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감자 - 박승우 동시집
박승우 지음, 김정은 그림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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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1



‘뿔 난 염소’도 아기 앞에서 얌전한데

― 생각하는 감자

 박승우 글

 김정은 그림

 창비 펴냄, 2014.11.15. 9000원



  박승우 님이 선보인 동시집 《생각하는 감자》(창비,2014)를 읽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박승우 님이 동시에서 들려주듯이 ‘생각 안 하고 싹이 트는 감자’는 없으리라 느껴요. 감자도 동백나무도 시금치도 콩도 ‘저마다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싹을 틔우고 새 가지를 내거나 꽃을 피운다고 느껴요. 모든 풀과 나무는 저마다 즐겁거나 기쁜 꿈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자라리라 느껴요.


  사람도 생각을 하지요. 날마다 새롭게 생각을 키우고, 언제나 새삼스레 생각을 북돋워요. 어제하고는 다른 하루를 생각하고, 어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삶을 생각해요.



뿔 난 염소도 / 아기 염소한테 / 젖 먹일 때는 / 가만히 있는다 (염소 2)


어른 염소 두 마리가 / 머리 들이박고 싸웁니다 // 아기 염소 두 마리도 / 머리 들이박고 싸웁니다 (염소 6)



  그런데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를 연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제하고 똑같거나 비슷한 하루가 되리라 느껴요.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를 연다면,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즐겁거나 기쁜 일은 좀처럼 맞이하기 어렵겠구나 하고 느껴요.


  생각하는 아침이란 ‘하루를 여는 살림’을 생각하는 아침이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스스로 생각을 지으면서 맞이하는 하루란 ‘오늘은 어제하고 다를 뿐 아니라 새롭게 피어나는 삶’이 되도록 씩씩하게 일어서려는 몸짓이라고 할 만하지 싶고요.



요즘 소는 뭐 했소 / 사료 먹었소 / 눈만 끔벅거렸소 / 심심하면 꼬리로 파리 쫓았소 / 살이 오르자 팔렸소 / 팔린 날 세상과 작별하였소 (소)


눈사람은 / 모두 다 눈사람 // 눈사람한테도 이름을 / 붙여 주고 싶어 // 내가 만든 눈사람은 / 찬우 // 이름을 밝힐 수 없는 / 그 애가 만든 눈사람은 / 민지 (눈사람 민지)



  동시집 《생각하는 감자》에 흐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뿔 난 염소”도 아기한테 젖을 물릴 적에는 가만히 있는다는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염소한테는 뿔이 있습니다만, ‘뿔나다’는 ‘골나다’나 ‘성나다’ 같은 말씨이기도 해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달래거나 다스릴 적에는 누구라도 ‘뿔·골·성’부터 먼저 차분히 달래거나 다스릴 수 있어야 해요. 아이한테 윽박지르면서 “밥 먹엇!” 하고 꽥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밥맛이 떨어지겠지요.


  머리를 들이박고 싸우는 “어른 염소”를 늘 보던 새끼 염소도 끼리끼리 머리를 들이박고 싸움질을 할 테고요. 아이들이 어른들 곁에서 본 몸짓이 싸움이라면 아이들도 싸움을 할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른으로서 서로 아낄 줄 아는 몸짓이면 아이들은 ‘서로 아끼는 몸짓’을 고스란히 배워요. 우리가 어른으로서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눈길이면 아이들은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눈길’을 낱낱이 물려받아요. 뿔 난 염소도 새끼(아기) 앞에서는 얌전하다는 대목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감자가 무슨 생각이 있냐고? // 그럼 생각도 없이 / 때가 되면 싹 틔우고 / 때가 되면 꽃 피우나 (생각하는 감자 1)


엄마한테 혼나서 / 울고 싶은 날은 // 몸을 숨기고 / 기대어 울 수 있는 / 구석이 좋다 // 그때는 / 구석이 엄마 같다 (구석)



  큰아이하고 밭에서 모시풀 뿌리를 캡니다. 옥수수를 심으려고 땅을 가는데, 여러 해 묵은 모시풀 뿌리가 무척 깊고 굵어요. 처음에는 혼자 진땀을 빼며 뿌리를 캐는데, 어느새 큰아이가 호미를 챙겨서 내 옆에 앉더니 함께 뿌리캐기를 합니다. 걸레를 손에 쥐어 방바닥이나 마루를 훔칠 적에도 아이들은 어느새 옆에 붙어서 함께 걸레질을 하겠노라 합니다. 비를 들고 마당을 쓸 적에도 이와 같아요. 하나하나 가르쳐도 배우지만, 하나하나 보여주는 모든 여느 삶이 아이한테 ‘배움’이 되어요.


