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어두운 저편 창비시선 308
남진우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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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7.

노래책시렁 191


《사랑의 어두운 저편》

 남진우

 창비

 2009.11.20.



  2021년 언저리에 널리 퍼진 말씨 하나는 ‘대면·비대면’입니다. 예전에도 이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기는 했을 테지만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려 “만나는·안 만나는”이나 “보는·안 보는”이나 “마주하는·얼굴 없는”처럼 쓰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라(정부)에서 내려보내는 말씨를 그냥그냥 씁니다. 이제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뿐 아니라 열린배움터도 거의 닫을 판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야겠지요. 배움터하고 배움책은 어디에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글쓰기·글읽기’가 아닌 ‘문학창작·문학비평’은 삶에 이바지할 만할까요? 《사랑의 어두운 저편》을 읽으며 배움책(교과서)스럽구나 싶었습니다. 노래가 아닌 ‘시라는 문학’이 되려면 이러한 틀을 맞추고, 이렇게 솜씨를 부리고, 이처럼 줄거리를 짜야 한다고 가르치네 싶어요. ‘문학교육’이란 말까지 쓰는 판입니다만, 글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습니다. 글은 언제나 말이고, 말은 언제나 마음이고, 마음은 언제나 생각 한 줄기에서 태어납니다. 생각 한 줄기에서 태어나는 마음은 삶으로 드러나고, 이 삶을 말에 얹어서 글로 옮깁니다. 배우거나 가르칠 글이 아닌, 살며 삶으로 웃고 울면 어느새 노래(시)가 되고 꽃(동화·소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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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 / 당신의 집 지붕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 뚜벅뚜벅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 당신의 불안한 잠에 큰 발자욱을 찍어놓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14쪽)


전갈 한 마리 소리없이 네 발뒤꿈치에 다가와 / 가만히 물고 지나갔다 // 사막 입구 쓰러진 네 몸 위로 / 둥근 달이 떠올랐다 / 멀리 출구에서 불어온 한줄기 바람이 / 네 귀에 뭐라고 속삭이고 지나갔다 (生/44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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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큰바람 - 1995 제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31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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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1.

노래책시렁 190


《미시령 큰바람》

 황동규

 문학과지성사

 1993.11.30.



  배움터(학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노래(시)를 물음풀이(시험문제)에 맞추어 조각조각 뜯고 줄거리(내용)하고 알맹이(주제)하고 글감(소재)을 알아내도록 가르칩니다. 그런데 노래를 ‘줄거리·알맹이·글감’으로 뜯어야 할까요? 가락(운율)을 짚고 빗댐말로 헤아려야 할까요? 저마다 다른 사람이 어느 한 가지를 저마다 다르게 느끼기에 저마다 달리 노래하기 마련입니다. 이웃이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느끼고 읽어서 주고받으려는 뜻이 아니라면, 굳이 노래를 가르치거나 배워야 할까요? 《미시령 큰바람》을 읽는 내내 노래는 누가 누구한테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노래는 그저 부릅니다. 잘난 노래나 못난 노래란 없어요. 노래를 놓고서 물음풀이를 한다면 모두 눈속임이나 거짓이지 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일 노래인데, 어떻게 줄거리나 이야기를 하나로 짜맞추어야 할까요? 곰곰이 보면 이 나라에서는 ‘문학비평·문학창작·문학수업·문학강좌’가 있습니다.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사랑하면서 사람이 숲으로 서는 길을 나누는 자리는 좀처럼 안 보입니다. 글쓰기를 배워서 틀에 맞추는 문학이 아닌,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삶에서 저마다 피어나는 노래이기를 빕니다.


ㅅㄴㄹ


오백 년은 넘어 뵈는 느티나무가 지나가고 / 오르페우스처럼 / 나는 휘딱 뒤돌아본다. / 오토바이 하나가 눈앞에서 확대되려다 만다. (지방도에서/26쪽)


마음속 악마가 속삭인다. / 뒤돌아보지 마라. / 뒤를 보이지 마라. / 시간 됐다, 출석부와 책을 끼고 곧장 강의실로. (마왕魔王/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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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문을 열었을 때처럼 문학의전당 시인선 336
최상해 지음 / 문학의전당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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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6.18.

노래책시렁 196


《당신이라는 문을 열었을 때처럼》

 최상해

 문학의전당

 2021.4.6.



