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창비시선 27
이가림 지음 / 창비 / 198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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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10.21.

노래책시렁 238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가림

 창작과비평사

 1981.5.30.



  요새는 아이들이 말을 못 배우고 글을 배웁니다. 예부터 아이들은 말을 배우면서 마음을 가꾸는 길을 스스로 노래로 돌보고 무럭무럭 자랐어요. 오늘날 아이들은 말하고 동떨어지면서 글을 꾸미는 하루에 길들어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는 퍽 잘 꾸민 글입니다. 반드레레하게 손질해 놓은 글입니다. 이렇게 꾸미거나 손질한 글이기에 ‘시’라는 이름을 붙이는구나 싶습니다. 이처럼 꾸미거나 손질한 글은 나쁠 수 없습니다. 그저 ‘꾸민 글’이나 ‘손질한 글’에 그칠 뿐입니다만, ‘문학’으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에서 들려주거나 외우더군요. 왜 배움판(학교·강의)에서는 ‘꾸민 글’이나 ‘손질한 글’만 들려주거나 외우거나 따라쓰도록 할까요? 왜 삶글이 아닌 꾸밈글을 베껴쓰기(필사)를 시키거나 할까요? 왜 살림글이 아닌 꾸밈글에만 ‘문학’이란 껍데기를 씌울까요? 모든 ‘글자랑(문학상·백일장)’은 덧없습니다. 누구나 날마다 삶을 이야기하면 넉넉할 뿐이요, 이 이야기를 옮기면 고스란히 글입니다. 자랑할 삶이 아니니, 자랑할 글이 아닙니다. 말(국어)과 노래(문학)는 셈겨룸(시험문제)으로 다룰 수 없고, 가르칠(강의)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노래합니다. 삶이 없으니 멋을 찾더군요.


ㅅㄴㄹ


나를 짓밟아다오 제발 / 수세식 변소에 팔려 온 이 비천한 몸 / 억울하게 모가지가 부러진 채 / 유리컵에나 꽂혀 썩어가는 외로움을 / 이 눈물겨운 목숨을, 누가 알랴. / 말라비틀어진 고향의 얼굴을 만나면 / 죽고 싶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 슬픈 전라도 계집의 죄, / 풀꽃들만 흐느끼는 낯익은 핏줄의 벌판은 / 이미 닳아진 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오랑캐꽃 1/26쪽)


가시내야, 가시내야 / 우리도 예전엔 / 한개 고운 피리였단다 / 가느랗게 心琴 울리는 피리였단다 (피리타령/4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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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돼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480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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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10.21.

노래책시렁 248


《피어라 돼지》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16.3.3.



  허물을 벗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어렵다고 여기는 둘레 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니까, 스스로 어려운 척입니다. 고치에 들어가면 깨어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고치에 깃들어 잠드는 까닭은 모든 옛모습을 고스란히 내려놓고서 나비로 태어나려는 꿈인 터라, 잘 했건 못 했건 다 놓아야 하는데 그만 안 놓으려 하니 나비로 못 깨어날 뿐입니다. 남이 불러 주는 이름에 젖으면 스스로 지을 이름을 잊습니다. 치켜세우거나 깎아내리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남이 내 삶을 누리지 않아요. 내가 남 삶을 즐기지 않아요. 나는 오로지 나인 줄 느끼고 알면 됩니다. 《피어라 돼지》는 스스럼없이 터뜨리는 말과 숨결과 목소리와 발걸음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숨결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밝히고 뚜벅뚜벅 걸어갈 줄 아는 노래님이 우리나라에 있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다만, 아직 바깥(사회·문단·언론·독자)에 얽매이는구나 싶어요. 굳이 바깥을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여야 하지 않아요. 입방아를 찧건 말밥에 올리건 왜 쳐다봐야 할까요? 글밭(문단)에 기웃거리거나 달책(문학잡지)에 글을 실어야 노래님일 수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오늘을 노래하는 사람이기에 노래님입니다. ‘시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노래’를 합니다.


ㅅㄴㄹ


사실 이 나이의 여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 우리나라에선 죄를 짓는 일과 같습니다 / 수박에게나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 사랑이라고 하는 세상의 저속을 생각해봅니다 (수박은 파도의 기억에 잠겨/79쪽)


적어주는 대로 읽어대는 코리안 앵커처럼 / 이해도 피해도 없는 종잇장에 박힌 평평한 말씀 …… 울며불며 애원해도 척결! 척결! / 모릅니다, 제 소관이 아닙니다 /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라고 외치는 걸 가장 좋아하는 / 국어사전 고양이가 펼쳐주는 납작한 말씀 (국어사전 아스퍼거 고양이/1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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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재다 푸른사상 시선 150
박설희 지음 / 푸른사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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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10.21.

노래책시렁 253


《가슴을 재다》

 박설희

 푸른사상

 2021.11.10.