  ‘생각하는 감자’처럼 나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어버이’로서 ‘생각하는 어른’으로서 하루를 일굴 줄 알아야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한테 보여주는 몸짓도 생각하고, 아이한테 보여주는 몸짓이기 앞서 나 스스로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열려고 하는 새 아침이나 하루가 되는가를 생각해야겠다고 느껴요.


  생각하는 어른으로 하루를 살며 생각하는 아이를 돌볼 적에 바야흐로 ‘생각하는 어버이’가 되겠지요. 생각을 꽃피워 사랑으로 가꿀 줄 아는 어른으로 아침을 열 적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어버이’로 거듭나겠지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일이요, 언제나 새롭게 웃음을 짓는 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감자 한 알처럼, 동백나무 한 그루처럼, 구름 한 조각처럼, 바람 한 줄기처럼, 곱고 따스하게 생각을 빚자고 거듭거듭 마음을 기울입니다. 2016.4.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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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버린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482
이이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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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0



‘버리는 사랑’을 생각하는 젊은 넋이 많은 나라

― 인간이 버린 사랑

 이이체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6.3.25. 8000원



  아침에 일어나면서 무엇을 맨 먼저 할까 하고 잠자리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몇 분쯤 가만히 눈을 감고 하루를 그린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미적거리려고 하는 몸짓이 아니라 하루를 길고 즐겁게 누리려는 몸짓이에요. 게으른 몸짓이 아니라 하루 살림을 새롭게 지으려는 몸짓이고요.


  어제는 여러 날 미룬 빨래를 잔뜩 하며 아침을 열었어요. 며칠 동안 사월비가 주룩주룩 내린 탓에 미룬 빨래였기에 꽤 많았어요. 빨랫감이 많구나 싶어 다 하지는 않고 좀 남겼습니다. 아침에 신나게 빨래를 하고, 밥을 지어서 먹인 뒤에는 살짝 등허리를 펴고는 온 식구가 들길을 걸었어요. 여러 날 사월비가 내린 들판은 유채꽃이 활짝 터졌거든요.


  그래서 들길을 한참 걸어서 면소재지까지 제법 먼 길을 걸었습니다. 마침 4월 8일하고 9일에 걸쳐서 ‘미리 투표하기’를 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아침 빨래를 하고 아침밥을 즐겁게 먹고는 옥수수 씨앗을 밭 가장자리를 따라서 심자고 생각해 봅니다.



잘못 온 편지를 읽고 운 적이 있다 (몸의 애인)


어떤 말을 하면 울고 난 것 같다 // 어린 개가 칭얼거린다, 간결하고 간절하게 (우상의 피조물)



  아이들을 이끌고 유채꽃 들길을 걷다가 다리쉼을 하는 사이에 《인간이 버린 사랑》(문학과지성사,2016)이라는 시집을 살짝살짝 읽었습니다. 봄들마실하고 어울릴 만한 시집인지 아닌지는 딱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이 버린 사랑’을 이 봄들에서 읽을 만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이 버린 사랑’이 있으면 어느 한 ‘사람이 새롭게 심는 사랑’이 있으리라 느껴요. 사랑은 버려질 수 없으리라 느끼기도 해요. 왜냐하면, 사랑을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이는 그이 목숨을 버리는 셈일 테니까요. 이 땅에서 더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없을 때에 그만 사랑을 버리고 목숨까지 내려놓는 셈일 테니까요.



육체는 빛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자를 드리운다 // 나는 직업이 죄인이다 / 누구보다도 죄를 잘 짓는다 (푸른 손의 처녀들)


기억으로 / 숲이 우거지면 / 다 / 잊혀진다. (부제―무제)



  1988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이이체 님은 한창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움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이제 막 푸른 숨결로 새로운 살림을 짓는 젊은 손길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이이체 님이 우리한테 싯말로 들려주려고 하는 노래는 ‘사람이 버린 사랑’입니다.


