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 풀꽃 시인 나태주 등단 50주년 기념 산문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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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13


《구름이여 꿈꾸는 구름이여》

 나태주

 일지사

 1983.12.25.



  즐겁게 삶을 노래하는구나 싶은 교사를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날 수 있다면 대단히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이들 즐거운 노래님한테서 어버이하고는 다른 숨결을 느끼면서 새로운 배움길을 걸어가는 눈빛을 맞아들이리라 봅니다. 교과서를 잘 풀어내기에 좋은 교사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자리란 ‘먼저 태어났’거나 ‘짚어서 가리키는’ 몫이 아닌, ‘길을 같이 가는 동무가 되어 마음을 나누는’ 사이라고 느껴요. 《구름이여 꿈꾸는 구름이여》를 새삼스레 들춥니다. 시를 쓴 지 쉰 해를 맞이했다는 노래님이 갓 노래를 펼 적에 선보인 시집입니다. 수수하기도 하고, 살짝 멋을 부렸구나 싶기도 하고, 얼핏 헤매는구나 싶으면서도 스스로 설 땅을 든든히 밟으려는 몸짓이 보이기도 합니다. 1983년은 저로서는 국민학교 2학년이며, 폐품에 조회에 숙제에 체벌에 시험에 방위성금에 반공표어에 반공웅변에 운동회 연습에 청소에 환경미화에 교육감 시찰에 난로 때기에 주번에 …… 하루에 빈틈 하나 없이 고단한 때였습니다. 이무렵 ‘교사 시인’은 교장이나 교육감하고 어떻게 맞섰을까요? 또 아이들을 어떤 눈빛이나 손길로 마주했을까요? 언제나 먼지 풀풀 날리는 길에서 먼지범벅 땀범벅 눈물범벅이던 어릴 적이 떠오릅니다. ㅅㄴㄹ



가장자리가 아니라 / 한가운데, 아이들 떠들기도 하고 / 싸우며 울기도 하는 / 한가운데, // 산들바람 부는 / 풀밭이 아니라 / 먼지 날리는 / 저자 한복판, // 거기가 나 있을 자리다. / 거기가 나 편안히 아주 편안히 / 눈 뜨고 길이 잠들 자리다. (29/60쪽)


어둠 속에서 건져지는 / 나의 마음, 나의 육체, / 소리 속에서 일어나는 불꽃 (67/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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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그늘 문학과지성 시인선 355
이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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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12


《회화나무 그늘》

 이태수

 문학과지성사

 2008.10.31.



  어쩌면 일찌감치 할 수 있던 일일 텐데, 어제부터 비로소 큰아이한테 “네가 손수 그리는 네가 손수 밥짓는 이야기 그림도 얼마든지 책이 될 수 있단다.” 하고 이야기하면서, 이제부터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길을 알려줍니다. 그동안 큰아이는 생각나는 대로 바로 종이에 연필로 슥슥 그렸는데, 이렇게 하고서 복사집에서 똑같이 뜨면 번지거나 흐리거든요. 어떻게 해야 안 번지거나 안 흐린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연필로 가볍게 그리고서 두꺼운 펜으로 다시 그리고 지우개로 마무리. 품은 꽤 들지만, 그만큼 그림이 오래 남고 깔끔해요. 《회화나무 그늘》을 읽으며 여러모로 갑갑했습니다. ‘돈을 벌어서 집에 가져다주는 일’, 또 ‘회사에서 맡기는 일’에서 드디어 풀려난다면서 오롯이 ‘시쓰기에만 마음을 쏟겠다고 하는 시쓴님 다짐’이 어쩐지 썩 홀가분한 말로 스미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삶을 노래하고 꿈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거든요. 돈을 벌어서 집에다 가져다주더라도 이 발자국이 얼마든지 시 한 줄입니다. 회사에서 맡기는 일에 바쁘더라도 이 살림길이 모조리 시 두 줄입니다. ‘자연을 찬미하는 글’은 숲을 노래한다고 하면서 정작 숲하고 하나되지 않으니 따분해요. 언제나 노래하면 모두 시예요. ㅅㄴㄹ



쳇바퀴가 돈다. 내가 돌리는 / 이 쳇바퀴는 잘도 돌아가지만 / 돌고 돌아도 제자리다/ 이른 아침부터 / 돌리고, 자정 넘어서도 빌빌거리지만 / 헛바퀴다. 도대체 무얼 돌렸는지 (나의 쳇바퀴 2/12쪽)


아우가 다른 세상으로 먼저 가고 / 잊으려 할수록 길이 비틀거린다. 이따금 /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 그렇게 날이 가고 / 달이 몇 번 바뀐 오늘은 왠일인지 (아우 먼저 가고/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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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선생 상경기 - 백성 시집 문학의전당 시인선 210
백성 지음 / 문학의전당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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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11


《백수 선생 상경기》

 백성

 문학의전당

 2015.8.28.