  제가 태어난 곳을 두고서 ‘○○사람’이라는 사람이 있고, 제가 오늘 살아가는 곳을 가리켜 ‘○○사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사람’이라는 두 길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삶터를 꾸준히 옮긴다면 ‘○○사람’이라는 이름은 자꾸 달라지겠지요. 누가 저더러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으레 ‘숲사람’이라는 한 마디를 합니다. 《당신이라는 문을 열었을 때처럼》은 강릉사람에서 창원사람으로 터전을 바꾸면서 살림도 바꾼 나날이 무르익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노래님한테는 두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언뜻 보면 두 이름이 걸맞을 텐데, 삶을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노래사람’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싶습니다만, 삶을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사랑사람’, 삶을 꿈꾸는 사람한테는 ‘꿈사람’, 삶을 웃는 사람한테는 ‘웃음사람’을 이름으로 붙여야지 싶어요.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란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눈물을 짓겠습니까? 겉멋을 부리겠습니까? 목청을 높이겠습니까? 그림책을 곁에 두겠습니까? 풀꽃을 보듬겠습니까? 하늘을 마시겠습니까? 바다를 품겠습니까? 어느 사람이든 안 나빠요. 스스로 빛나는 숨결인 줄 알면서 노래하면 넉넉할 뿐입니다.


ㅅㄴㄹ


도시에서는 제법 뿌리를 잘 내린 나무일수록 매년 수난을 겪는다 가지가 싹뚝 잘린 몸뚱이로 서 있는 가로수를 두고 볼썽사납다느니 말끔해서 보기 좋다느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체념하는 이도 있다 (정리해고/43쪽)


아는 이 하나 없는 창원에 이삿짐을 풀고부터 당신은 일터와 집을 오가느라 바빴고 하루하루 낯선 도시의 풍경과 거친 사투리를 받아들이느라 길 잃은 아이 같았던 어린 아들은 소복소복 쌓인 시간 앞에 신부를 맞아들이고 (창원 사람/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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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노래꽃
#노래꽃
#책
#책집노래
#책집을노래해

오늘 문득 떠오른
어느 마을책집이 있다.
시골에서도 깊은 두메에 사니
마음으로만 찾아가기 일쑤인데
"우리말 동시 사전"으로
'책'을 쓴 적 있되
"어린이 사전 풀이"로 쓴 동시라서
"책집노래"를
새로 쓰기로 했다.

#숲노래동시
#우리말동시
#우리말동시사전

쓰면서 즐거웠고
옮기면서 기뻤다.

모든 책집노래는
모든 마을책집이
마음으로 들려준 삶노래이다.

늘 고맙습니다

#마을책집에서책을만나요
#쉬운말이평화

"쉬운말이평화"도 나란히
날개 달며 훨훨 곳곳에 드리우기를.

#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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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시선 303
강성은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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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6.16.

노래책시렁 189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강성은

 창비

 2009.6.22.



  어릴 적에 동무하고 가로세로놀이를 즐겼습니다. 가로세로를 다섯이나 일곱쯤 그리고는 하나부터 스물다섯을 적어 넣기도 하지만, 사람이름이나 꽃이름이나 나무이름을 적어 넣기도 합니다. 이런 놀이를 하다가 ‘꽃이며 나무를 거의 모르는’ 줄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참말로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초·중·고등학교)를 다니기만 해서는 나무하고 사귈 일이 드뭅니다.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면 나무하고 어울릴 일이 더더욱 드물어요.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읽고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큰고장살이를 한다면 구두를 신을 일이 잦습니다. 아니, 늘 신겠지요. 시골살이를 한다면 으레 맨발입니다. 이따금 고무신을 뀁니다. 구두살이를 하는 큰고장에서 날마다 무엇을 마주하는 길일까요? 구두살림을 잇는 큰고장에서 나날이 어떤 마음이 되고 눈빛이 되어 삶을 바라볼까요? 발에 딱딱하게 대야 하는 신만큼, 사람 사이에서도 일터 언저리에서도 딱딱하게 버티거나 단단하게 일어서야 할는지 모르는데, 구두차림으로는 나무를 못 탑니다. 무엇보다 나무가 싫어해요. 나무는 맨발을 반깁니다. 풀밭도 맨발을 반겨요. 꽃송이는 맨손을 반기지요. 딱딱한 신은 멀찌감치 밀치고서 맨발에 맨손으로 풀밭에 드러눕고 나무를 타면서 노래해요.


ㅅㄴㄹ


우리는 달려간다 중세의 검은 성벽으로 악어가 살고 있는 뜨거운 강물 속으로 / 연필로 그린 작은 얼룩말을 타고 죄수들의 호송열차를 얻어타고 (오, 사랑/13쪽)


등뒤에서 악령들이 내 긴 머리를 땋았다 / 희고 가녀린 손으로 / 입속에서 허연 김을 내뿜으며 / 나는 손가락을 뻗어 / 뿌연 유리창 위에 밤의 다른 이름들을 써내려갔다 (환상의 빛/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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