  다시 들길을 걷고, 또 다리쉼을 하고, 거듭 들길을 걷다가, 면소재지에 닿아 투표를 하고는, 다시 다리쉼을 하는 사이에 살짝살짝 시집을 더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새롭고 푸른 꿈이랑 사랑을 키울 만한 젊은 넋은 왜 ‘사람이 버린 사랑’을 자꾸만 마음속으로 그려야 할까요? 젊은 시인 이이체 님 마음자리에 생채기나 아픔이나 응어리나 피고름이나 멍에나 앙금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직 생채기나 아픔이나 응어리나 피고름이나 멍에나 앙금을 짊어지거나 떠안아 보지 못했다고 여겨서 이러한 것들을 가슴 가득 품고서 ‘이웃사랑’을 헤아려 보고픈 마음일까요?



마음을 가진 자에게서, 사랑은 언제 죽을까 / 사랑을 모르던 때에 만났던 사랑을 /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 (피 흘리며 태어나는)


모든 이름은 가명이다 / 모순은 완벽하다 (누설)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아픔을 모르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열흘 동안 몸져누운 채 꼼짝을 못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나날을 알기 어려워요. 여러 해 동안 몸져누운 삶을 겪어 보지 못했다든지, 또는 서른 해 남짓 아픈 몸을 이끌고 살림을 꾸려야 하는 삶을 겪어 보지 못했다면, 이러한 나날을 마음속으로만 그리기도 쉽지 않아요.


  ‘사람이 버린 사랑’을 알자면, 아무래도 스스로 사랑을 버려 보아야겠지요. 내가 사랑을 버리든, 내 곁에서 누군가 사랑을 버리든, 나와 네가 함께 사랑을 버리든, 또는 이 지구별 숱한 사람들이 사랑을 버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든 할 때에 비로소 ‘사람이 버린 생각’을 몸으로 느낄 만하리라 생각해요.


  우리 사회는 젊은 넋한테 ‘짓는 사랑’이 아닌 ‘버리는 사랑’을 떠넘기는 얼거리는 아닌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우리 사회는 젊은 넋이 젊은 넋답게 살림을 짓도록 북돋우기보다는, 젊은 넋한테 수많은 짐덩어리를 얹는 얼거리일 수 있겠다고 헤아려 봅니다. 입시지옥이나 학원지옥뿐 아니라 교통지옥도 있고 취업지옥도 있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첨단문명이 눈부시기는 하지만, 어디에나 ‘이런 지옥’하고 ‘저런 지옥’도 잔뜩 있어요.



일 년이라는 것은 그저 계절들이 차례대로 미치는 단위에 지나지 않는다. 찬란한 물이 고체의 언어를 발음할 때부터, 비로소 우리는 기형에 짓밟힐 수 있었다 (살해된 죽음)


살을 섞고 삶을 나누던 기억 / 당신을 잊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 망각까지 잊을 수는 없다 (물의 누드)



  아침에 큰아이한테 옥수수 씨앗 여섯 톨을 건넵니다. 먼저 큰아이더러 혼자서 심어 보라고 얘기합니다. 네 온 사랑을 담아서 씨앗을 심으라고 속삭입니다. 이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보금자리를 곱게 밝혀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심으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이 집에서 함께 마음을 섞고 생각을 섞습니다. 우리는 이 보금자리에서 함께 손길을 나누고 꿈길을 걷습니다. 나는 아이한테 건네는 손길을 늘 마음에 아로새깁니다. 아이도 어버이한테서 받는 손길을 늘 마음에 되새겨요.



당신이 나에게 말했다. / 바람은 늘 누군가와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 같아 (편애, 사랑에 치우치다)



  봄바람이 붑니다. 따스합니다. 곧 여름바람이 불면 시원하겠지요. 이내 가을바람이 불면 상큼할 테고요. 다시금 겨울바람이 불면 추울 텐데, 추운 겨울에는 서로 옷을 나누어 입고 이불을 함께 덮는 살붙이가 있어서 포근합니다.