  꽃을 읽으려면 스스로 꽃이 되면 됩니다. 어떻게 사람이 꽃이 되느냐고 물을 까닭은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몸이 아닌 꽃이라는 숨결만 마음에 품으면 어느새 우리 누구나 꽃이 되어 꽃넋하고 하나가 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맞는 벗이 있다면 왜 마음이 맞을까요? 나하고 다른 너이지만, 그야말로 다른 줄 제대로 깨달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열기에 고운 벗님하고 마주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지핍니다. 꽃읽기도 이와 같아요. 책읽기도 이와 같지요. 언제나 우리가 먼저 스스로 마음을 열면 무엇이든 다 되면서 다 하는구나 싶습니다. 《백수 선생 상경기》는 스스로 ‘백수’가 되려 하고, 또 ‘서울로 가려’ 하는 몸짓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이 시집을 읽는 저는 ‘흰손’도 ‘서울길’도 마음으로 그릴 뜻이 없어서 심심합니다. 살살이꽃은 그냥 꽃이 아닙니다. 꽃다지꽃이나 꽃마리꽃도 그냥 꽃이 아니에요. 한겨레 옛이야기에 ‘숨살이꽃·피살이꽃’이 나옵니다. 어떤 꽃이기에 숨이며 피를 살리는 꽃이요, 살살 춤을 추는 꽃일까요? 가벼운 삶도 무거운 삶도 없이 오롯이 삶이 있을 뿐이니, 이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려는 눈빛이라면, 한결 통통 튀면서 멋스럽고 재미난 시가 저절로 샘솟으리라 봅니다. ㅅㄴㄹ



코스모스는 그냥 꽃이 아님이 분명하다 / 그는 어쩌면 우주 밖 어느 행성에서 파견된 스파이일지도 모른다 (코스모스에 대한 다른 생각/50쪽)


저녁 식사를 끝내고 / 다섯 살짜리 손녀와 103번 채널 / 디즈니의 ‘올리비아’를 손뼉을 마주치며 / 웃고 보는 그 시간에도 (가벼운 일상의 무거움/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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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160
한승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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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10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

 한승원

 문학과지성사

 1995.5.15.



  사랑하기에 쓰다듬지 않습니다. 쓰다듬고 싶으니 쓰다듬을 뿐입니다. 쓰다듬기에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쓰다듬은 그저 쓰다듬입니다. 사랑이 되려면 언제나 고스란히 빛나는 사랑으로 너랑 내가 따로 있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네가 내 곁에 있으니 사랑이 아니요, 내가 너한테 찾아가기에 사랑이지는 않아요.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는 시쓴님이 살아오며 부대낀 자리마다 어떤 숨결이 흐르는가를 옮겨적는데, 스스로 허울이라는 이름을 자꾸 뒤집어쓰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살기 알맞게 음습하지 못하므로 허공을 떠도는 이끼의 포자들이 나의 시공에 가시적으로 정착하기를 기대하면서(3쪽)”는 무슨 소리일까요. 이렇게 밝혀야 시가 되지는 않겠지요. 젖꽂지를 ‘乳頭’로 적으면서 이녁 몸뚱이를 슬며시 에둘러야 시가 되지도 않을 테고요. 글로도 얼마든지 사랑을 그릴 수 있고, 문학이란 이름에도 사랑을 실을 수 있겠지요. 꺼풀을 벗을 수 있다면, 아니 꺼풀을 벗길 수 있다면 언제나 모든 말이 노래로 흐르겠지요. 궤짝에 담긴 감알은 한 해를 살뜰히 품었습니다. 봄볕을 여름바람을 가을비를 안기에 겨우내 달콤하게 온몸을 녹이는 열매가 되어요. 겨울 한복판에 손에 쥔 감알에 드리우는 별빛을 읽습니다. ㅅㄴㄹ



정강이 차게 쌓인 눈 속에서 / 한 뼘쯤 솟은 사슴뿔 같은 / 느릅나무의 숨결 소리 / 그대의 소리를 그렇게 듣는다 (설원에서-촛불 연가 11/20쪽)


잉크빛과 보랏빛이 반반이 섞인 / 오디 따먹으려고 / 처음 뽕나무에 올라갈 때 / 떨어질까 싶어 벌벌 떨었다 / 밑동이 겨우 팔뚝만하고 / 가지가 손가락 두 개 굵기인 앳된 뽕나무는 / 내 몸 못 이겨 바들바들 떨었다 (乳頭-촛불 연가 1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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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김은영 지음, 김상섭 그림 / 창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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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09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김은영 글

 김상섭 그림

 창비

 2001.7.30.



  놀이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놀고 싶지 않은 아이는 참으로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달리 아이가 놀기를 바라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아이한테 일을 시켜야 해서 아이가 못 놀게 하기보다는, 아이가 시험공부나 학교수업을 해야 한다고 여겨서 못 놀게 하지 싶습니다. 초등학교라는 곳을 다니면서 하루에 한나절이라도 마음껏 노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공부도 수업도 하지 않고서 적어도 한나절을 뛰놀고 꿈꾸며 활짝 웃고 노래하는 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는 시골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 눈높이로 쓴 동시를 들려줍니다. 어디까지나 어른 눈높이입니다. 아이 눈높이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교사라는 자리인 터라 아이들을 반듯하게 이끌거나 가르치는 이야기가 흐르고, 서울처럼 크지 않고 수수한 아이들을 지켜본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런데 교사란 자리라 하더라도 ‘아이들아, 같이 놀자? 날 어른으로 여기지 말고 너희랑 똑같은 동무로 여기며 같이 놀자?’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김치를 꺼리고 샐러드를 먹더라도 ‘너희 입맛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억지로 김치 먹이지 맙시다. 날배추도 배추지짐도 배추된장국도 있습니다. 동시를 어른 눈으로 쓰면 억지스럽습니다. ㅅㄴㄹ



찬주의 주머니 속엔 / 놀이가 들어 있네 / 동무도 들어 있고 / 가을도 들어 있네 (20∼21쪽/찬주의 바지 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샐러드는 잘 먹어도 / 김치는 싫어하는 아이들아 / 케첩은 잘 먹어도 / 된장 고추장은 싫어하는 아이들아 //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 된장 고추장에 / 푸르딩딩한 풋고추 / 푹 찍어 먹어 보자 // 아려 오는 혀와 입술 / 타오르는 목구멍 / 입 크게 벌리고 / 허― / 숨을 내뱉으면 / 혀 밑으로 / 끈끈하고 맑은 침이 고이리라 (54쪽/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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