 모두 말라죽으면 윽박쟁이 벼슬아치도 똑같이 말라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너울벼락이 몰아치면 이웃나라 핵발전소뿐 아니라 이 나라도 똑같이 휩쓸기 마련입니다. 너울벼락은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라고 비껴가지 않아요. 비구름은 온누리를 고루 돌면서 촉촉히 적십니다. 해님은 이 별을 빙그르르 덥혀 줍니다. 바람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끝없이 흐르면서 모두한테 푸르고 파란 새숨이 되어 줍니다. ㅅㄴㄹ



살기 위해 가슴에 별을 품고 하루하루 버텨도 // 떨어지지 않은 사과는 없었다 // 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 떨어진 사과 앞에서 // ‘왜?’라고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낙화 시대/16쪽)


한참 공원 의자에 누워 // 호숫가를 거니는 별들 헤아리다 // 슬그머니 // 여보― // 사랑해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날려본다 (하늘 호수/60∼6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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