  바람은 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무는 풀을 사랑합니다. 풀은 흙을 사랑합니다. 흙은 풀벌레를 사랑합니다. 풀벌레는 구름을 사랑합니다. 구름은 해님을 사랑합니다. 해님은 다시 바람을 사랑해요. 사람은 이 모든 사랑 사이에서 가만히 꿈을 지어서 살림으로 잇습니다.


  가볍게 부는 사월바람에 민들레 씨앗이 가볍게 꽃대에서 떨어져서 나풀나풀 날아오릅니다. 노란민들레씨도, 흰민들레씨도, 저마다 사뿐사뿐 바람을 타면서 이곳저곳 흩어집니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새로운 들길이나 숲길을 걸어 보자고 생각하면서 작은 시집을 덮습니다. 그리고 내 손에 새로운 시집 하나를 품고서 씩씩하게 이 봄을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2016.4.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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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창비시선 374
안현미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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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9



깊은 새벽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며

―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글

 창비 펴냄, 2014.5.23. 8000원



  깊은 새벽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밉니다. 한밤에도 으레 아이들 이불깃을 여밉니다. 하루 내내 신나게 뛰논 아이들은 꿈나라에서 뛰노느라 잠자리에서 이리저리 구릅니다. 온 하루를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무척 고단한지 자꾸 뒹굴면서 내 옆구리를 차고 이불을 걷어찹니다. 그러니 나는 밤새 잠을 살짝 옆으로 미루고 틈틈이 이불깃을 여미면서 보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으면 아이들은 밤새 저희가 어떻게 잤는가를 하나도 모릅니다. 알 턱이 없기도 할 테고, 알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밤새 무슨 꿈을 꾸었느냐 하고 물으면, 두 아이는 언제나 대단히 신나게 온갖 놀이를 다 하면서 놀았다고 해요. 그래, 그렇게 꿈에서도 뛰어놀고 날아다니니까 밤새 이불을 차고 구르면서 잘 테지요.



악어가죽 가방을 든 여자가 도착한다 결정적으로 코를 빠뜨린 녹색 카디건을 입고 있다 비에 젖은 트렁크에선 빗물이 떨어지고 호텔 로비의 괘종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다 (백 퍼센트 호텔)


곤드레나물밥을 먹는다 / 곤드레나물밥을 먹으며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 우리는 잠시 사는 것 (불혹, 블랙홀)



  안현미 님이 빚은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창비,2014)를 읽습니다.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산다는 안현미 님은 시를 쓰는 사람이면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001년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고 2010년에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집을 찬찬히 펼치다가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시 쓴다” 같은 말마디를 봅니다. 아하, 이녁은 낮밤을 길디길게 보내는 살림이로군요. 집살림을 꾸리려고 낮에는 몸으로 뛰고, 마음살림을 가꾸려고 밤에는 온힘을 기울이는 하루이지 싶어요.



망우리 지나 딸기원 지나 누군가 무심으로 아니 정성으로 가꿔놓은 파밭 지나 구리 지나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하얗게 하얗게 파꽃이 피는 동안 여름과 초록과 헤어지는 동안 (구리)


우리는 선천적으로 두개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 들숨과 날숨!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시 쓴다. (정치적인 시)



  〈정치적인 시〉라는 노래에서 들려주듯이, 우리한테는 누구나 두 가지 노래가 있다고 느낍니다. 들숨하고 날숨. 마시는 숨하고 내쉬는 숨. 숨을 쉬며 사는 우리 가운데 ‘늘 숨을 쉰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척 드물는지 모르는데, 사람은 누구나 1초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목숨이 끊어져요. 사람뿐 아니라 벌레하고 짐승도 숨을 아주 살짝이라도 안 쉬면 죽습니다. 풀하고 나무조차도 숨을 못 쉬면 그예 죽습니다. 이른바 ‘진공’이라는 데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곧바로 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숨을 살피면, 들숨하고 날숨은 ‘같은 바람’을 마시더라도 다른 결입니다. 들이마실 적하고 내쉴 적에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에요. 참말로 두 갈래 노래입니다. 마시는 노래요 내쉬는 노래입니다. 받아들이는 노래요 내보내는 노래입니다. 받는 노래요 주는 노래예요.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아이한테 주고, 아이한테 주는 사랑을 새삼스레 아이한테서 받습니다.



