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시인선 54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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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23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규리

 문학동네

 2014.5.10.



  누구한테나 꽃치마가 어울립니다. 둘러 보면 알아요. 꽃치마가 어울리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꽃바지가 어여쁩니다. 꿰어 보면 되어요. 꽃바지가 어여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언제 어디에서나 꽃차림이 될 만합니다. 스스로 꽃이 되고, 새롭게 꽃빛을 나누며, 새삼스레 꽃노래로 흐드러지면서 모든 앙금이며 멍울을 녹일 만합니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를 읽으면 꽃차림을 하려다가 수줍게 돌아서는, 자꾸 남 눈치를 보는, 이러다가 스스로 멍이 들려고 하는 소근말이 흐르는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나를 보는 눈’이 아니라면 다른 눈에 휘둘리기 좋겠지요. ‘남을 보는 눈’이 될 적에는 내 꽃치마가 어설프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우리가 언제나 ‘나를 보는 눈’으로 간다면 물결에 휩쓸리지 않아요. 물결을 타면서 까르르 노래합니다. 우리가 늘 ‘남을 보는 눈’으로 간다면 잔물결에도 꽈당 넘어집니다. 물결을 탈 엄두를 못 내고, 주눅이 들어 그만 노래를 깡그리 잊고 말아요. 눈길을 가다듬기에 삶은 노래로 피어나고, 이 노래는 가볍게 바람이 되어 온누리를 밝힙니다. 따로 온힘을 내야 하지 않습니다. 온눈이 되어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면 모두 꽃이 되고, 노래가 되니, 흉도 빌미도 티끌도 없습니다. ㅅㄴㄹ



어떤 일로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 자꾸 웃으라 했네 / 거듭, 웃으라 주문을 했네 / 울고 싶었네 / 아니라 아니라는데 내 말을 나만 듣고 있었네 (내색/18쪽)


어제 본 게 영화였을까 / 비였을까 // 애써 받쳐도 한쪽 어깨는 내 어깨가 아니고 / 한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국지성 호우/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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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 시전집
박서원 지음 / 최측의농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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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22


《박서원 시전집》

 박서원

 최측의농간

 2018.4.26.



  누가 시를 쓰는가 하고 돌아보면 으레 두 갈래이지 싶습니다. 첫째로는 삶을 노래하기에 시를 씁니다. 둘째로는 멋을 부리려고 시를 씁니다. 삶을 노래하는 시는 사람뿐 아니라 뭇숨결한테 싱그러이 퍼지면서 웃음눈물을 자아냅니다. 멋을 부리는 시는 그럴듯해 보이기에 꾸밈거리로 퍼지면서 겉치레로 흐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자장 노래할 뿐 아니라, 아이 손을 잡고 호호하하 웃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날마다 시를 씁니다. 책상맡에서 붓대를 놀려 종이를 채우는 이라면, 이름값에 돈벌이에 교수나 시인이라는 허울이 드높으면서 콧대가 높습니다. 《박서원 시전집》을 조곤조곤 읽으면서 삶을 노래하는 사랑이란 어디에서 비롯하여 어디로 흐르는 빗물 같은가 하고 그려 봅니다. 빗물은 언제나 모두가 됩니다. 바다에서 아지랑이로 피어나 구름을 이루어 내려오는 빗물이 있기에 숲이 푸르고 냇물이 맑으며 뭇열매가 자라요. 우리는 모두 빗물을 머금은 몸이자, 빗물로 하나인 숨결이에요. 노래가 되는 시라면 빗물일 테지요. 바다를 품고, 구름을 안고, 바름을 가르고, 땅을 적시고, 숲에 드리우고, 풀벌레에 과일에 깃들고, 다시금 가만히 빠져나와서 하늘로 오르는, 노래하듯 놀이하듯 춤추는 숨가락이 바로 시라고 할 만하겠지요. ㅅㄴㄹ



산은 물구나무 선 / 하느님 / 내가 가까이 가면 갈수록 / 멀어지고 / 멀어지면 가까워지는 / 하느님 (산/74쪽)


모르죠? // 당신 심장에 / 해바라기 씨앗 하나 / 숨어들었다는 것 (모르죠?/343쪽)


어둠 속에서 숲은 싱싱했다 / 이파리들은 더 푸르러져 / 붉어져만 가는 달을 삼키고 / 새 달이 내려보낸 두레박에 실려 / 내려오는 별들과 해님 한 덩이 (뱃길/4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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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현 - 박일환 시집 삶의 시선 28
박일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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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20


《끊어진 현》

 박일환

 삶이보이는창

 2008.12.15.



  나무가 쩍쩍 소리를 내며 쪼개집니다. 열 살로 접어든 작은아이가 도끼질에 사로잡힙니다. 대나무 마디를 어림해서 톱으로 켜고 둥그런 나무판에 대고서 척척 내리칩니다. 대나무로 널을 이어 발판을 꾸밉니다. 칼로 슬슬 깎아 젓가락을 삼습니다. 작은아이 몫 젓가락을 마무리하고서 아버지한테 한 벌을 깎아 내밉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쏴르랑쏴르랑 춤추던 대나무는 어느새 우리 집 곳곳으로 옮겨 옵니다. 작은아이가 깎은 대젓가락을 쥘 적마다 이 나무가 그동안 만난 바람 새소리 빗방울을 느낍니다. 땅에 뿌리를 박을 적에도 든든한 나무요, 우리 곁에서 세간이나 살림으로 바뀔 적에도 아름다운 나무예요. 《끊어진 현》은 교사란 자리에서 일하며 마주한 삶이며 사람을 몇 마디 이야기로 풀어내려 합니다. 벅차서 쉬고 싶은, 떠나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하소연하고 싶은,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흐릅니다. 틀에 박힌 교과서를 펼쳐야 하니, 교사란 일자리가 팍팍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시쓴님더러 꽃나무 좀 올려다보며 나무빛을 느끼라 하는 다른 교사가 있어요. 어디에 서든 안 대수롭지요. 즐겁게 꿈꾸는 마음이라면 노래할 수 있어요. 이제 줄을 이어 보셔요. ㅅㄴㄹ



