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별까지 푸른도서관 75
신형건 지음 / 푸른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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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18


《별에서 별까지》

 신형건

 푸른책들

 2016.4.15.



  아이가 문득문득 읊는 모든 말은 노래입니다. 우리가 귀밝은 어버이라면 아이가 조잘조잘 노래하는 모든 말마디를 그때그때 마음에 새기고, 곧잘 글로도 옮겨서 시집 여러 자락 꾸릴 만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자라면 아이는 스스로 제 말을 삐뚤빼뚤 또박또박 갈무리하면서 사랑스러운 시집을 꾸준히 베풀 만하고요. 그렇다면 어른 몸인 사람은? 시를 이렇게 써야 할 일도 저렇게 꾸며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스스로 읊는 모든 말이 노래인 줄 알아차려서, 여느 때에 하는 모든 말을 노래로 삼아서 마음에 먼저 새기고 가끔 글로 옮기면 되어요. 《별에서 별까지》는 시쓴님이 따로 푸름이한테 맞추어 쓴 청소년시라고 합니다. 그런 티가 나기는 했으나 굳이 티를 내지 않아도 돼요. 동화책을 어린이만 읽지 않듯 동시를 어린이만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청소년시는 푸름이만 읽어야 할까요? 어느 만큼 철이 들 무렵 온누리를 하나하나 깨닫도록 ‘그 길을 먼저 밟고 산 사람’으로서 ‘열다섯 살 철노래’를 부르고 ‘열여덟 살 철노래’를 읊으면 될 뿐이에요. 말재주는 안 부리면 좋겠습니다. 앞서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틀을 세우지 말고 그저 푸르면 됩니다. ㅅㄴㄹ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 나이가 많으면 다 / 어른인 줄 알았는데, / 지금은 이도 저도 / 다 아닌 것 같아. / 어른? 어른? / 아른아른. (어른/67쪽)


공원 매점 앞에 서서 / 너를 기다리는데 / 저 앞에 빛바랜 파란색 의자 하나가 / 가만히 앉아 있다. (의자/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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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나리아리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02
안용산 지음 / 실천문학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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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17


《메나리 아리랑》

 안용산

 실천문학사

 1995.12.30.



  큰아이가 저녁으로 고구마를 찌겠노라 하기에 ‘그렇다면 읍내마실을 다녀올까?’ 하고 생각합니다. 고구마를 찌면서 찐빵을 얹으면 같이 누릴 테니까요. 이동안 큰아이는 집에서 그림놀이를 누립니다. 저는 시골버스를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며, 또 타고 나가며, 다시 시골버스를 기다려 타고 들어오는 길에 시집 한 자락하고 인문책 한 자락을 다 읽습니다. 이러고도 틈이 있어 수첩을 펴서 ‘토란’이란 동시를 한 자락 써 보았습니다. 토란알이며 토란잎이 들려준 마음소리를 찬찬히 옮겼지요. 《메나리 아리랑》을 읽는데 좀 심심합니다. 왜 심심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우수나 경칩”이란 이녁 노랫자락에서 얼핏 느낍니다. 논도 아니구 밭도 아니어도 어떻겠습니까. 흙지기도 아니고 장사님도 아니면 어떠한가요. 꼭 무슨 이름이어야 하지 않고, 꼭 뭐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무슨 목소리를 낸다거나 구태여 무엇을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메나리는 메나리입니다. 일노래는 일노래입니다. 설거지를 해도 일이고, 벼를 베어도 일이며, 아이를 가르쳐도 일입니다. 기저귀를 갈아도 일이고, 별을 노래해도 일이며, 개미하고 놀아도 일이지요. ㅅㄴㄹ



산도 아니구 들도 아니구 / 논도 아니구 밭도 아니구 / 농사꾼도 아니구 장사꾼도 아니구 / 요새 부는 바람만큼이나 / 잴 수 없는 게 (우수나 경칩/20쪽)


그랴그랴 / 겨울은 쉬는 게 아녀 /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잘 타오르는 / 들불처럼 / 즈들 스스로 알 것은 / 모두 아는 것이여 (들불/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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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칼 현대시학 기획시인선 3
허형만 지음 / 현대시학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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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16


《모기장을 걷는다》

 허형만

 오상

 1985.9.30.



  1985년이라는 해에 나온 시집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이 시집은 묵었을까요, 아니면 그해를 밝히거나 보여주는 꾸러미일까요. 1985년에 나온 여러 시집을 한자리에 놓고서 바라봅니다. 다 다른 사람들 모습이 다 다른 책으로 앞에 있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살림을 꾸리던 길이 다 다른 노래가 되어 여기 있습니다. 어느 글은 서른다섯 해가 흘러도 새롭습니다. 어느 글은 그해에 나온 글인지 모르도록 펴낸날을 감추면 어제 쓴 글일 수 있겠다고 여길 만합니다. 1985년을 살던 그 사람은 그해에 무엇을 보았을까요? 2020년을 사는 우리는 올해에 무엇을 볼까요? 《모기장을 걷는다》를 넘기다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 시집이 눈에 안 들어온 까닭을 알겠습니다. 묵은 글이 되어야 비로소 읽힐 수 있는, 그렇지만 애써 더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을 목소리로 옮길 줄 알아야겠지요. 오늘 이곳에서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린다면, 오늘 쓰거나 읽는 모든 노래는 하루하루 가면 갈수록 더욱 덧없겠지요. 대학교는 이제 겨울방학일까요. 대학교수는 이제 무엇을 할까요. 교수란 이름은 몇 해쯤 짊어질 만할까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교수란 자리에 서고 나면 시힘을 죄다 잃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서울엔 모기가 없는 줄만 알았더니 / 휘황찬란호텔 커피숍 / 모기 두 마리 / 번득이는 칼날을 휘두르고 (서울 모기/11쪽)


세월의 머언 길목을 돌아 / 한 줄기 빛나는 등불을 밝힌 / 우리의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일월의 아침/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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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15


《우리들 소원》

 최명자

 풀빛

 1985.3.15.