그리하여 그도 그렇겠다 글렌 굴드를 듣는다 당신은 가벼울 필요도 없지만 무거울 필요도 없다 내 생의 앞 겨울을 당신을 훔쳐보면서 설레었으나 그 겨울은 거울처럼 깨져 버렸고 깨진 거울의 파편을 밟고 당신은 지나갔다 (그도 그렇겠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밥상이 날아가고 핸드폰이 날아가고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삼겹살이 날아가고 소주병이 날아가고 (축 생일)



  아줌마 시인인 안현미 님은 낮밤으로 바쁘게 하루를 지으면서 시를 씁니다. 나는 낮밤으로 바쁘게 살림을 꾸리면서 글을 씁니다. 나는 낮에 밥하고 빨래하고 집 안팎을 건사하고 마을도서관을 열고 아이들을 이끌면서 놀이를 하다가는, 밤이 되어 고단한 몸을 움직여 글 몇 줄을 신나게 씁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슬그머니 일어날라치면 아이들은 “아버지 곧 와?” 하고 묻습니다. 잠든 척하고 잠들지 않은 아이들은, 깊은 밤에도 꿈나라에서 함께 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우리는 늘 마음으로 함께 있어.” 하고 속삭이고는 이불깃을 다시 여미어 줍니다.


  사월에 사월답게 피고 지는 꽃하고 잎을 바라보면서 사월스러운 노래를 듣습니다. 어느덧 꽃잎이 다 떨어진 매화나무 곁에서 새롭게 돋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이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매화나무는 꽃잎을 모두 떨구었지만, 나뭇잎을 먼저 내놓은 뒤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과나무는 이제 막 꽃잎을 한껏 벌립니다. 모과나무에 피는 모과꽃이 머잖아 꽃가루받이를 마치고 하나둘 눈송이처럼 떨어질 무렵에는, 이 나무 곁에 있는 다른 나무인 찔레나무에서 새하얀 꽃이 잔치를 벌여요. 그리고, 찔레나무 찔레꽃이 질 무렵에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가 퍽 느즈막하게 꽃을 터뜨리면서 온 마을 새하고 나비를 부릅니다.



새벽 5시, 세탁기를 돌린다 특별시의 시민으로서 세탁기를 돌린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이 함께 살고 있는 8가구 다세대주택의 새벽을 돌린다 (1인 가족)


엄마는 노루모산을 끼고 살았다 / 신이 되려는 중인지 (화란)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오늘 아침은 어떤 밥으로 지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어제 먹고 남긴 국을 들여다보고, 어젯밤에 등허리가 결리도록 마련한 밑반찬을 살핍니다. 오늘도 새로 밑반찬을 하나 해 볼까 하고 어림하다가는, 살며시 트는 동에 따라 아침부터 바지런히 날아다니는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새하고 풀벌레하고 나비하고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옆에 끼고 삽니다. 그리고 두 아이가 하루 내내 종알종알 종달새처럼 들려주는 노래를 곁에 끼고 삽니다. 아줌마 시인 안현미 님네 어머님은 노루모산을 끼고 살면서 하느님이 되려고 하셨다면, 나는 숲노래를 듣고 아이들 놀이노래를 끼고 살면서 하느님이 되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이틀 동안 내린 비가 밤에 비로소 그쳤으니 오늘은 아침부터 사흘치 빨래를 하면서 열어야겠군요. 어제부터 불린 옥수수 씨앗도 뒷밭에 가지런히 심어야겠고요. 바쁜 사월에 시집 한 권을 동무처럼 책상맡에 놓습니다. 2016.4.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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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편지 사십편시선 15
임덕연 지음 / 작은숲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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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8



조용조용 거닐며 시를 읽으면

― 남한강 편지

 임덕연 글

 작은숲 펴냄, 2014.12.10. 8000원



  임덕연 님이 빚은 시집 《남한강 편지》(작은숲,2014)를 읽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군내버스에서 읽습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읽습니다.