  사람들 누구나 노래(시)를 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노래를 썼고 불렀고 지었고 나누었습니다. ‘지난날 누구나’라 할 적에는 임금·벼슬아치·글바치를 뺀 모든 사람입니다. 임금·벼슬아치·글바치는 우리말을 안 쓰고 중국말을 읊고 한문을 적었습니다. 붓힘을 쥔 이들한테는 노래가 없이 이름(명예)·돈(재산)·힘(권력)만 흘렀습니다. 붓·먹·벼루·종이를 구경조차 못 하던 수수한 사람들은 흙·풀꽃나무·비바람·해·별·바다·숲을 품으면서 손수 살림을 짓고 삶을 누리며 사랑을 나누었기에, 아이를 낳아 돌보는 나날을 고스란히 노래로 옮겨서 일하거나 놀거나 쉬거나 늘 새롭게 피어났습니다. 《가슴을 재다》를 읽었습니다. ‘글’이라는 허물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노래로 피어나리라 봅니다. ‘문학’이라는 고치에서 나올 수 있다면 노래가 되리라 봅니다. ‘시’라는 이름을 벗을 수 있다면 바로 노래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남을 구경한 모습을 옮길 적에는 노래하고 멉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 누구나 부르고 나누며 아이들이 물려받아 새로 부르던 노래는, 늘 스스로 짓는 삶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울고 웃은 오늘입니다.


ㅅㄴㄹ


지구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 휘파람소리일 거야 / 마실 나온 청년처럼 / 설렘과 감탄을 실은 휘파람 (휘파람/40쪽)


길 한복판에 있던 장끼가 / 자동차를 뒤늦게 발견하고 / 허둥지둥 길을 가로질러 // 달린다, 새가, 장끼가, / 날개를 접고 / 길짐승처럼 마구 달린다 (위기/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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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선 나무
유경환 지음, 이혜주 그림 / 창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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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9.24.

노래책시렁 245


《마주 선 나무》

 유경환

 창작과비평사

 2002.11.30.



  〈조선일보〉에서 글꾼(기자)으로 일했기에 나쁜 사람일 수 없습니다만, 서슬퍼렇던 나날 그곳에서 일삯을 받은 사람을 좋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문화부장·편집부장·논설위원을 하면서 우두머리(대통령)를 비롯한 힘꾼(권력자)하고 사이좋게 지낸 이가 노래꽃(동시)을 썼다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더구나 이 노래꽃을 ‘창비어린이(창작과비평사)’에서 선보였다면, 펴냄터가 넋이 나갔다고 밝히거나 ‘윤석중 동심천사주의를 어린이한테 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여길 만해요. 《마주 선 나무》를 읽으면 “때묻은 깃발”이라든지 “나만이 아는 그리운 노래”라든지 “1학년 그 귀여운”처럼 도무지 어린이스러울 수 없는 눈길을 엿볼 만합니다. 아이를 귀염둥이로 내려다보는 ‘귀염글(동심천사주의)’이자, ‘어른만 느끼는 옛생각(추억)에 잠긴 글치레’입니다. 아이들은 “때묻은 깃발”을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리운 노래”를 읊을 때가 아니에요. 신나게 땀흘리며 뛰놀며 노래를 쩌렁쩌렁 외칩니다. 누구나 글을 쓸 노릇이요, 어느 곳에 몸을 담갔어도 나쁠 수 없습니다. 그저 구경하는 마음이나 몸짓은 구경스런 글에 스스로 갇히고, 구경할 뿐이기에 자꾸 꾸미고 치레하고 덧바릅니다. 그만 구경하고 삶자리로 갑시다.


ㅅㄴㄹ


기차 / 지나간 뒤 // 때묻은 / 깃발처럼 // 흩날린다. (뒷모습/14쪽)


층계를 내려올 땐 / 가슴 속 / 노래가 / 찰랑대지요 // 나만이 아는 / 그리운 노래를 / 심심할 땐 혼자서 / 부르지요. (혼자 노는 아이/26쪽)


깃발처럼 나부끼는 잎 / 마음껏 뻗어 기지개 켜던 팔 // 1학년 그 귀여운 두 귀에 / 얼마나 옛얘기 담아 줄 수 있을까 (나무의자/11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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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시선 477
이설야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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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9.24.

노래책시렁 246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설야

 창비

 2022.5.27.



  스스로 안 겪으면, 말하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누가 남긴 글·책이나 그림·빛꽃(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꾸리는 분이 부쩍 늘어나는데, 글이나 그림만으로도 그곳에 마음으로 날아가서 겪을 수 있겠지요. 다만, 마음으로 날아가지 않고서 그냥 따오기만 하거나, 몸으로 겪지 않은 삶을 문득 옮기려 한다면, 자꾸 꾸밈말을 하게 마련입니다. 마음에 피어나기에 생각이고, 생각을 소리로 옮기기에 말이고, 말을 누구나 눈으로 읽도록 그렸기에 글입니다. 말을 옮겨 글이고, 생각을 옮겨 말이고, 마음을 옮겨 생각인데, 마음에 피어나는 생각은 저마다 스스로 겪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싶다면 스스로 삶을 지으면 됩니다. 대단한 삶이나 초라한 삶은 없어요. 놀라운 삶도 덧없는 삶도 없습니다. 그저 오늘 이 삶을 스스로 고스란히 받아들여 사랑하면, 누구나 글님이요 노래님입니다.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글님 하루를 그립니다. 어린 날 언니가 다니던 ‘심지 음악감상실’을 저도 열일고여덟 살에 가 보았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 한 자락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그곳에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하고 함께 들으니 며칠 동안 온몸이 지잉 울리더군요. 모든 하루는 언제나 노래입니다. 노래이기에 삶입니다. 


ㅅㄴㄹ


공실이 많은 빌딩과 빌딩 사이 어두운 골목길 / 바람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 달빛이 찢어지고 있었다 / 유리창이 깨지고 있었다 (심지음악감상실/17쪽)


영수증을 재활용 종이로 알았다 / 내가 분류하고 나열한 생의 종목들 / 하나같이 구질구질한 쓰레기였다 (감열지/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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