  시를 잘못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저 시가 좋아서 읽는 분도, 시를 써서 시집을 묶고 싶은 분도, 시를 그야말로 잘못 압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을 ‘우리 스스로 겪고 마주한 대로 단출히 적으’면 고스란히 시입니다. 집안일도 아이돌보기도 안 했다고 하면, 설거지를 처음으로 거든 일을 시로 쓸 수 있고, 걸레를 처음 손수 빨아서 마루를 훔친 일도 시로 쓸 수 있습니다. 늘 도맡는 집안일이라면, 집안일을 놓고 하나하나 갈라서 “집에서 일하다”란 시집을 너끈히 묶어낼 만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버스 차장이란 일을 1980년대 첫머리에 하던 분은 그때에 《우리들 소원》이라는 시집을 내놓았습니다. 이러고서 수수한 ‘애 엄마’가 되었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이분이 ‘애 엄마’로 보낸 나날을 고스란히 옮긴다면 참으로 놀랄 만한 새로운 시가 태어날 텐데 하고 어림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수수한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한테서 받고,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을 맑은 눈빛으로 그대로 담아도 엄청난 시가 태어나겠지요. 멋지게 쓰려고 꾸미지 마셔요. 멋지게 꾸미면 시가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곱게 쓰려고 애쓰지 마셔요. 낱말만 곱게 가리면 시가 아니라 허울투성이입니다. 시는 오롯이 우리 삶을 노래하는 글입니다. ㅅㄴㄹ



은미는 시를 썼다 / 자도 자도 자꾸만 졸립다고 / 난 은미 시를 읽다가 / 자꾸자꾸 울었다 // 16세에 안내원 생활 시작해 벌써 2년 / 같은 또래 여학생 실었을 때 굴욕스럽고 / 되지 못한 손님 만나 욕도 많이 먹고 / 하루 17∼18시간 중노동에 시달린 몸은 /그저 소원이 실컷 잠자는 것이다 (우리들 소원/70∼71쪽)


한참 먹다 보니 다리 하나가 없다 / 닭다리는 분명 둘인데 / 하나 어디 갔을까? / 병신닭을 뜯다 보니 은근히 화가 난다. // 헤헤거리고 간사하게 웃어대던 / 통닭집 주인이 안면을 싹 바꾸고 / 아래위를 훑어보며 / 아, 빠뜨릴 수도 있는 거지 / 뭘 그리 따지냐는 식이다. (통닭/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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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창비시선 310
송경동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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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14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창비

 2009.12.30.



  어른도 배운 대로 말하고, 아이도 배운 대로 말합니다. 어른도 배운 대로 움직이고, 아이도 배운 대로 움직여요. 참하거나 착한 말씨나 몸짓이라면, 참하거나 착한 삶을 배웠단 뜻입니다. 건방지거나 몹쓸 말씨나 몸짓이라면, 건방지거나 몹쓸 삶을 배웠겠지요. 어떤 아이는 동무를 괴롭힙니다. 이 아이는 집에서 어버이나 마을 여러 어른한테서 시달리거나 들볶였겠구나 싶습니다. 또는 어른이 그렇게 구는 짓을 지켜보았을 테고요. 배우지 않고서는 그런 짓을 못 해요. 글 한 줄에 담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스란히 삶을 드러내는 하루라면, 시 한 자락도 스스럼없고 꾸밈없습니다. 이와 달리 허울이나 겉치레에 빠지거나 휩쓸린다면, 싯말을 꾸미거나 만들어 내려고 애씁니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펴면서 첫머리에 나오는 시가 꽤 힘차면서 단단해서 놀랍니다. 시집 첫머리 몇 꼭지를 지나고부터는 어쩐지 시에서 힘이 빠지고 두루뭉술해서 놀랍니다. 어떻게 이렇게 확 달라질 수 있나 싶어 시집을 다시 펼쳐 보지만, 사람을 두 가지로 놀래키는 셈이더군요. 끝으로 갈수록 아무 힘이 없고, 깃발꾼처럼 흐느적거립니다. 우리 삶터를 바꾸는 몸짓은 꼭 있어야겠습니다만, ‘전문운동’이 되면 시도 전문가 놀음이 되고 맙니다. ㅅㄴㄹ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 너무하다고 했다 // 내 과거를 캐려면 /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체증해놓고 얘기해야지 / 저 새들의 울음 /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 얘기해야지 /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 이게 뭐냐고 (혜화경찰서에서/11쪽)


아홉살 아이가 / 폐가 할 때 폐자가 한자로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 닫을 폐, 집 가 해서 / 닫힌 집, 즉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고 하자 / 아이가, 아하 대추리에 많은 집들이라고 한다 / 그래그래 하다가 씁쓸해진다 (황새울 가는 길/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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