  버스가 덜컹거릴 적마다 아이들도 내 곁에서 이리 움직이다가 저리 쏠립니다. 아이들은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재미나게 웃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는 듯합니다. 나도 아이들하고 이리저리 덜컹거리면 마치 놀이를 하는구나 싶어서 재미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덜컹거림 때문에 멀미가 났지만 이제는 이런 덜컹거림이 대수롭지 않아요.



몰래받은 설물인양 / 넌출 걸린 비닐들을 깃발처럼 날리면서 / 웅덩이가 모래언덕이 되고 / 자갈더미가 웅덩이가 되는 사연을 (강둑 풀)


강에 가려고든 / 남한강 / 여주 바위늪구비쯤 가 봐라 // 돌이 된 사람들이 / 참 사이좋게 누워있던 걸 (돌이 된 사람)



  교사이자 시인인 임덕연 님은 냇물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냇물에 어린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냇물을 바라보다가 느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냇물을 둘러싼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냇물과 냇가를 이루는 수많은 돌과 풀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문득 돌아봅니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조용해야 합니다. 시끄러운 데에서는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우리 이야기가 파묻히기 일쑤입니다. 시끄러운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내야 비로소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해요. 서로서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되고 가벼운 눈길이 될 때에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청동기 시기 집터에는 / 강가에서 한 알 한 알 거뒀을 / 쌀알이 거의 석탄이 되어 나왔다. / 관에서 나와 말뚝을 박고 / 표지판도 세웠을 때는 / 좀 좋은 일이 있으려나 했지만 / 잡초가 자라고, 말뚝이 썩어도 / 촌살림은 별반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흔암리 선사유적지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 새소리를 못 듣습니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옆에서 들려주려는 말소리를 못 듣습니다. 커다란 짐차가 우르릉거리며 지나갈 적에도, 삽차가 땅을 팔 적에도, 크고작은 자동차가 둘레를 지나갈 적에도, 이 모든 소리는 새소리나 말소리를 모두 잠재웁니다.


  그러고 보면, 냇물을 까뒤집어 시멘트를 들이붓는 삽질이 여러 해 동안 이어질 적에, 이런 일을 시키던 사람이나 이런 일을 하던 사람은 새소리도 말소리도 듣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해요. 수많은 기계가 내는 소리에 밀려서 작은 목숨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듣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작은 목숨이 내는 작은 소리가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할 만해요.

  


나무들이, 풀들이, 수많은 돌들이 / 터벅터벅 / 강가를 걷고 있다. // 바람들이, 구름들이, 강물에 제 얼굴을 비춰대는 하늘이 / 쉬엄쉬엄 / 강가를 걷고 있다. (강가를 걷다)



  바쁜 걸음을 살짝 멈추고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바쁜 일을 살짝 그치고 눈을 들 수 있을까요. 바쁜 하루를 살짝 내려놓고 둘레를 돌아볼 수 있을까요.


  꼭 시인처럼 나무나 풀이나 돌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꼭 시인처럼 냇가를 거닐어야 하지 않습니다. 바람을 쐬고, 비를 뿌리는 구름을 보며, 우리 몸을 이루는 물줄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흐르는가를 헤아릴 수 있으면 됩니다. 내 목소리를 너한테 들려주고, 네 목소리를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으면 돼요.



강물은 / 그저 긴 꼬리를 달고 아래로만 / 미련 없이 흐르는 줄 알았는데 / 새벽녘 강가에 나와 보니 / 강물은 / 크고 작은 톱니바퀴 수천 개를 맞대어 돌리면서 / 지구를 돌리고 있었다. (이포, 강가에 서서)



  조용조용 걸으면 발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발소리를 죽인 채 살금살금 걸으면서 여러 가지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참새가 처마 밑을 바지런히 드나드는 소리를 듣고, 직박구리가 매화나무에 앉아서 노는 소리를 듣습니다. 딱새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살짝 내려앉아서 ‘딱딱’거리는 소리뿐 아니라 작은 구슬을 입안에서 굴리는 듯한 소리도 듣습니다.