아이들 가르치려 학교 가는 길 / 번잡한 앞길 버리고 호젓한 뒷길로 간다 / 혼자 휘어드는 좁은 골목길 / 담벼락에 나팔꽃 줄지어 피었는데 / 활짝 열린 봉오리 속으로 / 쏙 들어가 한숨 자고 싶다 / 등굣길 서두르는 아이들도 불러다 / 봉오리마다 한 명씩 들어앉히고 싶다 / 순하게 몸을 말고 들어앉아 / 잡스런 세상 말들 삭혀 내린 뒤 / 작고 단단한 씨앗으로 맺혀 / 세상아, 요 건방진 놈아 (나팔꽃 봉오리/14쪽)


“선생님, 잠깐 그 자리에 서 보세요” / 돌아보니 여선생님 한 분 빙긋이 웃는다 / “향기 좀 맡고 가시라구요” / 고개를 젖히니 바로 머리 위에 / 목련이 흐드러졌다 (향기/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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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통조림 문학의전당 시인선 203
김종애 지음 / 문학의전당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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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21


《거짓말 통조림》

 김종애

 문학의전당

 2015.6.26.



  서로 돕는 일이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도울 만하니 돕고, 어려우니 도와요. 도움을 받는 쪽에서도 매한가지예요. 어려우니 손을 벌립니다. 어려우니 고마이 손길을 받습니다. 한집안이라 여겨 돕곤 해요. 그럼요. 어버이가 아이를 돌보고, 언니 오빠가 동생을 돌봅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고, 한결 든든한 마음이며 몸이 됩니다. 그러나 이와 다른 한통속이 있어요. 한마음이 되어 어깨동무하는 길이 아닌, 꿍꿍이를 감추고 뒷길을 가리는 짓이기에 한통속으로 뻗어요. 우리는 어느 길을 가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어느 살림을 지을 사람일까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함함하다 하지요.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잘잘못을 놓고는 찬찬히 짚거나 따끔히 알려야겠지요.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함께 살아갈 만할 테니까요. 《거짓말 통조림》을 읽으며 비슷하면서 다른 길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시 한 줄로 새길을 짚을 수 있습니다. 수수하지만 힘차게, 투박하지만 단단하게, 조그맣지만 즐겁게 노래할 만합니다. 시쓴님이 여느 말씨를 쓰면 좋겠습니다. 멋들어진 말씨가 아닌 수수하거나 투박하거나 조그마한 살림자리에서 살림말을 쓰면 좋겠어요. ㅅㄴㄹ



“나 학생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 방망이 을러대는 전경에게 / 다급하게 외치던 무역회사 경리사원은 / 무척이나 대학생이 되고 싶은 / 스무 살이었다 (빚/13쪽)


여의도에는 골목이 없다. / 그런데도 가끔 길을 잃는다. / 자주 가는 설렁탕집이 여의도우체국 다음 블록인지 / 국민은행 본점 다음 블록인지 헷갈린다. (공중골목/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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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민음의 시 166
서효인 지음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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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19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서효인

 민음사

 2010.5.31.



  톡 건드린다고 했으나 그만 와르르 무너지며 와장창 깨지기도 합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합니다. 어쩔 줄을 모릅니다. 앞으로 들을 꾸지람에 머리카락이 곤두섭니다. 어떤 잘못이든 누구나 저지를 수 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이 말썽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다음이에요.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요? 두근두근하는 아이를 먼저 고이 품고서 달랠까요, 무너져서 깨진 것들을 쳐다볼까요?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을 읽으며 어린 날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시쓴님이 겪은 지난삶이 노래마다 아프게 흐릅니다. 시를 쓰는 오늘 마주하는 이야기가 따갑게 어우러집니다. 왜 그때 그들은 그렇게 해야 했을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때 그들은 참다운 사랑도 삶도 슬기도 보거나 듣지 못했으리라 느껴요. 그때 그들한테 찬찬히 알려주거나 이끈 다른 어른이 없었지 싶어요. 이제 우리 몫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도 그때 그들하고 똑같이 굴면 좋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새롭게 꿈꾸는 걸음나비가 되어 손을 맞잡는 쪽으로 돌아서면 즐거울까요. 싸움꾼 길이 있습니다. 사랑둥이 길이 있어요. 사이좋은 숲길도 있고요.  ㅅㄴㄹ



선생은 실컷 때렸다 엉덩이에 담뱃불이 붙을 때까지, 그리고 날 선 숨을 기다란 코털 사이로 들이켜며 꺼지라 했다 그들은 교실의 모서리로 깊이 꺼졌다 (분노의 시절―분노 조절법 중급반/22쪽)


그는 세탁기를 붙잡고 / 아무 버튼이나 누른다 / 그는 구운 생선의 미소 / 무너져 가는 회사의 등이 굽은 양식어 (그리고 다시 아침/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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