  발소리를 죽이면서 아주 천천히 마당이나 뒤꼍을 거닐면, 크고작은 새들은 우듬지나 가지에 앉아서 처음에는 내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딴 데를 봅니다. 발소리가 나거나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나도록 움직이면 새들은 이내 자리를 떠요. 나는 내 발소리도 몸짓 소리도 죽이면서 온갖 새가 우리 집 둘레를 드나드는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이러는 동안 새소리에다가 바람소리도 한결 깊이 듣습니다.


  시집 《남한강 편지》를 손에 쥐고 마당하고 뒤꼍을 걸어 봅니다. 다 읽은 시집을 평상에 내려놓고 나무 앞에 조용히 섭니다. 새로 돋는 잎을 바라보고, 새잎이 돋는 나무에 살포시 찾아드는 멧새를 마주합니다. 문득 낯익은 소리가 들려 위를 올려다보니 제비 여섯 마리가 빠르게 하늘을 가릅니다. 2016.4.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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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9
신동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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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6



“아빠, ○○○당이 왜 나빠?”

―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신동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4.6.23. 8000원



  신동호 님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실천문학사,2014)를 읽습니다. 대뜸 묻는 냉면집 아저씨 이야기가 긍금합니다. 냉면집 아저씨가 어디로 갔기에 시인은 이렇게 물음표를 콕 찍을까요? 아무래도 냉면집 아저씨가 더는 냉면집을 지키거나 버티지 못하기에 어디론가 가셨겠지요. 냉면집 살림이 나빠졌을 수 있고, 냉면집 말고 다른 꿈을 찾아서 길을 나섰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흔한 재개발에 밀려서 떠나야 했을 수 있고, 고향이 그리워서 냉면집을 고이 접었을 수 있습니다.



종착역. 끝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없기에 슬프고, 없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혁명은 억지로 봄을 부르지만 겨울아, 왜 사랑은 눈꽃처럼 네 안에서만 피어나는 것이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겨울 경춘선 2)


광합성은 1차 산업이다. 지식인들은 이미 자신들이 비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산나무 증후군)



  사월을 앞둔 시골은 부산하려는 움직임이 살랑거립니다. 아직 부산하지는 않습니다. 바야흐로 새벽이나 밤까지 따스한 바람이 불면 그야말로 부산할 테지요. 마늘밭에서 마늘을 뽑고, 마늘밭을 갈아엎은 뒤에, 이 자리에 새로운 남새를 심거나 모내기를 해야 하는 사오월이 그야말로 부산하지요.


  그래도 삼월 끝자락 새벽에 마을이 온통 연기투성이입니다. 집집마다 뭔가를 태우는 연기가 몽글몽글 솟습니다. 동틀 무렵부터 일어나서 하루를 연다는 뜻입니다. 나도 동틀 즈음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아이들이 아침까지 깊이 자도록 불은 안 켭니다. 초만 한 자루 조용히 켭니다. 마당하고 뒤꼍을 돌면서 나무한테 인사하고, 곧 옥수수를 자리를 가만히 살핍니다. 날이 더 따스하면 아이들하고 신나게 옥수수를 심을 생각입니다. 어제는 텃밭에 붉은콩을 쪼르륵 심고, 뒤꼍에 나무도 한 그루 새로 심었습니다.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장벽이 없었음을 확인하던 금강산이 두려웠던 게다. 우리 모두. 장벽이 있어야 편안한 우리 모두. (미인송)



  꽃삽하고 호미를 쥐고 흙놀이를 신나게 하는 아이들입니다. 꽃삽하고 호미만 있으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동안 꽃삽하고 호미로도 배고픈 줄 잊고 놀아요. 밥을 먹으라고 부르면 더 놀아야 한다면서 안 오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시 사회이기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렇지만 딱 서른 해만 돌아보고 쉰 해를 거스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어요. 백 해를 되새기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온누리 거의 모든 아이들한테 꽃삽하고 호미를 맡기면 무척 신나게 흙놀이를 하리라 생각해요. 도시 아이들도 바닷가에 놀러가면 모래밭에서 모래를 파며 신나게 모래투성이가 되지요.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를 읽으면 신동호 님네 막둥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얼핏설핏 흐릅니다. 그러면 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며칠쯤 아버지 일하는 곳에 함께 데리고 다녀도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개근’해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하루나 며칠쯤 학교를 쉬도록 하고서는,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바깥나들이를 넉넉히 다녀 보아도 즐거워요.



과태료 고지서를 깜빡하고 평양까지 가지고 갔다 / 납기 후 금액에 안달하던 자본주의 버릇까지 가지고 갔다 (평양, 가방)


늦은 밤, / 온종일 수학 문제를 푼 열다섯 아들이 / 집으로 가는 길에서 물었다. / “아빠 새누리당이 왜 나빠?” (사막촌 주막)



  시인 신동호 님이 과태료 고지서 말고 이녁 아들을 데리고 평양을 다녀오면 어떠한 살림을 지을 만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학교를 며칠 쉬도록 하고는, 이 아이들이 평양을 아버지하고 함께 밟으면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살짝이나마 겪어 보도록 하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시 시집을 덮고 부엌일을 합니다. 아침으로 지을 밥거리를 손질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는 아버지를 보는 우리 아이들은 저희도 칼질이나 도마질을 하고 싶습니다. 칼등으로 마늘을 빻으면 왜 칼등으로 마늘을 빻느냐고 물으면서 저희도 그처럼 하고 싶습니다. 절구로 마늘을 찧으면 저희가 절구질을 하겠다면서 손을 번쩍번쩍 듭니다.


  커다란 무도 썰어 보고 싶고, 길다란 당근도 썰어 보고 싶습니다. 매운 내가 퍼지는 양파도 썰어 보고 싶고, 말랑말랑 잘 삶은 달걀도 가만히 썰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배우고, 어버이는 어깨너머로 지켜보도록 틈을 내어 주면서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살림을 바라보면서 배우고, 어버이는 아이들 둘레에서 살림을 새로 지으면서 가르칩니다.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는데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 바다가 물러난 사리 갯벌 어디에서 개불을 잡고 있을까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이제야 철조망이 보인다 / 나는, 내가 자유인인 줄 알았다 / 망명의 꿈도 꾸지 못하는 포로였음을 (포로수용소)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고, 눈처럼 매화꽃이 날립니다. 매화꽃이 진 옆에서 모과꽃이 피고 앵두꽃이 핍니다. 모과꽃하고 앵두꽃이 지면 붓꽃하고 장미꽃이 펴요. 붓꽃하고 장미꽃이 질 즈음에는 초피꽃하고 후박꽃이 핍니다. 이 사이에서 찔레꽃이 가만히 피어나서 어느새 온통 하얀 꽃밭이 됩니다.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를 가만히 덮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시인 신동호 님 아들은 아버지더러 “아빠 새누리당이 왜 나빠?” 하고 묻습니다. 아버지는 아들한테 ‘왜 나쁜’지 낱낱이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요? 아니면, 싯말에만 이렇게 적었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이 아버지더러 “○○는 왜 나빠?” 하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온누리에 나쁜 것(사람)은 없어.”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온누리에 좋은 것(사람)도 없어.” 하고 덧붙여요. 나쁘다고 여긴 것(사람)이 어느새 좋다고 여길 만한 것(사람)으로 바뀌기도 하고, 좋다고 여긴 것(사람)이 어느새 나쁘다고 여길 만한 것(사람)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좋고 나쁨에 앞서 그것(그 사람) 바탕에 어떤 숨결이 흐르는가를 읽고 싶어요. 좋은 나무도 나쁜 나무도 없이 모두 ‘나무’이고, 좋은 풀도 나쁜 풀도 없이 모두 ‘풀’이며,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이 모두 ‘사람’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얘야, 네가 그릇을 떨어뜨려 깨뜨리면 네가 나쁜 아이일까?” “아니.” “아니지? 그냥 그릇을 떨어뜨려서 깨뜨렸을 뿐이야. 나쁜 사람은 따로 없어. 그저 그런 일을 했을 뿐이야. 나중에 그 사람이 그런 일을 왜 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참말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으면 돼.”


  새 아침에 새 하루를 엽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나눕니다. 새로운 살림을 짓자고 새롭게 생각합니다. 냉면집 아저씨는 틀림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새로운 마음을 품으리라 봅니다. 시인 아저씨도, 나도, 온누리 아이들도, 모두 마음자리에 새로운 꿈을 담아서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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